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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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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heolcharleykim-blog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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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인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특질이란게 한 가지만 있는 것도 아닐진대, 어느 한 부분이 맘에 안든다고 그 사람 전체를 매도해버리는 행위는 정말..
그렇다면 이전까지 그가 ‘괜찮다’는 판단을 들게 한 여러 요인들은 갑자기 다 사라지게 되는 것인지.. 아님 그 한 부분이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할 만큼 큰 것인건지..
사람의 한 단면만으로 내 식성에 맞게 편식하는 모습 또한 누군가에겐 자신이 했던 방식대로 매도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걸 왜 모르는 건지..
그 사람이 좋았던 이유가 이전의 행동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었다기 보단 내가 원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었다면 결국 자신의 곁엔 내 귀에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들만 남게되는 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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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heolcharleykim-blog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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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현재 읽고 있는 책을 나열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 1Q84 2권
2. 엄마는 페미니스트
3. SKEPTIC vol.11
4. 페터 카멘친트
5. 소설과 소설가
6. 바스라그 연대기 1권
7. 섹스와 젠더에 대한 페미니즘의 관점들
8. 이솝우화
두 권 더 시작해서 열 권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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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heolcharleykim-blog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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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손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구 오면 세번째로 오고 싶었던 곳이에요~”
여기서 떠오르는 의문 혹은 질문.
1. 첫번째와 두번째는 대체 어디일까?
2. 왜 세번째인 걸 굳이 말씀하셨을까?
3. 난 첫번째와 두번째가 왜 궁금한 걸까?
4. 세번째로 오고 싶어한 곳에서 그정도로 반가움 혹은 행복함을 표현하셨다면 첫번째, 두번째의 곳에선 과연 어느만큼이나 표현을 하셨을까?
5. 타지역 사람이 대구에서 세번째로 와보고 싶어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야 할까?
6. 아님 (아직까지는)그 한 분만 그런 것이니 그냥 넘겨야 할까?
7. 이분은 타지역에 여행을 가면 가보고 싶은 곳을 리스트로 나열해서 하나씩 클리어하시는 스타일일까?
8. 그럼 네번째는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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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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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heolcharleykim-blog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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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많은 일을 했음에도
적을 것이 없다면 둘 중 하나라 얘기할 수 있다
1. 기억력이 심각하게 나쁘거나
2. 별 생각없이 시간 흘러가는대로 산다거나
내게 해당하는 게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하나가 아닌 둘 모두 내게 해당 될 수도 있겠지만. 하루를 되짚어보자.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 너무나 이른 시간이라 왠지 모를 억울한 마음에 다시 잠을 청했다. 사실 전날(이라고 할 수도 없는게 같은 날 새벽에 잠자리에 들었으니)밤 네시쯤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여섯시에 깼으니 억울할 만도 했다. 하지만 다시 감은 눈은 보통 출근하는 열한 시에 뜨게 되어 허겁지겁 출근 준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너무 따뜻한 날씨에 짐짓 놀라며, 한편으론 다행이라 생각하며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도착한 가게에선 이것저것 해야할 일들을 치뤄내고 나니 시간이 얼추 네시쯤이었다. 물론 그 사이 손님들이 주문하는 음료나 여타 정리도 함께 했고. 네시가 되서야 메일 업무나 택배, 입고 서적 정리 등 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고 그 후로는 컴퓨터를 통한 간단한 이체 작업을 했다. 요기로 돈 넘기고 내야할 계좌 조기로 돈을 넘기고. 다섯시 십분쯤 새 책 감리를 보러가야하는 은지가 가게에 왔고, 그때 갑자기 바빠져 다행히 같이 바쁜 순간을 처리 할 수 있었다. 그 사이 난 도시락을 먹고 은지는 인쇄소로 갔고. 그 후야 뭐.. 간간이 오는 손님을 맞이하고 책 계산을 하고.. 마친 뒤엔 회의가 있어 그것도 하고.. 그 뒤 집으로 돌아와 폰 좀 만지다가 이제 이렇게 쓰는게 세시반..
