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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SF 협회의 답변에 대해
한국 SF 협회에서는 5월 26일 밤 10시 45분에 이와 같이 답변했다.
https://twitter.com/koreasforg/status/1132885461087580161
근 한 달 동안 답변이 없었던 이유는 별도의 조사위원회를 구성해서 조사하기 위해서였고, 조사하는 동안 조사 중이라는 내용까지 포함해서, 답변하기 힘들었을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가장 의문스러웠던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히 해명된 셈이다.
다만, 몇 년째 문제 제기 중인 측은 여전히 승복할 수 없다고 하며*, 이미 문제 제기된 내용에 대해 다른 단체에서 조사하고 판단하여 결정한 결과와 이번 결과가 판이하게 다르며**, 결정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측과는 아무런 접촉이 없었으나 문제 제기된 당사자의 입장을 옹호하는 급조된 계정과는 사전 접촉이 확인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SF 팬덤이 다사다난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 좋은 게 좋은 거고 평온한게 좋은 걸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의 분위기 속에서 침묵당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잘못을 얼마만큼 한 걸까.
* https://twitter.com/enchaintheheart/status/1132895173485113345
** https://www.facebook.com/gynotopia/posts/1930658413693709?hc_location=u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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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SF 협회의 묵묵부답과 급조된 계정의 수상한 대응에 대해

트위터에서 한 사용자가 한국 SF 협회(이하 ‘협회’)에 이메일 문의를 보냈다. 협회의 행사에 한 작가가 계속 참여하는 것이 적절한지 묻는 이메일이다.


정말로 답변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문의였을까? 답변 대신 이래야 했을까?

대신에 거의 당일 개설된 계정이 트윗을 쏟아냈다.

그런데 왜 지난 7년간은 지켜보고만 있었을까. 왜 이제야 도저히 내버려둘 수 없게 된걸까. 정말로 잔혹하고 끔찍한 괴롭힘일 뿐이었나?




협회는 왜 불필요한 오해를 감수하면서 무대응을 하는 걸까.

언론 같지 않은 언론들이 잘 써먹는 한 관계자는 과연 누구일까.

협회의 운영진은 다음과 같다.
회장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수석부회장 유창석 (경희대 교수) 부회장 윤여경 (작가) 부회장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부회장 홍인수 (웨스트버지니아대 교수)
감사 이수현 (작가, 번역가)
상임이사 권정민 (데이터과학자) 상임이사 김보영 (작가) 상임이사 김용권 (온라인 마케터) 상임이사 김주영 (작가) 상임이사 김창규 (작가, 번역가) 상임이사 배윤호 (번역가) 상임이사 이남진 (영화대장간 대표) 상임이사 이서영 (작가) 상임이사 이지용 (건국대 교수) 상임이사 이진주 (걸스로봇 대표) 상임이사 장정원 (UI/UX 디자이너) 상임이사 홍석찬 (영상제작가)
이사 이강영 (경상대 교수) 이사 정헌목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이사 최내현 (출판인)
이 중에 어느 관계자가 여성주의 단체들이 연명한 이메일 문의를 보고 수상하게 급조된 계정에게만, 운동권에선 이런 게 통하냐 운운을 했을까? ‘SF를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끼리 모여 신나게 노는 곳’에서 나온 코멘트치고는 너무 시대착오적이고 구태의연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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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한국 SF에 대해

