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시간이 필요했다. 얼마나 필요했냐고 물으면 글쎄. 다섯 시간? 하루? 이틀? 일주일? 그걸로도 해소가 안 되면 어떡하지 싶을 정도로 기분이 바닥을 쳐서 나는 내가 얼마나 시간이 필요한지를 고민할 시간이 또 필요해졌다. 이건 아마도 결핍이겠지. 시간을 잡지 못해 모두가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나는 돌아가도 똑같은 짓을 할 거면서 후회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한 꼴이라니. 늘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것들은 사라지고 나서야 흔적을 남긴다. 나는 결국 하루면 되겠다, 고 결론을 내렸다. 사실 반나절이 이미 지나간 시점이라 남은 시간은 하루보다 짧았지만, 시간이 필요하다 말한 입장이 무색할 만큼 나는 금방 언니가 보고 싶어졌다. 퇴근하고는 습관처럼 커플 어플리케이션에 답변도 남겼다. 하지만 언니는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다 내리고, 지웠다. 나에게는 고작 반나절이 필요했을 뿐인데, 언니는 왜 내가 나온 사진까지 다 지워 버린 걸까. 불안을 그런 식으로 표출한 거라면 나도 불안한데. 그래서 생각을 버리자고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던 배달의 민족에 주소가 언니 집 주소로 되어있는 걸 보고 언니가 이틀 전 변경한 비밀번호가 내 생일이라는 사실에 울컥해서 언니가 좋아하는 이디야 마카다미아 쿠키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런데 또 내가 회사 일로 기분이 안 좋았을 때 언니가 서프라이즈로 보내줬던 과자들이 생각나지 뭐야. 언니는 왜 이렇게 나한테 잘해 준 걸까. 내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시간은 아마 하루도, 반나절도 아니고, 그저 언니랑 꼭 붙어서 보낼 앞으로의 긴 시간들이라는 걸 나는 그때서야 알았다. 언니가 너무 보고 싶어. 이디야가 배달한 건 마카롱이랑 쿠키가 아니라 내 작은 후회와 사과야. 언니는 그 뇌물을 받고 늘 그랬던 것처럼 자기 전에 다시 나랑 통화하고 사랑을 속삭여야 해.
임시 저장글에서 발견한 사진 두 장을 엮었다. 이게 도대체 뭘까. 화면 여기저기 눈을 굴려도 임시저장된 날짜가 없어서 이 사진들의 출처를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오른쪽 사진이 단서가 되어 준형이네 자취방이라는 것까지는 추리해냈다. 아마도, 1년 전에서 2년 전 사이겠지. 흔해빠진 진로 소주병을 굳이 찍은 거 보면 취했거나, 아니면 한참 진로이즈백이 막 출시되었을 때 기념으로 찍었던 사진 같은데, 아마도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 내 습관 중 하나는 마시는 술이 처음이면 꼭 저렇게 손에 쥐고 단독 사진을 찍기 때문이다.
기록을 더 많이 해야겠다. 이렇게 남아있는 메모리의 잔재를 보고도 이날이 무슨 날인지 기억 못 하는데, 글이라는 확증이 없으면 내 중요한 날들은 쉽게 휘발될 수도 있으니까.
최근 음주의 끝, 숙취의 끝을 경험해 봤다. 우리 간은 별주부전의 거북이도 안 가져갈 거야. 너무 오염되어서 신체에서 빼내는 게 오히려 더 프레쉬할지도 몰라. 음주 서비스 당분간 종료할 거야. 그래놓고 뒤돌아서면 도수 높은 위스키 샷잔으로 마시고 싶고 그러긴 한데, 그래도.
내 스케줄러는 꼭 신용카드 같다. 주말 약속을 미리 잡다 보니 다음달은 항상 월초가 되기 전에 약속이 꽉 차서, 다음달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하고 하루를 빚내서 약속을 잡고 있다. 누적되어 어느새 나도 잊고 있던 만남을 준비할 때마다 빚진 기분으로 수납하고 있는 나. 막상 일정이 당도했을 때 너무 섣부른 일정은 아니었을까 하고 취소하고 싶어도 예전부터 잡은 약속이라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정말 신용카드 대금 정기 지급날 같아.
의무감에 계속 생산적인 일을 하고자 이것도 만들고, 그것도 사보고, 저것도 시도했다가, 이런 것도, 그런 것도, 저런 것들도 다 창작해보려 하지만, 도저히가 진도가 나가는 게 없다. 머리를 굴리려고 사둔 책도 한 챕터를 끝내면 오랜 휴지기가 필요하고, 넷플릭스랑도 잠시 권태로운 관계로 접어들었고, 최신 영화에 대한 정보를 카페 인기글에서 얻고, 타타를 봉인한 지 6개월이 넘었다. 넌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하고 묻고 싶다, 내게.
자기 발전에 목을 너무 맸더니 목이 말라서 자꾸 술만 마시게 되는 것 같다. 매너리즘에 빠진 게 아니라 술독에 빠진 게 아닐까. 어떤 계기로 나올 수 있게 될지 아직은 모르겠다는 게 오늘의 기록.
ㅡ한국은 답이 없어. 남의 돈 벌어먹고 살기는 힘들어. 내년쯤이면 다들 회사를 바꿀 거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니까 너무 편해. 요즘 애들은 똑똑하대. 남자가 너무 싫어. 나는 완전 퍽킹 씨리어스라고, 그런데 여기서 그런 릴레이션십을 갖기는 힘들 거래. 분양 사기당한 것 같아.
너는 지금 치킨을 먹고 나는 목살과 치맛살을 먹는다. 먹는 소리보다 말소리가 더 큰 뉴질랜드의 12시와 한국의 9시.
우리는 잔에 채워지는 하얀색, 노란색, 검은색 막걸리와 퓨전 피자를 먹고 마시며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한국 거주 80%의 남자들은 너무 뻔해. 한번도 그렇게 끝나지 않은 적이 없어. 원하는 게 있으면 차라리 노력이라도 하지 그래. 그런 에티튜드를 취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 여자를 사랑하는 게 요즘은 복이라고 생각해. 사랑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고 생각해. 나는 언제나 열려있어. 뭐가 됐든 내가 쟁취하는 사랑을 한 적이 얼마나 오래인지, 나는 이제 그런 걸 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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