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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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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nknewknow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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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소멸되어도 사랑이 옵니다. 오는 것은 따지자면 같은 것이 아닌 비슷한 것이 옵니다. 오래 전 당신에게 배웠던 말입니다. 여름이 완벽히 소멸된 것이 아니라 마치 계절 안에서 천천히 순회하여, 비슷한 온도와 습도를 가진 여름이라는 이름의 계절이 매년 비슷한 시기에 오듯이, 모두 면밀하게는 동일한 것이 아니라 닮은 것들일 뿐이겠지만.. 저는 아주 오래전에 당신과 바다를 거닐며 들었던 노래를 찾아 한참을 배회했습니다. 사실 이제는 오래전 함께 들었던 음악이 흐릿해져 더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결국은 찾지 못하고 먼 계절을 순회하여 다시 그 때와 닮은 계절로 저는 결국 왔습니다.
그 날 이후에도 사실 변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대단히 일상적이었고, 모든 것은 같은 풍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종전과 같았습니다. 혼자 거리로 처음 나왔을 때엔 깃발도 없었고, 환호조차도, 누구도 거리로 나와 종전의 기쁨을 만끽하지도 않았으나, 저는 당신과의 일들이 전쟁 직후의 잔해처럼 온 거리에 걸려있었습니다. 종전이었으나 저에게는 또 다른 전쟁이었습니다. 서로가 아는 모든 풍경과 계절들을 함께 횡단했었으니 모두 어쩔 수 없는 것들일테지요. 아무래도 분명하게도 풍경은 평화로우나 미묘하게 바뀐 풍경이 한편으로 너무 낯설었습니다. 낯선 풍경이 나타나도 결국 익숙함을 따라 길을 짚어가기 시작하니 결국 새로울 것이 그간 하나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당신과 보는 천장들을 좋아했습니다.그것이 늘 같은 저희 집 천장일 때에도 좋았고, 밤하늘일 때도, 맑아도, 흐린 하늘이 천장이 되었을 때 마저도 모두 좋아했습니다. 누워서 들려오는 소리가 당신 말소리일 때도, 음악일 때도, 먼발치의 파도소리일 때도, 새소리일 때도, 그러다 어렴풋하게 남은 것이 당신 숨소리가 유일할 때도, 저는 정말로 모두 좋았습니다. 당신은 제 젊은 날의 유일한 알리바이였습니다. 이제는 모두 무너지기 직전의 낮은 천장들과 더는 일상에서는 울리지 않는 소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돌이켜보면 누군가와의 인연은 꼭 오선지의 악보 써내려 가는 것과 같았습니다. 때로는 불협화음이 울리더라도, 당신은 이윽고 화음으로 만들어내고, 연주가 이어지게 만들어 냈습니다. 이제 와서야 고백하자면 함께하는 동안 저는 음표로써 살았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기준에 불과하지만, 그간의 인생에 비하자면 저치고는 썩 괜찮은 소리를 울렸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것마저 저의 착각이겠지만, 설계도면조차 없는 연애로 시작했으나 저희는 꽤 괜찮은 집을 짓지 않았던가요? 이제 오래전 바다에서 함께 들었던 노래처럼 음율이 기억 안 날만큼 희미해지고 멀어지더라도 당신이 저를 추억할 때엔 소음으로 남지 않았으면 합니다. 더 바라자면 꽤 괜찮았던 선율로 기억되었음 합니다. 저는 덕분에 삶에서 진정 좋은 음악을 선물받았습니다.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정말로,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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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nknewknow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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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nknewknow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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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비교적 자주 일기를 써야지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빈 페이지만 펴놓은 채 꽤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런 순간에는 종종 하루라는 제법 긴 시간 동안에도 기억해 낼만한 빛나는 순간이 없었다는 사실에 적잖게 우울해질 때도 있다.  그러면서도 하루의 기록을 꾸준하게 적어내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어쩔 땐 마음 한 켠에서 일종의 경이로움과 비슷한 기분이 들 때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종종 어떤 하루 동안 주어진 시간의 광산에서 끊임없이 기억에 남는 것들을 묵묵히 채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처럼 게으른 자에게 있어서의 ‘일기’란 누워있는데 어쩌다 떨어져 굴러온 뉴턴의 사과와도 같다.. 여전히 나에게 있어 일기란 너무너무 귀찮지만.. 그래도 최근 많은 우선순위들이 사라져 즐거운 것이 없는 요즘 중 그나마의 즐거운 일이 일기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이제는 느슨하게나마 손에 곡괭이를 짊어지고 동굴로 들어가려고 한다. 비록 채굴되는 것들이 석탄이거나, 어쩌면 그보다 못한 돌덩이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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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nknewknow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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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몇 주 전쯤 당근마켓으로 화분 중고거래를 하는데, 판매자분께서 산수유 가지들을 선물로 주셨다. 페트병에 담아두니 하나 둘 싹이 피는데, 문제는 가지 하나에서만 싹이 자랐다. 걱정했던 것에 비해, 차츰 다른 나머지 것들에게서도 싹이 자라나는데 무언가를 틔우는 데에 들이는 시간은 다르고, 틔워지는 것도 다르구나 하며 생각했다. 여전히 아직 하나의 나무에서는 ��이 트질 않았는데도, 이제는 이런 마음 때문에 그다지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덕분에 한동안은 산수유 바라보는 재미로 몇 주를 보냈던 것 같다. 아무튼간, 최근 아침마다 조금씩 피워져가는 산수유 생명력에 감동을 받고 있다.
