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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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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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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ungis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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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8
어제 직장동료와의 대화를 통해 오늘 이분을 만난다는 걸 듣고 몇년 전에 이분이 쓴 책을 읽었다고 가져다 주었더니 이렇게 큰 선물을 받았다. 인터뷰를 다녀와 활짝 웃으며 책을 건넨 동료의 얼굴과 두 시간 사이의 공백이 필름처럼 스쳐 눈물이 맺혔다. 시간이 일을 한다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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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ungis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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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9
아카시아향이 코끝을 기분 좋게 찌르는 싱그러운 5월. 마치 보이는 여기가 전부인 것처럼 아둥바둥 살아가다가 보이는 모든 것은 아득해지고 잠잠히 숙연해지는 순간들을 맞는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빛에, 멈춰진 삶에 잔뜩 짜증이 난채로 터덜터덜 걸었던 우간다의 어느 길 끝 모퉁이에서 갑작스레 찾아온 평안과도 같다. 그러니 봄 때문만은 아니다. 아카시아향은 그저 거들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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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ungis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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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6
이런 식의 글을 쓰는 건 너무 오랜만이다. 꼭 일 년 전 마음으로 전했던 축복이 이루어졌음을 지난 토요일에 알았다. 심었었는지도 잊고 있던 씨앗이 자라나 찡하고 마음을 울렸던 순간. 너무 사소해서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일상에서 마음으로 품는 축복과 소원들을 다시금 기록할 용기를 얻었다. 오늘의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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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ungis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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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6
휴일을 맞아 서울사람처럼, 속눈썹 펌을 해볼까 싶어 찾아간 동네 속눈썹 가게(?)에서 만난 언니-아마도 나보다 동생-는 펌약이 들어가지 않도록 내 두 눈의 눈꺼풀 사이를 두텁게 천으로 덮어두었다.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 천에 좀 나가서 걸어봐야겠어요.” “요즘 살이 너무 많이 쪄서 몸이 엄청 무거워졌거든요.” “계속 먹는 약 때문에요.” “유방암이었어요.” “서른 두살 때,”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항암을 8차까지 했었어요.” “그때 혼기를 놓쳤던 것 같아요.” “언젠가는 재발할거고 그런 저를 책임져야할 거라고 다들 저를 부담스러워해요.” “그럴까요..?” “저에게도 선물이 왔으면 좋겠네요.” 더 많은 말을 듣고 나누었는데 몇가지 말들이 징검다리처럼 드문드문 마음에 남았다. 경험한 적 없으니 감히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아픔을 조금은 알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살아있는 오늘, 지금 이 순간이 너무너무 아름다운 때이고 선물일거라고 말해주려다, 다음에 또 오게될 때는 맛있는 커피라도 한 잔 사와야지 다짐하며 참았다. 눈을 감고 있어 귀와 마음에 더 짙게 남은 어제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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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ungis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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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2
“000 이모! 3월 14일은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한테 사탕을 주는 날이라고 하는데, 미안해요. 사탕 가져오는 걸 잊었어요. 근데 이 말 한 거는 다른 이모들한테는 비밀이에요.”
“하나님, 오늘도 000 이모와 공과공부 재미있게 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쭈-욱 재미있게 해주세요.”