2018년의 장편 SF : "세븐이브스" (닐 스티븐슨)
장대한 스케일과 스토리텔링으로 현대 스페이스오페라에 대한 시야를 넓혀준 “다운빌로 스테이션”이나, 정교한 플롯과 과감한 사변의 “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도 좋았지만, SF를 읽는 원초적인 재미, 본질적인 쾌감이 어떤 것이었는지 새롭게 깨닫게 해준 닐 스티븐슨의 “세븐이브스”가 단연 올 한 해 최고의 장편 SF이었다.
2018년의 SF 시리즈 : ‘라드츠 3부작’ (앤 레키)
후속권까지 나오진 않았지만 존 스칼지의 ‘상호의존성단’ 시리즈도 시작되었고, ‘별의 계승자’ 시리즈도 3, 4권이 출간되며 계속 진행 중이고, 꼭 완결된 시리즈만 꼽겠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올해의 SF 시리즈는 앤 레키의 ‘라드츠 3부작’이어야만 할 거 같다. 이야기의 스케일이 다소 아쉽지만 새로운 시대의 스페이스오페라는, SF 시리즈는 어때야 하는지, 어떨 수 있는지 잘 보여주었다.
2018년의 SF 단편 : ‘상태 변화’ (켄 리우)
2018년의 SF 단편집 : “종이 동물원” (켄 리우)
단편은 상대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했다. 단편집으로서도. 국내 단편집으론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관내분실”이랑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 “삼사라” 등이 있었고, 해외 단편집으로는 “자신을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 등이 있었지만,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서양의 SF 단편집은 한 권도 안 나왔던 걸까?) “자신을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도 우리에겐 아직 낯선, 인도 문화와 사회를 배경으로 한 단편들을 소개해줬다는 점에서, SF를 바라보는 한국 독자들의 시야를 넓혀줬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지만, SF를 읽는 재미 자체는 다소 많이 아쉬웠고, 그런 면에서 오랜 만에 한 편 한 편 읽고 났을 때마다 포만감에 잠시 책을 내려놓고 쉬게 만드는 “종이 동물원”을 올해의 SF 단편집으로, 그리고 올해의 SF 단편으로는 (SF근본주의자 혹은 원리주의자들은 펄쩍 뛰겠지만) ‘상태 변화’를 꼽아 본다. 물리적으로 결코 해명할 수 없는 원리를 가진, 그렇지만 나머지는 현재 우리와 동일한 세계를 배경으로, 그렇지만 일단 그런 세계를 상상해본다면 그 세부는 어떠할지, 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삶은 어떠할지 이야기를 통해 탐구해나가는 그 진행은 근본적으로 SF적이며,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삽입된 대체역사적인 일화들도 역시 그런 점에서 SF적이다. 무엇보다도 결말의 반전은, 상전이라는 물리 현상과 원리를 바탕으로 인생과 세상에 대한 개인의 관점 변화를 탁월하게 형상화하고 있어서, 좋은 SF를 읽은 재미와 감동과 구분하기 힘들다. 구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2018년의 SF 담론 혹은 평론 : 없음
기획회의 461호의 #오늘의 SF 특집과 SF 컨벤션 자료집격인 미래경 특별호가 있었지만, 딱히 특별한 담론이나 평론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트위터에 올라왔던, '한국 SF는 과연 페미니즘에 친화적인가’ 타래가 특기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2018 SF 단행본 best 10
다운빌로 스테이션 1
세븐이브스 3
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사소한 자비
신의 망치
에셔의 손
자신을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
종이 동물원
완전사회
풀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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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로맨서”에서 공간과 인물 심리의 조응에 대해
“뉴로맨서”에서 이상하게 흥미를 끄는 구절�� ‘케이스는 주머니에 잔뜩 들어 있는 리라 동전을 뒤져 광택이 죽은 조그만 합금 동전을 골라 하나씩 투입구에 넣었다. 시대에 뒤떨어진 일련의 과정이 왠지 재미있었다.’(김창규 역, 황금가지 2005. 154쪽)이다. 맛이 조금 안 사는데, 익숙한 번역으로 읽어볼까? ‘주머니에 잔득 든 리라 동전을 뒤져 회색의 합금 도언을 계속 자동판매기에 넣는다. 이 시대 착오적 절차가 어쩐지 재미있다.’(노혜경 역, 열음사 1996. 143쪽) 주어 생략에 무엇보다 현재형 문장이 훨씬 케이스의 내면에 밀착되어 맛깔나는데, 내친 김에 이 번역에 참고된 일어 중역본을 보면, ‘주머니 가득한 리라 화를 꺼내, 엷은 먹색의 작은 합금 동전을 차례로 판매기에 집어 넣는다. 이 시대 착오적인 순서가 웬지 재미있다.’(유인경 역, 청담사 1992. 143쪽)
이 구절이 흥미로운 것은 아마도 주인공 케이스의 심리가 가장 경쾌한 순간 중 하나라서일 것이다. 물론, 다음 순간 공중전화로 걸려온 윈터뮤트와의 통화로 산산이 깨어지지만. (아마도 그러한 대비는 의도된 것일 것이다) 전반적으로 케이스의 심리는 극도로 가라앉아 있고, 그러한 점은 케이스가 이동하는 경로와 그곳의 공간들과 조응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문장은 아마도, “(전략)제 기능을 못하는 췌장이며 간에 꽂아 넣은 장치들, 그리고 점점 녹아가는 거지 같은 주머니까지. 전부 엿이나 먹으라고 그래. 난 날고 싶다고.”(207쪽, 이하는 모두 황금가지 2005.) 케이스의 초조함은 그곳이 결코 날 수 없는, 가짜 하늘의 자유계이기에 더 도드라져 보인다.
이야기의 출발점, 의뢰인의 물건을 훔쳐냈다가 사이버스페이스에 접속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기고 처박혔던 치바 시는 그 유명한 첫문장 ‘항구의 하늘 색은 방송 끝난 텔레비전 화면 색이었다’(11쪽)에서 보이듯, 열린 항구도시이지만 하늘은 마치 닫힌 것처럼 무겁게 내리 누르고 모든 것이 비에 젖어 번들거리고 축축하며 네온사인과 거울들로 꽉 막힌 공간으로 제시된다. 덫에 걸린 늑대��럼, 탈출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케이스는 자살 충동에 가까운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무모하게 위험 속에 던져넣던 중 배후를 알 수 없는 아미티지에게 끌려나와 한시적으로 능력을 회복했지만, 대동맥 열다섯 군데에 예전에 신경을 망가뜨렸던 신경독이 든 주머니가 매달려 있으니 조급하고 답답한 것은 당연하다. 덫에서 끌려나왔지만 목에는 새로운 굴레가 씌워진 셈이니까. 게다가 끌려나온 공간은 우주공간 한복판의 단절된 폐쇄계라는 점은 한 번 더 폐쇄감을 강조한다.
중력 우물 바깥, 자유계 공간의 이질감과 폐쇄감은 여러 구절에서 언급된다. 특히나 케이스가 ASA-우주 적응 증후군으로 고생하고, ‘지구로 돌아가기를 거부한 다섯 명의 노동자들’로부터 출발한 얼기설기 얽은 콜로니 ‘자이언’을 경유하면서 더욱 더.
‘케이스는 택시의 투명한 구형 지붕 너머로 자이언의 허술한 외벽을 바라보면서 이스탄불의 싸구려 공동주택들을 떠올렸다.’(162쪽)
‘어찌된 일인지 터널의 끝은 터널의 바닥으로 변해 있ᄋᅠᆻ다.케이스는 물에 빠져 공기가 있는 곳을 찾는 사람처럼 약한 중력에 매달렸다.
“일어서. 바닥에 키스라도 하는 거야?”’(163쪽)
‘그들은 깊은 골짜기나 협곡의 바닥처럼 보이는 널따란 거리에 서 있었다. 비현실적인 각도로 기울어진 거리의 양 끝은 벽을 이루는 상점과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머리 위 발코니와 건물 상층에 엉킨 녹색식물들 사이로 빛이 비쳤다. 그리고 태양은...
머리 위 어딘가에 지나치게 밝은 흰색 사선과 칸의 하늘을 녹화한 푸른색 영상이 비치고 있었다. 케이스는 태양광이 라도 에치슨 시스템에 의해 공급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직경 2밀리미터의 전기자가 방추형 콜로니를 종단으로 가로지르며 그 둘레에 회전하는 하늘의 영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하늘이 꺼진다면 케이스는 전기자가 있던 곳 너머로 구불구불한 호수와 카지노의 지붕, 그리고 다른 거리들을 보게 되었다. 그렇게 된다면 그의 몸은 당황할 것이 분명했다.’(192쪽)
케이스를 중심으로 공간과 심리의 조응을 간략히 살펴보고 있지만, 사실 이 작품은 (다른 모든 좋은 소설들처럼) 나머지 인물들도 모두 주연급의 비중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간직한 채 움직이며 이야기의 밀도를 한층 다져나가는데, 특히 메모리 배달부 조니의 추억을 간직한 몰리와, 그 자체로 한 편의 중편 테크노-밀리터리-느와르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아미티지가 지구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공간인 자유계를 배경으로 각각 기억에 대한 상승과 하강의 공간 이동적 대비를 보여주는 부분은 흥미롭다.
기억을 딛고 올라가는 몰리의 상승 :
‘몰리가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봐, 케이스. 듣고 있어? 얘기하나 해 줄게. 전에 남자가 있었어.”
그녀가 몸을 돌려 복도 쪽을 살폈다.
“이름은 조니였어.”’(274쪽)
‘로봇이 거의 구별하기 힘든 U자형 철제 사다리를 기어올라 어둡고 비좁은 통로 쪽으로 향했다.
“왠지 고백하는 기분이 들어서 하는 말인데, 이번 일에 성공할 거라는 확신은 안 들어. 계속 안 좋은 일들이 생겼어. 게다가 내가 아미티지에게 고용된 뒤로는 너한테만 좋은 일이 생기는 것 같아.”
그녀가 검은 원을 올려다보았다. 로봇의 발광다이오드가 깜박이며 올라가고 있었다.
“네가 그렇게 대단한 녀석도 아닌데 말이야.”
몰리의 미소가 금세 사라졌다. 그녀가 사다리를 기어오르자 찌르는 듯한 통증이 전해졌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296쪽)
그리고 기억에 사로잡힌 아미티지의 추락 :
‘“미안하네, 케이스. 하지만 이게 유일한 길이야. 우리 중 한 사람은 탈출해야 하네. 우리 중 한 사람은 진실을 밝혀내야 해. 여기서 함께 죽는다면 그걸로 모든 게 끝이야. 내가 그들에게 말하겠네, 케이스. 전부 말하겠어. 걸링과 그 일당에 대해서. 그리고 도착해 보이겠네, 케이스. 자신 있다고, 케이스. 헬싱키로.”
갑자기 침묵이 찾아왔다. 케이스는 고요함이 가스처럼 헬멧에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중략) “추락한다. 반복한다. 오마하 선더가 추락한다. 우리는...”
케이스가 비명을 질렀다.
“윈터뮤트. 이러지 마!”
눈썹에서 튀어나온 눈물이 흔들리는 수정 방울로 변해 안면 창에 부딪혔다. 그 순간 하니와가 몸을 한 번 떨었다. 무언가 크고 부드러운 물체가 배의 외벽에 부딪힌 것 같았다. 케이스는 나사들이 터져 나가며, 구명정이 격렬하게 흔들리고, 순간적으로 빠져나가는 공기의 허리케인이 미친 코르토 대령을 좌석에서 찢어 내는 모습을 떠올렸다. (중략) 그러나 케이스는 자유계 근처를 ��는 아미티지의 영원한 낙하를 보고 있었다. 스텝 기후보다 더 차가운 진공을 통해서. 케이스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가 검정 바바리를 입고 있다고 생각했다. 넓은 트렌치코트 자락이 그의 주위로 거대한 박쥐의 날개처럼 펼쳐졌다.’(311~312쪽)
