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longndprosper
livelongndprosper
hyuk
15 posts
inhale - exhale
Don't wanna be here? Send us removal request.
livelongndprosper · 5 years ago
Text
200704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간단하다고 말한다.
귀엽다가, 예쁘다가, 사랑스럽다.
그렇지만 그저 사람의 아름다움이나, 귀여운 행동만에 마음을 주는 행동은 곧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마음이 갈 곳을 잃어버리곤 한다.
그녀는 나에게 동갑의 후배이자, 같은 입시학원에 대한 기억을 가진 사람이고, 먹을 것을 고르는 취향이 비슷한 좋은 학교 친구이다.
친구로서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녀가 아무렇 게나 좋아진 것은 아니다.
새로운 것이 넘쳐나는 20대 초반이 흘러 지나가고, 이내 익숙한 것들로 채워진 주변 환경 속에 과거의 우리의 호기심 넘치던 모습들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며 서로 부끄러워했던 탓일까,
불현듯 찾아오곤 하던 커다란 슬픔과 부담감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털어놓고, 아낌없이 서로를 공감하며 위로하는 마음을 보여서일까,
한 사람의 지금까지의 생애와 평소의 생각, 스스로의 신념, 그리고 그녀의 살아감의 방식 자체에 호감을 갖고, 작지만 울림이 큰 감동을 느꼈던 것일까,
비로소 한 사람의 내면을 좋아하게 되며, 언젠가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자각했을 때
내 앞에는 누구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마주하고 있었고,
그 사람을 망설이다가 놓치기에는 주변의 허울과 프레임이 너무도 보잘 것 없이 느껴졌다.
언제나 감동을 주며 내게 다가와 주는 그녀를
어제보다 더, 내일보다는 조금 사랑하고 싶다.
1 note · View note
livelongndprosper · 5 years ago
Text
200428
진동소리에 잠이 슬쩍 깨었다
카카오톡에서 충격적인 소식을 보고 잠이 달아나 앉아 있었다.
그러던 중 전화가 왔다.
또다른 충격적인 소식에 화장실로 달려가 씻었다.
어쩔줄 몰라 일단 흰 셔츠에 검은 슬랙스를 입었다.
차를 끌고 가는 길에 나는 감히 많은 말을 건네지도 못하였다.
노래와 시간만 속절없이 흘러갔고.
그 우수에 찬 표정이 머리에 가득 한 채 창문을 활짝 열고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는 안중에 없는 수업을 듣고.
멀리서 온 친구를 반겨 주고.
옷을 입고 다시 서울로.
처음이라 어색해 하는것.
봉투 뒷면에 이름을 쓰는 것도.
분향과 절 두번 반 도.
너무도 이런 장소가 어색해서 그저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만 집중했다.
육개장을 얻어먹는건 싫다.
다시 내려오는 길.
밤길을 그렇게 천천히 내려온건 처음이다.
운전에 집중이 안돼서.
내려와서는 멍하니 있었다.
반겨주었던 친구가 다행히 말동무를 해주었다.
힘들었던건 다음날에 알았다.
몸도 쑤시고 소화도 안된다.
그래도.. 제일 힘든건 내가 아닐텐데.. 하는 마음이다.
그저 날이 같았을 뿐인걸.
그 전날에 함께 했었던 것 뿐인걸.
스스로 느낀 충격들이라 어쩔수 없나보다.
모두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셨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남겨진 제 친구들은 모두 자랑스러워 하실 만한 사람이라는 건 보장할게요..
가짜 웃음을 너무 많이 지은 날, 곽재혁.
0 notes
livelongndprosper · 5 years ago
Text
200322
2014년 10월 1일, 박근혜 정권 2년차에 접어든 암흑의 시대에 민간인의 카카오톡을 국가보안법을 이용하여 정치적 목적으로 사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 당시 조금이라도 정치에 관심이 있었더라면 카카오톡의 데이터가 검찰측으로 넘어간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찾아 텔레그램으로 옮겨간다는 메신저 망명을 떠난다는 사람이 많았던 그 당시 풍조를 기억할 것이다.
따라서 나와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고등학교 친구들은 단톡방을 텔레그램으로 옮기고 지금까지 같은 단톡방이 이어지고 있다.
톡방 속의 데이터가 카카오톡처럼 일정 기간이 지나고 난 뒤에 사라지지도 않고, PC앱과 웹, 여러 기기를 오가면서 사용할수 있는 점은 카카오톡보다 수 단계는 우월하고 편리했기에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최근 불거진 텔레그램 N번방 박사방 등 왠 미친 상종하지도 못할 후쿠시마 원전 폐기물보다 지구상에 존재가치가 없는 개쌉쓰레기 씨발롬들때문에 에먼 나와 친구들이 오해받는 시선이 진짜 진심 좇같다
아니씨벌 뭐 부모에게 배움이 없었나 탄생부터 인성이 부재했나 그냥 시발 저딴짓 하려고 태어난거 같은 코로나바이러스만도 못한것들은 진짜 나가 뒤졌으면 좋겠다.
꼭 수사해서 명단 밝히고 얼굴까고 깜방에서 얼굴 까먹을때까지 썩다가 성범죄자 알림��에서 보자 뒤질놈의새끼들아
1 note · View note
livelongndprosper · 6 years ago
Text
191218.
지칠대로 지쳤다 12월이 시작하자 마자 책을 만들기 위해 스토리를 짜느라 잠을 줄여서 잤다
광고 사진 보정을 위해 수요일 밤을 새고 아침 첫차로 서울에 올라갔다 차를 끌고 코스트코에 들려 광고 파이널 과제를 위해 제품을 구입하고 목요일 오후 수업을 듣기 위해 다시 안성에 내려왔다 수업을 마치고 약속되어 있던 후배님의 주도문화 과제를 위해 집에서  와인 시음회를 마치고 
금요일엔 주말 촬영을 위해 장비를 대여하러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는 바로 책에 들어갈 사진을 촬영하고 계속 탑 뷰로 파인더를 쳐다보다 목을 심하게 결리게 되었다 책 제작을 밤새 하다가 다음날 광고 촬영을 위해 조금 잔 후
토요일에 광고사진 촬영을 하였다 두가지 준비한 제품 중 하나가 생각만큼 나오지 않아 포기한 후 두번째 제품은 이후 포토샵을 각오하고 빠르게 찍었다 그리고 계속하여 책 제작을 하고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밤에 책을 완성하였다
일요일에는 다음날 발표할 영상작업 소스 촬영을 위해 학교를 돌아다녔다 그리고는 영상을 편집하고 유튜브에서 필요한 영상을 취합하는데 하루를 사용하였다 어떻게든 영상 작업을 완성 시키고는 다음 날 아침 발표를 위해 조금 잠에 들었다
월요일 아침에 학교에 가서 영상 작업을 디피하고 교수님께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는 점심을 재빨리 먹고 책 제작을 위해 충무로로 향했다 오후를 꼬박 책 제작에 사용하고는 미리 또 약속되어 있던 동기의 생일 축하 술자리에 가서 적당히 있다가 나왔다 그리고는 6시 반에 알람을 맞추고 잠에 들었다
화요일에는 새벽부터 광고 교수님의 불렛푸르프 친구들의 국산자동차 광고 현장에 가서 촬영 보조 및 참관을 하였다 예상보다 고된 중노동을 하였으나 꽤나 재미있었던 기억으로 남기고 싶다 하지만 모두 마치고 돌아오니 시간은 15시간이 넘게 흘러 11시를 넘기고 있었다 그리고는 책 전시를 위해 책을 디피하러 다녀온 후 잠시 잠을 청했다
수요일 오전에는 광고 수업이 있으므로 전날 봤던 교수님과 퀭한 눈빛으로 마주했다 으어어 하며 수업을 마치고 그 주말에 다시 촬영 계획을 잡고는 책 전시를 위해 다시 학교로 향해 전시 오프닝을 진행했다 와중에 졸준위 단톡이 불타올랐다 교수님 의견을 받아서 안성에서 졸전을 하면 어떻냐는 투표를 했는데 아주 난리가 났다 진화하느라 하루종일 휴대폰을 붙들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는 문득 다음날 저널리즘 사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밤에 동기를 불러서 학교 산책 코스 빙빙 도는 사진을 찍고 밤새 보정을 하여 살짝의 쪽잠을 청했다
