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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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 둘째날
마사지샵에서 이후 우리부부의 성생활은 큰변화를 겪는다.
아내가 지금까지 감추어 왔던 성욕을 발견하게 된 동기가 되었고 아내는 더욱 당당해지게 된 것이다.
이런 일의 근원은 나에게 있는데 한창 잘나갈 때 거래처 직원들과 나이트가서 주부들과 엄청 섹을 하곤 했다. 적어도 한달에 두세번 이상은 기본으로 했다. 아내에게 거래처 직원들에게
술대접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내도 알지만 나이트가서 아줌마들과 섹하는 거는 몰랐는데 꼬리 길면 그렇게 된다.
난리나고 이혼법정까지 가고 빌고 해서 다시는 않겠노라 혈서
쓰고 이후 매일 오전 운동하고 가게오고 같이 움직이게 된 것이다.
아내도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다. 40대 중반 이혼법정 설 때
약 일년 정도 별거를 했었는데 그때 아내의 행적이 의심스럽지만 증거가 없었다.
이제는 아내와 수시로 생맥 때리면서 섹에 대해서 허물없이
이야기도 하고 더 늙기전에 건강하게 즐기자.
그런데 우리는 항상 같이 한다. 가 선언문이다.
이제는 좆이 시들하니 여러 가지 보조식품을 먹는다.
그덕인지 좀 제대로 설때도 있다.
나는 사실 스와핑보다는 아내가 다른놈 배밑에서 신음하고
단단한 좆이 아내보지를 쑤시는 걸 상상한다. 병이다.
생각보다 나같은 이상한 놈이 제법있더라는 것이다.
크고 굵고 단단하고 긴 좆을 가진 잘 생긴 남자가 내 사랑하는
아내의 보지에 들어가는 상상만 해도 좆이 흥분되고 온몸에서
힘이 나는걸 느낀다. 미친놈이라 해도 어쩔수 없다.
10여년 전부터 어느날 생긴 이 감정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가게에서 아내 뒷모습만 보면 다른 놈 좆이 아내 보지에 들어가는
상상을 하게 된다. 그러면 좆에 힘이 온몸에 정열이 쏟는다.
그래서 아내와 둘이 퇴근하다가 한잔하면서 아내에게 조용히 이야기 했다. 처음에는 병원가서 치료하자고 했다. 아니 극복할수 있다. 그냥 상상한다. 당신이 다른 멋진 놈, 좆도 멋진 놈과
씹하는 판타지 그냥 판타지 이게 원동력이다.
당신이 30대 정도의 젊은 남자와 멋진 섹스를 내 앞에서 한다면 이게 나의 판타지다.
생맥 때릴 때 마다 이야기하니 이제는 오늘은 어떤 놈과 할까
먼저 얘기한다. 음 오늘은 아프리카 여행가서 흑인 원주민에게
따먹히는게 어떨까 하면 팬티 젖었다. 축축해졌어 하고 웃는다.
또 하루는 남자는 이나이에 한명도 처리하기 힘들지만
여자는 여러명도 가능하지 남자처럼 좆을 세워야만 되는게 아니니까 여보 당신은 만약 된다면 몇 명을 상대 할수 있겠나 라고 물으니 여러명은 너무 창녀같고 제대로 힘쓰는 2명 정도는
상대할 수 있다고 하며 우리는 또라이부부야 미친부부 웃는다.
내가 아내에게 나는 다른여자가 하기 힘들지만 당신은 가능하니 기회되면 함 해보자. 이 남편의 판타지를
그리고 칭찬을 한다. 당신 50중반이라도 피부, 너무 깨끗한 보지, 보지털은 천하일품이다. 야동. 야사에도 당신꺼보다
이쁜거는 못봤네, 다른 넘들 당신 보지만 보면 미칠거야.
당신 보지 야사로 올려 초대남 모집해 볼까. 후후후
그말에 아내는 내꺼 이쁜건가 하고 미친 남편 놈 한다.
또 어느날 생맥중 여보 오늘 당신 엄청 이쁘네. 오늘 한놈 꼬셔 판타지 함 해보자 하니, 아내 왈 조건이 있다.
소문, 잘 못될까 두렵다. 마사지샵처럼 그런게 아니지 않나.
놈의 신원확실, 건강, 인간성, 좆크기, 섹능력, 독신이나 미혼을 말하며 여기에 충족되면 당신 판타지 해준다. 라고
이런놈을 어디서 구하나 틈틈이 알아보자. 정보수집에 나섰다.
몇 개월 후 그해 여름은 너무 더웠다.
남쪽지방에 배달이 있어 혼자 남쪽 바닷가 도시로 배달을 가게
되었는데 사장이 멀리 왔는데 방 잡아 줄테니 한잔하시고 내일
가세요. 하는데 예의상 도리가 아닌지라 그러기로 하고 아내에게 내일가는데 당신 고속버스 타고 지금 출발하면 저녁시간에
도착해서 같이 식사할 수 있다. 하니 아내 출발한다.
모텔은 가본중 거의 최상급이고 특실이다. 엄청 크고
별 시설이 다있네 죽인다.
그사이 배달 마무리하고 모텔에 들어와서 씻고 기다리다가 아내가 저녁에 오면 남쪽에서 찐한 섹을 하기로 기대하다가 문득
아내 야사 올린거 생각나 들어가보니 이놈들 충성을 다하겠다.
목숨 바치겠다 하는 놈들 수두룩 하네. 그중 몇놈 골라서 인물,
좆 사진 보내라하니 얼마후 마구마구 오는데 이도시에 사는 30대 두명을 선정하고 꼭 되는거는 아니고 아내가 허락해야 되고 등등 설명하고 가능하면 밤12시 쯤에 연락하겠다. 하고
7시에 사장과 직원들과 장어, 회등 식사중 아내가 근���에 도착했다고 해서 아내도 같이 합석하게 된다.
사장, 직원들 같이 폭탄주 돌리고 아내에게도 사모님 하면서
기듯이 예의지키며 폭탄주 권하니 어쩔수 없이 마신다.
사모님 오시어 룸노래방 까지 양주까지 드시어 우리는 드디어
만취하게 되고 11시쯤 헤어지고 모텔 특실 입성 다시 우리는 같이 샤워하고 맥주 한캔 까자 마시다가 아내에게 멋진 좆들 2명 대기중인데 판타지 해보자 하니 잠시 머뭇거리다가 놈들 면상 보고 결정하겠다는 말씀,
즉시 연락하니 인근에서 한잔중이고 금방 갑니다.
한놈 또 한놈이 맥주들고 똑똑 들어오는데 체격이 좋고 인상도좋다. 이 두놈은 서로를 모른다.
근데 아내가 당황해 한다. 많이 취했지만 술이 깨는 듯 남자들을 보고 당황해 하고 힘들어 한다.
그래서 우선 한잔하자 아내는 샤워후 가운 차림으로 속옷은 입지 않은 상태 인데 아내의 풍만한 가슴이 거의 노출되어 있다.
비록 50대 중반 늙은 아줌마 이지만 어두운 불빛에 그런대로
섹감이 있다.
캔을 까서 긴장감을 풀기위해 이야기하던중 아내가 갑자기 안하겠다는 것이다. 돌아가라고 한다. 지금 당장 우리는 자야된다. 미안하지만 기분이 안내킨다. 사실 이런 경험없다.
가라고 하자 두놈은 머쓱하여 일어선다.
순간 야설에서 야동에서 본 게 기억나서 가라하면서 방안불을
하나만 남겨놓고 전부 꺼버렸다.
가는 척하면서 두놈을 문 옆에 숨기고 아내에게 다가가 자자
하면서 아내를 애무한다. 오늘 찐하게 해보자.
특실값을 해야지 하면서 애무하니 달아오른다. 아내는 보지
빨림에 약하다. 거의 죽음으로 간다.
아내 보지를 빨다가 좆이 흐물흐물이다. 겨우 삽입한 상태로
귀에 대고 여보 당신 가만 있으면 돼 , 모른척 하고 가만 있어
내가 알아서 할테니 아내가 그사람들 안갔어 하네 , 그냥
가만 있으면 돼 여보 판타지 여보. 하니 알았어 조용하 말한다,
아내 눈에 안대를 씌우고 침대가 원형이라 아래로 눕혀놓고
두놈을 불러 조용히 다가와서 보지를 빨게 했다. 한놈이 먼저
보지를 빨자 아내는 흥분지수가 급상승 아아악아악 어어엉엉엉
하고 신음한다.
십분여를 빨게 하다가 삽입을 시킨다.
첫째놈 좆이 좋다. 길이 굵기 대차다. 힘찬 좆이다. 내가 손으로 잡고 아내 보지에 대고 , 여보 오늘 당신 죽는 날이다.
신나게 해보자 , 당신 하고 싶은대로 섹스 해보라,
삽입하자 아내는 헉헉한다. 굵고 힘찬 좆대가리가 보지에 들어가니 아내 등이 휘어지네 . 50대 보지도 젊은 보지 못지않다.
불을 켜고 보니 아내 보지가 좆을 물어준다.
이제 한놈은 상당히 미남이네 . 착해보이는데 좆도 좋다.
한놈은 박아대고 한놈은 아내와 키스를 시킨다.
아내가 키스를 잘한다. 박히면서 다른넘과 키스하는 장면 완전 판타지다. 그리던 판타지
한놈이 쌀 것 같다고 해서 미남이 삽입하여 박는다.
아내의 신음은 이제 비명으로 변했고 울고 있다.
오십중반 여자가 ��십대와 씹하면서 울고 있다.
