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송의 일생
송■■. 참치를 좋아해서 꿈이 참치캔 공장이었다. (공장주 아님)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어보면 늘 그렇게 대답해 주위 어른들로부터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혹은 ‘그래도 애가 착하네’ 따위의 소리를 듣고 자랐다.
참치는 참치캔 모양대로 바다에 헤엄쳐 다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충격받은 ■■는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다. 바다에서 참치를 만나고 싶었다. 타고난 피지컬, 나름의 재능과 열망으로 반짝이는 두 눈은 어린이 수영단 코치의 눈에 띄었다. 우리 애가 수영 천재라는 소리에 넘어간 부모님의 열렬한 지지로 본격적인 선수 생활 시작. 나가는 대회마다 꾸준히 순위권에 들었다.
선수 시절 그가 가는 곳은 세 군데였다. 학교, 수영장, 집. 주말은 수영장, 집. 도통 다른 곳으로 샐 줄 모르는 그를 보며 어른들은 허허 웃었다. 크게 될 거야. ■■는, 크게 될 인재야. 과연 그럴까? 아무도 그를 몰랐다. 유약하고 경쟁을 싫어하는 성미라는 걸. 버티고 있다는 걸. ■■ 자신조차 몰랐다.
끝장은 벼���처럼 찾아왔다. 매년 출전하던 대회에서 과호흡으로 쓰러진 이후 물 공포증이 생긴다. 모두가 그만두는 이유를 물었고 부모님은 다그쳤지만 ■■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차마 물이 무섭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길을 가다가 우뚝 멈춰 설 때가 많았다. 수영장이 아닌 길에서 서성이는 자신이 이상했다. 뭍의 공기는 조금 탄 호두의 냄새가 났다. ■■는 자신이, 마치 아무렇게나 토막 내 던져버린 생선 같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다. 아침마다 떠버리는 눈을, 아직도 시야 끝에서 어른거리는 수영장의 물그림자를, 받지 못한 메달과 이미 받은 메달을, 물에 내던지고 싶은 자신과 그럼에도 던져버리지 못하는 자신을, 뱃속에 뚫린 구멍을, 터진 호흡을, 어떻게 메꿔야 할지, 아는 것이 없었다.
전환점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지내는 아들을 보다 못한 아버지가 자신의 요리 학원에 등원시키면서 찾아왔다. 억지로 나간 건 첫날뿐이었다. ■■는 주방의 호흡이 마음에 들었고, 금세 요리에 푹 빠졌다. 그때부터 ■■의 인생은 살만했다. 전문대 졸업과 동시에 취직자리가 정해져 출근한 아침, 주방의 오븐이 폭발. ■■는 사망해 기사에 이름이 실린다.
4 notes
·
View notes
Text
참치캔을 따는 연습
어렸을 적엔 허무맹랑한 공상에 빠져 살았다. 그런 일이라도 해야 했다. 멋진 모험을 하거나, 멋진 자신이 되어야 했다. 크고 나서는 하나씩 포기했다. 바라는 일을 멈추고 노력을 그만뒀다.
나는 ���구에 떠다니는 티끌이다. 학교에서, 회사에서, 속한 공동체의 닦이지 않는 얼룩이었고, 집안의 못된 구멍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내 하찮은 기억력으로는 겨우 일주일 전에 먹은 점심이 뭐였는지도 가물가물하다. 처음엔 발이 걸려서, 그다음에 무릎이 꺾이고, 팔꿈치가 부딪히고, 종국엔 턱까지 깨지겠지만. 돌아보면 그냥 ‘넘어진’ 것이다. 바닥에 쓸린 상처만이 흉터로 남는다. 뭐에 발이 걸렸는지는 기억해내려 애써봐도 쉽지 않다.
2 notes
·
View notes
Text
181010
누군가 한없이 총을 장전하고 있다. 혹은 라이터에 수없이 점화를 한다. 혹은 가위를 철컥거리거나 재채기를 한다. 그걸 무력하게 듣고 있는 기분이다.
내 고민은 내 세계에만 국한된 것이라 더 치열히 사는 친구들에게는 말할 수가 없다. 힘겹게 버티는 등에 내 짐까지 얹어줄 수는 없는 일이다. 거기다 세속적 눈으로 보면 내가 겪은 일은 그저, 아주 하찮은, 얽매여봤자 인생에 별 도움도 안 될, 후 불면 날아갈 먼지 같은 것이다.
