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멋진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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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저주
임종의 순간, 지난 삶을 돌아보며... 후회가 밀려올지도 모릅니다. "더 열심히 일할걸, 한 번만 더 할걸, 친구들과 시간을 더 보낼걸" 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겁니다. 그리고 홀로 집에 ���어박혀 무의미하게 페이스북을 새로고침하며 시간을 죽였던 저녁들을 떠올리며, 그때의 허무한 만족감에 스스로를 질책할지도 모릅니다.
감사하게도, 당신은 싫어하던 직장을 계속 다녔습니다. 눈치 보여서, 혹은 분위기를 흐릴까 봐 그만두지 않았던 걸 신께 감사하게 될지도 모르죠. 당신과 전혀 맞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했던 것도, 가족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꿈꾸던 직업을 포기했던 것도 모두 잘한 일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할 겁니다. 하지만 그 위로는 텅 빈 공허감만을 남깁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나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던 자신에게조차 만족할지도 모릅니다. 수동적인 비난을 마음 깊이 새기며 오랜 시간을 보낸 것, 진정으로 열정을 쏟을 수 있었던 일을 포기했던 것까지 모두 잘한 선택이라고 여길지도요. 하지만 그 선택들은 결국 당신을 더 깊은 어둠으로 몰아넣었을 뿐입니다.
임종의 순간, 당신은 과거에 끊임없이 걱정했던 사소한 일들을 떠올리며, 그것들이 얼마나 하찮았는지 깨달을 겁니다. 그리고 그 시간에 얼마나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었는지를 떠올리며 아쉬워할지도요. 그때는 아직 몸도 건강했고, 세상은 이전 어느 시대보다 깨달음에 가까웠으며, 무엇보다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이 여전히 곁에 있었으니까요.
당신은 젊었습니다. 그 젊음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 귀했으며, 그토록 원하는 모든 것의 가치 이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삶은 덧없이 흘러갔고, 당신은 그 모든 것을 낭비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에 빠질 겁니다.
뭐라고요?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극히 제한적이었다고요? 그렇다면 긴바쿠나 SM플레이 연구 같은 걸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겠네요. 그리고 내일 할 일을 길게 적어 두겠죠. 물론, 그건 그다음 날에도 또 다른 핑계를 대며 미룰 거라는 걸 알면서요.
당신이 젊었을 때는 수많은 것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임종의 순간, 당신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뿐입니다. 다시 젊어지는 것입니다.
임종의 순간, 당신은 끔찍한 깨달음과 마주할지도 모릅니다. 돈을 버는 이유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었음을, 그 돈으로 자신과 타인을 위해 멋진 일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음을요. 긴 삶의 의미는 내일로 계획을 미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 그 계획을 실행할 시간을 더 주기 위한 것이었음을요.
바로 지금입니다. 광활한 우주 속에서 생각할 수 있는 존재로 태어난 이유는, 그저 남의 글을 읽고 끊임없이 미뤘던 계획들을 묻어 두는 것이 아니었을 겁니다. 남은 시간을 제대로 즐기며 보내기 위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조금이라도 더 좋은 시간을 선물하기 위해서였겠죠. 하지만 당신은 그 모든 것을 놓쳤습니다.
당신은 과거 인류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시대를 살았습니다. 매일 기적에 둘러싸여 있었죠. 사고하는 물질로서, 온 우주가 당신을 창조하기 위해 공모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여전히 스스로를 설득했습니다. 모든 것이 불리하다고, 모든 좋은 아이디어는 이미 다 나왔으며, 세상은 어째서인지 엉망이라고요.
그렇다면... 좋습니다. 그때 당신이 어떻게 봤든, 미��는 언제나 수많은 기회와 모험으로 뻗어나가는 거대한 네트워크였습니다. 언제든 당신은 삶을 진정 원하는 모습으로 재창조할 수 있었습니다. 위험도 있었고, 나쁜 날들도 있었으며, 스트레스도 있었겠지만, 그건 한평생을 의심과 자기파괴로 낭비했다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겁니다.
힘든 길이 쉬운 길이었고, 쉬운 길이야말로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당신을 만드는 데는 140억 년이 걸렸지만, 망치는 데는 고작 90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의심과 무관심으로 스스로 그 모든 것을 망쳤습니다.
임종의 순간, 당신은 지난 삶을 돌아보며...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더 열심히 일할걸, 한 번만 더 할걸, 친구들과 시간을 더 보낼걸' 같은 생각들이 떠오를지도요.
아니면, 폰 화면을 꺼버리고, 진정으로 열정을 쏟아붓고 싶은 일을 향해 나아가야 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아직 모든 삶을 앞두고 있었던 그때, 그리고 당신의 길을 막고 있었던 건 단지 당신 자신뿐이었던 그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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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23
참나 같은 건 조각이 났다. 세상에 단전 호흡 같은 건 언제 해보긴 했었는지 가물할 정도이다. 부처님을 앞에 두고도 불상에 그려진 수염이 마음에 들지 않아 금새 자리를 털고 나왔다. 소를 물리게 구워 먹고 담배를 피고 맥주를 마시고 오랜만에 모그 음악을 들으면서 어디부터 잘못, 아니 달라졌나 생각한다.
남의 살이 타는 냄새에 울렁이는 마음보다 부위마다 맛이 다르다는 사실이 더 크게 와닿는 겨울. 아무래도 토시보단 취향이 안창에 가까워서.
지겨운 인스타그램. 그렇지만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들어가있는 지독한 곳. 끊임없이 넘어가는 짧은 영상과 멋진 사진들. 그때 마침 들어오는 카톡. 나 방금 옷만 50만원어치 질렀어 할부로. 돈돈돈. 하루에 돈만 생각 하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부러우면서도 경멸하고, 계속 ���여다보면서도 안 본척 한다. 팔리는 거. 더 잘 팔리는 건 뭘까. 내 팔자에 없다 생각한 주식도 기웃거려본다. 그럼 금방 나는 매대에 놓인 고깃덩어리가 되는 것 같다. 여기요. 싸게 팔아요.
저의 한시간이 얼마인가요. 를 놓고 싸우는 싸움.
돈은 아무래도 괜찮아요. 라는 대사를 숨쉬듯이 뱉었던 20대 초의 나는 얼마나 무지의 윤택한 삶을 살았었길래. 그때의 내가 얼마나 안쓰럽고 한편으로는 재수없었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몰라서 뱉었던 반질거리는 말들
지금은 술김에도 뱉기 힘든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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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춤
조금 웃길지도 모르지만, 춤을 배운 적이 있다.
