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24년7월29일
어제는 친구와 새벽 한시가 다 되도록 통화를 했고 일기를 쓰지 않은 채 잠이 들었다.
오늘은 물을 못 먹은 지 한참 되어 마른 잎과 덜 마른 잎, 타서 쪼그라든 잎이 섞여있는 나무들의 가지를 다듬었다. 뒤에서 햇빛이 불길처럼 닿을 듯 말듯 열기로 느껴져서 여유있게 하질 못했다. 왼손은 잎을 떼어내고 오른손은 잘 떼지지 않는 잎이나 가지를 가위로 잘라낸다. 이렇게 하면 새 잎이 더 빠르게 나온다고 해서 열심히 했다.
건물 앞에는 간이 화단에 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다. 화단은 비를 피할 수 있는 천장 아래에 있어 비를 맞지 않는다. 한동안 누구도 이 나무에게 물을 주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나무는 꽃을 피웠다. 나무의 꽃을 보며 즐겁게 출근하길 삼일 째, 꽃은 물론 이파리 절반 이상이 메말라 떨어져있는 걸 보았다. 물을 엎지르거나 물건을 깨뜨리거나 나보다 작은 누군가와 부딪쳤을 때처럼 어쩌지 어쩌지, 하는 마음이 들어 조급해졌다. 돌이켜보니 내가 신경을 썼어야 하는 거였다. 누구도 이 나무에 대해 말한 적이 없지만 내가 알아챘어야 하는데. 그 날 물을 주고 마른 잎을 떼어내고 주우며 몇번이고 나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다행히 잎이 열다섯개 정도 밖에 남지 않았던 나무는 매일 물을 주고 일주일이 지나니 빠르게 새 잎을 내주었다. 거의 모두가 새로 난 잎이라 그런지 더욱 투명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이제는 물을 줄 때마다 고맙다는 말을 한다. 고맙다 고맙다. 꽃을 피울 시기는 이미 지났을지 모르지만, 그래서 여전히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정말 고마워.
0 notes
Text
24년7월27일
아침에 반쪽 먹고 남은 사과를 싸갈까 말까 고민하다 가져갔다. 어느 날과 다름없이 햇빛 보여줄 식물을 밖에 내놓고 더위에 풀죽은 식물에 물을 주고 청소를 했다. 쉬는시간에는 커피와 과자, 사과를 가지고 옥상에 올라갔다. 아 작은 초콜렛도. 옥상에 먼저 있었던 사람에게 초콜릿을 주고 사과도 한조각 주었다. 사과를 베어 물면서 달고 맛있는 사과라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멀리서 공연 리허설을 하는지 음악소리가 끊겼다 이어지길 반복했다. 더 멀리 하늘에는 희미한 무지개가 떴다. 낮게 뜬 구름에 허리가 잘렸지만 넓고 두꺼운 무지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옆에는 시들기 직전인 로즈마리가 있었다. 로즈마리 가지를 그늘 삼아 누워서 냄새를 맡았다. 후덥한 더위였지만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0 notes
Text
24년7월26일
이게 어떻게 된 걸까? 오늘 하루가 아주 아주 빨리 지나갔고, 기억나는 장면이 몇 개 있기는 하지만 벌써 오래된 기억처럼 느껴지고, 몸이 너무 피곤해서 감자를 썰고 볶는 것도 힘이 들었다. 읽고 있는 소설이 무척 재미있는데 피곤해서 집중이 잘 안 된다. 에너지가 필요하다. 몸 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촉촉한 에너지가 필요해.
0 notes
Text
24년7월25일
어제는 침대에 눕기 직전 일기를 쓰지 않은 걸 알았지만 그냥 잤다. 그런 날도 있다.