그렇지만 물론,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사이버스페이스다. 인간이 진정으로 창조해 낸 전적으로 새로운 공간이자 인간의 내면-내우주이자 또다른 내우주들과 연결된 공유 공간. 도입부에서 다시 사이버스페이스에 접속하는 유명한 장면에서 케이스는 거의 종교적 황홀경에 오른 것처럼 보일 정도다. 통제되지 않는 기술과 자본, 오염된 환경으로 얼룩진 실제 공간에 비해 사이버스페이스는 모든 것이 통제되고 오염되지 않은 이상적인 공간처럼 보인다. 그리고 하나 더 추가하자면, 사이버스페이스는 과거가 없는 공간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맨 처음에 인용한, 케이스가 가장 밝은 기분을 보이는 장소인 이스탄불은 인류사적인 스케일에서 잔존하는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가 교차하는 도시이고, 지바시와 스프롤에서도 케이스는 끊임없이 달라붙는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힌다.
케이스가 과거의 기억을 떨치는 것은 사이버스페이스에서만이고, 심스팀 해킹으로 인공지능들이 끼어들 때마다 과거의 공간으로 끌어내려 던져지는 장면들이 대비되어 이를 더욱 강조한다. SF가 아닌 일반적인 소설로만 읽는다면 클라이맥스에서 케이스는 마침내 지난날의 잘못과 회한을 모두 떨치고 스스로의 자아정체성을 재정립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완벽할 수는 없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고, 과거를 후회하며, 앞으로 다시 저지를 잘못 앞에서 불안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앞서 살펴본 몰리의 상승과 아미티지의 추락도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이 한 번 더 묻고 있는 인생의 영원한 질문들 중 하나-과거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각각 다른 대답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런 점에서 몰리와의 모험마저도 과거로 잘 정리하고 미래를 향해 걸어나가던 케이스가 뉴로맨서에 의해 모사된 또 다른 자신이 결별했던 과거와 함께 매트릭스 안에 남아있는 모습을 스쳐지나가는 결말의 씁쓸한 아이러니는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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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회의’의 ‘#오늘의 SF’에 대해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간행하는 ‘기획회의’ 2018년 5월호(461호)의 특집으로 SF가 다뤄져서 2018년 현재의 한국 SF를 둘러싼 담론의 일단이 나타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읽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의 출범이나 머니투데이 신문사의 ‘과학문학상’ 공모전 시행 등의 근래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담론적인 면에서 한국 SF는 별다른 갱신이 이루어지지 않은 듯해서 실망스러웠다. 해당 특집의 기사들은
SF적 상상력은 왜 중요한가 /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SF는 이미 세상을 바꾸어놓았다 / dcdc (SF작가) SF란 무엇인가, 과학과 소설 사이 혹은 그 너머 / 문지혁 (소설가·번역가) SF 작가로 산다는 것 / 김보영 (SF작가) 한국어로 쓴 SF 출판하기 / 이규승 (온우주 출판사 대표) SF 전문 편집자란 무엇일까 / 최지혜 (프리랜서 편집자·작가) SF 세계를 여행하는 독자들을 위한 가이드 / 전홍식 (SF&판타지 도서관 관장)
으로 구성되어 있고, 하나하나 읽어보자면,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의 ‘SF적 상상력은 왜 중요한가’는 몇 년 째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 앨빈 토플러의 ‘SF는 미래를 위한 교과서다’ 담론을 시험관 아기와 맞춤형 아기, 구텐베르크 마인드와 SNS 같은 키워드로 한 번 더 재탕하고 있다. 물론 여타의 팬덤과 마찬가지로 SF도 새로운 독자의 지속적인 유입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일반론적이고 평이한 담론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SF의 본질과 무관한, 부수적이거나 어쩌면 실체가 없는 사회적 효용을 강조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새로운 독자층 유입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스럽다. 과연 SF는 예언과 예측을 통해 미래를 미리 대비시켜줄 수 있을까? 지금까지 그렇게 해온 적이 있을까? 그보다는 현실의 현재에 국한되지 않는 상상력의 자유로운 분출, 새로운 시각, 새로운 가치관에 대한 열린 마음을 통해 시대의 변화에 보다 원활히 적응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을 뿐일 따름이 아닐까? 그러나, 설혹 그렇더라도, 그게 과연 SF의 본질일까? 미래의 교과서를 기대하며 SF를 펼쳐든 일반 독자가 얼마만큼 만족하게 될까? 얼마나 더 오래, 얼마나 더 많이 SF를 찾아 읽게 될까?
dcdc의 ‘SF는 이미 세상을 바꾸어놓았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칼럼 안에서도 언급하고는 있지만 출판 관련 매체에서 절반 이상의 분량을 영화 ‘블랙 팬서’에 대한 예찬으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SF가 세상을 바꿨다고 거창하게 선언하면서(그런데 SF가 세상을 바꾸는 게 좋은 걸까? 앞에서는 SF가 바뀌는 세상을 예측하고 적응하는데 도움을 준다더니? 아니, 그보다는 영화 ‘블랙 팬서’가 정말로 세상을 바꿨나? 바꾸고 있나?) 드는 예가 결국 SF 영화라면, 역으로 SF 소설은 결코 그만큼 사회적 변화를 일으킨 적이 없다는 말일 것이다. (과연 그럴까?) 그래놓고는 본인도 뒤늦게 찔렸는지 "그러니 한국사회에서 이 SF의 문법, SF적 사고실험이 빛났던 사건에 대한 언급으로 글을 마무리 짓겠다"며 가져온 것이 ‘이갈리아의 딸들’과 ‘메르스 갤러리’라면, 도대체 이 글은 왜 쓴 건가 싶다. 미러링 전략이 정말 유효한 건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진행 중인 이 시점에, 그것도 결코 SF의 흐름 중에서도 가장 먼 곁가지에서 나온 소설로 끝맺으면 도대체 SF 소설은 뭐에 쓰자는 이야기일까. 어쩌면 ‘SF 소설은 결코 세상을 바꾼 적이 없다’가 이 칼럼에 더 적절한 제목일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리얼리즘 이론에서의 ‘재현’ 논의를 도외시한 채(혹은 무지한 채) “기존의 현실을 재현하는 것에 매몰되느라 주류 이데올로기에 필요 이상의 권위를 부여하고 공고히 만드는 형태의 작업”이라고 몰아붙인 데서부터 한계는 명백했다.
소설가이자 번역가라는 문지혁의 ‘SF란 무엇인가, 과학과 소설 사이 혹은 그 너머’는 도입부의 과도한 비유와 (마찬가지로 과도한) ‘공상과학’이라는 SF의 다른 이름에 대한 공격이 다소 어설펐지만(”’공상과학소설’에서 종종 과학은 과학 이전의 것이나 과학 이하의 것이 되어버린다. SF는 졸지에 물리법칙과 인과율을 마음껏 무시할 수 잇는 장르가 되어버리고, 거기 등장하는 과학은 비과학적이거나 유사과학이므로 진지한 평가를 내리거나 과학적 정합성을 따질 이유가 없는, 말 그대로 ‘공상’에 머무른다” : 그런데 사실은 SF가 모두 그렇다. 아닌가? 상대성 이론과 열역학 법칙을 모두 준수한 SF가 과연 가능할까?) 이후의 논의들은 흠잡을 데 없이 무난하게 흘러갔다. 어쩌면 상대적으로 분량이 적은 탓도 있을 것이다. 중언부언하느라 책잡힐 말을 할 여유가 없어서일지도. 어쨌거나 이런 문장은 꽤 근사하다 : “SF에서의 과학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이며,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고, 정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김보영의 ‘SF 작가로 산다는 것’은 굉장히 솔직한 글이다. 그만큼 강렬하고 힘차며 울림이 크지만,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읽고 나면 시원한 한편으로는 씁쓸하고 답답하다. 글 때문이 아니라 현실 때문이다. SF는 유럽에서 사변 문학이었고, 미국으로 건너가 상업 소설이 되었다가 포스트 모더니즘을 거쳐 다시 사변 문학으로 반 걸음쯤 돌아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이들이나 보는 만화 비슷한 것이었다가 곧이어 아무도 책을 안 읽는 시대를 맞아 그나마 정부 보조로 연명하는 사람들 옆에 가서 여기 우리도 있다, 여기에도 사람이 있다고 말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인정 투쟁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우리를 부끄러워 하는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을 부끄러워하다니 그게 바로 부끄러운 줄 알라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리고 그래서 dcdc의 말마따라 “열정페이를 통한 착취나 데이트 폭력 사건 등의 스캔들이 없는 공간도 아니지만,” 그렇지만 “술자리에 불려가 바지를 벗고 성기를 노출하며 성추행 서열놀이나 하는 원로의 눈치를 봐야”하는 주류 문단의 지분 따위 깨끗이 갖다 버리고 그냥 “밥벌이와 작품을 지켜준 곳은 과학계’’로 버틸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는 씁쓸함과 답답함이 과연 언젠간 해결되고 해소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규승 온우주 출판사 대표의 ‘한국어로 쓴 SF 출판하기’는 무슨 행복한 책읽기의 재림도 아니고, 정말, 해야할 이야기는 안 하고(혹은 못 하고?) 할 필요 없는 이야기만으로 시종일관하면서 자의식 과잉적인 자화자찬(”현재 국내 SF작가만을 다루는 출판사는 온우주가 유일합니다” : 그 중에 과연 얼마나 제대로 SF로 불러줄 간행본이 있을까?) 작가와 작품 선정 방식과 기준부터 편집, ��보까지 출판 실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펴내는 이 잡지의 실질적인 독자들일 출판계 종사자들이 궁금해할만한, 한국 SF 출판의 현실이 어떠한지에 대한 언급은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 없다. 아마 제대로 된 SF를 다뤄본 적이 없기 때문이거나, 제대로 작가 관리나 작품 출간을 진행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최지혜 편집자의 ‘SF 전문 편집자란 무엇일까’는 그런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경험에 입각한 실무적인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SF 출판계의 현실이 어떤지 조금이라도 엿보려면 이, 세 쪽 반짜리 칼럼을 읽으면 되겠다.
그리고 이어지는 전홍식 관장의 ‘SF 세계를 여행하는 독자들을 위한 가이드’는, 그냥 이름만 딱 봐도 읽은 거 별로 없는 사람이 초보자를 위한다는 핑계로 오래되고 무난하고 피상적인 것들만 모아 놓은, 몇십 년 째 굴러다니는 목록이다.
80일간의 세계 일주 멋진 신세계 프랑켄슈타인 우주전쟁 SF 명예의 전당 시리즈 갈릴레오의 아이들 이웃집 슈퍼 히어로 리틀 브라더 타워 체체파리의 비법 일본 침몰 당신을 기다리고 있��� 다시 한 번 리플레이 All You Need is Kill 안드로이드여도 괜찮아 마션 견인 도시 연대기 시리즈 나는 전설이다 러브크래프트 전집 마이너리티 리포트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이 중에서 SF에 관심을 보이는 현대 일반 독자들에게 정말로 권해줄 수 있을 만한 책은 얼마나 될까? (혹은, 제대로 SF라고 할 만한 작품이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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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한국 SF에 대해

