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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디자인 가로지르기](2) ‘대한민국’ 하면 호랑이만 떠오르십니까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710112106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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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명예의 전당] 역대 헌정 현황
산업디자인 발전에 기여한 명예 디자이너를 발굴하여 헌정함으로써
한국 디자인의 역사를 기록할 수 있도록 '디자이너 명예의 전당' 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헌정 현황
▶ 2012년 [1대] : 봉상균, 조영제, 한도룡 (명예교수)
▶ 2013년 [2대] : 권명광, 민철홍, 박대순 (명예교수)
▶ 2014년 [3대] : 부수언, 최승천 (명예교수)
▶ 2015년 [4대] : 안정언, 양승춘, 정시화 (명예교수)
▶ 2017년 [5대] : 이상철 (디자이너)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8183339&memberNo=15094812 http://www.kidp.or.kr/index.html?menuno=921&bbsno=14600&boardno=622&ztag=rO0ABXQAMzxjYWxsIHR5cGU9ImJvYXJkIiBubz0iNjIyIiBza2luPSJraWRwX2JicyI%2BPC9jYWxsPg%3D%3D&siteno=16&act=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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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vs 2018 올림픽 디자인 온도차이
https://1boon.kakao.com/1hows/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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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그라다 세계그래픽디자인대회’ 집행위원장 안상수 홍익대 교수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0101617000801 : 2000년 10월 16일(月)
▲ '이코그라다 세계그래픽디자인대회' 집행위원장 안상수 홍익대 교수
https://www.google.com/url?sa=i&rct=j&q=&esrc=s&source=images&cd=&ved=2ahUKEwids8bCsoLlAhWO7GEKHdpsCUYQjRx6BAgBEAQ&url=http%3A%2F%2Fgumnuri.kookmin.ac.kr%2Fcgi-bin%2Fbbs%2Fgumbbs.cgi%3Fdb%3Dgum03%26mode%3Dread%26num%3D1612%26page%3D239%26ftype%3D6%26fval%3D%26backdepth%3D2&psig=AOvVaw2Fvgvpjwt7fwMo7obvKX3x&ust=1570271283836612 "다양한 지구촌 디자인을 한 보자기에…" 오는 24~2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는 ‘이코그라다-2000 세계그래픽 디자인대회’가 열린다. 이코그라다(Icoograda:세계그래픽디자인단체협의회)는 그래픽 디자인계의 UN과도 같은 기구. 지난 1963년 결성돼 격년으로 한 도시를 정해 디자인국제대회를 열고 있다.새 밀레니엄을 맞은 이코그라다가 서울을 축제의 장으로 정했다. 이번 이코그라다2000의 집행위원장을 맡은 안상수(48)홍익대 교수를 만났다. -행사구성은 어떻게 되나. “이코그라다 국제대회는 학제간 연구를 지향하는 디자인 프로젝트다. 디자이너 철학자 문화행동가 경영인 예술가들이 함께 참여한다. 매일 주제를 정해 연사가 나서며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토론이 이어진다. 세미나에는 영국의 멀티미디어그룹‘토마토’등 28개국에서 온 50여명의 연사가 참여한다.메인프로젝트로 디자인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이코그라다 디자인교육선언’도 있다.” -이번 행사의 주제가‘어울림’인데. “참여작가들은 좌파적 시각에서 극단적인 상업작가에 이르기까지 편차가 크다. 새 밀레니엄을 맞아 이런 다양한 작가, 경향들을 한자리에 모아 큰 보자기로 싸낸다는 것이 이번 행사의 컨셉트이다. 또‘이코그라다 디자인 교육선언’에 한글로 ‘어울림(oullim)’이 들어간다. 해체니 포스트모더즘이니 하는 것들이 휩쓸고 간 새로운 시대, 모든 대립과 갈��, 서구의 근대적 개념인 이원주의를 넘어서는‘어울림’을 화두로 택한 것이다.” -디자인 선언문에 우리말이 채택된다는 것이 놀랍다. “구시대의 패러다임은 사라졌고 그 빈 공백을 채우기에 어울림이라는 단어만큼 적절한 것도 없다. 어울림은 청각적으로도 상당히 어울리게 들린다. 영어로 어울림을 ‘더 그레이트 하모니’라고 설명해줬다. 서구인들은 동양적 어울림의 사상을 잘 이해하지는 못해도 쉽게 매료되는 것 같다. 전야제때 김용옥 교수의 철학강의 ‘어울림산조’를 마련하고 갈라 행사에도 비빔밥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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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그라다 디자인 교육 선언
이코그라다 디자인 교육 선언, 2000년 서울
[그래픽 디자인?]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용어는 이제
기술적으로 그 실천 영역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적합한 용어는
'시각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이다.
시각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은
점점 더 여러 분야의 표현과 접근 방법을
다층적이고 심층적인
시각적 능력으로
통합하는 전문직으로 변모했다.
분야 사이의 경계는 더욱 유동적이 되고 있다.
그렇지만 디자이너는
자기 전문 영역의 한계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폭넓은 변화의 대두]
미디어 기술의 발달과 정보 경제는
시각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의 실무와 교육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에 따라
우리 디자이너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디자인 논점의 다양성과 복합성이 확대되었다.
이 결과로 생긴 도전은
인간과 사회-문화 그리고 자연환경이
현재와는 다른
차원 높은 생태적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요구이다.
[디자이너]
시각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는 다음과 같은 일을 하는 전문가이다:
- 문화의 시각적 경관을 형성하는데 기여하는 이.
- 사용자 집단을 위한 의미가치를 창출하는데 주력하며,
그들의 관심사를 올바로 해석하는 것은 물론,
이에 적절히 대응하는 전통적, 또는 혁신적 해결책을 제공하는 이.
- 체계적인 비평의 실천을 통해
서로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며, 가능성을 모색하는 이.
- 아이디어를 개념화하고 명확히 하여
구체적 체험으로 표현해내는 이.
- '다름'의 지나친 강조가 아닌
'같음'을 인식함으로써
환경과 문화적 맥락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공생적 입장에 바탕을 둔 접근 태도를 지니는 이.
- 인류를 포함한 모든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는
개인의 윤리적 책임감을 지니고,
디자인 행위가
인간성, 자연, 기술,
그리고 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이.
[디자인 교육의 미래]
새로운 디자인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은 영역을 포함한다:
이미지,
텍스트,
공간,
움직임,
시간,
소리,
그리고 상호작용.
디자인 교육은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염두에 둔
비평적 마음가짐을 키우는데 주력해야 한다.
디자인 교육은
자기성찰적 태도와 그 능력을 배양시켜야 한다.
새로운 프로그램은
커뮤니케이션과 상조를 위한 지혜와 방법을
길러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디자인 이론과 역사 교육은 중요하다.
디자인 연구는
인지와 감성, 물리적, 사회-문화적 인간 요인에 대한 이해를 통해
디자인 수행 성과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디자인 지식의 생산가치를 높혀야 한다.
그 어느 때 보다
디자인 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폭넓은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
디자인 교육은 '가르침' 중심에서
'배움' 중심으로 바뀌어야 하며,
이러한 변화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교육 프로그램 내에서, 또는 그 이상의 수준에서
그들이 지닌 잠재력을
실험하고 계발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따라서,
디자인 교육자는 단순 지식 제공자가 아니라,
학생으로 하여금
보다 실질적 디자인에 이르도록
영감을 주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자로 변해야 한다.
가깝거나 먼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힘은
시각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의 필수 부분이다.
디자인의 새로운 개념은
역동적 평형의 바탕 위에서
자연과 인간, 그리고 기술의 조율을 약속하며,
동·서·남·북,
그리고 과거·현재·미래의 조화를 이루어낸다.
이것이 위대한 조화,
곧 '어울림'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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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의 한국 디자인 뒤집어 보기](3) ‘미술수출’에서 ‘디자인 서울’까지…경제 위한 도구 전락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712062140005
국가주의의 그림자
1967년 9월1일 박정희 대통령이 수출디자인센터를 방문해 남긴 휘호 ‘미술수출’.
1967년 9월1일 박정희 대통령은 수출디자인센터를 방문해 휘호를 남긴다. ‘미술수출(美術輸出).’ 이것은 당시 국가 최고 지도자가 디자인계에 내린 명령이었다.
■ ‘미술수출’이라는 명령
‘미술수출’은 ‘미술을 수출하라’는 말이 아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미술은 회화나 조각 같은 순수미술이 아니고 ‘응용미술’, 즉 지금의 디자인을 가리키는 것이고, 수출의 의미도 디자인을 수출하라는 것이 아니라 수출을 위해 디자인하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미술수출’은 ‘수출을 위한 디자인을 하라’는 일종의 교시였다. ‘미술수출’, 나는 이 네 글자가 지난 50년간 한국 디자인의 유일 이념이었다고 생각한다. 유일 이념은 유일 체제를 낳게 마련인데, 그것은 바로 국가 주도 ‘디자인 진흥 체제’이다.
박 대통령은 매달 개최되던 수출진흥확대회의에서 수출품 포장이 부실하여 클레임이 제기된다는 보고를 받고 즉시 대책을 세울 것을 지시한다. 그리하여 1969년 기존의 서울대학교 부설 한국공예디자인연구소를 수출디자인센터로 개칭하고, 그와 별도로 한국수출품포장센터를 설립하였다가, 1970년에는 다시 이 둘을 통합하여 한국디자인포장센터를 출범시켰다. 한국디자인포장센터는 1991년 한국산업디자인포장개발원으로 개칭되었다가 2001년 현재의 한국디자인진흥원(KIDP)으로 되었다.
이 유구한(?) 기관의 명칭들에서 볼 수 있듯이 애초 디자인에 대한 국가의 관심은 수출품의 포장, 바로 그것에 있었다. 그래서 한때는 골판지나 크라프트지 같은 포장지 생산이 한국디자인포장센터의 주요 사업이기도 했었는데, 구로공단 내에 생산 공장을 직접 운영하기도 하였다. 아무튼 정부에서 설립한 디자인 진흥기관의 이름에서 ‘포장’이라는 글자를 떼는 것은 21세기에 들어와서이다.(2001년의 한국디자인진흥원) 디자인 진흥의 출발이 수출품 포장이었고, 진흥기관의 명칭에 오랫동안 포장이라는 용어가 들어 있었다는 사실은 한국의 국가 차원 디자인 정책의 성격과 의미를 이해하는 데 너무나 중요해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한국의 공공 부문이 디자인을 이해하는 기본 구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차라리 하나의 정신이라고 불러야 한다. 이러한 정신은 수출품 포장에서 새마을운동으로, 그리고 근래의 간판개선사업에까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미술수출’이었다.
