Text
4월의 어느날, 회사일기
Q. 직장생활 8년차가 아직도 회사에서 눈물 쏟을 일이 있나요?
YES
Q. 나 때문에 회사돈 몇억이 날아간건가요?
NO
Q. 나 때문에 누군가 회사에서 잘렸나요?
NO
Q. 혹시 시디님도 같이 울었나요?
YES
세상의 평화는 힘의 균형이 잘 맞을 때, 즉 밸런스가 잘 맞을 때 유지된다. 어느 한쪽이 너무 우세하지도 어느 한쪽이 너무 약하지도 않을 때 적당한 긴장감 위에서 평화는 유지된다. 회사에서 팀이라는 조직을 꾸리는 이유도 필시 이 밸런스 때문일 것이다. 누구 한명이 독보적으로 잘 나가는 것, 또는 누구 한명이 낙오 되는 것이 뻔히 보이는 각개전투보다 이들을 적당히 섞어 힘의 평균을 맞추어 놓는 일. 회사라는 조직이 하는 일.
우리 팀은 몇 달 전부터 밸런스가 아예 붕괴된 팀이다. 동시에 아트 두명이 나가는 바람에 시디님과 카피 둘이 한달을 버텨가며 일했고, 새로 들어온 한명의 아트는 새 둥지에 적응도 하기 전에 경쟁피티와 온에어, 지면이라는 사냥감들과 매일 사투를 벌이고 있다. 네 바퀴가 다 달려있어도 잘 굴러갈까 말까한 상태에서 일이 겹치다 보니 어제는 결국 사단이 나버렸다. 끊임없는 아이디어 회의 속에 주니어들은 가이드를 벗어난 아이디어를 들고와버렸고 안그래도 무지막지한 스케줄과 업무량에 쪼이고 있던 시디님은 이 사태에 폭발해버리셨다. 혼자 고군분투 하고 있던 나도 어제는 버티기가 참 힘든 하루였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일이 몰린 것도, 사람을 뽑지 못한 것도, 주니어들이 똥볼을 찬 것도, 시디님이 실망하신 것도, 내가 회사 뒤뜰에 가서 운 것도.
밸런스가 맞지 않으면 아무리 한명이 애를 쓰고 노력해도 일은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다. 얼마전 강철부대2에서 400Kg짜리 타이어를 네 명이서 함께 뒤집으며 나아가는 레이스를 펼쳤는데 모두가 나가떨어지는 상황에서 단 한 팀만이 미친 속도로 나아갔다. 동시에 타이어를 들어 동시에 넘기는 합이 기가 막히게 잘 맞는 팀이었다. 한명이 퍼져버리리면 나머지 세 명이 악바리로 넘기려 해도 타이어는 도무지 넘어가지지 않았다. 동시에 딱 들어야 힘이 분산되고 동시에 넘겨야 힘의 소모가 덜하다는 걸 그 팀만 알고있었다.
소화불량처럼 쌓인 일들이 배출되고, 나머지 팀원도 마저 충원이 되고, 시디님도 내적 평화를 찾으시고, 주니어들도 정신적 체력이 회복되면 우리도 잘 넘길 수 있다. 40억짜리, 60억짜리 피티 따위 가뿐하게 서로 응원하며 넘길 수 있다. 지친 시디님 위로해드리고, 상처받은 주니어들 위로해주고 오늘에서야 나는 내 글로 위로받는다.
이 글을 쓰는 중간에 승전보가 전해진다. 밸붕의 우리팀이 한달내내 고생하며 준비한 40억짜리 PT를 땄단다! 힘들어 퍼져가면서도 우린 끝내 타이어를 한번 넘겼구나 싶다.
2 notes
·
View notes
Text
코로나 사흘치 일기
3.30.수