엉엉, 우억우억, 어럭억 울음과 비명이 교차하면서
두놈과 씹을 하는 나의 아내 그리고 나의 판타지
우와 정말 바라보는 나는 숨이 막일 지경이다.
아내 보지에 다른 좆이 들락거리는 광경은 정말 최고의 장관이다. 같은 또라이 성향을 가진 놈들은 알 것이다.
한놈은 뒤치기로 한놈은 아내에게 좆 빨리는 저 광경 외국 야동에서나 보던 것이 지금 내 눈앞에서 아내가 이대일로 즐기고
있다.
아내가 숨이 멎을거 같아 잠시 중지시킨 다음 아내 안대를 벗기고 전부 앉아서 맥주 한캔 까기로 하고 나는 맥주를 입에 머금고 아내 입에 넣어주었다.
한놈이 양주 작은거 있다면서 양주를 입에 한잔 머금고 아내
입에 넣어주고 미남을 보지를 못빨아서 지금 빨고 싶다한다.
아내가 벌려주니 와 누님 정말 이쁘네요. 영광입니다,
이런 보지를 먹어보다니 하면서 미친 듯이 아내보지를 먹어대네 아내 목이 젖혀지며 또 운다. 가슴이 흔들리며 운다.
이놈 젊은 놈이 보지 빠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네
이놈 말이 가까운 여자에게서 배운거라고 하는데 가까운 사람이 누군지는 말 못한다. 평생 비밀이다라고 하는데
이놈 좀 수상하다.
그나저나 이놈 보지빠는 실력에 아내는 미쳐간다.
한캔씩 마시고 한놈이 이제 2차 대전입니다. 한다.
몇차 까지 가능한가 하니 새벽까지 가능합니다라고 하네.
다시 이차대전 시작 한놈이 삽입해서 박으면 한놈은 누워서
박혀있는 보지를 빨아준다. 마치 원팀처럼 움직이면서 교대로
온몸을 애무하고 빨고 박은 자세에서 회전 돌리기 까지 하면서
아내를 아주 죽여 놓는데 아내가 하는 말 야 너희들 왜 안 싸니 하니 이제 쌉니다.
아내를 옆치기로 마구 박다가 사정하고 한놈은 아내를 눕혀놓고 다리를 붙힌 상태에서 보지가 볼록 올라오는데 삽입하더니
쪼그려 앉은 자세로 신나게 박아대다가 쌉니다. 하니
아내의 신음소리가 절정에 이른다. 이 아아악 아악악악악 그대
싸 이놈아 싸 하면서 엉덩이를 들어 올려준다. 동시에 두년놈이 아아아우허헉 엉엉 하악 하면서 사정을 한다.
한놈 아내 허벅지에 한놈은 보지에 사정을 한 것이다.
아내가 빼지마, 그대로 거친 숨을 몰아쉬더니 한참후 스르르
좆이 빠진다.
아내가 힘겹게 일어나서 화장실로 가니 두놈이 눈짓하더니
따라간다. 아내가 오줌을 싸고 보지를 씻는데 두놈이 아내를 씻겨준다. 누님 저희들이 하면서 온몸을 비누칠 해서 정성스럽게 씻기고 보지를 깨끗이 샤워기로 뿌려가며 씻긴다.
아내는 두놈 좆을 씻겨주고 나온다.
네명의 미친 년놈들은 새벽2시에 또 맥주로 회복한다.
아내가 무슨 좆물이 그렇게 ���아 얼마나 굶었기에 사정액이
한사발 같다고 말하니 이놈들 오래되서 기억이 가물가물 하면서 아내 앞에서 애교 떤다.
삼십여분 지나자 한놈이 아내 곁으로 다가가더니 아내 젖가슴을 빨고 손은 보지를 애무하니 한놈은 아내에게 키스를 시작한다. 아내가 숨막혀 하다가 그만그만 나 죽는다. 이제 더 이상
못해 하니 이놈들 나를 쳐다본다.
아내에게 한판만 더해 너무 오래는 말고 하니 한놈이 사정이
완전히 안되었다고 하면서 이번에 제대로 시원하게 깊숙이
싸고 싶다고 누님 하면서 애원을 한다.
마지못해 다시 하는데 지친 아내가 또다시 운다.
울면서 일년동안 안해도 될거 같아. 이 자식들 너무하네
사람을 아주 죽인다 죽여 이놈들아 하면서 신음 비명을 지르는데 그소리가 아주 정말 남편이랑 할 때 한번도 듣지 못한 신음
그만큼 남편이 부실하고 부족하다는 증거다 .
여자는 누가 연주하는가에 달렸다. 이 두놈이 아내를 아주 아작내듯이 연주하는데 사운드가 초고음질 사운드가 방안을 울리는데 나는 이제 좆이 아프다. 싸지도 못하고 바라보는 내좆은
이제 좆물과 좆대가 아푸다.
결국 이두놈은 한시간 동안 아내를 아작내고 한놈은 아내 보지
깊숙이 싸면서 아내와 그놈 신음소리는 우아아악 허억허억
누님 누님 하면서 꼭 안고 엉덩이를 돌리면서 최대한 밀착하면서 사정하는 것이다.
다른 한놈은 뒤치기로 아내의 엉덩이를 잡고 최대한 깊숙이 박은 다음 엉덩이를 서로 밀착하면서 또다시 비명을 지르며 싼다.
그렇게 한참후 아내를 씻긴 후 또 맥주 한캔이다.
벌써 4시가 되었는데 이놈들 거의 4시간을 한 것이다.
나는 10분 끝인데 젊음은 이렇다.
이놈들 3차대전을 준비하는데 이제는 안된다. 다음이 있지 않나. 우리가 서울로 초대하겠다 약속하고 마무리로 아내가 두놈
좆을 번갈아 가며 십여분간 빨아주고 보냈다.
이놈들 상당히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대학도 좋은데 나왔고 직급도 좋은데 결혼도 않하고 이러고 있네
그 이유는 둘다 돌싱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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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많은 서구인들이 르완다라는 국가의 존재를 처음으로 의식했다. 르완다는 중앙아프리카 산악지대에 있는 작은 나라로, 인구밀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먼 옛날 그곳에서 살았던 수렵채집인은 세계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지난 천 년간 농부들과 목축민에게 쫓겨났고, 그것에 정착한 농부들과 목축민은 각각 후투족과 투치족이 되었다. 이들은 정말 비슷한 시기에 왔는가, 정말 다른 민족 집단인가는 아직 논의되는 문제이지만, 아무튼 후투족과 투치족은 우리/그들 가르기를 맹렬하게 수행했다. 전통적으로는 소수인 투치족이 후투족을 지배했다. 아프리카의 목축민/농부 역학관계가 흔히 그렇다. 이후 독일과 벨기에 식민 지배자들이 고전적인 분리통치 기법에 따라 이 지배관계를 활용했고, 부족 간 적대심은 더 악화했다.
1962년 독립과 ���불어 형세가 역전되었다. 이제 후투족이 정부를 장악했다. 많은 투치족이 차별과 폭력을 겪다 못해 나라를 떴고, 이후 이웃 나라들에서 난민 생활을 하며 반군을 결성하여 수시로 르완다로 쳐들어와서 자신들을 위한 안전한 피난처를 마련하려고 했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후투족은 그에 대응하여 반反투치 공격성을 키웠고 더 많은 차별과 학살을 저질렀다. 이후 벌어진 사건에서 한 가지 아이러니는, 후투와 투치가 애초에 다른 민족인지조차 불확실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듯 양측을 구별하는 게 늘 가능하진 않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누가 어느 민족인지를 확인하는 데는 신분증이 필요했다.
1994년 당시 르완다 대통령은 쥐베날 하브야리마나였다. 후투족 군인 출신으로 1973년 권력을 잡은 독재자였던 그는 투치족 반군의 압박에 못 이겨 반군과 권력을 공유하기로 하는 평화협정에 그해 서명했다. 세를 키워가던 ‘후투 파워’ 극단주의 진영은 협정을 배신으로 간주했다. 1994년 4월 6일, 하브야리마나가 탄 비행기가 수도 키갈리에 접근하던 중 미사일에 격추되었다. 탑승자 전원이 숨졌다. 암살을 저지른 것이 투치 반군이었는지, 아니면 하브야리마나도 없애고 그 죄도 투치에게 덮어씌우려고 꾀한 후투 파워 세력이었는지는 아직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 좌우간 후투 무장세력은 하루 만에 정부 내 온건파 후투 인사들을 모조리 죽이고, 권력을 잡고, 공식적으로 암살을 투치 탓으로 돌리고, 모든 후투들에게 복수할 것을 촉구했다. 대부분의 후투들은 그 말에 따랐다. 오늘날 르완다 집단학살로 불리는 사건의 시작이었다.[*하브야리마나의 비행기에는 이웃 나라 부룬디의 후투족 대통령이었던 시프리앵 은타랴미라도 타고 있었다. 부룬디도 르완다처럼 작고, 가난하고, 똑같은 후투/투치 갈등의 역사를 지닌 나라다. 이 사건 직후 부룬디도 부족 갈등에 기반한 내전에 휘말렸다.]
학살은 약 100일간 이어졌다(결국에는 투치 반군이 통제력을 확보하여 사태가 끝났다). 그동안 학살자들은 르완다에서 투치를 한 명도 남김없이 죽이려고 시도했을 뿐 아니라, 투치와 결혼했거나 투치를 보호하려 하거나 살해 가담을 거부하는 후투들도 죽였다. 결국에는 투치 인구의 약 75%에 달하는 80만~100만 명과 후투 약 10만 명이 살해되었다. 르완다 국민 7명 중 한 명이 죽은 셈이었다. 비율로 따져서 이것은 나치가 저지른 홀로코스트의 다섯 배에 해당한다. 서구사회는 이 학살을 대체로 무시했다.
