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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냄새
얼마 전 도쿄에서 26살이 되었다. 한국 나이로는 27살이지만 한국 나이로 내 나이를 안 센지 오래다. 아직 살아보지도 못한 시간 만큼 나이를 먹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좀 억울하기도 하고. 계산을 해보니 내 나이가 엄마가 결혼한 나이 즈음이 가까워진다. 나한테 마냥 어른 같던 나이가 어리게만 다가오면서 엄마 생각이 더 많이 난다.
도쿄 여행 첫날에 전날 잠을 못 잔 채로 이리저리 다니느라 식은땀이 많이 났다. 숙소에 가서 샤워 후에 잠옷으로 갈아입고 정리를 하며 온종일 입던 옷의 냄새를 맡았는데 땀 냄새가 나지 않았다. 익숙한 마른 냄새가 났다. 엄마 옷에선 여름에도, 며칠 안 갈아입어도 한결같이 마른 냄새가 났다. 어렸을 땐 그게 신기했다. ‘엄마는 땀을 안 흘리나?’ 하고 생각했다. 내가 벌써 마른 냄새가 나는 나이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물리적인 깨달음이었다. 26살이 되어도 여전히 엄마가 보고 싶다. 좋은 일이 있을 때, 좋은 곳에 갈 때 더 보고 싶다. 보고 싶다는 것을 창피해하진 않을 것이다. 밤에 종종 눈물을 흘리는 것도 창피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엄마가 보고 싶다. 바스락거리던 이불 위에 누워서 엄마를 끌어안고 엄마의 마른 냄새를 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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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
어째서인지 금요일부터 제시간에 잠을 잘 자서 해 뜰 때쯤에 눈이 떠졌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으려고 집 앞 맥도날드에 갔다. 옛날에 고향에서 가족들이랑 살던 집 근처에도 맥도날드가 있긴 했지만 바로 코앞은 아니었는데 이렇게 가까우니 좋으면서도 신기했다. 24시간 운영 맥도날드와 김밥천국과 함께라면 먹고 살 걱정은 없다-고지혈증은 걱정해야겠지만.
우영이 한국에 왔다. 사실 설 끝나는 주에 왔었는데 이사니 뭐니 정신이 없어서 만날 시간이 없었다-우영도 휴가를 내고 온 게 아니라서 평일에는 집에서 일을 해야 했다. 온 지 2주가 지나서야 드디어 만났다. 우영 출국 전에 새집에 올 시간은 없을 것 같아 아직 옷장도 없고 커튼도 못 단 휑한 집에 초대했다. 첫 집들이 손님.
2학년 때 기숙사 룸메이트로 우영을 만났다. 1년을 같이 살고 내가 휴학을 했고 휴학 뒤에도 우영이 졸업하기 전까지 같은 방에 살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거의 2년을 같이 산 셈이다. 가족 외에 가장 오래 같이 산 사람이다. 대학 시기 생일은 어째서인지 외로웠던 적이 많았는데 우영이 서프라이즈 생일 파티를 해주기도 했다. 서로 못 볼 꼴은 많이 봤지만 싸운 적 없이 편히 지냈다.
보통 나는 수업이나 일이 끝나면 방에 내내 누워 쉬거나 도서관에서 DVD를 빌려 영화를 봤고, 우영은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거나 잠을 잤다-이야기를 하다가도 베개에 머리를 대면 어느 순간 자고 있어서 너무 부러웠다. 시험이 끝난 주에는 학교 앞 저렴한 치킨집에 가서 치킨을 포장해와서 함께 영화를 보며 먹곤 했다. 눈이 오는 날엔 뛰쳐나가서 눈을 구경하고, 밤에 잠이 안 오거나 하루 중 특별한 일이 있었을 땐 같이 긴 산책을 하며 끊임없이 대화를 나눴다. 우리가 살던 기숙사는 기숙사 건물 중 가장 오래되고 좁고 열악한 곳이었다-심지어 지금은 허물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정말 좁고 낡은 방에 책상, 침대, 옷장이 한 쌍씩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곳에 살던 시기를 행복하게 추억할 수 있는 것은 우영의 덕이 크다고 생각한다.
