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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포키 발에 난 종양을 제거했다.
긴 연휴를 계기로.
영 불편해하긴 하지만 수술은 잘되었다고 한다.
종양이 워낙 커 발가락 하나를 절단해야 했다.
일상생활엔 불편함은 없을 거라고 했다.
붕대 안은 아직 한번도 못봤지만.
당분간 밤산책은 나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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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13.
포키와 밖으로 나왔다.
어젯밤 비가 거세게 내렸다. 예고가 있었음에도 쏟아지는 빗줄기가 어색하고 요상한 밤이었다. 비가 그친 다음 날에도 그 어색한 여운이 차갑고 세찬 바람으로 느껴졌다.
하루 산책을 건너뛰었다고 안달난 포키가 나에게 걸음을 보챘다. 공원 중턱에 조성된 소나무숲 길이 있는데 포키는 그 울퉁불퉁한 흙길이 재미진가보다. 그 길 초입부터 잔뜩 흥분을 머금고 나를 끌어당겼다. 뒤뚱뒤뚱 움직이는 엉덩이가 참 경쾌해 보인다. 응달이 가득한 소나무 숲길을 지나 동그란 잔디밭 공터로 나가니 여운처럼 남은 어색한 바람이 나를 밀어냈다. 내가 있는 곳 반대쪽 사면에는 자줏빛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 살구나무에는 꽃잎도 한참 떨어져 흔적도 없다. 푸릇한 봉오리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다시 한번 찬바람. 포키는 낮은 잔디 위에서 코를 박고 나 같은 인간 따위는 알 수 없는 봄의 채취를 만끽한다.
어느 순간 구름 그림자를 쪼개고 밝은 빛이 포키에게 떨어졌다. 구름에 감춘 볕이 드러난 것이다. 햇빛에 바삭해진 포키의 모습이 너무 예뻐 몸을 낮추고 쓰다듬었다. 이제 나이가 든 포키는 몸 여기저기에 좁쌀만한 혹과 발에 제법 큰 종양을 달고 있다. '그��도 아직은 활달하다.' 하고 속으로 뇌이고 내리쬐는 볕을 가늘게 뜬 눈으로 마주했다. 반쯤 감긴 눈꺼풀 위에 뜨끈한 볕이 붉게 물들었다. 그새 어색한 냉기는 사라지고 봄의 익숙한 기운이 내 몸을 따스하게 감싸안았다. 그늘진 나의 등줄기에도 온기가 도달하였다. 저 멀리 떨어진 태양을 상상하니 그는 정말 강렬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너무 뜨거운 마음은 먼 거리에서나 감당할 수 있는 법이야.
봄이 지나가고 있다. 대나무밭 옆 둘레길로 올라가는 사람들에게서 봄의 소리가 들린다. 복작거리는듯 보이지만 한가롭게 지나가는 사람들. 힘차게 지면을 차며 몸에 활기를 넣는 사람들. 진달래와 푸릇한 젖니 같은 잎사귀를 내민 나무를 배경으로 봄의 장면을 연출하는 사람들. 그 장면이 내 시선에 놓이니 나는 포키 몸에 돋아난 혹과 발가락의 커다란 종양,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과 삼촌의 노쇠한 목소리, 철든 동생과 생기를 잃어버린 K가 생각났다. 그리고 내 주변을 둘러싼 나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것은 봄의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내 마음속엔 꽃잎이 아니라 낙엽이 지고있다. 봄 속에서 웃고 있는 그들과 다르게 수북하게 쌓인 기억의 낙엽 위에서 입을 꾹 다문 나의 모습. 많은 것이 저물고 있다.
봄이 지나가는 가운데 나에겐 가을이 왔다. 최승자 시인이 말한 개 같은 가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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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그를 좋아하는 내 마음을 어쩔 수 없는 것처럼,
그가 나를 보지 않은 것도 어쩔 수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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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16.
점심 식사 약속이 있었다. 호텔에서 얼마 전에 퇴사한 친구다. 그 친구와 그 친구가 근무했던 호텔 카페에 갔다. 그의 전 동료들이 그를 반겼다. 나도 반겨주었다. 한 사람만 제외하고. 차갑고 냉랭한 표정과 목소리. 참았던 외로움이 싹을 내밀었다.
