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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otree ·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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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끝내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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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는 건 끔찍하다 개가 얼굴을 핧든 말든 아내가 있든 아내 형상의 외로움만 기다리고 있든 집에 오는 건 끔찍하게 외��다 그렇기에 조금 전까지 머문 곳의 억압적인 기압을 애틋한 마음으로 떠올린다 집에 오면 모든 게 더 나빠지니까 풀 줄기에 달라���은 해충을 생각한다 도로에서의 오랜 시간 길가 차량지원, 아이스크림 어떤 구름의 특이한 모양 돌아오고 싶지 않았기에 그리움으로 침묵한다
집에오는 건 너무 지독하다 가정식 침묵과 구름은 단지 전시 권태에만 기여한다 그런 구름은 사실 수상쩍다 네가 두고 간 것과는 다른 재료로 만들어졌다 너 자신도 다른 흐린 천에서 잘려졌고 돌아왔고 싸게 처분됐고 달빛을 못 받았고 돌아오는 게 불행했고 엉뚱한 곳들에서 태만했다 솔기 있는 정장은 행주처럼 추레하고 낡았다
집으로 돌아온다 달에 착륙하듯 낯설게 지구의 중력 두 배가 된 노력 구두끈을 질질 끌고 어깨를 당기며 걱정의 스탠자를 이마에 더 깊이 새긴다 어둠이 깔린 집으로 돌아온다 메마른 우물은 연약한 가닥에 의해 내일로 이어진다 어쨌든 같은 날들의 맹공격에 한숨 쉰다 한 번에 하나씩이면 좋겠다
그래 어쨌든, 넌 돌아왔다 해는 지친 창녀처럼 오르락내리락하고 날씨는 부러진 사지처럼 미동이 없는데 넌 계속해서 늙어가지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지만 네 몸속 소금의 조수만 움직인다 네 시야는 흐리다 넌 네 날씨를 지니고 다닌다 커다란 대왕고래, 골격의 어둠 넌 돌아온다 투시력을 가지고 네 눈은 갈망이 되었다 넌 돌연변이 선물을 들고 집으로 온다 뼈의 집으로 지금 네가 보는 건 전부 뼈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초반부 루시가 읽는 자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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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otree · 7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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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환 : 숲의 주인들 20
새벽에 솥불미가 찾아왔다. 솥불미는 대부분의 이야기를 강당장에게서 들어 알고 있다고 했다. 내가 우리집에 누워 있으며 어떻게 그 많은 곳을 오고 갔었는지는 설명하기 어렵다며 잘 돌아왔으니 됐다고 했다. 사실 듣는다고 이해할 자신도 없었다. 솥불미는 이끼들이 날 데려가려 한다는 것을 모호숲에서 만난 까마귀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이끼들이 네 친구에게 가는 길을 하나 찾아냈다. 조만간 데리러 갈꺼다”
이게 솥불미가 들은 이야기의 전부였다. 까마귀가 왜 나를 도와주려 했는진 알 수 없다고 했다.
“몰라, 평소에 걔네들이랑 친하지도 않은데, 그냥 갑자기 알려주고 싶었나 보지… 심심해서? 어쨓든 강당장이 널 구했어. 막판에 널 잃어버렸다고 막 촐싹대며 걱정을 했었는데, 집에 잘 돌아왔다고 전해주니까 확 돌변해서 잘난척 하더라고. 하여튼 얄팍해 얄팍해…”
“불바위? 걔네들은 다 멀쩡해, 걔넨 안죽어. 걱정 안해도 되. 왠만하면 안보고 사는게 좋지 뭐. 애들이 너무..좀…힘만 세고…”
솥불미가 주변을 둘러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무식해서 말야”
나 역시 주변을 둘러본 후 솥불미와 함께 웃었다. 도깨비가 아니었으면, 강당장이 아니었으면, 불바위들이 아니었으면, 그리고 모호숲의 까마귀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달빛 아래에서 솥불미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평생 그리워 하며 살 수 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솥불미에게 큰 신세를 져버렸다. 셈에 있어선 둘째가라면 서러운 녀석인데, 어떻게 갚아야 할지 막막했다.
“그런데 강당장이 널 놓쳤다고 했을때 말야”
솥불미가 물었다.
“응”
“제대로 간 건 맞아? 기억을 못하고 있었다며?”
“그게……”
솥불미가 땅에 박힌 돌을 발로 톡톡차며 파내려 하고 있었다. 평소에 안하던 행동.
“기억이 안나, 숲이었는데 좀 환하고 포근하고 그랬어. 그리고 나서 눈을 떠보니 집이더라고”
솥불미가 땅에서 파낸 돌을 멀리 차내더니 나를 돌아봤다.
“왜 인간하고 친하게 지내냐고 가끔 물어보는 애들이 있거든? 강당장도 만날때 마다 그래”
“응”
“그러면 내가 뭐라고 하는지 알아?”
“…… 착…해서?”
“그건 아니고, 여지껏 만났던 인간중에 제일 이상해서, 그래서 재밌어서 만난다고 해”
“내가 재밌다고? 뭐가 재밌어? 귀신 봐서?”
“아니 그런 것 말고, 그냥 그런게 있어. 너 이제 들어가야되?”
“음…”
팔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내려다 봤다.
‘강당장이 이거 달라고 했었는데…’
시계는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1시간 정도 괜찮을 것 같아. 왜?”
“반딧불이들이 떼로 몰려있는 곳을 찾았어. 같이 가보자. 너 빛나는 거 좋아하잖아”
“하! 너는 뭐 안좋아하고?”
앞장서 걸어가는 솥불미의 뒷모습을 봤다.
‘도깨비 친구가 있어 다행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종종 걸음으로 달밤의 도깨비 뒤를 따라갔다.
‘나중에 물어보자’
그 때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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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otree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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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환 : 숲의 주인들 19
19.
“자환아”
따뜻한 손이 내 얼굴을 어루 만지고 있었다. 이 촉감을 나는 기억한다. 여기서 이대로 눈을 떠버리면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이, 그리고 매 번 나를 깨워주는 이 촉감이 영원히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나를 엄습해왔다. 꼭 감은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나왔다.
“자환아.. 왜 울어? 응? 꿈꿨어?”
천천히 눈을 뜨자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 엄마의 얼굴이 일렁이고 있었다.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주변을 돌아보자 익숙한 모습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내 방이었다.
“꿈 꾼거야? “
“……”
엄마가 재밌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무슨 꿈이길래 이렇게 눈물까지 흘려? 애들이 이제 너랑 안논데? 아니면 누가 죽었어?”
“그냥, 엄마 손이 너무 좋아서…”
“싱겁긴..”
일어나 앉는데 몸이 가뿐한 느낌이 들었다.
“열 내렸어. 이제 괜찮을꺼야. 할머니도 어제 너 돌보느라 밤새 못잤어”
“할머닌?”
“뻗었지. 나도 이제 좀 자야겠다. 죽 가져왔으니까 먹어. 다 먹고나서 약 먹고, 오늘은 학교 가지말고 쉬는 걸로 ��자. 그리고…”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수많은 장소를 오갔던 사건들이 마치 찰나의 기억처럼 지나갔다. 이끼들이 날 데리러 왔고 솥불미의 부탁을 받은 강당장이 이끼들을 설득하기 위해 내가 숲을 떠나왔던 순간의 기억으로 데려갔다. 그런데 그 곳에서…
“엄마”
“응?”
방문을 나서려던 엄마가 돌아보았다.
“엄마한테 동생 있었어?”
엄마가 멀뚱히 날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얘가 무슨 소릴 하는거야? 동생 있잖아 니 삼촌”
“아니 삼촌 말고..이모, 그러니까… 엄마 여자 형제”
“하! 내 꿈을 이제 니가 대신 꿔주는거야?”
“응? 뭘 대신 꿔?”