페루에서 일을 마치고 반년 만에 한국에 온 우영을 위해 집 근처에서 떡볶이를 사서 점심으로 먹었다. 의자가 하나밖에 없어서 바닥에 책상을 펴고 앉아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떠들었다. 세계 지도가 그려진 앉은뱅이책상은 같이 기숙사에 살 때도 쓰던 것인데 그것만이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하면 할수록 우영과 나는 정말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전공부터 취향, 원하는 삶의 지향점이나. 그래도 좋은 친구일 수 있는 것은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서로 하는 이야기가 재밌다.
집 근처 카페에서 맛있는 라떼를 마시고 동네 깊숙이 위치한 서점을 향해 걸었다. 공기는 더럽다고 하지만 날씨가 따뜻해서 걷기 좋았다. 지난 12월에 우영의 생일이 있었는데 챙겨주지 못해서 볼프강 보르헤르트가 쓴 «이별 없는 세대»를 선물했다. 내가 읽어본 책은 아니지만, 책 뒷장에 쓰인 글귀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만남도 없고 깊이도 없는 세대다. 우리에게 깊이는 끝 모를 나락이다. 우리는 행복도 없고 고향도 없고 이별도 없는 세대다.’
서점에 앉아 급하게 카드도 썼다.
다음 주 주말이면 다시 필리핀으로 떠나는 우영. 그 전에 한 번 더 못 볼 수도 있어서 헤어지기 전에 포옹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왜인지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다. 어디서든 잘 지내겠지만 그래도 더 잘 지낼 수 있었으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소중한 추억들을 가득 쌓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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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등을 잡고
일 끝나고 집에 와서 세탁기를 받았다. 어제는 냉장고, 오늘은 세탁기. 냉장고도 사고 세탁기도 사고 어른이 된 것 같다. 집을 구하고 이사를 반복하며 어른의 경험을 많이 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눈탱이 맞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 과정이기도 했다.
아주 늦은 아침 겸 점심 겸 저녁을 먹고 2시간쯤 자다 깼다. 어제 일 끝나고 집에 와서 밤까지 집안일을 하느라 너무 피곤했다. 상연이 집에 와서 상연이 필요했던 일들을 해주고 갔다. 대부분 내가 의자에 올라서도 할 수 없는 일들. 둘 다 저녁 생각이 없어서 딸기를 씻어 먹었다. 판매원분이 “맛보면 또 사러 오고 싶을 거예요”라고 해서 ‘아니면 두고 봐!’ 마음으로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또 사러 가야지.
샤워하고 상연에게 선물로 받은 로션을 발랐다. 온몸이 따뜻하고 옛날 기억들이 나서 슬퍼졌다. 오랜만에 이랑 씨 노래를 들었다.
중고등학생 때 언니의 거의 유일한 남자 친구인 기재와 나도 잠시 친하게 지내던 시기가 있었다. 같이 <눈물의 주룩주룩>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순전히 기재가 주인공인 츠마부키 사토시와 나가사와 마사미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아름다웠지만, 영화는 지금 기억하기에도 형편없었다. 유일하게 인상 깊었던 부분은 주인공들이 눈물이 나오려 하자 콧등을 잡고 참으려 하는 장면이었다. 문득 그게 떠올랐다.
