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버튼을 누르면 달칵하고 소리가 나는 짙은 초록색의 카세트가 떠오른다. 나는 직접 다이얼을 돌려 주파수를 맞춰야 하는 그 오래된 라디오가 퍽 좋았다. 모든 감각을 손끝에 모아 다이얼을 돌 수많은 채널들이 책상위를 떠다닌다. 그러다 익숙한 시그널이 들리면, 난 다이얼에 걸쳐진 손가락을 떼고 볼륨을 높였다. 자기전엔 늘 한바퀴 반 정도의 소리가 적당했다. 오프닝이 멘트가 흘러나오면 모퉁이가 살짝 바랜 편지지를 책상 중간에 펼쳐놓는다. 가장 윗줄엔 멋스럽게 To.와 함께 지금은 기억도 없는 그 친구의 이름을 써내려간다. 이 라디오에 맞춰 한자한자 꾹꾹 눌러써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때면, 두꺼운 이불 속에 들어가 몸을 잔뜩 웅크린채 네 이름을 불러야 할것 같다. 02. 노스텔지어. 기억을 소리로 듣는다면 이런 기분일까. 내겐 존재하지도 않은 그 해의 기억들이 형체없이 맴도는 느낌이다. 막연한 느낌. 모나지 않고 둥글지만 왜인지 모르게 서글픈 감정이다. 03. 90년대 영화 속 여배우들의 말투는 모두 똑같다. 말꼬리를 들어올리는, 그래서 조금은 불편해 보이는 말투. 하지만 계속 듣다 보면 말꼬리가 올라갈때마다 내 마음 끝도 들쑥날쑥 들리는 기분이다. 참 이상타. 04.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 영화 동감이 생각난달까.
엉망진창인 번역에도 울컥 감정이 올라왔다. 진지하게 영어 공부를 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원어로 읽으면 얼마나 더 마음이 아플까. 묽은 커피가 쓰게 느껴졌다. 읽는 것에 속도가 붙었지만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책을 닫았다. 밤새 되묻고 싶은 감정들이다. 문득 나의 올리버가 그리워졌다.
대게는 태어나자마자 주어지는 것. 존재를 확인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렇다. 이름은 한 사람의 현재고 과거며 미래다.
Call me by your name, I’ll call you by mine. 내 이름을 너의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 나의 존재의 가치를 너에게 둔다는 것. 내 과거와 우리의 현재 앞으로의 미래를 서로의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 지독히도 달콤하지만 쉽게 가질 수 없는 무거움이다.
Elio와 Oliver! 영화는 ‘젊음’과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다. 새하얀 빛과 우거진 녹음. 아름다운 육체와 우아한 음악. 책과 음악으로 완전했던 Elio의 세계가 Oliver의 등장으로 인해 무너지던 날. 불완전함은 미성숙함과 어우러져 겉잡을 수 없는 끌림이 되었다. 첫사랑이었다.
두 시간 남짓 Elio와 함께 사랑을 앓았다. 뜨겁게 설렜고, 돌아오는 내내 시렸다. 아주 우아한 열병이었다. 자주 꺼내볼 영화가 생겨 기쁘다. 글과 음악으로도 내내 기억해야지. 그럼, later.
이정표가 없는 길. 그 위에서 방향을 잡는 일이란 언제나 어렵다. 물론 길이 남긴 흔적으로 더 나은 방향을 유추할 순 있다. 어둠을 밝힐 가로등은 있는지, 잠시 쉬었다 갈 휴게소는 존재하는지. 혹시 길이 너무 좁아 앞 사람의 뒤통수만 보고 걸어야 하진 않을지. 우리는 이렇게 늘 조금이라도 나은 길을 찾기 위해 이 길 저 길을 기웃거린다. 그리고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걱정하며 애꿎은 신발 끈만 고쳐맨다. 걸어보기도 전에 속단하지 말자. 이정표가 없는 이 길에 틀린 방향은 없으니까. 고작해야 이틀 남짓. 많은 것들에 대해 고민했고 나름의 답을 내렸다.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는 여전히 유효한 내 오랜 꿈이다. 글을 깨우치고 책을 읽기 시작할 무렵, 로얄드 달은 내게 스위치였다. 책을 펼치는 순간 세상의 모든 빛은 꺼졌고, 오직 그가 만든 세계만이 존재했다. 빛이 잘 드는 발코니에 누워 세시간이고 네시간이고 책을 읽던 아이. 세상이란 책장 속 모든 책을 읽고 싶었던 그 시절. 나는 꽤 욕심많은 꼬마였다.
글이 꿈이 되는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모두가 의사, 간호사, 선생님을 꿈이라 말할 때 내 꿈은 동화작가였다. 나와 같은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멋진 세계를 만들고 싶었다. 집 채만한 강아지와 개미만한 호랑이가 함께 모험을 떠나는 그런 세계. 비슷한 내용으로 꽤나 긴 글을 썻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될 무렵엔 연애 소설에 빠졌다. 지금 생각하면 시시하기 짝이 없는 그렇고 그런 로맨스 소설이었다. 하지만 넘겨지는 책장 속, 난 �� 번의 연애와 지독한 이별을 경험하며 극단적 낭만주의가 되었다. 지독히도 달콤했던 연애소설들. 그 해, 내 꿈은 드라마 작가로 바뀌었다.
고등학교 때의 나는 지나치게 감성적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예민했지만 무능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조퇴를 하고, 하루 종일 버스 여행을 하며 글을 끄적이는 일 정도였다. 굴러가는 낙엽에도 눈물을 훔치던 열여덟. 그 시절, 내게 글과 라디오는 구명조끼와 같았다. 덕분에 난 사춘기란 망망대해를 안전히 유영할 수 있었다. 물론 꿈은 라디오 작가로 바뀌어 있었다.
스물 아홉, 난 여전히 글을 곁에 두고있다. 전처럼 다정하지도, 뜨겁지도 않지만 내 글은 언제나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쏟아내듯 쓴 글들은 그을음 묻은 감정들을 정제시켰고, 상처입은 마음에게 위로를 건냈다. 오래전 그날, 일기장에 써내렸던 그 바람처럼. 내 글이 누군가의 책장에 오래도록 남겨져 있길 바란다. 그럴 만한 글을 쓰기 전엔 쓰는 일을 포기하지 말자.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