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er-tr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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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rooted but i f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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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trees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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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러의 장점이자 단점은 시간이 표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제인지도 모를 시간의 조각들이 마치 박제된 듯 그대로다. 어제 쓴 일기처럼 익숙하고 외국노래처럼 생경하다. 한자 한자 되뇌어본다. 공교롭게도 마지막 글이 스물 여섯.
여름날의 채육대회가 생각난다. 깩깩대는 함성소리 귀가 터질 듯한 매미소리 분가루처럼 날리던 모래먼지 속에서 까칠한 푸른 바통의 감각. 스물 여섯이 된 내가 계주 바통을 넘겨받듯 그 다음 글을 쓰고 있네. 이런 소소한 우연들이 나를 미소짓게 하지.
스물 여섯의 나는 일견 원하던 모습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잔다. 어두우면 불을 켠다. 사랑이 가득한 안전한 작은 세상ㅡ문득 이 얼마나 낯선 일인지ㅡ 생각하지 않는 삶. 그리고 나는, 더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 글을 쓰지 않는다. 사실 텀블러를 다시 찾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불현듯 더이상 내가 문장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애써도 다시는 그때와 같은 글을 쓸 수가 없다. 정말 원했던거지. 오직 한 가지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내가 뭘 내줘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바라던 그대로인데 왜
두달 뒤면 너보다 나이가 많아져. 넌 영원히 반짝이던 그 모습 그대로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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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trees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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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스물여섯 이후로 볼 수가 없다. 모두가 스물여섯이 되면 내 곁을 떠난다. 난 이제 스물여섯이 되지 않은 사람을 사랑하기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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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trees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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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더이상 어리지 않구나
순수를 잃기에 알맞은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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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trees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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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
단순하게 사는 게 좋다
목적지향적 ��
즐거운 무드의 유행가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잔다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예컨대 나를 불쌍해하거나
나를 혐오하거나
나를 정의하거나
나를 탐구하는 일
대신 자아 밖을 본다
순간에 집중한다
목표를 세우고 달성한다
그리고 다음 그리고 다음
몸을 움직인다
과거를 곱씹지 않는다
금방 잊어버린다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다
유쾌한 영화
적당한 양의 식사
나아간다
삶이 이어진다
정신 건���한 삶
글을 쓰지 않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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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trees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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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달은 낮게 뜬다. 찰랑이는 센느 강에 젖을 듯이 붉은 달이 떴다. 내 생에 가장 아름답고 커다란 눈썹달. 문득 꿈에 살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너무 아름다워 슬픈 것들은 대게 그런 까닭이다. 이대로 영원해도 난 괜찮은데 세상은 그렇지가 않나보다. 깨어나라고 한다. 꿈이라고. 이제 끝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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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trees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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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서너 차례 여우비
실수하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모른다 얻을 줄만 알고 떠나온 곳에는 잃는 것도 있다는 걸 완전히 다른 세상속에서도 같은 고민을 하며 살게 되기도 한다는 걸 너무 사랑하는 계절 이 도시의 모습으로 보고싶어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하지만 여름이 오면 떠나야 하는 이가 있다는 걸
빗방울이 낮은 태양빛에 보석처럼 반짝이고 모든 것이 아쉬워 발걸음을 자꾸만 멈춘다 사랑과 공부와 여행이 모두 같다 끝난 뒤에야 알 것 같다 다시 한 번 한다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늦은 아쉬움
이 도시를 너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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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trees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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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네가 내 꿈에 나와 울었어
겨우 스무 해라지만 나에겐 전부인데 그 시간동안 얼마나 잃은 것 없이 살아왔는가를 이제야 나는 알게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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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trees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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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하다
누가 그랬다
왜 그런 말을 했니? 나는 묻지 못 했다
하늘이 이렇게 많은데 죄다 텅 비었는데
왜 날 버릴 곳 하나 없는지
나는 점점더 무거워지고 심장은 점점더 꽉 조여오고
달려간다
온통 버거운 나를 안고 자꾸만 달려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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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trees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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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구닥다리라는 생각이 들어 과거에 머무는 사람은 발전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뒤처져 걷는다
올해 생일은 프라하에서 맞았다 아침 일찍 떠난 체스키의 동화같은 하늘과 지붕들 배가 터져라 먹고 마시고 웃고 그런데 자꾸 뭔갈 잃은 것 같아 그게 뭐였더라 가진 적은 있었던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집에는 오월에도 눈이온다 분명 눈이 부시게 벚꽃이 피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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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trees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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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누군가 신발을 벗어두고 숲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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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trees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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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은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슬퍼져
지금껏 인생을 거저 살았다는 생각이
우린 다시 만나지 않을거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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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trees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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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노란 자전거
꽃비처럼 나뭇잎이 따귀를 때린다
이 계절이 가면 여기 없다
너무 일찍 쓰여진 유서 도시락 노크소리
늘 같은 이유들
자야할 시간에 울다가 하루를 망치고
아픈 곳들은 여전한데
내가 마음에 들어 이상한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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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trees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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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교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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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trees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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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지향한다. 아직 두 귀가 쓸만해서 감사한 밤. 지구는 말없이 매일 돌아버리고 있었는데 나는 불현듯 온 세상이 뒤집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너무 짧게 살아서 상실을 모른다. 변화가 무엇인지도 나는 몰랐다. 내가 떠나보낸 것에 대한 아픔이 아주 우스워질 만큼 아무것도 지금과 같은 게 남지 않을만큼 내 삶이 송두리째 바뀌게 되면 나는 이 모든 게 그리워 어떻게 견딜까. 떠나야한다고 떠나야만 한다고 노여워 울던 숱한 밤들도. 두렵다. 내가 이 날들을 그리워하게 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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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trees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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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책을 읽는다. 위대하고 대단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지만 진짜 성인이 있다면, 그들은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그들을 진실로 존경한다. 표정도 눈물도 없이 우는 일이 내겐 걷고 말하는 일과 같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집을 향해 걸으며 생각했다.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걸으면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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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trees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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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십자가다. 공기가 가시처럼 살갗을 찌르고 숨을 쉬기 위해 눈물이 필요한 날들. 산다는 건 꽃잎보다 얇은 칼날로 가슴을 저미는 일, 독을 품고 악을 품고, 갈 수도 가지 않을 수도 없는 길을 가는 일. 이 길 끝에 우리가 바라는 그 곳이 있을 지 아무도 모른다. 살기 위해 죽으러 간다. 우리가 어떤 참담한 심정으로 어떤 절박한 마음으로 이 길을 걷는 지, 제게 주어진 삶을 다 살아도 끝내 모를 이들도 있다. 그런 삶도 있다. 그들이 정말 부러워.
내게 이 길은, 이 길 외엔, 이 길밖엔 길이 아닌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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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trees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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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기 전에 술 마시는 버릇이 있는데 꼭 취하면 공기에 짓눌려 압사한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 나는 그냥 잠들어 버리는 쪽을 택한다. 오늘은 어릴 때 이후로 참 오랫만에 펑펑 울었다. 탈진한 듯이 힘이 죽 빠지고 역설적이게도 그제서야 힘이 났다. 죽음은 두렵지 않은데 삶에 두려움이 많았었다. 다시 일어나보겠다고 살아보겠다고. 낯익은 허세도 부렸다. 심장이 아주 크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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