어제는 사건의 전말을 전부 알고 있는 B가 새벽까지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매일 깐족거려 내가 막 부르던 사람인데 이럴 때면 나이 차를 실감한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겨우 세 살 차이다. 그냥 B가 좋은 사람인 거겠지. 목소리가 듣기 좋은 편이라 그가 주절대는 소리에 기대어 있었다. 그는 어제 온종일 내게 힘내라고 했다. 힘내. 힘내, A.
정말 한 치 앞도 모르겠다.
7 notes
·
View notes
Text
신은 우리를 구하지 못해 /03
중간고사와 함께 벚꽃도 졌다. 요한은 일요일에 성실히 문제집 푸는 걸 그만뒀다. 대신 밖으로 나가 플라타너스가 늘어선 가로수 길을 걷고, 가끔 근처 공원 분수에 가서 동전을 던졌다. 우리가 손을 잡고 입을 맞춘 건 단지 실수였다. 그냥, 어쩌다 본 그 애의 손목이 매끈해서, 내 속눈썹이 길어서, 마침 길에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따사롭고 바람이 살랑여서. 누가 먼저 손을 잡고 먼저 눈을 감았더라? 정신 차릴 새가 없었다. 처음은 곧 두 번째로, 두 번은 어느새 스무 번이 되었다.
요한은 온실에서 자랐다. 3대 째 기독교를 믿는 집안에, 성적과 품행을 대단히 중시하는 그의 부모님은 고등학생이나 된 자식의 핸드폰에 위치 추적 앱을 깔고 어쩌다 한 번 외출하면 다섯 시를 통금으로 두었다. 그래서 PC방 같은 곳은 꿈도 못 꾼다고 했다. 가끔 누군가 세심히 다듬어 세워 놓은 조각 같다고 생각했는데. 조각상이 아니라 화초였다. 너무 자주 주는 물에 숨이 막혀도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우리는 우연히 맞게 된 이 일탈이 기꺼웠다. 그러나 입을 맞춘 숫자가 셀 수 없어지고, 학교에서나 교회에서나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붙어있던 여름 문턱의 어느 날. 변화는 갑작스러웠다. 다가가는 나를 피해 요한이 고개를 홱 돌려버린 것이다. 그런 거절은 처음이라 당황한 내게 그가 단호히 못을 박았다.
안돼. 왜? ……일요일이잖아.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나왔다.
그럼 평일에는 되고?
요한은 어깨를 한 번 떨었을 뿐 여전히 내 쪽은 쳐다보지 않았다.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냥 거절도 아니고, 이유로 일요일을 들먹인 게 황당하고 불쾌해서 생각했던 것보다 말이 세게 나갔다.
일요일만 신실한 이성애자인 척하면, 면죄부라도 받는대?
요한의 고개가 정면을 향했다. 처음 보는, 이를 악문 얼굴로 내 어깨를 확 밀쳤다. 등에 철제 난간이 세게 부딪혔다.
그냥 지나가는 감정이야. 뭐? ……그럴 수 있다고 그랬어. 아직 어리니까 헷갈릴 수 있다고…
눈앞이 캄캄해지고 뒤통수가 시큰하게 당겨왔다. 누구한테 말했냐고 따져 묻는 내게 요한은 네 이름은 말 안 했으니까 걱정 말라고 소리 질렀다. 아니야. 나한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
그럼 우리가 했던 건 뭐야. …….
네가 속삭였던 건 뭐였어. 그냥 헷갈려서, 잠깐 머리가 회까닥 돌아서 그랬냐? 요한은 끝내 울음이 터지고야 만 내 얼굴을 외면했다. 나는 바로 앞이 낭떠러지인 걸 알면서 발을 내딛는 기분으로, 할 수 있는 말 중 가장 비참한 것을 내뱉었다.
나 좋아한다며.
잠시 질끈 감았던 눈을 떴을 때 요한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진 뒤였다. 너무 참담해서 죽고 싶었다.
4 notes
·
View notes
Text
신은 우리를 구하지 못해 /02
요한을 만난 건 중간고사와 함께 벚꽃이 한창이던, 땡땡이가 몸에 착 붙은 4월 무렵. 거의 지정석처럼 쓰던 창가 자리에 누가 먼저 앉아 있었다. 내 또래로 보이는 그 남자애는 옆에 문제집 두세 권을 쌓아두고 수학 문제를 착착 풀었다. 거기가 제일 전망이 좋은 자리인데 자리 아깝게.
