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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떠나 보내고
기둥에 기대면
왼쪽 어깨만이 차다
네가 더 낮다는 점이
기둥으로서 쓸모를 완전히 다하므로
진 김에 어깨가 올라간다
찬 벽과 침대 사이에 코를 박고 숨쉬면
옆에서 나를 잡아 끌어당겨 품에 안았던
그날밤 구석으로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그만하라고 울면서 내 위에 앉았을 땐
어깨 너머 액자 속 반듯하게 펴진 당신이 너무 잘 보였어
되감은 두루마리 휴지처럼
모로 누운 등은 가지런히 숨죽여서
어깨가 올랐다 내려갈 때마다 눅눅해진 채
해가 뜰 때까지 내 다리를 쳐다보지 않았지
나는 덫에 걸렸던 게 아닌데
꺼내준 은혜를 갚으며 살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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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을 불멸로 잘못 옮긴 글이 많더라
불면의 뒤란 안현미
가끔 내가 쓰는 모든 시들이 유서 같다가 그것들이 모두 연서임을 깨닫는 새벽이 도착한다 음력 6월 9일 오늘은 내가 죽은 날 불면을 건너온 혓바늘 돋은 내 불구의 시를 위로하려는 듯 막힌 골목 끝 ‘卍’을 대문 높이 걸어놓은 무당집에서 건너오는 징소리 징징징징 딩딩딩딩 내 불면의 뒤란에 핀 백색의 목련꽃은 말한다 아직은 조금 더 실패해도 좋다고 네가 켜든 슬픔 한 덩어리의 시도 시들고 시들면 알뜰히 썩을 운명이라고 크나큰 실패마저도 그렇게 잘 썩어갈 거라고 모든 연서는 죽음과 함께 동봉되어오는 유서라고 외롬 이라고 음악이라고 왜 음악은 항상 고장난 심장에도 누군가와 함께 도착하고 이미 죽어버린 자들을 느닷없이 호출하는 것인지 불면으로 지낸 음력 6월 9일 오늘은 또 내가 죽은 날 너무 외로워서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뒷걸음질로 걸어갔다던 어떤 사막의 여행자처럼 불면의 밤을 뒷걸음질로 걸어가는 여자가 사라지는 손금을 들여다본다 발자국을 따라 연서 같은, 유서 같은 시를 쓰고 있는 여자가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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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하나가 되자마자 친구들이랑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불렀는데, 이제 그 스물하나도 끝났다.
며칠 전에 친구랑 자우림이 유명한지 **이 유명한지 다른 테이블 가서 물어보자고 내기했었는데. 결국 우리끼리의 토론으로 멈췄고 승패는 나지 않았지만 나는 오늘도 자우림 노래를 들으면서 위로를 받는다.
모두에게 전하는 음이 달린 말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나만을 위한 편지 같을 수 있는지. 자우림이 미리 거쳐간 청춘의 일기를 엿본다.
내일 세상이 끝난다면
우린 끝을 맞으며
우린 그냥 끝 맞으며
- 있지
어린 나의 치기와
살아갈 많은 날들
행복의 파랑새야
제발 머물러다오
- 피터의 노래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나를 받아줄 그곳이 있을까
가난한 나의 영혼을 숨기려 하지 않아도
나를 안아줄 사람이 있을까
- 샤이닝
자유로운 너를 믿어
단단한 마음 이미 네 안에 있잖아
- hola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
지루해 난 하품이나 해
뭐 화끈한 일 뭐 신나는 일 없을까
할일이 쌓였을때 훌쩍 여행을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 점프를
신도림 역안에서 스트립쇼를
- 일탈
어디서 와 어디로 가나, 우리는 모두 사라지리
여름 밤의 불꽃놀이처럼 허무한 끝을 맞으리
그러니 허공에서 빛나는 동안만은 부디
HAPPY HAPPY DAY
- HAPPY DAY
그리고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서 갓 스물이 되었을 땐 고시원에서 그 당시 방영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 드라마를 보며 감동받아 울었었다.
21세기로 실려온 20세기.
드라마 곳곳에 자우림의 가사가 깔려 있었고
신기하게도 등장인물 소개마다 유서가 있었다.
199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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