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테크리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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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번째 책
아멜리 노통브 - 앙테크리스타
성장기의 진통을 겪고 있는 여주인공 블랑슈와 그녀가 동경하며 동시에 증오했던 친구 크리스타에 관한 이야기다. 소심하고 자신의 세계안에 둘러앉은 블랑슈와 대조되게 크리스타는 활발하게 곳곳에 자기 이야기를 퍼뜨리며 ‘그룹’을 형성하는 여자 아이였는데, 어떤 계기로 해서 블랑슈는 크리스타에게 접근하게 되고 자기집에 들어와 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한다. 그랬다. 시작은 어디까지나 블랑슈의 제안부터였다. 블랑슈는 자기가 동경하던 어쩌면 동경하던 ‘사람’이 아닌 ‘삶’을 살고있는 크리스타를 집에 들인 뒤로 즐거움과 설렘보단 불행 속으로 빠져든다.
이유인즉슨 크리스타가 살던 삶에 블랑슈는 곧이곧대로 절대 섞여들수가 없던 것이다. 크리스타는 내가 봤을 땐 블랑슈를 챙기려 했다. 그 형식은 블랑슈를 존중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평소 인간관계를 생각해도 친구들은 딱히 그런 사람의 면면을 존중하는 편이 아니다. 어쩌면 존중이란, 보다 떨어져있는 관계, 보다 친하지 않은 관계에서 온전히 발현되고 가까운 사람, 친한 친구의 울타리 안에 들어오고서는 마치 관례처럼 풀어야 하는 것처럼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동경하단 삶 속에 녹아들 수도 없었던 블랑슈는 설상가상으로 부모님의 관심마저 크리스타에게 뺏기게 된다. 말대로 크리스타는 정말로 블랑슈와 정 반대되는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집안에 들어와있으니 너무도 손쉽게 대조를 이루었을 것이고 집안의 자식을 다시보게 되는, 더 극단적으로 평가하게 되는 계기도 물론 되었을 것이다. 조금 이���가 안되는 대목이기도 했다. 아무리 예쁘고 싹싹한 친구가 집에 들어와 산다 한들, 너무도 깊숙히 빠져드는것은 아닌가, 말대로 약장수에게 단체로 넘어가듯이 하는건 아닌가도 싶던거다. 혹은 정말로 그만큼 블랑슈의 존재감이 옅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블랑슈는 대체적으로 일어나는 감정을 속으로 안고 침착하게 삭히는 이성적인 인물이다. 그랬기에 크리스타와의 불편한 동거를 계속 수동적으로 이어나갈수밖에 없었다. 이쯤부터 앙테크리스타라는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세상 밖의 인물들을 마주할때의 모습은 크리스타, 블랑슈 자신과 마주할때의 모습은 앙테크리스타로 남들에게 친절하고 예쁜 이미지를 풍기는 크리스타와는 달리 본인에게 모욕감을 가져다주는 언사를 던지는 반대의 모습에 블랑슈는 앙테라는 말을 덧붙인것이다. 기존에는 그리스도와 정반대되는 적대세력을 적그리스도라고 지칭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소설 즉 프랑스 안에서는 앙테크리스트 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게 크리스타에게 앙테가 붙은 이유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도 사실 크리스타라는 인물에 대해서 계속 헷갈려하고 있었다. 크리스타 입장에선 나름 블랑슈를 챙기려고 이런저런 말들을 짖궃게 던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는데(이를 블랑슈가 기분 나쁘게 받아들인거고), 후에 블랑슈의 부모님을 하찮게 생각하는 말을 던졌을 때 부터 읽고있던 나도, 소설속에서 말을 들은 블랑슈도 크리스타라는 인물에 대해서 확실하게 결단을 짓게 된다. 친절과 소위 챙겨줌을 가장한 크리스타라는 인물이 실제로 가식과 거짓말로 무장한, 자신의 집과 블랑슈의 집 사이에서 이중간첩마냥 자리하고 있던 그 생각치 못한 삶이 속속들이 드러나자 블랑슈는 이를 부모님께 알리고, 믿지 못하던 부모는 차근차근히 크리스타의 겉껍질을 벗겨나간다.