괜한 호승심이 들어 널려있는 게 의자인 곳에서 굳이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자세를 고치는 척 의자를 옆으로 끌어 바짝 붙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걔는 고개 한 번 들지 않았다. 자세만큼 반듯한 글씨로 쓰던 수식을 이어나갔을 뿐이다. 덕분에 한풀 꺾여서 턱을 괴고 옆의 문제집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런데 거기 학교랑 이름이 쓰여 있었다. A고 김요한, 문제집으로 봐서는 나랑 같은 학년. 마음이 조금 좁아졌다. 주머니를 뒤졌더니 어제 친구가 던져줬던 새콤달콤이 잡힌다.
먹을래? ……. 나도 거기 일 학년인데. 몇 반이야? 난 삼 반. …….
망했다. 너무 대뜸 던졌어. 거기다 하나도 안 멋졌어. 복숭아가 그려진 분홍색 포장지가 나만큼 부끄럽게 보여 철수하려던 찰나, 그가 새콤달콤을 입에 까 넣고 물었다.
8반. 근데 너도 예배 땡땡이야?
이후 토요일이면 편의점에서 군것질거리를 사서 주머니에 챙기는 게 일과가 되었다. 엄마는 하루아침에 불평을 뚝 끊고 교회에 가는 내 변화에 감동한 것 같았다. 드디어 네가 정신을 차렸구나. 그 오해가 엄마를 부드럽고 상냥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나는 그저 웃어넘겼다.
매주 핸드폰이나 붙잡고 지루하게 보내던 두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걔가 하는 일은 문제집 풀다가 과자를 나눠 먹고 가끔 내 말에 건성으로 대답해주는 게 전부였어도.
4 notes
·
View notes
Text
4월과 5월의 일기
4월 XX일 마음이 며칠째 잔잔하다. 최근 나는 오랜 백수 생활을 청산하고 진로를 틀었다. 의외로 걱정했던 일은 하나도 ���어나지 않았다. 학교의 사람들은 모두 착하고 친절하다. 하지만 공부를 마치고 다시 사회에 나가면 사라질 잠깐의 평화라는 걸 잘 알고 있어서 가끔 울고 싶어진다.
4월 XX일 대학생 때처럼 설레고 신난다.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고, 부정적인 감정이 전부 사라져버린 것만 같다. 이런 게 대체 얼마 만이지? 심지어 열심히 살자는 마음까지 조금 들었다. 이런 내가 웃기다.
4월 XX일 기분이 너무 이상하다. 어제 느꼈던 들뜸과 설렘은 그대로인데, 거기에 불안과 혐오과 뒤섞여 혼란스럽다. 선생님이 나눠주신 초코바를 쪼개 먹으며 조금 나아지기만을 바랐다.
5월 XX일 앞으로의 진로나 수업에 관해 한 명씩 돌아가면서 선생님과 상담했다. (…) 선생님은 그게 중요하다고 했다. 재밌다고 느끼는 거. 그리고 학생 중에 ㅇ씨가 제일 열정적이에요. 첫날부터 질문도 적극적으로 해주셨고. 그래서 되게 기대가 많이 돼요. 아, 부담 드리려고 하는 말은 아니고요. (…) 그리고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 기획서, 친한 실무자분에게 한 번 보여줬었거든요. 오, 괜찮은데?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보기에도 되게 좋았어요. (…) 제일 기대되는 학생이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마음이 순수하게 벅차오르지 않는다. 나는 대학생 때도 열정적이고 좋은 학생이었지. 교수님의 칭찬과 신임 어린 눈빛에 벅찬 마음으로 더 열심히 했었다. 하지만 회사에 가서는? 다 망하지 않았나. 또 그렇게 될까 봐 마음에 파도가 인다.
5월 XX일 선생님이 수업 중간에 이런 얘기를 했다.
처음 신입으로 들어갔을 때, 팀에 이미 경력자들이 다 차 있어서 저는 작은 일만 했어요. 그래서 큰 프로젝트에 대한 갈증이 되게 컸거든요. 팀장님이 그게 마음이 쓰였나 봐요. 어느 날 너 이거 해볼래? 하고 일 하나를 떼 줬어요. 드디어 뭘 하는구나, 신나서 주말 출근까지 할 만큼 열심히 했더니 다음에는 중앙에 들어가는 컨텐츠 하나를 받았어요. 그런데 그게 운 좋게 잡지 한 면에 딱 실린 거예요. 신입인데. 너무 좋았었죠. 아직도 그 잡지 가지고 있어요. 하하.
