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ckyandsavory - Tumblr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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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음기록2

내가 가진 것이 ‘운빨'이고, 사회적으로 정의롭지 않다고 말하면 기분나쁘다. 나의 노력이 부정당하는 것 같고, 괜히 죄의식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능력주의 사회에서 승리한 사람은 자신의 성취가 운에 의한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자신의 권위와 권력이 특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공의 원인에는 나의 부단한 노력만이 있을 뿐이며, 합당한 권리라고 확신한다.

지금 지구는 많이 아프다. 정확히는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가 아프다. 제6차 대멸종기(인위적 원인에 의한 동식물종 대량 급감)를 겪고 있다. 인류는 더이상 경쟁하는 능력을 따질 때가 아니다. 누가 누가 얼마나 아픈지 챙기고 함께 아파할 때다.

하지만 알다시피 인생은 결투가 아니다. 우리는 이기려고 살지 않는다.

오늘도 한국 사회가 지속되는 건 자의식 과잉된 소수의 경쟁력 때문이 아니다. 묵묵히 타자의 불안과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사랑의 능력자들 덕분이다.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전혀 평화롭지 않다. 전쟁은 사랑만큼이나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마찬가지로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잡식동물이다. 오늘날처럼 인간이 육식을 많이 하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지만, 고기, 생선, 계란, 우유를 아예 안 먹는 완전 채식주의자, 비건으로 사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다. 나는 자연인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살고 싶어서 평화를 꿈꾸고 채식을 하는 게 아니다. 이성적이고 성숙하게 살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다.

도대체 내가 이 사람이 어디서 뭘 먹는지까지 왜 알아야하지? 과잉 연결된 일상에 지친다.

역시 기술은 잘못이 없다. 그걸 활용하는 인간의 문제지.

비거니즘의 목적은 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것이다. 나의 도덕적 우월함을 증명하는 게 아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다른 동물에게 아무런 고통을 야기하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친환경이고 완벽한 비건이다. 겸허히 인정하되 격렬히 지향하자. 스스로 죄책감의 수렁에 빠지고, 또 서로를 빠뜨리는 것은 시간 낭비다. 우리는 그럴 자격도 여유도 없다. 이 시국에 누가 더 윤리적으로 순결한가를 겨루는 것만큼 인간중심적인 허세도 없다.

채식주의는 고기를 먹지 않아도 몸의 영양을 보충할 수 있다고 답한다. 여성주의는 남자라고 딱히 힘이 넘치지 않아도 된다고 답한다.

육식주의-가부장제의 고리타분한 관념을 대체할 새로운 남성성을 제시해야 한다. 인간적인 것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듯이 남자다운 것에 대한 재정의도 시급하다.

육식으로 남성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함부로 총칼을 뽑아드는 것이 남자답고 용감한 영웅담으로 미화되었다. 하지만 이제 평화가 명예로운 일이다.

고통이 돈으로 환산되는 과정에서 악의 근원에 대한 사유는 실종된다.

19세기까지만 해도 백인 식민주의자는 흑인 노예가 실제 다른 종에 속하는 동물인 것처럼 설명하는 의사 과학을 꽤나 진지하게 발전시켰던 것을 기억하자. 종차별은 인종차별의 연장선상에 쭉 있었으나 여지껏 이름이 없었을 뿐이다.

“잔인한 실험자가 한 입으로 두말하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인간과 다른 동물이 신체적으로 비슷하다면서 생체 해부의 과학적 타당성을 옹호하고, 곧바로 이어서 인간과 동물이 신체적으로 다르다면서 생체 해부의 도덕성을 옹호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그에게 유일한 논리적 대안은 자신이 다윈 이전의 구시대적 사람이거나 비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것 뿐이다.”

사람들이 고기를 먹는 이유는 사람들이 고기를 먹기 때문이다. 남들이 먹으니까 먹는다. 나는 가족이 먹으니까, 학교에서 주니까, 친구가 먹으니까, 고기를 먹었다. 만약 인육을 먹는 사회에서 태어났으면 인육도 먹었을 것이고, 고기를 안 먹는 사회에서 태어났으면 안 먹었을 것이다. 전자는 과거고, 후자는 미래다.

모든 외주화의 끝에는 자연이 있다. 오늘날 세계경제는 비인간 동물과 삼림, 화석연료 등 천연자원에 대한 착취 위에 서있다. 소, 돼지, 닭의 고통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석탄, 석유, 가스의 환경적 비용을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돌아갈 수 있는 구조다.

사랑은 결국 하나됨이다. 나눠진 것이 하나 됨으로써 온전해지는 일이다.

각자의 개별성과 존엄성을 인정하고, 관계를 설정하고, 상대를 배려하고, 역지사지하는 훈련을 한다. 나를 먼저 사랑하고 남을 사랑한다. 내가 온전하지 못하면, 남을 사랑할 수 없다. 성숙한 사랑은 주체적이고 독립적이며 조화롭다. 자유롭고 평등하다.

나를 낮추거나 남을 누르지 않는 방식으로, 종속되거나 지배하지 않는 방식으로 하나 되는 것이 사랑이다.

계몽이란 인류가 미성년기를 벗어나는 것이라 했다. 나는 오늘날 인류가 사춘기쯤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이성과 과학의 힘으로 머리 좀 컸다고 모부님한테 까불고 있다. 곧 땅을 치고 후회할 거다. 진정한 계몽이란 인류가 모든 지구 생명체와 성숙한 사랑을 하는 것이다.

“나는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 인권 보호에서 동물권 보호로 발전하기 위해 우리가 기억해야할 명제다. 생각하는 소수가 아닌 느끼는 모두에게 자유를 보장해야 지구도 살리고, 동물도 살리고, 나도 살릴 수 있다.

밑줄 친 부분이 더 많았는데 추려서 이만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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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음기록

당연하게 누렸던 일상을 그리워할수록, 그걸 지탱해왔던 기둥들의 무게가 새삼 느껴졌다. 우리는 약속, 규칙, 양보, 거래, 상호이해, 자제, 존중의 힘으로 배낭을 메고 낯선 도시로 떠날 수 있었고, 한밤중에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사먹을 수 있었다. 그 힘이 제도화 된 것이 법이다. 법이란 사람들 사이의 넘지 말아야 할'최서한의 선線’ 인 동시에 사람들이 서로에게 베풀어야 할 ‘최소한의 선善’ 이기도 하다.

공정하기만 하다면 독약이라도 기꺼이 들이켤 듯한 분위기가 이 사회에 형성되어 있는 듯하다.

정의, 역사, 진실, 섭리 … … 크고 아름다운 말일수록 백만가지 다른 뜻으로 쓰이기 마련이다.

법은 결국 한 시대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오래된 생각이다. 법은 오래전 사람들이 공유했던 생각을 토대로 만들어졌고, 지금 우리가 공유하는 생각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서로 공유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원래 어설프게 아는 사람들이 위험하다. 그리고 진짜 나쁜 건 알만큼 알면서도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사람들이다.

계약자유의 원칙이 신성불가침인 나라에 살고 싶은 사람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8세 어린이가 탄광에서 15시간씩 '적법하게’ 근로계약에 따라 노동하던 찰스 디킨스 시대의 영국으로 갈 일이다. 그런 이들 중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어본 이는 드물겠지만.