목요일 매우 피곤한 상태로 오전에 저널 발표를 하고 (사진이 대충이라 좀 쫄음) 오후에 있는 수업을 다시 들으러 간 뒤 수업을 마치고 과사에 들러 우리와 협력 관계의 조원들이 장비 빌리는 것을 도와준 뒤 광고 과제로 차량을 찍는다는 동기의 달콤한 말에  와 존나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쫒아가 차량 사진 촬영을 도왔다 촬영은 또 새벽까지 이어졌지만 이건 참 재미있었다 그러고는 또 잠을 살 짝 청했다
금요일에는 화요일에 못간 수업의 제출물을 내러 교수동에 들렀다가 은행에 들러 금전 업무를 보고는 과에서 장비 몇개를 더 챙긴 후 또다시 광고 과제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로 향했다 이번 촬영은 대놓고 후보정을 노린 촬영이었으므로 제법 빨리 끝났다 그러고는 다음날에 추가 촬영 계획을 잡았다
토요일에 잠을 깨니 몸이 박살나 있었다 그래서 추가 촬영 계획은 접고 집에서 요양을 하다가 안성맟춤아트센터에 뽀로로 공연에서 일하는 사촌누나를 잠시 만나 밥을 한끼 하였다 그리고 다시 집에 돌아와 내일 시작하려 한 광고과제 보정을 시작하였다 밤새 오전 6시까지 보정을 하다 또 잠에 들었다
일요일은 또다시 보정의 하루였다 하루 종 일 보정을 하였다 총 14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포토샵을 만지작 거렸다 죽을 맛이었지만 조원 중에 후보정을 감안한 촬영에 대한 결과물을 뽑아낼 사람이 나 밖에 없었으므로 그저 묵묵히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월요일에는 오전 수업은 그저 출석에만 의의를 두었으므로 느지막히 가서 대강 듣는데 수업이 너무 늦게 끝나버렸다 그래서 2시에 위원장과 교수님을 뵈러 가려 했는데 그전에 먹을수 있는게 없어서 버거킹 드라이브스루를 갔다 하지만 결국 햄버거는 반정도 먹다 끊고 교수님을 보러 갔다 그 후에 위원장과 일을 하고는 갑자기 생각해 보니 그냥 오늘 갤러리 답사를 가자는 말에 꽤나 현혹되어 서울로 향했다 그래서 인사동의 후보군 갤러리를 다녀와서는 그동네는 답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밥먹고 다시 안성으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동기들을 만나 다음날 있는 시험을 준비하고 짧은 잠을 청했다
화요일에는 오전에 시험을 생각보다 낭낭하게 본 뒤 점심을 한사발 먹고는 공강이기 때문에  떨어진지 오래인 바디워시를 사러 이마트에 다녀왔다 와중에 뜬금없이 다시 졸준위 방에 불이붙어 안성에서 전시하고 싶다는 뒷북맨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논의를 하다가 그리고는 광고 조원들끼리 고기를 먹고는 다시 수업들의 파이널 과제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기 위해 컴퓨터 작업을 계속하였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순간이다
그리고 내일인 수요일은 광고 수업이 있고, 책 전시를 마무리 한다 그리고는 오후에 차를끌고 서울에 올라가서
목요일 오전에 강남역에서 갤러리 계약을 하고 오후에 시험을 치러 다시 안성에 간 뒤 나에게 비로소 종강이 찾아오게 된다.
이 신세 한탄을 하는 것은 이렇게하도 하지 않으면 짜증나 죽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나에게 실질적으로 힘이 되는 사람과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이 구분되기 시작한다는 것이 참 안타까웠다 의 상하기 싫으므로 여기다가 깨작인다
1 note · View note
livelongndprosper · 6 years ago
Text
191119
눈물이 난다
눈이 따가워서
눈이 건조해서
렌즈를 껴서
바람이 불어서
코가 매워서
마음이 찡 해서
슬픈 뉴스를 보아서
가슴찡한 광고를 보아서
발을 문지방에 찧어서
가슴아픈 이야기를 들어서
안타까운 사람을 보아서
너무 피곤해서
인공눈물을 넣어서
깜별이 이야기를 해서
누군가 자신의 모든것을 털어놓아서
앞에서 누가 울어서
공허해서
휴대폰을 너무 오래 봐서
포토샵을 열심히 해서
해 줄수 있는게 없어서
마음과 입이 따로 놀아서
모두를 위할 수 없어서
밤이 너무나 어두워서
갑자기 누가 불을 켜서
그냥 문득
갑자기
0 notes
livelongndprosper · 6 years ago
Text
이따금 이 사진의 주인공이 된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Tumblr media
1 note · View note
livelongndprosper · 6 years ago
Text
190813
기쁨, 슬픔, 이별, 원망, 분노, 억울함에 사람은 울고는 한다.
자신의 슬픔을 덜고자, 남의 슬픔을 나누고자 함에 그 까닭이 있다.
하지만 스스로의 위안을 위해 우는것과 달리,
남의 고통과 아픔, 기쁨을 위해 울줄 안다는 게 정말로 소중한 것이 아닐까?
남을 위하여 진심을 담아 울어주고, 그 마음 깊은곳의 슬픔을 이해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지만,
그 사람을 소중히 여긴다면 그 울음이 부끄럽지 않을테야.
​사람은 아는 만큼만 보이는 것이라는데, 서로의 깊은 슬픔을 모른채 그 사람을 얼마나 더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너무 힘들어 더이상 울음조차 나지 않을때, 함께 울어줄수 있는 사람.
울음을 참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줄 사람.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이고, 나도 이런 사람이고 싶다.
1 note · View note
livelongndprosper · 6 years ago
Text
190624
비로소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
ㄱ군이 말했다, 모두들 나를 색안경 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어서 힘들다고.
ㄴ양이 말했다, 이 관계를 내가 정리하는게 맞다는 걸 알면서도 미련이 남아, 언젠가는 괜찮아지겠지?
ㄷ군이 말했다, 몸이 힘든건 그럭저럭 이겨낼 만 하지만 사람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고.
ㄹ양이 말했다, 그땐 그런 관계를 가지고 있었지.. 내가 너한테 이걸 왜 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ㅁ양이 말했다, 어차피 그런거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냥, 지금을 즐기고 싶다고.
ㅂ양이 말했다, 계획만 잔뜩 있지만 실천할 용기가 나지를 않는다고.
이야기를 듣는 것을 말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을 취미로 하다 보니
모두에게 듣고 모두에게 공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나는 듣기버릇이 들어버려
나를 어디선가 잃어버렸다.
그냥, 말하는게 오랜만이구나. 느낀 그밤.
0 notes
livelongndprosper · 7 years ago
Text
자본주의 사회이다.
재물이나 노동의 가치가 곧 재화가 되고, 재화가 곧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권력이 되기도 한다.
남에게 재화를 뺏어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 뺏고 뺏기는 사회의 처절함이란.
그러나 재물은 스스로 가치를 높여 시장에 보다 많은 돈을 풀어 놓는다. 높아질 가치에 투자하는 것이 촉망받는 이유이다.
하지만 끝없는 욕심은 재물의 가치와 삶의 질과는 관계없이 재화의 손익만을 신경쓰게끔 만든다.
남의 쇼핑백이 걸린 손가락만을 보고 스스로를 박리다매 하지 말자.
