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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바이러스, 종교, 이동, 공동체, 네트워크
사스,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는 모두 야생동물을 잡으며 이를 가두고 밀집시키고 요리하고 해체하고 다루는 데에서 생겨난다. 비위생적 처리와 민간요법으로 인해 생긴다.
즉, 가축뿐만 아니라 인간이 동물을 잡고 먹거나 할때 생겨난다.
사스,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는 소화기 호흡기를 통해 전파되며 병원균이 전파된다. 일반 감기와 같이 위장하다가 죽인다. 바이러스 또한 똑똑해지며 인간을 매개로 이동한다.
코로나는 왕관을 뜻하며 왕관모양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듯하다.
사스는 홍콩에서 메르스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퍼졌고, 신종코로나 (코비드19)는 중국 우한을 중심으로 퍼졌다.
개체가 페쇄네트워크를 만나면 급속도로 퍼진다.
코로나는 비밀의 불법의 강력하고도 광적인 네트워크를 만났고 암암리에 비밀의 불법의 상황으로 기하급수적으로 퍼졌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에게 빚지며 살고있는 삶이기 때문이며, 바이러스는 이러한 연결 네트워크를 수면위로 드러낸다.
코로나를 통해 배운점이 있다며 우선 동물에 대한 인간의 무분별한 사용이 사라져야할것이며 이에 조금이라도 노력해야한다.
네트워크 공동체에 대하여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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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박테리아등으로 인간이 이루어져있다.
단일하지 않다.
몇백년전에는 녹조는 광합성을 하는 아주 좋은 생물로 인식되었다.
수평적 유전자
도나 헤러웨이
-우리는 individual 이였던 적이 없다.
기본적으로 카테고리라고 하는것은 폭력을 내재하고 있다.
본질화된 카테고리의 문제 / 폭력을 정당화 /
끝없는 위계의 발생
Killing/ murder
동물의 살인
능력/ 예를들어 움직일수있느냐, 매장할수 있느냐에 따라 정의 된다. 동물 식물, 등등
/// 데리다 ///
고��이한테 나는 무엇일까?
상실의 문제가 아니고, 다른것이다.
데리다 : 고통을 겪을수 있느냐의 문제로 변화
희생이라는 말
다나헤러웨이 이분법으로 세상을 바라볼수 없다
인간은 동물을먹는다. 그러므로 인간은 인간을 먹는다?! : 포스트모던의 윤리의 불가능성
인간의 90%는 박테리아이고
우리는 개체인적이 없다.
서로가 손을뻗응것에서 상대와 자기를 구성한다.
파악의 합생
능동과 수동이
관계를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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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탈리아 - 더이상 계급이기를 그친 계급
“프롤레탈리아"
브루주아라는 계급 자체를 제거하려는 운동
자본주의 생산 양식 자체를 전복하려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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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에도 우정의 정치학이 가능한가? 아니 우정의 정치학을 가동해야 하는가? 계급적 적대가, 혹은 어떤 적대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조건에서 우정의 정치학이 과연 가능한 것이며 바람직한 것인가? 혹은 적대가 실존하는 조건에서 우정은 적대와 어떤 관계를 맺는가?
먼저 말해둘 것은 여기서 말하는 우정이 인간들 사이의 관계로 제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정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도 역시 타당하며, 나아가 개인과 계급, 개인과 집단 간에도 가능하다. 이때 우정은 개체 간의 무차별적 관계 일반이 아니며, 심지어 이웃 관계 일반도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종류의 이웃 관계고, 개체간에 형성되는 특정한 종류의 관계다. 즉 우정역시 다른 관계 처럼 ‘문턱' 들을 지닌다. 그 문턱들 너머에는 ‘사랑’ 이라고 불리는 관계가 있고, 좀 더 일반적인 타자 관계가 있으며, 경제적인 이해 관계, 경쟁관계, 혹은 적대 관계 등이 있다.
우정이 이해 관계가 아닌 한, 경제적 대립이나 정치적 적대에 의해 동일하게 절단 되지는 않는다. 즉 경제적 대립이나 정치적 적대가 우정의 형성을 저해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고는 해도 그것이 우정을 막는 결정적인 경계는 되지 못한다. 긍정적 감응이 발생하고 지속된다면 경제적 이해 관계나 정치적 적대 관계를 가로질러 우정의 관계가 형성된다. 아마도 이것이 마르크스나 엥겔스가 자신의 ‘출신 계급'을 뛰어 넘어 프롤레타리아에 근접하게 되고 프롤레타리아와 우정을 맺게된 이유였을 것이다.