홀로코스트의 다섯 배. 주로 현대 ���구의 잔혹 행위만 배워온 독자들에게는 약간의 번역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르완다 집단학살에는 탱크나 폭격기나 대포가 쓰이지 않았다. 집단수용소, 수송 열차, 독가스도 없었다. 악의 평범성을 드러내는 관료주의도 없었다. 총조차 많지 않았다. 소작농에서 도시 전문직 종사자까지 다양한 후투들은 그 대신 몽둥이로 투치족 이웃, 친구, 배우자, 동업자, 환자, 선생, 학생을 때려 죽였다. 그들을 매질해서 죽였고, 집단 강간하고 성기를 훼손한 뒤 마체테 칼로 베어 죽였고, 피난처에 몰아넣은 뒤 건물을 홀라당 불태워 죽였다. 하루 평균 약 1만 명을 죽였다. 학살의 잔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로 꼽을 만한 사건은 은양게라는 마을에서 벌어졌다. 그곳의 후투족 가톨릭 신부 아타나제 세롬바는 1500~2000명의 투치족 사람들을 성당으로 피난시켰다. 그중에는 자신의 교구 신도들도 많았다. 그다음 그는 후투족 민병대를 불러들여서, 성당 안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게 했다. 강물이 핏빛으로 변했다. 은유적인 표현만이 아니었다.[*그리고 지금도 핏빛 강물이 흐르고 있다. 투치 위주의 르완다애국전선 반군이 승리를 거둔 뒤, 약 200만 명의 후투족 르완다인이 보복을 겁내어(반군 지도자 폴 카가메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정부하에서 실제 보복은 놀랍도록 적게 발생했지만 말이다) 나라를 떠났다. 패배한 후투 민병대는 망명한 후투족들이 살고 있던 콩고 동부의 대형 난민캠프들을 장악했고, 그곳을 거점으로 삼아 수시로 르완다를 공격하는가 하면 수백만 명이 사망한 제1, 2차 콩고전쟁에도 관여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여러 요인이 있었다. 그곳 대중에게는 권위에 맹종하는 태도가 오랜 관습으로 뿌리내려 있었는데, 그것은 잔인한 독재국가가 발달하기에 유리한 조건이다. 후투 무장단체들은 몇 달 전부터 후투 사람들에게 마체테를 나눠주고 있었다. 국영 라디오 방송국은(문맹률이 높은 르완다에서 제일 중요한 대중매체가 라디오였다) 투치 반군이 후투를 몰살할 의도로 침입한 것이라고, 이웃의 투치들은 그에 가담할 준비가 된 내통 세력이라고 단언했��. 여기에 또하나 유의미한 요인이 있었다. 반투치 선동가들은 끊임없이 비인간화 전략을 구사했다. 그들의 악명 높은 유사 종분화 전략은 투치를 ‘바퀴벌레’로 지칭하는 것이었다. 바퀴벌레를 박멸하자. 바퀴벌레들이 당신의 자식을 죽일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바퀴벌레들[교활하고 유혹적인 투치 여자들]이 당신의 남편을 훔칠 것이다. 바퀴벌레들[투치 남자들]이 당신의 아내와 딸을 겁탈할 것이다. 바퀴벌레를 박멸하자, 자신을 보호하자. 바퀴벌레를 죽이자. 일단 섬겉질이 불타오르니, 한 손에 마체테를 들고 다른 손에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든 후투들은 대부분 그렇게 했다.[*나는 르완다 집단학살의 과정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그로부터 불과 몇 년 전에 르완다의 콩고 접경에서 마운틴고릴라를 찾아보느라 그곳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애처롭게도, 한심하게도, 가슴 아프게도, 정확히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도, 나는 르완다 사람들이 다들 친절하고, 너그럽다는 인상을 받고서 돌아왔다. 그때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이후 죽었거나, 살인자가 되었거나, 그리고/또는 난민이 되었을 것이다. 나도 대체 이런 책을 왜 쓰고 있나 하고 회의가 들 때가 있다. 그때마다 이렇게 생각하며 자조한다. “내가 이빨의 요정이랑 부활절 토끼랑 팀을 짜서 르완다 사람들에게 유사 종분화의 생물학을 알려주는 강연을 하고 다녔다면 이 모든 사태를 예방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비인간화, 유사 종분화. 그것은 증오의 선동가들의 도구다. 그들을 역겨운 것으로 묘사하는 것. 그들을 쥐로, 암세포로, 다른 종이 되어가는 존재로 묘사하는 것. 그들을 악취 풍기는 존재로, 정상적인 인간은 아무도 견딜 수 없는 무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로 묘사하는 것. 그들을 똥으로 묘사하는 것. 추종자들의 섬겉질이 실제와 메타포를 헷갈리도록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당신은 목표를 99% 달성한 셈이다.
(692~695쪽)
북아일랜드에서도 비슷한 과정이 있었다. 1994년 IRA(아일랜드공화국군)가 휴전을 선언함으로써 북아일랜드 분쟁의 폭력 사태가 끝났고, 1998년에는 벨파스트협정이 체결되어 공화파와 연합파가 공존할 길이 열렸다. 연합파 출신 선동가들과 IRA 출신 총잡이들이 한 정부에서 일하게 되었다. 협정의 내용은 대체로 물질적이거나 도구적인 사안을 다루는 것이었지만, 성스러운 가치에 관한 내용도 있었다. 일례로, 협정은 이른바 행진위원회를 설립하여 두 집단이 벨파스트의 상대편 동네에서 상징적이고 선동적인 행진을 벌이던 관행을 단속하기로 했다. 그런데 항구적 평화가 정착했음을 보여주는 가장 구체적 신호라고 꼽을 만한 사건은 전혀 예상치 못한 측면에서 나타났다. 협정 후 구성된 공동 정부의 행정수반은 피터 로빈슨이었고, 부수반은 마틴 맥기네스였다. 과거에 로빈슨은 연합파의 불같은 선동가였고, 맥기네스는 IRA의 정치적 정파를 이끌던 사람이었다. 두 남자는 북아일랜드 분쟁의 적대감을 체화한 존재였다. 일은 함께 했지만 그뿐이었고, 악수마저 거절해온 앙숙으로 유명했다(라빈과 야세르 아라파트도 그럭저럭 해난 일이었는데 말이다). 어떻게 그 싸늘한 사이가 녹았을까? 2010년, 로빈슨은 정치인 아내가 관련된 큰 스캔들에 휘말렸다. 그의 아내가 부정한 동기로 말미암아 중대한 금전적 부정을 저지른 사실이, 달리 말해 19세 애인에게 돈을 끌어다준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하여 역사가 만들어졌다. 맥기네스가 위로의 악수를 제안하고 로빈슨이 그 손을 잡은 것이었다. 사내들 간의 성스러운 가치가 만들어낸 순간이었다.[북아일랜드에 평화가 구축되는 과정에는 성스러운 가치와 상징에 관련된 사건들이 많이 따랐다. 일례로, 누구보다 무자비한 연합주의자였던 이언 페이즐리 목사가 북아일랜드의 첫 총리가 된 무렵 가톨릭 신자인 아일랜드 총리 버티 어헌이 페이즐리 부부의 금혼식 선물로 나무 그릇을 하나 보냈다. 이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선물이었다. 1690년에 프로테스탄트 윌리엄 3세(오렌지공)가 가톨릭 제임스 2세를 패퇴시킨 보인강 전투의 사적지에 있던 나무로 만든 그릇이었기 때문이다. 윌리엄 3세의 승리는 이후 수백 년 동안 프로테스탄트가 아일랜드애서 위세를 떨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으므로, 기톨릭교도들에게는 끊임없는 고통의 근원이고 개신교도들에게는 자랑스러움의 근원이다(개신교도들은 이 승리를 기념하여 매년 7월 12일에 카톨릭교도들의 동네를 행진하는데, 그 선동적인 행사는 으레 폭력으로 끝맺는다). 어헌은 연합주의자가 그 사적지에 부여하는 성스러운 역사적 의미를 인정한 것이었고, 그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페이즐리는 곧 그 사적지를 어헌과 함께 방문함으로써 호의에 호의로 답했다. 1684년산 머스킷총을 선물로 가져간 페이즐리는 그 사적지가 모든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주요한 장소라고 말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있었다. 그 변화를 퍼뜨린 주역은 성스러운 가치 인정에 천재적 재능을 가졌던 넬슨 만델라였다. 만델라는 로번섬에 갇혀 있는 동안 아프리칸스어를 독학하고 아프리칸스문화를 익혔다. 자신을 가둔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기 위해서였지만, 나아가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자유로운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탄생하기 직전의 어느 시점에, 만델라는 아프리칸스 지도자 콘스탄트 필윤 장군과 비밀 협상을 하게 되었다. 아파르트헤이트 시점에 남아프리카 방위군 지휘자였고 이제 아파르트헤이트 해체에 반대하는 아프리카너 국민전선을 창설한 필윤은 5~6만 명의 아프리칸스 방위군을 이끌었다. 그는 다가오는 최초의 자유선거를 망치고 어떠면 내전을 일으켜 수천 명을 죽일 수도 있는 입장이었다.
