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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중반 그 방황에 대하여
모두들 그렇듯이 시간이 지나면 조금 더 안정되겠지 하는 바램을 갖는다. 하지만 그 바램은 스물이 지나고 서른이 지나도 그리고 마흔을 보내고 오십늘 맞이해도 언제나 변함없다. 아닌 타인들도 있겠지만, 일단 나의 십대를 보내고 이십대를 보내고 삼십대를 보내는 중인 지금 까지는 변함없이 유지중이다. 꿈이라는 욕망이 현실적이지 않아 하나 둘씩 가지를 쳐나다가보면, 어느샌가 앙상해서 저게 꿈이었던가 뭐였던가 하는 물음만 남긴채 너무나 보잘 것 없어 쳐다보기도 싫어진다. 그 쳐다보기도 싫어진 꿈이라는 욕망덩어리를 찾으려고 이리저리 살피는 중이다. 그 과정을 방황이라고 부르는 지도 모르겠다. 스물일곱에 사회인이란 명찰을 달고 얼마되지도 않는 월급을 꼬박꼬박 써가면서 약 십년을 보냈다. 그 중에는 즐긴 시간도 있었고 버틴 시간들도 있었다. 모두 좋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이제 십년정도 회사를 다녔으니 다시 인생의 재조정이 필요하지 않을까란 생각에 일단 회사를 그만 두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곳도 갈 곳없음에 신기해했고 매일 수없이 울리던 전화기가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년이 지났다. 아직도 재조정 중이었고, 몇 차례 여행을 다녀왔지만 그 재조정은 쉽지 않았다. 가지없는 욕망은 여전했고, 그 신기해 하던 조용한 일상은 무기력한 일상이 되었다. 차라리 누군가의 욕망을 따라가는 것이 좋을 것도 같다는 생각도 들어 주위를 살펴봤지만 나 아닌 다른 이의 욕망이 나와 쉽게 맞을리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 할 일들을 생각해본다. 아무일도 하지 않는 백수는 아니었기에 그래도 생각을 하면 해야 할 일들을 떠올랐다. 하지만 안해도 그만인 일들 이기는 했다. 활기차게 일을 하는 외국의 한 카페를 떠올렸다. 그 기운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특히 카페를 하려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카페는 아니지만 나의 취향을 고스란히 담긴 공간을 가지고 싶긴했다. 욕망이 없으면 취향이라도 풍성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어제는 오랜만에 취향저격의 브랜드 무인양품을 들렸다. 의류를 둘러보고 문구를 둘러보고 가구를 둘러봤다. 예전만큼 꼭 사고 싶다는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커리종류나 몇 개 집어들고 나왔다. 이제는 그 취향들이 가슴을 울리지를 못했다. 취향조차 부족한 잔고로 인해 앙상해져버린 것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욕망과 취향이 앙상해져버리면 이제는 뭘 해야하나. 스스로 살아보고 싶어하지만 어떻게 스스로 살아야 할 지는 아직도 고민 중이다. 일년, 어쩌면 꽤 긴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는 미국유학에서 돌아와 일년 육개월 동안 장고의 시간을 보내고 소프트뱅크를 설립했다. 아직 육개월정도는 고민해보거나 욕망을 키우거나 취향을 발견해봐도 덜 죄책감이 들 것만 같았다. 꼭 이럼 것들만 마음속에 새기게된다. 일년 그리고 육개월. 퇴사를 공표하던 시점, 이 시기는 오 육십대에 퇴직해서 서둘러 치킨집을 차리는 무수한 사장님들보다 조금은 나은 결정을 위한 시간이라 생각을 했다. 조바심도 있고, 무기력도 끊임없이 올라오지만 만약에 나의 삶의 소명이란 것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 남은 시간들은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삼십대 중반의 방황은 좀 더 안정적인 삶을 위한 것이 아닌 좀 더 다양해질 수 있는 기운을 만드는 방황이다. 아직은 그렇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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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칠때 쯤이면