2017년의 장편 SF : 생명창조자의 율법 (제임스 호건)
그밖에 “안드로메다 성운”, “대우주시대”, “아스타틴", “저 이승의 선지자” 등을 읽었는데, 딱히 더 앞으로 꼽을 작품이 없다. “안드로메다 성운”은 SF사적 가치만 큰 고전이고, “대우주시대”는 중반부까지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 이후로는 특별한 긴장 없이 노점 행상이 반복되는 느낌이었고, “아스타틴"은 그저 한국적 스페이스오페라라는 점 외에 큰 의미가 없어 보이고, “저 이승의 선지자”는 SF로 보기에는 중심 아이디어가 과학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아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연말에 출간된 “노변의 피크닉”, “사소한 칼”, “아르테미스” 등은 아직 읽어보지 못해 아쉽다. 반쪽 짜리 선정 같달까. 어쨌거나 “생명창조자의 율법”은 올해 나란히 나온 “별의 계승자2 : 가니메데의 친절한 거인”과도 얼마간 유사하게, ‘최초의 접촉’을 다루고 있으며, 이 테마의 오래된 변주인 순수한 야만인과 불순한 문명인의 만남으로 풀어내고 있는데, 조금 생뚱맞아 보이는 심령술사와 회의주의, 미디어와 지배층의 우민화 정책, 과학과 종교 도그마 사이의 갈등 등의 요소들을 섞어넣어 색다른 재미를 주었다.
2017년의 SF 단편 : 얼마나 닮았는가 (김보영)
그밖에 같은 단편집의 듀나의 "두 번째 유모”도 좋았고, 밸러드의 “수용소 도시”나 “스타스 가, 5번 스튜디오“도 좋았고, 조지 R.R. 마틴의 “스톤 시티”나 “노온의 괴수”, 하인라인의 “조너선 호그의 기분 나쁜 직업”(이건 SF에서 너무 멀리 나간 걸지도 모르겠다) 등도 좋은 SF 단편들이었지만, “얼마나 닮았는가”는 (감히 써보자면) 정통 SF의 구조 안에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첨예한 문제를 사무치게 짜넣은 단편으로, 한국 SF 단편의 한 가능성을 가장 멀리까지 넓혀냈다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2017년의 SF 단편집 :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 시간의 목소리 외 24편 (현대문학)
단행본 단편집으로는 “제1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니까” 등이 있고, 작가별 단편집으로도 “토끼의 아리아”, “멜랑콜리의 묘약", “온 여름을 이 하루에”, “진흙발의 오르페우스” 등이 더 있지만, 마찬가지로 올 한 해 가장 풍성한 느낌을 준 SF 단편집을 꼽으라면 이미 5년여 전에 이른바 종말 3부작이 나오긴 했지만, 장편과는 또 다르게, 25편의 단편들로 J.G. 밸러드의 작품 세계를 훨씬 더 깊고 넓게 소개해준 현대문학의 단편집을 꼽고 싶다.
2017년의 SF 시리즈 : 조지 R. R. 마틴 걸작선 : 꿈의 노래 세트 - 전4권 (은행나무)
내년에도 시리즈를 별도로 꼽을 수 있을까? ‘레드라이징’이나 ‘서던 리치’ 시리즈도 있긴 했지만 그건 그냥 판매 개념에서의 세트라 할 테고, 그보다는 ‘스페이스 오디세이 완전판 세트(전 4권)’, ‘로버트 A. 하인라인 걸작선 세트(전 5권), ‘조지 R. R. 마틴 걸작선 : 꿈의 노래 (전 4권)', ‘할란 엘리슨 걸작선 세트(전 3권)’ 같은, 제대로 기획된 세트 출간이 2017년 한국 SF 출판계의 한 획으로 기록될 게다. 그중에서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史적으로는 ‘스페이스 오디세이 완전판 세트’, 수록작들의 내용상 풍요로움과 다채로움으로는 ‘할란 엘리슨 걸작선 세트’를 꼽을 수도 있겠지만, 세트로서 구성의 건실함을 따지자면 작가 본인의 작품별 코멘트 외에 신뢰할 만한 역자의 논평이 곁들여진 ‘꿈의 노래’ 세트를 꼽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2017년 SF 뉴스 (시간순)
'제75회 세계SF대회'(Worldcon 75) 한국 참가
한국-중국 SF 단편 교류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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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서점의 ‘올해의 장르소설 투표’에 대해
바로가기 :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aspx?EventId=171065