두 사람은 만델라의 집에서 만났다. 장군은 회의석을 사이에 두고 긴장된 협상이 진행되리락 예상했던 모양이다. 그 대신 만델라는 생글생글 화기애애한 태도로 장군을 맞아서 아늑한 거실로 안내했고, 그 어떤 딱딱한 엉덩이도 녹일 만큼 편한 소파에 나란히 앉은 뒤 아프리칸스어로 말을 걸었다. 스포츠에 관한 잡담도 나누면서, 간간이 일어나서 손수 차와 간식을 내왔다. 그렇다고 해서 장군�� 만델라의 단짝이 되거나 하는 일은 없었고, 만델라의 어느 언행들이 각각 얼마나 중요했는지 평가할 수도 없지만, 필윤은 분명 만델라가 아프리칸스어를 쓰는 데 놀랐고, 만델라가 아프리칸스문화에 익숙한 듯 다정하게 수다를 떠는 데도 놀랐다. 그것은 성스러운 가치에 대한 진정한 존중이었다. “만델라는 만나는 사람 모두를 제 편으로 만든다.” 필윤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만델라는 그 대화중에 필윤에게 무장봉기를 포기하고 그대신 다가오는 선거에 자신의 경쟁자로 출마하라고 설득해낸다. 1999년 만델라가 대통령에서 퇴임했을 때, 필윤은 의회에서 만델라를 기리는 연설을 더듬더듬 짧게 했는데······ 만델라의 모어인 코사어로 했다.[*어떻게 필윤과 만델라가 그 소파에서 비밀 회동을 하게 되었을까? 어느 선도적 반아파르트헤이트 신학자의 중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신학자는······ 필윤의 쌍둥이 형제인 아브라함 필윤이었다. 형제는 사이가 소원해진 상태였지만, 그래도 장군은 우파 암살단이 제 쌍둥이 형제를 암살하려는 것을 한 번 이상 막아주었다고 한다. 필윤 쌍둥이는 8장의 교재나 마찬가지다. 그들은 일란성 쌍둥이로서 같은 유전자를 타고났지만, 극단적으로 다른 정치적 견해와 세계관을 가졌다. 한편으로는 같은 유전자를 타고났기 때문인지, 둘 다 자신이 성스러운 가치라고 믿는 대의에 헌신하여 제 목숨까지 거는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되었다.]
새로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성공적 탄생 과정에는 성스러운 가치를 존중하는 행위가 가득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만델라가 공개적으로 럭비를 받아들인 게 아니었을까 싶다. 럭비는 아프리칸스문화를 상징하는 스포츠로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들에게는 역사적으로 경멸의 대상이었다. 또 유명한 결과가 있었다. 그것은 책과 영화로도 그려질 만큼 지각변동이나 다름없는 상징적 행위였다. 아프리칸스 선수가 대부분이었던 럭비 국가대표팀이 ANC(아프리카민족회의) 당가였던 찬송가 <신이여 아프리카를 축북하소서>를 부르고, 이어 흑인 합창단이 남아프리카의 험준한 산맥을 우락부락하게 노래한 아프리칸스의 국가 <남아프리카의 목소리>를 부른 사건이었다. 그것은 1995년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럭비 월드컵에서 주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팀이 약체임에도 불구하고 전설적인 우승을 거두기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699~702쪽)
행동 - 로버트 새폴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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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GNATURE 4th EP Album ‘그해 여름의 우리 (Us in the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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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e to watch 그해 우리는 for summer korean course and. oh my god. this show is 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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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NTEO NEWS: [한터현장] 방용국&정대현&유영재&문종업 '눈물과 감동의 컴백 현장' Bang Yongguk & Jung Daehyun & Yoo Youngjae & Moon Jongup hold comeback showcase with tears and emotions
그룹 B.A.P의 멤버들이 6년 반 만에 다시 뭉쳤다.
방용국&정대현&유영재&문종업은 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일지아트홀에서 EP 'CURTAIN CALL(커튼 콜)'의 발매 기념 미디어 쇼케이스를 열고 새로운 활동에 돌입했다.
이들의 새 앨범이 관심을 모으는 이유는 바로 여전히 많은 K팝 팬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전설적인 그룹 B.A.P 출신 4인이 다시 뭉쳤기 때문이다.
2012년 1월 데뷔한 B.A.P는 데뷔 직후부터 큰 인기를 얻으며 그해 신인상을 휩쓸었고, 특히 유럽과 해외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며 '글로벌 아이돌' 첫손에 꼽히기도 했다.
이에 방용국은 "이번 'CURTAIN CALL'은 단어의 의미 그대로 무대 뒤로 퇴장한 우리를 환호로 찾아준 팬에게 화답하기 위해 다시 무대위에 올라왔다는 의미를 담은 앨범이다"라고 이번 앨범을 소개했다.
이어 정대현은 "우리 네 명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최우선 목표였다. 6년이라는 공백기동안 다양하게 성장한 우리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긴 공백기 끝의 컴백에 임하는 각오를 밝혔다.
다만, 이번 컴백은 기존의 B.A.P나 새로운 팀명이 아닌 멤버 4인의 이름 그대로 활동을 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유영재는 "우리 생각으로는 원래 우리 팀명으로 활동하면 좋았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그래서 새로운 팀명을 지을까도 논의를 했는데, 오랫동안 그 팀명으로 활동해서…"라고 말하다 복받친 감정을 참지 못하고 울컥하는 모습을 보여줘 애잔함을 자아냈다.
방용국&정대현&유영재&문종업이 다시 모인 것은 오랜 팬들에게 당연히 반가운 일이지만, 막내 젤로(최준홍)가 군 복무로 인해 이번 활동에 함께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문종업은 "당연히 다시 모일 거라고 생각하고 예전부터 모이자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내가 영재가 전역하는 시기에 맞춰 이번 프로젝트를 제안했따. 전역하고 곧바로 활동 준비를 하는 것이 걱정되기도 했는데 영재도 좋다고 해서 모이게 됐다. 당연히 준홍에게도 이 이야기를 했는데, 작년에 군대를 가게 되면서 어쩔수가 없었다. 준홍도 멀리서 응원하고 ���다"라고 설명했다.
유영재도 "준홍이 곡을 받을 때도 도움을 많이 줬고, 활동하는 것도 응원하고 있다. 그래서 고맙게 생각한다. 군대에 있으면서도 계속 물어본다. 자기가 필요하지는 않는지, 준비는 잘 되고 있는지 계속 물어본다. 마음적으로는 준홍도 너무 하고 싶은데 상황이 그렇지 못할 뿐이다. 다음에 좋은 기회가 되면 함께 하려고 한다"라고 젤로의 합류도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또 젤로의 합류를 예고한 만큼, 이번 앨범은 이들의 마지막 앨범이나 활동이 아니다. 방용국은 "이번 앨범의 콘셉트가 B.A.P로 활동할 때 마지막으로 만들고 싶었던 앨범의 연장선��다. 그 앨범이 이제 세상에 나오게 되면서 '마지막'이란 단어가 쓰였다. 세계관의 끝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해주면 좋겠다. 우리는 언제든지 다시 팀으로 모일 생각이다. 마지막이라는 말에 너무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햇다.
긴 시간만에 다시 팀으로 돌아온 무대인 만큼 이들은 이번 활동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었다. 당장 오늘 Mnet '엠카운트다운'에 출연하며 팬 콘서트도 개최할 예정이다.
정대현은 "세트리스트를 팬이 좋아하는 곡으로 준비를 했다. 팬이 우리에 대한 향수를 유지할 수 있게, 기존 곡을 기존보다 더 잘하도록 연습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체력적으로 더 힘들어진 부분도 있어서 연습을 많이 하고 있다"라고 다시 팬과 만날 순간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알렸다.
'CURTAIN CALL'은 방용국&정대현&유영재&문종업이 지난 2017년 B.A.P 여덟 번째 싱글 'EGO' 이후 약 6년 반 만에 발매하는 신보다.
타이틀곡 'Gone(곤)'은 정형화된 아이돌 음악의 틀을 벗어나 멤버들의 가창력에 중점을 둔 곡이다. 팬들을 추억하는 마음과 지금 이 순간 멤버들이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을 가사에 담아냈으며, 방용국이 직접 작업에 참여해 의미를 더했다.
더불어 'CURTAIN CALL'에는 '빛바랜 날들 이젠 잊고 다 안녕', 'Love(러브)', 'Stand it all(스탠드 잇 올)', 'Way Back(웨이 백)'까지 총 5개 트랙이 수록됐다. 8일 오후 6시 발매.
최현정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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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gnature(시그니처) 4th EP Album
‘그해 여름의 우리 (Us in the Summer)’
Group Concept Photo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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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3] 👤: Hyunjin-ah, what is the best poem you have ever read? 🥟: The spring in my memory/그해 봄에

🥟✉️[231223] 👤: Hyunjin-ah… Are you subscribed to the pd-nim bubble? I'm curious, let me ask you ㅋㅋㅋㅋㅋㅋ 🥟: I am subscribed

🥟✉️[231223] 👤: Do you like pd-nim bubble? 🥟: Okay, he even sent a mirror selfie…

🥟✉️[231223] 👤: Even (jyp) mentioned Yongbok (in his bubble) ㅋㅋㅋㅋㅋㅋ I saw it and laughed for a while 🥟 : I'm a little jeal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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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게시글에 올려주신 책 정보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안녕하세요
‘그해 여름 필립 로커웨이에게 일어난 소설 같은 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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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자서전 중
씁쓸한 기억 하나
주전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그해 겨울에 장명석 MBC 파리 특파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부부와 독일에 있는 차범근 선배 부부가 함께 자리를 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찍어서 방영하고 싶다는 것이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차범근 선배 때문에 내가 유럽에 진출한 것이고, 유럽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국내의 팬들에게도 한국 축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이때쯤에는 유럽에 김진국 선배를 비롯해서 박상인, 김민혜, 박종원 등이
진출해 있어서 유럽무대에서의 한국 축구 위상을 소개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장 특파원이 차 선배가 있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나는 게 어떻게느냐고 어렵게 말했다.