가끔 울컥할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 당했거나, 어떤 억울한 일을 당했기 때문은 아니다. 다만 난 지치고 있는데, 난 힘들다 느낄때 나보다 가난해보이거나 나보다 별볼일 없다고 느껴지는 누군가가 너무나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볼 때 난 울컥인다. 그 보다 더 몇 푼많으면 뭐 할 까 그 보다 더 지위가 높으면 뭐할 까 난 지금 그 처럼 행복하게 웃지를 못하는데. 그래, 힘든 건 지금 삼성이라는 대기업의 실질적 대표라는 사람도 힘들고, 대통령보다 높았다는 사람도, 그 보다 대통령이라는 사람도 지금 힘들텐데, 그러니 그보다 못한 사람들는 더 힘들진데, 힘들지도 모르는데, 울컥일 필요까지 있을 까 싶지만, 결국 이기적이라서 내가 행복하지 못해서 내가 즐겁지 멋해서 남의 행복함에 나도 모르게 울컥인다. 모든게 결국 내 위주다. 언젠가 행복하다 느끼고, 만족스럽다 느낄 때면 누군가의 불행 혹은 행복과 상관없이 스스로 나를 느낄 수 있지 않을 까 희망을 걸어본다. 그래서 저들은 지금도 울컥이게도 웃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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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를 때와 내려갈 때
얼마전 본 '싱글라이더'라는 영화의 인트로에는 고은의 짧막한 시 한 편이 나온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분명 빠르게 나아가기만하는 삶은 놓치는 것들이 많다. 차를 운전하며 가는 것과 버스를 타고 가는 것, 그리고 천천히 걸어가는 것과 빠르게 뛰어 가는 것. 모두 그 때 그 때 얻는 것이 있고 놓치는 것이 있다. 결국 마지막에는 모두 내려가기 때문에 특별히 고은의 시 한구절이 어느 순간엔가는 울림을 주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의 지금의 ��은 운전 중이던가, 버스를 타는 중이던가 아니면 천천히 걷는 중이던가 빠르게 뛰는 중이던가. 이걸 알면 지금 봐야할 것들과 내려올 때를 대비해 스쳐보내야 할 것들을 알텐데 도통 지금이 어느 순간인지 알 수가 없다. 바빠야 할 듯 하다가도 멈칫하고, 조금 더 숙성시켜야 할 듯 하다가도 남아 있는 모든 걸 어떻게던 쏟아부어야 할 것도 같다. 올라갈 때 그리고 내려갈 때 정확히 그 때가 되면 이런 생각없이 지내고 있을 것 같다. 그러고보면 올라가는 것과 내려가는 것 그 두개의 삶의 시간만 있는 건 아닌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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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그 대수롭지않음에 대하여
어떤 일이던, 그 일이 문제이던 기쁨이던 슬픔이던 아픔이던 대수롭지 않게 받아드리는 것을 보는 듯 하다.
아니, 생각해보면 기쁨에는 대수롭게 행동을 하고 불편한 것들에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드리는 것을 보는 듯 하다.
몇 일간의 인도라는 땅에서 만나는 세계라는 것이 철학적이지도 신비롭지도 그렇다고 불편만하지도 않았다. 단지 이런 많은 사람들이 부딪혀 사는 데에 단 한번도 다투거나 언성을 높이거나 하는 따위를 본 적이 없다.
이런 생각을 했던건 어제 길을 잘 못들어 뉴델리역의 뒷 골목을 걷고 있을 때였다. 조금 언성이 높아지고 몸이 엉겨붙었다. 시선이 그 곳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들은 웃으며 엉겨있었고 장난질을 하는 듯 보였다. 잠시 그들이 다투는 것 같다는 것에 시선이 머물었을 때쯤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서울역에가면 낮부터 술병을 바닥에 놓고 끼리끼리 무슨 소리인지도 모를 말들로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모습을 흔하게 본다. 단지 그런 몇 몇의 일상적이지 않은 모습뿐만이 아니다. 길에서 운전을 하는 사이에는 끼어들기 느리게 가기 신호를 무시하기 등의 나의 속도와 다르다는 이유로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으로 날 언짢게했다는 것 따위로 다투는 모습을 심심찮게 마주하게 된다.
삼면이 바다라 바닷 사람 특유의 급함과 다혈질이 온 국민에게 녹아내린 이유라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아니면 경제의 급성장의 잔여물로 그런 성격이 학습되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혹은 도시 과밀화 때문이라기도 한다. 여기 인도는 어떨까? 12억이라는 한국 인구의 24배의 인구가 한반도의 15배 크기의 땅떵이에서 살고 있다. 돈벌러 대도시로 인구가 집중되는 것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기온은 폭염일 때는 51도까지 올라간다. 작은 부딪힘 조차 큰 불편함이다. 하지만 그들은 대수롭지 않다.
오늘은 우다이푸르 뒷 골목을 걷다가 젊은 사내 셋이탄 오토바이가 헛 눈팔던 오토바이와 부딪히는 걸 봤다. 건장한 젊은 사네들은 “에이!” 그 뿐이었다. 헛눈 팔던 사내는 눈인사 한 번으로 미안함을 전했고 그 세 사내는 부러진 오토바이의 앞쪽을 살폈다. 그 조차도 대수롭지 않아 한 것 같았다. 단지 몇 일 동안 단지 몇 건의 사실들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마치 한 명의 외국인이 하는 행동으로 그 나라 전체가 그렇게 한 행동습관 처럼 이야기 하는 것 처럼말이다.