생일날 아침(!) 자가키트에서 1초만에 두줄이 떠서 신속항원검사로 최종 확진 판정을 받다. 엄청난 생일선물이다 정말. 목구멍에 누가 불을 붙인 느낌이 났으며 침 삼키는 것이 너무나 불편하다. 엎친 데 덮친 격인지 코로나 증상인지, 혀 옆에 아주 커다란 구내염까지 생겨서 말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 한 상태. 오후부터는 오한이 몰려와 이불을 두개나 덮었는데도 몸이 덜덜 떨렸으며 몸살근육통으로 허리가 펴지지 않아 할미꽃처럼 집안을 걸어다녔다. 얼굴에서 땀이 뚝뚝 떨어질 정도의 식은땀도 추가.
3.31.목
자고 일어나니 엄청난 고통을 동반한 인후통 실감. 커터칼 조각을 삼키는데 동시에 불이 붙는 느낌이 딱 정확할 듯 하다. 오한과 몸살근육통은 사라졌으나 식은땀은 계속 나서 실내복과 속옷을 두번씩 갈아입었다. 구내염의 영토확장이 진행되어 음식물 섭취가 매우 괴롭다. 약을 먹기 위해 삼시세끼를 꼬박 먹는데 속이 안 더부룩한 걸 보니 약이 굉장히 독한 모양. 남편은 나보다 먼저 확진이 되어 사이좋게 한 집에서 재택치료중이다. 오늘내일 하는 노부부처럼 침대에 누워 함께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4.1.금
닭살같은 두드러기가 팔과 허벅지에 올라온다. 닭이 되기 10분 전인 것만 같은 느낌. 아픈 와중에도 남편과 ‘내가 치킨이된다면 어느 브랜드의 어떤 치킨이 될까?’ 를 논의했다. 나는 작고 통통하고 애교가 있는 편이니 교촌 허니콤보가 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다행히 가렵지는 않은데 일종의 코로나 증상인지 블로그에 유증상자들의 글이 수두룩하다. 이틀동안 없었던 내장이 튀어나올 듯한 기침도 시작됐다. 코맹맹이 소리가 한층 업그레이드 되어 병자의 행색으로 뜻밖의 애교를 시전하고 있다. 팀에 팀원이 없는 관계로 오늘까지 아이디어를 내서 보내야 한다. 시디님이 미안해하셨지만 이젠 시디님의 괴로움을 이해하는 연차가 되었기에 나의 아픔보다는 우리 팀의 피티수주가 더 걱정된다. 내일부터는 증상이 낫길 바라는 마음이 점점 커져간다.
4 notes
·
View notes
Text
나흘치 일기
3.18 금
오븐에서 빵을 꺼내다가 데인 손가락에 물집이 잡혔다 터져서 속살이 드러났고, 일년에 한번 찾아오는 사랑니 통증이 하필 지금이고, 역대급으로 쥐어짜는 생리통을 겪고있다. 불행한 일들은 왜 한 번에 몰려오지 싶다가, 아무 불행도 일어나지 않았던 위대했던 평범한 나날들에 감사함을 느낀다.
3.19 토
나의 주선으로 나의 회사후배와 결혼을 하게 된 친구H가 프로포즈로 받은 아주아주 정말정말 비싼 반지를 잃어버렸다고 울고불고 전화가 왔다. 홈플러스에서 장보다가 들고있던 청경채를 떨어트릴 정도로 나까지 혼비백산. 그 반지 받기까지도 참으로 다사다난했는데 H는 전생에 최소 프로도, 아니 최소 골룸인 것 같다. 반지랑 원수를 져도 참… 다행히 엘리베이터에 떨어진 반지를 주워 관리실에 맡겨주신 같은 동 아주머니 덕분에 반지를 되찾았다. 옆 동네에 살고 있는 H의 새언니가 아기를 들쳐업고 온 집과 길바닥을 뒤진 끝에 해피엔딩.
옆에 있던 오빠에게 내 손가락을 들이밀며 나는 한번도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기특해해달라고 강요했다. 오빠가 가소로워 했지만 상대적 장점도 장점이니까!
3.20 일