커피를 마셨고 대화를 조금 나누다가 집으로 왔다. 무료한 지하철 풍경과 역 밖으로 나왔을 때 공사 중이던 도로의 모습. 바람이 세게 불었다. 집에 돌아가 포키 산책을 시켜야지. 포키는 날 반겨주었다.
포키와 산책 도중, 손을 잡고 걷는 중년부부를 보았다. 손을 꼭 잡아 떨어질 틈이 안 보였다. 반대편 손을 서로 흔드는 것도 박자가 딱딱 맞았다. 참 좋아 보였다. 나에겐 저런 순간이 올 것 같지 않아 부러웠다. 오후에 싹 튼 외로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어스름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바람은 더 세게 불었다. 귀가 시려 목에 걸친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틀었다. 바람 소리가 세게 들어온다. 딱히 노래를 듣기 위한 것 아닌지라 바람 소리가 나쁘지 않았다. 전에 만난 친구는 노캔 기능에 대해서 격렬한 애정을 보였다. 세상과의 격리라나. 세상이 고통스럽다면 격리는 나쁜 조처가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나를 격리시키게 되었다. 외로움은 허리만큼 자라 빽빽하게 나를 둘렀다. 절대 원하지 않았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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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쓴 노트를 뒤적거리고 있다

봄만 되면 난 그 나무에 집착한다. 벚꽃나무보다 붉고 곧은 나무, 살구나무. 춤추듯이 굽이진 나뭇가지를 제각각 펼친 벚나무와 매실나무와는 다르게, 혼자 곧게 서 있는 그 살구나무. 화사하게 웃는 듯한 벚나무와는 다르게, 무덤덤한 얼굴을 가진 살구나무. 지그시 눈을 떴다가 감은 듯 짧은 봄보다 서둘러 자신들의 꽃을 떨어뜨린다. 고독 속에 열매 하나 맺지 않는 저 살구나무처럼. 어떤 과실 없이 그저 꽃만 피우다 지는 것을 반복하는 삶. 열매를 위한 꽃은 어떤 수분도 얻지 못한 채 외롭게 저문다.
새벽이 피어나는 순간, 은밀히 나무에게 다가가 수피 위로 손을 올린다. 수피를 더듬더듬 만지면서 나무를 한 바퀴 돌자, 살구나무는 나에게 속삭인다.
‘너도 아는구나.’
나 역시 나무에게 속삭인다.
‘내가 안다는 걸 알아줘서 고마워.’
멈춰선 나는 유난히 주름진 옹이 밑 수피를 어루만지면서 그동안 이해받지 못한 설움을 하나씩 손끝으로 새기며 살구나무에게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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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8.
너의 향기
며칠 동안이나 내린 눈은 녹아 아스팔트로 된 길바닥에 얼룩으로만 남겨졌다. 시간이 흐르면 그 얼룩도 말라 원래 없었던 것마냥 사라지겠지. 그 길이 얼어붙었고 흠뻑 젖어있었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잊은 채 발걸음을 조심할 필요 없이 무사히 걸어 다니겠구나. 마음이란 게 그런 게다. 한 때는 유난스럽고 흔적으로 남을 땐 아련했다가 사라지니 없는 것과 같은.
그러니 이 들이부은 향기의 얼룩도 분명히 잊혀질 것이다. 기억할 필요 없는 조각이 되어 해마나 대뇌피질 어딘가에 스며들어 숨어있겠지. 다시 같은 향수의 냄새를 맡고는 이게 뭐였지 하고 정체를 묻다가 그대로 지나치는 상념 취급받는, 그런 것이 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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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9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다시 읽고 있다. 세 번째인데 20년 전 고등학교 때 허영심에 읽은 것, 군대 전역 후 그보다 조금 더 분명한 허영심에 읽은 것 이후이다. 이 책을 읽고 프라하의 봄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실존과 본질 같은 개념을 나 따위가 노트에 끄적거렸던 게 생각난다. 무엇보다 이 소설 속에 섹슈얼리티에 대한 감각을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세 번째인 지금 읽는 이유는 그런 어려운 것 따위가 아니다. 실존은 실존이겠으나, 나 개인의 실존을 위해 이 책을 다시 펼쳤다. 그만큼 지금의 난, 매우 위태롭다.
그 당시 토마시는 은유란 위험한 어떤 것임을 몰랐다. 은유법으로 희롱을 하면 안 된다. 사랑은 단 하나의 은유에서도 생겨날 수 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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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경이였다가 분노로 불타올라 모멸이 되고 남은 것은 잿더미 뿐인 공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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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6.