울음을 삼키려고 콧등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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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가 뭐길래
이번 주 토요일에 또 이사를 한다. 이사. 이사! 또 이사! 생각해보면 내 20대는 이사의 연속이었다. 그 고생담을 (사실 별거 없음) 읊으려면 눈물을 흘리며 밤을 새워서 써야 할 것 같아서 이만한다. 어쨌거나 또 이사가 또 며칠 안 남았고 이사 날이 가까워질수록 그 압박감에 3시간 자거나 12시간 자거나를 반복하고 있다. 죽이 됐든 밥이 됐든 짐을 다 옮기고 새로운 집에 들어가야 안정이 될 것 같다. 지금 가는 집은 옵션이랄게 없어서 냉장고, 세탁기, 옷장 등을 사야 하는 처지였음에도 고민하다 냉장고만 입주일에 맞춰 구매하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세탁기는 집 바로 앞에 빨래방이 있으니 당분간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이고 옷장은 가장 오래 고민하는 중이다. 이것저것 이유야 많지만 결국 내가 여태껏 옷장을 주문하지 않은 것은 마음에 쏙 드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상연 말마따나 옷장은 존재감 없이 존재하는 것만이 상책일까? 보다 보다 없어서 옷장을 주문 제작할 생각까지 했다. 나는 미쳤다. 정말로.
오늘은 일찍 퇴근 찬스(반차는 아니지만 반차처럼 한 달에 한 번 쓸 수 있는)를 쓴 상연과 눈여겨보던 가구 브랜드 쇼룸에 갔었다. 실제로 보니 더 단단하고 예뻐서 다 사고 싶었다. 문제는 내가 가진 물건들이랑 잘 어울릴 것인가. 일단 짐을 다 옮겨 보고 다시 방문하기로 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시뮬레이션이 안 된다.
이사 전에 들어갈 집 벽지와 장판을 새로 했는데 장판을 너무 채도가 낮은 것을 골랐나 싶기도 하고. 나무색 몰딩은 어떡할 것인가 싶고. 막막할 따름이다.
내가 무던한 사람이라면 쉽게 해결될 문제지만, 평생에 걸쳐 깨달은 것은 나는 무던과는 100미터 떨어져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재고, 따지고, 비교하고, 마음에 쏙 들어야 하고. 이런 내가 나도 지겹지만 다른 방도가 없어서 받아들이려고 부단히 노력할 뿐이다.
어쨌거나 내일 수진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짐을 싸고, 다음 날 아침 상연이 오면 못 싼 짐을 마저 싸고, 차가 오면 짐을 옮기고, 청소하고, 박스를 잔뜩 쌓아둔 채 울면서 잠들게 되겠지.
더 넓은 집에 갈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설레기도 하지만 생각만으로도 지치기도 한다. 이사가 뭐길래 사람을 이렇게 힘들게 하나.
*2019년 2월 15일에 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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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사연] 뒤늦게 2018년을 마무리하며 덧붙인 <Roma>의 감상
안녕하세요.
김혜리 기자님, 임수정 배우님, (또 필름클럽을 위해 뒤에서 열심히 애써주고 계실) 최다은 PD님,
김혜리 기자님의 라디오와 팟캐스트를 들으며 자란 청취자 이주은입니다.
20대 초반에 김혜리 기자님의 방송을 듣기 시작해 이제 20대 후반이 되었습니다. 부지런히 일해주신 기자님 덕분에 저도 부지런히 영화를 보며 힘을 얻어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었어요. 예전 에피소드 중에 최다은 PD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글은 쓸 수 없으셨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그래서인지 2주년이 가까워지는 이제서야 첫 사연을 보내 드립니다. (비록 메일 임시 보관함에 보내지 못한 메일이 몇 편 있지만요!)
먼저, 짧게 로마 감상을 전달 드립니다. 저는 Netflix를 구독하고 있지만, 꼭 영화관에서 보고 싶은 마음에 광화문에 있는 한 영화관을 방문했어요. 영화관에서 보신 분들이라면 다 공감하시겠지만, 컴퓨터 모니터로는 절대 온전히 감상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명도가 옅은 흑백 필름이라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아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전작인 <Gravity>와 더불어 그냥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벅차오르는 미장센들의 연속이었달까요.
