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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
1. 칭찬 동호회
일정 때문에 늦게 합류하게 됐는데 멀리서 달려가는 날 보고 동시에 같이 팔을 흔들며 뛰지 말고 천천히 오라고 해맑게 웃던 S와 C의 모습이 참 강렬하게 각인됐다. 무해하고 귀여운 사람들. 둘의 따뜻한 기운 덕에 하루 종일 미소를 머금느라 그날 약속이 끝나고 귀갓길에 광대가 욱신거렸다.
2. 웃음이 많아졌대
웃음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최근엔 유난히 웃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같으면서 다르기도 한 M과 작년에는 떨어져 지낸 시간이 길었는데 올해는 더 가까이서 일상을 함께할 수 있는 날들이 많아져서 좋다. 누군가의 행복이 나에게도 기쁨이 된다는 걸 배우게 되고, 갈수록 애정이 깊어지는 듯하다. 앞으로도 빈틈없이 사랑받고 예쁜 미소 더 보여줘라.
3. 노래하며 하는 일
가본 건 나도 한 번뿐이었지만 아주 오래 재방문을 기약했던 바. 오랜만에 찾았는데 홀에서 술을 제조하시던 직원분이 내내 노랫말을 따라 부르셨다. 리듬과 술을 동시에 타며 무심한 듯 세심하게 챙겨주셔서 잔잔하니 좋은 기운이 번졌다. 나오고 있는 노래를 문의했더니 삐뚤빼뚤 글씨로 제목이 적힌 쪽지를 받았다. 요즘엔 누군가의 순수함을 엿볼 때면 그게 참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인다. 이후에 그분도 우리를 기억하고 계신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듣게 됐는데,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건 늘 감사한 일이다.
4.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
거친 표현 때문에 닳고 닳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반짝이는 눈빛이 천진한 어린아이 같았다. 뻔하게 닳은 게 아니라 오히려 나이답지 않게 솔직한 거였다. 단편적인 말과 행동으로 사람을 오해할 뻔했다는 내 오만함을 다시 마주하고, 모두가 가는 길의 반대를 고집하는 그를 알게 된 것이 귀감이 되었다.
5. 귀여움 받는다는 것
젊음이 무기였던 나이를 지나 점차 조급해지기 시작할 때, 사회가 그 조급함을 부추긴다고 느끼는 시기에 날 애기처럼 대하는 J 앞에서 묘하게 수줍어졌다. 어른이고 싶은 나도 누군가의 눈엔 그저 애기구나. 멀리서 온 건 정작 본인이면서 오느라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자기는 알아서 먹겠다면서 계속 내 접시를 채워주고, 예쁘다며 잘할 거라며 기특하다며 칭찬을 쏟아내고. 뭐 이리 사람이 다정하지? 눈에 계속 담고 싶은, 닮고 싶은 밝고 상냥한 그녀. 마침 가라앉기 딱 좋은 날이었는데 J의 에너지를 빌려 웃을 수 있었다.
6. 걱정이라는 위로
좌절에 약한 내가 이 시스템에 맞춰 실망스러운 소식들에 익숙해지고 무뎌져야 한다는 게 영 불만이지만 곁에는 날 건져 올려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그리고 그런 고마운 손길을 삐딱하게 보지 않을 수 있는 여유가 아직은 남아있다는 것에 안도를 느낀다. 걱정된다는 말이 참 힘이 될 때가 있다. 내 편이라는 얘기 같아서. 언젠가 홀로 감당해야 하는 무게가 되면, 지금 저장해 둔 예쁜 마음들을 꺼내 곱씹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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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부족하다. 소박한 낭만 말고 번거롭고 거추장스러운 낭만이 필요하다. 그냥 식당에서 맛있는 거 먹고, 카페에서 커피 마시는 걸로는 충분하지 않다. 뭐가 좋을까?
집에 친구를 초대해서 노란 조명 어둑하게 켜놓고 촛불도 몇 개 밝히고. 너무 시끄럽지도, 조용하지도 않은 음악을 켜두고. 뭔가를 만들고 싶다. 버킷리스트를 쓰거나, 쿠키 같은 걸 굽고 따뜻한 드립백을 내려 마시고 싶다. 보드게임이나 카드게임을 해도 좋고. 같이 음식을 만들어 먹어도 재밌겠다. 왁자지껄 웃고 산만하게 떠들며 즐기는 홈 파티.
그러고 보니 더 어렸을 때는 파자마 파티도 하고 수련회도 갔는데. 새벽에 오고 가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들. 함께 맞이하는 아침. 운동회를 하고 체험학습을 떠났는데. 응원하고 노래하고. 다음날 버스에서 먹을 과자를 고르며 설렜던. 그런 순간들이 그립다.
귀찮아도 괜히 밤늦게 대충 입고 나가서 아이스크림 사 먹고 동네 한 바퀴 걸으며 우스운 장난을 치고. 자전거 타고 빵집에 가서 빵을 사고 집에서 챙긴 과일과 피크닉 매트를 들고 한강에서 일렁이는 물결을 보는 건 어떨까.
옹기종기 한 차에 겨우 타서 바다로 떠나고 싶다. 바다에서 뛰다가 우스꽝스럽게 발을 헛디뎌 넘어지기도 한다. 바지를 걷어올리고 물에서 첨벙거린다.
캠핑이나 글램핑도 좋겠다. 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카트에 먹을거리를 잔뜩 담고. 나��� 냄새 맡으며 피운 불에 고기를 구워 먹고 라면도 끓인다. 스모어도 만들고 모닥불 앞에서 멍하니 사색에 잠긴다. 그러다가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쓸데없는 것에 웃고 무모한 것에 울고 싶다. 별 거 아닌 것을 기념하고 축하하고 싶다. 서로 편지를 쓰고 선물도 골라서 주고받는 거다. 굳이 고생스럽게 포장해야 한다. 대충 쇼핑백에 담지 않고 포장지에 감싸서 리본도 묶어. 폴라로이드 사진도 찍는다.