신기할 만큼 오래 유지되던 마음의 평화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잡고 있던 마우스를 놓았다. 절전된 까만 모니터에 무엇도 이루지 못하고 퇴사한 내가 보였다. 나쁜 기억이 뒷목이 뻐근해질 만큼 한꺼번에 몰려와 아우성쳤다. 수업 중간에 울 수는 없어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 기온이 뚝 떨어져 추운 날이었는데도 얼른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난간에 기대 자살을 검색하고 이제는 익숙한,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문구를 보고 핸드폰을 던지고 싶었다. 당장 바닥에 눕고 싶은 마음으로 아주 천천히 걸어 나와 역 앞의 벤치에 털썩 앉았다. 엉덩이가 써늘해졌다. 세찬 바람에 온몸이 금세 얼었다. 문득 이 겨울이 너무 지겨워졌다.
핸드폰에 저장만 해두었던 상��� 선생님의 번호로 연락해 상담을 예약했다. 진단받고 일 년 만의 결심이다. 한 치 앞도 모르던 깜깜한 미래에 처음으로 깃발을 하나 꽂은 것이다. 과연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19 notes
·
View notes
Text
신은 우리를 구하지 못해 /01
나 교회 안 갈래.
운전대를 놓고 신호를 기다리던 엄마는 내 말에 눈을 홉떴다.
또 그런다. 타당한 이유야? 어디 얘기해 봐.
나는 입술을 먹었다. 하고 싶은 말은 뒷좌석을 다 채우도록 쌓여 있었지만 뱉으려면 고백을 먼저 해야 한다. 사실 당신 아들은 게이라고. 엄마는 콧방귀를 뀌었다.
거봐, 또 귀찮아서 그러지? 엄마가 누누이 말했잖아. 교회는 누가 대신 가 줄 수 있는 게 아니야. 천국에 너 대신 다른 사람 보낼 게 아니라면… 아 알았어, 그만해.
귀를 막고 짜증을 내자 엄마가 팍 상한 얼굴을 했다. 막상 저런 표정을 마주하면 무거운 자책감이 도끼처럼 가슴을 찍는다. 엄마가 틀어놓은 기독교 라디오 채널에서는 눈치도 없이 밝은 CCM이 흘러나왔다.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가령 초등학생 때 같은 반 남자애를 좋아한 일이라던가. 중학생 때 친구 따라 야구부에 들어갔다가 선배를 보고 사랑에 빠진 일 같은 것. 다른 애들한테는 안 그러는데, 걔랑만 있으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목 언저리가 간질간질 해지는 그런 걸, 울렁증이나 알레르기라고 의심하는 것들. 어려서 그게 뭔지 몰랐다기보다는 내가 남자고 걔도 남자인데, 그럼 내가 게이인가? 하는 의문을 어른들은 —심지어 지식인이나 어디 익명 상담소에 물어봐도— 어리니까 잠깐 헷갈릴 수 있단다, 하하하. 넌 분명 정상일 테니 걱정하지 말렴! 그렇게 가볍게 넘겼으니까. 하지만 지나고 보니 사랑이었는걸.
내가 나를 깨닫기까지 나는 아주 혼란했다. 당연한 상식이라 여겼던 견고한 성에 금이 가고, 은근히 자부했던 모���신앙은 쓰레기처럼 버려졌다. 마침내는 종교에 관련된 모든 것이 오전 예배가 끝나고 먹던 교회 국수만큼 질려버렸다.
고등학생이 되고 간이 커진 나는 예배를 빼먹기 시작했다. 청소년부에 가는 척 길을 빙 돌아 1층 교회 서점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어른 예배가 끝날 때면 얼른 2층으로 올라가 막 예배를 드리고 나온 척했다. 엄마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다 요한을 만난 건 중간고사와 벚꽃이 한창이던, 땡땡이가 몸에 착 붙은 4월 무렵.
11 notes
·
View notes
Text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나의 습성은 양치할 때도 드러났다. 큰 고민이 있는 날이면 닦은 곳을 닦고 또 닦다가 선홍색 거품을 뱉어내고 만다.
8 notes
·
View notes
Text
도차(陶車) 04-05
04 날고 기는 천재들 사이에서 죽어가던 나를 그가 살려냈다.
복학을 미루며 하루의 반은 술로, 나머지 반은 그림으로 보내던 휴학생 시절. 교내를 서성이다 들어간 도예과 전시에서 w를 처음 만났다. 평일 아침인 데다 졸전도 아니라서, 사람이라고는 앉아서 조는 스태프 한 명뿐이었다. 어쩐지 불쌍한 모양새라 슬쩍 깨웠더니 놀라서 퍼드덕 일어난다. 안내해 줄 수 있냐는 말에 그럼요, 고개를 끄덕이던 w. 갓 입학한 새내기처럼 반짝거리는 얼굴로 설명해주는 w. 조금 귀엽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마음이 기울어 있었다. 전시장을 한 바퀴 돈 우리는 같이 스태프 의자에 앉아 얘기를 나눴다. w가 종이컵에 타 온 인스턴트커피를 들고.