에인트호벤에서 500km 남진핫 거리였다.
솔직히 말해서 중간 어디쯤에서 만나면 좋겠지만 후배가 가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에 흔쾌히 좋다고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차 선배쪽과 먼저 통화하여 내가 그쪽으로 가는 것으로 결정해놓고 내 의견을 물었던 것이다.
그래서 혹시 내가 자존심 때문에 가기 싫다고 하면 어찌나 걱정하던 차에 내가 쉽게 응락하자 장 특파원은 그제서야 걱정을 덜었다.
”그런데 제가 네덜란드에서 여행을 안 다녀봐서 길을 잘 몰라 그게 걱정입니다“.
“��됐네요 제가 에인트호벤으로 가서 같이 프랑크푸르트로 가면 좋겠습니다”.
장 특파원은 일이 잘 풀린다고 생각했는지 조금은 신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장 특파원은 토요일에 에인트호벤으로 와서 하룻밤 자고 이튿날 새벽 출발하여 정오에 차 선배를 만나기로 스케쥴을 짰다.
약속대로 자기 아내를 데리고 토요일 오후에 도작했다.
출장길이지만 아내와 여행하는 것도 좋고, 나와 차 선배 부부가 함께 만나는 것이므로 자기도 아내를 동행한 것이다.
장 특파원은 기분이 좋은지 작은 선물까지 사가지고 왔다. 마침 이날 경기가있었는데 골을 기록한 터라 나도 기분이 좋았다.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맥주가지 곁들였다.
이튿날 새벽에 출발하려고 일어났더니 밤새 눈이 내려 수북하게 쌓여 운전할 일이 걱정이였으나 이미 약속한 터라
조심조심 운전하며 프랑크푸르트로 출발했다. 이때 아내는 임신을 해서 배가 많이 불렀다.
장거리 여행이 안 좋을 수도 있지만 차 선배 부부를 만난다는 기쁨에 ��꺼이 함께 가기로 했다.
네덜란드에 있으면서 몇 번 전화로 인사한 적은 있지만 유럽에서 직접 만난 적은 없다.
지도를 보는 데 익숙한 장 특파원의 차가 앞에 가고 내가 그뒤를 따랐다.
눈이 고생했어도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인 프랑크 푸르트 공원 앞에 도착할수있었다.
섭외한 촬영 팀은 벌써 나와 있는데 차범근 부부는 보이지 않았다. 장 특파원에게 뭔가 속삭이는 촬영팀 책임자의 표정이 어두웠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장 특파원이 근처의 공중전화에서 오랫동안 통화하더니
내게로 왔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차 선수가 약속을 취소했는데 왜 왔느냐고 하네요”.
무슨 소리인가 했다
장 특파원 설명에 따르면, 처음에 만나겠다고 약속한 것은 맞지만 곧 그 약속을 취소한다고 파리 사무실의 직원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 특파원은 이미 네덜란드로 떠난 뒤로 사무실로부터 아무 연락을 받지 못한 것이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파리 사무실로 전화했지만 일요일이어서 아무도 없었다.
난감했다.
“우리 부부가 500km를 달려서 도착했다고 말했나요?”
“그럼요. 그래도 그냥 쉬겠답니다”.
섭섭했다. 대표팀에서 수년간 한솥밥을 먹었고, 무슨 원수진 일도 없는데...
시간이 안 되면 차라도 한 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바꿔달라는 소리도 없었나요?”
장 특파원은 대답 없이 민망한 표정만 지을 뿐이다. 나도그렇고 내 아내도, 여기까지 동행한 특파원의 아내도 아무 말하지 못했다.
만삭의 아내에게 미안했다. 차 선배에게 이런 대접밖에 못 받는 남편...
“걱정하지마세요 우선 밥이나 먹고 되돌아가지요 뭐”.
부러 명랑한 척했다.
고려식당이라는 간판이 붙은 한국식당을 찾아가 점심을 먹었다. 다들 맛이고 뭐고 음미할 마음이 아니었다.
이튿날 훈련이 있으므로 바로 되돌아가야 했다
“제가 길을 잘 모르니깐 고속도로 타는 곳까지만 안내바랍니다”.
장 특파원은 미안해서 어쩔 줄 몰랐다. 그는 지갑에서 500마르크를 꺼내어 내게 내밀었다.
“죄송해서 그럽니다. 이거라도 제발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사양하다가 장 특파원이 더 미안해할까봐 받았다.
나도 아내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국경을 넘을 무렵 차창을 열고 차 선배의 전화번호를 적은 메모를 잘게 찢어버렸다.
2014 허정무 자서전 중
https://m.fmkorea.com/index.php?document_srl=2846412496&mid=humor&cpage=2&fbclid=IwAR05V8rZ5YlU_7msEH6rBdacgJ0QpTd-ztDQXjh3rlAI7N__mLz6tHQpCOk
<Jaag Kimn 게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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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탐방 야마시타 타츠로 엘피사러갔다가 딴거 사버리기 이 앨범은 평식씨 말처럼 ‘물결로 흩어지는 슬픔 고요히 부서지는 당신’ 이란 말이 딱인 잠영중인 찬찬히 듣고 있으면 튀르키예 그해 여름과 함께 얼마나 단단했던 영화였던지 기억되는데 unde r pressure는 당연히 같이 재생되는거 아니냐며,, ~~ /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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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한국적인 ‘K-아파트’ 탄생기, ‘마포주공아파트’(2274)

1964년 최종 준공된 마포주공아파트는 현대식 아파트 단지의 모형을 만든 곳이다. 수세식 화장실, 현대식 주방 구조, 엘리베이터를 갖추도록 설계됐다. (마포주공아파트 준공 후 사진. 대한주택공사 홍보실·마티 제공)
한국의 아파트는 언제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을까. 1962년 7월30일자 동아일보 기사에는 그해 완공된 마포주공아파트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나온다. 기사는 “지금 마포구 도화동에 건설 중인 현대식 6층 고급 ‘아파트’ 6채는 400여가구를 수용할 수 있는 우리나라 최대의 것으로 집 없는 ‘샐러리맨’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는 구절로 시작한다. 기자는 단독주택과 달리 현대식 난방과 수세식 변소, 샤워실이 있다는 점을 짚으며, 9~15평짜리의 이 아파트를 “그리 넓은 집은 못 된다 해도 쓸모 있게 꾸민 고급 ‘아파트’”라고 묘사한다. 단독주택과 아파트가 다른 점은 ‘어린이놀이터’나 ‘유치원’ 등 공동시설이 있다는 점이라며, 아파트를 “생활 개혁과 공동생활의 훈련을 도모”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정의한다.
1960년대 대중에게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공간이었던 아파트. 지금의 한국에선 설명이 필요 없는 제1의 주거형태다. 1970년대 전체 주택 중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0.77%에 불과했고, 단독주택이 95.3%로 대다수였다. 하지만 50년 뒤인 2020년 상황이 역전돼 아파트는 전체 주택의 62.95%를 차지할 만큼 늘어났고, 단독주택 비율은 21%로 쪼그라들었다. 한국에서 이렇게 빠르게 아파트가 늘어난 결정적인 이유는 박정희 정부에서 주거 문제 해결의 가시적인 성공 모델로 아파트 보급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주택건축사 연구자이자 <한국주택 유전자>를 쓴 박철수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는 유작인 <마포주공아파트>에서 한국 아파트 단지의 원형인 마포주공아파트(마포주공)의 시작과 끝을 파헤친다. 그는 25개 장으로 구성된 <한국주택 유전자> 집필 직후 “건축사에 공백으로 남은 주거사를 온전히 채우기 위해” 각각의 장을 심화편으로 쓰고자 했다. 그중 망설임 없이 첫 타자로 꼽은 것이 마포주공이었다. 와병 중이던 저자는 초고를 마무리하고 후반 작업을 출판사 마티의 박정현 편집장에게 맡��다. 원고는 박 편집장의 손을 거쳐 저자 사망 1년2개월 후 세상에 나왔다.
마포주공의 역사는 5·16 군사쿠데타 직후에 시작된다. 군부는 자신들이 무능하고 부패한 기성 정치인과 다르다는 것을 입증하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가시적인 성과를 필요로 했다. 새나라자동차 공장, 워커힐호텔 등을 지었지만 공장이나 호텔은 시민들의 일상과는 거리가 있는 건축물이었다. 5·16 쿠데타 주도 세력인 육군사관학교 8기생 출신 장동운 중령이 대한주택영단의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마포주공 프로젝트가 빠르게 가동된다.
당시 서울 시내에는 1000가구를 수용할 만큼 잘 정비된 부지가 없었다. 하지만 홍보 효과를 위해 사업 부지는 반드시 서울 안에 있어야만 했다. 주택영단은 마포형무소에서 노역장으로 쓰던 채소밭을 급하게 확보해 공사에 들어간다. 이 부지에는 마포형무소 시절 지어진 법무부 관사가 있었다. 관사 입주자들과 퇴거 협의가 제대로 마무리되기도 전에 공사가 시작될 정도로 정부는 급하게 마포주공 건설에 착수했다.