그에게 나에 대해 설명하고자, 지난 몇 주 동안 나에 대한 여러 가지 말들을 생각했다. 어린 시절 내가 그린 만화가 파일철로 스무 권이 넘었다는 것부터 많이 반항적이어서 길거리에서 잦은 싸움을 했고 한때는 고고학도를 꿈꾸었던 것까지, 제일 좋아하는 문학부터 들었던 음악, 열광했던 영화, 사랑하는 사람들과 경멸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떠올렸다.
응달에 천천히 눈 녹은 잘팍한 지면을 밟으면서 내 삶에 대해 총체적으로 반추했다. 평소보다 길게.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 나에게 더 이상 그와 대화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모든 게 사라진, 그야말로 허무였다. 모순적인 말이지만 내 안은 허무로 가득 차버렸다. 그래서 요 며칠 동안 끝없이 밑으로 떨어지고 있는 기분이다. 고작 그 때문에.
초라하다. 초라하다. 초라하다.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 견디기 힘들다. 나 자신에게조차 말도 못 걸겠다. 돌이켜 본 내 삶 역시 비루해 보였다.
이제 그 길로 가지 말아야지. 원래 안 다니는 길이었잖아.
왜 이렇게 돼버렸을까. 지금의 나는 필연적인 걸까. 그저 우연일까. 무엇이든 상관없지. 단 한 번 뿐인 우연이라면 필연과 다를 바가 있을까.
내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 껍데기 같은 이유는, 날 설명하는 내용과 날 설명했어야 하는 이유인 치명적인 것들을 익명이 보장된 이곳에서조차 밝힐 수 없기 때문이다. 껍데기가 되기 싫었지만 알고보니 처음부터 난 껍데기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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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 1.
불행이 깊어지는 세상이면 말이 없어진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무슨 말이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생이 참으로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것인데. 지나치게 덧없어 애가 무너질 것인데. 침묵으로 슬픔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그들의 불행이 그저 그들의 것만이 아님을 마음속에 아로새긴다. 이 엉터리 같고 작의적인 시작 앞에서 빌어야 할 것은 안식이라, 겸허하고 삼가는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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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9.
새벽에 걸었다. 매번 똑같이, 포키와 같이. 같은 길을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요즘엔 걸으면서 노래를 꼭 듣는다. 그래야 머릿속에 말들이 줄어든다. 정확하게는 머릿속 생각들이 말로 튀어나오는 것이 줄어든다. 요즘 정우라고 하는 포크 가수의 음악을 많이 듣는다. 재미있고 특이한 가사와 단순한 구성이 고요한 새벽을 걸으면서 듣기 좋았기 때문이다. 걸으면서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오늘 건너편 업장에, 몇 달 전에 퇴사한 ㄴㅇ씨가 오랜만에 왔다. 반가웠다. 물어보니 아르바이트하러 왔다고 한다. ㄴㅇ씨는 항상 해맑게 웃고 있는,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사람이다. ㄴㅇ씨가 퇴사하기 몇 달 전에 부친상이 있었다. 나는 그때 그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다. 일면식만 있는 사이라서 빈소는 찾아가기는커녕 묻지도 못했다. 당시 한 해 전에 나 역시 부친상을 경험한 바가 있었다. 나는 계약직으로 일터에서 대부분 혼자 일해 내 사정을 아는 아주 적은 사람만의 위로만 받았다. 그곳에선 별다른 인간관계도 없어 연락처 또한 없다. 난 나의 아버지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경멸했던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위로받을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ㄴㅇ씨는 참 밝고 잘 웃는 사람이라 아버지를 눈물로 떠나보냈을 것이다. 후에 다시 출근한 ㄴㅇ씨에게 흰 봉투에 작은 마음을 전했다. 항상 활짝 웃던 얼굴에 살짝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난 그 일그러짐이 참 예뻐 보였다.
오후에는 어머니와 외삼촌과 각자 통화를 한 번씩 했다. 어머니는 과거의 병력 때문에 병원에 다녀오셨다. 병원에서는 모든 수치가 너무 좋다고 한다. 참 다행이다. 그리고는 나를 또 걱정한다. 어머니는 젊을 때부터 병력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자식들을 위해 여러 가지 보험을 들어놓으셨다. 그래야 미래가 불안하지 않다고 하신다. 어머니는 오늘도 나의 재정상태를 걱정하신다. 미래를 준비해야 된다고 잔소리를 하신다.