비 맞고 땀 흘리고.
여럿이서 롤링페이퍼 쓰던 시절이 그립다. 몰랐던 친구들의 마음. 내 모습에 대한 재인식. 이별에 대한 아쉬움.
쿨해지고 싶지 않다. 유치하게, 귀찮게 보내는 날도 꼭 있어야 한다. 심야나 조조 영화를 보고 나와서 함께 꽃을 골라 서로에게 선물한다. 우리만의 전통을 만든다. 벚꽃이 피면 어디서 만나기로 해.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뭘 먹기로 해. 신년에는 어떤 걸 주는 거야. 처음 반팔을 꺼내 입은 날에는 뭘 하고. 괜히 기다려지는 날들을 많이 만든다. 기대된다는 건 좋은 감정이니까. 너무 많은 낭만을 잊고 살았던 거 아닐까. 허전하다! 함께 유치해지고 귀찮아질 사람이 없어서, 그걸 낭만이라 여길 사람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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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줄 알았는데 잠시 주춤한 것
아주 희미하게, 그리고 천천히 방향을 잡게 되는 것 같다. 잡힐 듯 말 듯 닿을락 말락한 경계에서 확신도 혹시 오만일까 싶어서 여전히 모르겠다는 말 뒤에 숨는 게 더 익숙하지만.
올해 초부터는 정말 무언가 마음의 불씨가 꺼진 것처럼 의지가 없었다. 어른이 된다는 게 이런 건가 믿고 싶을 만큼 미지근하고 단조로운 생각을 품었다. 적어도 잘하지는 못할지언정 열심히 하는 캐릭터였는데, ‘무엇을 위해?’라는 질문이 생긴 이후부터는 그것마저 놓아버리고 싶었다. 실제로 ��기로 다짐한 적도 있었는데 적당히 하자는 비겁한 마인드를 모토로 세운 직후에 팀원으로부터 들은 말이 있었다. “같은 과 친구가 민주님이랑 같은 팀인 적이 있었는데 똑똑하고 야무진 분이라고 하더라고요.”
조금 반갑고 약간 씁쓸한 말이었다. 그래도 나와 함께 일한 사람들에게 그렇게 기억되는 편이 나을 테니 나름의 동력삼아 ‘열심히’와 ‘적당히’ 중간쯤에서 해야 할 것들을 해치웠다. 그러다가 옷차림이 두꺼워질 무렵에 다시 가슴 뛰는 일을 발견하기까지. 몇 차례의 회의감과 한차례의 번아웃 뒤에는 설렘을 극도로 의심하게 되었다. 늘 앞날에 대해 고민이 많던 내게도 드디어 기다리던 날이 오려나. 답을 찾는 건 그저 기분 좋은 일이라고만 생각했지, 불안하고 무서울 수 있다는 건 몰랐던 것 같다.
꿈이라는 건 참 위태한 거구나. 하고 싶은 게 없어서 방황하던 나에게 ‘이거 아니면 안 된다’라는 마음이 들 만큼 간절한 목표가 있는 사람들은 반대로 그게 안됐을 때 극복할 수 없다는 뜻이니까 꼭 좋은 건 아니라던 친구의 조언이 떠올랐다. 더 이상 ‘아니면 말고’, ‘어쩔 수 없지’ 같은 속 편한 방어는 없다. 시야를 흐릿하게 막고 있던 것들이 사라지면서 직면해야 할 일이 더 많아졌다. 무지에서 벗어난 순간부터 용기 내고 부딪히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진 그날 밤에는 차라리 모를 때가 좋았다는 창피한 마음까지 들었다.
‘최연소’나 ‘최초’와 같은 타이틀에 유독 매력을 느끼지만 유감스럽게도 겨우 따라가기 급급한 쪽이었다. 본래 성향 자체도 느린데 지금은 특히나 뒤처지는 축에 속한다는 걸 주변 사람들을 통해 가끔 상기할 때가 있다. 언제나 주변에 언니들 뿐이었던 나도 이제는 언니라고 불릴 일이 많아진 처지에서 꿈은 당연히 더 요원할 수밖에 없다. 시험 시간이 5분 남았는데 못 푼 문제가 서른 문제인 사람처럼 초조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오늘 내가 위안 삼을 수 있는 이유는, 생을 마감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은 나이에 한 나라의 리더가 되는 사회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나이에 데뷔해서 조기 은퇴하는 스타가 되고 싶었지만 중년에 활동적인 마라토너 운명이겠거니. 동경과 열등감 사이에서 여유를 가지고 줏대를 챙기려고 한다. 내 삶을 설계하는 데 필요한 레퍼런스 정도로 참고하며 정신 건강을 돌봐야지. 어차피 내 전략은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버���는 것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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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했거나 발견했거나
나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싶은 순간이 많아진다. 어딘가 깊이 숨어있다가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거듭되면서 이제야 발견한 건지. 없었는데 우후죽순 새롭게 생긴 모습들인지.
싫어하던 음식에서 좋은 맛을 느낀다. 배 한 조각이 시원하고 달구나. 두부구이가 바삭하고 고소하구나.
보고 듣는 것에 쉽게 울컥하기도 한다. 잘 짜인 각본에도 울림이 없던 내가 허술한 것에도 볼 가렵게 눈물을 쏟고.
마음가짐이 변하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사람을 보는 시선이, 세상을 사는 방식이 변한다. 어떤 변화는 왜 이제 왔나 반갑고, 어떤 변화는 기어이 왔구나 질색이다.
맺지 못한 결론
끝나지 않은 이야기
덮어둔 진실
외면한 문제
궁금해하다가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기로 하고, 도전하려다가 이만 포기하기로 하고, 더 나아가려다가 안주하기도 한다.
추한 것도 굳이 찾고 말겠다고 달려들다가, 눈앞에 버젓이 있는 것도 애써 안 보려 한다.
무엇에도 만족하지 못하다가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연민을 모르다가 지나치는 것에도 안쓰러움을 느낀다.