예약이 엄청나게 어렵다는 케이크를 동생이 예약했다며 마침 내 생일에 가까우니 겸사겸사 생일파티를 당겨서 하자고 제안해 온 가족이 모였다. 오미크론을 별 탈 없이 겪고 지나간 부모님과도 오랜만에 상봉. 두 분 다 얼굴이 상하지 않고 오히려 좋아지셔서 다행이다. 코로나 사태에 늘 부모님이 걱정이었는데 면역력을 갖췄다는 안도감인지 오랜만에 편하게 외식도 하고 동생의 케익에 제부의 깜짝 와인 선물에 이래저래 기분이 좋았다. 생일은 열흘이나 남았는데 전야제가 벌써부터 시작되서 오빠가 걱정이 많아보였다 (껄껄 두려워말라 그대)

나의 새 아이패드로 우리부부까지 귀엽게 그려준 동생. 제부가 떨리는 목소리로 ‘자기도 아이패드 필요해…?’라고 묻는 소리를 들었다.
3.21 월
이직이 원점으로 돌아오고 나니 그동안 덮어놓고 있던 변기뚜껑 같은 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선배 역할, 이제는 해야하는 부사수 교육이 바로 그것. 내가 입사하던 때에서 또 꽤 많은 시간이 흘러버린지라 혹시나 꼰대처럼 보일까 걱정되는 것이 첫번째. 과연 나는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줄 만한 평판과 실력을 갖춘 사람인가에 대한 걱정이 두번째. 똑똑하고 예의바른 부사수이지만 더 인재로 만들고 싶은 내 욕심이 이 친구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는 일일지도 고민이다. 그렇지만 어디가서 김지영 카피 밑에 있었습니다, 를 이야기 할 순간이 올 텐데, 내가 너무 손 놓고 있었다는 모양새를 보여주고 싶지도 않다. 나의 진심이 전해지길 바라며 조심스럽게 접근(?) 해보려 한다. < 지영스쿨 급훈 : 타자 칠 손가락은 남겨드릴게 >
이전 팀에서 함께 했던 나보다 한 살 많았던 부사수가 좋은 조건으로 제일기획으로 가게 되었다. 나이 어린 사수 밑에서 고생 많았을 그. 우린 서로에게 훌륭한 경쟁자였고, 결이 다른 서로의 열정과 스타일 덕분에 함께 했던 시간동안 성장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다. 서로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나중에 더 성공해서 만나자고 다짐했다. 그는 그곳에서도 좋은 사람일 것이다.

회사가 큰 돈을 들여 오랜 기간동안 리모델링한 라운지를 드디어 오픈했다. 구글 뺨 치고 디즈니 머리채 잡는 수준으로 완성되어서 나를 포함한 많은 임직원들이 놀라는 중 (기대감이 너무 낮았어서 그런가). 대표님이 사비를 들여 채워놓을 와인셀러는 별책부록 치고는 너무나 매력적인 별책부록. 내일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볕 잘드는 자리에 앉아 개인적인 공부와 글쓰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직실패의 허무함을 이렇게 채워주다니. 애사심이란 것이 의외의 곳에서 크게 빵처럼 부풀어올라 빈 마음을 채워준다.
5 notes
·
View notes
Text
마케팅에 정답은 없지만.

마케팅이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것이라고 했을 때, 하지 말아야 할 마케팅이란……
고독한 사람에게 혹시 외롭냐고 묻지 않기. 외로운 사람에게 넌 고독한 거라고 위로하지 말기.
상대가 어떤 상태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마케팅은 절반의 성공이다!
1 note
·
View note
Text
2022년 2월 그리고 3월
#
텀블러로 돌아왔다. 때마침 아이패드를 처음 샀기 때문이고, 때마침 수진이가 뉴욕에서 텀블러로 돌아오라고 살살 꼬셨기 때문이지!
2년 전 나름 진지하게 때론 가볍게 썼던 글들을 다시 읽으니……나 생각보다 글을 나쁘지않게 (?) 썼어! 역시 난 카피라이터였어! 2,3월 간 노션에 남몰래 써온 줄글을 텀블러에 옮겨본다.
#2월 1일
공중화장실의 덮힌 변기뚜껑처럼, 계속 닫혀있길 바라는 마음이 드는 일들이 있다. 금요일까지 내야하는 아이디어, 미루는 것이 불가능한 경력직 자기소개서 쓰기 같은.
덮힌 걸 열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2월 3일

