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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bbooks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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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세번째 책
올리버 색스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만일 어린 시절의 기억이 없다면 인생은 아주 무미건조하고 근거도 없는 것이 되고 만다고 한다. 그러한 기억을 되살림으로써 얻는 깊은 환희와 존재감에 대해, 그녀는 도스토옙스키와 프루스트 등의 자서전에서 많은 인용문을 뽑아 논했다. "우리는 모두 '과거'에 살 수 없는 망명자'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되살려야 하는 것이다."하고 그녀는 말했다. 이미 90년 가까이 살았고 길고 길었던 고독한 인생도 이제 막을 내리려고 하는 C부인에게 어린 시절의 '신성하고 귀중한' 기억을 되살려주는 것, 이 신기하고 기적과도 같은 회상은, 어린 시절 기억의 상실이라는 문을 부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뇌에서 일어난 장애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 243 pg
상당한 양과 두께를 자랑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한동안 내 가방을 차지하면서 출근길 혹은 퇴근길을 함께했었다. 살면서 종종 마주치는 약간은 '다른' 기색을 마주치게 되는 이들에게 어떠한 사연이 있는지, 어떠한 일들까지 겪을 수 있는 지를 책을 통해 경험하면서 내가 단순히 컵을 짚고 물을 마신다거나, 누군가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다거나, 글이나 말을 통해 의사소통을 한다거나 하는 모든 행위들이 사실은 얼마나 고도화된 행동인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기도 했다.
20여편이 되는 많은 이야기들은 단순히 지나치기엔 놀라우면서도 깊은 감동, 혹은 눈물을 훔치게 만들 사연들을 가득 담고 있다. 무언가를 상실하고 만, 실로 한 '인격체'라고 부르기 어려울 수 있는 존재들 앞에서도 희망을 찾기 위해 기울여온 노력들, 그리고 이들을 관찰하며 작가가 떠올리는 생각의 단편들 앞에서 독자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과 감정, 순간 순간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끔 만들 것이며, 더불어 정신적 장애를 가진 이들에 대해 단순히 아 어떠한 불편함이 있구나 라는 것에서 나아가 그 불편함이 어떠한 것인지 상세하게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유독 접은 부분이 한가득인 책. 2015년에 세상을 떠났다는 그가 남긴 이 책이 오래오래 인간 서로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도록 해주는 따뜻한 고전이 되길.
".. 긴장과 정숙이 감도는 가운데 그는 완전히 무아지경에 빠져서 종교의식에 자신을 내맡기고 있었다. 그런 모습 어디에서도 기억상실증이나 코르사코프 증후군의 기미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병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기억상실증이나 기억의 불연속 따위가 도대체 그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는 어떤 하나의 행위에 그의 존재를 기울여 그것에 몰두했다. 인간에게 감정과 의미를 부여하는 유기적인 통일을, 바늘 하나도 꽂을 틈 없는 연속을 그는 달성하고 있었다." - 75pg
시간이 지날수록 꿈과 환상은 점점 더 빈번해지고 심해졌다. 가끔식 나타나던 것이 이제는 거의 하루 종일 지속되었다. 그녀는 마치 최면상태에라도 빠진듯 넋이 나가 있었는데, 눈을 감고 있을 때도 있었고 눈을 뜨고 있을 때도 있었지만 얼굴에는 항상 알 듯 모를 듯 어렴풋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볼일이 있어서 누군가가 그녀에게 다가가 뭔가를 물으면 그녀는 즉시 정신을 차리고 예의 바르게 대답했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직원들조차도 그녀가 자신들과는 다른 세계에 있으니 방해해서는 안 되겠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호기심이 생기기는 했지만 나도 그들과 똑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뭔가를 좀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다고 나서기가 꺼려졌다. 그러나 한 번 정말로 딱 한 번은 물어본 적이 있었다. “바가완디 양,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다. “죽어가고 있어요. 전 고향으로 가고 있어요. 제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거에요. 어쩌면 이런 게 귀향일지도 모르죠.” 한 주가 지나자 바가완디는 이제 더이상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지 않았다. 마치 자기 자신만의 세계에 푹 빠져 있는 것 같았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행복한 미소를 연하게 띠고 있었다. 한 직원이 말했다. “바가완디 양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곧 거기에 도착할거에요.” 사흘 후, 그녀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인도로 가는 여행을 이제 막 끝냈다고 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 262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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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bbooks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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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더들리 - 술취한 원숭이