“엄마 꿈이었어 그거, 여자형제 갖는거”
“아…”
 “엄마도 있었으면 좋겠다. 니 삼촌한테 잔소리 하는 것도 번갈아가며 할 수 있잖아. 그나저나 니 삼촌은 아침부터 또 어딜 간거니?”
밖으로 나가며 엄마가 말했다.
“할머니까지 셋이지”
“뭐?”
“삼촌한테 잔소리 하는 사람 말야. 삼촌은 그럼 고등학교 때가 아니라 초등학교 때 가출 했을걸?”
엄마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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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otree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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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환 : 숲의 주인들 18
18.
그곳은 기묘할 정도로 조용했다. 소리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고 햇살이 빗방울에 반사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텅빈 본향당은 낡고 초라했지만 주변에 핀 울긋불긋한 야생화들과 이끼들이 본향당을 둘러싼 채 다독여주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수선스럽던 강당장의 모습은 왠일인지 보이지 않았고 본향당 근처에 핀 이끼들은 나를 집어 삼키기 위해 쫓아오던 것들과는 달리 얌전히 그리고 평화롭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피곤함이 느껴져 푹신한 이끼 위에 조심스럽게 엉덩이를 데고 앉았다. 땅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기운에 긴장이 풀어지며 나른한 졸음이 밀려왔다. 수풀 너머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한 10년 됬나?”
“정말? 그럼 엉망이겠네”
“그렇겠지, 그 때도 나 말곤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수풀을 헤치고 등산복 차림을 한 아줌마 둘이 나타났다. 바닥에 앉아있던 나와 눈이 마주친 둘은 그대로 얼어붙은듯 움직임을 멈춘채 나를 보고 있었다. 둘 중 가는 눈매에 통통한 체구를 가진 아줌마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속삭이듯 말하는게 들렸다.
“언니, 얘 누구에요? 혹시 쟤..쟤가 전승인인거유?”
마른 체구의 아줌마가 황급히 통통한 아줌마의 팔을 잡아 내리 끌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저승의 왕이시여 세상의 지배자시여 미천한 우리를 굽어 살피시옵소서. 아무것도 모르는 제 아우의 실언은, 부디 저희같은 미천한 것들이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저승 세계의 깊은 아량으로 용서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놀란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놀란 표정으로 두 아줌마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 때 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의 지배자라니… 날 비웃는 것이냐? 아니면 있지도 않은 말을 꾸며내어서라도, 그 비루한 몸뚱이를 부여 잡은채 살아 남고 싶은 것이냐? 신성을 잃어 이런 작고 벌레같은 몸에 기어 들어가야 하는 엉터리 신에게 목숨을 구걸할 만큼, 니들의 갖고 있는 것들이 그렇게 소중한 것이더냐?”
목소리가 내 온몸의 뼈를 잡고 흔들어대는 것 같았다. 내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한기에 온몸이 덜덜 떨렸고 아무리 입을 다물고 있으려 해도 입에서는 연신 이빨이 부딛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움직이지 않으려, 쓰러지지 않으려 죽을 힘을 쥐어 짜냈다.
마른 아줌마는 머리를 땅에 댄 채 필사적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소중하지 않습니다! 명주실 보다 가는 들숨과 날숨에 붙어 사는 미천한 저희들입니다. 거미줄에 맺힌 이슬방울처럼, 작은새의 날개짓에도 떨어져 사라지고 마는 허깨비 같은 삶에 무슨 미련이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머리를 조아리고 용서를 비는 이유는 단 한가지, 온 세상의 진정한 주인인 소별왕의 저주를 안은 채 저승에 발을 들여 놓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부디 저희같은 미천한 것들은 가늠할 수 없는 저승의 깊은 아량으로 저희의 목숨을 보존해 주시옵소서”
‘소별왕…’
가래가 끓는 웃음 소리가 이어지더니 웃음 소리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기침으로 바뀌었다. 기침 소리에 숲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움직임이 잦아들자 목소리가 이어졌다.
“차..차라리 도망을 치지 그랬느냐, 난 이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처음부터 내게 주어진 자리는 없었던 것 같구나. 나를 보아라 인간들아, 신성이 무어라 생각하느냐? 신성은 두려움이다.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며 주절대는 너의 필사적인 이야기가 사라진 줄 알았던 내 마지막 신성을 끄집어 내는구나”
“하아..귀찮다…”
소별왕이 내 어깨를 짚더니 나를 한 쪽으로 밀쳐 냈다. 그리고 왼쪽 팔을 들어 두 아줌마 중 조금 더 체구가 크고 통통한 아줌마를 향하게 했다.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있게 된 너희의 운명을 원망해라, 그리고 나를 두려워 하며… 죽어라”
통통한 아줌마의 외마디 비명이 들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아줌마는 사라져 버렸고 그 자리엔 피처럼 검붉은 색깔의 안개가 터지듯 흩어지다 사라졌다. 흩뿌려진 피를 뒤집어 쓴 마른 체구의 아줌마는 입을 다문 채 통곡을 하고 있었다. 소별왕의 손이 다른 아줌마를 향하더니 얕은 숨을 내뱉었다. 아줌마는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소별왕을 노려봤다. 소별왕이 팔을 내리고 아줌마를 쳐다봤다. 아줌마는 소별왕에게 눈을 떼지 않은 채 조끼 주머니에서 놋쇠로 만든 소주잔 모양의 종을 꺼내어 내밀었다.
“소별왕이시여, 저는 오늘, 여기서, 살아야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밖에 없는 피붙이 언니를 따라 나섰다가 소별왕의 신성에 짖밟혀 저승에 떨어져 버린 내 동생을 다시 찾아 올 것입니다. 제 남은 삶을 그것에 바칠 것입니다.”
마른 아줌마의 눈빛은 더 이상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이의 것이 아니었다. 입술은 굳게 닫힌 문과 같았고 몸을 지탱해주고 있는 두 다리는 강철 같았다.
“무서워 벌벌 떨며 잘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구나. 나를 기억해 줄 인간을 하나 정도 남겨둘까도 했다만, 네 비장한 말투에서 내 형님이 내게 시도 때도 없이 요구하던 위엄이 묻어나는 것 같구나. 하지만 위엄은 그런 것이 아니겠지. 그렇지 않느냐? 저승의 왕이었던 내게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것을 어찌 너희같은 미천한 것들에게서 볼 수 있겠느냐? 쿨럭 쿨럭… 하지만… 너의 그것이 내 신경을 긁는구나. 그것이 내 신경을 긁어… 그러니, 내 저주를 짊어지고… 이제, 죽거라”
소별왕이 손을 펼치는 것과 동시에 아줌마가 종을 흔들었다. 청명한 방울 소리가 숲을 가로지르는 순간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종 앞에서 강하게 충돌 하였고 그 여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숲의 나무와 나뭇가지들과 잎사귀들을 격렬히 흔들어댔다. 아무것도 붙잡고 있지 않았던 나는 그 힘에 밀려 멀찍이 튕겨 나가 정신을 잃었는데 정신을 잃기 직전 마지막으로 본 것은 비 처럼 쏟아지는 나뭇잎들 사이로 여전히 강철같이 서있던 아줌마의 모습이었다. 종을 들고 있는 아줌마의 팔은 숯처럼 변한 채 연기를 내고 있었고 주변 어디에도 소별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강당장이 찾으라고 했던 기억이 이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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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otree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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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환 : 숲의 주인들 17
17.