법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코만, 또는 뒷다리나 꼬리만 보지 말고 코끼리 전체를 체게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법은 평등하지 않다.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할지 모르지만, 법 자체는 평등하지 않다.

인간의 존엄성은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결적인 목적이며, 헌법을 정점으로 한 법질서는 모두 이 목적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내가 대한민국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 국가는 인간을 위한 도구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국가는 굶주리지도, 피 흘리지도 않는다. 굶주리고 피 흘리는 것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이다.

역사를 들먹이며 민족이나 국가같이 개개인간을 초월한 위대한 존재가 있고 개인은 이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것이 전체주의고 파시즘이다.

대체로 무엇이 엄청나게 중요하게 강조된다는 것은 그것이 엄청나게 위협받고 무시당해왔다는 반증일 때가 많다.

인간이 진짜로 존엄하긴 한가?

쓰레기 같은 인간, 개 같은 인간, 개만도 못한 인간, 살 가치가 없는 인간… … 뭔가 개가 기준인 것 같긴 한데 여하튼 인간은 다양하게 평가받고 있다.

짜증이 나더라도 인격자답게 참기 바란다. 교과서라는게 원래 그런 법이다. 좀더 풀어 설명하면, 인간은 이성에 바탕을 둔 자율적이고 윤리적인 인격의 주체이기 때문에 존엄하다는 얘기다.

이성 자율성 윤리성이 핵심 키워드라고 볼 수 있다.

칸트는 인간 존엄성의 근거를 이성에 의해 인도되는 도덕적 자율성에 두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독자적으로 양심에 따른 결정을 내릴 능력이 있는 존재이므로 그 자체로 목적으로서 존중되어야 하고, 목적을 위한 단순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신이 부여한 특성이든 진화의 결과이든, 모든 인간에게는 최소한 이성과 양심에 따른 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존엄하다는 것이고, 그러한 능력이 있음에도 법을 어긴 사람에게는 벌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고존엄'이란 말은 코미디다. 존엄이란 비교급이나 최상급을 허용하지 않는다. 더 존엄하고 최고로 존엄한 존재가 있다는 것은 그 외의 모두는 존엄하지 않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마치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 나오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는 말처럼.

인간들끼리 서로 인간이 존귀하다, 존엄하다 해주다보니 이를 자연법칙인 것처럼 착각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실체를 가지고 인간사회를 규율하게 되는 이른바 '상호주관적 실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칸트는 오히려 인간이 존엄하기 때문에 사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았다. 인간은 자율적 이성을 가졌기에 존엄한데, 그런 인간이 스스로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선택을 했다면 그의 행위에 걸맞은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그를 인간으로 존중하는 방법이라는 논리다.

'군중'의 분노는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을 느끼도록 진화했다.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동족 간 잔혹 행위, 친족 살해, 아동 성폭행 등 공동체의 존속과 발전을 위협하는 행위들에 대한 자동적인 거부감과 분노를 진화시켰다. 이 분노에 기초한 응보형은 여전히 범죄를 벌하는 근본이다. 그걸 부정하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태도다.

…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형제 폐지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한 가지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국가가 합법적으로 국민을 죽이는 사회에 살고 싶은가, 그렇지 않은가.

우선은 원칙의 문제다. 국가에 합법적으로 국민을 살해할 권한이 부여된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응보라는 공공의 목적을 위해 사형을 집행하듯이 공공복리를 목적으로 일부 국민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것을 고려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때 어떤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에 살고 싶은가. 우리는 고민해봐야 한다.

감정의 문제도 있다. 끔찍한 범죄에 대한 우리의 분노 감정이 사형을 정당화 한다면, 사형 집행에 대한 감정 역시 정확해야 한다. 불편한 것들은 무지의 베일 뒤에 가려두고 목소리만 높이는 것은 무책임하다.

우리는 우리 손으로 직접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다. 어디서 어떻게 집행하는지도 잘 모른다. 우리는 교수형을 집행할 때 목에 두꺼운 끈을 두른 사형수의 발밑 바닥이 갑자기 열리며 사형수의 경추가 분리되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끈에 대롱대롱 매달린 시신에서 무엇이 흘러나오고 입에서 무엇이 튀어나오는지 보지 못한다.

배부른 소리가 인간사회를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결핍이 변화를 낳는다. 모두가 현재에 만족하고 머무른다면 인간은 아직도 동굴 안에서 나뭇가지 모아 불 피우며 살고 있었을 것이다.

자유가 사회를 견인하되, 그 속도가 누군가를 낙오시켜 쓰러지게 만들지 않도록 평등이 제어하는 것. 무조건 달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직은 시기가 아니라면 잠시 멈출 줄도 아는 것, 어쩌면 그 망설임의 순간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어려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일지도 모르겠다.

법은 오히려 인간사회 속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가치들의 충돌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는 노력의 산물이다.

법은 종교도 아니고 이데올로기도 아니다. 법은 타협의 기술이다.

인간세상이란 나의 옳음에 동조하는 사람들로만 구성될 수 없다. 가치관도 취향도 몸도 마음도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도 유별나고 비루하고 불온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부딪히며 공존할 수밖에 없는 생태계인 것이다.

내가…내가 좋아서 형광펜 그어놓았던 부분을 그것도 엄청 추려서 쓰고 있었는데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재미있으니까 읽어보세요.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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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5

회사에서 탈출하고 싶다. 연말 까지는 일이 밀려서 퇴근도 제대로 못 했는데 지금은 무슨 일인지 잠시 한가한 기간. 일기랄 것도 없지만 그냥 뭐든 해보고자 켰는데 역시 쓸 말은 별로 없다. 쓰고 싶은 말은 많지만 쓸 수 없다는 게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내가 나의 친구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부분과 내면들이 조금씩이라도 늘어가기를 바란다.

최근에 거북이 걸음으로 엉금엉금 진도 빼던 책을 드디어 완독했다. 그나마 종이 책을 사서 볼 때엔 덜했는데, ebook으로 전향하고 나니 여러 책 뚜껑만 열었다 덮었다 하는 습관이 더 심해졌다. 끝까지 읽지도 않으면서 다른 책 기웃거리다보면 앞서 읽던 책을 어디까지 읽었는지 금세 잊곤 한다.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조금 덜 잊었을까? 북마크 기능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앞 뒤 맥락이 기억이 안 나다 보니 결국 기억나는 부분부터 더듬거리며 한참 앞으로 가게된다. 그렇게 다 못 읽은 책이 한 더미 쌓여있는데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데이터 조각들이라 실제 눈 앞에 난잡하게 늘어져 있지는 않다는 점일까. (보통 나는 읽다 만 책들을 책갈피에 끼워 독서용 소파 옆 사이드 테이블에 쌓아놓곤 한다. 최근엔 아이패드와 이북리더기가 차지했음.) 유명한 옛 문학들이 갖는 장점은 역자가 다양해 골라보거나 비교하며 볼 수 있다는 점인데,(가격도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이 책의 가장 인기있는 번역서는 내가 고른 책은 아니지만, 민음사 서적이다.

출판사에 꼽는 가장 유명한 구절은 1장의 비교적 앞 페이지에 나온다.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반짝일 필요도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장은 트위터에도 스크린샷을 업로드 했던 적 있다.

“논의에 임하는 사람은 감정에 좌우되지 않을 때 오직 논의만 생각하게 됩니다.”

“삶은 힘들고, 어렵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투쟁입니다.”