2021년 두번째 책 "음식과 연계되어 알코올은 우리 인간의 미각 생리학에도 영향을 끼친다. 음주는 먹는 즐거움을 배가시켜준다.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음주는 전체적으로 섭취하는 음식의 양을 늘린다. 예를 들어 우리 인간은 식사 직전에 혹은 중간에 자주 반주를 즐긴다. 이런 행위는 언어에도 나타나 프랑스 식탁과 어우러진 '아페테리프'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라틴어로 '열다'의 의미를 가진 말에서 파생한 이 단어는 공식적인 식사 외에 물리적인 소화가 시작되었음을 뜻한다. 중요한 점은 식사에 곁들인 술이 음식을 더 맛있게 더 많이 먹도록 돕는다는 사실이다." - 141pg . . . 저자 로버트 더들리는 처음으로 '술취한 원숭이'라는 가설을 내세운 사람으로, 우리가 알콜을 마시는 이유를, 알콜을 마시게 된 시초를 동물들과 진화적인 관점에서 찾아보고자 했다. . . . 연구 결과가 많지 않지만서도 대다수의 과일에 효모가 존재함으로써, 알콜을 소량 함유한다는 것과 이 알콜들이 과일에 존재할 수 있는 각종 세균들을 막아낼 수 있다는 점, 알코올 증기에 노출된 초파리들의 생식 능력이 100배로 증가한다는 점, 적당한 음주 생활을 하는 사람의 기대 수명이 늘어났던 연구 결과 등은 재미있는 사실이었다. . . 다만 이 책은 알코올과 인간과의 어떠한 관계에 대해 밝히고자 화두를 던지는 책에 가까웠고, 사실상 인간이 마시는 알콜이 젊은 시절부터 노년 시절까지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실험하는 것도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들에 대해 물음표만을 간직하고 책을 덮어야 함이 아쉬웠다. . . 다만 토막 토막으로 보았을 때, 적당한 반주가 더 많은 음식을 먹게 끔 해준다는 것과, 음식 자체에 있는 독소나 해로운 요소들을 없애줄 수 있다는 점들은 왜 우리가 보통 삼겹살을 먹을 때 소주를 곁들이게 되는가 등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점이 되기도 했다. . . . 도리어 나는 어떻게 하다 효모라는 존재가 각종 식물들의 구석구석에 존재하게 되었는지, 어쩌다 하필이면 특정 시기동안 도움이 될 수 있는 알코올을 부산물로 남기게 되었는지 등에 대한 상관관계가 더 궁금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아마 이기적 유전자를 전부 읽으면 궁금증이 조금 풀리기는 할까) . . . 마지막으로 이 책은 절대 술에 대한 이점만을 일컫는 것이 아닌 술이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U자형 곡선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기에, 언제나 항상 과유불급이라는 걸 잊지 않고 음주 생활을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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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bbooks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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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 보르헤르트 - 이별 없는 세대
2021년의 첫번째 책 . . "사방이 다시 조용해졌다. 얼마쯤 지났을까, 그녀는 그가 몰래 우물거리며 빵 씹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아직 잠들지 않았다는 것을 그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일부러 깊고 고르게 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가 빵을 씹는 소리가 얼마나 규칙적이었는지. 그 소리에 따라 그녀는 잠이 들어버렸다." -93pg . . . "신이 그들을 삶에 매달았으므로 그들은 잠시 거기서 시계추처럼 흔들렸다. 보이지 않는 종탑 안에서 나지막이 소리 내는 종처럼, 바람에 부푼 허수아비처럼. 자기 자신에게, 이음매를 찾아볼 수 없는 살갗에 내맡겨진 채. 의자에, 막대기에, 탁자에, 교수대에, 헤아릴 길 없는 나락 위에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그들의 희미한 아우성을 알아채지 못했다. 왜냐하면 신은 얼굴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신은 귀도 없었다. 신에게 귀가 없다는 것, 그들에게 그것은 가장 커다란 버림받음이었다." - 134pg . . 이별 없는 세대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와 집었던 책은 볼프강 보르헤르트라는 젊은 작가의 짧은 생 중에 적어내려간 단편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 . 2차대전의 시기, 병상에 갇혀 보내야했던 마지막 시간의 회한이 담겼었는지, 여러 단편들은 꽤나 어두우면서도 허무함을 담고 있었지만 한편으론 참 일상에 가까운, 조용하면서 따뜻한 풍경을 그리는 이야기들도 존재했다. . . 그가 단편과 시에 그릴 수 있었던 풍경들과 이야기들, 삶과 사람들을 향한 시선들이 그의 병상과 마지막 시간을 그 다른 이들보다 다채롭게 보내게끔 해주지는 않았을까, 간혹 묻어나오는 따스함과 희망을 품는 언어들은 그럼에도 그 병상을 헤쳐나와 삶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을 반영하는 건 아니었을까? . . "그러자 야행객이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인생이란 빗속을 달리고 문고리를 붙잡는 것 그 이상이에요. 서로 얼굴을 스쳐 지나가고 냄새를 기억해내는 것 이상입니다. 인생은 말이에요,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이에요. 기쁨도 가지죠. 기차에 깔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기차에 깔리지 않았다는 기쁨. 계속 걸어갈 수 있다는 기쁨이지요." -182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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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bbooks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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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폴 사르트르 - 말
2020년 12월 8일의 책
" 콧수염 없는 친구의 키스는 소금을 안 친 계란과 같다는 말을 그 당시의 사람들은 곧잘 했다. 나는 이에 덧붙여���, 그것은 악 없는 선과 같고, 1905년부터 1914년까지의 내 생활과 같다고 말하려 한다. 사람은 저항함으로써만 자신을 확정해 나갈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속속들이 불확정적인 존재였다. 사랑과 미움은 동전의 앞뒤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아무것도 사랑한 일이 없었다. 그야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미워하는 동시에 환심을 살 수는 없는 법이니까. 또한 환심을 사려는 동시에 사랑할 수도 없는 법이니까. ".. 44pg . . . 사르트르가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는지, 어떤 배경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는지 자신의 유년기에 초점을 맞춰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 . 사르트르의 할아버지가 작가였다는 점, 그리고 책장에 꽂힌 책들에 하나하나 인격을 부여할 수 있을 만큼 책을 사랑했던 사르트르의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어렸을 적 부터 보통의 사람들이 겪여 왔을 그런 '재롱'의 순간들을 인지하고 서술하던 부분들도 재미 있었다. . . . 이 책을 쓰는 순간에도 본인의 책이 어느 도서관에 꽂혀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던 것 처럼, 이제 그 책은 도서관을 떠나 곳곳의 서점에서 몇몇 이들에게 드문 드문 읽히고 있을 것이다. 