강당장을 따라 숲을 달리는 것은 매우 이상한 경험이었다. 말하는 새의 뒤를 허겁지겁 쫓아가거나 이끼들이 날 잡기 위해 쫓아 오는 것도 평범하다고 할 순 없겠지만, 강당장이 이끄는 숲속의 달리기는 차원이 달랐다. 시작은 이랬다. 강당장은 내 눈높이 정도의 ���치에서 이끼들을 피해 빠르게 방향을 바꿔가며 날아갔고 강당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 역시 방향을 부지런히 바꿔가며 전력을 다해 달렸다. 그러다 특정한 지점에서 강당장은 물에 다이빙을 하듯 땅 속으로 들어갔는데, 달려 오던 속도에 미처 멈추지 못한 나 역시 그 곳에 발을 딛자마자 물컹하는 느낌과 함께 미끄러지듯 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갑작스런 낙하에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기분을 느낄 겨를도 없이 나는 환하고 단단한 곳에 떨어졌다. 몸을 일으켜 바뀐 주변의 풍경을 살펴보던 나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얼어 붙고 말았다. 그 곳은 지난 달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갔던 협재 해변이었다. 멀리 시홍이의 모습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려 하는데 강당장이 내 앞을 가로 막았다.
“장난해?! 아무리 봐도 여긴 아니잖아!!”
“네? 뭐가... 아!”
그 때 바다에서 놀던 아이들이 하나 둘 비명을 지르며 육지로 달려갔다. 바다쪽에선 눈에 띄게 커다란 파도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는데 해변에 가까워지자 그것이 거대한 이끼로 만들어진 파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빨리 따라와! 정신 바짝 차리고!!”
강당장이 빠르게 날기 시작했고 나 역시 허겁지겁 그 뒤를 따랐다. 몇 번씩 방향을 바꿔가며 날던 강당장은 또 다시 수직으로 날아 오른 후 방향을 바꿔 똑바로 낙하해 땅속으로 들어갔고 나는 이번엔 망설임 없이 땅속으로 몸을 날렸다. 이끼 파도가 해변을 덮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고 그 순간 내 몸이 작은 연못 위로 솟구쳐 올랐다. 안개가 낀 숲속 풍경이 내 몸을 살짝 떠받들어 올려 주는가 싶더니 이내 낙엽들이 널부러진 땅으로 끌어 당겼다. 몸에 달라 붙은 낙엽들을 털어내며 몸을 일으키고 있을 때 강당장이 눈 앞에 왔다. 강당장 역시 물에 젖은 상태였다.
“숲이다! 숲!! 여기 기억나?!”
옅은 안개가 흘러가고 있었고 바닥엔 물기를 머금은 진한 색깔의 낙엽들이 가득했다. 쌀쌀한 기운이 젖어있던 몸에 닿자 나도 모르게 몸이 떨려왔다. 몸을 감싸쥐고 이 장소를 기억해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여기가 그 곳인 걸까? 강당장이 초조한듯 나를 다그쳤다.
“기억안나?! 여기가 아니면 빨리 나가야되!”
그 때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나와 강당장은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 보았다. 그 곳엔 가만히 서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어른 키만한 크기의 까마귀가 있었다. 괴물까치, 이것은 유치원때의 기억이다.
“어우 씨 깜짝이야!!”
강단장이 진심으로 놀라 소리쳤다.
“뭐야! 저거?! 너 전생에 벌레였어?! 내가 널 전생까지 데려온거야??!”
전생이 아니라 유치원 때의 기억이거나 그 기억을 재료로 만들어진 꿈이었다. 그 당시 내가 신고있던 신발, 어깨에 가로 매었던 가방, 왼쪽 가슴에 옷핀으로 달았던 이름표 가장자리의 허술하게 박혀있던 재봉��의 색상까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날은 소풍날이었고 왠일인지 해질녘의 숲에 혼자 있던 나는 거대한 까마귀를 만났었다. 그 때 까마귀가..
“자환! 정신차려! 여기 뭐야?!”
눈 앞으로 날아든 강당장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여긴 아니에요!”
“빨리 빨리 빨리”
다급한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강당장을 따라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며 까마귀가 서있는 쪽을 돌아 보았는데 까마귀는 내게 입을 벌려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억인지 꿈인지 구분 할 수 없었던 그 순간 처럼 까마귀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고, 대신 이끼들의 소름끼치는 소리가 주변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달리기는 계속 되었고 낙하에 낙하를 거듭하며 기억과 꿈을 오가는 긴박한 여행이 계속 되었다. 그리고 가장 긴 낙하를 거쳐 비가 내리는 조용하고 환한 숲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 숲 한 켠엔 더 이상 아무도 찾아오는 이가 없는 허름하고 기울어진 본향당이 한 채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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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otree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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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환 : 숲의 주인들 16
16.
땅에 떨어지는 충격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주변을 살펴 보니 여전히 숲속이었지만 한 눈에 익숙한 장소임을 알 수 있었다. 그 때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숲이 작정하면 가끔 나도 길을 잃어”
돌아보니 도깨비 솥불미가 바위 위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 곳은 솥불미와 자주 만나 놀던 곳으로 언젠가 숲에서 길을 잃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곳이었다. 또 다시 이끼들이 내 기억 속에 들어온 것일까? 솥불미가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깊은 숲 속이 다 어둡고 거기가 거기인 것 같지만 가장 어두운 부분이 있어. 음… 그림자가 이렇게 이렇게 쌓이는 곳인데, 꼭 거기만 되는 건 아니고, 그냥 적당히 어둡다 싶은 곳도 괜찮아. 어쨓든 거기 들어가 숨을 참고…”
그 때와 똑같이 말했다.
“숨? 안 쉬어? 계속?”
“계속 안쉬면 죽잖아, 그러면 안되지. 참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참는거야”
‘이 이야기를 또…’
“응? 뭐라고?”
“아..아니..”
멀뚱히 나를 쳐다보던 솥불미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무심하게 말을 하고 있는 솥불미를 보니 눈물이 나왔다. 애써 참고 있었나 보다. 솥불미는 이 지긋지긋한 숲 속에서 날 꺼내 줄 수 있을까?
“…… 그렇게 조용히 숨죽이고… 아니 숨을 참고 기다리면 쓰윽~ 길이 나타나. 보통은…”
“솥불미!”
솥불미가 나를 슬쩍 쳐다보았다.
“왜? 너 오늘 좀 이상하다?”
“솥불미 내 이야기를 잘 들어봐. 그 때, 아니 지금 우리가 이야기 했던 일이 지금 나에게 일어나고 있어. 숲이 날 붙잡고 놔주지 않고 있는데… 있는데… 그냥 겁주는 장난같은게 아니라 내 목숨이… 그러니까, 다시 사람사는 세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지도 몰라! 있잖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이유로 숲속의 이끼들이 날 잡아 먹으려 쫓아오고 있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겨?! 난 아무것도 모르겠어!”
“잠���만! 잠깐만! 자환아 좀 진정해봐. 네가 곤란한 일을 겪고 있다는 건 알았어. 근데 오늘이 아닌 다른 날이라는 거야?”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보던 솥불미가 곰곰히 고민을 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있잖아 자환아, 그…도깨비도 꿈을 꾸긴 하거든?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나는 지금 이 순간을 나중에 꿈으로 어렴풋이 기억하게 될 것 같아. 왜 어렴풋 하냐면, 이건 내 꿈이 아닌 것 같거든. 그래서 말인데…
갑자기 왠 꿈타령인가 싶었다.
“솥불미! 무슨 이야기를 하는거야?! 꿈이 아니야! 내가 정말 이끼들에게 잡혀가게 생겼다니까?!”
가늘고 청명한 목소리가 위쪽에서 들려왔다.
“그 도깨비는 허깨비야”
작고 귀여운 때까치 한마리가 내 쪽으로 빠르게 날아왔고 놀란 나는 엉겹결에 손바닥을 내주었다. 손바닥에 내려앉은 때까치는 고개를 빳빳하게 든 채 말을 이어갔다.
“진짜가 쪼끔 묻어 있을 순 있겠지만 말이지. 도깨비~ 허깨비~ 좀 웃기네. 쿄쿄쿄쿄쿄쿄”
바위도 말을 하는데 새라고 못할껀 없겠지. 하지만 경박한 웃음 소리는 좀 거슬렸다.