■ 경제 개발과 ‘동원된 디자인’
사람들은 디자인처럼 말랑말랑하고 소프트한 분야는 국가 권력과 무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물론 오늘날 디자인은 소비사회의 꽃으로서, 산업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고 자본주의 시장을 통�� 교환되며 개인의 욕구와 취향을 충족시켜줌으로써 사적 영역을 구성하는 문화적 요소의 하나이다. 그런 점에서 디자인은 최종적으로 사적 영역에 속한다. 하지만 그러한 사적 영역이 결코 공공 영역과 무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지어 공공 영역에 의해 창출되고 끊임없이 포위되어 있는, 그리하여 하버마스가 말한 ‘생활세계의 식민화’가 일상적 경험인 사회에서 그것은 결코 순수하게 사적일 수 없는 것이다. 한국처럼 사적 영역이 국가에 의해 통제되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페미니즘에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고 말할 때 디자인은 ‘정치적인 것은 개인적인 것이다’라고 말해야 한다. 일상의 디자인 경험은 개인적이지만 그것의 생성과 작용은 결코 개인적이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볼 때 한국 디자인은 경제 개발 중심의 근대화 과정에서 동원된 것이라는 점에서 사실 다른 분야와 다르지 않다. 사회학자 조희연 교수는 박정희 시대를 ‘개발동원체제’로 규정하면서 “그것은 ‘근대화(개발, 산업화, 발전 혹은 성장)’라는 국민적·민족적 목표(혹은 그렇게 인식되는 목표)를 향해 국가가 위로부터 사회를 강력하게 추동하고 동원하는 체제이다. 근대화가 지체되어 그것이 국민적·민족적 달성 과제로 되어 있는 특성과 그것을 ‘전투적’으로 달성하고자 하고, 그것을 통해서 스스로의 정당성을 강화하면서 체제를 유지하는 특성이 개발동원체제에는 일반적으로 존재한다. 동원은 바로 민족적·국민적 목표를 전투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위로부터의 전략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조희연, <동원된 근대화>, 후마니타스)
그러니까 박정희의 ‘미술수출’은 그러한 위로부터의 전략적 행위의 일환으로서 디자인을 동원하기 위한 명령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위로는(?) 산업 관료로부터 아래로는(?) 실무 디자이너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명령을 충실히 이행해온 것이 한국 디자인 역사의 커다란 장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절대 권력자인 박정희의 영향력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어마어마했지만, 디자인에서도 그는 너무 많은 것을 결정했던 것이다. 식당에서 사용하는 스테인리스 밥공기가 박정희의 지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은 그저 여러 에피소드 중 하나에 불과하다. 아무튼 박정희는 한국의 윌리엄 모리스였고, 발터 그로피우스였다.
박정희는 ‘미술수출’ 이념의 고안자일 뿐 아니라 경부고속도로 인터체인지를 디자인하는 등 직접 실행을 보이기도 했다. 서울 상암동에 있는 박정희기념관을 가보면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소학교 교사를 지낸 박정희는 다소 전인적인 면모를 지닌 지도자였다. 그는 글씨도 잘 쓰고 그림도 웬만큼 그리고 풍금도 잘 쳤던 것 같다. 그는 ‘새마을노래’와 ‘나의 조국’을 직접 작곡, 작사하기도 했다. 북한 최고의 미술평론가가 김일성(“우리의 미술을 민족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은 ���명적인 미술로 발전시키자”)이고, 최고의 영화이론가가 김정일(1973년 <영화예술론> 집필)이라면, 박정희는 그 둘을 합쳐 놓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한국의 디자인은 수출 위주의 경제성장 도구였으며, 디자인 진흥 정책은 ‘관학복합체’의 성격을 지닌다.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디자인 제도 자체가 국가에 의해 창출된 영역이며, 대학을 지배하는 교수 집단의 형성 자체가 국가가 권위를 부여한 공모전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상공미전을 돌아보고 있는 박 대통령.
사실 ‘미술수출’을 하나의 디자인 이념으로 볼 수는 없다. 거기에는 디자인 고유의 철학이나 가치가 표현되어 있지 않다. 어디까지나 디자인을 수출 위주의 경제 성장 도구로 호명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디자인관 이외의 디자인관이 이 땅에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디자인 혁명’이니 ‘디자인 강국’이니 하는 말들도 결국은 디자인의 경제적 가치를 절대시한다는 점에서 그 세련된 표현에도 불구하고 ‘미술수출’로부터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문제는 박정희가 그런 교시를 내린 것 못지않게 한국의 디자이너들이 그것을 충실히 따랐다는 데 있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박정희의 명령을 거부하거나 그와 다른 디자인 이념을 제시한 디자인 전문가는 없었다. 국가 차원에서 볼 때 한국의 디자인이란 그러한 일극체제에 통합된 기능적인 하위영역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 디자인의 관료주의화
국가 주도의 ‘위로부터의’ 디자인 진흥정책이 결과한 것은 디자인의 관료주의화였다. 디자인의 관료주의화라는 말은 얼핏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역시 디자인과 같이 부드럽고 크리에이티브한 분야가 어떻게 관료주의화될 수 있는가 하고 말이다. 그런데 디자인처럼 부드럽고 크리에이티브한 분야조차 관료주의화되었다는 것이 사실은 진짜 문제이다.
앞서 나는 박정희의 ‘미술수출’을 한국 디자인의 유일 이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러한 유일 이념을 구현한 유일 체제로서 ‘디자인 진흥 체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러한 유일 이념과 유일 체제가 결과하는 것은 디자인의 관료주의화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관료주의는 좁은 의미의, 형식적인 차원에서의, 즉 공공 부문에 한정된 것으로서의 의미가 아니다.
내가 말하는 디자인 관료주의는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정책 영역만이 아니라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 영역(아니 차라리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디자인 제도 영역이라고 하는 것이 낫겠다)을 포괄하는 의미에서이다. 그러니까 나는 한국의 디자인 제도 전반(정책, 교육)의 성격을 한마디로 관료주의적이라고 규정한다. 물론 한 사회의 디자인은 제도화된 영역 이외의 생활세계 영역이 존재하고 이것은 별도의 논의를 필요로 한다.
한국 디자인의 관료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국가와 사회의 관계를 이해하면 된다. 그러니까 사회가 국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사회를 만들어온 사회에서는, 디자인 사회가 국가의 디자인 정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국가의 디자인 정책이 디자인 사회를 창출해온 것이다. 그러니까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민간 영역의 디자인 사회 자체가 국가의 디자인 정책에 의해 창출되었다는 것이다. ‘미술수출’이라는 이름의 국가 디자인 정책.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제1회 상공미전 개막식.
그래서 한국의 디자인 진흥 정책은 ‘관학복합체’의 성격을 지닌다. 앞서 말했듯이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디자인 제도 자체가 국가에 의해 창출된 영역이며, 대학을 지배하는 교수 집단의 형성 자체가 국가가 권위를 부여한 공모전(멀리는 조선미술전람회, 해방 이후에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 1960년대부터는 상공미전-대한민국디자인전람회)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한국 디자인 제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디자인 대학�� 교수가 되는 과정 자체가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전문가들로 구성된 디자인 사회의 경쟁과 선발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일방적으로 권위를 부여한 제도적 장치(공모전)에서의 등용과 해외 유학을 통한 것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구성된 디자인 대학 교수집단은 산업 관료집단과 파트너가 되어 디자인 진흥 체제를 구동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관학복합체’의 성격을 띤 디자인 진흥 체제야말로 ‘미술수출’로 상징되는 유일 디자인 이념의 실제적인 구현체였던 것이다.
제1회 상공미전 포스터.
“정책이란 국가가 하기로 혹은 하지 않기로 결정한 모든 것”(토머스. R. 다이)이라는 정의에 비추어 보면, 결국 한국 디자인과 관련하여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1960년대 이후 한국 국가가 디자인과 관련하여 무엇을 하기로 혹은 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는가 하는 것이 되겠다. 이것은 한국의 권위주의 국가가 현대디자인에 끼친 영향이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이라는 형태를 통해 표출되는 국가의 디자인 행위는 그 반대편, 즉 대중의 생활세계 디자인과 비교해볼 때 그 의미가 보다 분명해진다. 왜냐하면 국가 주도의 권위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인 디자인 정책은 그 반대편인 생활세계에 대한 방기와 무책임, 나아가 혐오와 짝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디자인 진흥 체제는 대중의 생활세계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보다 국가 주최의 공모전에 출품하여 상을 받는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큰 환경을 가진 사회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디자이너들은 모두 거기에 순응해왔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생활세계 디자인이 왜 이렇게 황폐한지에 대한 대답도 거기에 들어 있는 것이다.
권위주의 국가는 자원을 독점하고 선별적으로 분배하며, 국가 정책에 동조하는 집단에 보상을 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회를 만들어간다. 그 결과 국가에 충성하는 디자이너는 점점 많아지는 반면 생활세계를 아름답게 하는 데 관심을 갖는 디자이너는 갈수록 줄어든다. 국가주의 디자인이 빚은 결과는 이런 것이다. 1960년대의 ‘미술수출’에 의해 착근된 디자인 의식은 지방자치시대에 들어와서도 변하지 않고 최근의 ‘디자인 서울’에 이르기까지 지속되고 있다고 나는 판단한다. 그래서 한국 디자인에 드리운 국가주의의 그림자는 여전히 길게 꼬리를 드리우고 있다. 아니, 아직 그것을 꼬리라고 말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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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 한국 디자인 개념의 형성과 전개
최호랑
1960-70년대 한국 디자인 개념의 형성과 전개
서울대학교 디자인역사문화 전공 석사학위논문 (2015)
이 연구는 한국 사회에서 현대적 디자인 개념이 형성된 과정과 전개된 양상을 추적하여, 동시대 디자인 제반 현상과의 상관관계를 검토하는데 그 목적��� 있다. ‘스타일링’의 차원을 넘어 디자인의 ‘문화적’ 기능과 역할“을 논의하고 있는 오늘날, 한국의 디자인 제반 현상은 여전히 (외면의 개선을 통한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을 제일의 가치로 두는) ‘산업’의 관점에서 기획·실행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풍토는, 디자인의 영역을 인간 생활에 깊이 관여하는 시각문화의 한 축으로 확장시키지 못한 채 그 역할을 피상적, 제한적으로 만들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 연구는 이러한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현재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산업’ 중심 디자인 개념의 연원과 그 전개 양상을 추적해 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연구자는 전반적으로 1960-70년대 전후戰後 ‘산업화’ 과정에서 정부의 강력한 개¿‘을 바탕으로 설립되어 활동한 ‘디자인 기관’의 활동과 그 ‘기관지機關紙’의 내용에 주목했다. 다수의 선행 연구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당시 한국 정부의 디자인 인식과 그에 기초한 디자인 진흥 정책이, 오늘날 발견할 수 있는 ‘산업 중심 디자인 개념’의 근간이 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는 이와 같은 내용을 크게 네 장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먼저 II장에서는 1960년대의 사회 전반의 상황과 디자인 관련 용어들의 쓰임을 살폈다. 구체적으로는 군사정권의 집권 후, ‘경제발전 5개년 계획’과 같은 경제 성장 정책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고 있었던 배경 상황과 디자인(개념)과의 상관관계를 밝혀 보고자 하였다. 특히 당시 한국 정부의 경제성장 전략이 양적 성장 중심 체제로부터 ‘질적 경제성장’을 강조하는 간접적, 부가적 방향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디자인이 새로운 화두의 하나로 등장했던 모습에 주목하였다. 이에 더해, 당대 빈번히 쓰였던 ‘도안, ‘의장意匠’, ‘응용미술應用美術’, ‘생활미술生活美術’, ‘산업미술産業美術’, ‘상업미술商業美術’ 과 같은 단어들의 실질적 용례와 특성을 살폈다.