돌아보니 1번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휴 다행. 그럼에도 2번은 해당한다는 게 변함 없으니 앞으로는 생각 좀 하며 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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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heolcharleykim-blog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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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의 주인공 니키 준페이 와
너새니얼 호손의 단편 <웨이크필드>의 주인공 웨이크 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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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heolcharleykim-blog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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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자마자의 시간
쉽게 일어날 수 없다
의식이 아직 꿈 속을 왔다갔다 한다
과도기적 의식을 떨치려 스마트폰을 켠다
십 분마다 울리던 알람을 그제야 끈다
조용한 아침을 맞이한다
의식이 천천히 내게 입혀진다
차가운 바깥공기로 나아갈 용기를 이불 속에서 찾는다
겨우 찾아낸 나의 용기는 사실 오늘 하루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나의 기상의 주요인이 책임감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여전히 이불 안이다
문득 배가 고파진다
이불을 걷어차고 주방으로 향한다
나의 기상의 이유는 허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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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heolcharleykim-blog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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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꿈 이야기
영화 <인셉션>을 보고 나서야 인지하고 있던 사실인, “언제, 어떻게 꿈은 시작되는지 우린 모른다”를 증명하듯, 그저께의 꿈 속의 난 언제 어떻게 갔는지도 모를 어딘가 높은 곳에 서 있었다.
등산로일수도, 어쩌면 전망대였을 수도 있다. 무언가 굉장히 높은 곳에 있다는 생각이 당연스레 꿈 속의 내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었고 그에 따라 행동을 조심하자.. 라는 주의 또한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다. 그곳엔 나만 있는게 아니었다. 드문드문 사람들이 주변에 산재해 있었고 나 혼자만 나오는 외로운 상황은 아니라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외로움보다 더 잔인한 상황를 맞이하게 되지만)
전망대(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는,)는 구조가 특이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높은 봉우리 두 개 사이에 다리를 이어놓아 사람들로 하여금 왕래를 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다리의 평평한 부분은 두 봉우리를 잇는 역할을 하고 있었고, 봉우리의 경사면에 덧댄 부분까지 다리는 확장되어 있었다. 특이했던 건 봉우리 사이의 평평한 다리부분의 가운데가 간격이 있었다는 것이다. 살짝 벌려진 홍합처럼, 혹은 강한 펀치에 맞아 열상을 입은 이마처럼 가운데가 텅 비어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특이했지만 꿈 속의 세상의 다리는 ‘당연히’ 그런 모습이어야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높은 쪽에서 내려오는 경사면이 계단식이었는지, 그냥 경사면이었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저 높은 곳에서부터 한 아이가 속도를 늦추지 않고 내려오고 있는게 어느 시점부터 꿈 속의 나는 인지했다. 신기한 건 그 아이가 천방지축으로 내려오고 있는 동시에 아래쪽에 위치한 나의 근방에서 등을 돌리고 있는 한 아저씨의 뒷모습을 보며 ‘어? 저 사람이 저 아이의 아빨텐데..?’라고 내가 생각했다는 것이다. 전혀 일면식도 없는 아이와, 마찬가지로 만나본 적도 없는 한 아저씨가 부자관계라는 확신 아니, 당연스러움은 과연 어디서 온 것 일까? 여하간 거의 달려오다시피 내려오던 아이는 어느 순간엔가 자신의 속도를 이기지 못해보였다. 컨트롤 하기 힘든 자신의 육체에 체념한 듯한 눈빛을 보이며 관성적으로 내려오고 있는 아이는, 가속도의 법칙에 따라 점점 그 속도가 빨라졌다. 현실의 내가 그런 모습을 보면 똑같이 그랬을 당황함을 꿈 속의 나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몸을 날려 그 아이를 막아야겠다 혹은 그 아이의 아빠에게 큰목소리로 외쳐야겠다 라는 행동을 일절하지 않았다. 그저 사태를 관망하며 꿈 속의 나를 생각하는 현실의 나처럼 내 일이 아니라는 양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아이는 점점 더 내가 있는 평평한 다리에 가까워졌지만 아이의 아빠는 아직도 뒷모습만 보이고 있었다. 앞서 이야기 했겠지만 다리의 가운데는 뻥 뚫려있는 상태였다. 아이가 그 속도로 내려오다간 자칫하면 저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나까지도 말이다.