파스타의 딜레마.
면을 적당히 넣고 맛있게 만들어 먹는다. 양이 좀 부족하다. 섭섭하다.
면을 아주 잔뜩 넣고 만들어 먹는다. 맛이 좀 없다. 속상하다.
#2월 5일
내 귀에만 들어오지 않는 내 평판처럼, 본인의 거만함도 본인 눈에만 보이지 않는가보다. 요즘 잘 나간다는 와인바에 갔다가 잔뜩 거만해져버린 스탭들을 보고 한시간 만에 나왔다는 속상한 이야기.
#3월 3일
인생의 지평선을 현재 위치에서 조금 더 뒤로 보내는 일. 그곳까지 나아가야 하는 일. 사서 고생한다는 모양새이지만, 사서 성장하고 있는 요즘의 나.
새 팀으로의 이동, 와인수입사 홈페이지 카피 아르바이트, 8년만의 첫 이직준비로 역대 가장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촉수를 곤두세우고 있는 요즘의 나.
#3월 17일
두 달간의 이직준비가 끝이났다. 1차는 너무 못봐서 붙을 것을 예상했고 2차는 너무 잘봐서 떨어질 것을 예상했는데 내 예상이 적중했다. 역시 면접 불변의 법칙! Naver는 나에게 Never였어 흑흑… 그래도 준비기간동안 자극도 많이 받았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이곳에서의 슬럼프도 덕분에 극복했고. 마케터로의 전향은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스스로 들여다봐야할 듯 싶다.
새 팀으로 옮겨와 적응준비와 이직준비에 알바까지 하느라 누구보다 바쁜 1/4분기를 보냈다고 자부한다. 늘 머물러 있는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었는데 마음을 고쳐먹기로 결심해본다. 한 사람을 카피라이터로 머물게 하는 것은 ‘카피라이터를 벗어나고 싶은 백가지 이유’보다 ‘카피라이터로 남고 싶은 한 가지 이유’ 일테니까. 김영하 작가님 감사합니다.