부지는 찾았으나, 당시의 기술력을 감안하면 “최신 설비를 갖춘 10층 아파트 설계는 한국 건축가들에게 미지의 영역”이었다. 엄덕문 당시 주택영단 건설이사 겸 건축부장은 군사정부의 서슬에도 불구하고 “영단 수준으로는 설계 못한다”는 답을 내놨다고 한다. 하지만 군부에 못한다는 말은 통하지 않았다. 엄덕문은 최고 전문가들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진, 단 3개월 만에 10층 아파트 설계를 마무리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장동운의 정치적인 발상과 대한주택영단의 전문직 기술관료를 포함한 당대 건축가 집단의 이해가 일치해 만들어낸 산물”이라며 “부족한 물적 토대를 국가 프로젝트를 통해 뛰어넘어 만들어진 모더니티”라고 평한다. 마포주공은 시작부터 그 자체로 “한국 모던의 독특한 특징”이다.

정부가 마포주공아파트의 현대적이고 공동적인 생활양식으로 강조하며 홍보했던 어린이 놀이터. (대한주택공사 홍보실·마티 제공)
마포주공 건설과 분양을 맡은 대한주택공사(대한주택영단의 후신)는 자금난에 시달렸다. 1963년 정부 전체 예산은 768억원이었는데, 하나의 아파트 단지인 마포주공 건립에는 약 5억원이 소요됐다. 주택공사는 초기에 임대아파트로 설정했던 것에서 계획을 변경해 마포주공을 분양하기로 결정했다. 임대로 들어온 입주자들은 갑자기 분양을 받아야 해 큰 경제적 부담을 느꼈다. 6개 동의 주민들이 뭉쳐서 국회와 주택공사 등에 분양가가 너무 높으니, 분양가를 여러 차례에 나눠서 내게 해달라는 내용을 담은 진정서를 내기도 했다. 당시 주택공사 주택연구소 단지연구실장이었던 박병주는 조선일보 기사(1967년 4월16일)에 “‘임대하는 아파트’란 형식이 자취를 감추게 된다는 데 있고, 우리의 현실에서 공영임대주택이 성립할 수 없다는 개념을 남기게 되는 결과를 자아내게 하였다는 데 문제점이 있다”고 우려의 의견을 밝혔다.
박병주의 우려는 적중했다. 저자는 마포주공으로 인해 한국의 아파트 건립 방식이 건설비용을 입주자에게 전부 부담시키는 분양 위주의 방식으로 고착됐다는 점을 짚는다. 민간 사업자들은 주택공사의 방식을 그대로 가져와 아파트를 지었다. 마포주공의 선례는 주거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도 결정지었다. “지난 세기 한국에서 공공이 저소득층을 위한 공동주택을 공급하고 관리한 시기는 무척 짧았다. 주택은 개인이 구입해야 하는 상품이라는 인식은 굳어졌고, 이후 임대아파트는 분양 아파트 단지의 틈바구니 속에서 저소득층의 남루한 집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정부는 1967년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주택 부문 정책 목표에 민간 건설을 유도하고, 민간 자금의 극대화를 꾀한다는 내용을 넣는다.
마포주공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정부는 주민공동시설이나 편의시설을 아파트 단지 울타리 안에 넣는 단지화 전략을 꾸준히 꾀한다. 정부는 단지 바깥의 간선도로 등 최소한의 도시기반시설만 준비한다. 공원이나 놀이터 같은 여가와 편의시설은 입주자들이 갖추고 관리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 것이 단지화된 아파트다. 1978년 준공된 잠실주공아파트는 모든 주민공동시설과 편의시설을 단지 내에 완벽히 갖춤으로써 한국형 아파트 단지의 전형을 완성시켰다.

마포주공아파트. 마티 제공4-5-2024/hwanshikkim.tumblr.com/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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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세 조회부터 납부까지, 직접 해보고 알게 된 현실 가이드
재산세는 매년 돌아오는 고정 지출 항목 중 하나지만, 막상 조회나 납부 절차는 의외로 복잡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동산 소유 이후 처음으로 재산세 고지서를 받고 직접 납부를 해본 경험이 있는데요. 이 과정을 거치며 알게 된 실질적인 정보들을 정리해봤습니다.
재산세는 언제 어떻게 부과될까?
재산세는 매년 6월 1일 기준으로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에게 부과됩니다. 고지서는 7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나오며, 각각 건물 및 주택, 토지에 대한 세금입니다. 저는 6월 초에 소유권 이전을 완료했는데, 바로 그해 7월에 재산세 고지서를 받았습니다.
이후 고지서를 받지 못한 적도 있었는데, 그럴 때는 본인이 직접 조회 후 납부해야 합니다. 납부 기한을 놓치면 가산세가 붙기 때문에 매년 일정 체크는 필수입니다.
재산세 조회는 어디서?
재산세 조회는 아래 세 가지 경로로 가능합니다.
정부24: 세목별 과세증명서 조회 및 납부증명서 출력 가능
위택스(Wetax): 고지서 확인, 즉시 납부, 분할 납부 신청까지 가능
서울시 ETAX: 서울 소재 부동산 소유자를 위한 별도 시스템
저는 위택스를 주로 사용하고 있고, 납부 확인과 증명서 출력도 여기서 가장 편리했습니다. 위택스는 최근 간편인증도 지원해 로그인 절차가 많이 간소화됐습니다.
재산세 계산기는 어떻게 활용할까?
실제 고지서가 나오기 전, 예상 납부 금액을 알고 싶어 위택스 계산기를 사용해봤습니다. 공시가격과 주택 수 등을 입력하면 과세표준과 예상 세액이 자동으로 계산됩니다.
예상 금액은 실제 고지 금액과 큰 차이가 없었고, 사전에 자금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특히 재산세 외에 지방교육세, 도시지역분까지 함께 계산되는 것이 장점입니다.
자동이체와 알림 설정으로 편하게 납부
저는 몇 년 전까지 납부기한을 놓쳐서 가산세를 낸 적도 있었는데요, 이후로는 위택스 자동이체를 등록해두었습니다. 카드와 계좌 모두 등록 가능하고, 납부일이 다가오면 문자나 앱 푸시로 알림도 와서 훨씬 편리해졌습니다.
감면 대상이라면 신청 필수
부모님 명의로 된 주택을 확인하면서 고령자 감면이 가능한 걸 알게 되어 신청한 적이 있습니다. 만 65세 이상 고령자, 장애인, 국가유공자, 장기 공실 주택 등은 일부 재산세 감면이 가능합니다. 신청은 위택스나 지자체 세무과를 통해 가능합니다.
이의신청 및 분할납부도 가능
저는 재산세가 과도하게 부과된 적이 있어 이의신청도 해봤습니다. 위택스를 통해 온라인 접수했고, 증빙자료를 제출한 후 약 3주 만에 정정되었습니다.
또한 고지 금액이 500만 원 이상이면 분할납부도 가능하며, 자동 승인되기 때문에 납부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마무리하며
재산세는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구조와 흐름을 이해하고 나면 생각보다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저는 매년 6월 말이면 위택스에 접속해 조회부터 계산, 납부까지 미리 정리해두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재산세 조회 및 납부 방법 정리 보기
이 글이 처음 재산세를 접하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다음 고지서가 오기 전에 미리 조회해보고 준비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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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딴소리로 들릴 수도 있는 이야기로 이 장을 시작하고자 한다. 4장과 7장에서 우리는 뇌, 호르몬, 행동에 성차가 있다는 통념을 일부 부서뜨렸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사실로 확인된 성차가 하나 있기는 하다. 이 책의 주제와 먼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내 말을 더 들어보시라.
초등학생 때부터 학생들에게 놀랍도록 일관되게 드러나는 현상이 하나 있으니, 남학생들이 여학생들보다 수학을 더 잘한다는 것이다. 평균 성적을 따지자면 차이가 미미하지만, 분포의 최상위에 해당하는 수학 영재들 사이에서는 차이가 크다. 예를 들어, 1983년에 미국 수학능력시험SAT 수학 과목에서 최상위 백분위수에 해당하는 여학생이 1명이라면 남학생은 11명이었다.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 테스토스테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가설이 있다. 발달과정중에 테스토스테론이 수학적 사고에 관여하는 뇌 영역의 성장을 촉진하는데다가, 성인에게 테스토스테론을 주입했을 때 수학 능력이 다소 향상되었다는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오케이, 생물학적인 차이라는 거지.
하지만 2008년 『사이언스』에 발표된 논문을 보자. 저자들은 40개국을 대상으로 수학 점수와 성평등 수준의 관계를 조사했다(국가들의 경제·교육·정치 관련 성평등 지수를 근거로 삼았는데, 최악은 튀르키예였고 미국은 중간이었고 최고는 당연히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었다). 그 결과는? 보시라, 성평등이 이뤄진 나라일수록 수학 점수의 성차가 적은 것으로 드러났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 이르러서는 성차가 통계적으로 사실상 무의미하다. 당시 세계 최고의 성평등 국가였던 아이슬란드에 이르면, 여학생들이 오히려 남학생들보다 수학을 더 잘했다.[*인지 영역에서 역시 일관되게 성차가 드러나는 항목은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보다 읽기를 더 잘한다는 현상인데, 이 현상은 성평등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이 성차는 오히려 더 커진다.]