사소한 것에도 목숨 걸다가 중요한 것에도 태평하고, 야망만 가득하다가 목표도 없어진다.
모르는 게 상책이야
알면 다쳐
기대를 안 하는 게 편해
그러려니 하자
어차피 이해해 보려는 마음도, 굳세려는 다짐도 다 오만인데. 평안해진 건지 회의적인 건지.
참 듣기 싫고 도움도 안 되던 진부한 말들이 무의식 어딘가에 콕 박혀 잠들어있다가 하루아침 깨어나 건드리기도 한다. 뻔한 게 극도로 싫었던 사람에서 클리셰로 점철된 사람이 되기까지.
진정 몇 해 더 산 선배들의 지혜였을까, 사실 비겁해진 패자들의 합리였을까. 저 세상의 진리를 깨닫게 된 건지, 이 세상의 거대한 물결에 휩쓸리게 된 건지.
결국 모든 것이 다 한끝 차이구나.
멋진 어른이 되는 게 꿈이었던 나는 늘 멋진 게 무엇일까 고민했는데, 올해 들어서는 어른이 뭘까 더 고민한 게 된다.
어른이 되면 용기가 생겼다가 노인이 되면 그 용기를 다시 잃는 것인가. 노화를 겪으면서 생기는 신체 변화. 키가 작아지고 어깨가 굽는 게 마치 마음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물론 신체의 변화로 인한 마음의 변화일 수도 있겠지만 마��의 변화로 인한 신체의 변화일 수도 있겠고. 무관했던 둘이 서로 기가 막힌 우연으로 얽혀들어간 것일 수도 있겠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가 고민하다가 어떤 노인이 되고 싶은가 고민하게 된다.
과거를 향하던 질문들이 미래를 향한다는 건 좋은 걸까. 과거를 향하는 건 바보 같았지만 가벼웠고 미래를 향하는 건 유익하지만 무겁다.
만사가 스펙트럼인 것 같다. 진지함도, 용기도, 솔직함도, 사랑도. 하물며 이분법적이던 성별도 스펙트럼이라고 주장하는 세상인데 어쩌면 당연한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철학에 관해서는 진지해도 관계에 대해서는 가벼울 수 있구나. 큰 소리치고 주목받는 일에는 용기 있어도 신념이나 가치를 수호해야 할 때는 비굴할 수 있구나. 감정은 솔직하게 고백해도 과거는 철저하게 감출 수 있구나. 가진 것을 전부 주고 싶은 사랑과 부족함을 끌어안고 싶은 사랑도 있구나.
모든 것이 스펙트럼이기 때문에 옳거나 틀린 것도 없고 조금 다르거나 많이 다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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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괜찮은 것 같다가 집에 돌아와 쭈그리고 앉아 사실은 괜찮지 않다는 걸 인지하게 되는 날들이다. 퍽 괜찮은 삶에서 어떻게든 병적으로 불행할 이유를 찾아내는 건가 싶어서 침잠하는 것도 죄스러울 때가 많다. 이런 감정을 느낄 자격이 없는 사람 같아서, 복에 겨워 만족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따끔한 마음들이 다시 나를 할퀴고 있었다. 나의 무수한 검은 것들 뒤에는 언제나 해결책과 원인을 묻는 질문이 따라오니까, ‘몰라, 그냥’이라는 답을 하는 스스로가 참 우습기도 했다. 언제부터 감정이라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닌 맥락과 논리, 설득력이 필요한 주장이 되어버린 걸까.
그래도 피하지 않고 정직하게 느낄 줄 아는 모습이 기특하다며 다독일 수도 없었다. 나를 알고자 골몰하는 시간보다는 쌓이지 못하도록 바쁘게 물리치고 거둬내려는 성향이 강해졌다. 더 이상 눈을 부릅뜰 용기도 잃어버렸는지 질끈 감아버리고 말았다. 그저 세월에 풍화되어 조금이나마 있던 멋조차 잃었을 뿐인데 철든 어른 흉내를 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른이 된다는 게 이런 거라면 세상은 얼마나 희망이 희소한 곳일까.
오랜만에 마주한 사람들의 반응은 상반되었다. 가능성이 많고 똑똑하게 잘 해내는 안정적인 사람이면서, 한편으로는 고고한 척하지만 겁도 많고 고민도 많은 패배자였다. 완전히 빛을 잃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조언이 반갑게 들리지 않았다. 무엇을? 어떻게? 이루며 살고 싶은 욕심은 있는데 방향이 없는 한심한 사람은 뭐라고 불리던가.
지지 않고 팔지 않은 사람의 인터뷰를 몇 편 읽는데 온 마음이 막 욱신거렸다. 잊고 살던 것들, 끝내 지키지 못한 약속들. 불과 일 년 전에는 분명 동기로 삼았을 자극제가 이제는 못마땅한 열등감에 계획한 일과를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었다. 이제는 정말 흐느적거리는 삶이 지긋지긋한데, 기운차리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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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좋고 새로우면서도 어려움이 몰려오던 여름이었는데 생각만으로도 두려운 가을이 오고 있다. 어떻게 힘을 내고 어떻게 견뎌야 하나 막연함에 괜히 반가운 적도 없던 더위를 꼭 끌어안고 버틸까 싶었다. 다시 읽어본 지난날의 글들은 유치하고 묘하게 더러웠다. 진지하게 읽었을 리 없는, 내가 언젠가 비웃었던 딱 그 정도 수준. 나는 왜 나이가 들수록 찌질한 글을 쓸까 그것도 씁쓸하고. 괴로울 때 글을 찾았는데 이제는 글이 날 괴롭게 한다. 원하지 않았던 시선들 때문에 겨우 지켰던 솔직함도 사라지고 없으니 내가 품었던 작은 세계가 하나 죽은 것 같다. 어려운 여름과 발악하는 가을. 내 앞 거울에는 구부정하고 멋없는 형상 하나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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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자꾸 슬퍼지고 울고 싶어져
울고 싶은데 나오지 않는 눈물은 간지러운데 나오지 못한 재채기 같이 답답해
난 그곳에 해답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힌트도 없었어
발신하지 못하는 편지가 다시 생기기 시작하고
포용을 배웠나 했더니 더러운 원망이잖아
그럼 그렇지
역시 모난 건 재미없어
생각보다 끝이 이를지도 몰라
이런 기분 느끼는 거 싫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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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을 쓴다는 말은 왠지 그럴듯하게 들려서, 결핍이나 불안정과 다를 바 없는 것을 멋지게 이름 붙였던 거였을지도 모른다. 이게 내 마음을 다스리는 방식이라는 건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평온할 때는 아무런 글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기쁨이 되는 것들을 적을 때조차도 그건 어둠 속에서 발견한 기쁨이었던 것은 몰랐다. 어딘가 세상에 자취를 남기듯 글이 남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아무리 글이 좋아도, 몇 문장 적기 위해 불안정한 것보단 안정적이고 소재가 없는 편이 이롭겠다. 여태 이게 평온이라는 것을 모르고 지냈는데,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지는 걸 보니 무사히 평안을 누리고 있었구나. 소강을 유지하고 싶은 욕심에 피어오르는 문장들을 누르고 미루다가 이기지 못했다.