그 외에도 형광펜으로 줄 그었던 문장을 몇 적어보자면 (이것도 추린 것이다…)

“책은 어떻게든 몸에 적응해야 합니다. 과감하게 말하면 여성의 책은 남성의 책보다 짧고 함축적이며, 긴 시간 방해받지 않고 꾸준히 읽지 않아도 괜찮도록 구성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탐구해야 하니 횃불을 손에 단단히 잡아요. 무엇보다 당신 영혼의 심오함과 얄팍함, 허영과 관대함을 밝게 비춰야 합니다.”

“그녀에게 백 년을 더 주자. 자기만의 방과 연간 오백 파운드를 주자. 자기 마음을 이야기하게 하고 지금 쓴 것의 절반 쯤 빼버리게 하자. 그러면 머지않아 더 나은 책을 쓸 거야.”

“나는 책을 펼쳤습니다. 다시 남성의 책을 읽으니 즐거웠습니다. 여성의 글을 본 뒤에 읽으니 아주 직설적이고 솔직했습니다. 이는 자유로운 마음과 구속받지 않는 육신, 자기에 대한 확신을 의미했습니다. 영양 상태가 좋고 교육을 잘 받은 자유로운 마음, 한 번도 좌절되거나 반대에 부딪친 적이 없으며 태어날 때부터 원하는 방향으로 어디든 뻗어나갈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누려온 이 마음 앞에서 물질적인 행복을 느꼈습니다.”

“가난한 시인들은 요즘뿐만 아니라 과거 이백 년 동안에도 쥐꼬리만큼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바로 그겁니다.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에 달려 있습니다. 시는 지적 자유에 달려있지요. 여성은 늘 가난했습니다, 지난 이백 년 동안이 아니라 태초부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여가를 즐기고 세계의 미래나 과거를 사색하고 책을 꿈꾸며 길모퉁이를 서성이고 생각의 낚싯줄을 강물 솦에 깊이 드리울 만큼 충분한 돈을 여러분 스스로가 갖게 되기 바랍니다.”

“가끔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본질이 무엇인지 식별하기 어려운 형체 속에 머무는 듯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건드리면 무엇이든 고정되고 영원해집니다. 그것은 하루의 껍질이 울타리 밖으로 던져질 때 남는 것이고 우리의 과거와 사랑, 증오로부터 남는 것입니다.”

마치 이 시대를 살아본 것처럼 버지니아 울프는 이 시대에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예견한다. 고정적인 수입과 자신의 지친 하루를 보살필 공간을 갖는 것.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자기 자신, 혹은 이야기를 써내려 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비단 물질적인 것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지지또한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말.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가 작중에서 던진 “셰익스피어에게 누이가 있었다면 셰익스피어의 누이는 셰익스피어 같은 작가가 될 수 있었을까?” 란 질문이 갖는 많은 의미들이 나를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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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29

마지막으로 일기를 게재한 날짜가 4월 21일. 오늘은 8월 29일. 많은. 정말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하나하나 다 쓰자면 너무 길고 기록하지 않기에는 중요한 일들이 가득했다. 좋은 일도 있었고 생각 하면 머리카락이 빠질 정도로 나쁘고 슬픈, 나를 무너지게 하는 일들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을 잃었고 떠나보냈다. 어차피 그렇게 될 것이었다고 생각하기엔 제법 많이 좋아했었던.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다.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아도, 직접 닿지 않아도 그곳에는 분명히 잡아당기고, 잡아당겨지는 끈들이 있다. 그것을 잘라내는 일은 쉽고, 양 끝을 잡은 두 사람의 의지가 있다면 잘린 것을 다시 묶는 일도 가능하다.

문득 오늘을 지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것들을 어깨에 지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괴롭다면 내가 가진 것들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맞는걸까? 나는 언제나 나에게 질문을 한다. 질문을 하는 일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니지만 수많은 질문들은 언제나 나를 숨막히게 만드는 것 같아. 내가 느끼는 감정을 필요 이상으로 증폭시키고 나를 짓눌러. 나는 생각 하는 것을 멈추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 누구도 날 괴롭히지 않았는데 나는 언제나 괴롭다. 괴로운 것은 그만하고 싶다.

즐겁고 좋은 일을 쓰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나는 이곳에 괴로운 때에만 찾아온다. 괴로운 감정을 글로 쓰고나면 한결 낫다. 내가 어떤 때에 힘들었는지, 어떤 일로 힘들었는지 이 곳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굳이 좋지도 않았던 일들을 기록하는 것은 왜인지 잘 모르겠지만 자리를 종종 옮기기는 하지만 오랜시간 포기하지 않고 이어가는 것을 보면 나에게는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어떤 때에는 손으로 쓰고, 어떤 때에는 이렇게 인터넷에 기록한다. 여기 저기 써놓는 것을 보면 보관하고 싶은 기억은 아니지만 생각이 날때면 들추어 보고 싶은 정도의 중요함? 그게 정말 중요한건가? 봐. 또 쓸데없는 질문.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며 나이를 먹고 정말 어른이 되고 싶은지 잃어버린지가 너무 오래 되었다. 정처없이 시간이 가는대로 매일을 ���낸다. 하고 싶은 것도 없거니와 이제는 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꼭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는 정답이 아니지만 가끔은 목표가 있고 하고 싶은 일을 이루기 위해 달리는 사람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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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21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저 있었던 사실이나 내가 어떻게 느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대한 간단한 대화조차 나에게는 쉽지 않고 불안을 야기한다. 웃으면서 저 어려운 사람 아니에요 라고 말은 하지만 내 자신이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고 벽이 높은 존재라는 생각을 간혹 하곤 한다. 그 기저엔 기본적으로 내 자신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큰데 내가 택하는 방법은 언제나 나를 상처입히고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가 될 때가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갑작스런 이별을 고하거나, 주변을 정리하는 것은 나의 오랜 습관이다. 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내 깊이를 가늠하질 못해서 다른 사람의 발목을 잡는 것은 아닐까 항상 노심초사한다. 처음엔 괜찮다고 말해주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결국 날 비난하며 떠났다. 내가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고, 내 곁에 있으면 기운이 빨리고 자기까지 우울해진다고. 그래서 내 곁에는 남은 사람이 몇 없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노력한다. 항상 그런 사람이 되어있지는 않은지 불안해한다. 내 발 아래에 원을 그리고 그 원을 옮겨다닌다. 내가 믿을 수 없는건 나 자신이고 그런 날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다. 그런 삶을 살다 보니 이제는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거나 내게 행복하라고 하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지 못하는 서글픈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런걸 자기연민이라고 하나? 나는 자기연민에 빠져있는걸까?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엔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누군가가 날 자기연민에 빠진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그 시간을 지나와 이 자리에 서있는 것이 나인 것을 어쩌겠는가. 오랜시간 내곁에 있어준 다섯 손가락을 다 접지 못할 정도의 친구들은 긴시간 나의 불신을 견뎌낸 견고한 사람들이다. 그 친구들에게는 내가 무엇을 해도 갚지 못할 커다란 은이 있다고 생각하며 항상 지낸다. 그사람들이 있어서 나의 미성숙한 시기를 잘 이겨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주 어려웠지만 오늘 가까운 사람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했다. 내가 원하는 것. 나를 위로하고 싶다면 앞 뒤 맥락이 없어도 괜찮으니 그리고 정말 네가 괜찮게 생각한다면 나한테 괜찮다고 한마디 건네달라고 부탁했다. 누군가에게 한 겹 벗어던지고 말을 건네는 것은 정말로 얼마만이었는지. 말하면서도 떨려서 횡설수설 했지만 잘 전해졌는지는 모르겠다. 자신이 없다. 나는 대체로 이런 문장들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우리가 가까운 사이가 맞는지 의심한다. 사실은 이미 멀어졌는데 나 혼자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실 그런 생각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들리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건데 사실 알면서도 어렵다. 내가 싫으면 나와 대화하지 않겠지. 재미없고 기운빠지면 나한테 그렇다고 말하기보단 그냥 나를 피하겠지. 접점을 줄이겠지. 그러고 말면 되는데 구태여 일어나지 않은 일을 묻게된다. 나와 대화하는 것이 피곤하지는 않니? 스트레스 받지는 않니? 하고. 그 당시엔 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묻는건데 묻고 나면 항상 커다란 후회가 몰려온다. 물론 내가 언제나 이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마음이 잠들지 못하는 시기에는 이런 증상을 반복한다. 가끔 내게 되묻는다. 혹은 스스로 내 마음에게 속삭인다. 괜찮아.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