4 notes
·
View notes
Text
영굿_영이의 goods
올해 가장 잘샀다. 나그참파 인센스와 인센스홀더 박스.
자기 전 삼심분 정도 켜두면 우디한 향 덕분에 긍정적 명상과 호흡 고르기가 가능해진다. 향이 뿜어져 나오는 나무상자를 보고 있노라면, 분노조절장애의 바다에서 한컵 정도의 분노가 덜어진다. 오늘처럼 비오는 날엔 더욱더 저 존재에 감사할 뿐.
2 notes
·
View notes
Text
그대로.글대로.
#
1. 수리비 140만원 가량의 접촉사고를 겪었다. 월요일 아침 상수역 사거리에서 사람들이 쌍욕을 하며 지나갔고, 서른 한 살이나 먹은 잘 차려입은 여자가 엄마에게 울며 전화를 했고, 붕붕이와 사흘간 생이별을 했다.
2. 독립된 가정을 꾸린다는 것의 현실적인 의미를 깨달았다. 사랑한다면서 돈 때문에 상처 주는 아이러니를 직접 실행해버리는 상당히 별로인 사람이 되었다.
3. 새벽 4시 40분에 내 발로 차키를 들고 차를 이끌고 응급실에 홀로 걸어 들어갔다. 만성방광염으로 삶의 질이 낮아진 나에게 슬기로운 의사선생님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7가지 약을 주셨다. 집으로 돌아와 리조또를 데워 먹고 약을 먹고 다시 잤다.
4. 베란다 실리콘 노화로 물 새는 집에 살아봄을 경험했다. 작정하고 늦잠 자려 했던 아침, 빗물을 받아내는 통과 마주 앉아 떨어지는 빗물 소리를 들으며 끝도 없이 가라앉았다.
얼마나 더 다양하고 다채롭고 다사다난해야 단단한 사람이 될까. 처음 경험하는 일들 앞에서 얄미울 정도로 차분한 사람이 되려면 나는 반세기는 더 살아봐야 할 것 같다.
#
엄마의 오십 몇 번 째 생일. (엄마의 나이를 세어보는 건 진실로 무섭다. 언젠가부터 의식적으로 세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환갑은 성대하게 챙길 것이다)
우리 모르게 아빠가 엄마에게 건넨 편지에는 이렇게 써있었다고 한다.
미안했고 미안해. 고마웠고 고마워.
이 4어절에 담긴 한 남자의, 남편의, 가장의 마음을 나는 차마 헤아릴 수 없다.
아주 사소한, 로또 단돈 오천원 당첨의 행운 따위도 나는 앞으로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 모든 운과 복을 그러모아 인숙씨와 재용씨의 평범하고 무탈한 일상을 위해 기도할 테다.
#
좋은 글귀와 문장을 습관적으로 필사한 지 어언 7년.
보물을 찾는 것 마냥 벅차고 설렜던 필사가 지겹고 고통스러운 routine이 된 건 올해 초부터. 왜 이렇게 됐을까. 7년 만에 깨달았다. 나는 이제 남의 좋은 글을 따라쓰기보다 나의 좋은 글을 쓰고 싶어졌구나. 일기장이 늘어나고 블로그를 시작하고 운전길에 라디오 청취 대신 머릿속 글쓰기가 늘어난 나를 나는 이제야 알아차렸다.
늦게 알아채서 미안한데, 그거 생각보다 많이 고통스러울거야.
#
최소 주 2회에서 주 3회 요가를 가는 기특하고도 의심스러운 행위를 한 달 조금 넘게 실천하고 있다. 돈을 내고 시간을 내어 요가를 하는 이유는, 신이 없는 나만의 종교를 갖기 위해.
살다가 힘든 순간들이 왔을 때 보이지 않는 존재에 기대기보다 나의 몸과 정신에 기대기 위해.
러그 대신 요가매트가 항상 깔려 있는 방에서 인도 향을 태우고, 잠들기 전 유튜브로 십분이라도 홈요가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가지 동작도 제대로 못하는 날이 더 많지만 원래 세상 모든 종교의 시초는 비참하고 불쌍했어.
오늘도 나마스떼.
4 notes
·
View notes
Text
월간 김지영 5월호
늦었습니다.
월간 김지영 5월호는 늦어버렸다. 6월인데 뻔뻔하게 5월호를 올린다.
자동차 브레이크 오일 교체 시기도 5월까지 였는데 늦어버렸다. 내 돈이 나갈 것이다.
잇몸이 부었는데 치과 갈 시기를 늦어버렸다. 자가치유 중이다.
아무도 무어라 하지 않지만, 침대 위에 콩알 몇 개가 숨겨진 것처럼 어딘가 살짝 불편하고 찝찝하다. 나에 대한 실망이겠지?
지금 이 순간에도 남의 돈 받고 마감에 쫓기고 있는 전세계의 작가 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자신에 대한 실망과 자본주의의 논리 사이에서 얼마나 괴로우실지. 이건 혼자 쓰는 블로그라 다행이야 정말.
박장대소 보다는 피식피식
습관이 되어버린 라디오 채널이 있다. 출근 시간이 10시 반이다 보니 매일 들을 수 밖에 없는 “정지영의 오늘 아침입니다 (FM 91.9)”.
흘려 듣는 매력이 있는 라디오에서 귀에 들어와 박힌 한 마디.
“저는 박장대소 보다는 피식피식이 좋아요. 에너지 소모가 덜하거든요.”
바로 나에게 적용해본다. 박장대소보다는 피식피식이 많은 인생이면 좋겠다. 한번의 에너지 소모가 많고, 곱씹으면 그 매력이 덜해지는 박장대소급 인생보다는 에너지를 조금씩 나눠쓰는, 뭐였지 뭐였지 하며 다시 떠올리고 싶은 일들이 많은 그런 피식피식 인생.
혼술우대법