나는 하등 몸을 쓸 줄 모르면서 흥만 가득한 사람이라 그래서 배웠다.
사실 지금도 무슨 용기가 생겨서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지만 그때는 공연까지 하고, 주말에 연습도 하고, 그런 웃기기도 한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뭐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시간들이지만, 그 때만큼 뭔가에 전념하던 나는 지금은 없다.
지금은 재밌는게 별로 없다.
넉넉하진 않아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옷도, 밥도 턱턱 살 만큼은 된 것 같은데 그만큼 채워지지가 않는다.
진짜 신기한 일이다.
그래도 이따금씩 다시 춤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건, 그때의 내가 그리운 건지, 지금의 나를 움직이게 하고픈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Ram
*춤
그때도 지금처럼 일교차가 큰 가을이었다. 자켓이나 가디건이 필수인 밤에 S와 엄청 좋아했던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와인에 빠져있던 S의 취향이 떠올라 S에게 '와인 마실래?'라고 물었더니, '그래!'라는 대답이 1초도 안되어 돌아왔다. 와인 보틀과 홍합 요리를 주문했고, 밀렸던 수다를 잔뜩 풀어대며 신나게 웃고 떠들었더니 앞엔 빈 보틀과 그릇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적당히 취했는데 술은 더 마시기 싫어서 배부른데 나가서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어느새 S와 나는 택시를 타고 한강을 건너고 있었다. 목적지는 호텔 지하에 있는 클럽! 심지어 그 클럽은 이제 젊은 나이대는 거의 가지 않는, 블로그 말을 빌자면 '옛날 잘나가는 오렌지 족이 갔던' 그런 클럽이었다. 어둡지만 휘황찬란하고 느껴지는 조명 사이를 걸어 맥주를 한 병씩 주문하고 쭉 돌아봤는데 멋진 드레스 입은 여자들, 양복을 입은 외국인들, 반짝거리고 무겁게 생긴 커다란 시계를 찬 아저씨들이 바에 앉아서 칵테일과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다. 2~3개 나눠진 스테이지는 모두 텅 비어있었고, 각 스테이지마다 음악이 달랐고, 텅 빈 스테이지에선 외로운 DJ만 열심히 ���트롤러 위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S와 나는 서로 '여기다!'라는 의미의 눈빛을 보냈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냥 리듬을 탔다. 그 누구도 S와 나에게 관심이 없었고, S와 나조차 서로의 춤에 대해 관심이 없었으므로 그냥 둘이 말 그대로 마음껏 몸을 흔들었다. 둘 다 정말 무아지경으로 아무렇게나 있는 대로 춤을 췄다. 아주 잠깐 펄프 픽션에서 우마서먼이 다이너 스테이지에서 춤추는 장면이 떠올라 혼자 웃었고, 소화가 다 될 정도로 춤을 춘 S와 나는 그제야 만족한 하루를 보냈다는 듯한 표정으로 깔깔거리며 클럽에서 나왔다. 이제는 클럽도, 프렌치 레스토랑도 사라졌고, 더 이상 S와 클럽을 갈 수도 없지만 어디선가 또 그때처럼 춤을 출 순 있겠지.
-Hee
*춤
처음에 그것은 선천적으로 수치심이라는 것을 잘 못 느끼는 친구의 개그에 가까운 무엇이었다. 식당에서 식판 한 장을 빌려서 축제 무대에 올라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몸짓으로 전교생의 웃음을 샀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매일 새벽 혼자 먼저 일어나 공부만 하던, 내성적이고 남들 앞에 나서기 싫어하던 내 룸메이트에게 어쩌다 그런 용기가 생겼을까.
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그 친구를 거의 보지 못했다. 다른 친구에게 듣기로는 퇴근하자마자 댄스학원에 다니고 연기 공부를 한다고 했었던가. 그런데 얼마 전에 마라톤 대회에서 우연히 그 친구를 만났다. 춤과 연기가 좋아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는데 지금은 러닝에 빠져 대구에서 러닝 클럽을 운영하면서 강의나 이런저런 활동을 한단다.
그 친구는 가끔 기분이 내키는 대로 몸을 움직이고 그걸 영상으로 올리는데 어릴 때 보았던 그 무엇과는 달리 진짜 춤이라고 할만한, 나로서는 영원토록 할 수 없을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멋있었다. 몸짓도, 표정도, 좋아하는 일을 찾아 스스로를 힘껏 내던질 수 있는 용기도. 내 친구 중에 그런 애가 있다는 게 괜히 자랑스럽게 느껴져서,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에 조금 더 나를 쏟아버려도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Ho
*춤
춤바람이 난 적 이 있다. 처음 대학에 가서 클럽을 접하고, 거의 매주 클럽에 갔다. 클럽에 들어가는 순간 시공간이 달라지면서 귀가 윙윙 거리고 피곤한 줄도 땀을 흠뻑 흘리며 여러 사람과 춤추며 놀던 시절. 새벽에 클럽에서 나오면 속옷까지 베여 있는 담배 냄새. 그게 내 20대 초반의 냄새가 아닐까? 이제는 절대 밤을 새우며 놀수없고, 사람 많은 곳, 시끄러운 곳을 싫어한다. 아마 이제는 못 견디는 거겠지. 내 체���과 내 마음이. 그때 원 없이 놀아서 너무 다행이다.
벌써 작년이 되었나? 이태원에서 젊은이들이 길에서 목숨을 잃은 게. 그때 왜 그곳에 갔냐고 그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많이 어이가 없었다. 코로나를 견디고 처음으로 모인 그 자리에 그냥 재밌게 놀고 싶고 젊음을 발산하고 싶어 나갔을 텐데. 허망한 죽음이다. 어떤 변화는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서서히 우리 삶으로 스며든다. 그게 좋은 것이든 안 좋은 것이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힘은 반드시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 이번에는 그 영향으로 인해 피 냄새가 나고 죽음이 계속 보여서 슬프다. 그래도 우리는 똑똑하고 의식 있는 사람들이니까 잘 견뎌 내리라 믿는다.
그날이 오면 자기 가죽을 벗겨 북을 치고 싶다는 어느 시인의 처럼은 못하겠지만, 그날이 오면 다 같이 손잡고 춤을 추고 싶다. 모든 걱정과 시련은 하늘로 날려버리고.
