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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만든 개념이 기껏 그 사람의 ‘한 두’ 측면만 파악했을 뿐인데, 마치 그것이 전체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가 그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는 하나의 고정된 틀로 그 사람의 다양한 모습들을 잡아내려고 하는 무모한 시도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사람의 생생한 움직임과 변화를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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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추석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921192200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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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보다는 애증에 가까운
남매의 웃는 모습, 울음을 터트린 우리를 보며 깔깔대는 어른들의 모습, 어딘가 편안해 보이는 신체적 형상. 흔해빠진 가족앨범의 푹신한 표지처럼 우울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사진들이다. 이런 일상을 담으려는 사진들은 대부분 그때 행복의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그들의 화사함으로 가득 차있을 것이다. 반대로 아픔을 다시 꺼내고, 들추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할까. 아픔의 상기는 다시 들추어내기 싫은 터부일 수도, 누군가에겐 그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다.
전형적인 386세대의 면모를 보여주는 부모로부터 보여주기식 삶을 배웠다. 사진을 공부하는 나에게 우리 집과 그들의 모습을 노출시키지 말라는 엄마의 언명은 형용할 수 없는 자극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곤 다시 엄마를 바라본다. 다시 무언가를 통해 엄마를 바라본다. 첫 입맞춤, 어루만짐, 포옹 그리고 감정의 과식, 세속의 사랑. 모두 그녀로부터 물려받았다. 무엇이 아이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방식인지 모��겠지만 아이는 부모를 닮는다라는 상투적인 언명처럼 나는 그녀를 닮았고, 어쩌면 그녀 자체였다. 이것은 나의 사소한 일기이자 당신의 이야기다. 만약 친숙함 혹은 거부감을 느낀다면 나와 당신이 같은 세계에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는 은유를 통해 부재하는 결여의 교집합을 갖는다. A ∩ B ∩ C … Z는 역시 뻔하게도 '결핍된 사랑’이다. 절대로 다다를 수 없는 사랑에 근접하기 위해 또다시 허덕인다. 그리곤 이내 다시 아픔을 겪는다. 결국 사랑과 아픔은 다를 게 없다. 합일된 신체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순간순간의 감정의 동요가 모든 것으로부터 서로를 밀어낸다. 모든 것이 분절되고 절대로 맞출 수 없는 이질감으로 가득한 퍼즐이다. 이러한 서사는 로고스로 이해될 수 없다. 우린 항상 아이러니한 삶 안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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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mbo (1)
나는 사랑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운이 좋았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랑 받았기 때문이겠죠. 아픈 이들이 있습니다. 사실 나는 그들의 아픔을 알지 못해서 그들은 나를 교만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대게 관계에 대한 관념의 프로세스는 이런 원리를 가지고 있나봅니다. 이런 관념이 서로를 알아볼 수 있게 말이죠. 그렇다고 나와 그들의 삶을, 존재의 이유를 단정지을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는 상처를 가진 자들을 따라가고, 베끼고, 훔쳐봅니다. 그들의 말을 해석합니다. 무자비한 권력이 지배하는 이 세상의 언어로는 그들의 말을 읽어낼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버려진 찌꺼기들을 주워담습니다. 찌꺼기들의 아토포스. 서로를 알아 볼 수 밖에 없는 찌꺼기들의 상생은 관계망 밖에서 그들만의 영토를 구축합니다. 그들의 체계는 텅 비어있고, ‘없음’이고, 거부하고, 벌거벗습니다. 동시에 그들은 내뿜고, 소리치고, 연대를 맺습니다. 그들은 나타나고 금방 사라지는 유령이고 환영입니다. 미약한 발열조차도 그들을 들끓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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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삶의 대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잠겨있다.’- <상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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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쳇바퀴를 돌고도는 우리는 ‘생존’과 ‘삶’중 전자를 통해 ‘살아감’을 지속한다. 치열한 생존을 갈구하고 싸우는통에 삶 속에 내포되어있는, 다가올 죽음이라는 흔적을 거대한 벽이라도 보듯 회피한다. ‘삶’과 ‘죽음’이라는 이분법적인, 숭고하고 신성하다고 전해지는 말의 무게는 생각보다 그리 무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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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오래된 언명은 무익하고 텅 비어있지만 무게 있는 한마디다. 현세에 남은 자들은 남았을 뿐이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단지 원치 않았을 뿐이다. 떠난자들이기에 훗날 그들을 떠올릴 순 있겠지만 떠난 이들에게 지나친 침묵과 상기는 실례일테다.’죽음’이란 여행이고 이곳에서 머무르다 떠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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엷음
늘 그럴듯한 거짓의 핑계를 싸내며 ‘엄마를 닮아서 그런가봐’라는 핑계의 핑계를 대고는 나약함의 상자안으로 숨어들어갔다. 결국 비교로부터 온 비교의 오만함에 코가 베이듯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시간은 무자비하게 흘러만 갔다. 뭐가 잘못된지도 몰랐다. 역시나 핑계다. ‘내가 잘못고른 단어가 너무 크게 들릴 때’라는 노래의 한 구절처럼 내 기준을 정해놓고 고집을 피운다는 말이 너무 크게 들렸다. 그런 탓에 남들을 미워할 수도 없었고 오히려 내 주제도 모르고 동정했다.