주일마다 만나는 선우와 수아의 저 말들이 마음 속에 조용히 자리잡고 있다가, 괜시리 지치고 괜시리 피곤했던 며칠 전 퇴근길, 잠잠히 떠올라 나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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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ungis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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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4
“나는 우리 우간다에 있을 때부터 샘이 밥을 이렇게 맛있게, 신나게 먹으면 그렇게 행복하더라.” 서울에 오면 요즘 사람들이 많이 가는 멋진 곳을 데리고 가겠노라 큰 소리를 쳤는데, 집순이인 나는 결국 지난 번 만난 친구들이 인도해준 코스 그대로 이동해 커피를 마시고 베트남 음식을 먹었다. 오래 기다려 나온 요리를 호로록 냠냠 맛있게 먹는 친구 모습에 저 말이 절로 나왔고 함께 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철두철미하게 챙겼느냐고 늘 서로를 챙겼는데 실제로는 늘 어딘가 부족하고 구멍이 많았던, .5와 .5가 만나 1을 만들어갔던 시간, 그 때 그 시간의 힘으로 오늘을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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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ungis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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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7
날씨 좋은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미리 볶아둔 원두를 갈아 린넨 필터에 내려 마시고 집안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해 따뜻한 햇살 아래 널어두었다. 개운해진 마음으로 따릉이를 타고 근처 극장에 가 여러번 추천 받은 영화 ‘소울’을 보았는데, 일주일 전 만난 친구들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코로나가 한참 극성이던 12월에 연말모임을 비대면으로 대체했던 게 생각보다 자연스러웠고 이왕 모였으니 그냥 수다만 떨지 말고 좋은 책이든, 기사든, 생각이든 돌아가며 공유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었다. 지난 모임은 벌써 세 번째 시간이자 내가 발제하는 첫 번째 시간이었다. 최근에는 뭘 깊이 있게 읽거나 본 게 없어서 내 최애책 중 하나인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골랐고 나름 재구성해, 우리가 악마에게 속고 있는 네 가지 영역을 나누어 소개했다.
‘삶의 목적’ 살다보면 나는 왜 사는거지? 와 같은 본질에 다가서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이 오는데 악마는 이 질문을 통해 우리가 깨어날까봐 그 순간을 막는다는 것, ‘관계’ 가까이 있는 누군가에겐 그 어떤 선의도 베풀지 않으면서 멀리 있는 누군가에게 동정심을 갖고 선의를 베풀어서 실제의 진실된 관계를 막는다는 것, ‘재능’ 그 어떤 반대급부도, 물질의 보상 없이도 온전히 무언가에 심취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게 재능이 깨어나는 순간이기 때문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지와는 상관없이 남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중요하기 때문에 라는 이유로 의미 없는 무언갈 계속 하게 만든다는 것, ‘시간’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 중 영원과 연결된 순간은 오늘 현재 밖에 없는데 하수 악마는 자꾸만 우리를 과거에 머물러 후회하게 하고 미련을 갖게 해 현재를 놓치게 하지만, 고수 악마는 오지도 않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기쁨을 활활 불태워 없애버린다는 것.
소울은 삶의 불씨를 찾아서 온전히 그것에 심취하는 무아지경의 상태와 아무 불씨없이 영혼과 삶의 연결이 끊어진채로 우주의 미아처럼 반복적이고 무의미한 행동을 하며 겨우 살아내는 죽은 상태를 대비해 보여 주는 듯 하지만 결국 삶의 목적은 ‘삶’에 있다는 교훈을 남긴다. 오늘의 목적은 오늘을 사는 데 있다. 악마 스크루테이프의 유혹에 속지 않고 오늘을 기쁨으로 사는 것. 영화를 보고 페달을 한 발 한 발 밟아 집으로 돌아오며 봄이 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봄내음에 코를 킁킁거렸다. 특별한 일 없는 하루 속에서도 충만했고 풍성했다. 그렇게 살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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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ungis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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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5
