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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아니면 갈 일이 없는 명동과 신세계를 지나친 뒤 회현에서 식사를,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편히 뒤섞여 밥내음 도는 골목은 언제나 분위기 따뜻한. 여기 저기 다니며 이것 보고 저거 마신 추운 밤, 눈서 들리는 캐롤, 길서 들리는 오르막길 가사를 곱씹으며 정동길서 부른 택시를 기다리며 포개진. 먼 듯 그치만 잘 살자고 내년도 힘내자고 다짐하는. 다들 추워 쉬이 지나가는 그 순간에 잠깐의 온기를 지킬 수 있음에 감사하며 내년도 올해 만치 이루고 조금 덜 아프기를 소원하는,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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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씩 가는 팬시한 술집도 좋지만, 오랜기간 버텨온 노포의 가치를 아는, 소주를 좋아해 토속적인 안주들을 서로 넣어주며 마셨으면. 영화는 집에서 보는 걸 좋아해 펑펑 보며 울 영화를 고심해 정하고 집 가는 길에 안주나 만들어 먹을 재료거리들을 사갔으면. 어느날은 소주, 어느날은 와인, 어느날은 막걸리, 어느날은 복주도 집어서. 영화 보고 음식 나누며 주말 보내다 어느날 갑자기 선유도 같은 곳에 가고 싶어져 새벽 시간에 다녀왔으면. 온갖 풀내, 꽃향, 물내, 새벽 흙내 맡으며 걷는 것는 것들을. 돌아가는 택시에서 내려 잠깐 올라가는 그 길에서 기도하는 모양새로 손 잡고 언제나 비슷하게 걸어 오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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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연애는 직전의 사랑에 영향을 끼쳤고, 곱씹을 수록 맘씨좋은 그에게 내 마음 곳간이 빈궁하여 몹쓸게 대했었던. 잘 맞는 사람과 맞지 않는 결의 문제, 라기 보다 내 자체의 부족함에 대해 끝난 후 생각, 직시. 그 사람이 나를 관대히 보아준 것과는 다르게, 내가 그의 작은 흠결을 어여쁘게 못 봤던 점, 어느 유명인의 말처럼, 무플인 인생에 선플 하나를 달아 주길 바랬던 이에게 그렇지 못했던 것 같아 끝이 난 후 속이 상했다, 자조. 자기혐오 많은 나인데, 나보다 더 나를 좋아해주는 그를 만나 나 자신과 잠시나마 화해하고 그랬던. 그리고 끝난 뒤 무척이나 후회했던 그것이 한 해 영향을 미쳤다.
연애때 들었던 비빌 언덕 이란 말, 전엔 들어본 적 없는 표현이었고, 만나는 동안 좀 곰곰히 생각하게 됐던 말인 거 같은. 어떤 의미로든 그 사람은 그런 사람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 있는 그대로가 좋은 사람이니. 고칠 게, 손이 많이 가는, 나와는 다르게 별 손이 안 가는 사람이니. 항상 우울하다고, 그리고 종종거리며 살아 왔다지만, 내가 보기에는 누구보다도 품위있는 눈과, 거칠고 신성한 노동자의 손으로 살아가니.
만남이 끝나고, 함께 새로운 커피집을 이곳 저곳 다니며 한 잔 씩 하는, 전시들을 보면서 컨템포러리 토픽에 대해 얘기하며 깔깔 하던 그런 것들,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 각자 좋아하는 무언가들을 함께 하던 이가 내 잘못, 모자람으로써 붕 떠 버렸다, 크레이터. 자책 했고, 학대했다. 술이나 마셨고, 깊은 잠도 들지 못하고 한 시간 두 시간 간격으로 깼었다. 가족들과 주변이들에게 소홀 했고, 무관심 해져 갔기도. 내 자신을 모두에게서 떨어트려, 고립 시켰고, 혼자 술 마셨고, 혼자 차 마셨고, 혼자 무언가를 봐 버릇 했었다. 남대문부터 정동, 경복궁 근처의 내가 좋아하는 오래된 길거리를 혼자 걸었고. 우리 모두는 죄인, 이지만 다시금 내가 죄인 이라고 형을 발부, 되새겨 진 듯 한 것 처럼 못되게 굴었다, 자폐. 속상하게 했으면 나도 그래야지, 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찾아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꼬인 사람이라 고맙다고 입 밖에 잘 내 지도 못하는 데, 내게 좋은 말을, 애정 띈 행동을 하여준. 어찌 그 고마움을 갚아야 할 지 막막 했었던. 언젠가 적은 말처럼 순간 내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느낀 당신들에게 어찌 갚아야 할 지 막막 했었던.
