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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dongri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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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타인 / <이터널 선샤인>, 미셸 공드리 (2005)
"나랑 가장 비슷한 영화 속 캐릭터는 <이터널 선샤인>의 ‘클레멘타인’ 이야" "난 아직 못봤는데. 어떤점이 ?" "영화를 보면 알꺼야." 이후에도 종종 그녀는 이 얘기를 했었지만, 꼭 보겠다는 기계적인 대답을 매번 이어가고 영화을 보진 못했다. 기약없는 이 약속이 지켜지는데는 시간이 꽤나 흘렀고, 그녀와 영화의 감상평을 나눌 수 없게 되서야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그녀와 헤어진 뒤, 한달이나 지났을까 이터널 선샤인은 10주년을 기념하며 재개봉 했다. 한 겨울 바닷가 모래사장 위에 놓인 침대에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누워있는 영화 포스터를 보자마자 그녀의 그 말이 상기 됐고, 난 홀리듯 영화관으로 향했다. 그 날은 유난히 추웠다. 부천역에서 조금 떨어진 CGV로 홀로 향했고,그제서야 그녀를 알고 싶은 나는 추리의 단서들로 실마리를 찾아가는 탐정의 마음으로 구석 자리에 앉았다. 어찌보면 '사랑했던 사람과의 기억을 지운다.' 라는 한 문장으로 표현 가능한 영화 였지만, 보는 내내 감정은 얽힌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꼬여갔다. 닮아 있었다. 헤어진 후 기억을 지우는 조엘의 꿈 속과 매일을 시달리던 처절한 내 꿈, 변화 무쌍한 헤어 컬러만큼이나 충동적이지만 표현에 솔직한 클레멘타인과 그녀가. 즉흥적이고, 감정에 취약한 클레멘타인 아니 그녀가 나에게 클레멘타인과 자신이 닮았다고 한 그 말은 “불안정한 나를 오롯이 사랑해줘.” 라고 내 기억 속에 그녀와의 마지막 씬의 자막으로 깔렸다. 엔딩 크레딧은 올라가지만, 나는 곤죽이 되어 의자 밑으로 흐르고 있었다. 지우개로 아무리 지워도 남아있는 연필 자국처럼 기억이 흐려져도 그녀만은 점점 더 선명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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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dongri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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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양자화 / 녹색광선 - 에릭 로메르(1986)
양자화(Quantization)란 임계값(threshold)를 기준으로 버리거나 취하는 디지털화 과정을 말한다. 임계값이 0.5라고 하면, 양자화를 거친 0.45는 0이되고 0.65는 1이 된다는 말이다.
감정도 양자화 될 수 있다. 1 = ‘사랑한다’, 0 =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하자. 아날로그 신호처럼 무작위로 유입되는 사랑 비스무리한 미달된 감정들은 내 안의 임계값에 걸려 0으로 판단된다.
6단 튐틀을 앞에 둔 초등학교 5학년때의 나처럼 도움닫기 조차 무서워 임계값에 주저한다. 이미 디지털화 된 감정에서 ‘덜 사랑해’는 없는듯, 임계치를 넘은 ‘1′만을 기다린다.
출렁이며 내 무릎 정도 까지 적시는 파도 말고, 내 키보다 높아 날 삼켜버릴듯한 파도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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