언젠가 본 소설 올리브 키터리지에서, 인생에는 작은 기쁨과 큰 기쁨이 있는데 작은 기쁨은 잘 가는 던킨 도너츠의 직원이 내 커피 취향을 기억해주는 것과 같이 소소한 것이라면, 큰 기쁨은 결혼이나 출산과 같이 기쁨이 큰 만큼 요동도 크다고 했다. 지난 주 어느 날, 동료들과 밥을 먹다가 이 구절이 생각나 나누었는데 꼭 5년 전 영월에서 만난 그림 친구 명현에게도 이 말을 나누었나보다. 그 말을 기억하고 2년 만의 만남에서 내게 그 소소한 기쁨을 상기시켜주고 엽서로도 남겨주었다. 2021년이 되며 새 마음으로 쓰기 시작한 매일의 감사 일기가 2월이 되며 중단되었다. 다시 야근이 이어졌고 나는 자연스레 직장인스러워졌다. 다시 돌아가기 싫었던, 직장인으로의 복귀. 여러 일로 분위기가 긴장되거나 나도 함께 정색하는 순간이 생겨나고 있다. 어떤 느낌에는 속지 말자고, 크리스천으로서 진짜 목표에 집중하면 된다고 다시금 다잡는다. 일은 그저 일일 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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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ungis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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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30
19년의 마지막을 기록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의 마지막 하루를 앞두고 있다. 다시 일을 하기 시작하고부턴,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게 되어 일상에 별다른 변화도, 이벤트도 없었다. 우간다의 시간을 견디었듯, 잠잠히 주어진 일을 하며 20년의 시간을 통과했다. 그 사이 조카가 많이 자라나서, 글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그림편지로만 표현하던 사랑을, 이제는 문자로, 편지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어린이로 성장하고 있다. 그만큼 엄마, 아빠의 시간은 노년으로 흘러가고 있다. 일상에서 내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많아지고 있고 이 변화들을 마음으로 느끼며 담담히 맞이하고 있다. 이 시간을 통과하며 깨닫는 건 감사뿐이다. 다시 북아프리카로 떠난 친구의 안부문자에서 오랜만에 만난 정전 에피소드를 들었는데,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아프리카 생활에서 불편했던 모든 것들이 내 영혼 깊숙이 잠들어있던 감사를 일깨웠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손과 발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고 마시고 누릴 수 있었던 복된 시간. 오늘부터는, 다시 돌아와 서울에서 정착할 때의 다짐대로, 너무 많이 돈으로 편리함을 사지는 말자고, 조금 불편한 쪽을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만 감사와 기쁨이 있다는 걸 이제는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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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ungis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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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5
오늘 우간다에서 만난 친구에게서, 다시 떠난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번에는 북아프리카라고 했다. 나보다 더 뒤에 우간다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와 섣부르게 모두가 가는 방향으로 달려나가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잠잠히 움크리고 있던 시간을 마음으로 응원했는데, 길었을 그 시간의 끝은 다시 떠남이었다. “누구나 갈 수 있어도 아무나 못 가는 곳인 거 알죠?” 우간다에 있을 때 한국 사람들끼리 모이면 서로의 힘을 복돋았던 말을 전하며 다시 떠나는 길을 진심으로 축복했다. 누군가 떠난다고 하자, 몇년 전 느낌이 생생히 떠올랐다. 씩씩하게 주변을 정리해놓고는 두려워서 덜덜 떨었던, 떠나기 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현지에서의 합숙이 끝나고 집을 얻어 혼자 자던 첫날 밤과 그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창밖으로 바스락 소리만 나도 무서워 주먹 꼭 쥐고 잠들었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두려움의 시간이 지나가자, 어느 새 그저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살아있음이 경이롭기까지 했던 순간 순간들이 떠올랐고, 우간다 곳곳에서 마주했던 이 친구와의 추억이 떠올라 마음이 따뜻해졌다. 해가 작열하던 어느 날, 멀리서 건반을 받으러 온 내게 현지버스에 건반을 실어 보내며 나를 배웅했고, 별빛이 쏟아지던 밤, 보다를 타고 떠나는 나와 친구를 배웅했으며, 이 친구가 잠시 먼저 우간다를 떠나던 날, 공항에서 내가 이 친구를 배웅했었다. 그리고 다시, 또 다른 배웅을 해야하는 오늘에 이르렀다. 정말이지, 떠난다는 것, 누구나 할 수는 있어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기에, 잠잠히 기도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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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ungis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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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4