“도깨비는 허깨비가 아니야!”
솥불미가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래, 알지 도깨비는 허깨비가 아니니까. 그런데 지금의 넌 자환이 기억 속에 있는 도깨비니까, 허깨비가 맞지”
솥불미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기억이라…역시 그랬군. 어쩐지 좀 미끌미끌한 느낌이 들더라고. 그런데 꿈이 아니라 기억이야? 여긴 어떻게 들어왔데?”
“급하게 둥지를 만들었어. 이끼들이 완전 미쳐버렸거든”
작은 때까치가 나를 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참, 내 이름은 강당장이야. 좀 늦었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들어. 시간이 없으니까 딱 한 번만 이야기 할게 알았지?”
당황한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옛날에 숲에 버려진 아이가 하나 있었어. 그 아이는 자신을 버린 세상이 너무 무서워 다시 사람들 곁으로 가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어. 그리고 곁을 지켜준 이끼들과 함께 숲에 영원히 남…으려고 하는 찰나 누군가 그 아이를 사람들의 세상으로 데려가 버린거야. 아이를 빼앗긴 숲속의 이끼들 대부분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그 일을 더 이상 마음에 두지 않았어. 하지만 ��금 비뚤어진 녀석들에겐, 그 일이 좀 불편한 심정으로 어딘가에 남았던 것 같아. 시간이 지난 어느날, 아이를 잃은 여자가 세상을 등지고 숲속으로 들어와. 숲속의 일이 항상 그렇듯 이끼들이 그녀를 거두었는데, 마지막 숨을 내뱉던 순간까지 그녀를 휘감고 있던 무기력한 절망과 아이를 향한 갈망을 함께 품게 되었지”
“아이를 잃은 여인의 감정이, 몇몇 이끼들이 갖고있던 비뚤어진 마음과 뒤섞이며, 이끼들은 그 옛날에 이끼들을 져버리고 숲을 떠난 아이가 숲을 떠나지 않고 이끼들 곁에 남게되는 것을 꿈꾸게 되지” 
“과거의 후회되는 순간을 꿈으로나마 보상 받겠다는 생각은 나쁜게 아니야. 안그래? 때와 장소를 안가리고 슬그머니 빌붙는 이끼들의 찌질함에도 잘 어울리고 말야. 그런데..”
“사람들이 자연을 우습게 본다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이끼들 역시 사람을 모르는 것은 ��찬가지야. 이끼들이 지랫대로 이용한 그녀의 갈망이, 그녀가 자신의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 그러니까 자환이 너를 마주하며 그 순간 이상하게 뒤틀려 버려”
골목길 옆에 만들어진 본향당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 잡혔던 목 언저리가 아직도 욱씬거렸다.
“아이 잃은 여자의 갈망이 이끼들을 뒤덮어버리며 근사했을 수도 있었던 꿈의 재현은 예측할 수 없는 악몽이 되어버렸지. 이제 숲의 규칙은 사라졌고 기억과 꿈은 뒤섞인 채 서글픈 광기만이 남게 되며 이끼들은 오로지 너를 집어 삼키는 것만을 원하고 있어. 이유도 모른채 말야”
“전 이끼한테 먹히고 싶지 않아요”
“하! 그렇겠지. 누가 이끼가 되고 싶겠어! 니가 센치해져서 이상한 약속을 해버려 그런 거잖아!”
“하지만 전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단 말이에요!”
“그래 그래 알았어. 그런건 이제 별로 상관 없어. 지금 중요한 건 다시 한 번 그 때로 돌아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보여줘야 한다는 거야”
“보여줘요?”
“응, 결과적으론, 처음 이끼들이 원했던 순간을 재현해야 되는거지. 왜냐면 다시 너의 선택을 보여주기 전까지 이 미친짓은 끝나지 않을테니까. 그리고 나는 그곳까지 너를 데려가 달라는 부탁을, 여기 있는 이 도깨비로부터 받았어. 공짜는 아니고 거래도 다 마쳤는데… 아까 봤겠지만 우리 애들도 꽤 많이 다쳤잖아 봤지? 그래서 말인데, 나중에 여기서 살아 나가면, 그 빨간색 그거 있지? 그거 나 줘. 응?”
강당장이 내 팔목에 찬 시계를 콕콕 찍었다. 시계의 초침은 멈춰 있었다. 
“흠~ 역시 내가 부탁을 한거였군. 난 어떻게 이걸 미리 알게 된걸까?”
솥불미가 혼잣말을 했다.
그 때 또 다시 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강당장이 깃털을 부풀리며 빠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좋아 자환, 내 말 잘들어. 여긴 내가 임시로 만든 둥지야. 잠시 몸을 숨기려 후다닥 만든것 치곤 생각보단 오래 버텨줬지만, 곧 이끼들이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할꺼야.”
“그럼, 지금 도망가면 되잖아요. 이끼들이 오기 전에!”
강당장이 웃었다.
“쿄쿄쿄쿄 여기가 진짜라고 생각하는구나? 하긴 내가 둥지 만드는 솜씨가 남다르긴 하지 쿄쿄쿄 근데 내가 만들어 놓은 둥지 안에서 도망가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이끼들이 이곳을 찢으며 들이 닥칠때 나타나는 숲이 진짜 숲이야. 그 때 도망가는거야”
“하지만… 어디로 달려야 되는데요? 그리고 난 달리기도 빠르지 않아요”
“지금은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해. 올바른 방향을 알려주려고 구구절절 이야기를 해준거니까. 자, 그럼 여기서 질문,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숲을.. 떠났던 날이겠죠. 하지만 전 모르는 일이란 말이에요!”
그 때, 누군가의 손을 잡고 숲을 떠나던 순간과 근처에 비스듬히 서있던 본향당의 모습이 재빠르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기억해야지, 죽기 싫으면… 이끼들을 피해 기억과 꿈 사이를 요리조리 도망다닐 수는 있지만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아는 것은 너뿐이야. 달리기가 빠르면 좋겠지만 그건 뭐… 어쩔 수 없는 거니까, 그냥… 최선을 다해 내 뒤만 놓치지 말고 잘 따라와. 이럴 때 거북이가 있으면 좋은데 아까 둥지 안에 같이 데리고 들어 오지 못해서 말야”
“거북이요?”
그 때 허공을 뚫고 검은 형체가 날아 들어와 땅에 떨어져 구르다 커다란 나무 밑둥에 부딛혔다.
“아야! 아야! 어?! 아이고! 여기 계셨네요? 두목?!”
그것은 이끼에 뒤덮힌 작은 불바위의 머리였다. 왠일인지 턱은 제자리에 끼워져 있었다. 강당장이 대꾸도 없이 빠르게  날아 올랐다.
“가자!!”
방금 전까지 서 있었던 숲이 마치 종이처럼 찢어지며 이끼들이 들이 닥쳤고 그 뒤로 또 다른 숲의 풍경이 펼쳐졌다. 난생 처음 보는 해괴한 광경이었지만 그런 것에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끼들에게 잡아 먹히지 않으려면 죽을 힘을 다해 강당장을 뒤따라야 했다. 사방에서 쌀 쏟아지는 소리가 나는 가운데 난 허둥대며 달리기 시작했고 둥지를 거의 빠져 나갈 쯤 뒤쪽에서 작은 불바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 다음에 또 보자!!”
돌아보니 몰려드는 이끼들 중앙에 작은 불바위 머리와 솥불미가 나로부터 멀어져가고 있었다. 솥불미는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손을 흔들고 있었다.
“싸라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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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otree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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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환 : 숲의 주인들 15
15.
“꺄아아아아악~”
영원히 계속 될 것 같은 비명 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사람 형체의 이끼가 내 손을 잡고 있었고 팔엔 불덩이 같은 돌이 박힌 채 불타고 있었다. 팍! 소리와 함께 돌이 박혀 있던 부분이 빨간 불티들을 튕겨내며 끊어졌고 그 순간 내 몸과 사람 형체의 이끼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나동그라졌다.