작년의 형편없었던 SF 어워드 진행에 대한 온라인 일각의 의견들에서 촉발된 걸까. 하여간 흥미로운 이벤트가 생겼다. ‘올해의 장르소설 투표’라면서 부문은 왜 달랑 ‘과학소설’이랑 ‘추리/스릴러 소설’ 밖에 없는지는 모르겠는데, 어쨌거나 ‘판매량과 독자 평점’이라는 공정하고 객관적이라기에는 미묘한 잣대를 댔다고는 해도 1차로 걸러진 작품들을 평가 대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부크크의 아마추어 작가들의 POD 물량 공세를 막아내지 못했던 SF 어워드보다 훨씬 나아 보인다. (말 나온 김에, SF 어워드는 심사위원 문제는 많이 나아졌으니, 내년에는 어떻게든 제대로 된 예심 절차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알라딘 서점 SF 카테고리에 부크크의 POD 출판 서적 등록은 2016년에는 9월, 10월, 12월 각 1건씩이었는데, 올해는 1월 2건, 2월 1건, 7월 1건, 9월 1건, 10월 3건, 11월 1건 등 점점 늘어나고 있다. )
기간 내 장르소설 구매액 상위 7000명을 대상으로 한 투표라는데, SF 구매자가 7000명이나 될 리는 전혀 없을 테고(대상도서 목록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잠”이 올라와 있으니 살짝 불안하기는 한데), 추리/스릴러나, 판타지, 로맨스 등등 여타 장르소설들 구매자들이 SF에 대해서 어떻게 투표할지 모르겠지만, 결과가 궁금하긴 하다.
일단은 아래 다섯 작품에 투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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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영의 참여SF적 경향에 대해