어제만 해도 날 감싸고 사랑해주기 아자아자 했는데 오늘은 또 이런 우울해보이는 글을 쓴다. 그런데 사실 단순히 '기분'만 놓고 보면 오늘보다 어제가 더 힘들고 우울했다. 오늘의 일기는 우울함의 호소라기보단 내가 나를 되돌아보고 이겨나가는 과정이 머릿속에 그려져서 손가락을 움직인다. 오늘은 운동 너무 하기 싫었는데 결국 이겨내고 운동부하까지 1 늘려서 해냈다. 이런 기능이 있는지 몰랐는데 그동안 내가 운동한 기록이 다 남아있어서 기록들과 내가 해낸 것을 보니 많이 뿌듯했다. 그러고나니 기분이 무척 좋아져서 요리도 하고 나 대견해 대견해 하며 즐겁게 옛날에 좋아하던 아이돌 영상을 보며 저녁과 밤을 보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일기가 아닌 글을 썼다. 사실 조금 엉망이었지만 되게 오래전부터 생각만 하다 아무래도 상태가 상태인지라 글을 쓰려고 시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얀 작업영역을 보고 있으면 머릿속 그것을 닮아 하얗게 물들었다. 하지만 오늘 이렇게 끝까지 쓰는데에 해냈으니까 그걸로도 잘 했다고 생각한다. 뿌옇게 안개가 껴 혼란만 가득했던 머릿속이 이제서야 정돈 된 느낌이 들어서 기쁘다. 이렇게 앞으로도 잘 해나갔음 좋겠다.

[stickyandsavory]

210420

몸의 변화를 직접 느끼는 것은 대단한 경험이다. 이렇게 꾸준히 운동이 이어졌었던 적이 없었는데 요즘은 제법 긴 기간 매일 조금씩 운동을 하고 있다. 길게 쉬어도 이틀 정도인 것같다. 뭐 대단한 운동을 하느냐 하면 사실 그런건 아니고 하루 15분정도 하는 것을 시작으로 지금은 30분을 조금 넘긴다! 15분.. 정말 숨만 쉬어도 지나가는 시간인데 그 시간을 몸을 움직이니 내 체력이 15분을 넘기질 못한다는게 처음엔 적잖게 충격적이었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오늘은 이거 한 번 더 해볼까? 오늘은 이거 한 세트 더 해볼까? 어제는 10초 버텼으니까 오늘은 15초 버텨보자. 하는 마인드로 하다보니까 진짜로 늘더라. 신기했다. 다 벗고 거울 앞에서 서본 적이 없어서 내 몸이 어떻게 변했는지 까지는 구석구석 살펴보지 못했지만 일단 다리 옆 라인이 조금 매끄럽고 단단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느낀 것 중에 가장 큰 변화는 아무래도 일 할때에 오래 서있다보니 항상 집에오면 허리 다리가 아파서 픽 쓰러져 누웠었는데 가장 최근 퇴근하고 나서는 생각보다 버틸만 해져서 바로 드러눕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눈에 보이게 나의 체력이 늘었다. 평상시엔 링피트 어드벤쳐 1~2스테이지 끝내고 10분 이하의 짧은 부위 운동 홈트 영상을 틀어놓고 하는 편인데 왜인지 오늘은 생각보다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링피트 20분 하고 링피트 안 할 때에 단독으로 하는 35분 전신 홈트영상까지 추가로 했다. 끝내고 나니까 너무 힘들었는데 정말 놀라웠다. 단독으로 해도 힘들어서 쩔쩔매던 영상이었는데 20분동안 먼저 운동을 한 후에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감격이었다. 그리고 항상 내전근이랑 하체 사이드 운동 너무 힘들어서 몇 번 들었다 놨다 하다가 포기했는데 처음으로 시간 꽉 채워서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었다. 나도 하면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속이 간지러웠다. 나는 스스로를 칭찬하는 일이 아직도 어색하지만 오늘이라면 마음껏 칭찬해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깨끗이 씻고나서 좋아하는 향수까지 뿌리니 제법 좋은 기분이었다. 따뜻해진 몸으로 침대에 누워서 그동안 읽고싶었던 책을 읽었는데 내용이 쉽지 않아서 좀처럼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익숙해지니 많이 넘겨서 40페이지 정도 읽은 것 같다. 그 후에는 영어공부를 잠깐 했다. 정말 어린애 수준의 영어지만 그것도 제법 많이 틀린다. 난 내가 영어 좀 하는 줄 알았지.... 쩝...

그리고 다큐멘터리도 봤다. 제목이 기억이 안나는데 이종격투기 우승 선수가 양 무릎에 부상을 입으면서 이 부상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수소문하던 차에 고대 로마의 검투사들의 유골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고대의 검투사들은 골밀도가 훨씬 높았고 그들은 콩과 보리를 주로 먹었다는 연구 결과로부터 주인공은 의문을 갖는다. 로마의 최고 강자들이 고기가 아닌 채소를 먹는다? 우리는 강해지기 위해선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배워왔는데. 그리고 채식주의자인 프로 운동선수들을 찾아 떠난다...로 시작해서 채식이 우리의 근육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실제로 육식이 우리를 건강하게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결과적으로 많은 운동선수들이 채식으로 식단을 변경하며 실제로 더 강한 강도의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기록으로 결과를 내었다..라는 뭐 그런 내용. 거���에 더해서 채식주의가 갖는 여러 의미중 하나인 동물보호 또한 빼놓지 않고 담아서 보는 내내 즐겁게 관람했다. 저녁 준비를 하면서 내일을 위해 제빵기에 식빵도 준비했다. 저번에 제빵기 종류가 지정된 레시피를 썼더니 식빵이 제대로 못 부풀고 결이 밀집된.... 그러니까 매우 압축식빵을 만들어버렸는데 물론 맛은 좋았다..다만 식빵을 주먹으로 주물러 놓은 그런 식감의 빵이었다... 한국어로 떠오르는 말은 없고 일본어로는 むっちり뭇찌리 한 식감이라고 한다. 오늘 구운 건 되게 잘 구워져서 기분이 좋았다. 아직 먹어본 건 아니지만 구울 때에 나는 냄새가 끝내줬으니까 분명 맛도 있을 것이다. 오늘 연어크림치즈 발라서 한 조각 먹고 마지막 한 조각 남아있는 튼튼한 식빵(예정이었던 것)은 내일 아침에 먹어야지. 아 그러고보니 밀크티도 냉침해 놓고 건망고 썰어서 그릭요거트에 절여놨다. 맛있는 걸 많이 만들어 놨으니 이틀정도는 풍족하게 살 것 같다.