2. 낭만이 고갈되었다고 했을 때는 새로움이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어여쁜 성장이었다가 애처로운 성숙이었다가 반갑지 않은 노화가 되어버린 이 변화의 단계 속에서 몸도 마음도 닳고 소모된다. 새로움이 없다는 것은 평온하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 내게 더이상 가슴 떨리고 두려운 처음이 없고, 반가운 두 번째와 익숙한 세 번째, 지루한 네 번째, 지겨운 다섯 번째만 남았다는 것이 내 삶을 얄팍하고 단조롭게 만들었다. 무거워지는 몸과 함께 감정과 정신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방법만 알 수 있다면, 무게 추를 전부 제거하고서 튀어 오르는 발걸음과 붕 뜨는 마음을 회복하고 싶다가도 어지러운 새로움 속에서 위태로울 자아를 생각하자니 겁이 나서 고개를 젓고 말아버린다.
3. 드디어 나를 멀뚱히 쳐다보던 현실을 마주 볼 수 있게 되었다. 좋은 것보다는 슬픈 것에 가깝다. 요즘에는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도 사그라들었다. 뭔가 열심히 해보고 싶은 마음도 전만큼 크지 않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수동적으로 살고 싶기도 하다. 변덕스러운 사람이라 이러다가 또 내일 아침에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어른들의 말처럼 평범한 것도 어렵다는 것을 이제야 인정할 수 있다. 그동안 내 그릇에 맞지 않는 허황된 꿈을 꿨던 것은 아닌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찬찬히 돌아보고 하나씩 소거하며 방향을 잡아보려고 하고 있다. 슬픔이 찾아와도, 현실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게 아니라 오롯이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까 후회도 내 몫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이따금씩 아주 조금만 아쉬워하다가 말고 지내기로 하는 거다.
4. 지금 현재는 사랑의 부재가 나를 가장 힘들게 한다. 어쩌면 내게는 사랑이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유치한 체념을 할 때쯤 들려오는 좋은 소식에 그나마 정신을 바로잡았지만, 여전히 내 곁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이 힘들다. 주변에서 열심히 연애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그냥 사랑 말고 연애를 할까 흔들리기도 한다. 분명 나에게 맞지 않는 처방인데, 사랑이 없는 연애 속에서 내 결핍은 불어날 걸 알면서도 올해가 지나기 전에는 규칙적으로 일상을 공유하고 만나는 대상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을 쉬이 떨칠 수가 없다.
5. 개운하고 맛있는 대화를 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 싶지만 답답한 건 나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아직은 오만을 버리는 연습이 더 많이 필요하다. 나의 만족을 내려놓으니 간지러운 부위를 긁어볼 시도마저 좌절되어도 괜찮았다. 나도 이제는 듣기 좋은 말을 제법 자연스럽게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한 점 거짓 없이 솔직한 것보다는 나를 속여서라도 상대를 무안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렇게 나를 속이는 훈련이 쌓이다 보니 실제로도 제법 단순해졌다. 융통성이라고는 없던 나에게 새롭게 생긴 단순함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데, 이대로 고유의 색을 잃게 될까 멈칫하게 된다. 보편적인 선호에 나를 맞추고 싶은 건지 나를 지키고 싶은 건지 갈팡질팡이다. 무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잠깐 보류하기로 했다.
6. 유년기부터 마음속에 품었던 욕구가 있다. 한때는 당연히 올 미래였고, 그러다가는 간절한 꿈이었고, 지금은 철없는 환상이 되었다. 완벽한 짝은 있을 수 없다고, 그냥 세상이 그렇게 설계된 것이라고 위안 삼으며 기대치를 아무리 낮추려고 해도 나도 모르게 실망이 뿌리를 내리면 이 마음을 어쩔 줄을 모르겠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가 안되었나 보다. 서운함을 느끼는 것도 죄책감이 든다. 너를 그냥 이대로 사랑하고 싶다. 다른 것들에 앞서 부족함이 눈에 먼저 들어오지 않도록 애를 쓰면서도 맥을 못 추리고 힘없이 무너지는 나라서 미안하다. 무너진 마음을 일으키는 데 시간이 필요한 나라서 미안하다. 이렇게 부족하고 못난 사람이라 미안하다.
7. 나를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을 앞에 두고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입맛에 맞지 않는 사담을 늘어놓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서로 궁금하지도 않은 각자의 얘기만 나누는 영양가 없는 사이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가끔 내가 용기 내 하는 질문은 그대로 튕겨져 나와 허공에 어색하게 둥둥 떠다닌다.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 옆에서 나는 매번 작아진다. 함께 시간을 보낸 후 나누지 못한 사연을 한가득 안은 귀갓길 공기는 나를 외롭게 만든다.