(326~327쪽)
7장에서 짧게 소개했듯이, 비교문화적 심리 연구의 대다수는 집단주의 문화와 개인주의 문화를 비교한 연구다. 그리고 이런 연구는 거의 대부분 집단주의적 동아시아 문화와 개인주의 문화의 왕중왕인 미국 문화를 비교했다.[*이 장에서 미국인과 동아시아인을 비교하고 뒤에서 미국 문화와 다른 문화들을 비교한 걸 보고 나면, 많은 문화적 측면에서 가장 큰 이분법은 미국(과 서유럽) 대 나머지 세계 전체라고 볼 수 있음을 여러분도 실감할 것이다. 미국인은 ‘WEIRD(위어드)’ 그 자체다. 서구적이고(westernized), 교육받았고(educated), 산업화되었고(industrialized), 부유하고(rich), 민주적이다(democratic).] 정의에 따르면, 집단주의 문화는 조화, 상호의존, 순응을 중시하고 집단의 요구가 개인의 행동을 이끈다. 반면 개인주의 문화는 독자성, 개인의 성취, 독특��, 개인의 요구와 권리를 중시한다. 좀 신랄하게 표현하자면, 개인주의 문화는 너무나도 미국다운 개념인 ’내가 최우선‘으로 요약된다. 한편 집단주의 문화는 미국평화봉사단 교사들이 집단주의 국가에서 겪는 전형적인 체험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학생들에게 수학 문제를 내고 답을 맞혀보라고 하면 아는 학생들조차 튀기 싫고 친구들을 부끄럽게 하기 싫어서 손을 들지 않는 현상이다.
개인주의/집단주의 문화의 대비는 몹시 뚜렵하다. 개인주의 문화의 구성원들은 독창성과 개인의 성취를 더 많이 추구하고, 일인칭 대명사를 더 많이 쓰고, 자신을 관계보다(“나는 부모입니다”) 개인적 성질로(“나는 건축업자입니다”) 정의하고, 자신의 성공을 상황 요인보다(“내가 적절한 시기에 적당한 장소에 있었기 때문이죠”) 내적 요인의 덕으로(“내가 X를 아주 잘하기 때문이죠”) 돌린다. 과거를 기억할 때는 사회적 상호작용보다(“그해 여름은 우리가 친구가 된 시기였죠) 사건을(”그해 여름은 내가 수영을 배운 때였어요“) 떠올린다. 집단적 노력보다 개인적 노력에서 동기와 만족을 얻는다(이 사실은 미국의 개인주의가 불순응의 문화라기보다 비협력의 문화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준다). 경쟁의 동인은 남들보다 앞서고 싶다는 데서 온다. ’소시오그램‘을 그려보라고 하면―자신과 친구들을 각각 원으로 그리고 언들을 선으로 이어서 사회적 연결망을 표현하는 교우 도식이다―미국인들은 자신에 해당하는 원을 정중앙에 가장 크게 그리는 편이다.
대조적으로, 집단주의 문화의 구성원들은 사회적 이해 능력이 더 뛰어나다. 몇몇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마음 이론을 발휘해야 하는 작업을 더 잘하고, 타인의 관점을 더 정확히 이해한다. 이때 ’관점’ 파악은 타인의 추상적 사고를 헤아리는 작업뿐 아니라 어떤 물체가 타인의 위치에서 어떻게 보일까 하는 작업까지 포함한다. 이들은 누군가가 또래 압력 때문에 규범을 어겼을 때 집단을 더 많이 비난하는 편이고, 어떤 행동에 대해서 상황적 설명을 더 많이 하는 편이다. 경쟁의 동인은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는 데서 온다. 소시오그램을 그릴 때, ‘나’에 해당하는 원을 정중앙에 그리지 않고 제일 크게 그리지도 않는다.
이런 문화차이는 자연히 생물학적 차이로도 드러난다. 가령 개인주의 문화의 구성원들은 친척이나 친구의 사진을 볼 때보다 자기 사진을 볼 때 (정서적) 안쪽이마앞엽 겉질이 더 강하게 활성화하는데, 동아시아 피험자들은 활성화 정도가 훨씬 낮다.[*이런 연구는 제대로 해내기가 엄청 어렵다. 뇌 촬영은 과학인 동시에 약간은 예술이라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두 스캐너와 촬영 규약으로 얻은 데이터를 정량적으로 비교한다는 건 만만찮은 일이다. 대안은 두 문화의 피험자들을 한 스캐너로 조사하는 것이지만, 이 또한 만만찮다. 그렇게 모은 피험자들은 대표성이 없을 것이다. 그중 절반은 유학생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학생은 보통 정보가 많고, 부유하고, 미국의 대학 도시로 건너와서 심리학개론 연구의 피험자를 자원할 만큼 모험심이 큰 편이다.] 심리적 스트레스에 드러난 비교문화적 차이를 보여주는 예로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또다른 예를 들면, 자유 연상을 해보라고 시켰을 때 미국인은 자신이 남에게 영향을 미쳤던 사건을 떠올리는 경우가 동아시아인에 비해 더 많고, 동아시아인은 남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쳤던 사건을 떠올리는 경우가 더 많다. 미국인에게 남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쳤던 일을 자세히 말해보라고 하거나 동아시아인에게 자신이 남에게 영향을 미쳤던 일을 자세히 말해보라고 하면, 둘 다 그런 사건을 떠올리는 게 불편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로 인해 글루코코르티코이드가 분비된다. 스탠퍼드대학교 동료이자 친구인 진 차이와 브라이언 넛슨은 유럽계 미국인들은 흥분한 표정을 보았을 때 중변연계 도파민 시스템이 활성화하지만 중국인들은 차분한 표정을 보았을 때 활성화한다는 것을 연구로 보여주었다.
13장에서 이야기할 텐데, 이런 문화 차이는 서로 다른 도덕 체계를 낳는다. 집단주의 사회 중에서도 가장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순응과 도덕이 사실상 동의어이고, 규범을 강제할 때 죄책감보다(”내가 그 짓을 하고서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을까?“) 수치심에(”그러면 남들이 날 어떻게 보겠어?“) 의지한다. 집단주의 문화는 보다 공리주의적이고 결과주의적인 도덕적 입장을 두둔한다(예를 들면, 폭동을 방지하기 위해서 무고한 개인을 투옥하는 일을 더 선뜻 지지한다). 집단주의 문화는 집단을 엄청나게 중시하기 때문에, 그 구성원들은 개인주의 문화의 구성원들보다 내집단 편향이 더 강하다. 한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한국계 미국인 피험자들과 유럽계 미국인 피험자들에게 각자의 내집단 혹은 외집단 구성원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었다. 모든 피험자가 내집단 구성원을 볼 때 감정이입이 더 많이 되었다고 보고했고, 실제로 그때 그들의 뇌에서 마음 이론을 관장하는 영역이(가령 관자마루이음부가) 더 많이 활성화했다. 하지만 편향의 정도는 한국계 피험자들이 훨씬 더 컸다. 그리고 개인주의 문화에 소속된 피험자든 집단주의 문화에 소속된 피험자든 각자의 외집단 구성원을 경시하는 점은 같았으나, 둘 중 전자만이 내집단에 대한 평가를 부풀렸다. 달리 말하면, 동아시아인은 미국인과는 달리 굳이 내집단을 치켜체우지 않고도 외집단을 열등하다고 볼 수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차이가 뜻밖의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이 분야의 거장인 미시간대학교의 리처드 니스벳이 개척한 연구에서 드러났다. 서구인은 문제 풀이에서 더 직선적인 방식을 택하는 편이고, 공간 부호보다 언어 부호에 더 의지하는 편이다. 피험자들에게 공의 움직임을 설명해보라고 시키면, 동아시아인은 공이 환경과 상호작용함으로써―마찰함으로써―생기는 관계적 요소로 설명하는 편이지만 서구인은 공의 무게나 밀도와 같은 내적 특질에 집중하는 편이다. 서구인은 길이를 절대 용어로 더 정확히 알아맞히지만(”이 선의 길이는?“), 동아시아인은 상대적 가늠을 더 잘한다(”이 선은 저 선보다 얼마나 더 깁니까?”). 또 이 문제를 보자. 원숭이, 곰, 바나나 중에서 어울리는 것을 두 가지만 묶으라면? 서구인은 범주적으로 사고하여 원숭이와 곰을 묶는다. 둘 다 동물이니까. 동아시아인은 관계적으로 사고하여 원숭이와 바나나를 묶는다. 원숭이를 생각하면 원숭이의 먹이가 떠오르니까.
놀랍게도, 문화 차이는 감각 처리에서도 드러난다. 서구인은 정보를 좀더 집중된 방식으로 처리하는 데 비해 동아시아인은 보다 전체적인 방식으로 처리한다. 어떤 복잡한 장면 한가운데에 사람이 한 명 서 있는 사진을 보여주면, 동아시아인은 맥락에 해당하는 배경을 더 정확히 기억하지만, 서구인은 중앙의 사람을 더 잘 기억한다. 심지어 눈동자의 운직임에서도 이런 차이가 관찰된다. 서구인의 눈은 보통 맨 먼저 사진의 중앙을 보지만, 동아시아인의 눈은 전체 배경을 훑는다. 게다가 서구인에게 사진의 전체 맥락에 집중하라고 시키거나 동아시아인에게 중앙의 대상에 집중하라고 시켜면, 그들의 이마엽 겉질이 더 열심히 일하느라 더 많이 활성화한다.
7장에서 보았듯이, 우리는 생애의 아주 초기부터 문화적 가치를 몸에 새긴다. 그러니 문화가 성공, 도덕, 행복, 사랑, 기타 등등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크게 놀랍지 않다. 하지만 우리 눈이 그림의 어느 부분에 집중하는지, 우리가 원숭이와 바나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공의 궤적을 물리학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도 문화 차이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놀랍게 느껴진다. 문화의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집단주의/개인주의 문화 비교에서 유념해야 할 주의사항도 당연히 있다.
· 가장 중요한 점은, 모든 문제에서 그렇듯이 이 현상도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서구인 중에도 대다수 동아시아인보다 더 집단주의적인 사람이 무수히 많다. 대체로 다양한 성격 지표에서 개인주의 성향이 높게 측정된 사람일수록 뇌 촬영에서도 개인주의적 패턴이 강하게 확인된다.