새삼스러운 넋두리지만 난 여전히 내 우울이 버거워서 나를 떠나면 어쩌지? 내가 옆에 두기 별로인 사람이면 어쩌지? 하는 생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진 못한 것 같다. 여전히 자주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도 예전보단 많이 나아진 것 같다. 이젠 그런 불안이 들어도 어쩌지? 보단 어쩌겠어.. 가 이긴다. 이런 나여도 십년이 넘게 친구인 사람들이 날 곁에 가까이 두고 마음을 나눠주는 것을 보면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타이르고 응원하기로 했다. 많이 외롭고 쓸쓸하지만 나의 고독과 외로움을 타인으로 채워서는 근본적인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오늘을 보내며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내 스스로를 감싸고 사랑해주기. 아자아자.

[stickyandsavory]

210419

이틀 후면 약이 끊긴다. 병원 예약일보다 하루치 약이 부족하다. 저번에도 이틀 전에 약 한 종류가 모자라서 조금 넉넉하게 처방해주시면 안되냐고 물었더니 약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원래 내원일보다 더 긴 기간치의 약을 처방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해서 세가지 약을 날짜에 맞추어 봉투에 다 따로 담아줄테니 이번엔 갯수가 맞는지 아닌지 알아보자는 말에 꾸역꾸역 오랜시간 기다려가며 타왔는데 역시 하루치가 부족했다. 이번에는 의사가 내 말을 들어줄까? 그랬으면 좋겠다. 병원에 가는 일은 고된 일이다. 진료는 5분도 안 되어서 끝나는데 진료를 위해 채혈하고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 수납하는데도 30분은 기다리는 편이고 약국에서도 길면 한 시간을 기다린다. 대체 무슨 시스템으로 돌아가면 병원이나 약국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는걸까. 심지어 나는 예약환자인데.

매일 기분을 기록하기로 다짐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많이 지친 까닭이다. 무엇에 지쳤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어서 더 갑갑하다. 적어도 원인이 확실하다면 정말 싫은 기분이 들 때에 그것을 탓하기라도 할 수 있지 않은가. 사람들? 나 자신? 그냥 모든 것에 있어 지치고 포기하게 되는 시기가 가끔 찾아오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인 것 같다. 그래서 그런 나의 기분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요즘의 나는 심히 여유가 부족하여 작은 말에도 상처입고 괴로워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혼자있는 것을 선택했다. 차라리 쓸 곳이 없으면 낫다. 누군가가 날 알아주길 바라고 인정해주길 바라는 욕구가 조금은 덜하다. 트위터를 쉬었던 며칠간은 그랬다.

어제는 많이 슬프고 힘들었던 경험을 해서 그동안 쌓인 것을 속에서부터 긁어내듯이 토했다. 토해내고 나니 조금 후련해졌나? 잘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그런 감정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최근의 나다. 슬픔이란 감정은 무엇일까. 나는 사실 이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수가 없어서 막연히 슬픔이라 부르고 있다. 벼랑 끝에 몰려서 주렁주렁 매달린 감정들은 밑으로 떨어지고 싶어한다. 그러면 편해지기라도 할까봐? 언제나라면 월요일 아침이 힘겨워 회사가기 싫다고 떼를 썼겠지만 오늘은 커다란 기계의 태엽이 되어 자기 맡은 바 다하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슬픔이 나를 덮쳐올 때 해야할 일이 기다리고 있는 것만큼 고마운 일이 없다. 사회의 부품이 되는 순간 만큼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나갈 수 있다. 문제는 부품이 인간으로서 기능하기 시작할 때 부터다. 오늘은 날씨가 정말 따뜻했고 햇볕도 좋았고. 바람도 선선해서 정말 좋은 날이었는데 집을 향해 걷는 길이 아름다워보이지 않았다. 아름다움을 인식하기에 내가 너무 초라했다. 울렁이는 속을 부여잡고 전철에 몸을 싣고 집을 향해 가는 길엔 요즘 자주 애용하는 명상 어플을 틀고 슬픔을 다스리는 법 따위의 강의를 들으며 집에 왔다. 일정 구간을 지나면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역까지는 사람이 엄청 없는 보통열차로 갈아타야해서 열차 안은 언제나 한 두명, 많아봐야 열 명 정도 타는데, 커다란 의자 한 구역을 나혼자 차지하고 앉아 슬픔을 다스리려고 애를 쓰고 있자니 (심지어 이 명상 어플은 영어밖에 지원을 안 해서 괜히 더 서글펐다. 한국말도 지원해준다면 더 좋은 어플일텐데.)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주변엔 아무도 없어서 나에게 주목하는 이가 없었다. 다행이었다. 나는 이 감각에 익숙하다.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공황이 온다. 우울이 실체화 하기 시작하면 몸의 통증으로 이어진다. 딱 두 역만 더 가면 되는데 당장이라도 바깥 공기를 마시지 않으면 토할 것 같아서 중간에 내려 한참을 실외 벤치에 앉아서 숨을 고르며 보냈다. 서글펐다. 앉은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시골 구석탱이라 이런 평일 대낮 플랫폼의 구석진 곳엔 사람이 없다. 다행이었다. 나는 왜이렇게 나약할까. 나는 건강한 사람이고 싶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싶다. 무던히 노력하며 사는 것 같은데 (거의 매일 운동을 한다는 건 제법 대단하지 않은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리고 오늘 나에겐 집에 돌아가면 해결해야할 문제가 남아있었다. 죽고싶을만큼 우울했다. 하지만 자주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죽고싶지 않다. 되도록이면 살고 싶고 이상적인 결과로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고 뭐 그렇다. 인간관계의 대부분은 외면해버리면 그만이다.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관계는 언제나 의도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어쩌겠는가.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이루는게 관계인걸 당연히 어느 누구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것이 마땅하다. 대신 우리는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멋진 시간을 갖을 수 있다. 그걸 해쳐나가는 것은 당사자들의 몫이다. (아마도 나를 포함한.)

나를 포함한 당사자들이 잘 이겨낸 덕분에 어찌 저찌 저녁에 걸쳐 쌓였던 문제와 고름을 닦아내고 나니 조금 상쾌해졌다. 기운이 나서 고기도 구워먹고 맛있는 고추장 찌개도 끓여먹었다. 사람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살아야 한다. 나는 대체로 그러지 못한 편이지만 그래도 내가 믿는 테두리 안의 사람들에게는 되도록이면 내 의견을 말해보려고 한다. 아무것도 시도해보지 않고 결국에 태우다보면 주변에 남는 것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되는 만큼은 내 안의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이전에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산산조각 흩어진 내 사회성을 줍고 다녀야 하는게 우선이다. 일기인걸까? 뭘 쓰고 싶었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은 새벽 다섯시가 넘었고 나는 너무 졸린대 좀처럼 잠에 들지 못해서 이렇게 넋두리를 쓰고 있다. 요즘은 어떻게 된게 모르겠는 일 투성이다. 나 자신, 내 감정, 내 기록. 그냥 모두 다.