8. 서로 삶의 속도가 다르게 흘러가다 보니 저 멀리서 ���려오는 소식 몇 가닥에 의존해 관계를 연명한다. 어느 날에는 가늘게 붙어있는 숨마저 툭 하고 끊기게 되는데, 그걸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저만치 멀어져 남이 된 후였을 것이다. 우리에게 없는 건 마음이 아니라 시간뿐이니까 괜찮다고 말했었다. 실상은 아무리 마음이 있어도 시간과 거리가 허락하는 근접성이 부재하면 그 관계는 소용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도무지 적응하기 어렵다. 미룰 수도 없는 일이라면 차라리 선수쳐 마음속에서 정리하는 방법도 깔끔할 테다. 이미 자발적으로 생명을 이어갈 수도 없는 지경의 그 관계를 어떻게든 살려보겠다고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까지 완전히 숨이 사그라져 소멸되기를 기다린다.
9. 더운 게 싫다. 더운 건 싫지만, 여름을 싫어하기에 여름은 너무 청춘이다. 지나치게 청춘이다. 여름에는 모든 것이 청춘이라는 단어로 용서된다. 내 청춘이 아무리 힘없고 약해도 여름에 속아서 지나친 청춘인 척을 한다. 내 청춘이 낭비되는 것 같아서 불안할 때쯤 여름이 온다. 닳아날 것처럼 멀어지다가도 기특하게 나를 찾아주는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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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낭만이 고갈된 무감흥의 삶
사회와 가정에서의 괴리가 뚜렷했던 사날없는 아버지는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을 엄격히 삼갔다. 그 모습이 유격의 정도를 키웠다는 원 뒤편에 나도 건조함을 닮아가고 있었다. 탓을 하자면 세월이나 생채기도 무고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갈수록 부녀가 상통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비틀고 비틀어야 어렵게 추출되는 표현들. 모인 표현들조차도 윤기를 찾을 수 없었다.
2. 호흡하는 법
달리다가 걷다가. 도저히 숨이 차서 속도를 늦추고 싶어도 유독 빠르게 흐르기로 작정한 시간의 변덕에 눈치가 보여 보폭을 넓힌다. 멈춰 서도 심장이 한참을 과로한다. 호흡이라는 것은 어색한 본능이라 의식하면 부끄럼을 탄다. 가쁜 숨이 리듬을 되찾는 방법은 잊어버리는 것이다.
3. 비우거나 지우거나
어질러진 집을 치우고 따듯한 요리를 해먹고 가끔은 가족과 어리숙하게 화목한 시늉을 해보는 것이 기쁨으로 다가왔다. 딱 그 정도. 내 상태가 언제 이렇게 엉망이 되었는지, 알고 싶지도 않은 소식들을 매일 전해 들어야 하는 것이 과중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입맛에 맞지 않는 것도 죄다 삼키다가 시원하게 게워낸 기분이었다. 내 정신이 세상의 소음에 의해 더렵혀지고, 때묻은 정신이 다시 세상을 오염시켰다. 분명 소란이 선율로 들릴 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지금은 정말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아.
4. 나에겐 로맨스, 너에겐 코미디
네가 너무 좋아서, 뒤집고 돌려가며 제자리를 찾아야 하는 퍼즐 조각을 힘으로 이어붙이고 말았다. 나의 성급함에 너라는 조각의 테두리가 허물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알면서도 진심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에 감추려고 했었나. 너의 다채로움을 면밀히 보려고 하지 않았다. 너의 분홍빛이 나의 붉은빛과 같다고 과신했다. 너의 분홍빛을 흉내 내고 싶었나. 나의 노래에 대한 너의 답가를 재촉했다. 지난날의 미숙함을, 어리석음을, 오만함을 너의 발치에 슬며시 가져다 둔다. 그저 너의 손을 잡고 걸음을 나란히 하고 싶다는 한 사람의 조급한 고백에는 폭력성이 짙게 묻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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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열하자면 끝도 없는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눈부시게 빛나리라 염원했지만 고장 난 불빛처럼 꺼졌다 켜지며 내내 깜빡거리기를 반복했던 것 같다. 2년의 청춘을 바쳐 얻은 승리마저 소박한 실패가 스며 조금씩 훼손되었다. 다들 그렇겠지만 제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세상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았을까. 견디기 어려운 좌절의 무게에 홀로 울지 않았을까. 무모한 만남과 어지러운 이별에 씁쓸함이 짙어지지 않았을까. 보란 듯이 굳게 세운 의지도 쉴 새 없이 재단하는 세상의 잣대에 꺾이지 않았을까.
과거에 사는 버릇을 못 고치는 내가 유일하게 미래에 기대를 걸어보는 날이다. 그렇게 건 기대가 모두 빚이 되면 해가 지고 밝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들이 괜히 부러웠다. 잡다한 부스러기를 털고 희게 시작한 해는 갖가지 기발한 방법으로 금세 지저분하고 아프게 물들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런 날조차 희망을 얻지 않으면 삶이라는 것이 아득하기만 하지 않겠냐고 반추해 본다. 불확실함 속에서 분명한 지표라고는 야속하게 흘러가는 시간뿐인데 그 지표가 크게 바뀌는 날이니까.
다시는 더러워지지 않을 목적으로 청소를 하는 게 아니듯 그렇게 우리는 바보같이 망각하고, 마지막이라 다짐하며 속아본다. 이제까지를 이야기함으로써 앞으로를 살아내고자 하는 마음을 상기한다. 다시 얼룩지더라도 닦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특별한 날을 특별하게 기념하고, 새로운 날을 새롭게 맞이하는 아이 같은 마음을 회복해야 삶을 이어나갈 힘을 얻지 않겠냐며. 너무 쿨한 척, 어른인 척 살지 않아도 괜찮은 것 아닐까. 과감하게 울고 과장되게 웃는 서로의 연약함과 순수함을 애처로이 봐주는 시선을 되찾기를. 환희가 가득한 앞날을 위하여 스스로의 ���지가 되어주기를.
