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교신은 마치 우리들이 얼키고설키게 사는 일반 세상이 있다면 그것보다 1광년은 더 밝고 명랑하고 원색적인 어떤 세상을 불러일으키는 부호같이 느껴졌다.
"Ground Control to Major Tom, Take your protein pills and put your helmet on. Planet Earth is blue. And there's nothing I can do" (david bowie, space oddity중)
호기심과 꿈을 회복하고 싶다.
나는 거의 매 순간 일상에서 나는 착한 여성이자 직원으로 행동하면서도 괴로워한다.
반발하지 못하고 복종하고 규율화되는 나를 스스로 지켜보며 어느 순간 의지를 잃어간다. 마치 데이빗보위의 Space Oddity노래에서 마지막 순간처럼 나 스스로를 떠나보낸 순간도 2주 전에 있었다. 그 끈을 잡기가 어렵고 현실에서 말하기가 어렵다.
“네,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실수했습니다. 네. 네. 네. 송구합니다”
일상, 이 곳에서 나를 공격하는 말들은 이런 것들이다
"대부분 다 그렇게 산다"
"그래도 그 시스템에 따르면 윤택한 삶을 살 것이다"
"다른 일을 택하면 궁지에 빠지고 똑같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누구라도 만나서 자식을 낳으면 행복해질 수도 있다"
내가 나를 움츠러들게하는 생각은 이런 것이다
"이렇게 살다가 아무 보람없이 죽을 것 같다"
"새로운 관계를 더 이상 만들지 못할 것 같다"
"예술가는 실패한 꿈으로 남을 것 같다"
"그저 그런 관료적이고 보수적인, 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이 될 것 같다"
"눈치보며 살 것 같다"
"항상 외로울 것 같다"
교신을 받고 나서 나는 새로운 세계를 상상해보았다.
<나를 공격하는 말들>
<개복치, 무기력하고-착한 여성·자식 · 사원 · 주민인척 하는 나>
다른 차원으로 가고 싶다.
해러데이 선언문의 '사이보그 선언'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이보그 연합체는 기괴하고 위법적이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정치적 상황에서 이보다 더 강력한 저항과 재결합의 신화를 바라기는 힘들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사이보그 세계는 지구상에 통제의 회로를 완성하고 방어를 명목으로 등장한 스타워즈 종말론을 최종 구현하며, 남성주의적 전쟁의 광란 속에서 여성의 신체가 최종 전유되는 사태와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어떤 물건을 만들기로 했다.
나를 공격하는 말들을 뿔달린 괴물로
나를 움츠러들게하는 생각들을 바이러스같은 것으로
<근원의 힘, 다른 차원에서의 힘, 도구>
<강해진 나에 대한 상상>
우리가 교신하는 멜로디는 침범의 최소한의 장치다. 침범은 살아남기 위한 교신이다. 그 교신이 좀 더 의미가 있고 사람들에게도 퍼지길 바란다.
당신은 일상이 아닌 다른 세계가 있다면(사후세계든, 영혼의 세계든, SF적 세계든, 제4세계든) 어떤 우정(혹은 사랑)을 나누고 싶나요?
만약 평행우주가 있다면 그곳에는 또 다른 나, 또 다른 우리들이 있겠죠. 지금과는 다른 관계일지도 모르고요.
저는 타인에게 반말을 잘 하지 않으려고 해요. 언니, 오빠라는 호칭도 되도록 쓰지 않으려고 하고요. 그러면 너무 편해지는 것 같거든요. 그 자체가 싫은 건 아닙니다. 편해지다가 그만 선을 넘고 무례를 범할까봐 두려운 거에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제가 수위 조절을 잘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어떤 평행세계의 또 다른 나는 이런 걱정과는 완전 관련이 없는 사람이겠죠. 그 사람은 타인을 침범하는 것을, 또 자신이 침범당하는 것을 되려 즐길지도요. 침범을 허락하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곧 변화하겠다는 뜻이기도 하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저는 변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변화는 자연스럽고 또 기쁘게 놀라운 일이라는 것도 차차 알게되었죠.
침범하지 않기 위해 나를 억압하고 있다면, 사실 침범하는 것은 내 숨겨진 욕망일지도 몰라요.
지난 번에도 외롭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을 포착해서 저희와 공유해주셨지요. 혜림상은 외로움을 많이 타시나요?