작품을 통해 세기에 걸쳐 살아남고 싶어 했던 작가의 바램이, 이른 현대까지 잘 이뤄져오고 있는 것이다. . . . 사르트르가 30살에 썼다는 책 구토가 읽고 싶어졌다. 내 나이 때 사르트르가 머릿속에 그렸던 세계는 어땠을지 탐험해보고 싶다. . . "나는 그것이 하나의 사명이라고 치부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나를 밀어주는 사람도, 나를 진실로 필요로 하는 사람도 없어서 그런 사명을 나 스스로 꾸며 냈다는 것을 잊을 수 없었다. 노아의 홍수 이전의 세계로부터 불쑥 출현하여, 남들의 눈에 그렇게 보이기를 바라는 그런 '타자로서의 나'가 되기 위하여 '자연'의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순간, 나는 내 '운명'을 마주보았고 똑바로 인식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 '자유'였다. 나는 내 자유를 마치 외적인 힘처럼 내 앞에 우뚝 세워 놓았던 것이다.".. 184pg . . . #장폴사르트르#말#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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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bbooks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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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스완슨 - 죽여 마땅한 사람들
2020년 9월 27일의 책
"하지만 내가 멈칫한 이유는 미란다 때문이었다. 그녀의 자세, 조리대에 기댄 채 브래드의 넓은 어깨 쪽으로 몸을 돌린 자세에 무언가가 있었다. 너무나 편안해 보였다. 브래드가 불 붙은 담배를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주자,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들어 올려 길게 한 모금 빨았다. 그러고는 다시 브래드에게 담배를 돌려주었다. 담배가 오가는 동안, 둘 중 누구도 서로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 순간 난 두 사람이 함께 잤을 뿐 아니라 서로 깊이 사랑한다는 걸 알았다.".. . . . 오랜만에 책 한 권을 끝냈다. 이직이 마무리 된 덕택이었다(공부는 언제?). 재밌고 술술 읽을 수 있던 스릴 만점의 소설. 마냥 술술 읽은 탓이었는지 더 반전과 시점의 차이가 더 훅 들어오고 또 재밌게 읽을 수 있던 부분이 된 듯도 하다. . . . 여러 인물들 사이를 오가면서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타인에 대한 해석과 각자의 생각들을 독자가 확인해 볼 수 있는 지점이 이 책의 가장 의미있고 중요한 지점이 되는게 아닐까 싶다. . . . 작가의 상상을 통해 타인의 머리속에 들어가 보는 것은 어떤 면에선 재미있고, 어떤 면에선 또 도움이 된다. . . . "..하지만 과연 에릭이 정말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그는 나와 비슷했다. 사랑의 감정을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사람. 예전에 우리가 사귈 때 그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기는 얼마든지 두 여자와 동시에 동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나는 그 말을 잊은 적이 없었기에 4학년은 시험이 모두 끝나고 하급생들은 아직 수업 중인 시니어 워크에 에릭을 만나 그 얘기를 꺼냈다." . .. . #피터스완슨#죽여마땅한사람들#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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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bbooks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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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 - 페스트
과거의 독서 기록 - 2020년 3월 29일
".. 그들의 절망감은 그들을 공포로부터 건져 주었고, 그들의 불행에는 좋은 점도 있었다. 예를 들면, 그들 중 누가 병으로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대개의 경우 본인은 그것을 깨달을 시간적 여유도 없이 그리된 것이었다. 눈앞에 있지도 않는 그림자 같은 존재를 상대로 계속해 온 기나긴 마음속 대화로부터 끌려 나오는 즉시 그는 다짜고짜로 가장 무거운 침묵만이 전부인 흙 속으로 내던져지는 것이었다. 그는 앞뒤 돌아볼 시간의 여유가 전혀 없던 것이다." - 105pg . . . "파늘루 신부의 설교에 관한 이야기도 적혀 있었는데, 다만 이러한 주가 달려 있었다. '나는 그 호의적인 열정을 이해한다. 재앙이 시작될 때와 그것이 끝났을 때, 사람들은 으레 약간의 수사를 농하는 법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아직 습관을 털어 버리지 못해서 그렇고 후자의 경우에는 습관이 이미 회복되어서 그렇다. 불행의 순간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진실에, 즉 침묵에 익숙해진다. 기다려보자." -157pg . . . 페스트가 벌어지기 이전의 해안도시가 점차 퍼져나가는 페스트로 인해 변해가는 모습과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짜여진 소설 페스트는 전염병에 대한 극복보다는 전염병이 만연한 시기를 말 그대로 '살아'나가는 군상들이 담겨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 . . 도시 오랑에 퍼져나가는 페스트의 모습은 '현존하는' 코로나의 모습을 생각해보며 읽어볼 만 했고, 카뮈가 묘사했던 인물들의 고통과 견주어 우리들의 고통은 어떠한지도 돌아볼 수 있을만 했다. . . . 물론 소설 속의 페스트는 코로나에 비해 몇십배는 강력했으며, 고통스러운 고열과 종양을 동반하는, 주변에 드문드문 보이던 이들을 어느순간 찾아볼 수 없게끔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에 견주어 보았을 때 코로나가 우리에게 그만큼의 절망을 가져다주고 있지는 않다는 점과, 우리가 생각보다 잘 대처해 나가며 이겨내나가고 있다는 점들은 다행이라 여겨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은 지구촌 전체로 견주어봤을 때는 속단하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 . . . 아직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코로나를 두고, 아직 실감이 안나는 몇만의 숫자들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에서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국한적이면서도 필수적인 것들이 될 것이다. . . . 올해의 봄을 예년과 다르게 맞게 된 지금, 부디 단호함과 조심스러움이 좋은 결실을 맺길. 폭죽과 종소리, 거리로 나와 축제를 이루던 오랑의 이후 모습들 처럼, 익숙하던 지점들로 모두가 되돌아 올 수 있길. . . . 