인용 트윗 출처 : https://twitter.com/SharoUser/status/930326379345821696
관련된 또다른 트윗 타래 : https://twitter.com/SharoUser/status/929408694319644672
문학이 사회 현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사회문제 해결에 참여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에 서 있는 문학을 참여문학이라고 한다면, 사회 현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 해결을 촉구하는 SF를 참여SF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그렇다면 김보영의 “신문이 말하기를”(2010), “고요한 시대”(2016), “아니무스의 저녁”(2016), “빨간 두건 아가씨”(2017) 등은 단순히 한국 사회의 특정 현안을 반영만 한 것이 아니라 해결 필요성을 강조하나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참여SF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의 사회적 참여에 대해서는 정답은 없으며 각자의 정치적 입장과 예술적 가치관에 따라 다양한 의견들만이 가능할 것이지만, 참여SF라는 카테고리를 설정할 경우에는 SF와 일반 소설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에 의해서, 위에 인용한 견해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현재의 사회 문제를 현재 한국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 미래나 다른 사회적 배경에 투영할 경우에 작품 자체에 대한 몰입이 방해되는 것은 분명하니까.
“아니무스의 저녁”은 그런 점에서 장르 독자의 관습적인 독서를 상당히 힘들게 하고, “빨간 두건 아가씨” 역시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런 점이 아예 없다고 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런데, “얼마나 닮았는가”는 어떨까? 이 작품도 참여SF로서, 현대 한국의 여성혐오 문제가 투영됨으로써 SF로서의 자기 완결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글쎄, 그건 아니라고 생각된다. 메시지 전달을 작품의 내적 완성보다 우선시한 전작들에 비해 “얼마나 닮았는가”는 메시지가 플롯의 중심축인 반전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고, 서로 분리해내기 힘들어 보인다. 목적 문학이 문제가 되는 것은 목적을 문학보다 앞세웠을 경우에만 해당된다. 목적이 문학적 감동을 심화시키고, 문학적 감동이 목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을 때, 해당 작품의 메시지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 이상, 작품에 대해 반대하기는 힘들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모호하게 적자면, 작품 처음부터 제기된 중심 문제는 SF적 설정과 반전을 통해 정답이 밝혀지는데, 이 과정에서 순수한 장르적 재미-독자의 인식의 전환과 확장이, 김보영의 다른 뛰어난 SF들과 다름 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작품의 주제 의식은 이를 저해하지 않고, 작품의 모든 디테일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작품 자체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게 한다.
그렇지만 듀나의 “두 번째 유모”가 SF적인 상상력을 좀더 멀리, 자유롭게 뻗어낸 것은 분명한데, 그건 두 작가의 경향의 차이일 뿐 그걸로 우열을 논할 수는 없어 보인다. 일정 수준 이상의 문학, 예술 작품들이 모두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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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폰북스 표지 일러스트 출처에 대해
헤더 이미지로 가장 좋아하는 "내 이름은 콘라드" 그리폰북스 판의 표지 이미지를 쓰려고 인터넷 검색해보면서 그리폰북스 1기의 예쁜 표지 일러스트들의 출처가 다시 궁금해졌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구글 이미지 검색이 돌아가는 21세기를 새삼스럽게 맞아 한 번 검색해봤다.
내 이름은 콘라드