그 손가락은 달을 향하고 있다.
1 note · View note
livelongndprosper · 7 years ago
Text
부러운가, 내가
뭐가 부러운가.
편하게 한량처럼 잘만 지내는거 같아서 부러운가.
불행해 보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다행이다. 그래보이고 싶었으니
나는 2년전 오늘은 기억하지만 1년전 오늘은 기억하기 싫다. 그때는 불행했거든.
그래 사실 지금도 불행하다,
다만 내 목숨을 부지시킨 악에받친 정신이 마냥 불행함에 무뎌지게 만들어 버린 것이겠지.
2년동안 뭐했냐고?
그래, 2년전에는 군대에 끌려가기 ��전이었지. 내일이 없게 놀아서 그 화려한 기억만 남았다.
입대한 8월,9월은 진짜 좇같았지만 그냥 버텼다.
근데 10월에는 내 몸이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다. 아니, 내면속의 스트레스의 말을 들어버린건가?
생각해보자. 당신은 어느 오후 갑자기 숨이 가빠와 바닥에 쓰러진다. 그런데 그때부터 다리를 움직일 수 없어서 당황하며 엠뷸런스에 실려간다.
의사는-지금 생각해보니 전혀 믿음직 스럽지 못한 군의관 나부랭이- 는 링거좀 맞다보면 나을 것이다 말한다.
그런데 낫질 않는다. 다리는 요지부동에 나는 불안하다. 모르겠으니 큰병원을 가란다.
MRI를 연속으로 2시간을 찍고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한다. 원인을 모른다고 한다.
말도 안돼. 어떻게 원인불명으로 다리가 마비돼?
주변에서는 나를 의심한다. 진짜 질병인지 꾀병인지를.
내가 생각해도 스스로가 의심스럽다. 말이 되는가? 갑자기 멀쩡하던 사람이 하반신마비?
꾀를 부리다 걸리면 육군 교도소에 간다고 했다.
나는 교도소에 가고싶었다. 왜? 꾀병은 언제든지 나을 수 있으니까.
그들은 알까? 다리에 힘을 줘보라고 할 때마다 내가 느꼈던 그 자괴감을?
안되면 되게 하라는 그들의 신념은 의학에도 접목되어 있던 것인지, 그저 하라는 재활 운동을 열심히 했다. 의미 없이 계속.
재활 치료사의 그 의미없다는 불쌍한 눈빛을 매일 버텼다.
그거라도 해야겠다 싶었으니까. 내가 스스로 이겨내는 것이 답이고 진리이라 생각했으니까.
무슨 영화의 주인공마냥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는 스토리를 바랬던 걸까? 내가 바랬던걸까?
사실 나를 제외한 내 주변의 모두가 바라고 있었다.
근데, 그게 드라마틱하게 되었으면 지금 그걸 자랑하고 다니면서 부심을 부리겠지.
난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우울했다.
그리고 그 "주변의 모두" 의 크기도 줄여나갔다. 기대가 적으면 실망도 적은법이지.
근데 그 우울을 주변에 뿌리고 위로를 구하기엔 난 너무도 비루했다.
이미 '군대에서 다쳐 병원에 수 개월 째 입원해있는 불쌍한 사람'
그 사실만으로 이미 주변에서 위로를 먼저 건네는데 거기에 우울까지 뿌릴 수는 없었다.
그때부터 내 속의 불행 회로는 까맣게 타들어가고 그 기능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처음으로 내 질병코드를 분류받은 날, 정신과에선 '스트레스로 인한 해리성 전환장애' 라는 병명을 붙여주었다.
스트레스로 유발되는 조현병같은 정신질환이 신체마비로 나타난다고? 몸이 머리 대신에 미쳐버렸다고?
그리고 의사가 이런 환자들을 여럿 보았다면서, 그 예후를 설명해 주었다.
짧게는 수 개월. 길게는 평생.
어쩌면 평생 다리를 쓰지 못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을때는 이미 더 불행함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였다.
난 그 말을 들으면서도 그저 그렇구나. 평생 이럴수 있구나. 그랬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리곤 주변의 가족에게 한 말 "괜찮아. 나아지겠지."
그놈의 괜찮아 레퍼토리는 내가 한 말 중에 가장 멍청한 말이다.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괜찮아~ 이다.
난 괜찮아, 괜찮아질거야, 괜찮아지고있어, 괜찮을거야, 괜찮아지는 것 같아, 괜찮은 것 같아...
그 괜찮아를 내가 텍스트로 쓴 것만 원고지 30쪽은 넘어갈 것 이다.
말로 한 걸 받아쓴다면 노트 한권으로 될까? 아니 어림도 없을걸?
니미 시펄 뭐가괜찮아 다리가 조또 안움직이는데 시팔 넌 괜찮겠냐 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안그래도 군대에서 다리 불구되어 병원에 누워있는 자식이 저런 말까지 지껄인다면 내가 우리 부모님이어도 버틸수가 없다.
이런 인생 최악의 상황에서도 개쌍놈의 병신새끼는 되기 싫은 나는, 괜찮다고 했다.
왜냐? 난 부모님께 너무 미안했거든.
내 다리에 도움이 된다고 외부 병원에 쏟아부은 돈만 해도 내 등록금을 상회한다.
2년동안 쥐좇만한 군인월급 제 살 도려내기식으로 어떻게든 모아서 나와도 모자랄판에 근 천만원을 다리가 안움직이는 아들 치료비에 쓰고 꼴에 군시설이라고 산골짜기에 처박혀있는 군병원에 병문안 오신다고 수십번을 왔다갔다 하신 우리 부모님께 내가 꿈도 희망도 없는 이야기를 하라고?
어림도 없다.
그리고 그래, 작년 이맘때였다.
더이상 군병원에서의 치료는 아무 의미 없었다.
그래서 그냥 퇴원하고 다른 부대에 가서 있었다. 군복을 입고 지팡이를 짚고 쩔둑거리면서 군생활을 했다.
어차피 시꺼멓던 불행회로는 하얀 재가 되어버린 뒤라 그냥 부대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재미있었다. 병원에 반년넘게 박혀있다 나오면 군대도 재미있다.
그때 또 괜찮아 레퍼토리는 괜찮습니다! 레퍼토리로 바뀌었다. 괜찮습니다~ 할수 있습니다~ 어 엄마 잘 지내고 있어 괜찮아~ 라고 지껄이며 부대에 절대 어울리지 못할 몸으로 별짓을 다했다. 지팡이짚고 행정업무를 하면서 근무도 섰다. 한손으로 밥을뜨고 쩔둑거리며 피엑스를 가고 흡연장에서 구름과자도 오질나게 폈다.
그때부터 오른 다리랑 허리가 아프다. 되도않는 몸으로 오버한 탓이겠지.
결국 보다못한 지휘관이 작년 말에 의병제대를 시켜주었다.
그리고 아무 압박도 없는 자유로운 몸이 되어 한두어달 치료를 받으니 진짜 허무하게도,
진짜 시팔 존나게 허무하게 다리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내 몸을 믿지 못한다.
언제든 다시 좇같은 상황이 오면 또 쓰러질 것 같다. 그러지 않아야 하는데 자꾸 의심이 된다.
애초에 내 몸 자체가 힘들면 말을 안듣는데 그저 군대에서 발현된 걸까? 하는 생각을 거둘 수가 없다.
나도 나를 모른다. 누군들 나를 알까.
그 이후에는 난 남아있는 행복회로만 작살나게 돌리고 다녔다.
그저 무언가 쫓아와서 도망가듯이, 무언가 재미있거나 흥미로운 것이 있으면 그냥 생각없이 했다.
신한카드 알바?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절대 해서는 안되는 알바였다.
아무생각 없이 어, 재밌겠다. 하고 했다. 예상보다 돈은 좀 많이 줬다.
