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e-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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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처음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습관적으로 뉴스를 보지 않았고. 하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이틀을 내리 누워있었다. 도망칠 곳은 전혀, 연관 없는. 스마트폰 속의 만화들이었는데..그 곳에서도 사건의 암시를 마주쳐서 나는 누운 그대로 무력하게 울었다.
그 후에는 일로 도망쳤다. 바쁜 한동안. 일 생각으로 머리를 가득 채워보려고 했다. 학교 가는 길. 튜브에서 할머니가 쿵 넘어졌다. 사람들은 달려들어 그녀를 도왔다. 나는 쓰러져있는 그녀를 보면서 속이 울렁거렸다. 땀이 축축히 밴 손을 그러잡으며 숨을 쉬려고 노력했다. 안정제를 파우치에서 왜 뺐더라. 뭐가 그렇게 자신만만했지.
베를린에 가기로 계획이 되어 있었다. 친구의 지인이 그 곳에서 추모식을 한다고 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그 곳에서는 너무 멀리 떨어진. 그래서 그런가 11월에 벌써 영하. 뼈가 시릴만큼 추운 와중에 모여든 낯선 사람들과 함께 흘리는 눈물은 따듯해서 나는 한숨 풀어낼 수 있었다. 사람들, 사람들. 각자의 아픔으로 웅크리고 몸을 비틀면서도 그래도. 서로 눈짓을 보내려고 하는 사람들. 닿으려는 손짓들.
20살 초중반, 내가 속한 사회에서 점점 내가 ‘특이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을 때. 이태원은 다양한 모양의 삶들을 소개해 준 곳이었다. 사람들과 이벤트들을 마주치면서 얻은 유동성으로 나는 타국으로도 갈 수 있었고 죄책감 없이 별스러운 생각을 하면서 다양한 움직임과 몸짓을 시도해볼 수 있었다. 이태원은 그런, 공간인데.
엄마가 늦게 들어오는 나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었다. 그런 식의 패턴을 가지면 너는 위험에 노출 될 확률이 높다고. 나쁜 일이 생길 수 있다고. 그러니 자제하라고. 애써 무시하려고 했지만, 나는 그래서, 낯선 것을 시도할 때마다 항상 무섭다. 하지만 기우라고 생각하고 펼쳐내볼 수 있었는데.
그런 공간에서, 사랑스러운 별스러운 행동을 시도해보려고 모인 사람들이. 그런 사건의 희생자가 되었다는게. 슬픔이 지나간 뒤에 나는 기가 죽었다. 모나지 말라고. 모나면 사건에 휘말린다고. 다시 가능성의 화살을 나에게 돌렸다. 아무렴야 세상이 잘못한 것보다 내가 잘못한게 더 안전한 느낌이니까.
여름에 과 친구들과 극장을 빌려 작은 공연을 기획했었다. 꼬박 한달을 준비했다. 쇼 전날, 런던은 기온이 37도를 웃돌았고, 소극장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만장일치로 - 그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시 되어야한다며 - 공연은 취소되었다. 당연하게. 다시. 일을 할 때 태국에서 여름에 행사를 한 적 있다. 예산이 부족했던 광고주는 세팅 기간 동안 베뉴 내 에어컨을 제한적으로 틀라고 지시했고, 우리 회사는 그에 대해 도의적인 항변을 하지 않았다. 결국 협력사 직원 한 명이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다.
유동적 사고.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으면서, 아니 놓치지 않기 때문에 유연하게 흘러가 닿는 결정이 있었더라면. 나는 좁은 고집스러움에 탓을 돌린다. 특별히 대비하지 않아도 예년처럼 별 일 없을 거라는 고집스러움. 대중의 안전보다 특정 인물의 경호가 더 중요할 거라는 고집스러움. 신고가 접수되어도 어차피 시끄러운 곳이니 이 늦은 시간에 굳이 상사를 괴롭히지 않아도 된다는 고집스러움. 만연한 옹고집들이 모여서 단단한 벽을 만들었고, 벽은 너무 가까이에 있었고 좁았다. 우리는 짓눌렸다.