국내와 세계 각지에서 고생하시는 의료진들께 어느때보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 . . . "어둠침침한 항구로부터 공식적인 축하의 첫 불꽃이 솟아올랐다. 온 도시는 길고 은은한 함성으로 그 불꽃들을 반기고 있었다. 코타르도, 타루도, 그리고 리유가 사랑했으나 잃고 만 남자들과 여자들도, 죽은자들도, 범죄자들도 모두 잊혔다. 노인의 말이 옳았다. 인간들은 늘 똑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힘이고 순진함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리유는 모든 슬픔을 넘어서 자신이 그들과 통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400pg . . #알베르카뮈#페스트#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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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bbooks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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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번째 책 / 올해의 열 네번째 책
조승연 - 시크하다
《.. 이에 비해 프랑스의 운전 문화는 남에게 나를 맞추지 않는다. 즉 '남이 어떻게 움직이든지 나는 가던 대로 간다.' 이런 운전 문화의 장점은 다른 운전자의 행위를 확실히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24pg 《프랑스인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우리와 다르게 바라본다. 이는 메멘토 모리 전통과 관계가 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살아 있을때만 감정을 느낀다. 태어나기 전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고 죽은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는 제한된 시건이라면, 그것도 단 70~80년만 주어졌다면 슬픔, 절망, 우울같은 고통스러운 감정도 행복, 사랑 같은 감정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이 된다. 그것이 삶의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면 다른 사람 앞에서 감출 이유가 없다. 이것이 언젠가는 죽을 것임을 잊지 않고 사는 프랑스의 인생관이다. 》-49pg
조승연 작가가 2년간 파리에서 살며 겪은 이야기들은 예쁜 거리와 낡은 건물들, 자유로워보이는 사람들에 대해 보다 더 가까운 관점에서 설명해준다. 이 책을 통해 접한 프랑스의 모습은 어찌보면 한국과 미국등지 문화권에 비해 이단아처럼 보이기도 하며, 작가의 말처럼 계속 성장통을 겪고 있는, 끊임없는 변혁 그 자체가 프랑스를 상징하는 걸로 보이기도 한다.
어떤 방면에서 보면 한국에 비해 사람과의 교제와 결혼, 가족관계 등등 보통 30대에 접어들면서 생각하게 되는 고민거리등으로부터 자유로워보이는 것이 부럽다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은 소위 인생을 살면서 겪을 고민거리의 결을 다르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 살지 않는 한, 프랑스인으로 살지 않는 한 나는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한국에 살아가고 있는 5천만명 중에 1명으로써 살아가게 될 것이나, 내가 고민하거나 스트레스 받을 요소들이 있었다면 그게 '왜' 비롯되었으며 '그만큼' 스트레스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일일지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우리나라나 미국에서 "저 사람은 뭘 하는 분이지?"라고 묻는다면 대부분 그의 직업을 말한다. "저 사람은 변호사인데, 돈 많이 벌고 있지." 그런데 프랑스에서 같은 질문을 하면 이런 식으로 대답한다. "변호사로 일해서 번 돈으로 여행 블로그를 하지." "슈퍼마켓 장사로 돈 벌어서 음악도 배우고 공연도 다니지." 이처럼 프랑스인은 직장을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돈줄 역할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이 많다. 내 프랑스 친구들도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직장에서 인정받는 것으로 행복을 찾으려 하는 것은 아주 멍청한 행동이야."》-180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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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bbooks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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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번째 책 / 올해 열 세번째 책
에밀 아자르 - 자기앞의 생
《나는 다른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나는 철학자다. 카츠 선생님의 뒤쪽 벽난로 위에는 새하얀 돛이 여럿 달린 돛배가 한 척 놓여 있었다. 나는 불행했기 때문에 다른 곳, 아주 먼 곳, 그래서 나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그런 곳으로 가버리고 싶었다. 나는 그 배를 허공에 띄워 몸을 싣고는 대양으로 나아갔다. 내 생각엔, 바로 그 때, 카츠 선생님의 돛배에 올라탄 그때, 나는 난생 처음 먼 곳으로 떠날 수 있었다. 그때 그 순간, 비로소 나는 아이가 되었다.》
《"모모야, 그곳은 내 유태인 둥지야." "알았어요" "이해하겠니?" "아뇨. 하지만 상관 없어요. 그런 일엔 익숙해졌으니까." "그곳은 내가 무서울 때 숨는 곳이야." "뭐가 무서운데요?"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진실된 말이기 때문이다.》
소설에는 근본 없는 상실과 두려움이 드문드문 묻어있었다. 부모를 알지 못한다는 건 어떤 것인지. 하물며 본인의 나이를 넘겨짚어 알아야 하는, 새로운 아이들이 들어오고 다시 어디론가 입양되어 사라지는 로자 아줌마의 집에서, 마지막까지 로자 아줌마의 곁을 지키는 모모의 모습이란.
늙어간다든 건 무엇일까, 생을 버텨나간다는 건 무엇일까. 삶이 죽음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 근거란 아직 육신의 생기가 온전할 때 할 수 있는 말일까. 카츠 선생님의 말처럼 모모는 그 나이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보고야 말았다. 
안식처에서 끝까지 남아있던 모모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모모는 이미 부모를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었고, 어그러질때로 어그러진 로자 아줌마만이 결국은 모모의 전부였던 것이었나. 혹은 죽음이란 걸 이해할 수 없었고 배울 수 조차 없었던 모모의 환경이 그런 마지막 광경을 만들게 됬던 것일까.