Bye my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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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 대해서 잘 안다는 건 뭘까.
그 사람의 과거를 아는 것? 아픔을 아는 것? 취향을 아는 것? 비밀을 아는 것? 고민을 아는 것? 생각을 아는 것? 사고방식을 아는 것? 가족을 아는 것? 가족에 대해 아는 것? 연인을 아는 것? 연인에 대해 아는 것? 그 사람을 웃게 하는 것을 아는 것? 울게 하는 것을 아는 것? 약점을 아는 것? 강점을 아는 것? 실력을 아는 것? 잠재력을 아는 것? 습관을 아는 것? 버릇을 아는 것?
누군가와 친하다는 건 뭘까.
신뢰하는 것?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 만나는 빈도가 잦은 것? 연락을 자주 하는 것? 함께 한 세월이 긴 것? 그 사람이 힘들면 내가 힘든 것? 삶의 무게를 덜어주고 싶은 것? 나눠 짊어지고 싶은 것? 그 사람의 성공을 기뻐하는 것? 기쁨을 축하하는 것? 이해하는 것? 다름을 포용하는 것? 용서하는 것? 너그러워지는 것? 아이 같아지는 것? 순수해지는 것? 성숙해지는 것? 차분해지는 것? 들뜨는 것? 그 사람이 생각나는 것? 그 횟수가 많아지는 것? 궁금한 것? 보고 싶어지는 것? 그 정도가 큰 것? 편한 것? 설레는 것? 불편을 감수하는 것? 아깝지 않은 것? 귀여워 보이는 것? 존경스러운 것? 자랑스러운 것? 가여운 것? 인스타그램 스토리가 초록색으로 보이는 것? 부계정을 팔로우하는 것?
지인은 뭐고 친구는 뭐고 친한 친구는 뭐고 사랑하는 친구는 뭘까.
요즘에는 자꾸 추상적인 게 싫어진다. 갈수록 정의 내리고 기준을 세우고 수치화하는 것에 집착하게 된다. 이게 얼마나 심하냐면 전 연인에게 나에 대한 마음의 크기를 숫자로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5가 호감이고 10이 사랑이라고 가정하면 몇이냐고. 그리고 나는 그에게 “너를 7.4만큼 좋아해” 따위의 말을 하곤 했다.
친구에게는 “나는 상대에 대한 마음이 10인데 그는 7인 것 같아” 따위의 말을 했다. 친구는 상대 마음의 크기를 멋대로 짐작하고 판단하는 게 옳지 않은 것 같다는 답과 함께 아무리 비유라고 하더라도 사람 마음을 수치로 표현하는 건 이상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상대의 마음을 모르는 데서 오는 답답함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문제가 싫다. 성격도 네 자리 알파벳으로 구분 지어 소개하는 세상인 마당에 호감도나 친밀도, 신뢰도도 숫자로 나타낼 수는 없는 걸까? 아니면 유형이라도.
ex) 16 friendships
그의 가장 수치스러운 경험에 대해 알고 있다.
매우 그���지 않다 / 그렇지 않다 / 보통이다 / 그렇다 / 매우 그렇다
ABCD
자주 만나고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 그러나 속깊은 얘기는 하지 않는
: 너는 그 사람이랑 친해?
: 우리는 ABCD야.
물론 해결되는 것이 많지는 않겠지만, 어쩌면 더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진심을 사고 팔고 속고 속이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추상적이라서 생기는 오해와 망상, 그 괴리에서 비롯되는 기대와 실망을 일부 완화할 수 있지 않을까? 기괴할 수도 있지만 나는 단지 더 많은 것들이 명확하고 직관적이었으면 좋겠다.
‘친구’의 사전적 정의를 검색하면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을 일컫는 말이란다. 개인적으로는 동의할 수 없는 정의지만 그럼에도 사회적 약속이라는 점에서 이를 따른다면 가까운 것의 기준은? 오래 사귄 것의 기준은? 가까우나 오래 사귀지 않은 사람은? 가깝지 않으나 오래 사귄 사람은?
ex) 친구의 정의
1. 사적인 일로 일주일에 n 번 이상 만나는 사람
2. n 년 이상 알고 지낸 사람
3. 정서적 교감을 하는 사람 (이것도 모호함)
4. 친밀도 테스트 결과가 70점 이상인 사람
나는 어떤 사람이랑 친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대답을 못한다. 친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친하다는 확신이 들면 그 사람도 과연 같은 마음일지 몰라서. 그 기준이 관대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엄격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가지각색의 기준 사이에서 혼란한 나는 그래서 SNS에 친한 친구 같은 것은 설정하지 않는다. 세컨드 계정도 진작 없앴다. 어디까지 보여줘도 괜찮은지, 이 사람에게 보여줘도 괜찮은지 생각하는 게 머리 아프다. 내가 정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모두에게 공개해 자발적으로 우리 관계를 결정하라는 주도권을 준다.
만나면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서로 어떤 생각을 안고 살아가는지 모르면 친구인가? 나의 안부를 묻지 않고 궁금해하지 않고 나를 찾지 않는 사람은 친구인가? 마음으로 안녕과 행복을 바라지만 더는 만남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친구인가? 친구가 많아 보이는 사람도 사실은 친구가 없을 수 있다.
마음은 빌려주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매번 일방통행만 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받자고 준 마음은 아니지만 못 받았을 때 마냥 태연하게 굴 수 없는 것 아닌가?