-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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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5/2025
마지막 편지를 너무 성급하게 끝낸 것 같아요… 아직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이건 편지라기보단 한숨 섞인 고백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어떻게든 말해야겠어요. 어제가 힘든 날이었고, 사실 요즘 계속 힘든 날들이 이어지고 있어요. 전 당신과 많이 닮은 사람인 것 같아요. 장난기 많고, 주변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가끔은 마음속 깊은 곳에 큰 구멍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런 순간엔 눈물이 쏟아지고, 가슴이 너무 아파서 마치 마지막 숨을 쉬는 것 같아요. 그럴 때면 스스로에게 묻죠: 왜 나는 행복하지 않을까?
항상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죠?
최근에 RM이 우리에게 자신의 어두운 시기를 노래로 담아 들려줬잖아요. 저도 그가 느꼈던 감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7클럽에 들지 않으려 애썼다는 그의 말처럼요. 저도 지금 25이고, 저 나름대로 애쓰고 있어요.
정말 걱정하진 말아요. 15살 때부터 이 모든 걸 겪어왔으니까, 저는 분명 괜찮아질 거예요. 그리고 이 마음의 짐을 당신에게 지우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제가 당신을 존경한다고 해서 제 문제가 당신 책임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이 편지를 외로움의 표현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해요. 제게는 그게 너무 부끄러울 테니까요. 그냥 먼 곳에 있는 친구가 용기 내어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은 거라고 생각해 주세요.
정국아, 우리는 참 많은 것들에서 행복을 찾으려 하죠. 저 같은 사람들은 당신처럼 모든 걸 가진다면 완전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비싼 물건들이 행복을 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알아요. 세상이 뭐라고 해도, 진짜 행복은 그런 게 아니에요.
행복은 마음 깊은 곳에서 피어나는 진실된 감정이고, 슬픔과 함께 어우러지는 음악 같은 거예요. 사실, 우리는 진짜로 이해하는 게 뭐가 있을까요? 그냥 마치 죽음이 오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는 거 아닐까요?
우리는 언젠가 떠난다는 사실을 거의 잊고 살고, 우리가 남길 것들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자주 해요. 그래서인지 조금 멜랑콜리한 사람인 것 같아요. (웃음)
이 글이 지금까지 쓴 모든 말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버렸죠? 하지만 저는 늘 제가 누구인지 숨기지 않으려 했어요. 이게 바로 저예요. 조금은 혼란스럽고, 아주 강렬한 사람이요.
예를 들어, 지금 저는 책상에 앉아 손으로 얼굴을 괴고 이 마지막 부분을 바라보면서 스스로가 조금은 가벼워졌다고 느껴요. 그렇죠? 그냥 친구 사이의 솔직한 대화일 뿐이에요.
사람들이 저를 보면 삶에 대해 참 깊이 생각하는 눈을 가졌다고 해요. 저는 언제나 "왜?"라고 묻는 사람이고, 겉으로 보이는 것 너머를 보려는 사람이에요. 제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인생이 저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아픈 일도, 아름다운 일도 많이 겪었어요. 때로는 제가 25살 치고는 너무 많은 것을 겪었다고 느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걸 잃었다고 생각해요. 아마 이 공허한 감정은 그런 이해되지 못한, 받아들이지 못한 것들에서 오는 걸지도 모르죠.
제 나라에는 이런 노래가 있어요. 어느 가수가 이렇게 말했어요: "우린 너무 젊어요. 우리에겐 온 세상의 시간이 있어요!" 이 말은 저에게 이렇게 들려요. 마치 아이에게 사탕을 쥐여주며 언제 빼앗을지 말해주지 않는 것처럼요. "젊음과 희망을 잠시 줄게. 다 쓰기 전에 최대한 누려봐."
제 인생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면, 때로는 내가 너무 어린가 싶고, 또 어떤 때는 너무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나 싶고, 혹은 아직 시간이 많은 걸까? 그런 생각을 해요.
이건 인간관계, 커리어, 취미 모든 것에 해당돼요.
저는 지금 제 삶을 정리해야 할 시기 같아요.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고, 저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소중히 여겨야겠어요.
지금 이 순간, 저는 침대에서 일어나서 따뜻한 코트를 입고 이 글을 쓰고 있어요.
들어줘서 고마워요.
답례로 (소중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여성 아티스트를 소개할게요: 빌리 아일리시. 그녀도 정말 멋진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 않나요?
그럼, 또 만나요 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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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1. 거 싫다. ���에서 있는 일이 집까지 잔상으로 남는 거. 그렇다고 딱히 기분 나쁠 일은 없었는데. 집 오면 밖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차단하고 싶다.
2. 저질 체력이란 건 인정해야겠다. 난 글 못 쓸 체력이 맞아. 그런데 쓰고 싶은 욕심만 있는 거지.
3. 꿈에서 별별 사람들이 다 나왔다.
4. 아래는 너무 멋있는 말이야.
(덧. 존 그린의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에 나왔다고. 책도 있고 영화도 보고 여기에 언급까지 했는데 이런 멋진 말이 있었다니? 그럼 아래 캡쳐는 그 영화에 나온 장면인가? 그리고 나 그 영화 보고 울었나? 울었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5. 예상하지 못한 기회가 쌓이면 그게 또 다른 기회가 되고. 난 '운이 좋아서'란 말은 안 맞는 것 같다. 어떻게든 뭘 얻으려고 하고 하나라도 건지려 하고, 그 욕심이 쌓이면 어느 순간 기회가 오는 게 맞다. 오늘 든 생각. 그리고 존버가 답이다, 진짜.
6. 새로운 계획이 생겼다. 개인적인 목표. 잘 해나가야지. 난 잘하고 있어!
7. 북퍼퓸이란 말이 의미가 없는 것도 같고? 책에 향수 뿌리면 그게 북퍼퓸이 되는 것 아니냐며. 이것도 마케팅인가? 애서가를 겨냥한? 북퍼퓸은 몸에도 뿌려도 된다며. 북퍼퓸=책에 뿌려도 됨=몸에 뿌려도 됨=향수, 요거 아니냐고요. 앞에 '북'만 붙이고. 어쨌든 시트러스 향이 꽤 좋다. 선물 받은 향수도 향 너무 좋은데. 아직 많이 남았다. 여름에 뿌리고 다녀도 되려나? 땀이랑 섞이는 건 아닌지. 나중에 검색해 봐야겠다.