평화롭고 단조롭게 클레오의 일상을 비춰주는 첫 시퀀스부터 왜인지 저는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특히 옥상에서 빨래하는 클레오의 뒤편에 보이는 클레오와 같은 그녀들의 실루엣이 비칠 때는 더더욱이 울컥했어요. 아마 클레오처럼 누군가를 위해서 노동하며 평생을 살다간 여성의 존재를 떠올리게 되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영화 내내 작고 연약한 모래성이 파도에 조금씩 휩쓸려 가는 것을 지켜보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끝에 이르러서는 모래성이 다 허물어지고 단단하고 반짝이는 모래사장 위에 서 있는 클레오가 정말 멋지고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를 보다 보니 (제가 초등학교 때 자주 봤던 MBC 예능 중 하나인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의 추천도서로 꼽혔던) 공지영 작가의 <봉순이 언니>라는 소설이 생각났었어요. 초등학생 때 독후감을 쓰기 위해 그 소설을 읽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던 게 기억납니다. 하지만 (봉순이 언니와 비슷한 인생을 살았다고도 볼 수 있는) 클레오의 삶을 다룬 <Roma>를 보고 나서는 힘을 얻었어요. (박해받는 여성의 인생을 관조적으로 다룬 서사를 그만 보고 싶은 마음도 커졌습니다) 찢어진 마음을 다시 꿰매고, 꽁꽁 싸뒀던 진심을 토해내고, 다시 일어서서 활짝 웃는 클레오의 모습이 저에게도 힘이 됐습니다. 그게 슬프고 또 기뻐서 조금 울었지만요.
*기자님의 감상에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필름클럼 연말 결산 편을 듣지 않고 작성했습니다. 메일 보내고 들으려고 꾹 참고 있어요!
저도 매년 저 혼자만의 영화 결산을 하는데요, 2018년엔 80여 편이 조금 덜 되는 영화를 봤습니다. 처음부터 크게 의식하고 그랬던 것은 아닌데도 올해 여성 서사가 주가 되는 영화들을 많이 봤더라고요. 그리고 앞으로는 전과 같이 (아무리 훌륭한 영화라 하더라도) 여성이 도구처럼 쓰이는 영화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014년엔 메이슨에 이입하여 <보이후드>를 볼 수 있었지만 더 이상을 그럴 수 없다는 것을요. 하지만 이제 <레이디 버드>가 있으니 괜찮아요!
혜리 기자님, 수정 배우님, 다은 PD님.
올해는 제게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나도 속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깊이 좌절하는 한 해였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공정하게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에 큰 절망을 느끼기도 했고요. 그래서 올해는 기회비용을 생각하지 않고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하며 살아갈 생각이에요. 매일 나중을 위해, 도움 되는 일을 하기 위해, 생계를 위해 미루다 보니 가장 하고 싶은 것들을 꼽을 수 없게 되었거든요. 제 가난한 마음을 배불리 먹여 하고 싶은 것들을 다시 토해낼 수 있게 할거에요. 후회가 없진 못하더라도 후회를 줄이는 올해를 살고 싶습니다. (사연도 더 짧게, 더 자주 쓰겠습니다!) 하고 싶은, 잘하는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시는 세 분의 모습은 앞이 막막한 20대를 살아가는 저와 같은 여성에게 큰 힘이 됩니다. 그러니 올해도 하고 싶은 일 실컷 하시면서 건강히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P.S. 궁금해 하시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저의 2018년 영화 Best 10입니다. (가나다 순으로 정렬했습니다. 올해 재개봉하여 영화관에서 본 영화까지 포함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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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 the water, slowly”
마코토 씨는 반복해서 말했다.
“Under the water, slowly. Under the water, slowly and relax.”
나는 최선을 다해 겁에 질리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Okay”라고 말하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숨이 또 가빠졌고 이내 나왔다. 마코토 씨가 다시 “괜찮아요”라고 말하며 물속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붙잡았다.
“지금 너 전혀 괜찮지 않아. 그렇게 숨을 빨리 쉬면 누구라도 무서워져. 나도 너처럼 숨 쉬면 무서워서 물에 못 들어가. 이렇게는 물에 못 들어가. 최대한 숨을 삼키고 천천히 뱉어야 해. Under the water, slowly, relax. 할 수 있겠어?”
“아뇨. 저는 물 밖에서도 slowly, relax 못하는 인간인걸요."