어느새 아이는 내가 있는 쪽으로 오기 임박해있었고 난 여전히 아이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때 였다. 등을 돌리고 있던 아이의 아빠가 천천히 뒤로 돌아 나를 바라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이 너무 느렸던 것일까? 등을 돌려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순간, 그의 아들은 어느새 경사를 모두 지나치고 나와 그의 아버지마저 지나친 채 아래로 떨어지게 되었다. 순간적인 상황이었겠지만 아이의 아버지는 떨어진 게 자신의 아들임을 직감적으로 확신하는 듯 했다. 물론 꿈 속에 직감이라는 게 있을리 만무하지만 그는 그래 보였다. 그러자 그는 아래를 보고, 그리고 나를 보다 갑작스레 자신의 얼굴을 일그러뜨리기 시작했다. 미처 일찍 발견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듯 머리를 쥐어뜯으며 그저 갈라진 틈 아래를 황망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자신의 아들을 미처 구해내지 못한 아버지. 어쩐일인지 나는 그 아버지의 통렬한 심정을 흡수하듯 공감할 수 있었다. 극도의 절망감과 슬픔이 그의 눈빛으로부터 나를 관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슬픔’이라는 단어로는 그에게 미안할 정도로 그 이상의 것을 느끼는 듯 했다. 물론 내가 흡수하듯 느끼는 그 감정을 통해 말이다. 그리고 쪼그려 앉아 떨어진 아들을 초점없이 바라보는 아버지의 절망적인 모습을 바라보다 내 꿈이 끝이났다.
눈을 뜬 뒤에도 사실 그 슬픔과 절망감과 망연자실함이 흐릿하게 남아있었다. 물론 여느 꿈이 그러하듯 그러한 감정도 이내 겨울밤 보일러를 틀지 않은 방에서 먹는 컵라면 국물의 온도처럼 금새 사라졌지만 어쩐일인지 그 아버지의 표정만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인지하지 못하는 그 얼굴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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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heolcharleykim-blog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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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되는 나의 오늘171107
컵라면을 사왔다. 집 근처 편의점에 들러 왠지 모를 의기소침에 젖어있던 오늘의 나를 위해, 거금 2,500원을 들여 일본 수입 컵라면을 구매했다. 물론 500ml의 맥주와 함께. 맥주는 산미구엘 페일 필센이라는데 처음 골라본다. 항상 마셔오던 맥주를 먹고 싶지 않은 날이라 생각지도 못했던 종류의 맥주를 집었던 것 같다. 물론 3,000원이라는 할인된 금액이 그 이유가 되기도 했지만. 여하간 얼른 컵라면을 먹겠다는 자정의 기대에 아랫배의 볼록함에 대해선 괘념치도 않고 얼른 씻고 화장품을 발랐다. 사온 컵라면의 봉지를 뜯고 뚜껑을 열어보니, 아뿔사, 우동이었다. 그 말인즉슨, 스프를 털고 뜨거운 물을 붓기만 하면 되는 간편한 라면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나의 기대와 두근거림은 약 30%정도 감했지만 다행히도 처음 마셔본 맥주가 충분한 위로를 내게 전달해주었다. 다급한 마음을 잠시 내려두고 면을 불리고, 물을 버리고, 다시 물을 넣으며 스프와 튀김 블럭을 넣고 3분을 기다렸다. 맛은 300%의 만족. 역시나 인스턴트 식품들의 본고장이라 할 만한 일본의 실력답다.