이끼 사람이 몸을 일으키며 비명같이 소리를 질렀댔다.
“약속 했잖아?! 안아 달라고 했잖아!!”
“뭐하냐?! 빨리 도망가!!”
바위 부딛히는 소리. 큰 불바위가 김을 뿜어내며 이끼 사람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미처 몸을 일으키지 못한 이끼가 큰 불바위와 뒤엉키며 다시 쓰러졌다. 큰 불바위가 불에 달궈진 것 같은 시뻘건 주먹을 휘두르며 이끼 사람을 사정없이 내리 찍었지만 부숴진 이끼들은 흩어졌다 다시 합쳐지며 조금씩 큰 불바위를 덮어갔다.
“이 망할!”
큰 불바위가 더욱 거세게 이끼를 몰아 붙여 갔지만 몸 대부분이 이끼에 덮혀진 큰 불바위는 조금씩 움직임이 둔해져 갔다.
“빨리 도망가라고 이 눔아!!”
얼굴에 붙어있는 이끼를 뜯어내며 불바위가 소리쳤다. 하지만 그 사이 내 근처로 몰려든 이끼들이 다리를 타고 올라오며 나를 결박해갔다. 이끼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아줄게 안아줄게 안아줄게”
그 때 단단한 무언가가 나를 낚아챘다.
“아악!!”
갑작스런 충격에 잠시 정신을 잃었던 걸까? 몇 초인지 몇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을 차린 내 옆으로 숲의 나무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었다. 난 따뜻한 돌에 감싸��� 있었는데 그것은 작은 불바위의 팔이었고 작은 불바위는 나를 안은 채 숲을 질주하고 있었다.
“애아 우애우기에”
멋대로 덜그럭대는 턱 때문에 무슨 말인지 여전히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싸라라락”
소름돋는 쌀 쏟아지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이끼들이 숲길과 나무 밑둥을 덮어가며 우리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 ‘큰 불바위는 이끼들한테 당한 걸까?’ 이끼들이 가까워 질수록 축축한 풀냄새가 코로 들어와 숨쉬기가 버거워졌다. 하지만 작은 불바위는 숨을 쉬지 않는지 아랑곳 않고 맹렬히 숲을 달려 나갔다. 하지만 이끼들이 조금 더 빨랐다. 달려가는 앞쪽에 순식간에 자라난 이끼를 딛고 미끄러진 작은 불바위는, 균형을 잡기 위해 허둥대며 몸을 움직이다 나를 안고 있던 팔을 풀어 버렸다. 빠르게 허공으로 내던져진 나는 위와 아래도 가늠하지 못한채 세차게 땅바닥으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평소 같았으면 아픈 곳을 부여잡고 꽥꽥 소리를 질러댔겠지만 지금은 그럴 겨를이 없었다. 벌떡 일어난 나는 재빠르게 주변을 둘러보다 내가 있는 쪽으로 달려오는 작은 불바위를 보고 다리를 절뚝거리며 그쪽으로 달려갔다. 이끼들의 집요함에서 전해지는 기운이 너무나 강했기에 그 즈음부터 숲을 빠져 나갈 유일한 희망은 불바위 뿐이라고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작은 불바위에게 거의 닿으려 한 순간 내가 딛고 있던 땅이 힘없이 아래로 꺼지며 나는 구덩이 밑으로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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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otree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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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환 : 숲의 주���들 13,14
13.
“주영아”
소리나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수풀이 조금 흔들리는가 싶더니 나를 이 곳으로 밀어 넣었던 신이 수풀 밖으로 걸어 나왔다. 헝클어졌던 머리는 잘 정돈되어 있었고 몸 이곳 저곳에 붙어있던 풀과 이끼의 흔적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것은 웃음과 울음이 뒤섞인 이상한 표정이었다. 그녀가 입을 여는 모습을 본 것 같진 않았지만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해. 많이 기다렸지?”
그 순간 쌀이 쏟아지는 듯한 소리와 함게 비가 내리며 이끼들이 차분하게 주변의 나무들을 덮어갔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이제…”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나랑 같이 가자”
하얗고 가는 손등에 떨어진 빗방울이 구슬처럼 맺혔다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 손을 잡았었다’
14.
끝이 보이지 않게 뻗어있는 나무들 아래 허름한 본향당이 서있다. 본향당 처마 밑엔 아이 하나가 하늘을 보고 있다. 마치 떨어지는 빗방울이 어디서 오는지 확인 하려는 것 같다. 아이는 이끼들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우리가 숲의 주인이야. 우리는 버려진 모든 것들을 품안에 안을 수 있어. 우리 품에 안기렴. 우리와 함께 숲의 주인이 되면 그 누구도 다시는 너를 버릴 수 없단다”
아이의 눈빛은 생기를 잃어간다. 핏기가 없는 푸르스름한 입술이 ���어지며 목소리가 세어 나온다.
“정말.. 날.. 안아줄꺼야?’
사방에서 소곤대는 소리들이 들리다 다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응, 안아줄게, 우리 모두가, 있는 힘을 다해, 영원히”
푸른 이끼들이 아이의 다리를 타고 올라온다. 얼굴이 창백해진 아이는 풀썩 주저 앉는다.
바로 그 때,
“아가, 왜 혼자있니?”
차분하고 따뜻한 목소리. 아이는 목소리의 주인을 올려다 보지만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볼 수가 없다.
“엄마.. 우리 엄마가 여기 있으라고 했어요”
“엄마가 어디 갔어? 언제?”
“어제 어제요, 절 꼭 안아 주고 다시 온다고 했는데, 엄마는 형을 혼자 둘 순 없으니까, 그래서…”
“형? 형이 있어?”
“제 키랑 똑같아요. 우리 형… 근데 많이 아파요”
“저기..아줌마랑 같이 갈래?”
“목소리가 같이 있어준다고 했어요” 
“목소리?”
“계속, 계속 안아준다고 했어요”
“그래서, 안아 달라고 했어?”
아이가 하얀 김을 내며 마지막 숨을 내쉬듯 말을 한다.
“혼자 있고 싶지 않거든요”
하얗고 가는 손이 아이 앞에 내밀어진다.
“있잖아, 얘야 나랑 같이 가자”
가늘고 하얀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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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otree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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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환 : 숲의 주인들 11,12
11.
“푸드득”
어디선가 요란하게 날개를 퍼덕이며 새 한마리가 날아갔다. 소리난 쪽을 쳐다보던 큰 불바위가 입을 열었다.
“가자”
“어디…요?”
“가보면 알아”
“저기…”
“뭐? 왜?”
“바위가 움직이는거 처음봐요”
“보니까 어떤데?”
“멋있어요. 목소리도 멋있고”
뭐라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러냐? 원래 사람한텐 말하거나 움직이는 모습 보이면 안된다”
“저도 사람인데요?”
큰 불바위가 손가락을 들어 내 머리��� 가리켰다.
“여기, 여기”
“네?”
“너넨 보고 듣는게 여기에 남는다며? 맞지?”
“……”
“일 끝나면 이거 뽑을꺼야.”
“아…”
큰 불바위가 씨익 웃어 보였다. 턱 비슷한 곳에서 작은 돌가루들이 부숴져 내렸다. 그 때 멀리서 쌀이 쏟아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웃음을 거둔 큰 불바위가 주변을 살폈다.
“산쪽인가?”
큰 불바위가 단단하게 다리를 잡고 있던 손을 풀자 거꾸로 매달려 있던 나는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아얏!”
비틀대며 몸을 일으키려는데 큰 불바위가 자신의 몸에서 돌들을 뽑더니 내 주위의 땅에 동그랗게 박아넣기 시작했다.