그런데 그 대수롭지 않아함이 의미롭게 다가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뭐가 그리 힘들어서 다투었는지 뭐가 그리 일이 많아서 정신없다를 온 몸으로 표현하고 다녔 던지. 그냥 함께 살아가고 있는 건데, 뭐가 그리 마음에 안드는 것이 많고 뭐가 그리 불편한 것들이 많았던 걸까? 잠시 생각해보면 그리 대수로운 일들도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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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메이커의 야심, 영화 '더 킹'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건 꽤나 오랜만이었다. 집에서 가장 큰 티비에 맥미니를 설치한 뒤로는 대부분 다운로드를 해서 영화를 본다.
집에서 보는 것과 극장에서 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안다. 특히 집중도에 있어서 다르다는 것을 알지만 몇 번을 혼자라도 가야지 생각하곤 귀찮음과 게으름으로 집을 나서지 않았다.
‘THE KING’ 이년 전 즈음에 구상되어 작년 초에 크랭크업을 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올 해 대통령선거에 맞춰 한재림 감독이 기획을 했던 듯 보였다. 특히 마지막 박태수 역의 조인성이 국회의원 투표결과가 나오기 직전 관객을 향해 ‘결과가 어떻게 됐냐고? 나도 궁금하다. 왜냐하면 그건 당신의 선택에 달렸으니까'란 대사는 흡사 공익광고협의회에서 나올 법한 너무나 직설적인 대사였다. 이 것만 봐도 대선 시점을 노린 상업적 의도로 생각되기 충분했다. 하지만 그 상업적인 의도 이면에 킹메이커의 야심을 숨긴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시작은 전체 흐름상 맨 마지막 직전에서 시작을 한다. 차 안에서 안동하회탈에 대한 시시껄렁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을 한다. 영화의 후반부 다시 이장면이 나오고 결국 영화의 엔딩크래딧이 올라갈 때 그 ‘안동 하회탈'에 대한 이야기가 시시껄렁하지 않은 묵직한 은유로 남기를 바랬으나 다시 생각을 해봐도, 적어도 나에게는 그리되지 않았다. 모든 영화가 꼭 묵직한 은유를 남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진지할 필요도 없다. 타란티노의 영화들도 시작은 대부분 시시껄렁한 대화들이 전부고 그 대화들이 심오한 은유를 내포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좋은 영화로 기억한다. 다만 '더 킹'은 시대를 직설적으로 안고 시작되는 영화치고는 아쉬움은 남는다.
사실 첫 시퀀스가 끝날 때 박태수의 '죽기전에 과거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고 한다’ 라는 대사때문에 한 인생의 변곡점부터 빠르게 전��되는, 모든 것들이 결국 죽기전의 그 '주마등같은 기억'을 보여주는 방식의 영화로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렇게 전개가 빨랐고 마치 예고편을 붙혀놓은 듯한 느낌으로 연출이 된 것인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결국 그저 긴 서사를 빠르게 보여주기 위한 장치에 불과해 보였다. 그 교통사고가 큰 상징을 갖고 마지막을 장식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류준열 역의 두일을 위한 작은 장치에 불과 했다. 전체가 하나의 메시지를 위한 장치들의 연속적인 사건들이었을 때, 모든 장치들이 마지막에 비로소 자리를 잡고 그 단단함과 치밀함에 놀라게 만드는 영화들이 있다. '더 킹'은 그런 정도의 영화는 아닌 듯 보였다.
다만 한재림 감독의 기획력에는 대단함을 느꼈다. 가상의 인물들 주변에 현대사의 자료화면들을 배치하면서 가상의 현실성이 실제성을 얻었고, 특히 역대 대통령의 자료화면들로 자연스럽게 시대를 기억하게 한 것 또한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이자 큰 역할이었다.
첫 장면으로 다시 시간이 되돌아오는 후반부, 어쩌면 그 시점을 기점으로 영화는 1부 '한국의 근대사’, 2부 '당신의 선택은.’ 이렇게 둘로 나눌 수가 있다.