그럼 산디에서 도예로 전과한 거예요? 네. 근데 교수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거기 가서 뭐 먹고 살려고 그러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였다. 대학 원서 쓸 적에 담임도 그러지 않았던가. 회화과 말고 차라리 디자인과를 쓰는 게 어떠니. w는 활짝 웃으면서도 결연한 눈을 하고 말했다. 저는 후회 안 해요. 왜인지 그 모습이 나를 스스로 다독이게 했다.
그는 모습이 많았다. 꾸몄을 때와 편할 때가 아주 달랐고 말할 때와 가만히 웃을 때가 또 달랐다. 밖에서 만나는 말끔한 모습도, 작업실에서 흙투성이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모습도. 전부 그려서 그림으로 남기고 싶을 만큼 좋았다. 우리는 서로의 작업을 빛나게 할 아이디어를 자주 떠올려냈고, 그게 곧 둘을 쓸어 담는 힘이었다. 불안히 술렁이는 파도가 곧 내 인생이라고 체념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그랬다.
05 w의 말대로 머리카락 속을 헤집어 올리자 흉터가 보인다. 뒤통수부터 관자놀이 근처까지 길게 이어진 하나의 선. 종일 나를 베었던 선득한 현실감이 이번에는 멀리 달아났다. 내가 나에게서 아주 멀어졌다. 앞에 있는 거울은 누군가 나를 속여먹기 위해 그려둔 그림 같았다. 기분이 이상해져서 머리카락을 마구 흐트러트리고 얼른 소파로 가 앉았다. w는 바닥에 앉아 가계부를 쓰고 있었다. 얇은 티셔츠 위로 드러난 둥근 등에서 세월을 느꼈다. 구부리면 척추가 살짝 불거지던 그의 맨 등을 좋아했는데. 준비되지 않은 말이 팝콘처럼 툭 튀겨져 나왔다.
나 혼자 물레 위에서 뛰고 있는 것 같아.
w가 펜을 내려놓고 나를 돌아본다. 그는 영문 모르겠다는 웃음을 지었다. 일과로 잊었던 절망감이 다시 문을 두드린다. 무력하게 눈물이 떨어졌다. 울지 않으려고 종일 애썼던 것은 헛수고가 되었다.
숨 가쁘게 뛰어도 영원히 제자리일 거 아냐.
그게 너무 고통스러워. w는 소파 위로 올라와 나를 끌어안았다. 귓가에 가벼운 한숨이 스친다. 말을 고르고 있구나. 그의 등에 팔을 두르고 기다렸다. 따듯한 체온에 기대어 물먹은 마음도 말리고 싶었다. 그러나 w가 뱉은 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있잖아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네가 기억손실증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미 기울어진 나를 영영 무너트리는 말. 그를 힘껏 밀쳐내고 뒷걸음질로 도망쳤다. 만약 눈물을 그치게 하기 위한 충격 요법이라면 성공이다. 배신감으로 싸늘히 얼어붙어서 이제는 찔러 죽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며칠 전에 네가 물어봤거든. 왜 여태 안 도망갔냐고. 안 질리느냐고. ……. 그때는 차마 대답을 못 했는데.
일갈하듯 소리쳤다. 말하지 마. 그러나 결국 듣게 되리라는 걸,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도 소용없으리란 걸 직감으로 알았다. w는 그가 언제나 그랬듯 사근사근 봄볕처럼 속삭였다. 너는 언제까지나 내게 목매던 시절의 너로 남아 줄 테고,
나는 이제 사랑해달라고 구걸하지 않아도 되니까.
송곳 같은 밤. 삼백 호쯤 되는 캔버스 가득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던 고운 얼굴. 그 얼굴이 절벽 끝에 간신히 매달린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내며 웃는다. 나를 아득한 심해로 던져 넣는다. w의 팔이 얼어붙은 몸을 다시 감싸 안았다. 이번에는 밀쳐내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내가 물에 적셔 마구 뭉쳐놓은 휴지 덩어리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이마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미안해.
곧 내일이 올 거야.
9 notes
·
View notes
Text
도차(陶車) 02-03
02 나가자기에 버스를 탈 줄 알았는데 집 앞에 차가 세워져 있다. 앙증맞은 진녹색 허슬러. 이름은 봉봉이라고 했다. 사람이라도 칠까 무서워서 면허는 안 따겠다던 w는 여기저기 불법주차 된 차들을 잘도 피해 금세 대로로 나왔다.