현재 저에게 외로움이란 절대적인 고독 보다는 성취되지 못한 (못할) 욕망의 다른 얼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사람 앞에서 솔직해지는 지 물으셨는데, 글쎄요. 적어도 욕망 앞에서는 솔직해지지 못한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특히 내가 욕망하는 사람 또는 내가 욕망하는 것을 가진 사람 앞에서는 더더욱.
중학교 수업을 하며 가면 만들기를 합니다. 한쪽 얼굴은 울고 다른 쪽은 웃고 있는 가면을 만드는 학생이 굉장히 많습니다. 분열은 인간의 본질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저는 “평범한” 아내와 엄마로서 가부장제에 완전히 예속되어 살아가는 판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아내도 엄마도 아니며 유아 시절과 다름없는 딸로서 살아갑니다. 아직도 내가 무얼 원하는 지 그 앞에서 어떤 포즈를 취해야하는 지 알지 못합니다.
저는 늘 “그림”을 욕망 했고, “그림”에서 소외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들에 젖어있던 10년 전의 작품들에서 “세상은 그림이고 나도 그림일 뿐이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본 모임으로 1년간 교류해왔던 민경씨의 생일이라고 메신저에서 알람이 떠서 6시간을 고민했습니다. 생일을 축하한다고 해야할까, 우리는 그럴만한 사이일까, 생일을 축하한다고 말하는 것은 선을 넘는 행위일까 아니면 그다지 의미없는 행위일까, 우리는 작업동료니 직장동료와 비슷한 느낌일까.
새미와 민경의 해프닝에 대한 내용을 곰곰이 생각하고 곰팡이와 결혼식, 욕망 이야기를 떠올리다가 그만 웬일인지 지쳐 잠에 들었다.
2022년 4월26일 오후 2시~4시 사이에 꾼 꿈
나는 급하게 남산 서울역에서 오른쪽 골목 위로 올라가는 어떤 다른 사람의 아파트 쪽으로 올라가야 했다. 어떤 미션을 가지고.
그 사람은 내 친척이나 친구가 사는 곳이었다.
10분 전쯤에는 옥상인가 베란다에서 어머니와 내 친척인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것을 다시 이야기했다.
그 친구는 나와 부동산적인 게 아니라 무언가 마음이 동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내 친척인가 친구의 집이 괜찮은지 한번 갔다 오라고 부동산적인 관점으로 이야기했다. 나는 놀랐지만 나는 또 다른 미션을 받고 어쨌거나 그 친구의 집에 가야했다.
서울역 부근 그곳에, 먼지 날리는 흙길을 매드맥스처럼 질주해서 카트라이더 1인칭시점으로 그곳에 다다랐는데, 아니 자전거를 타거나 모터사이클을 탔다. 너무 신나게달렸는지 신분증과 지갑을 떨어뜨렸다. 아니 지갑을 떨어뜨린 기억은없었다.
멈춰서서 신분증을 다시 찾으러가려고하자 10년 전 영화에서 아나운서역할로 출연했던, 한때는 머슬마니아가됐다가 다시 사업을 하고 있다던 그 중년여성이 단정하게 머리를 묶고 나타나 지갑을 주워줬다. 가게 오픈 공사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갑이 여기있어요"
나를 알아볼까봐 나는 고맙다고 하고 가게 어디서 오픈하냐고 물어봤다.
"여긴 아니고 강ㅎ?에 ㅁ?ㅂㅌ에 있어요"
대학로처럼 들리는 그곳에 그 여자는 자신의 가게가 있다고했다. 10초 안팎의 대화에서 나는 그곳에 언젠가 가겠다고 친절하게 말을 한 뒤 절박하게 중력을 넘어서 겨우 카드를 집어들고는 다시 스폿으로 왔다.
카드 옆에는 내 옆에서 달리던 20대 중후반의 남자애의 신분증이 떨어져 있었다. 그 친구의 머리숱이 많았던 것이 기억이 난다. 이름은 홍두식같은 느낌이었다.
"ㅁㅌㅂㄷ가 어딧죠?"
나는 주인에게 무언가를 어딨냐고 혹은 어떻게 해야하냐고 외쳤고 주인은 오래된 목욕탕 대기실같은 곳 안에 나의 물품이 있다고 했다. 그곳으로 엉금엉금 또는 빠르게 뛰어가 가방을 열었는데 어깨에 쥐가 나서 그만 꿈에서 깨고 말았다.
꿈에서 깬 나는 집에 남은 쿠키를 집어먹었다. 빨래건조대로 가서 곰팡이가 핀 곳이 있는지 힐끔 살펴보았다.