이어 III장에서는 1969년에 활동한 디자인 기관 한국수출디자인센터와 여기서 발행한 잡지 『계간 디자인』의 특징을 분석하였다. 1966년에 최초 한국공예디자인연구소로 출발한 한국수출디자인센터가 수출 상품의 품질 및 디자인 개선이라는 역할을 부여받은 배경과, 그 활동의 성과 및 한계를 비판적 시각으로 검토하였다. 또 잡지 『계간 디자인』에 내포된 ‘국가주의’적 디자인 개념을 잡지 내외부의 관련 자료와 연결지어 설명하였다.
IV장에서는 1970년에 출범한 한국디자인포장센터의 설립 배경 및 과정과 설립 후 활동 내용을 추적함으로써 그 의미를 밝히고자 했다. 소수 정치 권력자의 의지에 기인해 강제적으로 통합·출범한 일련의 센터 설립 과정과, 설립 후 직접적인 ‘디자인 개발’에 치중하며 수출 증대를 위해 디자인 계몽의 논리에 충실했던 센터의 활동 내용을 살펴, 70년대 본격적으로 진행된 디자인 진흥의 방향과 그 기저의 디자인 인식 및 개념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본문의 마지막인 V장에서는 한국디자인포장센터에서 발행한 잡지 『디자인·포장』의 디자인 개념에 대해 다���었다. 1970년대를 전·후반기로 나누어 잡지에 등장한 주요어와 디자인 개념의 변화 양상을 시대적 배경과 연관지어 서술하였다.
이상의 내용을 바탕으로, 이 연구에서는 1960-70년대 한국의 ‘디자인’과 그 개념이 경제성장 및 수출증대와 같은 국가적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기능해 왔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입증하고, 이러한 영향관계 아래에서 한국의 현대적 디자인 개념이 ‘국가주의적’ 성격을 부여받으며 형성된 후, 점차 ‘산업디자인’과 같은 산업 중심 디자인 개념으로 고착된 양상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현대적 디자인 개념의 형성 및 그 전개 과정을 파악하는 것은, 동시대 디자인 제반 현상과 그 근본 개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문제에 대한 유기적 대응체계를 갖추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일 것이다. 디자인이 인간 삶의 근원과 연결되며 그 범위를 확장하고 있는 오늘날, 한국 디자인 개념의 형성과 전개를 다룬 이 연구가 관련된 논의의 단초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주요어: 1960-70년대, 한국, 디자인 개념, 산업디자인, 국가주의
Horang Choi
The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the 1960-70s Design Concept in Korea: Focusing on Governmental Design Magazines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trace the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the modern design conception in Korea and to examine the relationship between current design phenomena and the concept of design. Up until very recently in Korea, most of design issues have been dealt with on the viewpoint of the ‘industry-centered’ design concept, which is purposed to change the shape of products in order to create added value whilst functions and roles of design in terms of ‘cultural’ value are now widely discussed. In this situation, the boundary of design has not been extended to a critical axis of visual culture in everyday human life, but it has had superficial and limited role in the ‘industrial’ area.
This study tried to trace the origin and the process of development of the ‘industry-centered’ design notion in Korea with a critical stance on phenomena of design today. Accordingly, this study put the main focus on the activities of governmental design organizations and the contents of magazines published by design government during the ‘industrialization’ era of Korea (1960-70). This is because the author agrees with an opinion suggested by advanced researches that the current ‘industry-centered’ design notion has come from design concept of Korean government and government-led design policy which was based on that conception.
This thesis consists of four chapters. Chapter 2 deals with the social backgrounds of 1960s and usage of design terminology in Korea at that period. Specifically, this research intends to understand the interrelationship between design notions and socio-economic contexts while the ‘five-year economic development plan’ was implemented right after the military government gained power. Moreover, the applications of design terms are reviewed in this chapter.
At Chapter 3, the institutional activities and its characteristics of the Korea Design Center (KDC) are investigated and the Quarterly Design magazine published by the KDC is also analyzed. This part looks into the detailed background of how the KDC took a leading role in improving the quality of design for export and merits and demerits of the KDC’s public activities. In addition, this chapter explains the ‘nationalistic’ design concept, which can be mainly detected in the contents of the Quarterly Design.
Chapter 4 tries to concentrate on the detailed background of the Korean Design Package Center (KDPC)’s establishment and the KDPC’s institutional activities to read the implications behind it, in order to analyze the direction of the design policy and design concept of the governmental agency in 1970s. This chapter traces the overall process of integration and establishment of the KDPC and the KDPC’s activities including efforts of design development in order to make great consequences in export.
Chapter 5 mainly discusses the concept of design revealed in the Design & Packaging magazine published by the KDPC. This paper divided 1970s into two periods: the first half of the decade and the second half of the decade to explain the keywords and design concept with changes of social background of each period.
From the above contents discussed, this research reached the conclusion that the Korean design and notion of it in 1960-70s had developed as a tool for national goals such as ‘economic growth’ and ‘increase of exports’. This thesis also identified the tendency of the design notion in Korea during 1960-70’s, which had been fixed and developed into the notion of ‘industry-centered’ design, namely, the ‘industrial design’ with a nationalistic understanding of design.
It is surely necessary to trace the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the design concept in Korean during 1960-70s, to widen the possibility of understanding the current design phenomena and connoted design conception of it. It is expected that this research would contribute to opening out the cultural discourse on the expanded role and function of design connected to daily human life.
Keywords: 1960-70s, Korea, Design Concept, Industrial Design, Nationalism
https://www.snu-dhc.com/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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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디자인사 수첩
한국의 폴 랜드, 조영제를 인터뷰하다
‘한국의 디자인’은 우리나라 디자인도 이제 산업적 역할에만 만족하지 말고 한 차원 높여 우리나라의 문화 대변인의 역할로 자리 잡아야 할 시점이 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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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디자인 신화를 넘어서
국가에 의해 기획되고 전문가 집단에 의해 수행된 거대한 하나의 운동, 그것이 한국 디자인이다. 디자인 서울은 그 운동의 완성이자 동시에 파국이었다.
디자인 서울에서 보듯이 디자인과 정치 사이에는 아무런 간격이 없다. 디자인과 경제도 마찬가지이다. 디자인은 디자인 산업이고 디자인 산업은 디자인 정치이고 디자인 정치는 국가 정치라는 것.
한국의 디자인은 국가주의 디자인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이는 나중에 기업 부문에서 발전하게 되는 기업 디자인과 함께 한국 디자인 구조의 두 축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정경유착이 그러하듯이 국가주의 디자인과 기업 디자인은 갈등하지 않고 조화롭게 공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아마도 한국 디자인이 국가과 기업을 가리지 않고 이데올로기를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둘이 모두 발전주의를 추구하는 동일한 주체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의 디자이너들은 디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디자이너들은 오로지 그런 명령 또는 과제를 수행하기만 하면 된다. 한국의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머리로 디자인을 사유한 적이 없다.
디자인 진흥 체제의 성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주의적이다. 그것은 국가에 의해 ‘위로부터’ 계획되고 집행되는 체제이다. 거기에는 디자인의 본질적 문제의식이나 ‘아래로부터’의 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애초부터 안중에 없다.
둘째, 디자인의 도구화이다. 디자인 진흥 체제에서 디자인은 철저히 도구화된다. 그것은 국가주의적 경제 개발의 수단으로 ‘동원된다.’
셋째, 관학 복합체이다. 국가 주도 디자인 진흥 체제는 산업정책 관료와 디자인 대학 교수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대학은 국가 주도 디자인 진흥 체제의 파트너이다. 이런 상황에서 디자인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대학에 기대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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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디자인
디자인과 시각문화
생산 주체와 소비 주체가 가장 활발히 상호작용했던 1980-1990년대를 중심으로 한국 시각문화 전반을 조망하고자 한다. 이 시기 한국의 시각문화는 그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큰 변화를 겪었고, 현재 한국 시각문화 현상의 주된 원류가 되었기 때문이다.
1980-1990년대의 한국 시각문화는 가공할 속도로 제 모습을 변모시키며 진화했다. 여기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데,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 86아시안게임, 1987년 민주항쟁, 88올림픽 등 숨 가쁘게 진행된 일련의 사회,정치적 사건들이 그것이다. 특히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의 개최는 디자이너들로 하여금 시각문화 생산자로서 자신의 실천과 위상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세계인의 시선을 통해 스스로를 돌이켜 봄으로써 한국의 시각문화 생산자들은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자신의 정체성 찾기에 골몰했다. 해외에 관광 한국의 모습을 소개하는 ‘전통문화 디자인’부터, 모국어 중심의 시각문화를 지향하는 ‘한글과 디자인’을 거쳐, 군사정권의 폭력성에 저항하면서 민족 문화의 전통을 재구성하려던 ‘저항운동과 디자인’까지, 정치적으로나 미학적으로 다양한 형식으로 펼쳐진 정체성 찾기의 시도들은 1980년대 시각 문화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했다. 이 시대의 고민과 노력은 이후에도 이어져 출판, 언론, 정치, 일상 등 전 분야에 걸쳐 풍요로운 시각문화의 스펙트럼을 만들어냈다.
137p
시각문화는 한 시대의 공간에 존재하며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 변한다는 것,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 변화의 동력은 인간이 상상하고 행동하는 것에 있다.
인간이 어떤 대상, 사건을 상상하고 행동하는 것을 ‘디자인’이라고 한다면, 디자인은 인간의 오래된 습관이다. 이 오래된 습관을 업으로 삼아 본격적으로 시각문화의 최전선에 뛰어든 사람들이 ‘디자이너’라 불리는 이들이다.
139p
1980년대 이전 한국 시각디자인의 흐름은 매우 제한적,종속적으로 형성되었다. 서구에 의한 강압적 개항, 일제의 식민 통치, 군부 독재를 통해 이뤄진 산업화의 흐름 속에서 디자이너들은 시각문화의 형성을 위해 자발적으로 나설 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이에 따라 디자이너의 실천은 언제나 타인에 의해 부가된 가치 기준에 따라 이뤄졌다.
141p
권혁수(2000), 이코그라다Icograda 서울대회 뉴스레터, 기고문
근대 100년의 한국 시각디자인을 1970년 중반에서 1980년을 기점으로 크게 ‘미술적 도안 혹은 장식기능의 시대’와 ‘사회 커뮤니케이션 체제 하의 그래픽디자인 시대’구분한다.