8. 마릴린 먼로가 생전에 이런 말한 게 생각났다. 자신은 잠들 때 '샤넬 No.5'만 입고 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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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태도는 단순히 상황을 무조건 좋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더 나은 방향을 찾으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나는 운이 나빠’라고 생각하는 대신 ‘이번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라고 생각하면, 같은 경험이라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마인드는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고,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또한 긍정적인 태도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줍니다. 밝고 긍정적인 사람 곁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기분이 좋아지고, 더 활기차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긍정적인 말을 자주 하면 주변 사람들도 힘을 얻고, 함께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작은 말 한마디라도 "괜찮아, 할 수 있어", "넌 잘하고 있어"라고 격려하면 상대방의 하루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긍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바쁘게 살다 보면 당연한 것들을 쉽게 지나치곤 합니다. 하지만 매일 작은 것이라도 감사하는 습관을 가지면 삶이 훨씬 더 따뜻하고 풍요로워집니다.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는 것,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것,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할 수 있는 것 등 우리가 누리는 것들은 모두 소중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에 감사할 때, 우리는 더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태도는 단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꾸준히 연습하면 누구나 더 밝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질 수 있습니다. 작은 습관부터 시작해보세요. 하루를 시작할 때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말을 건네거나, 좋은 점을 떠올리는 연습을 해보세요. 어려움이 생겼을 때도 그것을 성장의 기회로 삼겠다고 다짐해 보세요. 그렇게 조금씩 긍정적인 생각이 쌓이면, 어느 순간 더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는 당신은 이미 충분히 멋진 사람입니다. 삶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오늘의 작은 노력들이 모여 내일을 더 빛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니 스스로를 믿고, 지금 이 순간도 소중하게 여기며 나아가세요. 당신이 걸어가는 길이 결국 빛나는 미래로 이어질 것입니다. 강남쩜오 강남텐카페 강남텐프로 쩜오 텐카페 텐프로 점오 강남마카롱 강남비행기 강남포텐 강남블루피쉬 강남킹스맨 강남츄카츄카 강남에프원 강남에이블 강남불사조 강남타임즈 강남베이글 강남유니크 강남퍼스트 강남워너비 강남도깨비 강남인스타 강남임팩트 강남티엠아이 강남미라클 강남피플 강남정거장 강남우체통 쩜오우체통 강남인트로 쩜오인트로 강남오뚝이 쩜오오뚜기 강남퀄리티 쩜오퀄리티 쩜오마카롱 쩜오비행기 쩜오포텐 쩜오킹스맨 쩜오츄카츄카 쩜오에프원 쩜오에이원 강남에이원 쩜오에이블 쩜오유니크 강남퍼스트 쩜오퍼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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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달의소녀 "매달 한명씩 데뷔, '이게 될까' 싶었죠" ①
Writer: 김현식
© CBS노컷뉴스

12인조 신인 걸그룹 이달의 소녀의 행보는 이채롭다. 이들은 다른 걸그룹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완전체로 데뷔한 뒤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서 유닛과 솔로로 이어지는 게 아이돌 그룹들의 통상적인 행보. 하지만, 이달의 소녀는 매달 한 명씩 새 멤버를 공개하고 해당 멤버의 솔로 앨범을 먼저 내는 '신개념' 데뷔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지난해 10월 희진이 출발선을 끊은 뒤 현진, 하슬, 여진의 솔로 싱글이 순차적으로 발매됐다. '매달 새로운 소녀를 만난다'는 색다른 콘셉트 아래 다양한 색깔과 캐릭터를 지닌 멤버가 공개되는 이 같은 방식은 조금씩 입소문을 타며 대중의 관심을 얻고 있다. 각 멤버별 뮤직비디오가 프랑스, 일본, 아이슬란드, 런던 등에서 촬영되는 등 '초특급 행보'라는 점에서도 화제다. 완전체까지 걸리는 기간은 1년 8개월, 총 제작예산은 무려 99억 원으로 알려져 있다.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하며 팬덤을 늘려가고 있는 이달의 소녀는 이번엔 '유닛'을 출격시킨다. 앞서 공개된 멤버인 희진, 현진, 하슬에 홍콩 출신 새 멤버 비비가 합류한 4인조 유닛 '이달의 소녀 1/3'다. 최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이달의 소녀 1/3란 이름으로 뭉친 4명의 소녀와 마주 앉았다. 멤버들은 모두 솔로에서 유닛으로 이어진 독특한 데뷔 방식에 대해 만족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게 가능할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어요. 솔로 앨범으로 먼저 데뷔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도 컸고요. 그런데 돌아보니 솔로 앨범을 통해 각자의 매력을 잘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아 만족스러워요." (희진), "12명이 완전체로 모였을 때가 정식 데뷔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이달의 소녀는 희진이가 싱글을 낸 순간 이미 데뷔한 셈이죠. 점점 그 세계관을 넓혀가는 중이고요." (하슬)
이달의 소녀에 대한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뜨겁다. 각종 패션 화보 섭외가 빗발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지난 1월에는 방송 활동 한 번 없이 화장품 브랜드 모델로 발탁되는 등 대세 행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멤버들은 이번 유닛 활동을 통해 그 기세를 더욱 끌어올릴 생각이다.
"지금까지는 각자 솔로 준비에 열중했어요. 여느 아이돌그룹처럼 함께 모여 앨범을 준비하고 연습에 임한 건 이번이 처음이죠. 새벽까지 연습하느라 힘들었지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 재밌었어요."(하슬), "저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유닛으로 먼저 데뷔하게 됐어요. 긴장되고 떨리네요. 멋진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비비) "아직 데뷔하지 못한 나머지 멤버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죠." (현진)

최근 아이돌 그룹들은 V라이��� 등 인터넷 콘텐츠를 통해 실시간으로 팬들과 소통하고, 자체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론칭하는 등 자신들의 매력을 조금이라도 더 드러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반면, 이달의 소녀는 트렌드에서 벗어나 신비주의 노선을 탔다. 이달의 소녀 1/3로 활동에 나서는 희진, 현진, 하슬, 비비, 지난 1월 데뷔한 여진을 제외한 나머지 7명에 대한 정보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 상태다.