코로나에 걸려 격리된지 6일째인 26일, 전날 밤엔 고모부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나의 가장 관심사는 이번주 금-토에 어디서 어떻게 여행을 달콤하게 보낼 것이냐였다.
고모부 장례식에 바로 가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촌언니에게 문자를 남겼다. 사촌언니에게서는 "정말 고마워"라는 답장이 왔다. 그가 마음 아파하는 모습에 비로소 죽음이 실감났다. 할아버지 산하 6남매 사이에서 분위기를 주도하던 유쾌한 부산 남성이었다. 가끔은 친척들 사이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도 내게 그림을 하나만 그려달라고 농담하던 고모부에게 결국 나는 아무 그림을 그려주지 못했고 아무 작업도 보여주지 못했다.
격리가 끝난 첫 날, 코로나로 장례식에는 가지 못하고 꿈에서 본 거리를 다시 찾았다. 서울역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길, 꿈에서 본 거리 느낌을 찾아냈다. 고모부를 기념하기 위해 쿠키를 만들고 편지를 쓰고 읽고 태웠다.
집이 태양 위에 자리잡았다는 것, 그런 이유로 곰팡이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역설은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QR 코드 초대장이 담긴 이 “꽃다발” 꽃의 출처는 사촌오빠 결혼식입니다. “결혼식 비용은 전부 꽃 값”이니까 많이 챙겨가라고 하더라구요. 모 호텔에서 고급스럽게 치러진 결혼식이었습니다.
저는 제 일상을 습기에 비유해 생각하곤 했습니다: 눅눅하고 축축한. 제 욕망은 물과 어둠을 먹고, 생명력이 넘치는 곰팡이와 같습니다. 일상에 생기를 주고자 익명의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이루어지지 않는 욕망과 병 맛 연애사에 대해 적나라하게 적어 보려고요. 그건 여기서 공개하지 못합니다. 독자는 저를 모르는 사람들이면 좋겠거든요.
그래서 하나 더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태그 된 두번째 블로그는 좀 더 선별된 이야기 입니다. 순한 맛으로 시작할게요.
사소한 외로움이 춤이 됐다는 점에 마음 한켠이 따뜻해지기도 했습니다. 거대한 아파트 앞의 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별일 없는’ 춤을 지어내보겠습니다.
“아무 관계도 없었던 사람 3명과 관계가 있었던 사람 2+2명이 만나 4명이 되어 서쪽 대륙의 끝에 가서 잠시 가장 지상의 바닥에 누웠다. 핑크 바지는 철퍼덕 누워 허공으로 하늘을 쳐다봤고 그 다음 바지는 수직으로 아래 하지만 부드럽게 누워 하늘을 45도로 바라봤다. 올곧은 이는 대륙의 끝과 수질의 처음 사이에서 세 사람을 바라보며 뚜벅뚜벅 네 걸음을 걸었고 한 명은 이 사람들을 지켜보며 상자를 3개 포장하고 다시 포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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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
**별일없는 춤의 모션
1. 고개를 태양 쪽으로 향하고, 두 다리를 걷고 맨발로 바닥에 앉는다. (마음은 텅 비어있어야 한다)
2/ 오른쪽으로 이동해 태양을 바라보면서 조금 더 구부정하게 앉는다. (마음은 조금 복잡해야 한다)
3/ 뒤로 다시 이동해서 이제는 바닥에 눕는다. 손을 앞으로 내민다. (마음은 조금 즐거워야 한다, 다만 택배가 도착하지 못했다는 불안감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최새미 님이 제안하신 스텝을 저희 동네(아파트 단지)에서 실현했습니다. 좀더 외우기 쉽고 알아보기 쉬운 동작이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번 했는데 머릿속에 잘 안들어오더라고요...ㅜ 이전 포스팅도 그랬지만, 나의 생활 공간 안에서 해보는 것에 의미를 두었습니다.
(아래)
눈썹을 뽑는 장면을 촬영한 영상입니다. 11년전 작업인데 (제가 새미님 또래 였을 때) 전시에서 앞머리 자르는 영상을 보고 이 작업이 생각이 나서... 오래된 외장하드를 뒤져서 찾았습니다. “뽑다”라는 제목의 작업입니다. 영상 2개 올리는게 안되서 스틸샷인데 궁금하시면 영상은 나중에 공개할게요.