로버트 홀드스톡과 Malcolm Edwards가 쓴 "Realms of Fantasy"의 표지였다. 아, 로버트 홀드스톡 작품들 좀더 번역되면 안 될까? https://www.amazon.com/Realms-Fantasy-Malcolm-Edwards/dp/0385188889
스타쉽 트루퍼스

잭 밴스의 "Nopalgarth"의 일본어판 표지였다. 아이디어회관 표지 도용이 떠오른다. https://www.amazon.co.jp/dp/4150117225/ref=cm_sw_r_tw_dp_x_X4pbAb2BCSF8A
어둠의 왼손

Robert(Bob) Venosa의 'Manas Manna'의 표지. https://www.amazon.com/Bob-Venosas-Manas-Manna/dp/B005I3VWS8
다아시 경의 모험

'FANTASTIK TOUTE LA FANTAISIE DE LA B.D'의 표지. https://www.abebooks.fr/FANTASTIK-FANTAISIE-B.D-n%C2%B04-Histoire-extraoridinaires/4653465843/bd
타임 패트롤

Jim Burns의 'Spaceport'. 해리 해리슨의 글을 곁들인 'Planet Story'에 수록되었고, 70년대 SF 관련 다양한 책들의 표지 일러스트 등으로 쓰였다고 한다. https://www.amazon.com/Planet-Story-W-visual-library/dp/0891041362/ref=tmm_hrd_swatch_0?_encoding=UTF8&qid=&sr= https://io9.gizmodo.com/5751393/is-this-the-most-archetypal-1970s-science-fiction-book-cover
파괴된 사나이

클라이브 바커의 "Cabal"의 헝가리어 번역판 "Az éjszaka gyermekei"의 표지. 90년대에 이런 건 도대체 어떻게 찾아냈었을까? https://bookline.hu/product/home.action?_v=Clive_Barker_Az_ejszaka_gyermekei&pid=20%3A9698
"솔라리스"는 검색되지 않았다.
중력의 임무