사실 우정도 어떤 면에서는 사랑만큼이나 숭고한 것 아닐까? 우정에도 용기와 희생이 필요한데 이 사회가 우정에 수동적이도록 부추기는 것 아닐까? 우정의 힘과 가치를 과소평가하는 것 아닐까? 우정을 잊고 사는 것 아닐까? 우정을 찾자. 우정을 소중히 하자. 우정을 위해 노력하자. 용기 있게 우정하자. 진실되게 우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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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를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글을 쓴다는 답을 한다. 그러다가 이게 취미가 맞는지 고민해 보게 되었다. 즐거움을 위해 하는 행위라는 취미의 정의를 떠올리면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습관에 가깝지 않은가 싶다. 더 솔직하게는 생존 방식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내가 글을 쓴다고 하면 사람들은 일기를 쓰는 것이냐고 되묻는다. 내 글의 목적은 기록 자체에 있지 않다. 가만히 회상해 보자면 글로 감정을 해소했던 건 내가 인지하고 있던 것보다 오래되었다. 초등학생 때 엄마와 다투고 썼던 못난 글을 들켰던 기억. 고등학생 때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아침 먹다가 말고 방으로 달려가 토하듯 글을 썼던 기억. 나의 글은 전하지도 못할 편지를 쓰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직접 말을 할 수는 없어서, 혹은 누구에도 말을 할 수 없어서. 그렇게 혼자 적었던 것 같다.
나는 비워낸다고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머리 안에 있는 것들을 꺼내 밖으로 옮겨놓는 것이다. 일종의 외장 하드인 셈이다. 때로는 그 양이 방대해서 감당할 수 없어 옮기기도 하고, 때로는 정리되지 않는 데서 오는 답답함에 무작정 떠오르는 대로 적기도 한다. 때로는 손으로 글자를 적어내는 물리적 속도가 생각을 따라주지 못해 다음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서 멈추고, 또 멈추고. 완성되지 못한 채 중간에 멈춘 글도 많다.
내 글의 특성이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내용은 밝거나 희망적이지 못하다. 따지고 보면 내포된 함의는 밝고 희망적인 미래를 추구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희(喜)와 락(樂)은 잘 없고 노(怒)와 애(哀)가 8.5할은 가뿐히 넘는 듯하다. 그래도 내 감정을 다스리고, 과하게 침잠하지 않고 나아가는 방법으로서 글이라는 수단이 생긴 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주니까. 그래서 글을 가끔 쓰곤 하는데, 문제는 일부를 공유하면서 시작된 것 같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우울증인지 조울증인지 공황장애인지 겪었던 적이 있다. 제대로 진단받지 않아서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뭔가 문제가 있음을 직감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때의 김민주를 옆에서 봐야 했던 사람들은 알 거다. 그들에게 미안한 구석이 여태 남아있다. 나는 뭐든 미화하는 걸 잘 하는데, 꽤나 시간이 지난 지금도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을 만큼 상당히 수치스럽다. 어찌 됐건 지금의 나를 만든 과정이라는 점에서 무의미하지는 않다고 믿기에 굳이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당시에 내가 좋아하던 작가님이 있었다. 신가영 작가님. 최근에는 작가님 글을 보지 않아서 어떤지 모르겠다. 그때는 인간이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들, 특히 우울감을 정제하지 않고 날 것 그대로 표현한 게 특징적이었다. 그런 감정은 전이된다고 믿는 사람도 있을 텐데, 나는 그때 충격적인 위로를 경험했다. 그간 내 감정을 비정상적인, 그래서 숨겨야 하는 것으로 여겼는데 나와 유사한 시기를 거치는 누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묘한 동질감과 거기서 오는 안도.
그때 작가님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그녀의 성격을 모방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의 감정을 세상에 적극적으로 내보이고,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뭘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변태처럼 나의 우울에 자부심을 느껴 그걸 드러냄으로써 작가님처럼 멋있어 보이고 싶었던 건지, 내가 먼저 나의 치부를 공개해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었던 건지, 반대로 내가 위로를 받고자 고통을 알아달라는 치기어린 마음에 그런 건지.
지금 생각해 보면 벌거벗은 나를 보라며 무모하게 전시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수군거릴 요소를 제공한 것에 가까웠던 것 같기도 하고. Air one's dirty laundry라는 표현이 있는데, 정확히 그랬다. 지금도 물론 한참 멀었지만, 그래도 과거에 비교하자면 성숙이라는 걸 미미하게나마 했을 무렵 그 일에 수치를 느끼면서부터 멈췄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다시 하나 둘 꺼내기 시작했는데, 지금도 그 이유는 명확히 모르겠다. 그저 이 모든 걸 혼자 간직할 수 없는 변태적인 성격을 가진 건지. 아이러니한 건 나도 올리면서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이다. 나보다 타인을 의식하고 눈치 보는 인간도 없을 텐데. 사람들 시선이 두려우면서도 불쾌함을 눌러 삼키고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을 반복한다.
사실 대다수는 제대로 읽지 않을 걸 알고 있다. 그리고 읽는 소수 중에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을 거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 소수 중에서도 극소수와 교감하고 싶은 욕구가 컸던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은 이러한데, 이런 면모를 보고도 곁에 있어주겠냐고 묻는 방식일 수도. 방어기제일 수도.
올해는 유난히 글에서 좋은 경험이 많이 파생되었다. 안면도 없는 누군가 나의 글이 좋다며 연락을 해오기도 했고, 그리 친밀하지 않았던 누군가 나의 글을 꾸준히 보고 있다며 용기 내 말해주기도 했다. 내 글을 읽으며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누군가,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표현하는 게 멋지다는 누군가, 글을 쓰는 나를 보며 본인만의 글을 쓰기 시작한 누군가도 있었다.
계속 글을 공유하는 게 맞는 건지 고민하던 찰나에 내 글이 새로운 인연의 시작이 되기도, 더 깊은 대화의 계기가 되기도, 사유할 만한 주제가 되기도 하는 것을 보며 괜찮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내 글이 더 많은 이들에게 힘이고 위로이자 용기고 도전이자 사랑이 될 수 있도록. Thanks to my dear 누군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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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적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지 않으리라 자연스러움과 비움을 행하다 보니 지난달에 멈춰있던 기록. 오늘은 문득 귀 기울여 들었던 어떤 가사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Vancouver 2, 말이 많았던 그의 사랑 이야기. 조롱과 응원의 양극단 사이에서 나는 응원을 택하겠다.