시각문화의 전환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그 전환의 잣대를 지식인, 디자이너, 예술가, 그리고 시민의 ‘자기 정체성’ 찾기에 두고 있다.
144p
1990년대 초까지 지속되던 이들 협회 중심의 작업들은 복고주의적 성향을 드러낸 한계도 지니고 있었다. 이를테면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명제 아래 이들 작업이 담고 있던 한국의 이미지들은, ‘색동저고리’, ‘백제의 미소’, ‘조용한 아침의 나라’와 같은 우너형주의적 소재와 이념에 한정되어 있었고, 종종 문양사전식의 조형 문법으로 고착화되기도 했다. 말하자면 대상에 대한 실질적인 탐구 없이 민족에 대한 관념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시각화 작업이 주류를 이룬 샘이었다.
154p
[뿌리 깊은 나무]로 시작한 우리 문화의 정체성 찾기는 전문 디자이너들의 활동으로도 이어져 1978년 ⟪한국의 이미지⟫, 1981년 ⟪한국의 미 포스터⟫, ⟪한국의 색⟫, 1982년 나재오의 ⟪한국의 얼굴⟫, 1985년 ⟪그래픽코리아 85⟫ 등의 전시가 열렸고, 한국그래픽디자인협회에서도 네 차례에 걸쳐 ‘한국의 미’를 주제로 전시회를 개최했다.
153p
정병규, (꺾쇄) 미술과 출판 또는 책, 디자인 그리고 문화, ⟪출판과 미술⟫에서 부분 발췌, 1998년 6월 26일-8월 2일, 환기미술관
북디자인이라는 장르 의식은 ‘기업 봉사형’의 당시의 한국 디자인의 주류에 ‘문화 생산형’의 디자인 개념이 덧붙여지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디자인의 속성상, 한국 디자인은 박정희 시대의 소위 근대화 흐름의 한 몫을 담당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만들어 낸 결과가 한국 디자인의 교육과 실행을 ‘기업 봉사형’으로 흘러가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책 만들기의 디자인적 의식을 다른 말로 한다면 디자인의 문화적 인실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자각들이 모여서 한국 그래픽 디자인계에의 서서한 변모로 이어지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반드시 ‘전통’에 기댈 필요는 없다. 현재 일어난 사건과 대상에 대한 인식은 곧바로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질문과 연결된다.
1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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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닮은 디자인
“한국의 디자인에서 가장 특징적인 지점은 무엇보다도 역동성과 이중성.”
“서구사회를 모델로 한 발전에 대한 강박과 과시의 욕망이 한국의 디자인을 지금, 여기까지 이끌어 온 하나의 축”이라고 보고
“또 다른 한 축에는 우리는 누구이고 우리에게 디자인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우리가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또 이를 받아들일 때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건 간에 ‘대표성’이라는 것과 ‘상품성’이라는 두 가지 단어를 거의 자동으로 떠올려 연결시키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88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1983, 김현
1980년대 초반에 한국 그래픽 디자인이 추구했던 디자인의 가치와 특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잘 집약해서 보여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호돌이는 한국적인 소재(호랑이)를 차용하면서도 표현에 있어서 한국디자인계가 서구 모던 디자인 스타일을 이해했던 방식을 엿볼 수 있게 한다.
120p
한국에서는 ‘근대화’는 ‘서구화’와 교환 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는데, 그것은 어쩌면 대부분의 후발 국가들이 취할 수밖에 없었던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근대는 그것이 근대적이어서가 아니라 ‘서구의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전도가 아직도 우리 일상에는 자리한다. 문제는 서구적인 것이 지시하는 구체적인 내용이 시대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어 왔다는 점이다.
1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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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디자인: 한국 디자인의 전통과 정체성
한동안 국내 문화계에서 전통에 관한 얘기를 많이 했지만 요즘엔 뜸하다. 그런 반면에 우리의 좌담에선 늘 ‘정체성’이란 말이 한 번씩은 나왔던 듯하다. 아마 이는 정체성이란 개념이 워낙 넓기 때문이겠지만, 정작 정체성 자체를 독립된 주제로 심도 있게 다룬 적은 없었다. 정체성이라 할 때는 나 자신의 현재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고, 전통이라고 할 때는 내가 어떻게 바뀌어 왔는가 하는 역사적인 측면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란 차이가 있다. 하지만 한국 디자인의 정체성이란 문제를 다루려면 전통이란 소재를 다뤄야 하기 때문에 이번 토론은 자연히 한국 디자인의 전통이란 주제로까지 이어졌다.
최범(이하 최) 디자인 분야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정체성에 관한 얘기를 많이 합니다. 제가 보기에 그것은 역설적으로 한국 현대 사회가 정체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에게 과연 이렇다 할 정체성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어요. 그동안 한국 디자인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생산적이기보다는 소모적이었고 정체성을 말하면 말할수록 더욱 공허한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이대일(이하 이) 최 선생님은 우리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 제기가 근대화 이후 서구 문화의 유입에 의해 불거진 것으로 보시는 것 같은데요, 일본의 경우는 서구 문물의 유입이 이미 19세기에 훨씬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으면서도 우리만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묻는지는 의문입니다.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 문제에 대한 제기는 비교적 근래의 일이지만, 역사적으로 우리는 그 이전부터 일종의 문화적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 문화사를 들여다보면 삼국 시대 이래로 중국 문화에 대한 열등감과 더불어 콤플렉스적인 요소를 많이 발견할 수 있는데, 현재의 정체성 논의도 이와 비슷한 측면이 있죠. 정병규(이하 정) 정체성 문제는 역사적으로 볼 때 어떤 사건이 일어나거나 장면이 바뀔 때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질문이겠지요.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떠올린 질문일 때도 있었고, 외부의 변화에 의해 일어난 질문일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살펴보면 우리 예술을 주제로 전통과 정체성을 논의하고 추구하는 태도가 주류를 이룬 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로 토속주의나 소재주의의 수준에서 머물렀다는 점도 크게 눈에 뜨입니다. ‘정체성’이란 것을 독립적인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으로 여긴 태도가 그런 결과를 낳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사실 정체성이란 그 자체로 우리 외부에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고정된 것이 아니라 늘 새롭게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최 ‘정체성이란 무엇인가’란 질문과 제가 처음에 던졌던 ‘우리에게 정체성이 있는가’라는 질문은 서로 다른 성격의 질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시 생각하니, ‘우리에게 정체성이 있느냐’라는 질문 자체가 과연 합당한 질문인지에 대한 의문이 듭니다. 이에 대한 이 선생님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이 정체성은 ‘인격’에서 ‘격’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의 ‘~격’이란 ‘~다움’을 의미할 텐데, 이는 자기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인격, 정서, 지력 등의 총합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우리는 좋든 싫든 ‘격’에 해당하는 정체성을 어떤 식으로든 가지게 마련이지요. 전통이란 과거에는 있었다가 지금은 사라진 특정 콘텐츠가 아니라, 시대가 바뀌어도 우리에게 여전히 살아 있어 과거와 일관성을 지니고 있는 문화적 특성을 말합니다. 따라서 전통이란 문제는 자연히 정체성 문제로 이어지게 됩니다. 정체성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나의 특성이나 기질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불만에서 시작된 질문이라고 본다면, 전통에 대한 새삼스러운 인식 속에서 전통과 정체성의 문제를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즉 어떤 조형물이 ‘무엇을 소재로 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정서와 기질 혹은 세계관 속에서 형성되었느냐’에 정체성의 요체가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디자인을 보면 선과 색채를 비롯한 조형성에서 이탈리아의 정체성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런 점에서 본다면 최 선생님이 지적하신 정체성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질문은 이러한 독특한 정서나 기질이 현대에도 충분히 드러나고 있느냐 아니냐 하는 질문으로 환원되는 것이지요. 최 지속성이 없다면 정체성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정체성이 있는가라고 묻는 것은 그런 지속성이 현재는 없다고 보기 때문일 텐데, 이 선생님의 말씀대로라면 그런 정체성은 우리가 발견을 못한 것뿐이지, 분명 현재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겠네요. 이 저는 지속성이 정체성의 특징을 이루는 요소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며, 조금 얘기를 발전시켜서 지속성이란 문제는 우리의 몸과 관련해 논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의 몸과 유전자로부터 우리가 일궈온 문화적 코드가 만들어지므로, 우리 몸이 만들어내는 현상은 지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정체성 문제는 자연스럽게 전통의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여기에서 나온 생각이고요.
최 전통이란 것은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전통이란 바로 지속성의 표상이고, 지속성 없이 정체성은 구성될 수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저는 전통을 자주 지뢰밭에 비유하곤 합니다. 전통에 대한 논의와 정체성에 대한 욕망은 곧잘 위험에 빠져버리거든요. 역사 속의 특정 소재를 다루는 것만으로 전통이 살아난다고 생각하는 ‘소재주의’도 그런 함정이지요. 적어도 저는 이제까지 전통이라는 지뢰밭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생환한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 최 선생님은 전통을 과거의 규범이나 틀, 형식, 제도 등 양식적 개념으로 보고 계신 것 같은데, 저는 전통이 ‘현재에도 지속적으로 살아나 되풀이되고 있는 여러 문화적인 양태’라고 봅니다. 특히 ‘전통의 지뢰밭’이란 표현을 하셨는데 이는 현재의 문화가 전통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견해거든요. 우리가 밝혀내야 할 것은 소재주의나 양식주의가 아니고 시대가 바뀐다 하더라도 쉽게 변하지 않는 우리 자신의 특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각 디자인, 혹은 제품 디자인이 과연 전통문화로서의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한국인의 특질’이란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디자인 역시 어떤 형태를 빚어내고 사회화시키는 조형 활동이므로, 한국인의 조형이란 측면에서 접���해본다면 한국적 조형의 특징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대답은 조형 세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문화 일반에 대한 특성과 대등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한국인의 조형 의식은 한국인의 예술 일반과 학문, 나아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일반에 대한 문제가 됩니다. 어떤 형태를 창조해내는 이러한 ‘조형 의식’은 디자인에 머물지 않고 한국의 전 문화를 아우를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정 전통적 조형미라는 것도 하나의 객관적인 명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늘 변하고 생성하는 것이지요. 변화와 지속의 만남이랄 수 있지요. ‘지속 가능’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지만, 그것마저 초월적인 실체로 존재한다는 생각은 경계해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디자인의 행위와 결과에도 최선의 것이 따로 존재하며, 디자인 행위란 이를 추구하는 일이 될 뿐이니까요. 지속 가능한 것으로서의 전통이란 것이 수학 공식처럼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이 서구의 박래품일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바람직한 창조적인 행위의 근원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전통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전통을 생각하면 전통이란 일종의 ‘욕망하는 힘’이 아닌가 싶어요. 우리에게 드러나는 모든 인공물이 잠재적인 것으로부터 현실화된 것이라면, 잠재된 형태를 세상 속으로 형태화, 현실화하는 힘 중의 하나가 정체성이면서 또한 전통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전통을 단순히 ‘생성하는 힘’으로만 보는 것은 문제를 지나치게 추상화시키거나 일반화시킴으로써 현재에 대해 아무 답도 끌어내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제도나 형식이란 것도 모두 몸에서 비롯되므로, 저는 다름 아닌 우리의 몸 자체에 한국적 전통이 내재되어 있다고 봅니다.