우리 어디 가? 일하러. ……나 갤러리 안 잘렸어? 잘렸지. 그래도 관장이 너 워낙 좋아했잖아. 아직도 그림 들고 가면 꼭 받아 줘. 가끔 전시에도 한 두 점 끼워 주고.
남에게 나의 근황을 듣는 건 이상한 일이다. 묘묘한 침묵이 이어졌다. 차가 신호등에 걸리자 w는 핸들에서 뗀 왼손을 내 손 위로 덮는다. 불안할 때마다 손톱 물어뜯는 버릇을 고쳐주겠다고 생긴 습관이었다.
우리 카페 차렸다. 어? 저기 앞 골목에. 개업한 지는 삼 년 좀 넘었어.
카페는 둘의 로망이자 이리저리 그려보던 미래의 종착점이기도 했다. 입을 열기도 전에 w는 내가 할 질문을 알고 덧붙였다.
우리 작업실도 있어. 마음에 들 거야.
그가 장담한 만큼 카페는 근사했다. 소파며 쿠션, 테이블 위로 길게 내려온 펜던트 조명, 선반의 작은 소품까지 취향에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w는 약간 뿌듯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같이 골랐으니까 당연하지. 우리는 카운터 앞의 바 테이블에 앉아 그가 내린 커피를 한 잔씩 마셨다. 내가 모르는 일을 익히 해내는, 흙물 없이 깨끗한 w의 손이 서먹하다. 기억 너머에 존재할 그의 고생을 생각하자 나는 숨 쉬는 숨결마저 새삼스럽고 낯설어졌다.
오픈 준비가 끝나자 w는 작업실로 나를 데려갔다. 아주 넓지는 않아도 작업하기에는 충분했다. 여기가 네 자리고, 이쪽 물레가 내 자리. 중고지만 가마도 있어.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진부하게도 꿈이 아닐까 ���각했지만 분명 현실이었다. 내 그림을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촘촘히 쌓아 올린 익숙한 터치. 강하게 때린 빛 아래 흘러내리듯 묘사한 그림자. 테레빈과 린시드 오일을 많이 섞어 흘러내리게 만드는 특유의 방식. 그린 기억은 없지만 내 그림이다. 넋을 잃은 나를 W는 익숙하게 자리에 앉히고 팔레트를 건네주었다.
앉아서 편하게 작업 해. 이따 점심에만 좀 도와줘.
w가 나가자 잡다한 감상은 사라지고, 그림과 나만이 남았다. 캔버스 아래 널브러진 붓을 집어 들었다.
03 바쁜 시간이 지나가고 한가해진 오후에 w는 말려둔 그릇의 굽을 깎고 초벌을 구웠다. 그동안은 내가 카운터를 지켰다. 책을 읽다 지루해진 나는 커피 머신을 만져보고 식기를 구경했다. 이제 보니 대부분이 그의 작품이다. 어두운 조명 밑에서도 은은히 유백색 빛을 발하는 것이 그를 닮았다.
…우리 결혼도 못 했잖아.
혼잣말에 가깝게 중얼거린 것을 용케 듣고 w가 대꾸했다. 할까? 내가 그러자면 당장 내일이라도 할 사람처럼. 아니야. 짧은 대답을 간신히 쥐어짜 내고 그릇을 내려놓았다. 달그락 소리가 내 심장에서 난 것만 같다.
10 notes
·
View notes
Text
도차(陶車) 01
w가 나를 깨웠다. 일어나, 아침 먹자. 몽롱한 채로 식탁까지 이끌려 가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갤러리가 아닌 w의 오피스텔이다. 수도 없이 들락거린 곳인데 왜인지 눈에 걸리는 것들이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이상하네. 나 왜 여기서 잤지? 우리 같이 살아.
으응. 하품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물었다. 뭐라고? 그는 젓가락으로 접시의 두부를 반으로 나누며 말했다. 지금은 이천십칠 년이고 우리는 서른넷이야. 그의 눈은 아주 진지하고 목소리는 덤덤했다. 나는 목을 길게 뺐다가 이내 거북이처럼 움츠렸다.