그리곤 어이가 없을정도로 계획이 없던 여행도 갔다. 예전에는 여행을 계획짜서 다녔는데 이젠 또 아니다.
그 외에도 잘잘하게 별짓을 다한다.
밤새 따릉이를 타지않나, 툭하면 차를끌고 남한산성에서 와인딩을 하질않나, 그러다 친구가 차를 꼴아박아서 에어백 터지는 구경도 하고 별 병신짓을 다한다.
와중에 다른이의 불행을 내 행복회로에서 태워주는일도 많이 했다. 나는 내 불행함은 느끼지 못하니까. 공감은 하되 타격은 없었다.
그러다 지난달에 우리집 강아지 깜별이가 죽었다.
나는 그때, 정말 오랜만에, 슬프고 불행해졌다. 그런데 그 불행을 표현할 방법을 잊어버렸다.
그 이후로 불행회로가 다시 움직이는 탓일까? 나는 어딘가 벽을 쌓고 있다. 그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벽의 존재를 잊기 위해 계속 밤을 새고 게임이나 하고있다. 생산적인 활동은 벽 뒤에 있다.
미리 약속해둬서 갔던 촬영알바는 너무 힘들었다. 내 다리와 허리는 아직 나아지지 않았다. 그것이 느껴지는걸 받아들이는게 더 힘들다.
그저 집중하면 되기에 다른걸 잊을 수 있는 운전도 이제 허리가 아파서 힘들다. 참 좋아하는데.
오늘도 잠은 자지 못했다. 군병원에 입원한 내내 불면증에 시달려 졸피뎀을 꾸준히 먹었다. 졸피뎀은 먹는다고 바로 잠이들지 않는다. 30분정도 시간이 걸린다. 복용한지 세달 쯤 되면 그 30분이 다음날 아침에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30분 동안 점점 이상한 일을 하게 된다. 그것이 너무도 소름끼쳐서 나는 다시 수면제를 처방 받을 생각이 없다.
그리고 난 지금의 우울을 표현할 수 없다. 이런 글을 싸지르고 있는 지금도 정확히 왜 우울한지 서술할 수가 없다.
그냥 어디 쌓아둔다. 뭔지도 모르고 쌓아둔다. 후쿠시마의 방사능 폐기물 마냥 어딘가 쌓아두고 있다. 먹어서 응원한다. 병신같지만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멀쩡하지 않은 것 같다. 멀쩡해 보이는데도. 그리고 이유없이 우울한거 같다. 우울하지 않아 보이는데도.
그리고 계속 멀쩡하고 우울하지 않아보일 예정이다.
그렇다고 한다 내 진심이.
1 note · View note
livelongndprosper · 7 years ago
Text
180511.FRI
제주도 여행 3일차. (너무 오래걸려서 압축해서 써야겠다)
아침에 일어나니 스위스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고작 만원짜리 숙소이었기 때문에 시설의 비루함을 마냥 욕하고 있었는데, 이동네 비주얼은 상당히 이뻤다.ㅎ
같은방 사람들이 전날 술을 같이 마시던 분들과 한 차량을 타고 나간뒤, 10시를 조금 넘긴 즈음 희주 누나와 미정이가 나타났다.
오늘도 맑은 하늘과 싱그러운 햇살이(더울 지경이었다) 넘치는 행복한 날씨에 너무도 감사하며 밥을 먹으러 함덕의 무거버거로 출발했다.
11시 오픈인 버거집인데도 가니 사람이 많았다. 신기한 3가지 메뉴를 하나씩 시킨 뒤, (당근,시금치,갈릭 버거라니..와우) 강원도의 바다열차마냥 오션뷰를 향해 경사진 특이한 2층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먹었던 당근버거는 빵이 주황색이었다.(시금치는 연두..갈릭은 하양...귀여뭥...) 안에 볶은듯이 튀긴 당근이 들어있었는데, 사실 패티맛이 제일 맛있어서 시금치도 맛있었다구 한다. 그리고 프렌치 프라이가 한통씩 많이도 나오고, 무엇보다 밀크쉐이크가 기가막혔다. 진짜 아이스크림으로 만든 진하다 못해 쫀듯한 쉐이크였다. 맥도날드는 진짜 반성해야한다.
배가 부르고, 곧이어 렌트 카니발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가족단위 손놈들이 들어오기 시작할 때 즈음, 우리는 오늘의 메인 목적지 우도로 출발했다.
 우도로 가기 위해서는 성산항의 여객 터-미날에서 배를 타고 가야 한다. 그 배들은 대부분 카페리였는데 사이즈는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 균일한 노선과 요금을 적용하여 운영하구 있었다.
우리의 인적사항을 적은 종이와 신분증, 그리고 돈을 주면 왕복 표를 살 수있다. 인적사항 덕분에 권미정의 생일 10월 31일과 전희주 누나의 성함을 다시금 깨닫고 (분명 전날에도 기억했는데 이걸 쓰려니까 잠깐 까먹어서 당황했다.. 옆에서 누나가 말해줘서 알고있던 척 했다.. 고마워요 ㅠ)
잠시 남은 배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차에 가서 모자를 챙겨온 뒤에 (모자 안챙겼으면 고통받을 뻔 했다. 그와중에 셀카봉 놓고옴. 나도 음료수 놓고옴.) 배를 타고 우도로 향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조금 만끽할 즈음 되니까 벌써 우도에 도착하여 있었다. (배에서 희주누나를 슬로우 모션으로 찍은게 있는데 레드벨벳 예리에 넘모 가깝게 나와서 그때부터 이 누나는 레드벨벳 예리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도에서 볼 첫번째 풍경으로 기대한 것은 자그마한 건물들과 시골길 같은 해안도로, 아름답고 한적한 자연 그 자체였는데, 내리자마자 전기자동차(3인승) 호객행위를 당했다.
이곳이 호객지옥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은 터지고 업체는 많고 정신은 없고 난리였다. 그냥 시정잡배들을 피해피해 아무데나 들어간 뒤에 전기자전거를 빌렸다. (팻바이크는 2마넌인데 우리는 그냥 마실용 자전거에 전기ASSIST가 들어간 만 오처넌 짜리로 선택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헬멧도 하나씩 주었는데 곧 바구니에 얌전히 들어갔다.)
+tobecontinued
1 note · View note
livelongndprosper · 7 years ago
Text
180510. THU
제주도 여행 2일차 일기. [ TMI 주의 ]
Tumblr media
전날 분명 새벽까지 놀았는데, 아침 8시 30분에 눈이 번쩍 뜨였다. (전날 밤 자기 전에 앞 마당에 대놓은 차를 좀 떨어진 주차장에 옮겼었다. 안그랬으면 안쪽 집 어르신한테 누가 여따가 차를 댔냐! 고 한소리 들었을 뻔 했다.)
일어나니깐 전날 밤 술파티를 벌리신 게스트분들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침일찍 일어나 완벽히 착장을 하시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분명히 술을 검나 많이 드시고 들어왔는데 다들 멀쩡했다. 그 중 자기집 안방처럼 계시던 여자분들이 완전 변신하여 계셔서 처음에는 저게 누군지 못알아 보았다. 세분이 모두 동네친구분들이셨는데 기가 참 세서 무서웠다. )
허기져서 코코볼을 한사발 한 뒤 9시가 넘어가자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가고, 다시금 조용한 적막함이 게스트 하우스를 감싸왔다.
Tumblr media
권미정과 스탭 누나들은 이미 제주에서의 라이프 사이클에 적응한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 오전 10시 이전에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사실 권미정은 서울에서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분들을 마냥 기다리기에는 넘나 심심해서 게하 앞 맘스터치에 싸이버거를 사러 가신다던 사장님을 따라 심심함을 날리려 모처럼 밖으로 나갔다. (맘스터치는 닫혀있었고 나간김에 바다구경이나 갔다.)