최 이 선생님은 몸이라는 장소, 주체, 경험을 설정하고 말씀하셨는데 흥미로운 부분이고 그런 관점이 이전엔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통을 얘기하며 일차적인 가치로 지속성을 얘기했는데, 어쨌든 ‘몸’이라고 했을 때에도 역사 속에서 새롭게 획득한 형질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몸에는 유전에 의해 계승된 형질도 있지만,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획득 형질도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사실 전통과 정체성은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의 결합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거죠. 만약 그것이 불변한다면 전통과 정체성을 논할 필요 자체가 없어질 것이며, 반대로 어떤 지속성도 없다면 정체성이란 것을 식별해낼 �� 없게 되어버리겠지요. 역사와 전통은 결국 지속성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라고 봐요.
정 그런데 우리 디자인에서의 정체성과 전통성의 논의와 성과를 살펴보면 공허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반면 미술이나 문학의 경우는 좀 더 구체적입니다. 문학의 경우는 김소월의 시, 한용운의 시처럼 우리의 전통성을 잘 담고 있는 작품이 구체적으로 떠오릅니다. 우리 디자인계의 전통에 대한 지금까지의 논의는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불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 디자인계에서도 정체성과 전통성의 논의도 구체적인 작업의 결과물을 통하여 접근하는 전환이 필요합니다. 명확한 성과물을 대상으로 정체성을 살피는 것은 전통성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디자인 자체에 대한 우리 나름의 정체성을 살피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이 정 선생님은 김소월 등의 문학 작품을 예로 들면서 우리 문학에서의 전통성의 존재처럼 시각 디자인 분야도 이런 문제를 논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고 계십니다. 여기에 대해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전통이란 어떤 구체적 형식의 계승이 아니라 ‘거기 배어 있는 우리의 기질이나 정서’라는 점입니다. 김소월의 시도 우리 언어의 리듬이라는 측면과 더불어 거기에 담겨있는 정서 때문에 전통을 계승한다는 평가를 받는 것 아닌가요? 즉 ‘무엇이 전통을 만들고 계승시켜나가는가’ ‘무엇이 지속성을 갖게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은 ‘한국인의 기질과 성품, 그리고 정서’라는 겁니다. 문학이든 음악이든 시각 조형물이든 간에 결국 한국인의 기질이 그것을 형성시키는 근본적인 요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말하자면 이것은 하나의 문화적 토양으로, 어떤 변수가 주어지더라도 비슷한 결과물이 만들어져 나오는 것, 이것이 전통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한국이란 토양에서 나오는 결과물은 일본이나 중국이란 토양에서 나오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며, 2000년 가까이 어떤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음을 저는 확인하고 있고요. 시각 문화에서 구체적인 사례가 없느냐고 하셨는데, 가령 이중섭 그림에서의 선의 느낌과 분청사기에 드러난 선의 느낌은 너무도 같습니다. 민화도 그러한 사례의 대표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거친 조형성’이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사례라고 하면, 좁은 지면에도 글자를 꽉꽉 채워 넣지만 섬세하거나 치밀한 맛은 부족한 라면 포장 디자인 같은 것을 들 수 있겠지요. 일반적으로 우리 피에 내장되어 있는 일반적인 기질적 특성은 ‘좋게 말해 씩씩하고 대담하지만, 나쁘게 말해 대강대강 처리하는 성질’인 것 같습니다. 학생들의 습작만 보더라도 끝까지 붙잡고 다듬는 치밀함이 부족하고, 기성 화가 작품의 구성적인 면을 따져봐도 ‘일부러 완벽하게 하지 않았을 뿐이다’라며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게 어떤 면에선 우리 조형성의 일관성 아닌가 싶습니다.
최 정 선생님은 구체적 사례를 가지고 논의하자고 말씀하셨지만, 조형물의 경우에는 과거의 것과 현재의 것 사이에 연속성을 찾기가 참 어려운 것 같거든요. 우리 현대 사회는 무엇보다 시각적인 면에서 크게 변화되었기에 그런 사례를 찾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정체성 찾기가 조선 시대와 현재의 닮은꼴 찾기는 아니지요. 그리고 전통이란 문화로써 학습되고 계승되는 것인데, 모든 전통이 그대로 계승되는 것은 아니며 선별적으로 계승되지 않나요? 우리 전통 사회의 요소 중에서도 어떤 것은 사장되지 않았을까요? 마치 시각 문화에서 민화적 전통은 오늘날 도시 풍경 등에서도 강하게 전승되고 있지만 문인화적인 요소는 찾기 힘든 것처럼, 전통 중에서도 어떤 것은 계승되고 어떤 것은 단절된다는 말입니다.
이 인간이란 존재는 몇천 년 정도로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봅니다. 물론 현재가 과거와 미래와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최 선생님과는 달리, 조선 시대의 문화적인 코드와 지금의 문화적인 코드가 다르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문학자들이 이미 그러한 사례를 여럿 찾아냈습니다. 시대에 따른 문화적 양상은 다를 수 있지만,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들이 과연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것이 지금 얘기하는 디자인의 특성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봅니다. 전통과 정체성을 현대에는 찾을 수 없다고 하시는 것은 제도권 내의 디자인에서만 그것을 보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며 또한 사람들이 형식주의와 소재주의에 갇혀 어떤 특정 모델을 맹렬히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며, 나아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처럼 단일성이 약하여 그 문화적 특성이 일본인만큼 뚜렷하고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 디자인사를 기술하는 태도에는 크게 두 가지 패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작가주의 중심의 기술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제도권이라는 말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관점은 ‘제도권은 끝났으며, 중심과 주변의 경계가 허물어졌으니 삶의 일상과 사소함 속에 디자인의 본령이 놓여 있다’는 접근 태도입니다. 저는 우리의 경우 후자의 방식으로만 디자인을 보는 것을 우려합니다. 극단적으로 이를 연장하면 ‘우리의 모든 행동과 생산물이 전부 디자인’이라는 말이 되고, 나아가 지금의 디자인 교육 자체를 부정하는 꼴이 될 겁니다. 시대의 감성을 담보한 작품이 있게 마련이고, 이 디자인 작품들을 중심으로 해서 그 시대의 디자인은 폭넓은 결실을 맺습니다. 현대 디자인이 시작된 이후 당분간 우리는 이런 작업을 제도권에 기대할 수밖에 없으므로, 지금까지의 작업을 통해 우리 디자인의 정체성과 전통성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제도권 디자인에서는 이런 논의를 활발히 하지 않고 있습니다. 디자인의 역사가 아직 기술되어 있지 않고, 디자인에 대한 시대와 역사적인 가치를 살피는 비평이 없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이러한 우리의 디자인적 현실은 오히려 제도권의 존재를 더욱 주목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시대를 가로지를 만한 올바르고 변변한 디자인 담론이 황무지인 오늘의 우리 디자인계를 생각해본다면, 쳐부술 만한 제도권마저 어디에 있는지 모를 형편입니다. 그렇다고 비가시적인 지금의 제도권을 옹호하자는 것만은 아니지만요. 한국 디자인의 정체성과 전통성, 나아가서는 한국 디자인의 현실을 재는 방식의 하나로 한국 디자인의 작업 결과물이 그 지표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이런 입장에서 제도권 디자인을 얘기할 수 있고, 또 제도권 디자인 현장에선 과연 전통이 어떻게 다뤄지는지를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통성 자체도 과거의 구체적인 작품으로부터 생성된 것이고, 따라서 지금의 논의도 구체적인 작품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전통성에 대한 논의는 일차적으로는 현대 한국 디자인의 제도권이 생산한 작품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로부터 생산된 담론은 우리 디자인을 문화적 입장에서 살피는 원심력의 바탕이 될 것입니다. 정체성과 전통성의 논의에서 제도권의 구체적인 작업의 결과물을 일차적으로 언급하지 않고서는 이런 논의는 겉돌게 마련이며 지금까지의 담론 방식과 수준을 반복하는 것밖에는 별다른 성과가 없을 것 같습니다.
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길거리 간판에서는 찾을 수 있을지 몰라도 제도권의 디자인에서는 찾을 수 없단 말이지요. 최근 강의 등으로 지방에 다닐 기회가 많은데, 가는 곳마다 가로등에 새나 사과 같은 형상이 붙어 있는 것을 많이 보게 되지요. 그런 걸 보면서 ‘왜 우리는 이런 구체적인 형상을 넣지 않으면 못 견딜까’ 하고 여러 가지로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서구적인 현대 디자인의 경험이 없어 장식 미술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것은 너무 서구 기준의 사고방식인 것 같고요, 어쩌면 일종의 토테미즘이나 애니미즘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튼 대구의 사과나 울산의 돌고래 등 한 지역의 특산물 형태를 가로등에 연결시키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되나 평론가로서 고민스럽습니다. 다른 문화권에선 그렇지 않은 것 같거든요.
이 저도 그런 가로등을 보면 이것이 바로 한국적 디자인의 현실이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 경우 가장 큰 원인은 이런 디자인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대개 디자이너가 아니기 때문이겠지요. 이런 것의 시행과 결정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은 별로 크지 않습니다. 아직 한국 사회에서 디자이너는 하나의 도구적 존재일 뿐, 정당한 의미의 주체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권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입김을 강화해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자 하는 가난한 불안 의식을 보여주지요. 덩치가 커져도 마찬가집니다. 추상적인 디자인의 언어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동물이나 과일 같은 구상적인 형태를 원하는 것이 현재의 우리 모습입니다. 삶의 구심점과 지향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이런 동물이나 식물의 형상이 우리 사회의 상징 지표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해, 마구잡이로 이상한 것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듯합니다.
최 우리 고유의 기질이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것을 많이 확인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 각각의 요소들을 개별적으로 확인할 수는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불쾌함을 느끼는 것은 그 가로등이 우리 문화의 맥락 속에 존재하지 않고 하나의 일탈 요소로 존재한다는 거예요. 전통문화란 것은 그 당시의 사회 체계 속에서 존재한 거지 그 자체가 독립해 존재한 것은 아니잖아요. 우리의 전통이 과연 오늘날 문화의 맥락 속에서 어우러져 존재하고 있나요?
이 사실은 한국 사회의 제품 처리 불량률이 산업 국가 중 상당히 높은 편에 속했었다는 것에서도 우리의 기질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는 다시 말해 마무리 처리를 제대로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과거의 수공 사회에서 이루어지던 수공 생산 시스템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공업 생산 시스템에서의 생산품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것은 공산품인 가로등조차 어딘가 거칠고 마무리가 덜 되어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이런 것이 우리 문화의 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정 그러면 그렇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요?