오늘 제주의 하늘에는 빌딩만큼 커다란 구름이 떠다녔다. 하얀 것도 있고, 회색인 것도 있고, 푸르스름한 것도 있었다. 거대한 구름 하나가 천천히 위를 지나가면 다른 거대한 구름이 멀리서 다가왔다. 그냥 지나가는 구름도 있었지만 이제 더는 못참겠다는 듯이 비를 쏟아내는 구름도 있었다.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소나기를 맞고 분주해진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만두를 사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소나기가 쏟아졌다. 집으로 가는 마지막 길로 들어서는데 자전거 한 대가 빠르지만 동시에 천천히 지나갔다. 실제 속도는 빨랐지만 내 눈엔 이어지는 하나의 장면으로 보였다. 연두색 폴로셔츠를 입고 안경을 쓴, 머리를 바짝 깎은 남학생이었다. 비에 얼굴을 다 들지 못하고 살짝 찌푸린 눈으로 앞을 보며 힘차게 페달을 밟고 있었다. 소나기가 으레 그렇듯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맑았던 하늘을 옆에 두고 비가 쏟아지고 있었고 집들의 벽에는 노을이 노랗게 반사되고 있었다. 아주 멋진 여름의 장면이었다. 올해 여름 기억은 이거다! 하며 장면을 곱씹으면서 집 문을 열었다.
0 notes
Text
24년7월23일
요즘은
잠자다 깨서 전 날 타이머를 맞춰 틀어둔, 꺼져있는 선풍기를 다시 틀고 누울 때 / 도서관에서 궁금한 책을 발견하고 빌려서 돌아올 때 / 같이 사는 고양이가 통통 튀는 걸음걸이로 나에게 걸어올 때 (평소에는 느긋하고 다소 게으른 걸음걸이다.) 아침에 먹는 사과의 첫 맛이 달 때 / 하루에 첫 잔으로 마시는 커피를 한 입 마셨을 때 / 버스에서 내리기 전 좋은 타이밍에 일어났다고 느낄 때 / 다음 끼니 메뉴가 정해져 있을 때 행복하다.
0 notes
Text
24년7월22일
어제는 일기 쓰는 것을 깜빡 잊었다. 잠에 들기 전까지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잊고 지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오늘 내 하루에는 좋고 예쁜 게 없었다. 분명 있었을텐데 느낄 만한 힘이 없었다. 열두시가 땡 되자마자 아주 많은 화분에 물을 주어야 했다. 간간히 떠오른 해야 할 일도 하고, 전화도 받고 인사도 했다. 그리고 바깥이 정말 무섭게 더웠다. 가만히 있으면 안에서 피가 끓지 않기 위해 열을 빼낸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원예용 가위로 나뭇가지를 자르다가 엄지 손가라도 함께 자를 뻔했다. 넓은 브이자 모양으로 상처가 났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없는 게 매일 한 번씩은 서글프다. 지나가는 사람의 따뜻한 인사나 잡담에 기대게 된다.
주말에 책읽는 모임 약속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펼친 책에서 작은 힌트를 받았다. '그의 목소리는 과장과 어리석음과 터무니없이 지어낸 이야기와 절대적인 정확성과 진실을 갖고 있다.' 앞과 뒤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연결 고리는 있다. 그 연결 고리가 내가 추구하고 싶은 것으로 향하는 길에 있다. 하나 하나 주워서 가다 보면 닿을 것만 같다. 누가 가장 진실에 닿을 수 있을까? 진실이란 게 없다면 진실이라 부를 만한 것에는 닿을 수 있을까. 가장 빠른 길은 없지만 가장 단순한 길은 찾을 수 있다.
0 notes
Text
24년7월20일
오늘은 좋아하는 꽃남방을 입었습니다. 하의는 무엇을 입을까 일곱 번은 갈아입어 보고서 청바지를 골랐습니다. 덕분에 후끈한 여름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아침에 먹는 사과가 맛있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과일 1등은 사과, 2등은 메론입니다. 3등은 미정입니다. 저녁을 먹고 쓰레기를 버릴 겸, 두유를 살 겸, 친구에게 보낼 편지를 우체통에 넣을 겸 밖으로 나왔습니다. 보기 드물게 크고 둥근 달이 구름 한가운데서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들고 나온 쓰레기를 버리고 편의점에서는 두유 큰 팩이 없어 마시는 요거트를 샀습니다. 편지는 통째로 까먹어서 집에 돌아와 봉투를 발견하고 앗차차차…했습니다. 집에 들어오기 전 달을 올려다보고 마음에 있던 소원들을 우르르 쏟아냈습니다. 소원은 구체적으로 말해야한다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소신을 생각하면서요. 그러다 곧 내가 바란 소원들이 충분히 내가 이룰 수 있는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자신감을 조금 주세요, 하고 소원을 바꿨습니다.