"지금까지 공개된 5명은 에이스, 앞으로 공개될 7명은 히든카드예요. (웃음). (하슬), "나머지 멤버들의 근황이요? 지금은 계속 지켜봐달라는 말밖에 드릴 수 있는 게 없네요." (현진), "아마 '완전체' 출격은 2018년 즈음이 될 것 같아요. 저희와 함께 퍼즐을 맞춰나간다는 생각으로 응원해주세요. 마지막에 완성될 '큰 그림'으로 보답하겠습니다." (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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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카페라떼를 시키고 샷과 우유가 완전히 섞이기 전의 아름다움을 관찰한다. 아마 이 세상 유일무이한 무늬일거다. 다 똑같아보이지만 조금씩 다르다. 미묘하게 더예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이 날의 라떼는 미묘하게 예뻐서 사진첩에 남아있다. 이 순간 아카이브 프로젝트 마지막 주에 딱 맞는 사진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섞이기 전 이 라떼의 멋진 순간을 사이버 어느 공간에 데이터로 남겨주는 행위. / 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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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duteurtre.com/category/romans/la-petite-fille-et-la-cigarette/ )
두 개의 원문 모두 재고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결론이 정반대라는 점만 빼고. 국가법에 따라 사형수 데지레 요한슨은 형집행 전에 형벌시행법 제47조항을 내세워 본인의 당연한 권리만을 주장했다. 그 옆에 있던 교도소장 쾀 라오 칭씨는 그에게 이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된다는 내부규정 제176조 b항을 엄격히 시행했다. 시민의 건강을 지키자는 협회의 압력에 의해 급하게 제정된 이 부칙 조항은 교도소 울타리 내에서의 흡연을 금지하고 있었다. 사형수의 건강을 보호하겠다는 생각은 잔혹함의 정제된 형태로 보지 않는다면 확실히 난처해질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 이로운 이런 조치는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았다. 이와는 다른 관점을 대변하는 제47조항은 비록 그 효력이 일시적으로 상실되었지만 죄수들에게 명백한 방식으로 최후의 의지를 내뿜을 수 있는 담배 몇 모금을 허락했다. (p7)
"요한슨 씨, 부탁드립니다만 이 교도소의 내부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최후의 의지를 표명해주셨으면 합니다." (p8)
"딱 한 대만 피우면 됩니다. 전 그럴 권리가 있는 걸요, 소장님." (p10)
"저는 그저 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싶을 따름입니다." 점점 긴장되는 분위기 속에서, 간수와 원고 측 변호인 그리고 피고 측 변호인 사이에 있던 요한슨이 한번 더 말했다. (p12)
"교도소장 님, 우리는 지금 형 집행을 연기할 수밖에 없는, 사법적 전례가 없는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대법원의 의견을 알아봐야 합니다." "헛소리는 집어치워요!" 그녀의 적수가 되받아쳤다. "항소는 기각되었어요. 대법관께서는 형을 감면해주지 않았소이다. 법적으로 저 남자는 이미 죽은 몸이에요!" 주름진 이마에 안경을 쓴 대머리 남자는 인텔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인문학 교수일 거라 쉽게 단정지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믿을 수 없는 일이에요. 내겐 이 대기실 안에서 숨 죽인 채 기다리고 있는 피해자 가족이 있습니다. 부모와 아내 그리고 아이들이 있다고요. 십 년 전부터 저 비열한 작자가 경련을 일으키며 죽음의 첫 테이프를 끊기를 기다려온 상처 투성이 가족이 있단 말이오!" "난 말입니다. 내가 요구하는 건 담배 한 대 피우는 것이 전부입니다." (p16)
데지레 요한슨은 간수를 따라 죽음의 복도로 나갔다. 그 복도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간 사람은 그가 최초였다. 그럼에도 그는 삶을 향해 뒤돌아선 그 순간, 타인이 일부러 그의 삶을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듯 투덜거렸다. "아무튼 전 대단한 것을 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p21)
인솔교사들은 전혀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도리어 새로운 승객이 다른 사람들을 밀어붙이고 들어올 때마다 원을 그리듯 버스 안을 힐끗 돌아보며 아이들이 자기 자리에 안전하게 잘 앉아 있는지 확인하는 것 같다. 꼬마들을 보호하기에 안성맞춤인 그녀들은 버스 좌석에 대해 우선권이 있는 노인들을 특별 대우할 만한 이유를 도통 알지 못한다. 어린이들이 어른보다 존경받는 그런 머나먼 시대를 떠올리는 건 오직 나뿐인가? 아무튼 나는 이토록 버릇없는 태도의 피해자인 어른들이 행복한 표정으로 소란스런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정말로 인정해야 한다. 몇몇은 아이들에게 호감을 보이려고 미소를 짓고 손짓을 보낸다. 또 제일 무모한 사람들은 학교에서 무얼 했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이름은 무언지, 어디 사는지를 묻는다. 그 밖의 사람들은 잊은 것처럼 보인다. 하루 업무에 지친 몸, 스트레스 받은 영혼. '성인들'은 이 유치한 군중을 다시 소생하는 종의 이미지이자 살아 남게 될 인류의 이미지, 세상의 미래라는 가슴 뭉클한 이미지라도 되는 듯 지켜본다. 그리고 이런 생각으로 자기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 앞에서 기운을 차리는 것 같다. 이처럼 솟구치는 사랑과 마주한 두 교사는 자기들의 거친 태도를 버리고 어른들 세계와 아이들 세계 사이의 중재자라도 된 듯 버스 한가운데에서 아이들을 인솔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용감하게 고개를 치켜든다. (p26-27)