최 그런 불안정한 성질을 가지게 된 것은 우리의 역사적 경험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봐요. 우리 한국적 삶의 근본적인 불안함 때문 아니겠습니까? 삶의 조건이 안정되지 못해 만들어낸 기질이겠지요.
정 우리 전통문화는 서구식 근대 문화와 만나면서 생긴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 자체가 불안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의 모든 전통의 기반은 자연일 텐데, 자연 고유의 곡선과 근대적인 직선과의 갈등을 자생적인 방식으로 해소하지 못한 데서 오는 혼란이 아닌가 싶습니다. 서구적인 균형을 기반으로 하는 가로등이란 사물에 덧붙인 이상한 형태 때문에 혼란이 느껴지는 것도 그런 식으로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는 시각 디자인에서도 마찬가지여서, 근대적인 서구식 직선적 요소와 전통적인 곡선 주의와의 잘못된 만남이 오늘날 한국 시각 문화의 불협화음의 한 근원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한국인의 조형 의식의 맥락에 대해 보충하자면, 저는 한국적 정체성의 본체는 하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문화가 지닌 특징에는 그것을 형성해낸 이들의 기질과 성품, 정서적 특성이 배어 있기 마련인데, 저는 과거부터 우리 한반도도 미국과 같은 다인종 사회였으며, 여러 기질과 성품을 지닌 사람들이 혼재되���다는 사실을 여러 곳에서 확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역사적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배달 민족’이라는 동일성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조선의 개국 공신 쉰 두명 중에도 당나라에서 귀화한 사람을 비롯해 중국인이 40퍼센트나 섞여 있었으니까요. 제 생각의 핵심은 우리 자신의 현재에 대해 냉정히 주목하고, 너는 누구이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새삼스러운 인식과 더불어 우리가 만들어가는 문화에 공통적인 ‘격’이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반성이 따라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문화 종속 때문에 조선 500년 동안 반복한 사대주의를 또 반복하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최 그 부분은 저도 동의합니다. 한반도가 교류의 장소였다는 것은 이젠 새삼스러운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한국 문화는 그 최종적인 산물이거든요. 다만 그 결과물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이라는 것, 우리가 우리의 가로등에 만족할 수 없다는 게 문제지요. 이런 지경에 이른 가장 큰 원인은 우리 사회의 디자인 이데올로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말도 안 되는 디자인의 경쟁력 논리와 디자인에 대한 고상한 포장이 우리 디자인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는 거지요. 그런 허섭스레기 수준의 말들의 마취에 취해 계속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이런 마취에서 빨리 벗어나 각성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그것은 디자인 내적인 문제가 아니고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오늘날 디자인은 어쨌든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도구로 기능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이로부터 자유���울 수 있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자기가 좋아하고 개성적인 인격을 부여해 가족들이나 소규모의 공동체에서 수용하는 ‘생활 디자인’ 분야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지만, 이것이 국가나 세계라는 맥락에서 작용하게 될 때, 과연 우리가 그 커다란 틀 속에서 디자인을 향해 무엇을 어찌 요구할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우리의 조형적이고 문화적인 특징을 이루는 맥락의 정체에 대한 각성, 그리고 우리는 지금 왜 이럴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새삼스러운 주목, 그리고 과연 디자인이 앞으로 올 세상에서 무엇일 수 있는가의 새로운 가치에 대한 탐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최 이런 평범한 진리를 이렇게 힘들게 역설해야 하는 것이 힘들게 느껴집니다. 이 선생님은 아까 ‘몸’을 중시하는 발언을 하셨는데 저 역시 동감합니다. 몸의 감각을 통해 그것이 시각적 문화로 체험되는 것이 디자인 문화이고 거기에 전통이 있다는 거죠. 하지만 지금은 마치 임금님이 옷을 입었다고 하니 다들 옷을 입었다고들 말하는 것처럼, 사이비 경험의 세계가 실제 경험을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얼마 전부터 디자인은 조형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기술이고 배치의 문제이지 생산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몸의 감각, 세계의 직접성을 상실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며, 디자인과 문화를 말할 수도 없게 되겠지요. 디자인 문화는 어디까지나 우리가 인간으로서 그것을 체험할 수 있을 때 의미가 있으니까요. 체험하지 못하는 것은 문화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지요.
정 디자인의 체험이란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들어내는 공론의 장에서 만남과 상호작용을 통해 완성된다는 의미겠지요. 오늘도 전통에 관해 많은 얘기를 했지만, 개인적으로 작업 현장에서 전통을 의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구체적으로 내보이고 싶은 어떤 것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에요. 또 하나는 전통에 대한 ���심과 논의가 우리 디자인계에서 상식화되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특수한 시기에 특정 목적으로만 전통을 얘기할 것이 아니라, 전통을 문화 생산의 바탕이자 한국 문화의 존재 이유 중 하나로 항상 의식하고 있으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전통을 담론화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요. 예를 들면 우리가 문화를 논의하면서 문화 자체만을 정의해서는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거지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상적인 차원에서의 논의에 그칠 뿐이거든요. ‘문화’란 개념은 독립된 명사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이라는 ���용사적이고 부사적인 것이 될 때 비로소 실체가 되어 체험적으로 우리 주변에 존재할 수 있게 되지요. 전통도 마찬가지로 ‘전통적’이라는 새로운 차원에서 논의와 접근 방식을 변경해보는 것이 전략적일 수 있습니다. 특히 디자인 쪽에서는 더욱 그러하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디자인은 하나의 독립된 영역으로 존재하기보다는 모든 세상의 인간과 사물들 사이에 ‘디자인적인 현상’으로 존재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렇게 디자인을 생각한다면 디자인은 인간이 지닌 진화력의 근원적인 힘일 수 있습니다. 인간이 직립을 하면서 세상과 만났을 때 생긴 능력이 바로 디자인적 힘이고 능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 디자인은 우리 삶과 생명의 과정적 현상이기도 하며 또 그 결과이기도 합니다.
최 미스 반 데어 로에가 “건축이란 하나의 벽돌을 다른 벽돌과 붙이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지요. 건축 행위의 즉물성에 대한 발언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디자인이란 단춧구멍에 단추를 끼우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삶의 구체적*실체성*반듯함이 없이는 디자인 문화란 생성될 수 없습니다. 요즘처럼 디자인에 대한 온갖 공허한 담론이 떠도는 시절에는 특히 마음에 새겨야 할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전통과 정체성이라는 것은 결코 뜬구름과 같은 것이 아니거든요.
http://mdesign.designhouse.co.kr/article/article_view/101/46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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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생각하는 한국적 vs 외국인이 생각하는 한국적
중앙선데이, 2014
“내게 한국적 디자인은 혁신적인 무언가예요. 뭔가를 기발하게 만드는 힘이요. 한국 하면 떠오르는 게 휴대전화·컴퓨터·자동차 이런 것들 아닌가요. 이미 강대국인 나라들을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는 혁신과 속도, 그게 내가 생각하는 한국적 디자인이에요.”
-카를로 디 세그리아
https://news.joins.com/article/13736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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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25] 한국적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김도환(아반프러스 대표),2004
■ 우리 생활에 맞는 디자인 우리의 문화, 우리의 생활을 한 마디로 한다면 한국적이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적이란 무엇일까? 사실 가장 가까운 말인데도 표현하기 정말 어려운 질문입니다. 한국적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내리기 힘들고, 이론적 진술을 했다 해도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됩니다. 어렵긴 해도 이러한 문제의식은 궁극적으로 한국적 공간미학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느냐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럴 때만 동양문명에 대한 서구적 관심에서 촉발된 오리엔탈 디자인에 대해 우리 전통을 계승한 디자인이라는 관점에서 나름대로 우리의 디자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서구 디자이너들이 열광했던 이웃 일본 디자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쿠라마타 시로(shiro kuramata)라는 유명한 디자이너가 만든 의자<사진>를 보면서, 유럽의 많은 디자이너들이 “일본의 정원을 옮겨놓은 듯하다”라고 감탄을 했습니다. 그것이 가장 일본적인 것이라고 평가를 했고 그를 디자인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을 했습니다. “Miss blanch”라는 이 의자는 1980년대에 아크릴재료 안에 종이장미를 넣어 만든 것입니다. 이 의자 이후 투명한 첨단재료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디자인계에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의 전통적인 문양이나 모습은 하나도 없지만, 그 안에는 일본정원과 꽃꽂이의 정지된 듯한 인공적인 아름다움과 투명성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표현한 살아있는 디자인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처럼 한국적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도 한국의 문화전반에 걸친 질문과 맞닿아 있으며 구체적인 표현을 낳는 이미지의 추상화 문제이기도 합니다. 한국적 디자인(우리가 찾아야할 전통 내지는 한국성)은 우리 전통의 선이나 색 등을 끄집어내어 현대 디자인에 대입 절충하는 것이 아닙니다. ■ 디자인과 한국학의 만남 한국적이란 말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문화의 근원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통의 근원에 대한 해명이 없이 한국적이란 말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한국적 디자인은 우리의 민속과 생활문화 등의 측면에서도 동일한 가치를 지녀야 합니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있어서도 과거로부터 이어지되 현시대적 상황과 어울리고 앞으로의 상황도 충분히 예측해서 담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적이란 개념은 어떤 명분이 아닌, 실사구시(實事求是)적이면서 미래지향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옛집을 한옥이라 하고, 음식을 한식이라 하고, 입는 옷을 한복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정 한국적인가? 돌아가는 이야기가 되겠지만 미래학자 존 네이스비트의 말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지역적으로 사고하고 세계적인 차원에서 행동하라!” 그의 말은 글로벌 시대에 있어 그리고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우리에게 문화와 디자인에 대한 한국적인 방향성을 찾는 길을 나름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현재에 적용시킬 우수한 한국적인 미의 원형적인 가치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피상적 탐구를 넘어 이들에 내재된 사상과 정신 원리와 방법의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또한 이들 제 가치들을 규명하는데 한국적 조형의 특질을 형성시킨 지역적 특성 즉 한국의 풍토 사상 역사 문화 조형에 관한 종합적인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http://www.mjmedi.com/news/articleView.html?idxno=5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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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디자인
한국적 디자인
1.우리나라 디자인의 현황
1-1.현황
☺새로운 주체적 관점에 의한 우리 것의 연구 : 지금
미학적 관점에서 살펴본 우리 민족의 디자인 조형물들은 타민족과 비교해서 결코 뒤떨어지지 않으며 상당히 우수한 문화적 유산과 사유체계를 유지해왔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점들이 현재 우리들의 창작활동에 연결되지 못한 것은 나름대로의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다른 몇개의 나라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19세기를 전후한 서세동점(西勢東占)의 물결에 휩쓸리면서 타율적인 근대화의 과정을 맞기 시작한 셈인데, 이 과정에서 일단 적응적 변화에 실패했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웃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식민지 시대의 문화접변에 있던 민족주체 세력도 자율적으로 변화에 적응할 힘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수동적으로 왜곡된 근대화를 겪었기 때문으로 평가할 수 있다.