0 notes
Text
24년7월19일
하늘을 보면서 땅에 가만히 누워 있던 것이 언제인가요? 학생 때는 잘 기억이 안 나고 가장 최근은 재작년에 할머니 묘소에 간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기억에서 두 번째입니다. 일하는 건물에 옥상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가진 않았는데 왠일인지 오늘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한 번도 누른 적 없던 층을 누르는 것이 마치 비밀의 문을 두드리는 기분이었는데 아니, 그보다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층을 향해 엘리베이터가 움직일 때 더 긴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이 열렸을 때 햇빛이 쏟아지는 탁 트인 옥상이 눈 앞에 있었습니다. 가운데에는 물류용 파렛트가 놓여있고 관리를 안 한 지 오래된 풀들도 있고 구석에는 도구들이 몇 가지 있고 그리고 바깥으로는 빌딩들 사이로 바다가 보였습니다. 아, 바다다.
다시 아래로 내려가 광합성을 시켜 줄 화분 두 개를 골라서 들고 올라왔습니다. 파렛트 위에 올라가 햇빛이 내리는 곳에 화분을 두고 ���은 살짝 그늘이 진 곳에 뉘였습니다. 두 눈에 파란 하늘이 가득 찼습니다. 아주 높은 하늘에는 느긋한 구름이 있고 그 밑으로 바람을 타고 빠르게 이동하는 구름이 보였습니다. 하늘과 몸 사이에 아무것도 없이 누워있으면 세상을 정면으로 마주한 느낌입니다. 성취한 것도 그리운 것도,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이 지금의 내가 덩그러니 놓인 상태입니다. 눈을 감고 멀리서 들려오는 노래를 듣기도 하고 또 눈을 떠서 하늘을 보았습니다. 기회가 되면 옥상에 자주 가고 싶지만 오늘만큼 좋은 날은 드물 것 같아 가끔만 가기로 했습니다.
0 notes
Text
24년7월18일
집중해서 단시간에 몸을 움직이고 더위를 느끼고 힘을 쓰고 시선을 신경썼더니 잠시 뒤에 몸이 기우뚱할 만큼 어지러운 걸 알았습니다. 잠시 앉아있다가 단순한 일을 하며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습니다. 곧 한적한 시간이 오고, 가방을 열어 챙겨온 과자를 꺼냈습니다. 역시 힘이 들 때는 간식이죠. 어렸을 때는 초콜릿보다 못해서 잘 고르지 않던 땅콩 크림 과자가 먹고 싶어 샀습니다. 과자 부스러기가 떨어지지 않게 한 입에 꿀꺽. 빠르게 먹어치웠습니다.
그리고 언제 과자를 먹었냐는 듯 옆에 있던 덩굴 식물을 다듬기 시작했습니다. 기둥을 따라 올라가지 못하고 뱅글뱅글 돌다 줄기가 엉켜버린 덩굴을 줄 이어폰 풀듯이 풀고 가늘어진 가지는 잘랐습니다. 그러고 있으니 다른 직원 분이 다가와 신메뉴라며 케이크를 주고 가셨습니다. 타르트 같은 바닥 위에 치즈케이크가 있고, 그 위로 레몬 시럽과 부드러운 크림이 이어진 케이크였습니다. 포크를 지붕부터 바닥까지 수직으로 꽂아서 덜어내 한 입에 넣으니 최고에 최고의 맛이었습니다. 땅콩 과자를 먹은 걸 후회할 정도로요.
0 notes
Text
24년7월17일
구름이 해와 바람에 몸을 맡기고 뒹구는 여름 하늘입니다. 얇고 긴 구름, 솜사탕같은 구름, 붓자국처럼 보이는 구름, 양 떼 구름, 계단 구름 등 눈을 돌리면 또 다른 구름이 보입니다. 올해 여름 처음으로 바다에 발을 담궜습니다. 정강이만치 오는 바지가 푹 젖도록 다리를 휘휘 저었습니다. 해가 뜨거워 양산을 펼쳤지만 바람에 다섯번 정도 뒤집어져 포기했습니다. 버스정거장 근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다른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가 출발하고 얼마 안있어 메시지가 왔습니다. ‘너의 고민이 가벼워지길 바라며-’라는 문장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고민의 무게나 내용보다 오늘 지나가는 하루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요. 고민이 없는 때는 없겠지만 하루의 기분을 흐리게 두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바다가 앞에 있으면 발을 담그고 파도 모양을 보고 냄새를 맡으며 몸과 마음이 바다로 가득 차도록 두면서 그렇게 보낸 하루가 모이면 고민은 스르르 자기 자리를 찾아 가지 않을까요.