아이들의 등장이 대부분의 사람들을 부드럽게 만들지는 몰라도 타인의 신경을 날카롭게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아이들에게는 모든 걸 맞춰주면서 우리의 권리는 거부당한 일, 그리고 이제부터는 우리가 자기들 집에 있는 거란 사실을 깨달았을 때 아이들이 드러낸 거만함,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는 영원한 굴욕과도 같았다. 우리는 그 아이들을 쳐다보는 일을 애써 피하고, 그들의 질문에 답하기를 거부하거나 아니면 비웃는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미 여러 명의 피해자를 냈던 보조교사들의 지속적인 감시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절차는 매번 똑같다. 아이들을 향한 적대적인 태도는, 결국엔 어린아이들에게 위험한 모든 잠재적 요소란 요소는 전부 다 근절시키려고 눈에 불을 켠 인사과에 끌려가 주의를 받는 것으로 끝이났다! 지난 육 개월 동안 열 명가량의 용의자들이 예방 조치에 의해 사무실 바깥으로 전근되었다. 이런 방법을 통해 시 직원들은 자기들의 젊은 신도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이상이 내가 매일 저녁 행정도시를 나와 귀가하면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지옥이다. 버스에서 일어났던 하찮은 사건을 참을 수 없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이미 나의 하루를 망쳐버린 조무래기 애들 집단이 계속해서 계단에서, 길에서, 버스에서, 곳곳에서 나를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것만 같았다. 악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하게 된 상태까지 악이 퍼진 것처럼. 왜냐하면 이제부터 이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법을 대표하니까. (p35-36)
"우리가 보기에도 그 방법이 사형에 관한 논쟁에 휘말리지 않는 이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담배반대론자들이 공포를 퍼트리는 이런 청교도적인 세상에서 인간의 최후 의지란 너무나도 순진하게 담배 한 대를 피우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강조하면서 만족했으면 합니다. 감동의 어록에 남을 멋진 메시지니까요." "좋아." 목소리 하나가 대답했다. “하지만 자네가 좋든 싫든 간에 이 모든 사태는 범죄자-담배-사형이라는 상징적인 삼각관계를 더 강력하게 만든다네. 그리고 그건 담배 시장을 놓고 볼 때 당연히 나쁜 일일세." (p53)
"그러니까 이 경우 사형수 데지레 요한슨은 자신의 최후의지를 행사할 권리가 있다. 다시 말해 그의 선택대로 담배 한대를 피울 수 있으며, 담배는 교도소장이 제공하도록 한다. 또한 교도소장은 교도소 건물 내에 합법적으로 상주하고 있는 담배반대론자들과의 합의를 위반하지 않도록 할 것이며, 다른 이들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요한슨의 최후 의지 실행을 사전에 분명히 알리고 여기에 준하는 흡연 구역을 (교도소 울타리 안쪽이나 바깥에) 정비해야 한다. 최후의 담배가 다 타자마자 데지레 요한슨은 그에게 언도된 사형 선고에 의거해 죽음의 주사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p62)
먼 훗날 내 실존에서 가장 험난한 시기인 삼십대가 되어서까지, 정확히 열세 살짜리 중학생이 하는 것과 똑같이 담배를 태우기 위해 눈에 띄지 않는 장소를 찾아다니고, 현행범으로 잡히지 않으려고 빗장을 지른 대문 뒤 환기가 충분히 잘 되는 장소에 틀어박히게 될 거라고 내가 짐작이나 했을까? 어렵사리 쟁취한 이런 자유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취해진 조치란 명목 아래 혹독하게 억압받으면서 그토록 빨리 무너질 줄이야 상상이나 했을까? 상대적으로 자유롭던 시절이 지나간 후, 요새 아이들은 언제나 자기들에게 더 많은 권리가 베풀어지는 걸 보는 데 반해, 내 사회생활은 금기와 함께하는 유년 시절로의 회귀로 풀이되리란 걸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p64)
난 정말 이 모든 사태의 시발점이 뭔지 말할 수가 없다. 어느 날부턴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다가가고 싶어하기 시작했다. 별안간 어른들에게는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고 그들을 따라다니며 손을 잡아주고 그들의 욕구에 이상적으로 맞춰진 세상을 건설하여 마침내 자기 안에 숨겨진 어린아이를 되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란 없는 듯싶었다. 꿈은 뒤집혔고 어른들은 청춘을 두 번 다시 다다를 수 없는 이상적인 모델로 바라보았다. 이를테면 자발성, 순수함, 산뜻한 피부, 까딱없는 건강 등이 그랬다. 텔레비전에서 리얼리티 쇼가 처음으로 방송됐을 때 출연자들은 이미 자신의 모습이 더 이상 성숙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반대로 이들은 노래하고 춤추고 기숙사의 공동 침실에서 잠들며 시시한 일로 싸우고 그런 다음 서로 입맞춤을 나누며 공개적으로 용서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초등학교 같은 곳으로 자발적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어른들의 우스꽝스런 강박관념에서 해방된 이들은 대중을 향해 자신들의 단순함을 전시했는데, 그 대중이란 광고 시장의 주요 고객인 어린이들 이 주를 이루는 텔레비전 시청자였다. 아이들은 사회의 꿈이 되었으며 사회의 속박을 견뎌내도록 해주는 사람이 되었다. 마치 우리가 성년을 꿈꾸며 유년 시절을 견뎌냈던 것처럼.. (p65-66)
작년까지는 그래도 흡연실 몇 군데가 행정도시 울타리 안에 마련되어 있었다. '일찍 죽을' 사람들은 직장동료들의 멸시의 시선에 과감히 맞서 싸우고 나서 마치 범법자처럼 그곳에서 다시 만났다. 하지만 놀이방이 빌딩 구석구석까지 확대된 후부터는, 그리고 그 어린이들이 이 집에서 최고의 특별 대우를 받는 손님이 된 후부터는 독한 담배를 조금이라도 허용하는 건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어른들 사이에서도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건강을 많이 해칠 수 있는 존재였다. 우리는 그저 문학교수 자격을 갖춘 사람, 법학사, 한 가정의 가장, 양심적인 공무원 따위에 불과한 가련한 패거리일 뿐이었다. 하지만 조무래기들이 니코틴 중독에 단일 초라도 노출되기라도 하면, 그때엔 질문 사절! 전면 금지! 우겨봤자 소용없다! 흡연자들은 차라리 이번 기회에 자기들의 악습을 고치고 중독을 치료할밖에. (p67)
정확히 바로 그때, 화장실 문의 손잡이가 구십 도 돌아간다. 난 우월감에 휩싸인 채, 내가 볼일을 끝내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이 불청객을 거만하게 경멸해본다. 그리고 강력한 도전의 의미로 새 담배를 꺼낸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문이 반쯤 열리는 걸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움직임이 어찌나 소심한지, 내가 빗장을 불완전하게 당겨서 걸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허를 찔린 나는 그 순간 조막 만한 손 하나가 나타나는 걸 본다. 이어 안경을 쓰고 구름같이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 나를 쳐다보는 다섯 살짜리 소녀의 어리벙벙한 표정과 맞닥뜨린다. 현행범으로 딱 걸려 빼도 박도 못하는 신세가 된 나는 고작 어린애일 뿐이니까 겁먹을 필요 없다고 판단한다. 화가 머리끝까지 뻗쳐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기서 당장 나가! 사람이 있는 걸 보고도 그래!" (p81-82)