아울러 해방이후 6․25전쟁과 급격한 산업화의 과정에서 겪은 전통문화의 단절과 폄하현상과 아울러 무분별한 외래문화의 유입 등으로 인한, 전통의 계승발전의 일시적인 부재현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일반인들의 경제적인 여유와 국제사회에서의 독자성있는 제품개발의 필요성으로 인하여 우리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과 더불어 우리의 전통적인 가치관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 각 분야에서 되살아나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연구가 과거의 식민사관에 의한 것이 아닌 새로운 주체적인 관점에 의해 시작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상이다. (이것은 기업의 경우 지금, 가장 중요한 딜레마로서, 경제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일본에 필적하기를 원하면서, 반면 1910년부터 1945년의 일본 침략기간동안 강제적으로 그들의 문화를 강요하였던 일본과의 차별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전통에 관한 현상 : 타자화된 시선
19세기 말 전통사회의 붕괴에 따라 그에 기반해 있던 전통조형 역시 소멸되어갔다. 뒤이은 일제 식민지화는 민족공예의 맥을 단절시키고 조형의 존재방식을 결정적으로 왜곡시킨 계기가 되었다. 문화통치의 미명하에 마련된 `조선미술전람회'(鮮展, 1921)는 `공예부'를 두고, 당시 민족적 지지기반을 상실한 조선의 공예가들을 흡수하였으며, 이를 통해 조선의 전통공예는 일본인들의 이국취미의 하나인 이른바 `조선색' 또는 `조선취미'에 부응하는 일본제국주의의 지방색 조형으로 전락되어갔다. 또한 해방과 동란 그 이후의 산업화의 과정에서 우리의 것을 발굴하여 계승 발전시킬 겨를도 없는 사이에 물밀듯이 유입되어온 서구화된 관점에 의해 우리의 것에 정당한 가치를 부여할 관심과 겨를이 없는 상황이 되어, 우리의 눈으로 우리 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일제의 강점과 이들에 의해 망쳐지기 이전의 우리 문화는 나름대로 일관되게 통합되어 있었고 따라서 전통적이었다. 그러나 일제와 6․25동란 그리고 산업화 과정에서 일단 파괴되고 해체당한 이후의 문화는, 더군다나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는 외래문화와 혼잡되어 통합되지 못하고 전통에 관한 한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통에 관한 현상은 아직까지도 통합되지 못하고 지금 단편적으로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1) 전통의 모사
전통형식은 박물관이나 문화재 도록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과거의 전통적인 조형물들은 살아남은 유물로서 골동품으로도, 그리고 대량생산된 복제품과 모방품으로도 존재한다. 그런 물건들은 고가의 것이든 아니면 값싼 것이든 간에, 나름대로 모두 우리의 전통에 대한 향수와 골동취향을 충족시켜주면서 우리의 생활공간에 완상용으로 놓여져 있거나, 실제 생활용품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2) 전통형식의 양식화와 응용
전통적인 조형요소의 양식화와 단순한 응용은 전통문화를 시각화하는 가장 손쉬운 1차적인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는 전통형식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와 단순 응용에 머무르는 것으로서, 대부분의 전문 디자이너들의 작업도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으며, 이러한 행위를 전통의 계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많다.
3) 전통제품의 기능성과 현대 생활에의 응용
전통제품중 일부분은, 우리의 생활이 서구화되었다손 치더라도, 우리의 근저에 남아있는 생활습성과 결부되어 살아있으며 실생활에 응용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의 생산방식과 형식은 변질되었어도 그것의 기능이나 용도는 현대생활에 적합하게 변용되어 아직까지 살아있으며 지속적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이들은 우리의 생활방식중 변화되지 않는 몇가지 요소들과 결부되는 것들이다.
4) 한국형 디자인과 시대적 전통
전통을 단순한 복고적 수용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창조되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이것은 대체적으로 한국인의 생활패턴에 잔존하고 있는 과거의 관습적인 생활방식을 해결하기 위해 제품의 속성을 현대적인 기술로 해결하는 한국형 디자인과, 한국인의 정신과 철학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디자인을 하므로서 이를 세계시장에 국제적인 제품으로 내보이는 한국적 디자인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오늘날 변화해가는 한국인들의 시대적인 생활양식과 미의식에 철저히 바탕한 접근으로서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내기 위한 전제가 된다.
1-2.종합
☺역사의 단절과 독창성 부재
앞의 현대화 과정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 전통문화와 조형미에서, 독창적이고 소중한 것들이 일제의 침탈, 동족간의 전쟁 그리고 비판없이 빠른 시간에 진행되어 온 산업화 과정에서 역사의 단절을 가져왔고 그 맥은 끊어져버리고 말았다. 특히 현대화의 과정에서 우리의 독자성과 역사성이 서구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서구의 모더니즘을 비롯한 각종 첨단 미술사조의 외형적 요소만 받아들이기에 급급하였기에, 그 결과는 마침내 오늘의 조형세계에 형식주의의 만연과 독창성 부재와 전통의 소멸같은 부정적인 환경을 도래케 한 것이다.
☺국가경쟁력의 핵심으로서의 디자인
지금은 탈이념에 의한 동서냉전의 체제가 종식되고, 세계 각국은 실리 경제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모하면서, 국가와 지역간의 경제전쟁은 날로 치열해가고 있으며, 디자인을 국가경쟁력의 주요수단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불행한 과거의 역사속에서 뒤늦게 나마 받아들여진 현대 디자인의 경우, 이제는 우리의 정체성 발견과 이를 통한, 독자성있는 디자인을 해야겠다는 자의식이 형성되게 되었고,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디자인의 세계화 전략을 수립하여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필요성과 아울러, 이것은 다시 전통적인 가치관의 확립과 우리의 문화적인 뿌리를 갖고 독자적인 디자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으며, 디자인을 비단 경제 경영의 핵심수단만이 아닌 문화적인 표상으로서의 의미도 파악하게 되었다.
☺정체성을 위한 다양하고 깊은 총체적인 연구와 시험에 대한 필요성
최근의 정체성을 갖는 우리 고유의 조형과 디자인을 찾으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일천함, 지식체계의 부족함, 근시안적인 관점 그리고 관심의 부족 등으로 인하여 전통적인 우리의 미와 그 기본 개념에 관한 사항들이 통합적으로 연구, 표현되지 못하고 극히 단편적이고 피상적으로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될 점이, 디자인 문화는 총체적이라는 점으로서 디자인 결과물이 나오기 위해서는 문화전반에 걸친 소양과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의 의견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문화전반에 걸친 우리의 정체성과 이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넓고 깊은 연구와 다양한 시험이 이뤄지면서, 문화의 표상으로서의 디자인과의 접목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디자인은 문화의 척도이며, 국제화된 미래사회에서 국부를 창출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2.한국적 디자인의 미래 방향
2-1.한국적 디자인
☻고유한 미의 표출은 한 민족의 자연, 사상, 경제, 사회관 및 자주적 정신이 바탕임
한 나라의 예술이나 미는 그 나라의 자연, 사상, 가치, 사회환경에 영향을 받아 한사람, 혹은 집단 예술인에 의해 창조된다. 그리고 문화나 예술은 그 생산과 감상에서 민족성, 시대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간 한국의 문화는 많은 시각의 굴절을 경험했다. 그 하나는 서구식 선진문화의 열풍에 휩싸여 개방과 보수의 시각에서 우리문화를 본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개방의 입장에서는 우리 전통문화는 너무나 후진국의 유산으로 보일 수도 있었고 반면에, 국수주의자나 애국애족의 입장에서는 우리문화는 무조건 훌륭하다 할 수 있다. 이들은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낭만주의적인 발상-실은 괴테(J.W.von Goethe)는 `가장 민족주의적인 문화는 모든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문화에 있다'라고 하였다-을 한다. 또 다른 요인은 독립주의적인 시각에서 본 우리 문화와 예술의 찬양론으로서, 이들은 특히 민족문화의 전통성과 자주성, 우수성 등이 강조되곤 한다.
중요한 것은 한 민족의 문화현상이나 미의 표출은 민족의 자연, 사상, 경제, 사회관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우리의 전통적인 문화나 미적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통문화의 생산현장에 대한 진솔한 관심, 즉 우리 민족이 전통적으로 어떤 자연관, 우주관, 사회관을 가져, 어떤 예술을 산출시켰는가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예술이나 창조는 `자주적 정신', `무한한 활동적 정신'이 그 환경과 제약속에서 형태를 얻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모방이든 응용이건 변용이건 그곳에 어떤 자주적 정신이 보이면 창조적 정신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자주적 정신이 보인다 하더라도 기존 것에 대한 가치적 향상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우리의 미적 특성이 무엇이었는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자연, 사상, (생활)가치관, 사회관 등과 함께 조형적 특질의 차별성이 규명되고 이와함께 이들의 우수성이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적'이란 '한국다운, 한국과 같은, 한국의 성질을 띤'을 의미함
우리가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는 '한국적'이란 의미를 김영기(15)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논의가 타당성이 있으므로 그의 정의를 빌릴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적"이란 말은 한국의 디자인을 말할때 가장 많이 쓰이는 용어이다. 그런데 "한국적" 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우리는 "한국의" 라는 말과 구별하여 사용하여야 한다. 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적어도 (的)이란 명사 밑에 붙어 [..임], [..인], [...와 같은] 또는 [그런성질을 띤], [그런 상태를 이룬]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국적이란 뜻은 [한국에 관한 모양], [한국다운 상태]로 기술되어 있다. 그러므로 한국인이 아닌 다른날 사람이 디자인을 하였을 때 그에게서 "한국다운", "한국과 같은", 한국의 성질을 띤", "한국의 머양을 닮은 상태" 의 디자인에 대하여 "한국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
그런데 오늘날 한국인들 사이에 당신은 한국적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흔히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 스스로에 대하여 한국인의 성질을 잃어가고 있거나 타인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적디자인은 민족의 정체성 발견과 아울러 이를 동시대에 적합한조형체계로 해야 함
전통성에 바탕을 둔 각 지역의 고유한 디자인에 관한 숙제는 간단치가 않다. 국가적 특성을 디자인에 있어서 검출해내는 것은 색채선호나 정���화된 형태 등의 리스트 정도를 만들어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바탕에 깔려있는 그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동시대에 적합한 국제적인 관점에서의 조형체계를 확립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를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조형가, 디자이너들의 경우에도 알고 있어, 본 연구를 의한 설문조사에서 `한국적'이란 의미에 대해서 정의하여 기술하여 달라고 부탁하였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들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 가시적인 조형요소들보다 근원적인 한국적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것
- 문화에 대한 가치관이 반영된 것
- 한국의 모든 것에 관한 총체적인 집합체
- 우리민족의 모든 의식주 문화
- 문화적인 ���소와 사회적인 요소 + 전통성
- 전통미의 장점이 연장되어 현재에 표출되거나 재해석된 것
- 생활양식, 문화의 계승 및 현대적 재해석을 통한 실천화
- 1차적인 형상의 계승이 아니라 정신을 현대화
- 아시아의 것들과 차별화되는 우리만의 고유화된 조형과 세계인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절대미감을 가진 것 등
위의 내용들 중에는 다분히 중복되는 의미도 있으나, 이들을 정리하면, `한국적'이라는 말은 그것의 피상적인 과거 시각적 요소의 반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다움'에 관한 정의가 먼저 정리되어야 할 것이며, 그렇게 하는 것이야 말로 한국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이러한 정의에 적절한 디자인물에 대한 개념과 시각적 요소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기술을 새롭게 도입하면 `한국적' 디자인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한국적디자인은 우리의 국민적 특성에서 출발될 수 있다. 만약 국가적 특징이 그 사회의 성인들 속에서 유통되고 지속되는 개성과 패턴이라고 한다면, 디자인에 있어 국가적 특성은 한 국가의 사람들에 내재된 특성이 사회적인 힘으로 물(物)에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적디자인은 한국적인 형식과 내용을 가진 디자인이라고 쉽게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보다 분석적으로 규명하기 위해서는 과연 `한국적'이라는 것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밝혀내어야 할 뿐 아니라, 한국적인 정체성이 특수성을 가진 한 민족의 고유한 원형이면서 그 원형이 지역적인 한계를 뛰어 넘는 세계적인 보편성을 띄어야 하는 것이다.