《하밀 할아버지는 빅토르 위고도 읽었고 그 나이의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경험이 많았는데, 내게 웃으며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거지." 그리고 그는 박하차를 가져다주는 드리스 씨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오래 산 경험에서 나온 말이란다." 하밀 할아보지는 위대한 분이었다. 다만, 주변 상황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뿐.》
《나는 그와 함께 한동안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고, 그것은 프랑스의 것이 아니었다. 하밀 할아버지가 종종 말하기를, 시간은 낙타 대상들과 함께 사막에서부터 느리게 오는것이며, 영원을 운반하고 있기 때문에 바쁠 일이 없다고 했다. 매일 조금씩 시간을 도둑질당하고 있는 노파의 얼굴에서 시간을 발견하는 것보다는 이런 이야기 속에서 시간을 말하는 것이 훨씬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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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bbooks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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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번째 책 / 올해의 열 두번째 책
알프레드 되블린 - 무용수와 몸
"왈츠를, 아주 감미로운 왈츠를 그녀의 주인이 되어 버린 그와, 몸과 함께 추고 싶었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를 움직여 다시 한 번 몸의 양손을 잡고 몸을, 게으른 동물을, 그를 내던지고 이쪽저쪽으로 돌릴 수 있었다. 그러면 몸은 더는 그녀의 주인이 아니었다. 승리감 섞인 증오가 그녀를 안에서 뒤흔들었고, 그가 오른쪽으로 가고 그녀가 왼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곧 그들이 함께 뛰어올랐다. 그녀는 몸이 바닥으로 굴러 추락하기를, 그 큰 통이, 그 절뚝거리는 수컷이 곤두박치기를, 그 주둥이 속에 모래를 쑤셔 넣기를 원했다. - 무용수와 몸, 24pg"
"탐색 작업에 아무런 성과가 없어도 나는 동요하지 않고 내 길을 갔다. 하지만 끝없는 긴장 탓에 신경이 예민해졌다. 불안하고 두려웠다. 쇠약해진 나는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았고ㅡ내 마음은 그토록 어리석었다.ㅡ마치 불구자처럼 겨우겨우 돌아다니며 거리에서 사람들 얼굴을 동냥하듯 쳐다보았다. 내 마음속 불행은 너무도 컸기에 함께 지내던 누이에게도 기운 빠진 내 모습이 눈에 띌 정도였다. 여담이지만, 나는 평소처럼 먹고 마셨다. 어째서 온갖 우울함조차 내게서 식욕을 빼앗지 못했고 난 해야 할 일을 늘 해 나갔는지. - 냉담한 남자의 회고록, 117pg"
되블린의 단편들은 짧으면서도 강렬했다. 서두를 알 수 없는 흐름 속에도 단편 전체를 아우르는 문장들과 이미지는 격렬했고 분산되어 보였다. 되블린이 작품으로 보여준 인물들의 모습은 어둡지만 때로는 열정적이었으며, 다분히 어디론가 도망치는 모습들을 보이기도 했다. 새로운 시도들이 이전과 다를 바 없는 결과를 낳고, 스스로에 대한 불신과 확신 사이를 옮겨나가고, 불현듯 자신들의 운명을 맞이하고자 행동하던 주인공들의 모습들은 되블린이 우리에게 던지는 잿빛 위로였을까, 되블린이 자기 자신과 사람들에게 느낀 일련의 편협함과 역설들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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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bbooks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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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번째 책 / 올해의 열한번째 책
해리G.프랭크퍼트 - 개소리에 대하여
《그녀의 진술은 그것이 참이라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지 않으며, 거짓말이라면 응당히 그러해야 할, 그것이 참이 아니라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지도 않다. 그것은 바로 진리에 대한 관심에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 즉 사태의 진상이 실제로 어떠한지에 대한 무관심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개소리의 본질이라고 보는 것이다.》 - 37pg
《개소리는 꼭 허위일 필요가 없으므로, 그것은 부정확하게 진술하는 내용에 있어 거짓말과 다르다. 개소리쟁이는 사실 또는 그가 사실이라고 간주하는 것에 대해 우리를 기만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면 심지어 기만할 의도가 없을 수도 있다. 그가 반드시 우리를 기만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그의 기획의도이다. 개소리쟁이에게 유일하게 없어서는 안 될 독특한 특징은, 그가 특정한 방식으로 자신의 속셈을 부정확하게 진술한다는 사실이다.》 - 56pg
《우리 자신에 대한 사실들은 특별히 단단한 것도, 회의주의적 해체에 저항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본성은 사실 붙잡기 어려울 정도로 실체가 없다. 다른 사물들에 비해 악명 높을 정도로 덜 안정적이고 덜 본래적이다. 그리고 사실이 이런 한, 진정성 그 자체가 개소리다.》 - 68pg
이 책을 처음 짚었던 건 제목 자체의 유쾌함과 그 유쾌함을 담고 있는 작고 짙은 책의 겉모습 덕이었다. 글쎄, 개소리에 대하여 개소리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개소리는 무엇이며 어떠하게 쓰여지는 건지, 개소리와 거짓말의 차이는 무엇일지에 대해 평소에 얼마나 생각해 볼 일이 있을까? 개소리라고 붙일 말들은 크게 고민이 되지 않으면서도 말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거짓말과 개소리의 차이점을 고찰하는 과정을 통해 거짓말의 본질을 함께 되짚어보게 되는 점은 흥미롭기도 했다.
