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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가 먹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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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마신 것들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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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othecredos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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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일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꼭 물었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시나요.’ 그러면서도 나는 알았다. 그래도. 그래도 그냥 믿고 싶었다.
웃기게도 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내게 ‘당신 정말 몸 생각은 안 하는구나.’ 하고 말했다. 립서비스같은 건 없는 연애가 되겠구나 싶었다. 대단한 사랑을 했지만 아이스크림의 가호가 없었던 탓인지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더이상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을 시작한 건 지난주 화요일. 네모난 공간에 냉장고가 디귿자를 그리며 돌아가고 있다. 400원짜리 바 종류부터 9500원에 달하는 박스형 수입 아이스크림까지 꽤나 다양한 제품들이 시원한 공기를 쐰다. 처음에는 누가바, 구구콘, 빠삐코같이 평소 알던 것만 보였는데 하루에도 몇 번 매장을 서성이니 흑당버블티바, 요구르트바, 깐도리와 같이 처음 마주하는 제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손님들은 어떻게 아는 건지 이름 모를 것들을 잘도 사갔다. 점점 궁금해졌다. 새로운 조합, 새로운 재료, 새로운 패키지의 아이스크림은 어떤 맛이 날까. 분명 어디선가 먹어본 맛이 나겠지만 직접 확인하고 싶어졌다. 이러다가 다시 아이스크림과 사랑에 빠지는 것 아닐까. 그러면 나는 또 사람들에게 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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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othecredos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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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커리
  첫 글을 커리로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다. 몇 년 전만 해도 커리는 나에게 낯선 음식이었고 친구와 손을 잡고 번화가에 나갔을 때에나 종종 사먹는 것이었기에. 커리의 매력을 점점 알아간 나는 아이허브에서 커리 페이스트를 주문해 직접 커리를 만들어 먹었다. 보통은 치킨 티카 마살라였다. 닭을 재워두고 채소를 손질하면 생각보다 그 다음은 간단했다. 순서대로 재료를 넣고 기름칠을 해준 뒤에 뭉근하게 끓이기. 그렇게 만든 치킨 티카 마살라 커리는 구운 또띠아나 식빵에 찍어 먹었다. 비좁디 비좁은 방에서 속을 타게 만드는 2구 인덕션으로 나는 얼마나 큰 사치를 누렸던가. 커리를 만들고 나면 한동안은 방 안에 커리 냄새가 가득했다. 부엌이라고 칭할 공간이 없는 방이었기에 이불과 베개에도 낯선 나라의 익숙한 향기가 배어들었다.
  시간이 지나 나는 그때보다는 큰, 여전히 부엌이라고 할 공간은 없는 원룸에 살고 있다. 이제는 커리를 만들지 않는다. 집 주변에 훌륭한 커리집이 많고, 심지어 배달도 해주기에. 나는 오늘도 치킨 빈달루 커리를 먹었다. 매콤하고 알싸한 고추향이 무기력한 나의 입맛을 돌게 했다. 뜨거운 난을 조금 뜯고 커리 속의 감자를 잘라 함께 먹으면 오늘도 내일도 무엇이든 괜찮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동시에 현지로 당장 날아가 '진짜'를 맛보고 싶다는 욕구가 떠오른다. '분명 맛있을 거야. 그러겠지.'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또 난을 떼어내고 닭고기를 얹는다. 언젠가 나도 진짜를 맛볼 수 있을까. 인도는 여러 이유로 내키지 않지만 커리를 먹다가 참지 못하는 날엔 뉴델리로 가는 항공권을 결제할 수도 있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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