그 말이 목 끝까지 나왔다. 하지만 나는 이미 오키나와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그고 있었고, 스쿠버 다이빙을 하기 위해 꽤 큰돈도 치렀으며, 무엇보다 입기 더럽게 힘든 다이빙 수트도 입고 산소통도 매고 있었다. 돌아갈 순 없다. 내가 죽을 위험에 빠지면 마코토 씨가 구해주겠지. 그는 믿을 수 있는 프로니까.
깊이 들어갈수록 마음이 편해졌다. 귀는 조금 아팠지만, 숨 쉬는 것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상보다 편했다. 해저는 고요했다. 사람들이 내뱉는 공기 방울 소리만 들렸다. 물고기는 싫었지만, 깊은 바다에 가만히 잠겨 있는 게 좋았다. 아래에서 바라본 해수면은 반짝였다.
언젠가부터 우울하면 이내 물에 잠겨있다고 생각했다. 물속에선 뭘 느낄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다. 둔한 발걸음으로 꾸역꾸역 움직일 뿐이다. 잠시 얼굴을 수면 위로 내밀었다가도 다시 물에 잠긴다. 나는 침대에 누워 해저로 가라앉았다.
일이 끝나고 계획에 없던 여행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 정리된 게 없었다. 정리하고 싶지 않았다. 내내 누구를 만나거나, 누구를 만나지 않으면 집에 혼자 누워있었다. 슬프지도 않았고 우울하지도 않았다. 아무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그냥 무기력했다.
더 이상 누워 있을 수도 없고, 더 가라 앉을곳도 없어 책상 앞에 앉았다. 청소하고, 빨래하고, 어딘가 처박혀 있을 운동복을 찾을 것이다. 내일은 수영장에 가고 싶다. 내일 갈 수 없다면 모레, 글피라도. 천천히 느긋하게 움직일 것이다. 물속에서는 빨리 숨 쉴 수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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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beau jour
모처럼 주말에 날이 좋아 쓰던 이부자리를 빨고 새 이부자리로 바꿨다. 지난 여행 때 산 새하얀 침구다.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좋은데 상연은 싫다고 한다. 청소도 하고 세탁기를 두 번이나 돌리고 나니 어느덧 한 시가 넘었다. 역 앞에서 급하게 점심을 먹고 아름을 만나러 갔다. 웃옷을 입지 않았는데도 조금 더웠다. 구름 한 점 없는 초여름 날씨였다.
아름과 스타벅스에 가서 샹그리아를 마셨다. 오늘의 볕과 어울리는 메뉴였다. 에어컨 바람을 쐬며 샹그리아를 마시고 나와 시코르에 가서 화장품을 구경했다. 써보고 싶은 제품이 있었는데 없어서 한 번 둘러 보고 나왔다. 금세 영화 시작할 시간이 돼 영화관으로 향했다.
<콜럼버스>는 예상보다 더 좋은 영화였다. 콜럼버스에 줄곧 살아온 케이시와 의도치 않게 콜럼버스에 머물게 된 진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였다. 둘은 서로에게 본인의 삶과 선택을 뒤돌아보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된다. 나이 차이가 큰 남녀라 조금 불안하기도 했는데 뻔한 방향으로 가지 않았다. 진이 케이시가 어린 것을 자각하면서도 그녀를 아이 취급하지도, 이성으로 접근하지도 않아서 좋았다.
케이시라는 인물과 그를 보여주는 방식이 품위 있었다. 그녀의 집은 절대 부유하지 않지만, 그의 방식대로 정돈되어 있고 그의 삶 또한 그렇다는 것이 정말 좋았다. 케이시와 그녀의 엄마와의 관계는 <레이디 버드>를 떠올리게 했다. 삶에서 가장 어려운 사랑을 나누는 관계.
<레이디 버드>를 보고 새크라멘토에 가고 싶어졌던 것처럼 <콜럼버스>를 보니 콜럼버스에 가고 싶어졌다. 케이시가 좋아했던 건물들 주변을 거닐고 싶다.