그런데 어머나! 날씨가 어제의 우중충한 하늘과는 다르게 너무도 샤방샤방했고 협재 바다의 색깔이 마치 이곳이 하와이인가 발리인가 싶을 정도로 푸르다 못해 맑게 빛나는 연한 민트빛을 띄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설레어서 호에에-- 원래 제주가 이롷게 예쁜가 싶어 사장님을 보았는데, 그분은 이미 신나서 슬리퍼를 벗어던지고 얕은 바닷물로 뛰어가고 계셨다. (사장님이 제주도 토박이라고 들어서 사실 - 아유, 제주바다가 항상 예쁘쥬 뭘 이정도 가지고..허허.. 처음 보는 분들이 유난이시죠..ㅎㅎ.. - 정도의 리액션을 기대했다.) 그걸 보고 이 날씨는 로컬분이 봐도 예사 날씨가 아니라는 것을 추측했다.
돌아와 보니 같이 여행할 두분이 깨어나 있었고, 같이 대충 토스트를 구워먹고, 마당의 댕댕이를 귀여워 하면서 (키우는 강아지가 아닌 옆집 강아지다.) 조심스럽게 권미정이 사람이 되는걸 기다렸다. (아침에 보는 권미정은 매일 얼굴의 부피와 형태가 다르다.)
모두들 준비하고 짐을 챙겨서 차에 싣고 나서 어차피 내일 또 보겠네! 라는 사장님의 말을 뒤로 한채, 이 무분별하고 엄청난 여행의 시작점을 찍었다. (스탭인 희주누나를 데려다 주어야 하는것 이외에도 화제의 인물 권미정양이 무신사 스토어에서 제주도 임에도 무!료!배!송!을 해주는 옷을 이 게하로 시켜 놓았기 때문에 그냥 다시 돌아오기로 하였다. 택배빌런. 이때에도 디네버댓 박스만 3개가 자동차 트렁크에 실려있었다.)
첫 번째 목적지인 중문의 카트 체험장에 당도하기 위해서 일단 차를 몰았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바다쪽을 보면 볼수록 너무나 예쁜 바람에 해안 도로쪽으로 차를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우회전으로 차를 바다로 향한 순간, 너무나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바다의 색이 풍부하게 묻어나오는 한 항구와 비슷한 바닷가가 눈에 들어와서 그냥 차를 세우고 구경을 하기로 하였다. (우연하게 갔던 이곳은 며칠 뒤에야 다시 우연히 지나가다 보고서 이름이 판포포구 인 것을 알게 되었다.)
Tumblr media
하얀 우유빛 모래바닥이 하늘색의 투명한 바닷물에 투과되어 너무나도 아름답고 영롱한 색을 뽐내던 이 바닷가에서 여행자 3인방은 감탄하면서 사진을 찍어대기 바빴다. 서로 찍고 찍히는 관계가 되어서 끊임없이 찰칵찰칵 대었는데, 이곳에서만 사진을 몇장이나 찍었는지 모르겠다. (그 이후에도 가는 곳 마다 사진을 미친듯이 찍었다.)
권미정은 약간 피사체가 되면 발생하는 울렁증이 있는데 (그 특유의 어색한 웃음과 알 수 없는 포즈가 있다. 본인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알면 미안 ㅎ) 희주누나는 이분 뭐하다 오신 분인가 싶을 정도로 (건축학과 출신) 2초마다 계속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포즈를 취하셨기 때문에 누나가 나보고 사진좀 찍어 달라고 할 때에 내가 할 일은 그저 미리 누나가 지정해준 구도에서 (여기서 이렇게 다리 길게 나오게 알지?) 인간 삼각대와 인터벌 셔터 역할만 해주면 되었기 때문에 클라이언트를 보다 쉽고 빠르게 만족시켜 드릴 수 있어서 매우 기뻤습니다.
(깔끔한 시선처리와 포즈의 다양함에 깊은 감명을 받은 나는 그 후부터 많은 것을 배워서 사진에 찍힐 때에 보다 다양한 몸짓을 구사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마다 받은것은 ㅋㅋ쟤미쳤당ㅎ 정도의 시선이었다. 패완얼. 사완모. )
민트우윳빛깔 바다 앞에 완벽 탈색모 권미정이 서있으니까 미정이가 외국인 같고 여기 완전 해외여행 온거 같다던 누나의말에 동감하면서 여행 첫날에 즉흥적으로 들른 곳 마저 이렇게 예쁜데 앞으로 갈 곳은 얼마나 더 좋을까 하는 기대감에 젹셔들었다.
Tumblr media
(미정이가 필름카메라를 목에 걸고 나랑 누나가 앉아있는 사진을 찍겠다고 도도도도 뛰어가는 모습이 마치 바닷가에 놀러와 신이 난 외국인 여자아이마냥 귀엽다고 희주 누나랑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렇게 반짝이는 바다를 뒤로 하고, 하얗게 빛나는 풍력 발전기가 돌아가는 제주 바다를 구경하며 우리는 서귀포시 관광산업의 메카인 중문의 얼라이브카트로 향했습니다. (박물관이 살아있다! 라는 테마파크에 붙어있어서 Alive카트 이다. 종합비타민 Alive! 가 생각났는데 드립은 안쳤다. ㅠ )
작고 귀엽고 복잡하고 방지턱이 많은 도로들을 지나고 나서 주차장으로 들어서는데 거대한 버스들이 병풍처럼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버스 전광판에 ‘가오고 X호차’ 라고 쓰여 있는것을 보고 돈은 없을지언정 가오가 없지는 않은 친구들이 많겠구나 하였는데, 왠걸! 단체손님 때문에 지금은 카트를 탈 수 없다는 무심하고 시크하며 불친절의 경계에 서 있는 직원의 말에 우리는 슈발슈발 거리며 그저 다시 차를 타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여권 발급해주는 공무원보다 약 34%정도 더 불친절함이 느껴졌다.)
Tumblr media
급작스럽게 여행일정이 비틀려 꼬여서 우리는 일단 배를 채우기로 했다. 두루치기가 땡긴다는 미정이의 말과 함께 그녀가 추천한 서귀포에 있다는 ‘제주부싯돌’ 이라는 식당으로 향했다.
서귀포 구시가지 한가운데 있는 식당이라서 주차가 까다로울 것 같아 주변의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식당을 찾아 나섰다. 날씨가 넘나릐 좋아서 룰루랄라 하며 식당을 찾는 권미정을 따라갔다. (이때 권미정은 렌즈를 안끼고 있었는데 그것을 모르고 그저 따라갔다. 신기하게도 식당은 제대로 찾았다.)
오리 두루치기를 주문하자 넓은 팬에 고기와 수북한 부추와 콩나물이 올라간 것이 나왔다. 처음에는 양이 너무 많아보였는데 야채의 숨이 죽고 나서는 그냥 많아서 배 터지게 먹었다. (식당 아주머니가 볶아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방심하다가 조금 태워먹을 뻔 했다.)
밥을 먹은 후에 계산하는데, 식당 아주머니가 권미정의 탈색 머리를 보시곤 아유 우리딸도 서른 넘기전에 한번 탈색한다구 난리여난리~ 라고 하셔서 권미정이 꼭 하시라고 전해주세요~ 라구 대답했다. 흥겨웠다.
(옆옆자리에 앉은 한 부부로 보이는 분들이 어디에 계속 통화중이었는다. 신경쓰지 않고 있었는데 “확인서 팩스로 보내주면 다시 사용 가능 하죠?” 라는 말이 들리는 바람에 아 카드 연체 관련해서 상담원이랑 통화중이었구나 하고 생각되어서 그 후로 좀 신경쓰였다. 너무 유난이라고 생각해 따로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그냥 기억에 남았다.)