괴물은 도처에 깔려 있다. 문 밑으로 슬그머니 비집고 들어오더니 지금은 라티파의 머릿속에까지 들어가 있다니! 신경질이 난 나는 도통 잠을 청할 수가 없어 침대 옆 머리맡 스탠드를 켜고는 오늘 아침 시간이 없어 읽지 못했던 [자유주의 전신]을 집어든다. '제일 첫' 페이지를 장식한 이번 주 특종은 대법원이 결국 사형집행 전 데지레 요한슨에게 최후의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고 판결을 내렸다는 내용이다. 이 뉴스가 도리어 날 기쁘게 해준다. 불법 흡연자라서 조마조마했던 내 불안한 마음에 희망의 서광이 비치면서 긍정적인 전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p85)
진정한 위험은 두려울 게 하나도 없다고 확신하는 순간에 찾아든다. 소심하고 자신 없는 성격인 나는 겸허한 승리를 향해 신중하게 전진한다. 그러다가 내가 자랑스럽게 고개를 드는 충만의 순간에 꼭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우스꽝스러운 일이 나를 덮치고야 만다. 이미 수도 없이 경험한 일이다. 처음에는 불쑥불쑥 솟아나는 자신감과 승리감을 경계하며, 더 이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쩨쩨하게 겸손하게 소심하게 처신하지 말라고 귓가에 속삭이는 간사한 목소리를 뿌리친다. 그러나 결국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꼬드기는 그 목소리에 넘어가 독 오른 향기에 취하고 만다. 나는 영광의 길로 의기양양하게 나아간다. 하잘 것 없는 걱정거리는 잊기로 마음먹고. 바로 그 순간 쓰레기통이 내 머리 위에 떨어진 것이다. (p86)
난 점잖은 제스처로 동료에게 고맙다는 뜻을 전했다. 그리고 귀가했다. 철저하게 사전 준비를 했는데도 이렇게 낭패를 보게 되어 속상하고 분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몇 년 전부터 난 주위의 광기와 시대의 폭정으로부터 벗어나려고 갖은 애를 써왔다. 난 차도 없고 자식도 없고 텔레비전도 거의 보지 않으며, 내 의사에 반해 나를 보호해주려는 사람들의 말도 못 들은 척해왔다. 지난 몇 년 간, 나는 내일, 내 사랑, 그리고 감미롭게 지켜온 우리의 인생에 헌신하기 위해 이런 속박 들을 잊고자 발버둥쳤다. 그런 모든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주위의 광기는 기어코 나를 따라잡는 데 성공했다. 어쩌다 내가 인력개발부 부장에게 발목이 잡혀 가면이 벗겨졌는지, 어쩌다 안 좋은 일에 말려들어 내 커리어가 이렇게까지 위태로워졌는지, 어쩌다 내 얼굴이 납빛으로 물들게 되었는지를 라티파에게 이야기하자니 정말이지 너무나 망신스러웠다. 나를 불신하는 시장이 공개 회의가 한창 진행되는 동안 나를 반박할 좋은 패를 얻은 ���이었다. 이렇게 말이다. "도시의 오염과 국민들의 폐를 걱정하기 전에 화장실에서 흡연하는 것부터 당장 중단하세요!" (p94-95)
"오늘날 요한슨 사건이라고 부르는 이 사태로 인해 야기된 논쟁 가운데 특히 미묘한 사안 중 하나는 바로 한 인간의 삶에서 그 마지막 순간을 공개적으로 방송할 권리가 있냐는 겁니다. 우리는 마렌 파타키 변호사가 이의를 제기했지만 사형수는 승낙했다는 걸 지적하고자 합니다…… 그렇기는 하나 교도소의 행정권이 이번 미디어 플레이에 반기를 들 수도 있었을 겁니다. 담배반대연맹 측에서는 법원의 결정이 결국 금지된 담배 광고의 편을 들면서 디스플레이 광고의 구실을 제공한 격이라며 애석해하고 있습니다……" (p115)
이 마지막 문장을 말하면서 미샤는 마치 스펙터클이 시작되었다는 듯이 언성을 높였다. 요한슨이 죄수복을 입은 채 호송차량에서 내려온다. 죄수복은 달랑 천 한 장을 가지고 재단한 오렌지색 헝겊처럼 보인다. 전 시청자들이 요한슨의 넓은 어깨와 레게 스타일로 땋은 머리, 그리고 커다란 초록빛 눈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만족스런 표정이 역력한 그의 자신만만한 얼굴은 카메라 렌즈를 찾는 것 같더니 이내 카메라 앞에 멈춰 선다. 이제 요한슨에게서 어리둥절한 사형수의 모습은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는 관객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승리의 제스처로 무겁게 수갑이 채워진 양손을 번쩍 쳐 든다. 사형 집행 시각이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는데도 자신이 원했던 것을 얻었다는 만족감이 사형에 대한 두려움을 이긴 것처럼 보인다. (p116-117)
며칠 동안 변호사를 유명인사와 공유한다는 생각이 나의 사기를 다시 북돋아주었다. 게다가 파타키 변호사의 자그마한 사무실에서 가진 우리의 첫 면담 때 그녀는 내 운명에 대해 확고한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내 사건은 증거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심각한 결과가 절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난 그녀가 엄마 같은 미소로 절박한 나의 질문을 잘라먹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흥분하지 마세요. 아무 소용 없습니다!" 그녀는 라티파를 쳐다보며 여자들끼리만 공감할 수 있다는 말투로 이렇게 덧붙였다. "당신의 남자친구를 보니 꼭 열두 살 난 제 아들 같군요. 그 앤 언제나 초초해하고 늘 답을 알고 싶어 안달이 나 있죠!" 그녀들이 주고받은 웃음이 불쾌한 소음처럼 내 신경을 건드렸다. (p130)
오직 살아남기 위한 본능만이 날 포기하지 않게 만들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내 상황은 끔찍했다. 고위급 신분에다 잘 나가던 백인 지식인, 그리고 이동이 자유로운 한 성인 남성에서 단번에 법에 따라 투옥된 한 명의 죄수 신분으로 추락한 것이다. 일정표와 규율에 따라 나의 기본권은 갑자기 박탈되고, 일상의 햇살도 빼앗겼으며 동료 수감자들로부터 가혹 행위의 위협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겉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변호사 비용과 피해자 보상으로 인해 파산한거나 마찬가지인 내 모습도 그려진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이들은 이성을 잃거나 자살하기도 한다. 특히 예심에서 가장 악질인 아동 범죄가 언급됐다는 사실만으로 범죄자 중에서도 가장 추악한 등급으로 분류되면 당신은 어떤 형태의 동정이나 연대감도 얻지 못할 것이다. (p139)