Edmund Cooper의 "Seed of Light"의 표지였다. https://www.goodreads.com/book/show/1931069.Seed_of_Light
영원한 전쟁

아이작 아시모프가 편집한 "Isaac Asimov Presents the Great SF Stories 17"의 표지였다. https://www.goodreads.com/book/show/528293.Isaac_Asimov_Presents_the_Great_SF_Stories_17
인간을 넘어서

로버트 실버버그의 "다잉 인사이드" 표지였다. "다잉 인사이드"까지 출간되고 보니 어쩐지 아이러니한 느낌이다. http://gnomeship.blogspot.kr/2013/12/dying-inside.html
크리스털 월드
이미지 검색으로는 석재 조각 밖에 안 나왔다. --;; goo.gl/Mc5mQ5
드래곤과 조지

'Talisman the Magical Quest Game, Second Edition'의 커버 아트였다. 제일 충격. https://www.amazon.com/Talisman-Magical-Quest-Game-Second/dp/B0009AHS5Q
"낙원의 샘"은 검색이 안 되고, "리보위츠를 위한 찬송"들부터는, 일러스트라고 하기 힘드니까. 이하 생략.
직접 검색해보니, 90년대니까 가능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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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범주에 대한 유사한 평가에 대해

그렇지 않아도 시상식 당일 심사평을 들으며 궁금했던 부분인데,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알아보려고 했다. 혹시 머니투데이 신문사 주최의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의 심사 및 시상 과정에서 나온 논의를 무신경하게 답습한 것은 아니었을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먼저 대상작 범위를 알아보았다. 올해 SF 어워드의 후보작 공개모집 공고에 따르면,
2016년 6월 ~ 2017년 5월 중 공식 발표, 출간된 SF영상, SF장편소설, SF중단편소설 및 SF만화 등 (온/오프라인 작품을 모두 포함하되, 유료 판매 작품에 한함)
이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알라딘 서점에서 해당 기간 동안 출간된 한국 SF(장편) 목록을 조회해 보았다.
한반도 시간 여행 고충녕 (지은이) | 북랩 | 2016년 6월
그들의 일 - 자정의 시작 임근희 (지은이) | 정오와자정 | 2016년 6월
센타크논 ㅣ 센타크논 1 임웅 (지은이) | 창조와지식(북모아) | 2016년 6월
한계에서 김상묵 (지은이) | 모비딕 | 2016년 6월
김순옥 여행기 ㅣ 디스에픽 노벨라 시리즈 15 박해원 (지은이) | 에픽로그 | 2016년 7월
인류정복자 1 - 돌연변이 이원호 (지은이) | 반딧불이(한결미디어) | 2016년 9월
인류정복자 2 - 신인류 연합 이원호 (지은이) | 반딧불이(한결미디어) | 2016년 9월
[POD] 디지털 고려장 이우현 (지은이) | 부크크(bookk) | 2016년 9월
하늘에 묻히다 ㅣ 디스에픽 노벨라 시리즈 16 류호성 (지은이) | 에픽로그 | 2016년 9월
또 하나의 지구 박현동 (지은이) | 밥북 | 2016년 10월
[POD] 호모인포메이션 김임천 (지은이) | 부크크(bookk) | 2016년 10월
씁니다, 우주일지 신동욱 (지은이) | 다산책방 | 2016년 11월
[POD] J J(제이) (지은이) | 부크크(bookk) | 2016년 12월
POD] 찬란한 세상 나우임 (지은이) | 부크크(bookk) | 2017년 1월
[POD] UNIVERSE '19세기작가' 김종일 (지은이) | 부크크(bookk) | 2017년 1월
POD] 시간화가 - 시간여행 SF선집 서희건 (지은이) | 부크크(bookk) | 2017년 2월
폴픽 - Polar Fix Project ㅣ 스토리밥 문학선 1 김병호 (지은이) | 스토리밥 | 2017년 3월
당신의 머리 위에 세트 - 전3권 박건 (지은이) | 청어람 | 2017년 3월
아스타틴 ㅣ 디스에픽 노벨라 시리즈 21 장강명 (지은이) | 에픽로그 | 2017년 4월
바봇 - 어느 집사 로봇 이야기 ㅣ 이상의 문학 정창영 (지은이) | 이상북스 | 2017년 5월
...그만 알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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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한국 SF에 대해
2017년 10월에는 필립 딕의 단편집 “진흙발의 오르페우스”, 제임스 호건의 “생명창조자의 율법"이 새로 번역되어 출간되었고, 올덕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커트 보네거트의 “고양이 요람”, 허버트 웰즈의 “모로 박사의 섬”, 차이나 미에빌의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바스라그 연대기)"가 다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또, 김덕영의 "소설 환생”, 서은하의 “아마도 똥 이야기”, 임웅의 “탁란조의 비밀”, 정이안의 “스프린터”, 홍준영의 “이방인의 성"이 알라딘 서점의 SF 카테고리에 국내 창작 SF라고 올라왔다.
과학동아 10월호에는 배명훈의 단편 "원본 증명"이, 크로스로드에는 해도연의 단편 "위대한 침묵”1편이 게재되었다.
또, 경향신문 '미래의 눈' 코너에는 김창규의 "새 출발은 인공지능과 함께"가 실렸다.
크로스로드 10월호의 SF 리뷰로는 고장원의 '박성환, 길이 달라보여도 하나로 통한다? 불교와 SF의 융합이 제시하는 비전'과 이지용의 'SF와 한국 문학의 새로운 중력들 - 배명훈의 『예술과 중력가속도』에서 나타난 상상력의 의미'가 실렸다.
또, 한국일보의 'SF, 미래에서 온 이야기' 코너에는 박상준의 '“화성의 환경을 지구처럼” SF 속 개념, 1세기 후 연구 활발'과 김보영의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라, 그러면 이루어질 것이다 : 조지 루카스와 광선검', '여왕마저도 생리를 한다, 알까 모르지만'이 실렸다.
필립 딕과 제임스 호건의 못 읽어본 작품들을 읽어볼 수 있게 된 게 제일 반갑고 기쁘다. 그리고 이지용의 평론이 예상 외로 읽을 만하다.
※ 관련 링크
1. 크로스로드 : http://crossroads.apctp.org/main/
2. 경향신문 '미래의 눈'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serial_list.html?s_code=ao260
3. 한국일보 'SF, 미래에서 온 이야기' : https://goo.gl/1jTW6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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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북스, 1년 만의 기지개에 대해
작년(2016년) 이맘때(10월) 존 윈덤의 "트리피드의 날"을 뜬금없이 내고(필립 딕의 "마이너리티 리포트"(2015.7.30.)와 낸시 크레스의 "허공에서 춤추다"(2015.11.24.)를 낸 지 마찬가지 1년여 만이었다), 1년 간 소식이 없었던 폴라북스(현대문학)에서 지난 달에 두 권의 SF를 새로 냈다. 필립 딕의 초기 단편 모음집인 "진흙밝의 오르페우스"와 제임스 호건의 (친절한 거인들 시리즈 말고 새로운) "생명창조자의 율법".
필립 딕의 단편집은 'Philip K. Dick's Electric Dreams' 드라마 방영에 재빨리 발맞춘 결과일까, 마케팅에서는 전혀 거론되고 있지 않긴 하지만. 그렇지만 "생명창조자의 율법"까지 오면 지난해와 올해, 7년 만의 재출간과 후속작 출간으로 새로운 팬층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아작 출판사의 성과를 무시하고 생각하긴 힘들다. 폴라북스는 SF 출판계의 이디야커피가 되려는 걸까?
그렇다고 한들 따라하기나 묻어가기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한 출판사에서 화제작이 나오면 다른 출판사에서도 다른 작품들이 더 출간되어 독자층을 두텁고 견고하게 다져주는 선순환이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9645751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1539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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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제4회 SF 어워드에 대해
전년도만큼 잡음이 크지 않아서인지, SF 독자들 사이에서도 큰 화제는 없이 지나간 듯하다. 어쩌면 시끄러웠던 지난 해를 생각해서 (주최 측은 몰라도) 진행측이나 참가측이나 고려할 건 고려하고 이해할 건 이해하고 고칠 수 있는 건 고치고 조심한 덕분인 듯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대상작 선정부터 심사 과정, 수상작 발표까지 모든 과정이 부실하고 무성의했다.
1. 대상작 선정
‘ 대중에게 공식 발표·출간된 영상, 소설, 만화로, 과학적 내용을 기반으로 한 순수 SF작품’을 대상작으로 공고했던 지난 해와 달리 올해에는 ‘①소설, 만화, 영상을 대표하는 기관(단체)의 추천을 받은 작품과 ②SF창작자들의 자체 출품작들’로 대상작 선정 기준을 변경했다. 당연히 신인 공모전과 구별이 힘들어졌고, 대상 및 우수상 선정에 대해서도 여전히 객관성이나 공정성이 충분히 담보되었다고 할 수 없다. 게다가 호응 부족으로 연장 공모까지 하는 추태까지 보이는 모습을 보며 도대체 주최 측에서 상에 대한 최소한의 품위라도 지킬 의지가 있기는 하는지 궁금했다.
한 해동안 발표된 장편, 단편 SF를 집계하는 일이 그렇게 실현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일일까? 주최 측은 과연 이 상의 운영에 대해 어느 정도의 관심과 의지가 있는 걸까?
2. 심사 과정 미공개
부문별 심사위원 명단도, 심사 과정 및 수상작 선정 소견도 시상식 당일 현장을 제외하고는 전혀 공개되지 않다가, 나흘이나 지난 오늘(11/8)에야 공식 사이트에 공개되었다. https://www.sciencecenter.go.kr/scipia/sfFestival/community/notice/19404
3. 수상작의 비공식적 발표
공식 사이트에 수상작 리스트가 올라온 것은 시상식 전날인 11월 3일이었는데, SNS, 출판사 홈페이지 등 온라인 상에 수상자 및 관계자 등의 비공식적 경로로 수상작이 밝혀지기 시작한 것은 10월 25일부터였다. ("초인은 지금"의 파란미디어 페이스북)
연초 시상 계획 공고를 발단으로 삼고, 후보작의 공개와 예심, 본심 중간 결과 발표를 전개와 위기로 삼아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수상작 공식 발표와 시상을 고조된 관심과 흥미의 절정과 결말로 삼는 게 시상 제도 흥행의 기본 공식이 아닌가? 공개할 것은 공개하지 않고, 공개하지 않을 것은 비공식적 경로로 다 흘려버리는 것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진행하는 것인지, 과연 무슨 생각이든지 있기는 했는지 의심스럽다.
내년에는 나아질까? 작년에 비해 올해에는 최소한 심사위원단 구성이나 선정된 수상작 면면에서 큰 무리가 보이지 않고, 많이 개선된 점들이 보이니 내년에는 운영과 진행 면에서도 한층 개선되어 SF독자와 팬들이 의심과 의혹과 불만을 내려놓고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고 지켜볼 수 있는 명실상부한 한국 대표 SF상으로서의 권위를 세울 수 있을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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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로드의 SCI-FI 코너 운영 방침 변경에 대해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Board=notice&id=201
지금까지 청탁보다 투고 위주로 운영하던 크로스로드의 SCI-FI 코너가 기성작가들의 신작 소개 위주로 운영 방침을 변경한다고 한다.
‘ 공모 및 심사를 통한 게재 ‘라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거의 거르지 않은 듯한 작품 선정으로,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지망생들의 질 낮은 작품이 게재되고 장르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더 심해질 수 있는 역효과가 우려되었던 터라, 그리고 과학동아 등 일부 다른 매체도 있기는 하지만,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어느 정도 확충되었던 기성 작가들이 작품을 꾸준히 발표할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던 아쉬움을 생각하면, 시의적절하고 바람직한 결정이다. 그런 결정이 가능할 만큼 신인 작가들이 등장했다는 사실도 반갑고.
다만, ‘등용문’, ‘등단’ 같은, 기존 문단의 고루하고 권위적인 틀을 끌어오려는 듯한 표현을 굳이 썼어야 됐을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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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Korean SF에 대해

on Korean SF는 한국에서 창작되거나 한국에 번역된 SF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간입니다. 모든 내용은 주관적이며 상대적입니다. on Korean SF는 모든 의견에 대해 언제나 환영입니다. :)
트위터 주소 ; https://twitter.com/onkorean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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