내 몸을 아프게 했었고, 엄청나게 울어댔던 작년, 열심히 살아야 겠다고 생각하고, 고마운 건 갚아야 겠다고 다짐, 로마의 감독은 유년시절 자신을 희생하며 본인들을 키워준 그녀에게 고마움을 갚기 위해 수십년이 지난 후에 맘을 담아 영화를 찍었다. 갚자, 그리고 살자. 새 해의 다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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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는 갈 용기가 없어 셋서 다녀 온, 한쪽에선 찬송가, 한쪽에선 탁소, 다녀온 후 든 생각.
몇 년 전 대학에 출강하던 사촌형이 암말기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팔자에도 없는 공부를 너무 해서 스트레스 받았다는 투정과 함께.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이 젊은 탓에, 암도 젊어 손 쓸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후 상을 치렀다. 큰 엄마는 식장서 세번을 기절했다. 악을 바득바득 질러 대는 큰 엄마와 본인의 세계를 한참 뛰어넘는 혼돈이 어리둥절하게 느껴지는 꼬맹이 조카의 표정, 그 이미지는 잊혀질리가 없다. 자식이 먼저 죽으면 악다구니와 거죽만 남는 다는 걸 실제로 눈 앞에서 보았다.
한밤중에 핸드폰 울려댄 푸시에 졸졸하던 잠이 깼고, 인터넷을 몇 번 뒤져보고 나도 전화를 돌리곤 했다. 이 나이 먹고 거기 가는 지인은 별로 없을 테지만, 혹시 모르니. 친구들은 문래니 합정이니,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한잔들 하고 있었다. 전화들이 끝나고 나는 이미지 더 보기를 멈추고 텍스트만 소비했다. 몇년전이 생각나 그 이미지를 까먹었으면 해서. 아니나 다를까, 지인들은 동영상을, 사진을 괜히 보았다며 어째야 하냐고 얕은 투정 부렸다.
삶에 덧 없어 뵀던 주변 몇명이 가장 크게 슬퍼하는 이유는 대부분이 가진 기본적인 것들에 대한 결핍덕에, 유년부터 그늘이 져온 채로 커온 이들이, 살아나가며 내 자신 보다 소중해진 너네들에게 받은 고마움을 어찌 갚아야 할 지에 대해 막막해본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대상이 어릴 때 일수록 개별의 모임, 여럿을 분석하기 쉽지 않고, 다들 또 여러 충동적 행동이나 실수 등을 겪으며 살아온 기억이 있다. 거기 갔던 건 대부분 어린 친구들, 나도 이십대 많은 시간을 해방이니, 경리단이니 하는 곳에서 보냈었던 지라 남 같지 않았고. 때문에 시스템에 대한 분노, 몇�� 어림, 으로써 포장 될 수 없는 행동 한 이들에 대한 책망, 보다 그저 아이고, 곡소리만 나는 편이 어떤가 싶다.
정리가 끝난 후 다들 까먹었으면, 잊어버렸으면.
종로 어딘가서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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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물상이나 인물을 대하는 태도, 생각에 그사람이 그대로 투영되어 정직히 보이는. 숍서 파는 예쁜 꽃도, 길거리에 물색없이 흐드러져 핀 꽃도 대중없이 사랑하는. 무언가를 구매하면 닳고 닳을 때까지, 더이상 기능하지 못할 때까지 정히, 매우 정히 애정하여 사용하는. 매일 같은 머리에 비슷한 차림이어도 그날의 무언가 반짝임을 포착하여 살가이 귀를 쓸어 넘겨 주는. 어려이 사는 이들을 찬 눈길로 보기보다 온정의 맘, 내려다 보는 이들보다 더 높은 품위로 바라보는. 본인의 공간으로 초대할 때에 언제나 준비가, 청소가 덜 되었다며 모자람 없이 대해주려는. 세련된 차림도 좋지만 그보다 더 찬란한 맘씨에 눈이 부신 나만의 아이디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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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라잡이, 고등학교 고학년때 자주 듣던 고스트스테이션, 신해철은 나의 한줄기 빛이었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때 한방울도 나지 않던 눈물이 신해철이 죽었을 때는 줄줄 흘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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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이야기를 하는 데 너무 서툴고 방법도 아직 잘 모른다. 대상이 없어도, 있어도 난 그랬다. 그 덕분에 오랫동안 묶어뒀던 마음이 이상하게 풀려버리곤 했다. 비밀은 힘을 주기도 하지만 내게는 덫이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 누구보다 누구 못지않게 해방되고 싶어하는데도. 단정하고 말쑥하게 치장해 온 모습으로 감춰온 이런 생각들을 주변 사람들은 아마도 잘 모르겠지. 언젠가 친구에게 술이 엄청 취해서 나 외로움 정말 많이 타, 라고 말하니 네가? 하고 놀랐던 게 생각.