요즘은 밤날씨가 꽤나 겨울이 벌써 온건가 싶을 정도로 추워졌다. 난방비를 절약하기 위해 각 방에 전기장판을 배치한 우리집은, 내 침대나 안방의 이불 속이 아니라면 으슬으슬 한기가 유지된다. 작년만 해도 겨울이면 샤워를 하고 나왔을때 몰아닥치는 한기가 두려워 저녁에 헬스장에 들러 샤워까지 마치고(잘 준비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곤 했다. 엄마와 나만 살고 있는 그리 넓지 않은 집이지만 겨울엔 슬리퍼가 필수다. 그러한 한기가 11월의 초입인 지금 이미 시작된 듯 했다. 우리집에서 가장 넓은 내 방의 빈 공간에 찬 기운이 점점 그 덩치를 키워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설익은 그 찬 기운이 내 컵우동을 잔뜩 식게 만들었다. 천천히 뜨거운 우동 국물을 맛보고 싶었지만 본의 아니게 후다닥 먹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뭔가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집vs컵우동 이라는 대결의 승자는 이미 정해져있으니.
오늘 책방 새로운 스티커가 인쇄되어 가져왔다. 겨울특집으로 마련한 이번 스티커가 항상 그래왔듯 우리 책방의 성격을 잘 반영하는 디자인으로 뽑혔다. 물론 모든 것은 류은지 작가님의 덕분. 사실 오늘 책방에 들른 손님 중에 스티커를 찾는 분들이 적잖이 있었다. 기억에 남는 손님은, 스티커를 “여러개” 가져가도 되요? 라고 내게 물었던 분이었다. 사실 스티커라는게 배포의 목적이긴 하지만, 우리 책방에 직접 방문한 분들을 위해 마련했다는게 좀 더 큰 목적이라 이야기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겐 멀고, 게다가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의 3층에 위치한 우리 책방에 감사하게도 방문해주신 분들을 위해 소소하게 드리는 작은 선물인데 그걸 많이 가져가려고 한다니.. 그 손님의 물음에 순식간에 날이 선 내가 내뱉은 대답은 “많이요??” 였다.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이야기 해줄 수도 있었겠지만 ‘배포’���으로 준비한 스티커에 대해 그런 식으로까지 하고 싶진 않은 마음에 가타부타 이야기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라 하더라도 내가 내뱉은 “많이요??”는 충분히 그 손님에게 무안함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의 속마음을 읽으셨는지 손님은 ‘많이’라는 표현을 쓸 필요조차 없을 만한 양인, 3장만을 조심스레 가져가셨고 나의 죄책감은 더욱 폭발하게 되었다. 죄송한 마음에 책 계산을 마친 후, “더 가져가셔도 되요.”라고 했다. 만약 손님이 “아니에요”라고 했다면 내 좌절은 더 치솟았겠지만 다행히도 손님은 안심하며 2장을 더 가져가셨다.
사실 스티커 두세 장 가져가는 얘기를 왜 쓰고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오늘의 이 일을 써야고 다짐했던 이유는 아마 내가 행하는 순간 순간의 행동들을 내 스스로가 컨트롤을 잘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걸 이야기 하고 싶었으리라. 그런 것 같다. 시간이 지나야 맞이하는 나의 선비같은 모습은 상황을 맞이하는 그 당시엔 찾기가 여간 힘든게 아닌게 사실이다. ‘아, 그땐 이랬어야 하는데”하는 후회도 나중에 되서야 찾아온다. 좀 더 순발력있게 상황을 대처하고 싶은데 조금 당황하거나 기분이 나쁠라치면 감정이 표면으로 확 드러나게 되어 냉정함을 잃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아직 성숙한 사람이 되기엔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얄짤없는 30대가 되는 시점이지만, 아직 난 많이 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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