[stickyandsavory]

왜 매일매일 슬플까. 종일 슬픈 것은 아니지만 하루에도 짧게, 혹은 몇 번이나 찾아오는 이 순간들을 견디기가 가끔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일찍 ���어나지 못한지 얼마나 지났지? 드러나는 상처가 아닌, 조금 더 안쪽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어가는 듯한 침울은 언제나 나의 곁에 머무른다. 그것이 나를 조금 더 보통의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만 같다. 나는 이제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로부터는 자유로워졌지만 그만큼 나에게 필요 이상으로 엄격해졌다. 그래서 자주 슬퍼진다. 누군가를 실망스럽게 했거나. 내가 정해놓은 일들을 해내지 못했을 때에 주로 그랬고 언제나 나의 최선이 옳지 못헀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떤 기분으로 하루를 보냈는지,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깨닫고 기록해 나아가는 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지금 이렇게 적어내려가고 있다. 의미가 있는 일이길 바란다.

균열이 없기를. 아직 준비되지 않은 나의 마음과 머릿속을 벌리고 들어오지 않기를. 그런 생각을 하며 사람을 사귄다. 정말 조그마한 조각에도 나의 틈이라는 것은 쉽게 벌어지니까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 실제로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만드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가벼운 관계가 너무 익숙해진걸지도 모른다. 보기 싫고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일은 잘라내면 그만이었다. 가장 쉬운 것은 포기하는 것이고 어려운 일은 붙잡은 손을 놓지 않고 서로 마주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많은 일들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것이 가장 참을 수 없다. 며칠 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이 생각난다. 타인의 기분을 능동적으로 책임지려고 하면 괴로운 것은 나인데도 나는 나보다 타인을 우위에 두곤 한다. 습관이다. 내가 가장 버리고 싶은 아주 오래된 습관이다. 내가 상처받고 힘든 건 다음 문제이다. 마음이 뾰족한 것을 고치고 싶다. 깊은 곳에서부터 자란 가시가 나를 찌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복잡한 모양새를 고치고 싶다. 궁색한 마음을 보듬어주고 싶다. 아주 가끔 누군가가 날 좋아하지 않아도. 싫어한대도. 아니라면 조금은 좋아해줬으면.

[stickyandsavory]

210409

레몬케이크를 구웠다. 맛있었다.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그냥 이 사람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에 내가 항상 긴장하고 위축되어있음을 자주 느끼게 된다. 좋았던 기억이 없으니까.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본인의 힘듦을 호소하던 사람이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기에, 그리고 사람이 여유가 없고 궁지에 몰리면 타인에게 어떻게 대하게 되는지 잘 알아서. 그래서 그때는 그랬겠구나. 하고 납득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이 나에게 모질었고 상처가 되었던 그 상황과 행동을 이해하고있는 내가 한없이 싫어진다. 이런 걸 연민이라고 부르나? 잘 모르겠다. 부정하고 싶지만 머리로는 왜 그런 사람이었는지 알아버리니까 완벽하게 엄마 탓을 하거나 엄마를 미워하지를 못한다. 붙어 살 때에는 정말로 안 맞는 사람이라고 느꼈고, 떨어져 사니 이젠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져 자주 엄마의 입에서 듣게 되는 보고 싶다는 말도 사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여태껏 멀찍이 서있던 사람이 갑자기 거리를 좁혀도 내 거리는 그대로인데 엄마는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 가족이니까. 그렇게 지지고 볶고 사는거지. 엄마가 나이가 들었는지 이젠 자주 내가 보고 싶다는 말에도 나는 제대로 대답하질 못하고 간접적인 회피로 답했다. 답답했겠지. 자기 심정을 어딘가엔 말하고 딸래미가 좀 들어줬음 했겠지만 난 그런 엄마랑 사이좋은 딸이 아니니까. 애기를 빨리 낳아 손주 얼굴 좀 보고 싶다는 말에도 내가 애를 낳고싶지 않은 이유를 잘라 말했더니 그래도 낳아보면 다를 거다. 자긴 우릴 키우면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우리가 소중하고 사랑하는 자식들이란 말에 나도 엄마가 소중하고 사랑한단 말을 차마 돌려주진 못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건 둘째 치고 그냥 입이 안 떨어졌다. 엄마의 입에서 듣는 생소한 말에 내가 돌려준 말이라고는 우리랑 지낸 시간이 괴롭지만은 않았다니 다행이란 말이었다. 내가 너무 모질고 못된걸까? 잘 모르겠다. 감정의 겉면이 말라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갈라지고 너덜너덜하게 탈락하는 기분을 참을 수가 없어서 오후는 멍하니 보냈다. 책을 읽으려고 했는데 집중이 잘 안 되어서 필사만 두어 장 하고 내려왔다. 마음이 무거우니까 당연한 것처럼 몸까지 무거워 운동하기가 너무 싫었는데 마음먹고 조금이나마 했다. 하고나니까 그나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슬프고 쓸쓸하다. 사람은 과거나 미래에 살면 안 된다. 지금을 바라보고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 생각하고 오늘을 즐겁게 지내는 일이 요즘의 나한테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 하는데 틈만나면 나는 자꾸 나의 과거를 돌아본다. 성숙하지 못했던 나와 자꾸만 마주하려고 한다. 내가 많은 것을 이겨내며 걸어온 길을 칭찬하고 내 자신을 아껴주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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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식물 - 이나가키 히데히로

보이지 않는 화학전

가지를 뻗고 잎이 우거지게 해서 서로 공간을 빼앗으려고 격렬하게 싸우는 식물들. 그러나 식물의 싸움은 지상에서 끝나지 않는다. 땅속에서는 더욱 격렬한 싸움이 벌어진다.

식물은 뿌리를 뻗으면서 뿌리에서 다양한 화학물질을 방출한다. 그럼으로써 주변의 식물에 피해를 주거나 다른 식물의 발아를 방해하며 다른 식물을 격퇴한다. 이처럼 화확물질을 통해 다른 식물의 성장을 억제하는 현상을 '타감작용' 혹은 '알렐로파시 allelopathy'라고 한다. 알렐로파시는 그리스어로 '서로 감수한다 allelo+pathy'라는 뜻의 조어다. 따라서 본래는 식물끼리뿐만 아니라 식물과 미생물 혹은 곤충끼리나 미생물끼리 등 모든 생물사이의 간섭 작용을 의미한다.

또한 다른 식물의 성장을 억제할 뿐만 아니라 성장을 촉진하는 효과를 일으키는 사례도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식물 간의 경쟁에서 어떤 식물이 방출하는 물질이 다른 식물의 성장을 억제할 때 쓰인다. 호두나무나 적송 아래에는 덤불이나 다른 나무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호두와 소나무의 뿌리에서 나오는 물질이 다른 식물의 성장을 막기 때문이다.

많든 적든 대부분 식물에는 타감작용을 하는 물질이 있다. 편안하게 보이는 식물의 세계에서도 매일 화학무기를 사용한 싸움이 벌어지는 셈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꽃의 정체

세상에서 가장 큰 꽃으로 알려진 라플레시아는 지름이 1미터나 되는 거대한 꽃이다. 19세기 영국 탐험대는 처음 라플레시아를 발견할 당시 식인 꽃이 아닐지 의심하기도 했다. 어쨌든 라플레시아의 꽃은 땅 위에서 빠끔히 입을 벌리고 핀다.