책을 덮고 나서 개소리에 대하여 되짚어보자면, 개소리에는 어느정도의 실존적인 면이 있다는 점과, 평상시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들과 대화들을 이해해가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려 개소리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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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bbooks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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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번째 책 / 19년의 10번째 책
잭 런던 - 야생의 부름
《끈에 연결되는 순간 그들은 전혀 다른 개가 되었다. 수동적이고 무관심하던 태도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들은 민첩하고 활발하며 일이 잘 풀리기를 열망하여, 혹시 늦어지거나 혼란이 생겨 일이 지체되면 지독하게 초조해했다. 썰매 끈에 묶여 일하는 것은 그들 존재에 대한 최상의 표현이었고 그들이 사는 이유였고 그들이 기쁨을 느끼는 유일한 일이었다.》 - 35pg 《삶에는 그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어떤 정점을 나타내는 환희가 있다. 그런 것이 살아 있음의 역설이다. 그 환희는 살아 있기에 찾아오지만 살아 있음을 완전히 망각할 때에야 찾아온다. 그 환희, 살아 있음의 망각은 감흥의 불꽃 속에서 자아를 잊는 예술가에게 찾아온다. 그리고 싸움터에서 전쟁에 미쳐 자아를 잊고 생존을 거부하는 군인게게 찾아온다. 》- 60pg  《그는 순수하게 솟구치는 삶과 조수처럼 밀려드는 존재의 파도, 근육과 관절과 심줄 하나하나가 움직일 때 느껴지는 완벽한 기쁨에 압도당했다. 솟구치는 삶은 죽음을 제외한 모든 것이었는데, 맹렬히 불타오르며 움직임 속에서만 자신을 드러냈고 별 아래, 움직이지 않는 죽은 물질의 표면 위로 환호하면서 날았다.》- 60pg 오랜만에 붙잡게 된 고전으로 급박한 전개와 접하기 다소 생소한 '개'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야생의 세계. 따뜻한 이성이 존재하던 세계에서 몽둥이와 송곳니가 지배하는 야성의 세계로 나아가게 되는 과정. 그 날것의 느낌을 강렬하게 전달하던 인상깊은 작품.
삶에 집중한다는 것. 무언가에 열중한다는 것. 어떠한 본능들이 우리를 춤추게 하였는가? 빨간 스웨터의 남자는 내게도 존재하였는가? 그가 들은 몽둥이는 무었이었는가. 나는 무엇을 부서뜨렸고, 내게서 무엇을 끄집어 내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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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bbooks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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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번째 책 / 19년의 아홉번째 책
카를로 로벨리 - 모든 순간의 물리학
《느끼고 판단하고 울고 웃는 존재로써 인간인 우리는 현대 물리학이 제공하는 세상이라는 이 거대한 벽화 속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을까요? 세상이 하루살이처럼 금방 사라지는 공간 양자와 물질 양자의 무리이자 공간과 기본 입자를 끼워 맞추는 거대한 퍼즐 게임이라면 우리는 무엇일까요? 우리 역시 그저 양자와 입자로만 만들어졌을까요? 그렇다면 각자 개별적으로 존재하고 스스로를 나 자신이라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가치, 우리의 꿈, 우리의 감정, 우리의 지식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요? 이 거대하고 찬란한 세상에서 우리는 대체 무엇일까요?》 - 116pg
카를로 로벨리는 이 책을 통해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보다 쉽게 짚어주면서 나아가 세상속에 우리, 우리가 생각하는 법칙과 나 자신에 대해서 짚어주게끔 한다.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의 접점을 찾고자 탄생한 루프양자중력이론이 말하는 실감이 잘 안되는 개념들도 재밌게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공간이 빈틈없이 '공간입자'로 구성되있다는 말. 그 입자는 공간속에 존재하지 않으며 그 자체가 공간이라는 말. 그 공간들이 '어떠한' 연결고리로 묶여있으며 이들의 상호작용이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의 개념을 창출한다는 말.
이 책을 읽으면서 또 들었던 생각은 물리학자들이란 단순히 수학적 공식과 물리적인 법칙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궁극적인 '우리'와 '세상'이라는 것에 대한 비밀을 파헤치고자 하는, 호기심 가득한 수행자에 가깝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빅뱅이나 공간의 구조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들이 저녁 무렵 모닥불 주위에 모여 수백, 수천번 반복하던 자유롭고 환상적인 이야기의 연속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무언가 다른 것의 연속입니다. 그 무엇은 바로 새벽의 첫 햇살을 받으며 사바나의 먼지 속에서 영양의 흔적을 찾는 '우리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찾을 수 있는 흔적을 추론해보기 위해 현실을 면밀하게 검토하는'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시선일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이 언제라도 실수할 수 있기에 새로운 흔적이 나타나면 생각을 바꿀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한편으로 인간이 현명하다면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새로운 답을 찾을 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과학입니다.》-122pg
《..윤리와 열정, 사랑은 복합적인 현실이고, 우리는 이러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눈물과 웃음, 감사와 이타주의, 믿음과 배신, 우리를 번뇌하게 하는 과거와 평온함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우리가 함께 구축한 공통의 지식이 교차하는 풍요로운 연결망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이 모든것이 지금 우리가 설명하고 있는 자연 그 자체의 일부입니다. 자연에서 우리는 통합된 부분이자,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자연의 일부입니다. 이러한 점이 우리에게 세상의 일들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131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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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bbooks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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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번째 책 / 19년의 여덟번째 책 
헤르만 헤세 - 수레바퀴 아래서