예전 우리 삼촌은 참 재미있고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온갖 인문학적 지식과 예술적 지식을 뽐내면서 나의 동경을 받았다. 우리 삼촌은 글쟁이였다. 나 역시 꿈이 글쟁이가 되었다. 하지만 다 커서 보니 우리 삼촌의 지식은 엉터리인 게 많았다. 인류학을 전공하면서, 책 읽기에 진심이 되면서 내가 동경하던 삼촌의 지식들이 가볍고 오류투성이인 것을 확인했다. 게다가 삼촌은 노화 탓에 예전 지식들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난 삼촌의 무지에 화가 나서 심술을 부렸다. 하지만 그 심술에 삼촌은 슬쩍 기분이 나빠하면서도 그저 건방지다는 말 한마디 하고는 느린 말투로 허허 웃는다. 나를 놀리는 말은 잘하지만 심한 말은 하지 않는다. 삼촌에게 가장 크게 배울 것은 지식이 아니라 그런 태도였나 보다.
난 다시 어머니의 말을 되뇐다.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포키와 매 번 같은 방향으로 같은 길을 걸으면서, 정우의 노래를 뚫고 육성으로 어머니의 말에 대답한다. 무엇을 위해 준비해야 합니까? 엄마, 왜, 무엇을 위해 미래를 준비해야 해요?
진짜 고독이 내게 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린 시절 되바라지게 '사람은 모두 고독한 거야.' 라고 너스레를 떨며 생각했던 것들이 실물로, 아주 검고 큰 모습으로 오고 있는 걸 느낀다. 두려워서 눈물이 났다. 아니, 한스러운 것일까. 아니면 그저 슬픈 것일까. 알지 못하겠다. 어쨌든 난 포키와 같은 방향의 같은 길을 걷다가 소리내며 울었다.
난 매일 확인한다. 어머니와 삼촌의 노화를 확인한다. 어머니와 삼촌의 수화음이 느려지고 목소리에 힘이 줄어드는 것을 확인한다. 옆에 걷고 있는 포키도 벌써 10살이다. 연인 사이였던 ㄱㅎ가 6개월 밖에 안 되는 똥강아지를 맡아달라며 부탁한 게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 세월 동안 어머니가 말한 어떤 미래도 준비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직감했을지는 모르겠다. 그저 준비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됐던 것 같다. 지금은 조금 다르지만, 준비할 이유가 없어졌다. 나의 어머니와 나의 삼촌 역시 나의 아버지처럼 쇠약해지는 것이 보이는데, 그 상실을 마음깊이 보듬어 줄 사람도 없다. 나에겐 그저 고독만이 남아있다. 즐길 수 있는 고독이 아닌 그저 견뎌야 하는 고독이다. 그에 나는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느껴졌다. 정우의 종말이라는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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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노벨 수상 기념 강의, 한강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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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의 일기
잠에서 깨니 기분이 나았다. 꿈을 잔뜩 꾼 것 같았다. 꿈을 더듬어보니 00이 나왔다. 현재와는 다른 모습, 다른 관계였다. 꿈은 나의 영혼이 죽지 않게 무의식이 처방해 주는 약일지도 모르겠다. 자각을 시작하자 꿈의 달콤한 약효가 떨어지는 모양이다. 기분이 안 좋아졌다.
체중계에 올라가 보니 어제보다 2kg이나 줄었다. 어제 포키를 데리고 새벽에 두 시간이나 걸었다. 혼잣말을 하면서. 가상의 누군가에게 하는 말이었다. 00 같은 사람에게. 하지만, 그건 00이 아니다. 그저 내가 상상한, 같은 얼굴의 사람일 뿐이다.
배가 고픈지 속이 쓰렸다. 입에서 쓴맛이 나 식욕이 그다지 없었다. 그래도 먹는다. 속병으로 고생해서 식이를 소홀히 한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 직접 목격했으니까. 엔초비와 살롯을 볶고 버터를 추가해서 만든 파스타를 먹었다. 먹을만했지만 상당히 느끼했다. 면발 한 가닥도 남기지 않고 먹었다. 배불렀다.