칠 년 전에 교통사고가 나서 머리를 다쳤거든. 후유증으로 기억장애가 생겨서 하루가 지나면 전부 잊어버려. 먹은 음식, 만난 사람, 했던 말… 하하. 내가 잠이 덜 깼나… 그래도 다행이지, 나는 기억해줘서. 아니… 진짜?
w는 그저 웃는다. 밥 먹어. 식겠다. 세상이 천천히 기울어지고 정신이 허공을 유영한다. 나는 참사를 목격한 행인이자 시한부 선고를 받은 당사자였다. 마음이 빈 깍지처럼 으스러지는 것을 애써 모른 체했다. 눈물을 참기에는 그편이 나았다.
7 notes
·
View notes
Text
새해 최고 덕담
U: 다들 노력 없이 큰 성과를 이루십시오
나: 헐 오늘 들은 것중에 제일 좋아. 날로 먹는 거 최고…
+
나: 친구가 2X살이 된 걸 부정하고 있어
U: ㅋㅋㅋㅋㅋㅋㅋㅋ겨우 2X살 가지곸ㅋㅋㅋㅋㅋ
나: 근데 공감하는게 나는 18살 때부터 나이 먹는 게 별로였어
U: 난 7살 때부터
1 note
·
View note
Text
2017년 12월 20일
나의 감정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상황에 적합한 감정에 훈련되어 있으면 무엇이 나의 것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럽고 그 혼란이 우울의 원인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조언이었고 가끔은 그렇게 곁을 지나가는 말들이 평생의 내 삶을 한번에 요약해버리는 느낌이 들곤 한다. 잊어버렸던 저 말이 왜 오늘 다시 떠올랐을까. 아마도 혼란스러워서.
이것은 잠들기 전 써둔 토막 일기였다. 자고 일어나 다시 읽어보니 또 생각이 달라져 있다. 매 순간 나의 감정이 무엇인지 또렷하게 알아볼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강박이 아닌가, 하는 자문. 혼란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기보다 삶의 핵심으로 삼고 존중하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이미 존재하는 것을 뚜렷하게 알기에 그것을 행동에 그대로 옮기는 것보다, 무지를 앎으로 전환하는 계기로서 행동을 만드는 것.
34 notes
·
View notes
Text
망한 입시와 퇴사
-2016년 3월 20일 작은 규모. 그에 따라 필연적으로 체계 잡히지 않은 곳에서 고작 하나의 개인을 위해 무언가를 해 준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다.
내가 다녔던 입시 학원은, 부부였던 원장과 부원장이 애들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을 많이 했다. 인간말종이라고 까지는 할 수 없지만, 약간의 인간성 결여와 이익만 좇는 모습이 우리를— 학원 다니던 아이들을 전부 질리게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그해 아이들의 입시는 전부 실패했다. 몇 명은 어찌어찌 대학생이 되고, 몇 명은 재수생이 된 우리가 치킨집에 모여 맥주를 나눴을 때 한 명이 말했다. 솔직히, 망했지. 우리 중에 대학 제대로 간 애 있냐?
입시는 망쳤지만, 그 덕에 어디 번듯한 4년제 대학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나는 잘 살았다. 고문이었던 입시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걸 실컷 하고 산다는 것이 좋았다. 재수를 생각지도 않았던 것은 그 개 같은 생활을 또 할 자신은 없었기 때문이다. 월화수목금토일, 해 뜰 때 학원에 들어가 밤이 되어서야 나올 수 있는 삶. 그 시절 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좀비나 로봇 같은 영혼 없는 무언가였지.
진학한 과도 예체능이었던 만큼 나는 좀비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나 자발적 좀비였다. 공모전 준비로 사흘 밤을 새우면서도 그게 재밌었다. 공부와 그리 친하지 않았던 내가 성적으로 톱을 달린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별명이 워커홀릭일 정도로 열심히 했다. 인생 중 가장 빛나는 열정적인 시기였다. 그러나 공평한 시간에 따라 입시가 끝난 것처럼 행복한 대학 생활도 곧 끝이 났다. 짧게 취업을 준비하고, 이력서를 처음 낸 곳에서 연락이 왔고, 면접 당일에 학교 앞에서 라멘을 먹다가 합격 통지를 받았다.
들어간 회사에서 첫 삼 개월간 나는 호기심 넘치는 신입이었다. 나는 전공에 따라 땡땡을 지원했지만 내가 배치된 곳은 빵빵이었다. 원래 신입은 몇 개월 정도 빵빵을 하면서 업무를 익힌 뒤 땡땡팀에 배치된다고 했다. 순진하게도 나는 그걸 정말 믿었다. 그리고 일했다. 대학생 때부터 타올라 아직 꺼지지 않은 열정으로 회사의 슈퍼루키가 되겠다고 덤볐다. 그러나 사회는 만만하지 않았고, 적성도 아닌 업무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자 불길은 점점 꺼졌다. 아래는 내가 그 무렵 쓴 일기의 일부다.