2-2.미래의 방향
☻세계는 단일한 공동체로 되어 감
금세기에 이룩한 기술의 혁신은 세계를 단일한 공동체로 만들어 가고 있다. 서구에서 출발한 산업화는 이제 서구뿐만 아니라 현대화를 지향하고 있는 제3세계에 이르기까지 보편적 생활양식을 유포시키며 문화적 차이를 사라져 가게 하고 있다. <코카콜라>나 <부루진>, <말보로> 담배는 이미 국제적인 생활양식으로서 세계 도처에 퍼져 보편화되어진지 오래이고, 디자인 원리에 있어서도 20세기 초엽의 기능주의적 디자인은 아직도 조형방법의 성전으로서 국제적인 조형언어로 자리를 잡고 있으며, 동세기 후반의 포스트모던 디자인운동 또한 전세계의 제품조형에 적지않은 영향력을 이제 행사하고 있다. 더우기 많은 사회학자들은 미래의 사회는 교통과 통신기술의 발달로 문화의 동질화 현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국가나 지역적으로 독특했던 문화와 생활양식은 앞으로 다른 지역의 다양한 문화와 혼합되어 유사해지는 요소가 늘어나고, 디자인 또한 이에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측된다.
다시 말하면 국제간의 관계에서 지배적인 움직임은 구별보다는 통합으로 전개되어가고, 미래에는 국가간에 문화적 차이가 적어짐에 따라, 그들의 국가적 전형을 형성하고 있는 전통적 제품을 제외하고는, 한 국가나 다른 국가의 전형적 이미지를 지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국가와 지역의 고유성은 잔존
그러나 풍토, 종교, 사상, 관습, 언어 등 지역의 독특한 삶의 자세를 형성시키는 지역적, 국민적 요인들로 인하여 국가와 지역의 고유한 특질들은 한편에 그대로 유지되고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전통적인 문화의 독자성은 인간과 지역의 삶이 유일하며, 나아가 구별되는 문화는 흥미와 생기를 ���러 일으키고, 인류를 발전시키는 창조의 원동력임을 감안할때 그대로 유지되고 발전될 수 있도록 존중되어야 한다.
또한 미래사회의 국제경쟁 사회에서 강력한 경쟁력의 수단이 되는 것은 결국 자국의 전통문화와 그에 바탕한 상품가치의 개발이며, 바로 여기에서 문화의 표상으로서 디자인은 그러한 상품가치를 담아내는 구체적인 그릇이 된다.
☻디자인은 국가의 정체성 확립에 중요한 요소
물건을 만드는 배경에는 그 나라나 민족의 전통과 문화가 있다. 문화가 없는 물건은 결코 성립될 수 없다. 물건을 수출한다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를 수출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의 제품을 사용하는 세계의 사람들은 그 제품을 통해서 한국문화를 접하게 되는 것이다. 어떠한 물건이 그 나라의 이미지를 만들어 버린다고도 할 수 있겠다. 앞으로는 기술적 수준이나 성능이 획일화되면 될수록 디자인의 의미는 더욱 커지게 된다. 디자인만이 그 나라의 아이덴티티를 명확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의 전 회장이었던 네덜란드 <글로벌 디자인>의 뢱 반 데 산데(L.Sande)가 `문화는 21세기에 세계적으로 중요한 필수품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발전의 배경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17~18세기는 자연자원으로 접근하는 것이 부의 척도였고, 19~20세기에는 신용과 통화조정 그리고 상품제조 능력을 통하여 부를 얻을 수 있고, 미래에는 국가적 특성이 무역자원이 될 것이다. 비록 처음에는 그의 평이 냉소적으로 들리지만, 그것밖에는 곧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문화는 진공상태에서 성장하지 않는다. 문화적 동질감의 표현이 어떠한 유용한 감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빨아들이는 강한 연결성과 같이 나아가야 하고 인식되어야 한다. 미카엘 포터(M.Porter)는 에서 그것에 대하여 `특성과 문화에서의 국가적인 차이는, 결코 세계적인 경쟁에 위협받지 않으며, 성공하는데 필수적이라고 판명된다'라고 말한다.
☻산업경쟁력의 핵심 : 전통문화에 바탕한 고유디자인
유럽 <포드>의 디자인 부회장이었던 우베 반센(U.Bahnsen)씨는 문화적 기준에 따른 차별화의 시야야말로 산업을 경쟁력있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동일성은 매우 큰 범위로 전개되었으며, 국가적 차이는 전적으로 파괴되었다. 그러나 어떤 지역적 특징들은 다시금 강하게 될 것이다. 작은 그룹의 소비자들에게 열망에 의해 필연화될 제품의 다양성은 조합하는 방법이나 대규모의 경제를 유지하려는 필요성을 창조할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다른 부분들에 응답하기 위한 융통성의 측면을 창조하여야 할 것이다'
미래사회의 디자인에서 세계화를 위해 그 지역의 전통문화에서 가능성의 실마리를 끌어내는 것은 당연하다. 문자 그대로 전통문화는 그 지역 디자인의 개성이며 다른 나라, 다른 지방에는 찾아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따라서 디자이너는 전통을 기초로 해서 새로운 디자인의 세계를 수립해야 하며, 그것은 전통이야 말로 한 나라의 역사를 지탱하고 있는 주춧돌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통을 무시하거나 경시하고는 디자인의 독자적인 아이덴티티를 갖기가 어려우며, 한 민족의 문화적인 특징을 나타낼 수도 없게 된다. 또한 전통은 민족을 결합하는 원리이며, 모든 문화창달의 토대를 이루기 때문�� 전통문화가 없는 디자인이란 그 기반이 매우 허약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이제 세계의 디자이너들은 그들의 작업을 통하여 그들 나름의 문화적 차별성을 부여하기 위한 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폭넓은 실험들을 전개하기 시작하고 있다. 예를 들어 파리의 레 아트리에 L.Atelies)의 <인터내셔널 스튜디오>에서는 최근의 프로젝트에서 불란서 프로덕트를 디자인하도록 실험했고, <크랜브룩 아트 아카데미>에서도 마찬가지로 미국을 위한 디자인을 전개토록 시도했다. 영국에서는 국영기관인 <스코트 개발 연구원. Scottish Development Agency>에서 디자인에 있어서 스코트스러움이란 무엇인가를 연구하였다.
☻차별 화된 조형특질의 구현은 고유한 정신이 바탕
차별 화된 우리 고유의 디자인과 조형특질을 창출하고 정립해 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제품조형의 형식적이고 시각적인 측면에서의 특성규명에 앞서 우리의 고유하고 독자적인 정신과 문화의 이해를 근간으로 출발하여야 한다. 예로 일본의 오밀조밀하고 섬세한 조형성, 독일의 단순하나 질서정연한 조형성, 이탈리아의 창조적이며 대범한 조형성,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부드럽고 유연한 조형성이 표출되고 있는 것은 그들의 풍토와 조형정신이 역사성 속에서 잘 표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역환경에 따른 풍토와 정신 및 사고형식 등에 바탕을 둔 전통문화의 이해는 차별화 된 디자인을 창출해 내는 기본이 된다고 볼 수 있다.
☻패러다임과 일치하는 정체성의 확보
앞의 사례연구에서 보았듯이 이제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되는데, 여기에서 정체성을 찾는다는 것이 지나치게 복고적이거나 우리의 입장과 특성만을 고집하는 국수 적인 자세를 취해서는 안 되는 것이, 오늘날과 같이 고도의 물질문명이 발달된 정보화 산업사회 속에서 복고적으로 머물 경우에는, 오히려 우리의 고유한 한국적인 정체성의 퇴보현상이 일어날 수 있으며, 국수 적으로 머물 경우에는 우리의 정체성의 폐쇄현상이 나타나 세계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워, 전체적으로는 세계의 조류에서 낙오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시대의 한국적 디자인 즉, 고유한 차별적 디자인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특수한 지역에서 나오는 풍토와 민족, 사고형식과 역사적 요인에 의해 형성되어온 고유한 전통문화를 토대로 우리의 지역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적 요인 즉, 국제화시대에 유포되고 있는 다양한 문화, 기술, 가치를 비교하여 기존 디자인의 지속성과 변함의 정도를 적절하게 선택, 이를 조화시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더 나가 한국적디자인이 세계적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지역적 독자성을 바탕으로 바람직한 개성과 인간성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세계적으로 유용한 가치가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
http://sohoartgallery.net/type6/board/board_view.php?num=248&view_no=602&code=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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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 형상 연구를 통한 한국 디자인 계발의 가능성 찾기
디자인은 문화를 의미하며 문화는 우리의 정체성을 대표한다.따라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변하지 않는 문화의 정체성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문화의 정체성은 오��동안 축적되어 온 변하지 않는 근거, “한국의 전통”이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한, 어떠한 디자이너가 될 것인가?” 나에관한근본적인질문에대한대답또한문화의정체성-한국의전통을아는것에서부터찾을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여기에서 전통은 글자그대로 역사적으로 내려온 사상, 관습, 행동 따위의 양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무의식적인 답습이 아닌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재평가된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전통을 발견하고 계발하는 것이야말로 문화의 정체성이자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 시켜 나가야 될 것인가? “전통은 디자이너 개인의 의도가 반영되어 좀 더 특징 있게 계발 되어야 하며, 그 과정은전통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진행되어야 한다.”
Jeon SeRan, SADI Communication Desgin 14th Graduation Exhibition
http://www.sadi.net/ge/cd/14th/html/jsr/jsr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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