흔해빠진 아픔과 사랑얘기가 수십억개나 있는 이유는 자기네들 얘기가 없기 때문에 계속해 만들어내는게 아닐까. 이미 입안에 가득차 더는 들어가지도 않는 음식을 꾸역꾸역 넣는 것같다.
-거짓말을 하고,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다고 단언함으로써 변명을 일삼는 이들은 자신의 양심에 거북스러운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이 사실은 거짓에 부여된 일반적인 가치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와 나의 만남은 불신과 오해로 깔린 기저로부터 시작된다. 네가 하는 농담이 사실은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을 알고있다. 너의 웃음이 슬픔인 것도 이미 알고있다. 그래서 더욱 무언갈 보여줄 필요는 없지만 감출 필요도 없다. 우린 항상 어중간한 삶안에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알아차리기 힘든 희끗한 엷은 상처가 가장 두려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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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A는 인기가 좋은 탓인지 주위에 늘 거머리들처럼 사람이 눌어붙어있었다. A는 늘 외롭다고 했지만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얼마 전 A의 소식을 우연찮게 들었다. 교통사고로 죽었단다. A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안타깝기보다는 자살이 아닌 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에 초연해졌다. 그 길이 스스로의 죽음을 만끽하러 가는 길에 사고를 당한 건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A는 세상을 떠났다. 조문객은 얼마 없었다고 한다. 장례식에 가볼까 했지만 썩 내키지 않아 집에 처박혀 있기로 했다. 거머리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게다.
Queen의 I was born to love you가 흘러나왔다. 듣다 보니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문득 흥얼거려졌는데 '두 노래가 결혼하면 꽤나 웃기겠군'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담배를 태웠다. 담배가 역겨워서인지, 노래가 그랬는지 세 번째 헛구역질 때는 목구멍에서 위액이 흘렀다. 담배와 노래를 동시에 끄며 소설을 읽기로 했다. 조지 오웰의 <1984>. 당대와 이후의 전체주의와 권력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가 담긴 책이란다. 뼈아픈 경고와 통찰의 전언보다는 사실 윈스턴과 줄리아의 비밀 연애담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둘의 연애는 성공했지만, 끝내 사랑에는 실패했다. 사랑처럼 보였지만 애초에 둘은 사랑하지 않았다. 둘은 솔직했다. 다시 A를 떠올린다. 생애 첫 기억을 떠올리려고 하는 것처럼 기억의 어느 지점이 시발점인지 모르겠다. 와타나베가 나오코의 기억을 떠올리듯이 A의 모습보다는 거머리들의 모습만이 선명하다.
A는 키가컸다. A는 그의 구두의 토캡처럼 코가 오똑했다. A는 유머러스 했다. A는 A는... 이제 그의 이름마저 기억이 나지 않는다.
喜의 연장선에 非는 존재하지만, 반대는 있을 수 없다. 있다면 그건 거짓말임에 틀림없다.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의 들통날게 뻔한 거짓말처럼 말이다. 스스로를 비좁은 우리 안에 가둬놓고 자학하는 행위나 다름없는 모욕적이고 기만한 행위에 다름 아니다. 우리에게, 거머리들에게 A는 탁월한 거짓말쟁이였다. 남을 속이는 데는 아주 탁월했지만 스스로마저는 속이지 못했다. A는 죽을 때까지, (사고로 위장한) 죽는 그 순간까지 남을 속였음에 틀림없다고,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털어버리려 했다는 막연한 믿음을 갖기로 했다. 아니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A는 자신이 신자였고, 신부였다. 스스로의 죄를 고백했고, 스스로 용서했다. 살아갈 수 없어서 삶을 놓아버리는 게 아니라고, 나의 유일한 생존법은 죽음뿐이라고, 나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했다고... 죽음은 슬픈 것처럼 보이지만, A는 확고한 진실을 남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여줬다. A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지만 그 누구에게도 사랑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받지 못했다. A에게 어느 쪽이 유토피아일지 아직 대답 들을 수 없는 질문을 건네어본다. 어느 쪽이든 중요하지 않다는 뻔한 대답임을 알면서도. 나는 너를 소비하며 살아가고 너는 나를 소비하며 살아간다. 설혹,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는 (특히 사랑에 관하여) 관계에 강박적인 이들은 자아를 속이고 그들만의 신념을 굳게 다져간다. 우리는 입을, 귀를, 생각마저 알게 모르게 밀봉하며 자신을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제 A의 상기를 그만하려 한다. 몇 달, 몇 해가 지나면 A의 이야기를 했던 것조차 잊힐 것이고, 그의 잔상은 끝내 사라질 것이다. A도 그러길 바랄테다.
파도에 휩쓸려 잠시 모래사장에 머물렀던 무언가는 다시 휩쓸려 돌아갈 것임이 분명하다. 아, 희미한 기억 속에 A의 눈동자가 미미하게 잠시 흔들렸다.
-A에게 그리고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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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해석이 옳든
텍스트의 의미는 그 텍스트의 저자가
전적으로 통제할 수는 없다.
어떤 텍스트가 저자의 입과 손을 떠나
공적인 장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 의미는 정치적 맥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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