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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gyoonh-blog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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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시브
요즘 내 삶의 낙은 매일 저녁 자전거를 타고 광안리 바닷가를 질주하는 것.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소화도 시킬 겸 머리도 식힐 겸 나가서 냅다 달리는 거다. 몇 바퀴고 돌면서 출렁출렁 무늬를 그리는 짙은 남색 바닷물과 그 위에서 반짝이는 광안대교를 쳐다보면 기분이 몽몽..해진다. 옆으로는 달리러 나온 커플들이나 저녁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잔뜩 있는데 이 사람들을 스쳐 지나며 구경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물론 오늘은 더럽게 재미가 없었다. 야밤에 무슨 또 런.. 요즘엔 그놈의 '런'이 너무 많다. 여튼 무슨 ~~런을 한다고 광안대교도 막아놓고 형광색 티를 입은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버팔로 떼마냥 달리고 있었다. 미련한 나는, 그걸 보고 그냥 집으로 돌아오면 되는 것을 무슨 오기였는지 여튼 광안리까지 가겠다는 일념으로 계속 앞으로 갔고 결국 인파 속에 갇혀 초민폐 자전거녀가 되었다. (내 잘못이다..) 그래서 그냥 자전거를 끌고 인파를 따라 집 쪽으로 돌아오는데, 사람들은 '런' 하러 나왔으면서 왜 그리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셀카를 찍는건지. 뛰러나온건지 사진을 찍으러 나온건지 알 수가 없는 거시어따.. 여튼 앞을 보지 않고 뛰는 사람들은.. 이상했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침대에 앉아 노래를 틀어놓은 채 로션을 바르는데 '나는 자라 결국 내가 되겠지' 라는 가사가 귀에 쑥 들어왔다. 뭐지 이 익숙한 문장은. 문장이 가진 어떤 온도가 있다. 찹찹하고 정제된 느낌. 휴대폰을 들어 노래 제목을 보았다. 비행운.
잠깐 숨을 멈추고 머리 속에 펼쳐지는 펜시브를 마주했다. 그런 사람이 있는거다. 아주 잠깐 내 인생을 방문했을 뿐인데, 짧은 시간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자취를 남기고 가는. 가끔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사람은 내게 이 문장을 꾹꾹 눌러 담아 말하면서 책을 추천해주었다. 서울로 온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 읽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이 책을 읽고 있다고 말했는지 말하지 않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 사람과 너무 닮은 문장들이어서 이상했는지도 모른다. 그해 침묵의 미래를 읽으며 나는 더더욱 작가의 문장들을 이 사람에게 투영해 (만나지도 않으면서) 이상한 애착을 가졌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죽어서 다시 공기 중으로 나의 육체가 흩어지면, 어쩌면 그 자체로 더더 작지만 흩어진 소우주가 되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지켜볼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그래서 그 사람이 내 생각과 내 글과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을 볼 수 있어서, 아 그 사람은 지금 내가 얼마나 웃길까 나 지금 되게 부끄럽다. 하면서. 바보같은 생각인데 가끔 진짜 같아서 괜히 혼자 변명을 하는거다. 미안하다고도 해보고. 딱 한 번만 다시 만나고 싶다고도 해보고.
..
“나는 시원이자 결말, 미지未知이자 지知, 거의 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노래다.”
“나는 복잡한 문법 안에 담긴 단순한 사랑, 단수이자 복수. 시원이자 결말, 거의 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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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gyoonh-blog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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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이게 진짜 나라는 알맹이를 찾아가는 길인가 싶어졌다. 외부에서 나에게 씌운 생각의 도로들에 양손으로 빅엿을 날리며 도주함으로써 시작된 이 길. 
그런데 이게 염세주의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세상이 내뱉는 무수히 많은 단어들에 욕지기를 느끼며 점점 나의 단어 플레이리스트는 짧아져 간다. 엿을 날린 그 길엔 여전히 사람들이 북적인다. 쳐다만봐도 지긋지긋해 고개를 돌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그 곳을 직시했지만 거기엔 아무 것도 없었다. ‘무'라서 나는 발을 딛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고나니 딱히 ‘나'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걸까. 오로지 생각하고 있는 나만이 진짜 존재한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런건. 그게 누구였지 데카르트였나 자시고였나 아마도. 
발도 느껴지지 않는 나의 실상은 her의 OS 같은 걸지도 모른다. 존재는 하는데 보이지는 않고 스스로를 스스로라고 알아차리기는 하는데 그것의 진상은 알지 못하는 것처럼. 갈 길이 멀다. 태어났으니 살아내야 한다. 내가 딱히 존재하는 유일하며 절대적인 이유다. 태어났다는 것 그 자체. 자 이제 나에게 맘에 드는 이름표를 달아보자. 만족스러울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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