나는 사랑을 주제로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랑에 대한 사람들의 정의는 다양한데, 내가 그리는 사랑은 순수하고 숭고하고 비현실적일 만큼 이상적이고 완전한 그것이다. 나는 줄곧 사랑이란 그런 것이라 믿어왔고, 그에 근접하지 않은 것은 사랑이 될 수 없다고 부정했다. 그래서 사랑의 무게를 경시하는 인간들을 기오했고 쉽게 사랑하는 인간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사랑에 대한 강박을 지닌 것일지도, 이 모든 게 사랑에 대한 몰이해일지도, 건강하지 못한 사랑일지도, 내 결핍에서 파생된 망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의지적으로 사랑에 대해 꿈꾸기를 멈추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가사를 가득 메운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했다.
나는 아직 사랑의 경험이 없다. 유사성만을 띠는 일련의 크고 작은 해프닝을 겪다 보면 이 세상에 사랑이 존재하긴 하는 건지 의문이 드는 순간이 적잖게 생긴다. 나에게 사랑이 오지 않을 것만 같고, 사랑에 대한 환상만 지닌 건조하고 얄팍한 인간으로 남을 것만 같은 위구심이 생긴다.
그래서 누군가의 낯간지러운 사랑 이야기는 화염과 같은 반가움 이상의 마음을 낳는다. 나는 이렇게 다시 희망을 얻는다. 그래, 이 세상 어딘가에는 사랑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사랑이 나에게도 오기를 짤막한 기도를 띄워본다.
우리 모두 사랑하자. 사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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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무언가 부패한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무엇이 근원인지 모르겠다.
사람을 만나는 게 버겁고 말도, 웃음도 잘 나오지 않는다. 장소가, 날씨가, 상대가 문제라는 착각에 이 결핍을 메꾸고자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나아지지 않은 것은 내가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어코 자리를 만드는 것은 내가 혼자 ���는 시간이 길어지면 나를 기다리고 기억해 줄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지배적이라서. 테이블 위를 오가는 말풍선 사이에는 나를 잊지 말아 달라는 애원도 묻어있다.
빌린 시간을 사는 것 같다. 뒤를 쫓기는 듯한 기분이 싫어서 무거운 몸으로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앞으로 달리는 건지 뒷걸음치는 건지도 불분명하지만.
글도 한동안 쓰지 않았다. 그간 내가 글을 썼던 건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일종의 자가 처방이었다. 하지만 부패한 나는 몇 글자 적는다고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강박처럼 기록하기에는 이 공간의 솔직함을 훼손하는 일만큼은 막고 싶었다. 몇 번의 시도에도 내 글은 번번이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내가 아는 누군가는 의무적으로 일기를 쓴다고 했다. 쓸 게 없을 때는 점이라도 찍는다고. 나는 일기를 쓰지는 않지만 온통 점으로만 가득한 페이지를 상상하게 된다.
여름에는 겨울이 그립고 겨울에는 여름이 그립지만, 그저 그리워하면서 보내기에는 아까운 시간들이다. 분명 겨울에 그리울 여름이라고 생각하니 무더위가 뜨거움이 되고 뙤약볕이 햇살이 되고 더 많은 것들이 예뻐 보여서 어느새 뒤로 하기 아쉬운 청량하고 푸른 계절이 되었다. 여름과 겨울을 겨루던 질문에 언제나 겨울은 춥지만 낭만이 있어서 선호한다고 답하던 나지만 올해는 여름의 짙고 선명한 낭만을 새로이 발견한 첫 해다. 여름이 끝난다는 것은 가을이 온다는 것이고, 가을이 온다는 것은 곧 날이 추워진다는 것이고, 날이 추워진다는 것은 올 한 해가 어김없이 저물어간다는 뜻이기에 마음이 제법 외로워지지만 그럼에도 가을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이다. 어떤 별미나 이벤트의 유쾌함으로 날씨의 불쾌함을 덮는 것이 아니라 녹음이 색을 입으며 자연한 낮과 밤 자체가 이야기가 되고 노래가 되는 것만 같다. 혼자가 더이상 견디는 것이 아니라 지내는 것임을 알게 되었으니 올 가을에는 쓸쓸함도 즐기는 법을 배우면 되겠지. 시원한 바람과 규칙적인 벌레 소리와 달빛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아까워서 이 시간을 붙잡고 싶은 마음에 잠보다는 기록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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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내가 싫어라 하는 모습을 다 갖췄다
온화한 조명이 음산한 어둠을 밝히는 제구실을 하지 못할 때는 빛을 향해 실눈 뜨는 일을 그만 생략한다
나에게 허락된 좁은 세상으로 저 창밖의 구름을 가져와 꿇은 무릎 주위로 차츰 늪을 만든다
늪의 수심이 깊은 탓은 내 수심이다
지름이 퍼지고 높이가 차오르면 표면에 반사되는 일그러진 표정이 보기 싫어 고개를 파묻고 달이 동쪽 어딘가에서 인사를 건넬 때까지 침묵 속에 늪의 범위를 넓힌다
늪은 죄도 없고 사연도 없지만 괜히 생식이 기생이 되고 이로운 것도 해로운 게 되는 억울함을 도맡아 자리를 지킨다
발끝이 멍하게 감각을 잃고 늪이 울타리가 되어 누구도 디딜 공간이 없어지면 그제야 일어나 세상 밖 차가운 기류에 얼굴을 식힌다
금방 붉힐 얼굴을 식히고 금방 젖을 얼굴을 건조하는 일은 왜 매번 하는 건지
결국 너나 나나 사랑하기엔 부족한 사람들인데 둘 중 하나가 아파야 한다면 그건 내 몫이 되겠지
가벼이 소진되는 건 오히려 나였고 오늘도 그 사실에 꿇은 무릎을 차마 펼 수가 없어 달이 서쪽으로 몇 걸음 더 옮길 동안 늪 만드는 일을 멈추지 못한다
나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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