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atic1784

[lunatic1784]

어제 아침엔 피시방 면접을 봤다. 집에서 이십여분 걸

어가서 엘레베이터에 타고 사층을 눌렀다. 피시방의 여사장은 작은 냉동고의 성에를 제거하고 있었다. 나

는 물었다.

"면접 보러 왔는데요. 사장님 계신가요?"

여사장은 전데요, 하고 차갑게 대답했다. 성에를 헤라

로 긁어내다가 자리로 안내했다. 여사장이 이런 저런

업무에 대해서 사무적이게 늘어놓는 동안 나는 여자를

관찰했다. 손가락에 한문으로 '왕'이 새겨져 있었다. 마

치 채용할 것처럼 자세히 업무를 설명했다. 짙은 아이

라인과 마스크 위로 보이는 다소 투박해보이는 얼굴의

선, 끔찍하게도 가기 싫었던 면접에서 의���에 앉아있

으니까 마치 나의 삶에 형태가 생기는 것 같았다. 조금

덜 불안하였고,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사치스러운 날들을 보내면서 쉬었다. 도래한 책임에

덜컥 겁이난다. 이대로 죽어버릴까, 생각해본다. 그런

겁 많고 무력한 생각을 하면서 구인구직 사이트를 뒤

적거리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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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피시방은 고즈넉하면서도 음음하다. 집에 인터넷이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찾는다. 서점에 가는 길 바닥이 노랑으로 가득하다. 얼마간 불었던 비바람 때문이다. 나무 위를 올려다보니 가지마다 얼마남지 않은 잎이 퍽 휑뎅그렁하다. 돌아보니 인천으로 오고나서 하늘을 보는 일이 여간 없었다. 인천은 특색 없는 도시다.너른 벌판에 시멘트를 냅다 부운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하늘도 매일 다를 게 없이 느껴진다. 걸어걸어 서점에 도착했다. 명리학에 관한 책을 사려했다. 형은 관상에 관한 책을 서서 펼쳐보았다. 책 속의 관상을 나타낸 그림이 너무 과장되어서 낄끽거렸다. 명리학 코너의 뒤쪽은 악기, 미술, 영화에 관련된 책이 진열돼있다. 그림과 관련된 책들을 하나씩 꺼내서 펼쳐보는 여자를 보니까 여자친구가 생각났다. 얼마 전 나는 여자친구에게  스케치북을 택배로 붙였다. 내가 좋아하는 이모티콘 인형과 4B 연필도 같이 보냈다. 나는 여자친구에게 그림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하나는 사실을 그리는 것, 다른 하나는 형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그리는 것. 나는 여자친구가 사실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자유롭게 그리고 싶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처럼 그리고 싶어한다. 그것이 더 타인을 설득하기 쉽고 안전하니까. 나는 여자친구에게 그럼 생각을 많이 해야한다고 일러주었다. 형태가 분방한 그림에는 그럴듯한 의미하 필요하다고 생각해서다. 

이틀간 맹렬하게 쏟아진 비에 제법 날이 춥다. 나는 형과 맥주를 마시러 호프집으로 갔다. 소세지와 감자와 치즈가 섞인 안주와 맥주를 마시는데 형은 꽤 긴 시간 창 밖을 내려다보았다. 얼마전에 모든 말은 오독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많은 낯선 풍경에 너무 많은 의미가 있다. 그건 사물에 대한 오독이다. 우리가 그것을 명하는, 모든 것이. 여자친구도 이따금 그런 침묵을 내게 들키곤 한다. 내가침대에 몸을 누이고 잠을 자고 일어나면 여자친구는 의자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 불이꺼진 방 안에서 골똘히 침묵하는 여자친구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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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찬 비가 내리는 새벽이었다. 베란다의 창문을 닫고 담배를 어디서 피워야 할지 망설였다. 결국, 우산을 들

고 밖으로 나갔다.

형이 본가에 들린 날에 기타를 치는 노숙인을 보았다

고 한다. 그 노숙인의 바구니에 이천원을 넣었는데, 바

구니에 생각보다 돈이 많았다고 했다. 넣지 말껄, 하는

말을 농담삼아 했다. 2017년의 여름이 생각난다. 생계

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졌던 해다. 나는 불안했다.

삶이란 모험보다는 도박에 가까웠고, 내가 가는 길엔

덤불과 자갈 투성이었다. 스물 다섯의 우매한 청년은

모든 것에 예민하게 감응하여서 늘 위축돼 있었다. 새

벽에 일어나 통기타를 만지면서 이 다음에 내가 거리

로 몰리는 신세가 되면 이걸로 구걸을 해야겠다는 비

현실적인 생각을 하곤 했다. 그 후로 삼 년의 시간이 지

났고 지금 내가 사는 반지하 원룸에는 빨간색 전기기

타가 벽에 기대어 있다. 형의 말을 듣고, 여전히 위태

롭게 간신히 하루를 살아내는 나는 기타를 집어들고

얼마간 뚱땅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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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다. 늦가을인가, 초겨울인가. 통화를 하면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 했다. 겨울이라고 하기엔 싱거운 바람이 분다. 얼마전에는 은행나무에서 은행이 떨어지더니, 이젠 나무의 잎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초겨울이라고 하기엔, 가로수의 잎들이 아직 미련이 많아 보인다. 

나는 주기적으로 정신과에 들러서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처방받는다. 의사와의 면담은 빠르게 이뤄진다. 상황과는 관계없이 나는 잘 지내고 있다 말한다. 그럼 의사는 늘 먹는 약을 처방해주는 것이다. 나는 뭔가에 회의적이고 낙담한 상태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피로가 나를 아득한 잠으로 이끈다. 아무튼 나는 우울증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일일히 나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에 그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별과 달로 천장을 비추는 무드등을 샀다. 만 원이 조금 넘는 제품이다. 어저께 배송이 도착한 그것의 포장을 뜯고 침대 머리맡에 올려두었다. 사진에서 보았던 별과 달은 천장에 비춰지지 않고 희미하게 비추는 것에 낙담했다. 오늘 아침 깨어나서 베란다로 나가 담배를 태우고 방 안을 서성이다가 조명이 떨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뚜껑이 벗겨져 있었는데, 다시 켜보니 사방이 온통 별이다. 삐걱 삐걱 소리를 내며 회전하는 그 무드등의 소리가 신경에 거슬리면서도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