“이모, 완전 오랜만이잖아앙” 몇 주 만에야 나가는 교회 입구에서 아홉살 선우를 다시 만났다. 작년에 한국에 돌아와 섬길 교회를 찾던 중에 시장통에 자리 잡은 이 작은 교회와 인연을 맺었다. 그나마 교회에서의 봉사라면 주일학교가 익숙한데 어르신이 많은 이 교회에는 꼬꼬마 아이들이 별로 없었고,  그렇다고 또래의 미혼 청년도 없어 여러모로 어중띤 위치에 있는 내게 선우는 늘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를 맞아주었다. “실은 비밀인데, 내 몸무게는 00kg야.”, “내가 좋아하는 친구이름 말해줄까? 이거는 정말 비밀이야.” 묻지도 않은 비밀을 귓속말로 속닥속닥 내게 털어놓는 선우, 아홉살 아이의 비밀이 꽤 큰 일이라는 걸 알기에, 나름 진지하게 듣고 있노라면, 먼저 장난을 치며 까르르 웃어제낀다. 게다가 나와 생일이 같다는 걸 안 뒤로는 뭔가 운명처럼 생각되었는지, 이모, 이모 부르던 호칭을 “누나, 결혼했어?” 이렇게 누나로 바꿔가며 질문을 하기도 해 내 얼굴에 웃음꽃을 피워냈다. 이 대화를 한 게 올해 초인지, 그 땐 제법 쌀쌀한 날씨였는데, 그 사이 무더운 여름을 지나 완연한 가을이 되었고 생일이 같다며 손뼉을 치며 좋아했던 선우와 나의 생일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선우야, 우리 생일 행복하게 보내자.” 교회를 나서며, 생일 동지 선우에게 말해주었다. 긴 명절연휴 후에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부담되지만, 오늘의 만남이 내게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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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ungis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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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6
기다리고 기다렸던 우간다 친구들과의 만남. 아침 일찍부터 만나 장장 9시간을 우간다 추억과 근황과 고민을 나누고 헤어져 돌아가는 길, 마음이 꽉 찬다. 아무 제한 없이 자유롭게 뻗어나갔던 생각은 어느새 일에 온전히 집중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매일 같이 돌던 쳇바퀴를 벗어나 한강에 나와보니 제한된 생각만을 하는 나를 느낀다. 일상에 뿌리내리더라도, 그렇더라도, 생각아 멀리 멀리 뻗어나가라. 이전처럼 자유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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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ungis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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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31
8월의 마지막 날 내 마음에 울림을 주는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함께 입사한 친구가 그만두겠다는 공표를 한 것. 더 나은 자리나, 보장된 미래를 위해 현재를 감내해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대안의 선택이 아니라, 아직은 형체가 없는, 자신이 만들어가야만 하는 일을 위해 그만둔다고 했다. 내 안에서, 그래, 그럴 수 있지. 가시밭길에 들어서겠지만 그 길은 정말 기쁜 길일거야. 선택하는 자에게만 열리는 비밀의 길이지. 이런 식의 생각이 먼저 떠올라 다행이었다. 먼저 걸은 자의 공감이랄까. 익숙한 시스템을 박차고 나가 새로운 길을 걸을 이 친구를 마음 다해 응원한다. 다시 비슷한 일로 돌아온대도, 혹은 아니더라도 중요치 않다.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실행할 수 있는 힘에 박수를 보낸다. 헤어짐은 너무너무 아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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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ungis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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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4
몇년 전 선물받았던 그림과 글. 퇴근길 사진첩에서 몇년을 거슬러 올라가 꺼내보았다. 그때와 변함없이 궂은 날씨 속에도 태양은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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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ungis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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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2