· 문화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동아시아에서는 집단에 대한 개인의 순응 수준이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다(가령 일본에서 신생아에게 독특한 이름을 지어주는 비율이 갈수록 늘고 있다). 그리고 한 개인이 특정 문화에 주입된 정도가 빠르게 바뀔 수도 있다. 피험자에게 사진을 보여주기 전에 개인주의 문화 혹은 집단주의 문화를 연상시키는 단서를 접하게 하면, 피험자가 사진을 전체적으로 처리하는 정도가 그 단서에 따라 바뀐다. 이중 문화에 속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특히 더 그렇다.
· 집단주의 문화와 개인주의 문화와 인구 집단 사이에 유전적 차이도 있다는 것을 잠시 후 살펴볼 텐데,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 무슨 유전적 운명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이 결론을 뒷받침하는 가장 훌륭한 증거는 이런 연구에서 흔히 대조군으로 사용되는 집단, 즉 동아시아계 미국인들에서 나온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의 후손이 유럽계 미국인과 같은 같은 수준의 개인주의를 습득하는 데는 일반적으로 약 한 세대면 충분하다.
· 당연한 소리지만, ‘동아시아인’이나 ‘서구인’은 단일한 집단이 아니다. 베이징 출신 사람과 티베트 고원 출신 사람에게 물어보라. 아니면 버클리, 브루클린, 빌럭시 출신의 세 미국인을 고장나서 정지한 엘리베이터에 몇 시간 함께 넣어두고 지켜보라. 앞으로 보겠지만, 한 문화 내에도 크나큰 변이가 존재한다.
사람들이 지구의 한쪽에서는 집단주의 문화를 발달시키고 다른 쪽에서는 개인주의 문화를 발달시킨 이유가 무엇일까? 미국이 개인주의 문화의 대표가 된 데는 최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이민이다. 현재 미국 인구의 12%는 이민자이고, 또다른 12%는 (나처럼) 이민자의 자식이고, 0.9%의 순수 원주민 인구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지난 500년 안에 이주해온 사람들의 후손이다. 이민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안정된 옛 사회에서 괴짜, 불평분자, 만족하지 못하는 자, 이단자, 말썽꾼, 과잉활동성이 있는자, 경조증이 있는다. 인간 혐오자, 역마살이 든 자, 관습적이지 않은 자, 자유를 갈망하는 자, 부를 갈망하는 자, 지루하고 억압적인 코딱지만한 마을에서 벗어나고자 갈망하는 자, 아무튼 갈망하는 자였다. 거기에 두번째 이유를 겹쳐보자. 식민지 시절과 독립국 역사를 아울러 대부분의 기간에 미국에는 끊임없이 확장하는 개척지가 있었다. 신새계로의 티켓만으로는 모자라다고 느낄 만큼 극단적인 낙관주의를 품었던 사람들은 그곳에 끌렸다. 자, 그 결과가 바로 개인주의 문화의 대명사 미국이었다.
동아시아가 집단주의 문화의 교과서적 사례가 된 까닭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생계를 꾸린 방식이 문화에 영향을 준다는 것, 그 방식은 생태학적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설명의 열쇠다. 동아시아에서 생계는 첫째도 둘째도 쌀농사였다. 약 1만 년 전부터 경작된 벼는 막대한 양의 집단 노동을 필요로 하는 작물이다. 벼를 심고 거두는 일은 집집이 돌아가며 하는데, 한 집의 논작물을 수확하는 데만도 온 마을이 매달려야 하기 때문이다.[*미국도 노동집약적 농업이 과거에 없진 않았다. 하지만 그 과제를 집단주의가 아니라 노예제로 풀었다.] 노역은 그뿐만이 아니다. 처음에 환경을 바꾸는 데도, 그러니까 산을 깎아 계단식 논을 만들거나 논에 물을 대기 위한 관개시설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도 집단 노동이 필요하다. 용수를 공평하게 누는 것도 문제다. 발리에서는 사제들이 물을 관리한다. 발리의 명물인 물의 사원들이 그 상징이다. 중국 청두시 근처에는 5000제곱킬로미터가 넘는 논에 물을 대는 두장옌이라는 이름의 관개 체계가 있는데, 그 역사는 무려 2000년이 넘는다. 동아시아에서 집단주의의 뿌리는 벼의 뿌리만큼이나 깊다.
(334~340쪽)
동아시아/서구의 집단주의/개인주의 이분법은 놀랍게도 유전자 차원에서도 상응하는 현상으로 드러난다. 앞 장에서 도파민과 DRD4, 즉 D4 수용체 유전자를 살펴보았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DRD4는 변이가 유난히 많은 유전자로, 인간의 경우 최소 25가지 변이체가 있다(다른 영장류들은 이보다 적다). 그런데 이 변이는 DNA 서열의 부동에 의한 무작위적이고 무의미한 변이가 아니다. 강력한 선택압을 받아서 선택된 변이다. 가장 흔한 형태는 4R 변이체로, 동아시아인과 유럽계 미국인 절반가량이 이 변이체를 갖고 있다. 7R 변이체도 있는데, 이 변이체가 만드는 수용체는 겉질에서 도파민 반응성을 떨어진다. 그래서 이 변이체는 새로움 추구, 외향성, 충동성에 연관된다. 이 변이체가 생겨난 것은 현대 인류보다 앞선 시점이었지만, 이 변이체가 극적으로 흔해진 것은 지난 1만 년에서 2만 년 사이였다. 유럽인과 유럽계 미국인의 약 23%가 7R 변이체를 갖고 있다. 동아시아인은? 겨우 1%만이 갖고 있다.
그렇다면 7R의 발생 빈도 변화와 문화의 변화 중에서 어느 쪽이 먼저였을까? 4R과 7R 변이체, 그리고 2R 변이체는 전 세계에 퍼져 있다. 그것은 곧 인류가 13만 년 전에서 5만 년 전 사이에 아프리카로부터 퍼져나갔을 때 이미 존재했던 변이체라는 뜻이다. 그런데 예일대학교의 케네스 키드가 7R의 분포를 조사한 것을 보면,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다.
다음 그래프에서 맨 왼쪽부터 보자. 아프리카, 유럽, 중동의 여러 인구 집단들에서는 7R이 약 10~25%의 빈도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른쪽으로 나아가면, 아시아 본토에서 출발하여 섬에서 섬으로 이동함으로써 말레이시아와 뉴기니에 도달했던 집단들의 후손은 7R 빈도가 그보다 약간 더 높다. 약 1만 5000년 전에 베링 육교를 건너서 북아메리카로 이주했던 이들을 선조로 둔 무스코기, 샤이엔, 피마 등 북아메리카 부족들도 마찬가지다. 그다음은 중앙아메리카의 마야인으로, 약 40%가 7R을 갖고 있다. 그다음은 남아메리카의 기이바족과 케추아족으로, 약 55%가 갖고 있다. 마지막은 더 멀리 아마존 유역까지 내처 남하했던 이들의 후손이다. 이 티쿠나, 수루이, 카리티아나 부족은 약 70%가 7R 변이체를 갖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이들은 미래의 앵커리지 시내에 도달한 뒤에도 멈추지 않고 1만 킬로미터를 더 이동하기로 결정했던 사람들의 후손이다.[물론, 어떤 한 개인이 그만큼 멀리 이동했을 리는 없다. 인류가 서반구에서 남쪽 끝까지 이주하는 데는 수천 년이 걸렸다.] 충동성과 새로운 추구에 연관되는 7R 변이체가 높은 빈도로 나타난다는 것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이주를 감행했던 이들이 남긴 유산인 셈이다.
이제 그래프 중앙을 보자, 여기에 있는 중국, 캄보디아, 일본, 대만(원주민 부족인 아메이와 타이야도 포함하여) 사람들은 7R 변이체 빈도가 0에 가깝다. 동아시아인이 쌀농사를 짓기 시작하며 집단주의 사회를 건설했을 때, 7R 변이체를 도태시키는 선택압이 강하게 작용했던 것이다. 키드의 표현을 빌리면, 이런 인구 집단들에서 7R은 “거의 사라졌다”. 어쩌면 7R을 가진 개체들이 행글라이딩을 발명하다가 목이 부러졌을 수도 있고, 역마살이 들어서 알래스카로 건너가려다 이미 베링 육교가 사라진 뒤라 바다에 빠져 죽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들이 짝으로서 바람직해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유야 어쨌든, 동아시아의 문화적 집단주의는 7R 변이체를 도태시키는 선택압과 함께 공진화했다.[*앞에서 말했듯이, 동아시아계 미국인들도 보통 이주 후 불과 몇 세대 만에 유럽계 미국인들 못지 않은 개인주의자가 된다. 그러면 혹시 이주를 선택한 동아시아인들은 동아시아인인 전반도다 7R 빈도가 높을까(또 중국의 밀 재배 지역 인구는 쌀 재배 인구보다 7R 빈도가 높을까)? 케네스 키드에 따르면, 아쉽게도 두 질문의 답은 아무도 모른다.]
(342~344쪽)

행동 - 로버트 새폴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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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LOE, SEMI & DOHEE cignature 4th EP Album ‘그해 여름의 우리 (Us in the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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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개혁안 발표 때 정부는 기금 운용 수익률 목표치를 당초 4.5%에서 5.5%로 높이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 조치가 병행되면 소진 시점은 더 늦춰질 수 있다.
다만 기금이 소진된 이후 그해 거둬들인 보험료만으로 국민연금 급여를 주는 상황에서 필요한 보험료율은 현행대로라면 2078년 35%,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3%' 개혁 이후엔 37.5%로 다소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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