“둥지까지 가려면 이끼들을 다른쪽으로 유인해야되니까… 잡아 먹히고 싶지 않으면 이 원 밖으로 응? 알았어?!”
“원 밖으로 나오면 뭐요? 어차피 머리 뽑아 죽일꺼잖아요?!”
“안죽여. 그러니까 나오지마”
불바위는 마지막 돌을 땅에 박은 후 조용히 주문 비슷한 것을 뱉더니 벌떡 일어나 반대편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어둠에 익숙해진 내 눈은 이제 큰 불바위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몸의 틈에서 부숴져 흘러 나오는 작은 돌조각까지 볼 수 있었다. 잡목들 사이로 사라지는 큰 불바위의 모습을 보며 힘들게 몸을 일으켜 봤지만 다리가 후들거렸다.
“일 끝나면 이거 뽑을꺼야.”
“풀썩”
다리에 힘이 빠지며 서있던 자리에 맥없이 주저앉아 버렸다. 떨리는 양손과 두 다리를 진정 시켜 보려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원 밖으로 나가는 것은 커녕 제대로 서 있는  것 조차 어려울 것 같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숲에서 빠져 나가야 살 수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럴려면 나가는 출구를 찾아야 하는데 들어왔던 입구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여길 어떻게 왔었지?’ 시홍이를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만났던 신에게 홀렸던 것일까? 잠깐! 뭔가 이상했다.
만약 내가 이 낯선 숲속에 들어온 이유가 시홍이를 바래다 주고 집으로 돌아오다 만난 본향당 신 때문이라면, 그 다음날, 그러니까 밤새 아팠던 다음날 아침의 기억은 내 상상이어야 되는 건데… 아니다. 그렇지 않다. 축축해진 이마를 감싸쥐던 엄마의 손에서 전해진 온기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 때 엄마는 이마에서 손을 거두며 내 이름을 불렀다.
“자환아”
12.
내 이름 ‘자환’은 5살 때 엄마가 직접 지어준 이름이다. 바꾸기 전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엄마에게 물어보면, 버린 이름은 알아 뭐하냐며 알려주지 않았다. ‘자환’은 조선 초기 유명한 ‘지관’의 이름이다. 할머니는 옛날에 돈을 엄청 많이 번 사람이라며 나중에 아들  덕 좀 볼까 싶어 니 엄마가 멋대로 가져와 쓴거라고 말했다. 지관이 돈을 받고 땅의 모양이나 기운을 살펴 집터나 묘자리를 잡아주는 일을 한다는 것은 학교에서 알게 되었다. 집터 봐주는 사람이 돈을 벌면 얼마나 번다고, 이왕이면 책에 나오는 유명한 부자나 임금 이름이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당연하게도 땅의 기운이나 모양을 보고 길흉을 점칠 수 있는 능력이 내게는 없다. 그 대신…인지 모르겠지만, 심방인 엄마 조차 볼 수 없는 본향당의 신을 볼 수 있고, 어쩌다 알게 된 까칠한 성격의 도깨비 친구가 하나 있다. 도깨비의 이름은 솥불미. 항상 그렇듯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땐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선명한 빗소리’
흐릿하고 불분명한 기억들이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었다. 그 날, 시홍이를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공터에서 내가 만난 건 신이 아니라 소나기였다. 곧 그치지 않을까 싶어 근처에 보이는 빈집의 처마 밑으로 잠시 몸을 피했다.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퍼붇던 비는 딱딱한 길을 물렁하게 만들어 지워 버리더니, 순식간에 그 자리에 개천을 불러왔다. 집에 갈 엄두가 나지 않은 나는 처마 아래 문틀에 걸터 앉아 부지런히 흘러가는 물결의 모양을 보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곧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불러 깨웠다.
“자환아”
처마 앞에 엄마가 우산을 든 채 서 있었다.
“엄마”
세상에서 제일 게으른 사람. 하지만 매번 나를 찾으러 오는 사람.
“여기서 자면 어떡해?”
그 때 날 나무라던 엄마의 표정은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가 내밀었던 하얗고 따뜻한 손의 온기는 ���명하게 남아있다. 그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을 때 몸 안의 축축함이 스르륵 물러나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다음날 새벽까지 열에 시달리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시환이를 배웅하고 돌아 오던 날 그 골목길에서 나는 본향당 신을 만난적이 없다.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숲속의 무언가가 멋대로 바꿔버린 건 우리 동네 골목길이 아니라 내 기억 속의 동네 골목길이었다. 그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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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otree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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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환 : 숲의 주인들 9,10
9.
“촤악”
가려진 풀들을 걷어낸 채 바로 앞에 ‘불바위’가 서 있었다. 불바위의 움직이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 무시무시한 그 모습에 참고 있던 숨이 맥없이 터져 버렸다.
“어이쿠! 뭐야?! 이끼들한테 벌써 당한거야?”
불바위.
깊은 숲 속에 살고 있는 사람 모양을 한 바위들.
“치이이익-“
돌로 만들어진 몸 군데군데 덮혀있는 이끼들 사이로 뜨거운 김이 세차게 뿜어져 나왔다. 뒤쪽에서 비틀대며 일어나는 작은 크기의 불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뭐라 말을 했는데 턱이 빠져 덜그럭 대어 알아 들을 수 가 없었다.
“계속 떠들다 머리통 뽑히지 말고,  저~기, 저기 저쪽가서 이끼들이나 살펴 보고 있어”
작은 불바위는 포기한 듯 큰 불바위가 가리킨 쪽으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빠진 턱을 손으로 밀어 넣어 보지만 턱은 계속 밑으로 내려와 덜렁댔다. 그 모습이 왠지 우습다고 느낀 순간 큰 불바위가 내 발을 덥썩 잡더니 순식간에 나를 수풀 밖으로 꺼냈다. 잡힌 다리에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악!!”
큰 불바위는 날 거꾸로 든 채 몸에 붙어있던 이끼들을 털어냈다. 털어내는 손이 닿을 때마다 마치 딱딱한 몽둥이로 얻어 맞는 것 같았다.
“아악! 아파! 아프다고!!”
“허허 이 놈 목소리가 뭐 이래? 허허허 하하하”
내가 할 소리다.
10.
오름을 오르거나 낯선 숲길을 걷다보면 마치 할 말이 있다는 듯 뜬금없이 혼자 서있는 바위를 만날 때가 있다. ‘왜 여기에 바위가 있는거지?’ 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 바위는 밤에 산책을 나왔다 미처 돌아가지 못한 ‘불바위’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런 불바위들 중 돌의 생김새가 사람의 얼굴 모양을 하고 있는 것들이 있는데, 도깨비 솥불미는 그런 바위들이 들을 수 있는 거리에서 바위의 생긴 모양에 대해 비웃으면 안된다고 알려줬다. 불바위들은 태생적으로 과격하지만 누군가 자신의 생김새에 대해 흉을 보는 소리를 듣게 되면 미친놈처럼 행패를 부린다고 했다. 밤사이 밭이 엉망이 되어 있거나 비가 오지도 않았는데 뒷산이 무너져 내려 집을 덮쳤다면 열이면 열 그 밭이나 집의 주인이 산책하다 만난 불바위의 모양을 보고 가까운 거리에서 비웃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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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otree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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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환 : 숲의 주인들 7, 8
7.
본향당 옆에 웅크리고 있던 신은 움직임을 멈추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리더니 커다란 키를 휘청대며 내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툭- 투둑-“
걸음을 옮길 때 마다 몸 어딘가에서 떨어지는 이끼와 풀들에 잠깐 시선을 뺏긴 순간, 신은 귀를 찟는 비명을 지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갑작스런 움직임에 놀란 나는 황급히 뒷걸음질을 쳐봤지만 달려드는 신을 피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뼈만 앙상히 남은 두 손이 내 목을 거칠게 움켜잡았고 목을 파고드는 축축한 두 손의 촉감에 순간적으로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진저리 쳐지는 섬뜩함이 나를 휘감으며 몸이 마비되는 것 같아고 저항할 겨를도 없이 균형을 잃고 신과 함께 뒤로 넘어졌다. 