. . 《소년의 내면에는 거칠고 야만적인 무질서의 요소가 숨어 있다. 먼저 그것을 깨뜨려야 한다. 그것은 또한 위험하기 짝이 없는 불꽃이다. 먼저 그것을 밟아 꺼버려야 한다. 자연이 만든 인간은 예측 불허의, 불투명한, 위험스러운 존재이다. 인간은 미지의 산맥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이며, 길도 질서도 없는 원시림이다.》 . . . 《이미 여러 달 전부터 낯설게 되어버린 일상적인 삶은 유혹하는 듯한 얼굴과 위협하는 얼굴로 약속하기도 하고, 강요하기도 했다.》 . . . 수줍음 많고 영민한 어린 소년 한스가 획일화된 교육제도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마는 과정을 그린 소설. . . . 보통 획일적이고 경직되었다 여기는 교육방식이 한국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여느 나라에도 그들에게 주어진 길에 따라 필히 따라가야만 했던 단일적인 행로가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 . . 지금 들어서는 사실 어느 교육방식이 옳고 그르다라고 매듭짓기엔 변화하는 세상의 속도가 매섭다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가르침이란 행위는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는 것일까? . . . 한스가 학교를 그만두고 견습공을 시작했을때의 묘사되는 복합적인 감정들, 나름의 자부심과 문화를 간직한 대장장이들의 세계들은 헤세가 혹 동경했을 다른 차원의 삶의 모습들은 아니었을까 싶다. . . . 《그 당시에는 모든 것들이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훨씬 더 아름답고, 즐거웠으며, 활기가 넘쳐흘렀다. 벌써 오래전부터 한스는 라틴어와 역사, 그리스어와 시험, 신학교, 그리고 두통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동화책도 있었고, 도둑 이야기가 적힌 책도 있었다. 자그마한 정원에는 한스가 손수 매달아놓은 절구 물레방아가 돌고 있었다. 그리고 저녁 무렵이면 나숄트 잡안의 현관 앞에 모여 리제의 모험담을 듣기도 했다. 그때는 가리발디라고 불리던 이웃집의 늙은 할아버지 그로스요한을 오랫동안 강도 살인범이라고 생각하며 꿈을 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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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bbooks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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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번째 책 / 19년의 일곱번째 책
문유석 - 판사유감
《'소비의 하방경직성'이란 말이 있습니다. 소득이 줄어든 주제에 종전의 소비 수준을 유지하려는 성향이 강하여 빚이 늘어난다는 거죠.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도 유지하려 하는 종전 소비는 실제로 어떤 것들일까요? 외제차, 해외여행, 골프일까요? 제가 보기에 그것은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있는 유치원을 그만두게 하는 것이고, 공부 잘해서 나중에 부모보다 잘살기를 바라며 남들은 고액 과외를 시킬 때 아이들 동네 학원이라도 보내던 것을 그나마 그만두게 하는 것이고, 노환으로 병원 출입이 잦은 부모님께 병원비와 용돈으로 보내던 10만원을 계속 보내느냐 마느냐의 문제입니다.》 . . . 《파산한 기업은 청산되어 소멸하지만, 파산한 인간은 계속 살아가야 합니다. 도전하다가 쓰러진 인간에게는 무덤 대신 두 번째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활자가 아닌 사람을 통해 제가 배운 것입니다.》 . . . 문유석 판사의 인간적인 시선을 옅볼 수 있는 따뜻하면서도 고뇌가 담긴 에세이다. 판사 집단의 세계와 분위기, 재밌는 이야깃거리들은 물론이고 주로 피고인으로 들어온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을 접할 수 있다. 이외에도 주옥같은 글귀들이 많아 밑줄을 치고 두고두고 보고싶은 부분이 많은 책이다. . . 보통 똑같은 피의자와 사연을 두고서도 우리가 접하게 되는 것은 직접적인 재판의 방청이 아닌 뉴스에서 뽑아내는, 우선적으로 선별된 시각으로 보는 것들이 대부분이기에 우리는 자주 어떤 사건들과 판결에 노하게 되는 부분도 있을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니까 모든 피의자가 또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건 아니지만, 어느 피의자의 경우에는 어떤 사건이 터지기까지 얼마만큼의 일들이 있어왔고, 얼마만큼의 결핍이 있어왔는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 . 요즘에도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지금, 판사들도 깊은 고뇌를 안고 있을 것이다. 기존의 판례들을 뒤엎는 일들이 때로는 형평성의 문제를 안고 올 수도 있는 것이기에. 판결이라는 것도 그들의 법적 지식과 윤리에 앞서 사회와 문화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기에. 그리고 판결이라는 건 때에 따라 뒤집을 수 없는, 한 사람의 인생에 지울 수 없는 낙인을 안겨 줄 수도 있기에. . . .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벌이 마땅하다 당연히 여겨지는 '흉악한'일들에 대해서는 항상 그에 합당한 판결들이 내려졌으면 하는 마음은 변함 없이 드는 듯 하다. . . . 이에 있어 문유석 판사는 재판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한다. 한 사람을 벌 지어서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방안이 있을 것이고, 애초에 사회의 어떤 일면들 때문에 사건과 범죄자가 나타나는 것이라면 더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 지도록 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라고. . . . 《.. 이런 생각이 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대법원장님이 인사청문회 때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을 TV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나는 개인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간섭을 배격하고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며 인간을 일정한 틀에 묶어 두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반대한다. 법의 사명은 이런 사회를 조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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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bbooks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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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번째 책 / 19년의 여섯번째 책
가즈오 이시구로 - 나를 보내지 마