0 notes
Text
24년7월16일
잠을 깊게 자지 못했습니다. 왜인지 꿈만 서성이다 눈을 깬 것 같아요. 덥고 비가 금방 쏟아질 듯 흐린 날이어서 몸도 무겁습니다. 걸어서 마트에 갔더니 그 전에 마신 시원한 커피가 무색하게 땀이 주륵 흘렀습니다. 농협 마트에 가면 오늘은 어떤 채소가 저렴한 지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전에는 서귀포 햇감자가 한 봉지에 1,500원, 오늘은 파프리카 한 알이 500원입니다. 파프리카 500원! 외치며 돌아갈 땐 버스를 타기로 합니다. 좋은 기분을 유지하고 싶으니까요.
0 notes
Text
24년7월15일
고양이 화장실을 청소했습니다. 더 자주 해주어야 하는데 같이 사는 고양이에게 면목이 없지만 오랜만에 청소하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깨끗해진 화장실을 베란다에 두러 나가니 창 밖 담장 위를 지나가던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잘 구운 빵 같은 노란색이었습니다. 고양이는 갑자기 나타난 나에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나는 그에게 ‘인간이 화장실을 청소해주는 고양이를 만나볼래-?’ 하고는 웃으며 들어왔습니다. 역시 자유로운 고양이에게 이 상황은 코미디로 보이지 않을까 하면서요.
오늘은 북토크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몇 권의 책을 읽은 적 있는 일본의 디자이너가 신간을 기념해 방문한다고 해서 약간 떨렸습니다. 그러고보니 재밌게 읽은 책을 쓴 저자를 직접 만나는 일이 처음입니다. 행사가 끝나고 신간에 사인을 받으러 줄을 섰습니다. 차례가 되자 어플로 번역한 문장을 말로 전했습니다. ‘쿄와 키테쿠레테 우레시데스-(오늘 와주셔서 기쁩니다)‘ 진심을 그대로 전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사인 받은 책을 볼 때마다 이 날이 떠오르겠죠.
0 notes
Text
24년7월14일
풀잎이 이슬을 한 방울 한 방울 떨어트리는 것처럼 하루를 경건하게 과거로 보내기 위해 일기를 쓰기로 합니다.
하루가 지나고 다시 찾아온 오늘에 감사해하면 더러워질 것이 겁나 신지 못하던 신발을 꺼내어 신을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 하루에 예쁘고 좋은 것을 채운다는 마음으로 같은 거리를 걷고 인사를 하고 그릇을 닦고 노래를 듣습니다. 그러니 하루를 적어서 남겨두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예쁘고 좋은 것이 있으니까요.
요즘은 향을 맡는 것이 즐겁습니다. 예전에는 일부러 향을 두는 것이 부담스러웠는데 가끔 좋은 향이 코 끝을 스칠 때 주위가 환기되는 기분을 느껴 그런 것 같습니다. 작은 상점의 선반에 나열된 아로마 오일들의 향을 하나하나 맡아보고 너무 달지도 않고 강하지도 않은, 꽃보다는 말린 열매가 생각나는 향을 샀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돌 하나를 주워 오일을 떨어트려보라는 주인 분의 말씀을 듣고 전에 해안가에서 주운 넙적한 돌이 기억나 새로운 돌은 줍지 않았습니다. 돌에 떨어트린 오일은 강한 향으로 방을 채우지는 않고 가까이 다가갔을 때 은은하게 향이 납니다. 스트레칭을 하기 전 바세린에 한 방울 섞어서 바르니 자세를 바꿀 때마다 킁킁 냄새를 맡게 됩니다. 당분간은 말린 열매의 향이 주위를 감돌 것 같아요.
1 note
·
View n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