“물론 우리 회사의 대표님이 그런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표님이 처음에 해줬던 말들을 신뢰했다. 다른 회사의 친구들만큼, 포트폴리오 쌓을 수 있게 해 줄 거라고. 거짓말을 했다는 게 아니다. 대표님이 아무리 해주고 싶다고 해도 실제로 그렇게 해주기는 어렵다는 거지. 돈을 내준 학원에서도 그랬는데, 무엇보다 이익을 우선해야 하는 회사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해 줄 만큼 해 주셨지만….
뒷심 약한 성격도 작용했다. 입시생일 때도 처음엔 정말 열심히 했지만 갈수록 풀어졌다. 빡센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게 일상이 되는 순간 나태해진다. 지금도. 매일 퇴근하고 카페에 가서 열한 시까지 작업하는 게 하나도 힘들지 않았는데 지금은… 너무 힘들다. 지쳐간다. 주말도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건 이렇게 많은데 전부 반납하고 온종일 이것에만 매달려 있는 게.”
시간은 계속 지나갔다. 그 사이 나는 경력 일 년을 채웠고, 연봉을 조금 올렸다. 회사를 그만둘지 말지 고민하면서도 결심하지 못한 건 아직 작게나마 남아있는 희망 때문이었다. 땡땡팀으로 옮기기만 한다면. 그럼 정말 좋을 텐데.
-2017년 7월 9일 퇴사한 지 벌써 2주가 넘어간다. 나는 끝내 땡땡팀으로 옮기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대표님이 한 말은 감언이설, 희망 고문, 개구라가 되고 말았다. 시간이 많은 만큼 나는 과거를 곱씹는다. 원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잊고 살았던 일들이 불쑥 살아나 내 뒤통수를 후려치고 지나간다. (중략) 나는 밤마다 서러워져 장마처럼 자주 울었다.
-2017년 11월 15일 나는 추진력 부재와 타고난 망설임으로 목숨을 부지했다. 내가 강단 있는 사람이었다면 진작 한강에 몸을 던졌을 것이다.
11 notes
·
View notes
Text
24
X가 쉼 없이 말했다.
끊임없이 그런 생각이 들어. 지금이 가장 죽기 좋은 나이다. 나는 실패할 테니까. 아빠의 성격을 영영 안고 엄마가 고스란히 물려준 인생을 살 테니까. 분명해. 그녀의 현재가 나의 미래야. 앞으로도 번 돈은 그저 스쳐 갈 것이고 집은 월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평생 불합리한 노동만 반복하다 어느새 노년을 맞겠지. 바라던 것은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한 채 골방에서 독거하다 비참하게 죽겠지. 만약 옥상에 올라가면, 나는 졸보니까, 비로소 오금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될 거야. 그래도 아주 보잘것없는 내 재능은 죽음으로 재포장 될 테고, 나는 영원히 스물네 살로 남을 수 있겠다.
15 notes
·
View notes
Text
고래
고래처럼 거대한 울음에 삼켜지는 것은 매일 밤 형이 되풀이하던 짓이었다.
*
하얗게 헐벗은 나무숲 사이에서 새벽을 맞이했다. 헤집어진 눈밭에 여명이 내려앉는다. 산 뒤로 떠오르는 해가 볏처럼 붉었다.
발밑에 아버지가 있다. 형의 손으로 죽이고 내 손으로 묻었다. 우리는 서둘러 산을 내려왔다.
*
어느 날 오랜만에 외출하고 돌아온 형은 왼쪽 뺨이 붉게 터져 있었다.
…아버지 만났어.
잠시 숨을 멈췄다. 사고를 억제하려 애썼다. 허사였다. 겨우 한 틈 여백을 태우고 자라난 불온한 것들은 제멋대로 가지를 뻗쳐가며 몸집을 키웠다. 박약한 추측들, 의심들, 사람이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차갑고 나쁜 생각들.
형의 까만 눈길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나는 태어난 것만으로도 벅찬, 언제든 어깨의 짐에 깔려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물어보는 말에 대꾸 않고 이불을 뒤집어쓰자 형은 밥상을 집어 던졌다. 불을 지피듯 분노가 내게 옮겨붙었다. 뒤엉켜 싸우던 끝에 형이 내 목을 졸랐다. 나는 발버둥 치는 대신 눈을 감았다. 최소한의 방어란 고작 그런 것이었다.
10 notes
·
View 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