난 가장 가까운 사람, 애인 에게만 아주, 어렵게 속내를 털어놓곤 했는데 그 관계가 틀어지고 나면 단순히 헤어지는 것이 아닌 내 일부가 소멸해 나가는 듯 했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응집되고 견고해진 마음이 얼마나 빠르게 또 쉬이 어그러졌는지, 내 마음안의 금이 어떤 부분에서 꺾이고 깊어지는 지 또 어느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지 그 지점이 어딘지 느꼈다, 직접 피부로. 마음이 넘어가 지워질 뻔한 경험으로 나아간 건 크게 없다. 그저 가스불을 처음 만진 아이처럼 공포가 심어졌을 뿐.
이곳���던 저곳이던, 글을 적으면 그 후 뜨는 몇 개의 좋아요 가 내 생각과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라고 생각하게 해줬음 에 고마움을 느낀다. 그게 비록 내가 좋아서 가 아닌 그저 본인이 그냥 듣고 싶은 말, 이라 그랬을 것 이지만.
구원받지 못했다, 알고 있음에도 못했다. 되살아나는 것에 대해 내 스스로 관망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내 자위 였을 뿐. 예전 가끔 늦은 밤, 말 않고 회관 앞에서 기다린 적이 종종 있었는데, 나를 놀란 눈으로 보던 그 눈보다 내 눈이 더 붉어졌던 게 생각난다. 그때의 내가 그립다.
어찌하여 저를 이리 두시나이까, 어디 계시나이까, 우리를 잊으셨나이까, 기도가 들리지 않으시나이까, 깨어나소서, 저희의 울음과 탄식을 들어주소서, 당신의 인자함으로 들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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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좋아할 거 같은, 맛지다 소문난 횟집서 소우주에 회 한점 한 뒤, 둘 다 양 껏 취한 채 그 계절 그대로 품은 가로수길 우거진 그 동네를. 걷다 걷다 그동안 못 나눈 포옹, 요즘 이야기, 오해 보따리 함께 풀고 밤 지새는. 같이 머리 말리다 배고파지면 딜리버리 나눠 먹으며 깔�� 할 수 있는, 함께 또 서로 나눌 수 있는 그런 것들. 세상의 여러 압력들, 터져 나갈 듯 눌러대는 와중에도, 그저 평생을 동동거리며 애쓰는 당신에게 아무렴 어때, 신이 있다면 당신에게는 너그러울 거야, 라고 언젠가 말해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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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어느 한 연예인의 유서를 보고 한참을 맘이 탁했다. 티브이라고는 식당서 켜진 뉴스를 보는 거 말고는 거의 보지도 않고, 연예인들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나인데. 거기다 살면서 지인들이, 유명인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별 감정 안 들던 나인데. 무어의 변화가 내게 있는 건지. 그 유서는 정말 울어도 울어도 마르지 않을 눈물샘도 다 마른 사람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결핍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본인의 장례식장으로 모두를 초청하고 있는 초청장의 느낌도 있는 걸로 보아 주변 이들에게 매우 사랑 받았던 걸로 보이고, 함께 웃고, 우는 힘을 알았던 사람 같았다. 그러니 마지막에 같이 와서 웃고 울어줘, 라 적혀있는 거 같았고. 그걸 보면서 내가 원래 그러한 사람인지, 아니면 내가 지금 그러한 건지, 아니면 그 유서가 유독 마음을 탁하게 만드는 것인지, 일면식도 없는, 모르는 사람을 생각하며 한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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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교통사고가 난 후 잊어 버리는 게, 이어 받아 잘 살아 가는 것이 쉽지 않은, 2년을 저는 가후쿠 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덧 살아야 함에도, 많이 애정할 수록 상대를 똑바로 보기 힘들때가, 내 마음과 마주 하거나 기우는, 고치는 것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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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부터 보기 시작된 일반인 출연 짝짓기 프로그램을 지금 까지 봐 오면서 처음으로 출연자를 응원, 영숙이가 행복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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