대학 때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일 중 하나가 삼청동의 자연체험학습 교구를 파는 곳에서의 경험이다. 지금은 멋없는 현대식 건물로 변해버렸지만 내가 대학생이었던 때만 해도 석가래 지붕의 대청마루까지 고스란히 간직한 한옥 자연체험학습장이자 관련 교구를 파는 곳이었다. 대기업을 다니시다 퇴직한 점잖은 어른이 나름 뜻을 가지고 운영하던 곳이었는데 나는 친구의 소개로 주말에 나가 판매를 도왔다. 가게는 바깥에서보면 도대체 뭘하는 곳인지 정체성이 불분명해서 거리에는 사람들이 득실득실해도 가게는 한적하거나, 한 두 명 용기낸 손님을 따라 들어온 가족 단위 사람들로 가득하거나, 늘 둘 중 하나였다. 대청마루 안쪽에는 사장님의 개인소장품이던 음악 cd가 가득했는데 우연히 집은 앨범에서 베토벤의 비창을 듣게 되었다. 클래식이 뭔지 당최 몰라도 나를 참 평온하게 했고 사람이 없을 때면 대청마루 끝에 앉아 음악을 틀고 가만히 시간을 보냈다. 손님이 없으면 사장 아저씨의 배려로 삼청동 거리 곳곳을 삼선 슬리퍼를 신고 나가 누볐다. 왜 그때 기억이 이렇게 선명하게 떠올랐느냐하면, 며칠 전 또 한번의 퇴근길에 백건우 아저씨가 연주한 비창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로부터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때의 나는 절대로 상상할 수 없었던 삶을 지금 살고 있는 것, 동시에 또 그때의 나와 크게 변하지는 않은 것 두 생각 사이에서 뭔지 모를 감격이 있었다. 감사하며, 오늘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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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ungis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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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4
퇴근 길 몸을 실은 버스 차창으로 비가 주룩주룩 흘렀다. 흐르는 비 때문에 앞차의 라이트가 번져 보였고 이 시간에 딱 어울릴 것 같은 DJ의 목소리와 연주음악이 흐르기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마침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만히 보면 얼마나 신기한지 몰라요.” 드라이브 하는 기분을 느끼려고 버스 앞문과 닿는 가장 앞 자리에 앉은 내게, 침묵을 깨고 기사 아저씨가 말을 건넸다. 불광천에 보면 두루미가 사는데, 비가 오나, 해가 쨍쨍하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100년을 넘게 산다는 것이다. 이건 무슨 소린가 싶어 경계심을 풀고 이어지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 욕망에 못 이겨 여기 저기를 옮겨 다니는데 채 100년도 살지 못하고 죽는다고, 요즘은 모두가 경제 노예가 된 것 같다고 제 손으로 양말 한짝 빨 줄을 모르면서 돈을 좇아 헤맨다는 말이 이어졌다. “맞아요. 저 아프리카에서 2년을 살고 왔는데 이전에는 바보같이 아무 것도 할 줄 몰랐는데 그 곳에서 살고 나니 손으로 할 줄 아는 일이 많아졌어요.” 라고 나도 덧붙였다. 거울을 통해 나를 유심히 보는 눈이 느껴졌다. 갑자기 아프리카라니 무슨 소리인가 싶으셨을까. “그렇지요. 살다보니 옛 선조들 말씀이 그른 게 하나 없어요. 그 말씀들이 일상에서 결합되는 순간들이 있어요. 그 때 깨달음의 순간이 오는데 그걸 갖고 있으면 이젠 누구와 함께여도, 혼자여도 상관이 없어지는거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도 괜찮은 거야.” 이 말과 함께 지하철 역에 다달았고 사람들이 우르르 타기 시작했다. 백발 성성한 기사 아저씨는 버스에 오르는 한 명 한 명을 보며 목례를 했고 나는 그 모습을 잠잠히 바라보았다. 다시 회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쓰는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기사아저씨를 만난 며칠 후 뒷자리 팀장님이 “솔직히 한 번 말해봐요. 그만두고 싶죠? 오자마자 왜 이렇게 매일 밤까지 남아요?” 라고 말을 건넸다. 나는 웃으며 “솔직히, 전 어렵지만 재밌어요. 오랜만에 일을 해서 그런가봐요.” 라고 답했다. 마음 속으로 승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정성껏 목례를 하던 기사 아저씨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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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ungis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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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9
가벼운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회사에 다니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입사 5주차에 벌써 위기가 왔다. 어제 딱히 일이 어마무시하게 많은 것은 아니었으나, 사무실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다. 함께 입사한 친구와 빌딩 주변을 큼지막하게 돌고 음료수를 하나 사 들어왔는데도 답답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저께 사랑하는 우간다 동생이 보내준 동영상이 생각나 조용히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 소리, 저 멀리 사람들의 말 소리, 닭 울음 소리까지, 우간다에서 매일 듣던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자 마음이 좀 진정되었다. 매일 감사하고 매일 평안하고 매일 가벼우면 좋겠지만, 때때로 폭풍같이 일어나는 이 마음을 잠재우며 견디는 것. 누구나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 그래도 내게는 눈을 감으면 펼쳐지는 여기가 아닌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 그게 위안이 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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