이해관계의 대립이 있으면 경쟁의 경제가 작동하고, 적대관계가 있으면 적대의 정치학이 작용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브르주아와 프롤레탈리아의 관계를 우정의 정치학으로 대신할 수 는 없다. 다만 모든 관계를 두 계급의 적대로 환원해서는 안되며, 종종 그 경계선을 가로지르면서 우정의 정치가 작동하기도 한다는 것을 강조해둘 필요가 있다.
코뮨주의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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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하루를 중요하게 살아야 한다.
오늘 급격한 태풍을 맞았던 일본에서 친구가 한말이다. 그리고 오늘은 한 k pop 스타가 자살한 날이기도 하다. 나는 우리가 서로를 서로를 미워하지 말고, 가능하다면 조금은 이해하기를 바란다. 말로써 누군가에게 나도 모르게 무엇인가를 강요하는것이 아니라, 한번씩은 상대를 이해해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나는 나의 삶을 나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다. 누구에게 보여주거나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나의 삶을 24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중요하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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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짜 하고 싶은게 무엇일까 고민해보게 된다.
다양성의 사회/ 의미있는 일을 하자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1. 좋은 목표를 위해 의미있는 일을 위해 노력할 것
2. 내가 생각하는 목표를 구체화 할것 이제 아무것도 방해물이 없다. 내 솔직한 마음을 얘기해보고 그것을 위해 살것
3. 남에게 빌붙어 살지 말자
4. 도시 삶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5. 전시나 발표는 심지어 안해도 된다. 내가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해
6. 공동체 네트워크 / 너무나 다른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권력앞에서는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무엇인가를 눈감는다.
우리는 좋은면만 바라보며 움직일때 이 좋은면만을 따라간다.
디자인 / 자본주의/ 계획의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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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이유에서든 (이익을 위해서든, 의견을 모으기 위해서, 혹은 차선책으로서) 기관, 단체, 기업, 커뮤니티, 공동체등이라는 말로 점점 더 파이와 규모는 커지는데, 개인은 점점 더 사라지거나 보이지 않게 되는 것 같다. 그럴수록 작지만 개인의 자연스러운 삶이 존중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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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은 자동차보다 오토바이가 10배나 많고, 태국인의 오토바이 사랑은 1950년대 미국인의 자동차 사랑에 버금갈 정도이다. 밤이면 십대들이 각자 개조한 혼다를 끌고나와 안장위에 납작 업드리고 두다리를 뒤로 뻗은 상태로 고속도로에서 역주행 경주를 벌이는가 하면, 태국의 유행가에서 오토바이가 해방의 상징으로 예찬된다. 예를 들어 태국 북부의 전통음악인 이산의 근거한 모름람싱이라는 장르에서는 대마무로 만든 관악기 켄과 전자기타를 이용하는 것이 특징인데, 이장르의 명칭 자체가 오토바이와 연관성이 있다. 싱은 영어의 경주의 축약형이기 때문이다. 이 장르의 노래 가운데 상당수는 마을을 떠나는 것을 내용으로 하며, 도시로의 이주, 사랑을 찾고 오토바이를 사는 것등을 소재로 한다.