서귀포에 온 김에 천지연 폭포 주변에 있는 새섬을 들렀다 가기로 하였다. 서귀포잠수함 앞에있는 버즈 알 아랍이 생각나는 새연교를 건너가면 조용하고 산책로만이 꾸며져 있는 새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자연을 느끼며 산책만 해도 왠지 신이나던 우리는 이렇게 여행 코드가 잘 맞아서 다행이야- 하며 사진을 찰칵찰칵 찍으면서 눈누난나 돌아다녔다.
섬에 소나무가 꽤 있어서 길바닥에 솔방울이 하나 둘 떨어져 있었는데, 그것을 차고 다니는게 뭐라고 너무나 재미있었다. (처음엔 가볍게 차다가 나중엔 목숨걸고 차고댕겼다. 차다가 주변 돌까지 빵빵 차고 다녔다. 마치 남미 축구의 메카 리우데자네이루의 7세 꼬꼬마 아이들에게 축구공을 던져준 듯한 장면이 떠오를 정도로 해맑은 표정과 함께 솔방울을 차고 다녔다.)
Tumblr media
관광객으로 북적이던 새섬을 빠져나와서 우리는 다시금 카트를 타고싶다는 열망에 얼라이브 카트로 다시 향했다. 동선에서 살짝 손해를 보았지만, 그래도 카트는 재미있으니까 괜찮다.
한 30분 정도 대기한다고 하여 이디야커피를 홀짝이고 있는데, (뒤늦은 벚꽃라떼 맛없당) 15분쯤 지났을까, 카트를 탑승한다고 해서 급하게 마시고 카트를 타러 갔다. (그럴거면 15분 걸린다고 하던가 쉬불,,,,ㅎ)
대충 머리에 맞는 헬멧을 쓰고(크레용팝 느낌의 헬멧) 카트가 있는 곳으로 갔다. 인스트럭터가 사고나면 님들탓을 강조하며 조작법을 알려주었다. 왼페달은 브레이크 오른페달은 엑셀레이터이고 후진은 없다. (운전자의 로망 양발운전을 실현해서 좋았다. 근데 더 불편했다. 빠꾸없는 카트.)
엔진을 켜고 구앙구앙대면서 카트를 타기 시작했는데, 그냥 앞사람 쫓아가면서 얌전히 타고 있다가 나보다 앞에 가던 권미정이 한바퀴 돌아 내 뒤에서 추월해 앞으로 나가는걸 보고 2종오토 쫀심에 불이붙어서 본격적으로 달려나갔다.
(권미정은 그 뒤에도 2바퀴나 날 따라잡았다. 약간 제정신 아닌 속도로 카트를 몰았다. 내리고 나서 신나하며 본인은 나중에 운전 잘할거 같다던 권미정의 말에, 내가 조수석에 앉아있는 상상을 잠시 했는데 아찔했다.)
덜덜거리는 카트탓에 손발이 찌릿찌릿 한 상태로 우리는 다음 목표인 섭지코지로 향했다.
예전부터 섭지코지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성산일출봉에서 보이는 해안선 저 반대편에 꼭 한번 가봐야지 했었는데 가지 못하다가 이번에 가게 되었다. 전날 계획을 짤 때, 예전에 섭지코지에 갔다가 휘몰아치는 바람에 그닥 볼건 없었다는 희주누나의 말에 기대는 반 정도만 하고 차를 몰았다.
하지만 6시가 넘어 석양의 붉은 빛으로 물들던 시간대에 우리는 해안절벽과 바다가 멋진 섭지코지에 도착했고 황금빛이 스며든 그 광경에 나는 황홀하게 빠져들었다.
Tumblr media
미정이의 귀엽고 조그마한 셀카봉 겸 삼각대로 세사람은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마구마구 찍었다. 앞모습, 뒷모습, 등등 컨셉잡고 찍는데 찍다가도 웃겨서 죽을뻔했다. 찍을때의 그 아름다운 풍경은 정말 역대급이었다. (나중에 보니 포즈가 제멋대로였지만 너무 좋았다. 잘나온 사진을 후에 게하 사장님이 프린트 해 주어서 휴대폰과 케이스 사이에 끼워넣어서 간직하고 있다.)
섭지코지의 끝자락에 위치한 지포라이터 박물관 겸 간지용 건축물을 찍고 통로를 통과하여 반대편으로 돌아서 나온 순간 나는 그때 마주했던 오름의 산자락으로 물들고 있는 석양과 아름답게 흩뿌려져 있는 구름들 사이로 뻗어나가는 붉은 태양의 광선, 그리고 보고도 믿기 힘든 한라산의 실루엣에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Tumblr media
비루한 폰카로는 이 장면을 제대로 담아낼수도 없었다. 이걸 보고있는 가운데 누가 옆에서 고백이라도 한다면 바로 백년해로도 가능할 듯한 장관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였지만 이곳에는 넓은 길과 몇몇 사람들만 있어서 분위기를 만끽하기엔 최고였따.)
이때 비로소 많은 노력을 들여 제주도에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이 시간과 장소, 함께하는 사람들과 쾌청한 날씨마저도 너무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
해가 작별을 고하고 저문 후에 우리는 배가 고파졌으므로 가까운 성산의 식당으로 향했다. 석양이 남아있는 주차장에서 인터넷을 뒤적거린 결과 ‘성산카베츠’ 라는 일식집이 선정되었다.
성산일출봉 바로 아래 있는 식당이었는데, 주차장부터 넓은게 마음에 들었다. 식당에 들어가니 생각보다 넓은데도 조용했고 한 귀여운 아이가 있던 한 가족만 손님으로 있었다. (저 아이는 돌아다니면서 우리를 유심히 쳐다보다고 웃고 그랬다.)
사케동과 돈까스, 그리고 딱새우 야끼소바를 시켜서 같이 먹었는데 상당히 만족스러운 맛 이었다. (식당에 사장님이 혼자 계셨는데 심야식당의 주인공 느낌이 났다. 야끼소바의 딱새우를 희주 누나가 발라서 나누어 주셨는데, 1월에 제주도에 놀러와 간장딱새우를 많이 까먹었던 기억에 딱새우가 껍데기를 까기 여간 성가신게 아닌걸 알아서 조금 황송할 정도로 감사했다 ㅠㅠ)
밥을 모두 먹었음에도 ‘매우만족’ 할 우리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빙수집을 찾았는데, 때마침 성산에 망고홀릭이라는 카페가 있어서 찾아가기로 하였다. 
아아 망고홀릭. 사람을 홀려버린듯한 그 알 수 없는 인테리어와, 설빙에 익숙해진 우리의 고정관념을 작살내버린 신선로 빙수란, 망고빙수 속의 알수없는 알갱이들은 우리를 넘나 즐겁게 해 주었다. (그 알갱이 속에 사실 가짜 연어알 같은 것도 있었는데 그렇다고 말하기엔 좀 그래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식사용 배와 디저트용 배를 모두 채운 우리는 그제서야 만족한 후에 숙소로 향할 수 있었다.
1만원의 행복인지 저주인지 모를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던 우리는, 해당 게스트 하우스가 공사중이라서 다른 숙소에 대신 머물러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해당 위치인 제주도 스위스 마을로 향했다.
이미 칠흙같이 어두워진 하늘과 가로등이 없는 산간도로의 콜라보로 어두운 도로를 하이빔을 켜며 달리던 도중, 정말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도로에 올라 섰을 때, 나와 우리는 모두 하늘을 수놓는 수많은 별을 보았고, 그 별들에게서 받은 감동은 아직도,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 같다. (군대에서도 도시의 불빛만 쳐다보았던 나인데, 별빛이 주는 그 아름다움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도착한 숙소는 아직 무언가 마감이 덜 끝나보이는 곳이었는데, 침대도 아니고 바닥에 얇은 매트리스를 깔고 자야한다는 사실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피곤한 몸을 늬었고 제주에서의 두번째 밤이 깊었다. (같은방 남자들은 밤새 술을 마시다가 들어와 아침에 재빨리 나갔다. 대단했다. 대한민국육군과 태극기가 박힌 출타용 가방을 들고 제주도에 온 분들이다. 허허.)