“물컹”
등과 머리에 큰 충격이 올 것 같았지만 왠일인지 바닥은 푹신했다. 본향당 신은 알아 들을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계속 날 짓눌렀고 그 힘에 눌린 나는 목이 졸려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땅 속으로 조금씩 묻혀 들어갔다. 진한 이끼 냄새가 진동하며 구역질이 났다.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 사이로 아무것도 쳐다 보지 않는 본향당 신의 섬뜩한 눈동자가 언뜻 언뜻 보였다. 골목길과 공터의 풍경이 엿가락 늘어나듯 늘어지며 나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었고 점차 눈앞이 캄캄해져 가며 본향당 신의 목소리도 멀어져 갔다.
“이 래ㅑ벌려 ..주영이 내놔..ㄷ러먀 ㅣ”
“비ㅓ픠 …주영..이..내놔!!”
“주영이 내놔!!!”
8.
눈을 질끈 감았던 나는 몸을 감싸는 축축한 느낌에 눈을 떴다.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달려가듯 뻗어 있었고 그 끝엔 파란색 하늘이 깃발처럼 걸려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펴 보았지만 깊은 숲 속이라는 것 말곤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밤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뾰족한 돌을 들어 나무 밑둥에 표식을 남긴 후 똑바로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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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otree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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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환 : 숲의 주인들 6
6.
엄마는 굿으로 신을 달래는 일을 한다. 굿은 보통 노래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엄마가 말하길 노랫말이 사람들에게 닿는다면, 음과 운율을 통해 노래가 만들어 내는 그 순간의 기운은 신에게 닿는다고 했다. 그런 엄마지만 어렴풋이 신들의 존재를 느낄뿐 실제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와 달리 내 눈엔 신이 보인다. 신 중에서도 특히 본향당을 멤도는 신들을 어릴적부터 봐왔다. 하지만 그저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을뿐 특별한 것은 없다. 그리고 이 신들이라는게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존재들이다 보니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을 티만 내지 않으면 내가 자신들을 보는 것을 왠만해선 알아채지 못한다. 알아챈다고 해봐야 졸졸 따라다니며 횡설수설 끊임없이 수다를 떠는 정도인데, 수다의 내용 대부분은 알아 들을 수도 없고 간혹 알아 듣는다고 했도 별 시덥지 않은 불평들이 전부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옛날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놓고가는 음식이 형편없다.’
‘본향당 청소를 안해 쥐가 생겼다.’
‘고양이가 쥐를 먹고 남겨뒀다’
‘그 고양이가 자리를 잡고 새끼를 낳았는데 시끄러워 죽겠다’ 
내가 할 말이다. 정말 시끄러워 죽겠다. 본향당 청소말곤 딱히 내가 해줄 일이 별로 없는데 말이다. 이 투덜이 신들은 보통 낮 시간동안 본향당 안에 머물다 밤이 되면 밖으로 나오기 때문에 밤 시간엔 가능한 본향당 근처에 가지 않는 편이다. 부득이 밤길을 걸어야 할땐 본향당이 있는 길들을 피하는 편인데, 그러다 보니 동네 인근에 있는 본향당 위치는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지금 이곳엔 이런 공터도, 저런 허름한 본향당도 없어야 하는게 맞다. 딴 생각을 하며 걸어가다 엉뚱한 곳에 가버린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익숙했던 장소가 전혀 다른 장소로 바뀌어 버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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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otree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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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환 : 숲의 주인들 5
5.
집에 놀러왔던 시홍이를 배웅하고 집으로 혼자 돌아오던 길이었다. 조금 쌀쌀한 밤이었으니 3학년이나 2학년 늦은 가을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니 작년 가을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리 동네는 읍내라곤 하지만 해가 넘어가면 사람은 커녕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도 구경하기 힘든 곳이다. 어릴적부터 사람들이 다니다 사라진 장소에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한 밤중에 집을 나와 인적이 없는 길을 걷거나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뒤의 텅빈 학교에 혼자 남아 이 곳 저 곳을 기웃거렸다. 왁자지껄하다 조용해진 곳들에선 사람들이 있을 때 생긴 뾰족뾰족한 기운들이 둥글둥글한 기운들로 변한다. 그런 기운들은 마치 커다랗고 부드러운 공 같아서, 내 몸에 부딛히면 나를 그 속에 살짝 집어 넣어주며 자신이 품고 있던 기운을 슬며시 전해준다. 나는 왠일인지 그런 아련하고 아늑한 느낌을 좋아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날은, 봉고차로 애들을 잡아다 육지에 팔아버린다는 흉흉한 소문을 학교에서 듣고 온 날이었다. 조금 무서운 기분이 든 나는 건물 뒤쪽의 골목길로 향했다. 골목길엔 봉고차가 들어오지 못하니 괜찮을꺼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골목길에 들어서며 낮은 담벼락 뒤에서 넘어오는 정겨운 소음과 친근한 냄새들에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얼마나 걸었을까, 담벼락을 넘어 온 된장찌개 냄새에 살짝 허기가 졌다. 이것 저��� 먹고 싶은 음식들을 생각하다 9시가 넘으면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하는 할머니가 떠올랐다. 몰래 부엌에 들어갈 방법에 대해 고민을 하던 중 들려오던 소음들이 어느 순간 사라진 것을 느꼈다. 밤의 고요함은 익숙한 편이지만 이것은 조용함이라기 보다 누군가 내 귀를 틀어 막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걸음을 멈춘 후 주변을 천천히 돌아 보았다. 나는 골목길 한 켠에 위치한 수풀이 우거진 작은 공터에 서 있었다. 공터 중앙엔 허름한 본향당이 어딘가 불편한 사람처럼 비스듬히 서 있었다. 때마침 구름에 가려져 있던 달이 나오며 어두웠던 공터가 밝아졌다. 달빛은 본향당 옆의 시커먼 형체에도 비추었는데 그것은 바위가 아니라 쭈그려 앉은 채 손으로 무언가를 계속 집어먹는 사람, 정확히는 사람의 모습을 한 어떤 것이었다. 보는 순간 아이를 잃고 숲으로 들어간 아줌마를 떠올렸다.
‘그 아줌마는 여기에 남기로 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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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otree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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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환 : 숲의 주인들 4
4.
“촤악!”
문에 쳐둔 발을 젖히며 엄마가 방으로 들어왔다.
“아직도 많이 아파?”
한밤 중에 갑자기 열이 오른 나를 돌보느라 엄마와 할머니가 밤 새 잠을 설쳤다. 해열제를 먹고 나서도 떨어지지 않던 열은 어스름한 새벽이 되어서야 조금씩 내려갔는데, 꿈인지 생신지 알 수 없던 나를 깨운건 밤 새 흘린 땀에 젖어버린 베개의 축축한 느낌이었다. 엄마가 내 머리맡에 앉아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슥슥 헤친 후 이마에  손을 얹었다. 엄마의 따뜻한 손에서 전해진 온기가 몸 속으로 퍼져 나갔다.
“그냥 집에 있을래? 하루쯤 학교 빠져도 되”
“좀 추워”
“땀을 흘려서 그래. 어휴 다 젖었네”
“축축해”
엄마가 이불 밑으로 손을 넣었다.
“연탄 다시 피웠어. 좀 있으면 따뜻해질꺼야”
엄마의 한 숨.
“그러게 집으로 바로 달려 와야지, 무슨 생각으로…”
아팠던 날의 기억. 전 날 시홍이가 집에 놀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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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otree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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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환 : 숲의 주인들 3
3.