항상 일 년 중 제일 기대되는 날을 순위를 매긴다면 생일을 제치고도 성탄절이 우선이었다. 또 아주 어릴 때에는 트리가 있는 집이 부러웠는데, 첫 독립했던 다음 해의 겨울엔 트리를 샀다. 그러고는 항상 매년 크리스마스 즈음엔 트리를 짓고, 또 꾸밀 것들을 하나씩 사두었는데, 덕분에 이제는 트리의 가지들이 쳐질 정도로 꽤 많은 장식들을 모았다. 항상 매년 10월 말 즈음부터 성탄절 호들갑을 떨던 것에 비해서 올해는 트리가 없다는 사실도, 곧 크리스마스라는 것조차도, 엄마 덕분에 비로소 최근에야 깨달았다. 간혹 이 즈음에 엄마는 내리는 눈을 구경하러 서울에 방문하는데, 트리가 없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먹었던 것 같다. 그런 반응에 비해 나는 내가 그것들을 잊었다는 사실에 꽤 무덤 한 편이었던 것 같다. 올해는 공교롭게도 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산수유 가지들이 자리를 잡았다. 크리스마스가 목전에 와서야 장식 달린 산수유를 상상한다. 싹 틔운 산수유 가지들의 생명력을 추적하다보면 결국 여름으로 간다.
그러고는 이따금 여름을 떠올리면, 그 계절에 생명력 넘치던 찬란했던 것들이 떠오른다. 어떤 순간들은 너무 아름다워서, 바다 위의 부표와 같이 밑으로 밀어 넣어도 끝끝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또 어떤 것들은 마치, 백사장의 모래들처럼 손에 움켜쥐려는 순간엔 찰나와 같이 산산하게 부서져 버리곤 했다. 그 때문인지 나는 한동안 찬란함을, 또 아름다움을 보고도 못 본 채 했었다. 떠올려보면 그럼에도 나는 꽤 오랜 시간을 쥐고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이제는 찬란한 것들을 다시 직시하려고 하나, 당분간의 태도는 어쩐지 꼭 여전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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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nknewknow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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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날보다 비오는 날을 더 좋아하는 사람
(집에 있을 때 한정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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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nknewknow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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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제주도에 내려오니 공기가 아주 맑은데 그 때문인지 밤하늘에 별이 많다. 오래전엔 별자리들을 알고 싶어서 서귀포의 천문대에 별자리 강의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보다 더 어린 날에는, 미신 같은 이야기들에 대해 불신에 가까운 오기를 품었던 때가 있다. 다리를 떨면서 내가 가진 복들의 총량에 대해 일종의 시험을 해본다든지, 열대야가 심하던 어느 오래전의 여름 밤에는 엄마가 잠들 시간까지 자는 척 기다리다 문 닫는 소리가 한참 지나고야 선풍기를 틀어 놓는다든지, 사소한 것조차 낭만이라고 여기던 지난 학창 시절쯤에는 그것마저 그럴듯한 낭만이라며 비 오는 날 우산파는 노점상을 흘깃보고 지나치는 일과 같은 것들. 그 중 지금까지도 가끔씩 떠올리게 되는 미신이라고 하자면, 어린 시절에 소원을 주문처럼 외고 별똥별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던 때가 있다. 정확히는 바랐던 건, 내 소원에 별똥별이 잠시 들리길 바라기도 했었다.
내가 가진 염원들과 별똥별이 만날 그 찰나의 우연을 기다려라는 건 너무 가혹하다 싶었다. 몇 해가 지나가니, 별똥별을 마주하는 아주 찰나의 순간 그 조차에도 염원을 항상 꽉 쥐고 다닐만큼의 간절한 무언가가 있다면 무엇인들 이루어지지 않겠냐는 마음과, 또 그 사이의 형용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이 있다.