플로리스트 출신의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 주인 홀로 운영하는 자그마한 술집을 발견했다. 삼청동 골목 안에 거짓말처럼 존재한다. 테이블은 없으며 다찌 밖에 없다. 누군가 소설을 쓰기 위해 주인을 캐스팅하고, 그 장소에 그렇게 지은 것처럼 생겼다. 다찌 매니아인 남자친구와 함께 보물섬을 찾아가는 기분으로 그날의 첫 손님이 되었다.
하루에 한번밖에 쓰지 않는 젓가락 받침을 내어주며, 처음 온 손님과 단골에게 내어지는 받침이 구분되어 있다.
월간집 형태의 잡문집이 메뉴판 앞 쪽에 수록되어 있다.
여름밤과 근사하게 어울리는 우롱화요가 있다.
무리 지어 온 손님은 우리뿐, 모두가 혼술러다. ‘혼자 오시는 분들께 우대하는 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가 메뉴판에 새겨져 있다. 역시.
5월 17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스럽게 보여주기 위해 애썼던 날.
엄마에게 남자친구를 처음 소개했던,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었던 5월의 어느 날.
깡에 대한 그의 깡다구

“놀면 뭐하니”를 통해 유튜브의 가벼움에 맞서는 기획을 해오고 있는 김태호 PD.
이번에 등장한 비는 정말 진심으로 멋졌다. 자기 자신을 사랑해서, 자기 자신에게 최선을 다해서, 그래서 “깡”이 나온 것 뿐인데.
열심히 춤추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나다움’이 뭔지 모르는, ‘유행’이 ‘내 것’인 줄 아는 요즘 사람들은 악착같이 버티어 내 것을 밀고 나가는 깡을 그저 촌스럽다고 낄낄 댄 모양새���구나.
깡을 대하는 비와 김태호PD의 깡다구에 박수를 보낸다. 비의 새우깡 광고 캐스팅에도 축하를 보낸다.
이 달의 내가 찍은 포토

난 서울여자다. 서울부심있다.
4 notes
·
View notes
Text
4월 28일의 발견

가끔씩 죽고 싶을 만큼 싫어지는 회사를 버티게 하는 건 월급이 아니다. 일에 대한 열정도 아니다.
전쟁터 같은 이 곳에, 나와 같은 결을 지닌 사람들이 같이 버티며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 나는 조금 덜 외로워진다.
버려진 화분에 토토로를 살짝 놓아보는 이런 맥락 없는 앙증맞음은, 돈으로도 신념으로도 막을 수 없는 한 인재(?)의 퇴사를 막는 엄청난 가치의 것이다. 정말로.

이천이십년 사월 이십팔일.
텅 빈 화분에 귀여움을 심을 줄 아는 나의 선배 또는 동료 또는 후배를 발견하다. 너무 귀여워 죽는다. 회사 때문에 불행했는데 회사 덕분에 행복해지다.
3 notes
·
View notes
Text
월간 김지영 4월호

Tumblr.
4월은 텀블러와 인연이 깊은 달이다.
캔버스백 치고 가격이 세다는, 갑자기 고개를 쳐든 가방양심 때문에 1년을 고민한 AVAM의 텀블러백을 결국 구매해버렸고,
드립커피에 푹 빠져버려 드립과 함께하겠다는 일념으로 생일선물로 받은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모아 스타벅스 봄 한정 텀블러를 구매해버렸다.
(*스벅 기프티콘은 모아서 제품으로도 교환 가능하다는 꿀팁을 전수한다)
그리고 마지막 텀블러는, 나에게 늘 선한 영향력과 마인드 테라피를 전수하는 s00jin의 Tumblr 월간 포스팅 제안.
텀블러 백에 텀블러를 넣고 출근해 텀블러를 쓰는 4월의 마지막 주 어느 날.