요약 1. 제주도에서는 10시 이전에 일어나지 않는것이 미덕. 2. 환상의 바다 3. 카트카트 4. 섭지코지의 감동 5. 망고홀릭의 감동 6. 별이 빛나는 밤
2 notes · View notes
livelongndprosper · 7 years ago
Text
180509. WED
제주도 여행 1일차 일기. [ TMI 주의 ]
전날 경원이와 동우와 함께 벨로스터1.4T 시승을 했었다. 밤새 남한산성에서 목숨을 건..와인딩을 한 탓일까 피곤하기도 했지만서도 기대감에 8시 반에 눈이 뜨였다. (덕분에 제주에서의 운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 후술)
오후 세시 반 비행기였으므로 천천히 준비했다. 또 전날 미정이와의 이야기 중 필름카메라 이야기가 나와서 시청역에 즐겨찾는 현상소에서 저렴한 후지 C200필름도 사왔다. (일전에 슬라이드 필름을 들고 가서 현상해 달라고 하니 - 내가 슬라이드 필름 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 당황하면서도 감사하게도 저렴하게 현상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적당히 밥을 먹고 한시에 여유롭게 캐리어를 끌고 출발했다.
사실 캐리어 무게만 10kg 즈음 되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는 저가 항공사가 수화물을 받아주지 않고 모두 핸드캐리해야만 하는 줄 알고 있었다. (이 오해는 집에 돌아올 때 권미정이 수화물을 맡기면서 풀렸다.) 그래서 핸드캐리용 치고 커다란 직물 캐리어에 짐을 쑤셔넣고 들들들들 끌고 가면서 백팩에 나머지 짐을 넣고 다녔다.
Tumblr media
역시 저가항공답게 ‘항공기 연결 관계로’ 적절한 지연을 먹고 기존 출발시간 5분전에 탑승을 시작했다. 청바지 입은 승무원들도 지연을 줄이려 급하게 난리친 덕분인지 탑승 15분만에 비행기가 움직였다 (LCC에서 일하는 것은 진짜 힘들어 보인다) 그렇게 쾌청하고 살짝 땀이 나는 날씨를 뒤로하고 제주로 향했다.
이륙 직전 내가 멜론을 켜본들 하늘에서는 스밍따위 안된다는걸 깨닫고 급하게 차트 15위까지 노래를 저장하고 반쯤 졸면서 또 반쯤 사진을 찍으며 제주도로 향했다. 물론 그 노래들을 다 듣기전에 비행기는 다시 땅바닥에 붙었다.
착륙때에 본 두터운 구름층과 생각보다 차가운 공기를 느끼며 아, 이거 날씨가 예상보다 좃됬는걸? 하면서 캐리어를 다시 끌고다녔다. 권미정이 6:30 까지 협재로 오면 수우동을 냠냠 할 수 있다고 했던지라 벌써 시간 목표가 생겨 마음이 급해졌다. (착륙시간 5:10)
3주전에 제주여행 계획 첫번째로 알아본 렌터카의 선택은 좋았다. 군소 업체보다 10만원가량 비싸기는 하지만 (그 10만원은 내 욕심항목으로 내가 더 냈다) 우주방어 완전자차 보험에 (차를 긁어도 반납할때 확인도 안한다) 기본빵은 하는 옵션을 믿고 우리의 친구 롯데렌터카를 선택했다. (롯데를 좋아하지 않지만 아버지가 잠시 일하셨어서 욕하면 경미한 탈룰라다)
귀욤한 8분배차 타요버스를 타고 렌터카 업체에 가서 번호표를 뽑았다. 타임어택 미션이 있는데 앞의 외국인 2그룹이 직원과 행복한 말씨름을 하며 나를 은근 개쫄리게 만들었다. (롯데 직원 영어 존나 잘하더라.)
그렇게 결국 5시 45분이 되어서나 차를 인수받고 (사실 며칠 전 카셰어링으로 해당차량 -신형K3- 를 타보았는데 그 차량보다 옵션이 안좋아서 쪼끔 실망했다. LFA/ADAS 는 어디에?ㅠ) 협재 수우동으로 네비를 찍으니 예상시간 1시간 20분이 떴다.
흠..이거 조옷된 각인걸? ㅎ 하며 퀘스트 의뢰 NPC한테 다시 연락하니 6:40까지 오면 봐준다고 했다. 너무 여유로워진 탓에 사이드 미러와 룸미러를 눈에 맞추고 출발할 수 있었다.
고지식한 기업문화를 보여주는 현대기아차의 순정 네비는 해안도로를 따라 가면 분명 제일 빠를거 같다며 나를 기만하고 있었다. 절대 안그럴 것 같아서 폰을 대충 충전기 연결하고 카카오맵 켜서 빠르지만 돌아가는 산간도로 쪽으로 차를 향했다.
시내를 빠져나가자 차가 다행히 거의 없었고 쭉쭉 뻗은 도로로 좀 많이 빠르게 차를 몰았다.
웃긴 것은 4차선 간선도로에는 카메라가 많아서 120km/h 넘게 달리기는 조금 무리였는데 협재방향으로 빠지는 2차선 굽이굽이 도로의 상태가 기가 막혔다. 차가 너무 없었고(다행히) 방지턱도 이상하게 없고(다른데는 존나많다) 시야도 탁 트여있어서 그냥 시골길을 150km/h 까지 밟으며 갔다. 전날 친구와의 하드 트레이닝 도움이 빛을 발했다. (사실 절대 하면 안되는 미친짓이다. 앞으로 평생 2차선 도로에서  이런 속도로 달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신차여서 다행이다. - 신형 K3의 주행력은 탁월하다. 상당히 스포티한 세팅이다 - 여행 첫날의 기억은 이 제정신 아닌 드라이빙이 메인이다. 이때 벌써 여행 중 운전으로 하는 또라이짓 한계치를 넘어서 남은 일주일간은 그냥 안전운전과 승차감 위주로 운전했다.)
예상시간은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고 적절하게 6:30에 수우동 주차장에 주차를 마치고 오히려 내가 일행을 기다렸다.
기다리고 있으니 한달 만에 보는 요주의 인물 권미정과 그녀의 친구이자 룸메이트 슬기가 걸어왔다. 그 슬기라는 친구는 처음 보았지만 성격이 좋아서 밥 먹을 때에도 불편하지 않고 재미있었다.(집에 가기 전에 한번은 더 볼 줄 알았다.)
그리고 좀 더 기다리니 권미정이 클럽에서 처음 만났다는  희주누나라는 분이 와서 넷이 메뉴 통일하여 냉자작우동을 먹었다. (이때 저 누나는 슬기라는 친구보다는 말을 걸기 어려웠다. 집에 가기전에 딱히 더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식감은 뛰어났지만 먹다보니 질리는 맛의 자작우동을 깨부시고 4명이 파한뒤에 문제의 인물 권미정의 짐과 옷이든 박스 그리고 옷이 들어있는 박스와 옷이 담겨있던 박스를 트렁크에 싣고 (원래 권미정이 있던 곳은 정말 대중교통의 도움을 받지 못하던 시골이었다. 이 곳에서 생활했던 분들에게 존경심이 들었다.) 어두죽죽해진 제주도의 하늘과 함께 협재의 몸냥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Tumblr media
도착해서는 ‘몸냥’ 이라고 쓰인 간판의 퀄리티에 감탄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예상보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놀라서 원래 이런건지 물어보려고 권미정을 보니까 더 놀라하고 있었다. 대략 사장님으로 보이는 시끄러운 남자분과 (그냥 게스트였다.) 게스트로 보이는 비교적 조용하던 남자분, (사장님이었다.) 스탭으로 보이는 활달하고 내집 안방처럼 편해보이던 여성분들(그냥 게스트였다) 그리고 아까 보았던 희주누나와 스탭이던 지현 누나가 있었다. (더 있었던거 같은데 기억나지 않는다.)