이제는 어쩌다 밤하늘을 깊숙하게 올려다볼 때면, 어린 시절의 내 소원들을 ���나쳤던 별똥별들을 가끔 만날 때가 있다. 그럴때에 나는 잊었던 오래된 꿈들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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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nknewknow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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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때가 되면 숨어있던 귀여운 집들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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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nknewknow · 9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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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편지를 받았으나 어쩐지 당신이 내게 준 글이라고는 잘 믿어지지 않는 것이 슬픕니다. 당신이 내게 이러한 것을 경험케 한 것이 벌써 두 번째입니다. 그 한 번이 내 시골에 있던 때 입니다. 이런 말 하면 웃을지 모르나 그간 당신은 내게 커다란 고독과 참을 수 없는 쓸쓸함을 준 사람입니다. 나는 다시금 잘 알 수가 없어지고 이젠 당신이 이상하게 미워지려고까지 합니다. 혹 나는 당신 앞에 지나친 신경질이었는지는 모르나 아무튼 점점 당신이 멀어지고 있단 것을 어느날 나는 확실히 알었었고…. 그래서 나는 돌아오는 걸음이 말할 수 없이 허전하고 외로웠습니다. 그야말로 모연한 시욋길을 혼자 걸으면서 나는 별 이유도 까닭도 없이 자꾸 눈물이 쏟아지려고 해서 죽을 뻔 했습니다.. 집에 오는 길로 나는 당신에게 긴 편지를 썼습니다. 물론 어린애 같은, 당신 보면 웃을 편지입니다. “정희야, 나는 네 앞에서 결코 현명한 벗은 못됐었다. 그러나 우리는 즐거웠었다. 내 이제 너와 더불어 즐거웠던 순간을 무덤 속에 가도 잊을 순 없다. 하지만 너는 나처럼 어리석진 않았다. 물론 이러한 너를 나는 나무라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제 네가 따르려는 것 앞에서 네가 복되고 밝길 거울 같기를 빌지도 모른다. 정희야, 나는 이제 너를 떠나는 슬픔을, 너를 잊을 수 없어 얼마든지 참으려고 한다. 하지만 정희야, 이건 언제라도 좋다. 네가 백발일 때도 좋고 내일이래도 좋다. 만일 네 마음이 흐리고 어리석은 마음이 아니라 네 별보다도 더 또렷하고 하늘보다도 더 높은 네 아름다운 마음이 행여 날 찾거든 혹시 그러한 날이 오거든 너는 부디 내게로 와다오. 나는 진정 네가 좋다. 웬일인지 모르겠다. 네 적은 입이 좋고 목덜미가 좋고 볼다구니도 좋다. 나는 이후 남은 세월을 정희야 너를 위해 네가 다시 오기 위해 저 야공 (夜空)의 별을 바라보듯 잠잠히 살아가련다…” 하는 어리석은 수작이었으나 나는 이것을 당신께 보내지 않았습니다. 당신 앞엔 나보다도 기가 차게 현명한 벗이 허다히 있을 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지 나도 당신처럼 약아보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내 고향은 역시 어리석었든지 내가 글을 쓰겠다면 무척 좋아하든 당신이 우리 글을 쓰고 서로 즐기고 언제까지나 떠나지 말자고 어린애처럼 속삭이던 기억이 내 마음을 오래도록 언짢게 하는 것을 어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나는 당신을 위해 아니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다고 해서 쓰기로 한 셈이니까요. 당신이 날 만나고 싶다고 했으니 만나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 맘도 무한히 흩어져 당신 있는 곳엔 잘 가지지가 않습니다. 금년 마지막날 오후 다섯시에 후루토사 (故鄕 )라는 집에서 만나기로 합시다. 회답주시기 바랍니다 李箱.
-1935년 스물 다섯 이상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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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nknewknow · 9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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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5일에 보았고, 4월4일에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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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nknewknow · 9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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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빈번히 늙은 모습을 한 우리의 모습이 꿈을 가장하여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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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nknewknow · 9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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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간 동안의 시(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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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nknewknow · 9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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所有와 無所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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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nknewknow · 9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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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4일, 지하철에서 쓴 편지
수업이 끝나고 계획에 없던 야작을 하게됐다. 분명 내 계획은 다섯시에 끝나 여섯시에 너를 만나는 것이었는데 야작 때문에 모든 계획이 어긋나버렸다. 미안함에 주변 사람에게 예민하게 굴면서까지 일찍 끝내려고 했는데 그래도 끝나니 늦은 시간이더라. 손에 물감과 페인트를 덕지덕지 묻힌 채로 지하철역으로 뛰어가는데 역 앞, 트럭에 몇 종류 안되는 꽃을 팔고 계시더라고, 마음은 여전히 급했지만 저걸 받고 좋아할 모습이 생각나서 잠시 멈춰 서서 프레지아 몇 단 샀어. 물론 지금은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인데 시간이 아까워서 손도 못 씻고 뛰어온 내가 꽃을 사서 간다는 게 조금 아이러니하면서 우습더라. 늦어서 미안해.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갈게. 그래도 괜찮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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