알고 보면 라플레시아는 기생식물이다. 포도과 식물의 뿌리에 기생하여 영양분을 빨아먹고 산다. 그리고 거기에서 직접 꽃을 피운다. 식물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은 종자를 남기기 위한 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줄기를 뻗어 잎을 펼치고 성장하는 것은 모두 꽃을 피우려는 작업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라플레시아는 여분의 줄기도 잎도 없이 꽃만 피우는 이상적인 형태다.

그뿐만이 아니다. 라플레시아는 양분을 흡수하는 뿌리조차 없다. 실 모양으로 세포가 늘어서 있을 뿐인, 기생뿌리라 불리는 기관이 포도과 식물의 뿌리에 파고들어 간다. 더는 스스로 서지 않아도 되므로 제대로된 뿌리는 없어도 된다. 링거 튜브처럼 가는 기생뿌리만으로도 충분하다.

세상에서 가장 큰 꽃이 자기 힘으로 살아가지 않고 다른 식물에 기생한다는 사실에서 세상의 부조리가 느껴진다. 그러나 라플레시아는 쓸모없는 것을 떼어낸, 줄기도 잎도 없는 식물이라서 모든 에너지를 꽃을 개화하는데 쏟는다. 그 덕분에 거대한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

- 초반 챕터에서 인상깊었던 부분들을 발췌. 재미있다. 그저 땅에 심어진 식물들이 이토록 치열한 경쟁을 하며 살아간다니. 어떤 세계에서도 경쟁사회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왜 어째서 그렇게 되는지, 식물들이 살아남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는지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서 무척 흥미로웠다. 예를들면 지난 여름 바질화분이 생각보다 많이 자라서 분갈이를 하는 겸 조금 더 커다란 화분에 민트를 같이 심었는데 바질이 점점 줄기가 굵어지더니 잎 모양도 민트처럼 변하고... 심지어 잎에서 민트 향이 나기 시작해서 흔히 말하는 '끔찍한 혼종'이 탄생했는데 어떻게 같은 화분에 심은 것만으로 이렇게 되지? 란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아주 나중에 안 것이지만 바질과 민트 모종 설명서에 이것과 같이 심지 마시오 하는 안내문이 있더라. 민트는 강한 식물이었다. 얘도 뿌리에서 화학물질을 내뿜어서 바질을 덮쳤나...? (나름의 감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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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04까지의

이걸 쓰고 있는 오늘은 열두 시가 지났으니까 4월 4일 일요일이고 그동안 쓰고 싶었던 건 많았는데 아이패드 수리를 맡기는 바람에 미루다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일주일이 지났다. 항상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랄 때(이를테면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자꾸 시계를 바라보게 되는 것) 보다 다른 데로 시선을 돌리면 아쉽게 느껴질 만큼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여기에도 자주 나는 이 자리에 있는데 시간만이 나를 두고 흘러간다고 쓴 적이 있기도 하고. 기록하고 싶었던 것을 다른 sns에 기록해 두었더니 일단 옮겨 적는다.

210329

아이패드 교체 맡긴 게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아침에 졸린 눈으로 일어나 밖으로 기어 나갔다. 황사 때문에 하늘은 뿌옇고 공기는 답답했지만 길가다 만나는 벚나무마다 꽃을 활짝 피우고 있었다. 식물은 항상 그렇다. 자기 자리에서 때가 되면 최선을 다해 자신의 맡은 바를 다한다. (병충해로 쓰러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한 후에 집에서 여러가지 식물을 키워보니 아주 잘 알겠더라. 물론 실내에 화분이라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환경이니 빛과 수분은 당연히 내가 해주어야 하는 부분이다. 나는 어떻게 보면 이 친구들이 사는 세계의 신인것이다... (조금 거창한가?) 여하튼 이렇게 궂은 날에도 잔뜩 피어있는 꽃들을 보니까 괜히 기분이 둥실둥실 해져서 평소엔 하지도 않을 쇼핑을 잔뜩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짐이 잔뜩 늘어 어깨가 무거웠다. 카메라를 들고 나가고 싶었는데 배터리 사정으로 그러지 못했던게 아쉬웠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엔 이 짐에 카메라까지 가지고 있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거란 생각을 하며 긍정적으로 마무리 한 것 같다. 요즘은 핸드폰 카메라도 정말 좋아서 대충 찍어도 멋진 사진이 나온다.

210330

명상 정말 어렵다. 십 분이란 짧은 시간 마음을 비우고 크게 숨 쉬는 것 뿐인 일인데 쉽지 않구나. 트위터를 조금만 들춰봐도 금방 지나가는 시간인데.

210331

가족 외의 누군가의 생일을 이렇게 축하한 게 얼마만이지? 별거 안 했지만 즐겁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210401

전호ㅏ.많이많이. 했다. 끊는 순간까지.너무 졸렸는데 역시 내 이야기를 많이 한 날은 묘하게 신경이 선다. 이런 말 해도 괜찮은걸까? 수십번을 검열하게 된다. 고통은 몸이 기억한다. 머리는 생각보다 빨리 아픈 기억을 지운다. 내가 잊었다 착각한 기억들은 세포 속 곳곳에서 되살아난다.

하지만 즐거웠어 좋았고 허물만한 벽이 있지도 않았지만 밑바닥을 보이지 않으며 서로의 선을 조금씩 내어주고 스며드는 관계의 소중함을 알아.

누구나 다르지 않겠지만 역시 나는 나를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이 좋고 나또한 그런 사람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 품에 끌어안고 싶어

말을 곱씹는 습관은 좋지 않지만 오늘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새삼 깨달은 일이 있다면. 병이나 건강에 관해 내가 일정 선의 강박이 있고 또 그게 나에게 있어 쌓아 올린 마음을 순식간에 무너트리는 강한 트리거 였구나 하는 점. 누구도 아프고 싶지 않을 거야. 콱 죽어버리고 싶다는 말조차 현재의 고통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표현이잖아. 그리고 모든 고통이 그런 건 아니지만 원해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수행자가 아닌 이상. 할 말이 많네. 일기로 쓰고 싶었는데 아이패드 필름 아직 새로 안 붙여서 안 꺼내 놨어...

210402

나는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는 일이 너무 피곤하고 슬퍼서 스스로를 고립시키곤 한다.

골이 너무 깊어서 사이로 고인 물은 바람에도 일렁이지 못한다. 바람이 부는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걸로 괜찮아.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옳은 삶은 아닐 거야.

옳은 길이라는 건 누군가가 정해 놓은 선 위를 걷는 일이 아니니까.

작년에 심은 튤립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해서 괜히 다음날이 기다려진다. 꽃대가 낮아 왜일까 이유를 찾아보니 구근을 심은 시기가 늦어서라고 한다. 조금 늦어져도 괜찮겠지 라 생각하며 게으름 피웠던 내 자신을 반성하며... 내년에는 꼭 9월과 11월 사이에 다 심어서 멋진 꽃대를 올릴 수 있도록 도와줘야지.