저녁에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집에 돌아왔는데도 하루를 끝내기 아쉬워서 승석과 한참 산책을 했다. 케이시와 진이 콜럼버스 이곳저곳을 다니며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니 피우고 싶어져서 오랜만에 담배를 피웠다. 걷다가 잔디밭에 앉아 별을 봤다. 날이 맑아서 별도 잘 보였다. 가장 밝은 별이 금성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승석과 헤어지고 집에 오는데 재현을 마주쳐서 잠깐 이야기를 했다. 매일 학교에 가는데도 못 만나던 사람들을 밤에 잔뜩 만났다.
많이 걷고 많이 떠들었다. 집에 오니 목이 따가워서 캐모마일 차를 끓였는데 떫었다. 내일부터 내내 비가 온다는데 오늘 날씨 덕에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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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y, Mom, did you feel emotional the first time that you drove in Sacramento? I did and I wanted to tell you, but we weren’t really talking when it happened. All those bends I’ve known my whole life, and stores, and the whole thing. But I wanted to tell you I love you. Thank you, I’m…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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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18년의 4분의 1이 지났다. 그동안 뭘 했냐 물으면 딱히 할 말이 없는 시간들이었다. 2월 초까지는 일하는 퇴근길마다 울었고, 퇴사 후 백수 생활을 실컷 즐기다 2월 말에는 잠시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에서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 쓰느라 3월은 (즐겁고) 빈곤하게 지냈고, 이달 월급 나올 때까지는 빚을 까먹으며 지내야 한다. 불안하고 익숙하다.
어제 시안과 <소공녀>를 봤다. 며칠간 생각이 많아져서 그냥 팬시한 할리우드 영화를 보려 했는데 시간표가 마땅치 않았다. 기대보다도 좋은 영화였다. 보면서 울진 않았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미소의 뒷모습이 마음에 남아서 계속 영화를 곱씹었다. 집에 와서는 별 이유 없이 좀 울다가 라들러 한 캔을 마시고 잤다.
미소는 담배, 위스키, 남자친구 한솔과의 (가끔있는) 데이트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2014년에서 2015년이 되고 담뱃값이 오르자 미소는 삶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집이 가장 낮은 순위에 있다고 판단한 미소는 혼자만의 집을 떠나 떠돌이 생활을 시작한다.
원하는 것이 많진 않지만, 원하는 것이 분명한 사람이다. 누구든 포용하지만 옮고 그름은 분명하다. 자유롭지만 방종하지 않다. 미소가 중심이 있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미소가 불안했다. 원하는 것이 분명한 만큼 그것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살아갈 수 있는데도 미소는 부러 벼랑 위의 삶을 사는 것 같았다. 미소의 직업은 일용직 가사도우미로 그녀는 본인의 일에 재능도 있고 그 일을 좋아한다. 하지만 미소의 직업은 미소가 아프거나, 다른 사정이 생겨 잠시 일할 수 없게 되면 수익이 없다. 그런 상황이 어느 날 생기면 미소는 아파서 혹은 굶어 죽을 것이다. 미소가 양손을 가로로 쭉 뻗은 채로 다리 난간을 거닐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소가 부모님을 일찍 여의었다는 말에 그녀가 그런 일련의 경험으로 모든 것을 가지지 않으려는 사람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잃고 싶지 않아서 가지지도 않고, 현재의 평온을 즐기는 사람.
요즘 친구들과 독거 여성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차에 이런 영화를 봐서 좋으면서도 심란했다. 한강 다리를 건너는 미소의 뒷모습이 계속 눈에 어른거린다. 한 달간의 백수 생활은 행복했지만 동시에 내가 한 달만 더 이렇게 수입이 없으면 죽을 수 있겠다는 깨닫는 기간이었다. 물론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도움일 뿐이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나도 미소처럼 한강 다리 난간을 평행봉처럼 걷고 있는 걸까? 앞으로의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올해 안으로 기간 한정의 삶이 끝나기는 할까? 나는 그걸 원하는 걸까? 질문만 가득한 채로 4월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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