아는 만큼 슬프게 보이기도 한다
유일하게 본방 사수 중인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이우정 작가에 대한 믿음 하나로, 유연석이 나온다는 애정 하나로 시작했다가 전미도와 정경호에게 치이고 있다는 후문.
웃기고 찡하고 귀엽고 두근거리고 세상 모든 감정 다 능숙하게 요리하는 이 드라마에서 나는 희한하게도 아는만큼 보인다, 를 실감하는 중이다.
극 중 조정석은 간담췌외과의로 나오는데, 환자들과 나누는 의료 대화들을 알아들으며 안타까워 하기도, 기뻐하기도, 증상을 판단(?)하기도 하는 나를 발견한다.
벌써 아빠가 PPPD수술을 받은 지도 6개월이 다 되어간다.
절대 다시 평범해질 수 없을 거란 불안감도 이제는 많이 옅어질 만큼 아빠는 엄마와 우리들의 애정 속에서 천천히 밀도 있게 회복 중이시다.
아빠가 아팠던 일이 시간이 더 더 흘러, 그저 드라마 속 간담췌외과 관련 대화를 알아듣게 만든 작고 웃픈 에피소드로 남게 되기를.

한 번의 상견례 두 번의 결혼식
봄을 알리는 달 답게, 이번 달에는 한 번의 상견례와 두 번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사랑하는 동생이 내가 이어준 인연과 결혼까지 가게 되어 가지게 된 생애 첫 직계가족 상견례 자리. 가족들의 분위기가 서로 닮아있어 다행이고 감사하고 친근했던.
4월 4일 청명, 하늘이 맑아지는 날에 가진 상견례인 만큼 사랑하는 그들의 미래도 맑은 하늘 같기를 빌어본다.



FLEX
나와 남자친구는 각자 매달 6만원 씩 모으는 연인계(?)를 하고 있다. (애매한 6만원인 이유는 동생네 커플이 5만원 씩을 하고 있기에 조금이라도 이겨보자는 남자친구의 제안 때문이다)
커플 모자 구입을 제외하고 제법 금액이 쌓여 우리는 요즘 것들이 한다는 플렉스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미슐랭 1스타의 오마카세 디너 플렉스!
은은한 분위기에 정성스러운 플레이팅, 신선한 재료. 나의 베스트는 그 중에서도 우니밥 위에 얹어진 제주도산 은갈치.
애주가 커플이 분위기 내는 자리에 술이 빠질 수 없었다. 이소지만 한정판 사케도 한 병 시켰는데, 안주가 좋아 그런 것인지 좋은 술이라 그런 것인지 둘 다 때문인지 처음 느껴보는 기분 좋은 취기로 호화로운 봄밤을 즐겼다.
이런 호화성 이벤트는 열심히 살아야 할 의지와, 좋은 것을 함께 즐기고픈 상대에 대한 애정을 샘솟게 해준다.

Money
월간 김지영은 매달 월급이 나오는 주간에 발행될 것이다. 돈이 되는 글을 쓰는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에 대한 작은 반항이랄까. (이 문장을 쓰며 잠시 고민했다. 나는 근데 돈이 되는 글을 쓰긴 썼을까?)
나는 돈이 되지 않지만, 나에 대해, 평범함에 대해, 작고 귀엽고 맥락없는 것들에 대해 글 쓸 것을 다짐한다.
s00jin의 텀블러에서 따온 monthly 아이디어
이달의 작품 : 슬기로운 의사생활
이달의 제품 : 텀블러백
이달의 음악 : 에릭남 -Bravo my life
이달의 식당 : 스시만
이달의 평화 : 아침마다 차에서 듣는 7080포크송
이달의 잘했다 : 영양제 3종 먹기
2 notes
·
View 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