인간관계가 넓지 않을때는 이런점에서 불리할수밖에 없다. 이는 부조리함보단 어찌보면 당연한 모습이라 여겨진다. 아군을 많이 가진 자가 그렇지 못한자보다 유리하다. 그렇게 크리스타가 블랑슈에 대한 험담을 퍼뜨리는 건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고, 그 안에서 블랑슈는 얻지 못하던 눈총들을 삽시간에 쌓아나간다.
이 대목에서 블랑슈나 부모의 침착함이 인상적으로 드러나는데, 크리스타의 부모가 보내는 협박성 편지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참아내는 것과 블랑슈도 마찬가지로 학교를 오고가며 숙덕거리는 주변을 담담하게 지나간다는 모습들이 그랬다. 블랑슈는 크리스타를 가까이 한 계기로 엄청난 변화의 순간을 앞에 두고, 결심과 결단들 속에서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다.
불행이 가져다준 좋은 점도 있었다. 나의 방과 책 읽을 권리를 되찾은 것이다. 이 시기만큼 책을 열심히 읽은 적이 없었다. 과거의 결핍을 보충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앞으로 다가올 위기 상황에 맞서기 위해서도 나는 탐욕스레 책을 읽었다. 책읽기를 도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진리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다. 책읽기란 가장 정신집중이 된 상태에서 현실과 대면하는 것이다. 묘하게도 그것이 언제나 흐리멍텅한 상태로 현실에 뒤섞여 있는 것보다 덜 두렵다.
이어 위선이라는 책을 읽다가 눈이 번쩍 뜨인 블랑슈는 다음에 간 학교에서 다시 악의 찬 이야기를 퍼뜨리고 있던 크리스타에게 블랑슈는 담담하고 당당하게 걸어 나간다.
나는 계단식 좌석 꼭대기에 있는 내 자리를 향해 올라갔다. 막 앉으려는 순간 내가 들어서고부터 교실이 조용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들어섰을 때 크리스타가 말을 멈춘 것이다. 모든 학생이 나를 돌아보았다. 앙테크리스타가 그들에게 어떤 중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이처럼 뻔뻔스런 악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생각해볼 것도 없었다. 나는 일어나서 막 올라온 계단을 다시 내려갔다. 웃음이 날 정도로 자신감에 차서 나는 크리스타를 향해 침착하게 걸어갔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내 인내심을 꺾었다고 믿고서. 드디어 내가 자신이 바라는 행동을 하겠구나 하고서. 그녀에게 욕설을 퍼붓고, 맞서서 따귀를 때리면 마침내 그녀에게 영광의 시간이 도래하리라. 그녀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 순간을 이렇게 너무도 잘 파악하고 있던 블랑슈도 인상적이었지만 그 뒤는 절대 상상도 못하던 장면이 벌어졌다.
나는 양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그녀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갰다. 르노, 알랭, 마르크, 피에르, 티에리, 디디에, 미구엘 등등의 남자애들이 채워주지 못한 결핍을 이용해서, 나는 배운 적 없지만 문득 터득하게 된 행위를 즉석에서 해보였다. 인류가 고안해낸 것 가운데 가장 불합리하고 가장 무익하며, 그 무엇보다 당혹스럽고도 아름다운 행위, 영화 속 키스를 말이다.
상상못했던 장면에 어떤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행동을 손쉽게 설명할수는 없어도 그건 분명 크리스타를 짓부술 행동였음에는 틀림없었다. 실제로 이 사건을 뒤로 크리스타는 블랑슈로부터 멀어졌고, 벌이던 험담들도 모두 그만두었고, 블랑슈 부모에게 전해지던 협박성 편지도 끊기게 되었다.
크리스타가 이런 결단을 내리기 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은 이랬다.
‘위선’이라는 책을 읽다가 이런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범인은 선에도 악에도 무심하다.” 순간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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