특정인이나 단체에게 책임을 묻고 싶지 않다. 면피와 회유가 겹쳐서 책임자가 생기는 꼴을 많이 봐왔다. 특정 단체의 잘못이라는 생각에 고정되면 실수를 반복할 뿐이다. 다만. 이상한 똥고집을 부렸다는 사실을 알려줘야한다. 목을 가다듬고, 분명하게 말해줘야한다. 그런 옹고집이 다시 힘을 발휘할 수 없도록, 유연하게 사회를 구축해나갈 수 있게. 목소리를 내야한다.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목소리로 발화하는 우리는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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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안정감 있는 거실과 귀여운 고양이 덕에 조금 유연해진 우리는 아무말을 카펫 위에 늘어놓다가. 너도 네 인생에 시나리오를 써?라는 질문을 받았고. 나는 문맥을 파악하지 못 하다가. 아, 하고. 응 그 시나리오를 그리고 몇 번씩 리허설 해. 돌리고 돌려보다가 감정을 느껴. 그 감정은 진짜야. 정말 슬프고 기뻐. 그럼 그게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게 돼. 그 길 들이 한번에 10개씩 펼쳐져서 그럼 난 현실을 살아갈 에너지가 없어져. 쏟아냈을 때 다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준게 나는 조금 안쓰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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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곤하고 지진한 세월 혹은 평생을 보낸 후에 지금 만족스럽다고, 마침내 사람 좋은 웃음을 띄며 현재를 말하는 너의 손은 더 이상 아이폰을 찾지 않았고, 나도 덩달아 느낀 안정감. 그런 멋진 사람이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꼬옥 안아줬을 때 역시 사람은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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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의 집에 갔을 때, 그 집의 주인이 냉장고에서 4캔 만원의 맥주 중 2캔을 챙겨오다가 물었다. 사랑이 뭐지? 우리는 그 때 사회적 거리두기로 조금 침잠해 있어서, 그 질문이 우악스럽지 않았고. 느슨한 긴장으로 몸을 웅크리고 있던 나는, 마침, 나도 그게 오랫동안 궁금하던 참이라. 여기저기서 긁어 모은 구절들을 잠시 떠올리다가. 무력하게 모르겠어요. 그리고나서 변명하듯이, 그렇지만 오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친구와 술에 만취했을 때 experience machine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러니까, 사람 몸만한 수조관에. 호흡기를 끼고. 머리에 온갖 전선을 연결한 상태로. 네가 원하는 것만 보고 느끼면서. 평생 누워있는거야. 친구는 토해내듯이 그렇다면 난 그렇게 살래….
그 때도 나는 모르겠다고 대답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고 싶은데. 그런데 아무 서사 없이, 무의 상태에서 그저 꽉 찬 느낌만 받겠다고.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없이, 그러니까 그게 상관도 없을 정도로 그저 꽉-찬.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는.
다시. 사랑이 뭐지? 느낌이라면.
꼭 사람이랑 해야 하는건가. 섹스돌과, 망가 캐릭터와의 사랑은 왜 사랑이 아니야. 식물에 대한 사랑은. 사상에 대한 사랑은. 종교에 대한 사랑은. 환상에 대한 사랑은. 왜 두 발 달려서 직립보행을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만이 사랑의 대상이어야 하지.
로봇, AI, 메타버스, 매신러닝, A-life…들의 단어가 쏟아져 나올 때 나는. 이제 여행을 ���니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안심했다, 조급해져서, 안심할 수 있는 안심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만들었다. 안전하게 내가 만들어서, 그래서 속속들이 알아서, 실망하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을 그렇게, 그냥 내가 만들어내서….상념 없이 그저 느낌만 꽉 찰 수 있게….그렇게 행복하다면 이게 사랑이라고. 해볼 수 있으려나….
피그말리온이 옆에 있었던가, 이미 환생하실 때가 지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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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조금 무덤의 아가리가 벌어진다. 널빤지가 짜개지는 소리가 나고 앙상히 마른 두 손이 삐끄덕거리며 기어나온다. 그리고 내리던 눈이 멎는다. 바람이 잠잠하다. 달이 얼어붙은 구름 뒤로 스민다. 꿩인지 오소리인지 날개 달리고 다리 달린 것들이 눈을 감는다. 개의 눈에만 퍼런 번개가 친다. 개는 뒷걸음질치다 다가서다 비명을 지르다 나뒹군다. 캉, 카앙. 안타까운 퍼런 눈은 피범벅이다. 그들의 몸은 이미 안에 들어와 있다. 밑으로 밑으로 한없이 아늑한 웅덩이다. 어딜 그렇게 헤매고 다녔던 것인지.
- 신경숙, 새야 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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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흘러 9월말
8월까지는 여름이 오기를 기다렸고 9월부터는 여름이 가기를 기다렸다. 다시. 런던에 있을 때는 한국에 가기를 기다리고 한국에 있을 때는 런던에 가기를 기다렸다. 돌아오기위해 떠난다. 떠난 곳을 돌아가기 위해 또 떠난다. 그렇다면 기다림과 중간적 상태와 기대 그리고 환상만 있고 나는 30년을 지나오면서. 정각은 바라보는 법을 잊게 된건 아닐까라는. 그래서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에야, 아 그 때. 너무 반짝거려서 느낀 아뜩함이 여름이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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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te full moon - it's full I donnt know what to do and what's poss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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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리지 못한 것을 위해 얼만큼을 헤메이었나요, 그 속에서 당신은 당신때문에 아파하는 이들을 보며 얼마만큼 아파했나요? 나의 가치라고 최선의 노력을 부었지만 결국에 상처만 된 그 소망들도 마지막 들숨과 함께- 왜 하필 인건은 태어날때 날숨, 마지막은 들숨인 걸까요, 우리는 뭘 그렇게 놓고싶었지?
대관절 혐오스러울정도로 그리 강인했으면서 약해지면 무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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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슬픔은 체취가 불러일으키는 기억을 앗아가고, 무절제한 탐욕은 진진함을 잊게하고, 일방적인 표출에 귀기울이지 못하고, 그제서야 가장 아름답게 보았을 때 모든 것이 암흑으로
암흑의 눈이 우리를 꽁꽁 덮은 상태. 지나간 우리는 가끔 잊혀져 불안하기도하지만 그 때 그것을 했다는 변치 못하는 사실, 그 안에서 걷어내니 명료해져
- 묘연히 발견하면 우리 바라본다,
상실함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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