언어는 결코 손 안의 새처럼 죽인다고 완전히 죽지 않는다. 언어로 행사되는 권력은 언제나 자기 모순에 노출되어 있으며 언제나 반격당하고 실패할 여지가 있다. 언어의 생성적 속성 때문이다. (p.171)
모리슨은 방점을 찍듯 말한다. "우리는 죽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삶의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어를 행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삶의 척도일 것입니다."라고 (p.171)
외로움은 희노애락을 나눌 타자의 물리적 부재, 관계의 부재 떄문에 생기는 결핍된 감정이다. 그러나 '외톨이'라는 불안하고 고통스런 고립의 감정은 자기 자신과 대화하며 의미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능려의 부재와 관련된다. 타자와 의미 있는 소통의 관계를 맺을 수 있으려면 다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 개체로서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타자가 물리적으로 부재해도 언어와 상상력을 통해 타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연결될 수 있다. 전면적으로 만나는 자기 안에서 타자에 대한 앎 역시 확장되는 것을 경험함으로써 '연결되어 있음'이 반드시 물리적인 '함께'를 전제로 하는 게 아님을 알게 된다. 그러니 더 잘 연결되기 위해서라도 홀로 있음의 시간은 필요하다. 이 시간은 더는 외로움이 아닌 고독의 시간이다. 소란스러운 외부 세계에서 자발적으로 물러나 자기 자신과 전면저으로 만나는 고독의 시간은 공허나 고립, 불안을 동반하지 않는다. 고요한 이 '홀로'의 상태에서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타자가 아니라 삶의 의미, 삶의 목적이다. (p.192~193)
<첨부>
(상)'완전히 외톨이가 됐다고 생각했을 때' (2022년 2월14일 오후 8시49분)
(하) '김영옥 책 p.149~193을 읽고, 그것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했을 때'(2022년 2월19일 오후 3시57분)
눈물을 왜 흘리는가. 살아가기 위함이다. 살아가기 위해 눈물을 왜 흘리는가. 슬프기 때문이다. 슬픔을 왜 참는가. 슬픔은 어디에서 오는가. 내가 가진 욕망을 실현시킬 수 없을 때에 있다. 물리적이건 정신적이건 나를 가로막는 장애가 있을 때 슬픔이 찾아온다. 장애를 뛰어넘을 수 없을 때 오로라를 펼칠수 없고 이는 촉촉한 슬픔막이 되어 눈물 안으로 찾아온다. 살아가기 위해 눈물을 두방울 정도 흘려야 한다.
<규탄론>
휴먼하드렌즈로이드 실험에 지원한 ㅊㅅㅁ의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어서빨리 되찾아주십시오. 누군가 퍽치기를 할 거 같다면서도 누군가를 때리고 죽이고 싶은 ㅊㅅㅁ의 정체성을 어서 빨리 되찾아주십시오.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만든 당신을 어서빨리 규탄해주십시오.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만든 주인이 당신임을 어서 빨리 인정해주십시오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 을 읽고 있다. 페미니즘이라고 대놓고 적인 책은 처음 읽는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책을 읽었다. 괜히 누가 표지에 적힌 페미니즘을 보고 나를 따라올까봐 걱정됐다. 너 페미니스트세요?? 하면 어쩌지? 아니 근데 사실 페미니스트다. 그런데 페미니스트가 아니면 성차별주의자란 소리인가? 성차별주의자세요? 아니요. 그럼 페미니스트인 것 아닐까? 인종차별주의자냐고 하면 보통 바로 아니라고 할테니까, 성차별주의자라는 질문에도 거진 아니라고 할 거다. 그렇다. 사실 대부분 페미니스트이다. 어쨌든 무서웠다. 왜냐면 여자 아이돌들이 김지영..이름 뭐더라, 그 책 읽다가 봉변당한 일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간접적인 경험들이 내게 공포를 주고 있다. 밖에서 이 책을 읽다가 누가 뒤에서 퍽치기 할 것 같다.
같은 날 밤 동네 산책을 하다가 길가에 홈자 놓인 오토바이 헬멧을 봤다. 헬멧을 두고 오토바이를 타고 홀연히 사라지신 건가요? 위험하게... 사고나면 바로 머리통 박살나요. 저도 누가 퍽치기하면 머리통이 바로 박살나겠죠. 이 헬멧을 주워갈까 생각했다. 그리고 페미니즘 책을 밖에서 읽을 때 이 헬멧을 쓰고 있는 거지. 그러면 누가 퍽치기해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나는 반격을 준비할 수 있겠지. 솔직히 머릿속으로 누구 때리고 죽이는 상상 종종 한다. 너만 그런 거 아니다 이거지. 하지만 실제로 그런 적은 없다. 당연하다. 나는 멀쩡하게 사회화된 그런 인간 중에 하나이다.
-최새미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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