《날씨는 눈부시고 쾌청했다. 내 기억에 의하면 처음 한 시간 동안 우리 모두는 야외로 나왔다는 것에 들뜬 나머지 무엇 때문에 그곳에 왔는지 잊어버릴 정도였다. 이윽고 로드니가 두 팔을 휙휙 소리 나게 휘둘러 대며 주택가와 노점을 지나는 오르막길로 우리를 인도했다. 드넓은 하늘만으로도 그 길이 바다를 향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208pg . . . '기증자', 혹은 '간병사' 라는 두가지의 운명밖에 정해져있지 않은 복제인간들의 사투는 미약하면서도 때묻지 않고 순수했다. . . .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스스로의 운명을 보다 더 인식하고 받아들여나간다는 점에서는 일반 사람들보다도 숭고해보이는 면도 있는 점도 있었다. 죽음을 피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일반 사람들에 비해 이들은 죽음을 피해가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던, 어떤 본질적인 죽음과 스스로에 대한 태도인지는 몰라도 그점이 복제인간들과 일반 사람들의 차이를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그들이 얼마나 더 살아가고 싶고 다른 삶을 살고 싶은지를 떠나서 말이다. 그런 '저항하지 않는' 이들 '인간'들의 순종적 모습들은 지금 자유로운 의지의 삶을 가진 우리에게 많은 질문과 생각거리를 던지게끔 만든다. . . . 많은 꿈과 노력들을 담아내려 했던 '헤일셤'에서의 일대기와 그곳에서 자라 더 큰 희망을 찾고자 했던 이들의 노력, 이윽고 사라지고 만 시설로써 그들의 기억과 추억으로만 남게 된 헤일셤. 돌아가거나 추억할 수 있는 사람들과 장소들이 사라지고 난 뒤에 우리는 스스로를 과연 얼마나 지탱할 수 있을까? 만일 그런 복제인간들의 존재가 나타난다면, 우리는 과연 그들을 쉽사리 포용할 수 있을까? 그렇게 우리는 이미 옅어진 어떤 '존엄성'을 회복해 낼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그들보다 더 뚜렷한, 정말 순수한 '삶' 자체에 대한 열정을 품어낼 수 있을까? . . . 《..맞아. 거칠고 잔인한 세상이지. 나는 어린 소녀가 두 눈을 꼭 감은 채 과거의 세계를 가슴에 안고 있는 걸 보았어. 그걸 가슴에 안고 그 애는 결코 자기를 보내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지. 나는 그 장면을 바로 그렇게 본 거란다. 그건 실제 네 생각이나 행동은 아니었지만 말이야.》 - 372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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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bbooks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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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번째 책 / 19년의 다섯번째 책
채사장 -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그것은 이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증명될 수 있어도, 이 우주 자체가 증명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우주가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지, 아니면 한바탕 꿈이었는지는 이 우주 안에서는 결코 증명될 수 없고, 네가 죽거나 꿈을 깨고 나서 이 우주를 벗어난 다음에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란다."》
《사실 우리가 본 것은 컵의 실제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컵의 개념이다. 정리하자면 우리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개념을 바탕으로 눈에 보이는 물체를 재구성한다. 마치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그 장면을 보는 것처럼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를 본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세번째로 접한 채사장의 책으로, 지대넓얕 1편에서 다루지 못했던 철학과 예술, 종교와 그 너머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전에 어중간히 접했던 철학이라는 분야를 고대 그리스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저마다의 철학과 개념을 통해 세상과 사람, 개념과 관념들을 해석하고 정의하고자 했던 다양한 철학자들을 통해 좀 더 넓게 접할 수 있다. 허나 각각의 철학들은 단번에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으므로, 흥미롭고 궁금해보이는 철학자들을 짚어 후에 따로 읽어보는것도 좋은 시도가 될 것 같다.
예술의 경우에는 가장 큰 난관이기도 한 '작품을 어떻게 감상하는 것인가?'에 대한 좋은 가이드라인을 얻은 듯했다. 책에서 소개되었던 예술의 흐름은 기존의 세상을 아우르던 규칙들을 부수고 흔드는 방향으로 이어져나가는 것이었고, 우리가 볼 것은 (특히 현대미술) 작가가 '무엇을 흔들고 있는가:대상,주체,의미' 였다. 특정 그림들에 있어 그저 그림이라고 느낄법한 것들에 어떠한 노력과 고뇌가 담겨있는지에 대해 아는 것도 의미있었다. 종교의 경우 단순히 가지치기 식으로 나온줄 알았던 이슬람이 기존 기독교의 구약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의식에 있어서는 이전에 뇌과학책을 보며 '감각되는 것들'과 '실재'의 차이에 대해 접했던 적이 있어 낯설지는 않았으나, 다만 실제 내가 느끼는 이 '세상'이라는 것은 내가 존재하며 가지고 있는 이 '의식'으로부터 형성되며 존재할 수 있다는 것, 들으며 상기해볼때의 느끼는 오묘함은 개개인에게 생각의 시간을 줄지도, 혼란의 시간을 가져다 줄지도 모르겠다. 《근대를 끝내고 현대 포스트모던의 탄생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준 철학자 니체는 자신의 여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네가 영혼의 평화와 행복을 원한다면, 믿어라. 다만 네가 진리의 사도가 되려 한다면, 질문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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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bbooks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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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 흰
94번째 책 / 2019년의 네번째 책
《몇 년 전 대설주의보가 내렸을 때였다. 눈보라가 치는 서울의 언덕길을 그녀는 혼자서 걸어올라가고 있었다. 우산을 썼지만 소용없었다.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었다. 얼굴로, 몸으로 세차게 휘몰아치는 눈송이들을 거슬러 그녀는 계속 걸었다. 알 수 없었다. 대체 무엇일까, 이 차갑고 적대적인 것은? 동시에 연약한 것, 사라지는 것,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이것은?》_64pg . . . 어느덧 한강 작가의 세번째 책을 읽었다. 작가 특유의 사그라들것만 같은 언어들은 그대로 담겨 있었다. 내용들은 주로 태어��지 얼마되지 않아 잊혀지고야 말았던 생명들에 대한 연민, 그리고 그런 사실들을 뒤로 살아나가고 있는 이의 삶에 대한 성찰들이 담겨져 있다. . . . 잊혀져버린 것들, 생명이라 불리울 것들이 생의 경계로 넘어오기 직전의 순간에 한강은 집중했다. 그것들이 삶의 범주에 든다는 것이 무엇인지, 살아나간다는 건 무엇인지. 사라져나가는 것들 속에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모습들에 대해, 말 없는 사물들과 흰 빛을 띄고 작별을 기리는 물체들에 대해. . . . 《하얗게 웃는다, 라는 표현은(아마) 그녀의 모국어에만 있다. 아득하게, 쓸쓸하게, 부서지기 쉬운 깨끗함으로 웃는 얼굴. 또는 그런 웃음. . . 너는 하얗게 웃었지. 가령 이렇게 쓰면 너는 조용히 견디며 웃으려 애썼던 어떤 사람이다. . . 그는 하얗게 웃었어. 이렇게 쓰면 (아마) 그는 자신 안의 무엇인가와 결별하려 애쓰는 어떤 사람이다. . 》_ 78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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