턱걸이와 푸시업을 하고 저녁 늦게 포키와 산책을 했다. 9시부터 10시까지 버스 정류장 주변을 배회했다. 머릿속에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상상하면서 같은 길을 몇 번이나 왕복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혐오와 초라함은 커져갔다. 미친 짓거리. 정신 차려. 정신 차려라.
집에 와서 한 번 더 파스타를 해 먹었다. 그런데 면수를 너무 많이 첨가해 탕이 되어버렸다. 수분을 날리기 위해 좀 더 익혔다. 면이 약간 퍼졌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먹다 남겼다. 식욕이 멈췄다. 전과 같지 않다. 남기는 것 따윈 없었는데. 내 기분 역시 많이 변했다.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꿈이라도 꾸면 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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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를 읊으며 별도 많고 바람도 많은 하늘을 응시한다. 그리고 도시의 소음. 추위에 떨리는 손 입김 한 번 불어주고 다시 별을 쳐다본다. 아니, 가장 가까이 있는 별을 내려다본다. 그리곤 별에게 다가간다. 아주 가까이. 추위를 피해 별 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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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1. 15.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은 척하고, 오늘 읽었던 시와 엊그제 끄적거렸던 문장을 옮겨 적고, 오른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K에게 안부를 묻고 노트에 적어둔 시인의 시를 사진으로 찍어 보낸다.
누군가는 일 이야기를 하고, 육아를 말하고, 돈 이야기를 하고, 술과 음식에 대해, 연애에 대해서 말할 때 난 그다지 할 말이 없음을 깨달아 추억과 낭만을 말해야겠다 하고 다짐한다.
길 한복판에서 미친 척 춤을 추고 뱅뱅 도는 소년처럼. 행인들의 심각한 행로를 무시하면서 내 멋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내가 하는 말이 내가 보낸 문자가 겸연쩍고 어색하고 민망하겠지, 하면서도 그 말을 마주 받는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얼마나 경이로울까.
혼자 몸부림치던 소년 옆에 같이 춤추는 소녀가 등장한다면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때 그 길은 축제의 광장으로 변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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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있다는, 희망이 있다는
작은 계시 하나만 이라도
간절합니다. 그 계시가
언제까지 어두운 가로수 길만 걷게 되는 걸까요.
낙엽 밑으로 울퉁불퉁 어긋난 바닥벽돌에 발이 툭툭 차이며
무릎이 찡하다 아려와 부여잡고 잠시 쉬려고 하면
조금이라도 늦을까봐 두렵습니다.
그 계시라도 하나의 표식이라도 내가 볼 수 있다면 알 수 있다면
주저 앉고 싶은 마음은 감출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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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비론자
윤석열이 대선주자로 나왔을 때 복부지방에 비해 한 없이 빈약한 두 다리를 쩍벌리던 작태에서 들었던 혐오감의 새로움이 이번 기자회견을 통해서 갱신되었다. 권력을 쥐어줄 이유가 하등 없는 그야말로 시정잡배의 모습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사실 저런 모습은 이미 대선 이전에도 많이 보여주었다. 저 병신 같은 작태를 몇 번이나 보았음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저따위 인간을 찍어준 가짜 민주시민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때 당시에 등장했던 페미니즘과 세대포위론 같은 좆같은 논리와 부동산 때문이라고 하는 (누군가는 내 땅만 빼고 다 올랐어라고 탓하고 누구는 더 오를 수 있었는데 니들 때문에 덜 올랐어하고) 이기주의와 탐욕, 존재하지 않은 새정치라는 간판 아래 노회한 기만을 보여주었던 쓰레기 같은 정치인, 그리고 수사권력을 통해서 정적을 음해로 제거하려는 공작검찰까지 포함하더라도 가장 용서하기 힘든 것은 양비론자들이다. 정치혐오에 빠져서 중과를 평가하지 못하는 사람들, 자신들의 감정 섞인 판단을 양비론이라는 잡탕밥에 비벼서 합리화한다. 그들이 야당을 향해 특검 무새라고 비난할 때 이 정국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지켜보려고 하지도 않은, 이 난관에 해결에 대해서 고민도 하지 않은 좆만이임이 분명하다. 대화가 통하지 않은 사람을 버스에서 내리게 하려면 힘으로만 내리게 할 수 있다. 특검은 밖에 있는 사람들이 안에서 나오지 못하게 들고 있는 협박을 위한 무기가 아니다. 안에서 꽁꽁 숨어있는 약쟁이들의 문을 부수는 빠루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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