하지만 이처럼 날렵한 오토바이를 소유해도 방콕의 통근시간은 전 세계에서 가장 긴편이다. 오토바이도, 또한, 오토바이 뒤쪽에 좌석과 차양을 덧붙인 삼륜차 툭툭도 너무 많아서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교통체증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게다가 적도에서 멀지 않은 이 남아시아의 도시에서는 오토바이가 까다롭고 불편한 통근수단이다. 열대지역은 위도상 더 북쪽의 지역보다 낮의 길이가 짧기 때문에, 부지런한 여행자는 날이 밝기도 전에 일터로 출발했다가 어두워진 뒤에야 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았다. 이들은 일터를 오가는 여정중에 몬순 소나기의 공격을 당했다. 결국 오늘날 태국에서 오토바이는 이종의 징검다리로 여겨지며, 통근자는 에어컨과 색유리가 달린 자동차를 구매할 여력이 생기자 마자 자동차를 산다. 실제로 태국 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부자와 빈자의 통근패턴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사다리에서 맨 밑의 사람의 경우, 일터로가려면 인파에 시달리며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편도로만 한시간 또는 그이상을 걸어야한다. 사다리 중간쯤에 있는 사람은 두바퀴 차량이나 툭툭으 이용하고, 같은 시간동안 더 먼거리를 이동한다. 반면 여유가 있는 사람, 특히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은 자기 자동차를 직접 몰거나 누군가에게 몰게해서 장거리를 오간다. 낮에는 방콕 중심부에서 일하고, 밤에는 교외의 저택에서 휴식을 취한다.
출퇴근의 역사 이언게이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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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자들은 전반적인 이동의 자유에 대해, 특히 통근에 대해 편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마오쩌둥 치하의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양쪽 모두가 증오의 대상이였으며, 통근이 허용된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두바퀴에 의존한 이동에 한정된 것이였다. 중국은 1차 5개년 계획 (1953-1957) 때 웅장하지만 짧은 지하철 시스템 대신 오히려 자전거 공장에 집중했다. 베이징의 거리에서 제국주의자가 설치한 전차노선이 철거되고 자전거가 다닐 공간이 생겨났다.
중국은 1953년 베이징에 지하철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계획하기 시작했지만, 대약진 운동(1958-1961)으로 그 계획은 잠시 미뤄졌다. 이때에는 이념이 경제행위를 지배했으며, 사실상 지하철을 건설할 열정도 자원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1965년에야 건설이 시작되었고, 1969년 10월 1일에 처음 21킬로미터 구간이 개통되었다. 명목상으로는 당이 인민에게 주는 20주년 선물이었지만, 정작 대부분의 인민은 그것의 이용허가를 얻지 못했다. 신분증을 제시한뒤 여러가지 질문에 답변해야 비로소 승차권을 살 수 있었는데, 이러한 관행이 1981년까지 계속되었다. 개인용 운송수단 부문의 발전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미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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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일터에 가는 방법으로서 보통의 중국인들이 유일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걷기를 제외하면 자전거 뿐이였다. 그러난 자전거를 사거나 타고 다니는 데도, 당의 허가를 받아야 햇으며, 그런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모범 공산주의자가 되어야만 했다. 모두가 원하는 자전거는 페이거 ‘날아가는 비둘기’라고 불리는 모델이었는데, 가격이 두달치 봉급에 맞먹는데다 예약이 많아서 3년은 기다려야했다. 이모델은 기어가 하나뿐이고, 핸들이 뒤로 휘어졌으며, 커다란 바퀴와 원시적인 브레이크를 장착하고 포드 T 모델과 마찬가지로 검은색 한가지로만 생산되었다.
‘날아가는 비둘기’는 첫선을 보인 1950년이후 최소한 5억대가 생산되었다.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차량이 아닐 수 없었다. 1978년 주석이 된 덩 샤오핑은 집집마다 비둘기 한대씩있는것이 곧 번영이라고 정의했다. 급기야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신부감들이 바둘기를 살 능력이 없는 신랑감들을 거절하는 일도 종종 벌어졌다.
출퇴근의 역사 이언 게이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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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은 통근이라는 관습에서 서구보다 훨씬 더 뒤떨어져 있었지만, 통근의 이론에서는 시대를 앞서 있었다. 소련의 교통계획가들은 국민들이 대중교통에서 온전히 숨을 수려면 충분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승객 1인당 최소산 200제곱센티미터의 공간을 확보할 것을 의무화 했다. 또한 그들은 일반노동자가 통근 과정에서 활력을 잃게 되는 한계 시간을 조사햇다. 그 결과 일터까지의 여정에 걸리는 권장시간은 중소 도시에서 30-40분이내, 대도시에서는 한시간 이내라는 기본규칙을 내놓았다. 통근 시간이 이 한계 시간을 넘을경우, 추가시간 10분당 생산성이 2.5퍼���트에서 3퍼센트씩 떨어진다는 것이였다.
출퇴근의 역사 이언 게이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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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ama 1930년대 뉴욕 세계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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