1부 한국의 근대사
박태수(조인성)의 고등학교시절부터 이어지는 진정한 '짱'이 되기 위한 그의 모습이 판타지처럼 이어진다. 동네 주먹으로 짱이 되어 봤자 결국에는 공부벌래들, 그러니까 영화에는 검사같은 놈들이 진짜 짱을 먹는 걸 알고난 뒤 진짜 짱이 되기위해 서울대 - 사법고시 -검사의 과정을 거친다. 역시 판타지처럼. 그 사이 사이에는 전두환 | 노태우 | 김영삼 | 김대중의 시대들을 관통한다. 특히 김대중에서 노무현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부터 '더 킹'은 한 걸음 더 들어간다. 노무현으로 넘어가는 시점, 라인을 타지 못한 한강식(정우성) 라인들은 그 기세가 꺾인다. 이는 아마도 한강식으로 상징되는 1%의 정치검사의 기세를 말하는 듯 보인다. 그렇게 정권과 결탁이 쉽지않은 그들의 시절, 서로의 속내가 날 것으로 드러내던 그 시절, 교통사고의 시점으로 되돌아 온다. 여기서부터 제 2부, 당신의 선택은.? 이 시작된다.
2부 당신의 선택은.
2부의 시작 직전, 태수는 1%가 되기위해 저버렸던 정의의 순간을 되돌아 본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정의를 지켰다면 어떻게 됐을까? 술에 절어 모든 걸 잃은 듯한 태수는 그렇게 어땠을까를 되돌아본다. 그 때 잠시 직전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와 맞물려 그 정의를 지켰다면의 가정된 모습과 노무현의 모습이 오버랩이 되었다. 나의 착각이었겠지. 그렇게 2부는 한강식의 비리를 고발하고 내부적으로 공조할 조력자를 만들고 정치라는 새로운 판에서 다시 짱이 되기위한 시작을 알린다. 2부는 마치 1부에서 그 동안의 우리내 정치 권력을 보여드렸습니다. 그렇게 정리해서 보여드렸습니다. 그러면 이제 당신은 어떤 선택해야 할까요? 라고 묻는 듯 했다. 특정 누구를 위한 상징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리고 태수가 정의를 위해 싸웠다기보다 살려고 발버둥 치는 것 뿐일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그를 누구의 상징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지만 영화는 어찌되었든 달라져야 한다라고는 정확하게 말하는 듯 했다.
류준열을 생각보다 많이 배려한 이미지들이 인상적이었고, 우정출연인 김아중보다 비중이 적은 고아성은 원래 역할이 더 있었던 것일까 궁금증을 유발하기도 하는 영화이다. 영화 자체의 대단함 보다 시기적 기획의 대단함이 느껴졌다. 그렇기에 영화는 좀 더 대중적이고 가벼워진 것이라 믿고 싶어지는 그런 영화였다. 야심을 숨기고 대중적으로 가벼워지는 선거철 정치인을 카피한 방식일 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런 대중적인 가벼움을 위한 조인성의 캐스팅이었다라면 어느정도 납득을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어찌되었든 영화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은연중에 과거 우리의 현대사를 되돌아 보고 정확히는 언제일지 모를 다음 대선에서는 지금과는 달라지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그런 ‘킹 메이커'의 역할을 잘 수행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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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y for SOMETHING
여행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다.
슬쩍 내 뱉은 나의 말들로 주위 사람들은 더욱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주위 사람들 덕에 더욱 여행을 많이 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꽤 바쁜 서른 이후의 시간을 보내고, 잠시 멈추어 생각을 해보니 여행같은 생각이 드는 추억들은 모두 이십대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서른 이후에 다녔던 여행도 ‘여행같았음'에는 분명하지만, 혼자 모든 것을 생각하고 결정하고 해결하며 지냈던 여행은 여전히 스물언저리에 머물러 있었다.
현실을 잠시 멈춘 지금에 와서야 그 것을 알았다.
혼자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이 든 것은 그 때 쯤이었다.
일단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점 점 줄어들고 있는 잔고에 대해 지레겁먹기 전에 저질러야 했다.
그렇게 몇 일 간 나른한 여행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다 뭐든 남겨둘 만한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지금도 연결되어있는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은 너무 많이 연결되어있어 글이건 사진이건 새롭게 무언가를 남기는 것이 멋적었다. 그렇다고 흔히 한다는 네이버 블로그를 하는 건 왠지 너무 드러내려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실 주위에 텀블러를 하는 친구들이 있는 지는 모르지만 일단 그런 친구 하나 기억나지 않는 지금 이 곳이 좀 더 적당한 공간으로 느껴졌다.
분명 계정을 만든 적은 있었지만, 새롭게 만든 메일계정으로 새롭게 만들었다.
아직 시작을 하지 않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처럼 ‘친구 찾기 푸시’ 따위가 있는 지는 잘 모르겠다. 나중에는 몰라도 한 동안은 모르는 채로 공간을 채워두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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