“딱”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난걸까? 숲은 이미 깜깜한 밤이었고 어둠에 적응하지 못한 내 눈은 숲 위로 보이는 하늘 빼곤 아무것도 보질 못했다. 엉덩이를 적시던 차가운 기운이 등까지 올라온 것 같았다. 찬 기운에 몸이 떨려왔다.
“따닥”
비슷한 소리. 산짐승인걸까? 깊은 숲속에선 작은 산짐승들도 맹수가 된다고 했다. 그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위를 긁어대는 듯한 거친 목소리였다.
“없다”
뒤 이어 조금 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려갔네 데려갔어”
“그냥 숨은거야. 무서워서”
“니가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긴, 이끼들이 잠잠 하잖아. 보면 몰라?”
“이미 왔다 갔으면 어떡할래?”
“씨끄러워! 찾으면 되잖아!”
“이미 데려갔는데 어떻게 찾아?! 두목한테 이번엔 무슨 핑계 대려고?”
“핑계 델 일 없어! 찾을꺼니까!”
“끝짱이야 완전 망했어! 너랑 같이 다닌 뒤로 뭐 제대로 된게 하나도”
“빡!!”
바위 쪼개지는 소리가 숲 전체에 울려 퍼지더니 무언가 육중한 것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누워 열 좀 식히고 있어”
“아이 그어에 아이그 여…”
“그냥 누워있어. 일어나면 머리통 뽑을꺼야”
“아이기..”
“입 열어도 뽑아”
가는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어이 꼬마”
“……”
“우리 두목이 너 찾아서 데려 오라고 나랑 저기 누워있는 멍청이를 보냈어. 이끼들이 너 잡기 전에.. 너 이끼들한테 뭐 잘못했냐?”
‘이끼?’
축축한 엉덩이에 손을 데자 두툼한 이끼들이 하체를 감싸고 있는게 느껴졌다.
‘이끼다!’
몸을 움직여 보려 했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 지지 않았다.
“숨지말고 죽기 싫으면 빨리 나와. 이끼들 모여들면 나도 감당 안되. 이 근처 이끼들이 단체로 미쳐버렸거든”
어떻게 해야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목소리만으로도, 밖에서 날 부르는 저것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사람이 저런 돌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을리가 없으니까. 그리고 이끼들, 이런 해괴한 이끼들은 처음이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다리와 엉덩이를 압박한 채 축축한 물기를 뼛속까지 보내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느쪽이든, 누군가의 도움 없이 여길 빠져나갈 방법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머리가 뽑혀 죽는 것 보다는 이끼에 덮혀 죽는게 조금 더 낫지 않을까?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 이 꼬맹이가 진짜…”
숲을 뒤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거북이!”
“……”
“야! 자냐?!”
“알하이 알아 어셔요?”
“두목이 죽은거 데려와도 된다고 했던가?”
이끼! 이끼한테 죽는게 나을 것 같았다. 솥불미가 해줬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숨을 멈췄다. 그 순간 내 앞에 있던 수풀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젖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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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otree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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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환 : 숲의 주인들 2
2.
‘반짝’
내려다 보니 손목에 찬 빨간 시계였다. 손목 시계 속 무당벌레 모양의 초침이 겁에 질려 주변을 살피는 것 처럼 보였다. 삼촌은 사우디 아라비아에 다녀오며 이 빨간색 시계를 선물로 사왔다. 여자 애들 쓰는 물건 같아 보여 책상 서랍에 넣어 두었는데, 언젠가 집에 놀러 왔던 시홍이가 특이한 초침 모양에 감탄하는 모습을 본 뒤로 학교를 가지 않을때만 가끔 차고 다닌다. 오후 5시. 숲 속은 순식간에 어두워진다.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밤이 되기 직전의 어둑한 하늘이 보였다. 시계는 그 어둑한 하늘 빛을 간신히 받아내고 있었다.
“숲이 작정하면 가끔 나도 길을 잃어”
도깨비 솥불미가 그랬다. 커다란 숲이 마치 하나의 사람이나 귀신인 것 마냥 그렇게 말했다. 빠져 나오는 방법도 말해줬었는데, 뭐였더라…?
“그러니까, 깊은 숲 속이 다 어둡고 거기가 거기인 것 같지만 가장 어두운 부분이 있어. 음… 그림자가 이렇게 이렇게 쌓이는 곳인데, 꼭 거기만 되는 건 아니고, 그냥 적당히 어둡다 싶은 곳도 괜찮아. 어쨓든 거기 들어가 숨을 참고…”
“숨? 안 쉬어? 계속?”
“계속 안쉬면 죽잖아, 그러면 안되지. 참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참는거야”
“아아…”
“그렇게 조용히 숨죽이고… 아니 숨참고 기다리면 쓰윽~ 길이 나타나. 보통은…”
숨어야 모습을 드러내는 길이라니, 해괴하다. 그 때 어디선가 마른 나뭇가지가 밟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산짐승인 걸까?’ 눈을 찌푸린 채 어두워진 숲속을 살펴보는데 우거진 수풀들 사이로 그늘이 겹쳐져 다른 곳보다 조금 더 어두운 곳이 눈에 들어왔다. ‘저 정도면 될까?’ 그쪽으로 조용히 자리를 옮긴 후 주변의 늘어진 풀들을 당겨 몸을 가렸다. 눅눅한 풀내음이 콧속으로 들어왔고 바닥에서 올라오는 습기가 바지를 조금씩 적셔갔다. 숲에 스며드는 느낌, 이끼가 조금씩 내 몸을 타고 올라와 몸 전체를 덮어 버리는 상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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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otree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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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환 : 숲의 주인들 1
1.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도는 느낌을 받았던 30분 전 쯤, 바닥에 놓인 뾰족한 돌을 들어 커다란 나무 밑둥에 조금 더 큰 흠집을 낸 뒤 방향을 바꾸어 다시 똑바로 걸어 보았다. 원래 나무나 바위들의 모양이라는 게 열이면 열 모 두 다른 데다 놓인 위치들도 제각각이다 보니, 비슷해 보 이는 숲 속의 장소들도 숲 길을 많이 다녀본 나에겐 마치 문패가 있는 집들처럼 구분이 가는 편이다. 만약 길을 잃는다 해도, 구분되는 서로 다른 장소들을 하나씩 지워 가다 보면, 숲을 빠져 나올 수 있다. 보통은 그렇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조금 다르다. 숲 속의 서로 다른 장소들이 교묘하게 나를 속여 계속 똑같은 장소로 돌려 보내고 있었다. 밟고 지나간 장소들 중 조금 물렁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그런 무르고 부드러운 곳들이 조금씩 움직이며 나를 여기에 계속 묶어두고 있는 것 같았다. 숲의 누군가가 내게 화가 났거나 나를 가 지고 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유가 뭐가 되었든, 이렇게 같은 곳만 끝없이 맴돌기만 하다가는 결국 어떤식으로든 죽게 될 것이다. 지난 달 숲 속에서 발견되었다는 시체도 어쩌면 나처럼… 
 “아이를 잃었다나 봐요” 
 주전자 당번을 하며 교무실에서 들은 이야기. 아이를 잃 어 슬퍼하던 어떤 아줌마가 숲으로 들어간 뒤 일주일 후 죽은 채 발견되었다. 친구 시홍이 말로는 몸 대부분을 이끼가 덮고 있었고 불룩 튀어나온 뱃속엔 풀이 가 득 차 있었다고 했다. 
 “배가 고프니까, 그래서 풀을 먹은 거야. 막, 이렇게…”  
 시홍이가 양팔을 휘두르며 허겁지겁 무언가를 입에 집 어 넣는 시늉을 해보였다. 
 “배고픈데 풀을 왜 먹어? 칡 뿌리 같은 걸 먹어야지” 
 “머리가 이렇게…” 
 시홍이가 머리 근처에서 손가락을 휘휘 돌리며 무심하게 말했다. 나도 머리가 이상해지면 배가 가득 찰 때 까 지 풀을 뜯어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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