210403

오늘은 코스트코 다녀왔다. 즐거웠다. 다녀와서 맛있는 소세지를 굽고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선 와인도 함께했다. 요즘은 못해도 이틀에 한 번씩은 꼭 운동을 하는데 처음엔 조금만 뛰어도 터질 것처럼 울리는 심장과 거친 숨이 이제는 횟수를 거듭해도 많이 버틸 수 있게 된 것을 실감해서 기분이 좋았다. 아주 조금이지만 변해가는 나 자신을 느끼게 된 것이 기쁘다. 이 일상을 오래 이어갈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다녀와선 귀찮아 귀찮아 노래를 부르면서 장 봐온 것도 바로 정리하고. 내일 씻어야지...하고 쫑알대다 후딱 씻어버렸다. 최근의 작은 기쁨 중 하나는 새로 산 바디버터가 아주 마음에 든다는 것과, 세 개 사면 엄청 저렴해진다는 말에 충동적으로 바디버터를 세 통이나 샀는데 어느것이든 섞어서 쓰면 또 무척 좋은 향기가 난다는 것, 그리고 그게 옷에도 배여서 종일 나한테서 좋은 향이 난다는 것. 좋은 향기는 내 기분을 무척 좋게 한다. 머리도 다 말리고 노곤노곤해져서 느즈막히 친구들이랑 애들이랑 영화도 같이 봤다. 이렇게 쓰고 보니 오늘 본 영화도 향에 관한 것이었지... 조금 웃기네.

[stickyandsavory]

210328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시간은 지나간다.

어제는 날씨가 무척 좋았다. 정말이지 '봄다운' 날이었다. 길을 걷기만 해도 아름다운 사진이 찍혔고 그 풍경이 좋아서 들이쉬는 공기가 달콤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오늘은 비가 내렸다. 종일 안개같은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질척이는 하루였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특별한 일이 없는 하루를 참지 못하는 내가 오늘은 열심히 버티며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시간을 버틴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날을 보낸 것은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고 일어나서는 나도 모르게 잠들었단 사실이 조금 우울했지만 힘을 내서 저녁을 먹고, 완우랑 티알도 잠깐 다녀왔다. 그리고 나서는 좋아하는 게임도 잔뜩 했다.

운동도 하지 않았고 여전히 집은 어질러진 채이지만 아무렴 어떤가. 오늘은 일요일이었는데! 오늘 이렇게 놀았으니까 내일은 다시 열심히 지내면 되지 않을까? 나는 좀처럼 이렇게 생각 하는게 쉽지 않은데 오늘은 이런 날도 있는거지~ 하면서 잘 지낸게 스스로 좀 뿌듯하고 대견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내일을 살아갈 기운을 비축한다.

[stickyandsavory]

양립 가능성의 빛과 그림자

결국 양립 가능성의 지지자들이 천명한 포르노그래픽 아트의 실천적 의의란, 대상을 예술로 경험하는 순간에도 그것이 포르노그래피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그 예술 경험을 독특한 것으로 형성하는 데 있는 것 같다. 이 관계는 어쩌면 뒤샹의 <샘>이 가진 예술품으로서의 정체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거할 수 없는 화장실 설비로서의 물리적 정체성 사이의 관계와 유사할지도 모르겠다. 여기서도 변기를 보는 것과 예술작품을 보는 것은 동시에 이루어진다. <샘>은 우리의 예술 감상이 진행되는 과정에 그것이 변기로 지각된다는 사실이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그것 때문에 열리는 새로운 비평적 차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경우다.

그러나 변기를 변기로서 보는 일이건 예술로서 보는 일이건 모두 관념적인 것으로 두 경험은 얼마든지 공존할 수도 있고, 관점의 전환이 머릿속에서 재빠르게 일어나 양자 사이를 오갈 수도 있다. 종교적 고양과 예술적 감동이 동시에 밀려올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동시 감상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서 <샘>은 포르노그래픽아트의 실천적 의의를 비유적으로나마 설명하는 사례일 수 잇다. 그런데 여기에, <샘>을 예술로 보는 동안은 그것을 변기로 볼 수 없다는 설정이 더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포르노그래픽 아트'에 대해 동시 감상 불가능성으로 문제를 제기하려는 나 같은 사람들은 이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다.

성적으로 노골적인 재현을 보면서 예술적 감상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앞의 논의대로, 대상을 포르노그래피로서 본다는 것은 성적으로 노골적인 재현으로 본다는 것 이상(혹은 아예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성적 흥분이라는 효과를 줄 수 있는지가 핵심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양립 가능성의 지지자들은 왜 성적 흥분이 예술 감상을 하는 동안에 일어나야 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지금 진행되는 것은 예술 감상이고, 지금이 아닌 다른 어느 때 이것이 성적 흥분이라는 효과를 줄 수 있는 대상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 다른 때의 성적 흥분은 어떻게 얻어지는가? 대상을 오롯이 포르노그래피로서만 취급해야 얻어지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결국 '포르노그래픽 아트'가 지향하는 '예술이자 포르노그래피'인 대상은 '포르노그래피로만 취급되는 시점과 예술로서만 취급되는 시점이 각각 별도로 존재하는 하나의 사물'이 되어버린다. 이것은<샘>을 감상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만일 양립 가능성 지지자들의 '예술인 동안에도 포르노그래피로 경험되어 우리의 예술 감상 경험을 바로 그러한 특별한 방식으로 형성하는' 대상을 원한다면 동시 감상 불가능 성은 그들에게 생각보다 큰 난관을 초래한다.

- 불온한 것들의 미학

[stickyandsavory]

210324

어째서일까. 어째서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고 훌륭히 해내어도 나는 바닥없는 늪으로 가라 앉을까. 왜 나는. 열심히 몸을 움직였고. 주변도 청결히 했고 밀린 일 없이 가사노동도 마쳤는데 왜 이렇게 맘 편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할까. 순간적인 즐거움에 집중하는 것은 나쁜 일일까? 단순히 게임이 '건설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인가? 나의 어디에 문제가 있는건지, 사실 아무런 문제 없는데 내가 애써 나의 부족함을 찾으려고 하는 일에 지쳐서 기운이 없다. 머리가 무겁고 귓속이 피곤하다. 물이 차오른 것처럼 먹먹하고 아주 작은 충격에도 울이 터질 것 같아 바닥에 웅크린다. 깨끗하게 샤워를 하면 나아진다고 그랬는데. 아주 작은 것이라도 바뀌면 어떤 성취감을 손에 넣게 될 것이라고, 그게 큰 변화로의 발판이라는 말을 언제나 들어왔는데 내가 행하는 일들이 이제는 너무나 사소해서 어떤 변화도 가져다주지 못하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이제 무얼 하고 무엇을 해내야 하는 걸까. 지금보다 더욱 대단한 일? 잘 모르겠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맘 편하게 누워서 데굴거리다가 재밌는 책이나 영화 보며 좋아하는 사람이랑 이야기나 조금 나누다가 잠들고 싶은데 이런 정도의 일이 나한테 너무 어렵다.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멈추는 것과 함께 하향곡선을 그리는 나의 감정을 억지로라도 위를 향해 꺾어놓고 싶다. 나는 너무 쉽게 슬프고 쉽게 가라앉는다. 나는 한번이라도 좋으니 아무런 근심 없이 부유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stickyandsavory]

작년 겨울에 구근 50개 정도를 심었는데 가장 먼저 꽃을 피운친구. 

앉은뱅이 꽃이지만 조금 신기해.

[stickyandsavory]

0323

시간은 언제나 빠르고 나는 같은 자리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