그제서야 희주누나를 보고 아, 아까 그분이 여기서 일하시는구나 하고 깨닫고 권미정이 카톡자판이 마르고 닳도록 이야기하던 ‘그 누나’ 라는걸 깨달았다. (이때는 이분을 하루이틀 정도는 더 보겠구나 싶었다.)
모두들 거실 바닥에서 술을 드시며 흡사 대학 MT같은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권미정이 분명히 사람 적고 조용한 분위기에 스탭이랑 놀면 재미있다고 했다) 쭈구리가 된 권미정이랑 이걸 당최 끼어 말어 고민하다가, 대충 구면인 희주누나와 구석에 앉아 사람들과 말이나 붙였다. (범상치 않은 사람들이라 여차하면 차타고 아무대나 튈 요량으로 술을 안마셨다. 나중에 희주누나가 내가 원래 술을 안마시는 사람인줄 알았다고 했다.)
그래도 시끄러운 분들이 별로 우리에게 신경을 크게 쓰지는 않아서 부엌의 식탁으로 옮겨 희주 누나와 함께 목/금의 여행 계획을 세웠다. (3,4일 전에 권미정이 갑자기 둘째날에 ‘그 누나’ 랑 같이 여행하면 어떨까 하고 제안했다. 별 생각 없이 OK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시에 이름도 얼굴도 몰랐다. 심지어 처음 만났을때 이분이 그분인지도 몰랐다. 내가 듣고도 몰랐던건지 권미정의 설명이 부실부실 했던건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딘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것 같은 희주누나의 제주도 지도와 함께 뭔가 절대적이고 필수불가결한 목표인 우도 방문을 포함한 여행 계획을 세웠다. 우도가 제주도 서쪽인 협재의 대척점인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당일치기는 무리라고 생각해서 1박2일 일정으로 잡았다.
사실상 무계획으로 대충 다닐 예정이어서 여행일정이 감이 오지 않았는데 희주 누나가 다행히 나머지 두명보다 논리적이고 정리를 잘해주셔서 (미정이에게 미안하지만 이 누나의 계획력 덕분에 갈 수 있던 곳이 꽤 많았다.) 수월하게 중문카트-서귀포-섭지코지-북동쪽 숙소 1박-우도 큰그림을 완성하고 기대감에 부풀어 있기로 했다.
다행히 초면인데도 희주누나가 성격이 좋아서 여행 계획을 짜고 같이 다니는데도 어색함이 없었다. 정말 다행이고 감사하다. 여행하는데 불편하면 그건 여행이 아니다. 권미정의 사람 보는 안목에도 감탄을 표한다.
그 사이 시끌시끌 하던 MT오신 분들은 술집으로 2차를 나가서 게하가 순식간에 조용하고 공허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갑자기 조용해진 탓에 겁나 심심하던 나를 발견한 지현 누나가 (이때는 이누나 이름도 몰랐다.) 스탭 방으로 초대해 주어서 같이 떠들며 뜻밖의 운동을 하고 (권미정이 자신과 지키는 약속이라고 하며 밤마다 한다던 기기묘묘한 맨몸운동을 강제로 따라했다. 진짜 힘들었다. 권미정은 이미 스탭 누나들과 친해질 대로 친해져서 그냥 스탭방에서 지냈다.) 마피아42 앱으로 정치질 게임을 하며 졸려서 자기 직전까지 놀았다. (이때 지현 누나가 잠옷으로 들고간 h&m 초밥무늬 반바지를 가지고 너무 웃어서 그 이후로 스시바지빌런이 되었다. 마피아42 닉네임도 초밥바지 로 했다. 이 바지가 병맛템인지 처음 알았다.)
밤사이 누나들과 많이 친해져서 이후 여행 내내 재미있게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새벽까지 정신없이 난리치다가 피곤해 잠이 들었고, 알 수 없는 분위기의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첫 날이 저물었다. (이때는 이 게스트 하우스 에서의 마지막 날인줄 알았다.)
요약. 1. 도착하자마자 GTA식 운전 2. 수우동 맛 랜덤 3. 초밥바지
끝. 
Tumblr media
1 note · View note
livelongndprosper · 7 years ago
Text
180500.
시간만이 속절없이 흘러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2년전 입대를 했었고, 입대하고 얼마 되지 않아 다리를 못쓰게 되었죠. 1년 넘게 계속되었던 기약없는 치료와 함께 근거없는 빈약한 희망이라는 동아줄을 잡은채 지냈습니다.
못쓰는 한쪽 다리를 지팡이에 의지한채 군대에 갇혀지낼 때에는 인간관계를 정리해 나가고 있었어요. 그 관계를 유지하다가는 안좋은 처지의 저에게는 동정과 걱정만이 자리잡을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작년 11월만 해도 다시는 지팡이 없이 걸어다닐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평생 어떻게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해결없는 걱정만이 덮쳐왔죠. 그때에 받았던 안타까운 영혼을 바라보는 표정들은 아직도, 아니 평생 잊혀지지 않을겁니다.
회색빛 죽음만이 앞길이라고 생각하다가 일단 의사의 추천으로 작년 말 이른 전역을 통해 상황변화를 이끌어 낸 후에는 정말 다행이도, 하늘의 도움인지, 꿈쩍 않던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서 지금은 아무 일 없던 정상인처럼 지내고 있답니다.
하루 아침에 팍!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제의 나 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기뻤고, 장기간 고통을 주던 정신적 약물과도 이별을 고하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스쿼트나 달리기를 씽씽 할 만큼 멀쩡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사람답게 살아간다는 것,  멀쩡한 신체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고 기회이며 이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좋아지던 과정에서 많은 힘을 주었던 가족들과 환자가 아닌 그저 군대 꿀빨러로 전과 같이 대해주었던 친구들, 주변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소중한 사람들의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마움과 억만금을 주고도 얻을 수 없는 가치를 너무나도 절실하게 느꼈답니다.
군대 내 규정과 행정처리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김효진 중대장님, 몸이 불편한 전우를 불평없이 너무나 고맙게도 도와주었��� 동기 우석이, 일웅이, 태현이, 지한이, 대한이. 선임같지 않던 나를 귀엽게도 따라주던 다원이, 덕현이, 유성이, 건우. 분대장으로써 나까지 책임지시고 너무도 많은 도움을 주셨던 서재훈님. 부산국군병원에 갈때마다 날 알아보시고  따뜻한 말과 격려를 주셨던 김민희 간호장교님.
병원에 있던 나를 힘들게도 자주 찾아와 주고 본인들도 군대 관련해서 일이 많았을 텐데도 계속 연락하면서 힘을 너무도 많이 주면서 다시금 소중함을 느꼈던 최고의 친구들인 경원이와 지호, 그리고 동우.
잦은 연락과 응원을 보내주던 수많은 대학교 사람들, 그 중 병원까지 굳이 찾아와 면회를 왔던 수희누나, 재준이, 정빈이형. 계속 편지와 전화로 번거로울 텐데도 연락해 주었던 영찬이와 홍석이, 재학이형, 팽누나와 소은누나. 그리고 2년간 좀처럼 느끼지 못했던 행복이란 감정을 다시 느끼게 해 준 미정이 까지.
그 감사함을 갚아나가며 살아가는게 다시 움직이게 된 다리에 대한 대가이자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너무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1 note · View note
livelongndprosper · 9 years ago
Text
160407.
언덕 밑 정동길에 남아있는 작은 교회당에 가고싶다.
언젠가는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갈 테지만.
0 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