이런 덫에 걸려들면서 나는 내 자신이 불쌍하다고 느낄 시간조차 없었다. 나의 모든 에너지는 또 다른 긴박함에 몽땅 다 소진되었다. 나는 내가 왜 그곳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말하지 않음으로써 무법자들의 힘으로부터 달아나야만 했다. 바깥에서 이력서를 보여주는 것과 똑같이 자신의 범죄를 과시하는 이곳에서 그렇게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머뭇거리는 걸 알아챈 간수들이 나 대신 모든 죄수들에게 얘기를 하고 말았다. 아무튼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후 내가 교도소 마당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대여섯 명의 수감자들이 모여서 나를 걱정스럽다는 듯이 힐끔거렸고 난 완전히 혼자가 되어 화단에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호각 소리에 그들은 흩어졌지만 내 곁을 차례로 지나가며 마치 차디찬 칼로 자르듯이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고 안부의 인사말을 귀에다 속삭였다. “널 죽여버릴 테야, 더러운 아동 성추행범!" (p140)
이런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난 내가 아무런 향수도 없이 이 동네로 돌아오고 있단 걸 깨닫는다. 처음 이 도시에 왔을 때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오늘 보니 다 사라진 것 같다. 대신에 각종 브랜드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유제품 장수, 생선 장수 그리고 장인의 아틀리에, 야간 술집과 새벽 레스토랑, 어두운 길거리와 먼지 쌓인 골동품 가게, 동네 극장………… 그런 것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옷 가게와 옷 가게, 그리고 또 옷 가게만 보이고 그 외엔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도시는 지구 끝에서 끝까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해빠진 특산물을 자랑스럽게 진열해놓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보다 형편이 조금 더 나은 사람들을 위한 패스트푸드점 (그렇게 패스트푸드가 전통 요리로 둔갑한다), 전적으로 주말과 업무스케줄에 따라 조정된 생활 리듬, 자정 이후에 문 닫는 술집, 장소를 불문하고 금연이며, 장소를 불문하고 확대되어가는 아이들의 권리 집 근처에 있는 한 초등학교 앞 작은 교차로에는 차가 한 대도 없는데도 빨간 신호등을 무려 여덟 개나 세워놓았다). 한마디로 세상의 여왕 같은 도시 중 하나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 지방 도시에 버려진 세심한 편의시설이다. 난 이런 것들을 내가 타고 있는 죄인 호송차 안에서 깨닫는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한다. 사태의 본질을 생각해보면, 내가 ���단한 걸 잃은 건 아니라고, 단지 용감해질 필요가 있다고. (p172-173)
"아뇨, 그건 가혹함의 문제입니다. 내가 볼 땐 아이들은 아주 기본적인 반응만 보이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먹고 울고 자고 거의 기계적인 방식으로만 행동할 뿐 다른 건 생각하지 않죠. 노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들은 이미 죽음에 익숙해져 있으며 그로부터 휴식을 기대합니다. 여자들에 대해선 말할 필요도 없죠. 그들은 평등을 얻었습니다. 난 우리가 왜 그들에게 특권을 더 부여해야 되는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그건 아니죠. 내 생각엔 제일 지지가 필요한 사람은 마흔 살이나 쉰 살의 남자, 그러니까 성인 남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경멸하기 때문에요. 성인 남자들은 여전히 인생을 사랑하지만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적 능력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이 최고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상사들은 벌써부터 이들을 갈아치울 생각을 하죠. 그들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젊은 사람들이 도처에 줄을 섰습니다. 전처들은 이들을 별거 수당을 지불할 때에만 쓸모 있는, 아주 성가신 존재로 여깁니다. 자식들마저 이들을 완전히 구닥다리로 여기죠. 비서로 말할 것 같으면, '성희롱'으로 고소해서 돈이나 뜯어내려고 되도 않은 미소를 흘릴 날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죠…… 일생 동안 모든 게 절정에 달했다가 무너집니다. 난 이보다 더 나약한 인간 조건의 상징을 보지 못했어요." (p175-176)
"아이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과 관심이 너무 많은 사람 사이에는 분명히 연결되는 어떤 부분이 있습니다. 또 우리로부터 달아나고자 하는 사람과 우리에게 거부할 수 없는, 가끔은 순리에 어긋나는 충동을 느끼는 사람 사이에도 어떤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p188)
"할머님! 내가 어렸을 땐 아이들이 나이 많은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하려고 일어났어요!" "피고, 당신은 발언권이 없습니다." 의장이 퉁명스럽게 말을 잘랐다. 의장 옆에 있던 검사 레덕이 사람들을 보며 비꼬는 듯한 말을 한마디 던진다. "저는 피고가 어떤 시대를 언급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그런 대단한 시대에 행해졌던 교육이 이루어낸 폐해의 사례를 보고 계십니다!" (p190)
"내가 한 일은 담배를 피운 게 전부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계속해서 정적이 감돈다. 어떻게든 날 쓰러뜨리고 싶어하는 내 변호사가 지켜보다가 이렇게 얘기한다. "아무튼 그것도 아이들의 건강을 충분히 존중하고 있지 않는 거잖아요!" "하지만 왜 너희들은 내가 아이들을 존중해주길 원하지? 아이들이야말로 나를 존중해야지!" (p199)
"선생님, 우리는 당신의 유죄 여부에 대해서는 성인 법정에 넘길 겁니다. 그게 그들의 소관이니까요. 우리는 담배 문제 역시 그들에게 넘길 생각입니다. 당신은 어쩌면 가장 타락한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당신이 사람으로서 약간의 감정을 드러내지 말란 법은 없을 테지요. 더구나 당신은 적어도 한번쯤은 어린이에 대한 존중심과 싹트기 시작하는 생명에 대한 지지를 천명함으로써 당신의 죄를 경감시킬 수 있습니다. 왜 당신은 데지레 요한슨의 너그러운 태도에서 영감을 받지 않나요? 모두가 그 사람을 범죄자라고 생각했지만 데지레는 '인생 만세'란 말을 할 줄 알았잖아요? 그런 행동으로 인해 그는 자유를 얻을 만했습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자유를 가질 만한 자격을 얻고자 무엇을 할 겁니까?"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나는 요한슨과 내가 무엇이 다른지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생각엔 그건 바로 논리적 오류로 이어지는 순수함에 대한 숭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논리를 가지고는 내가 점점 내 무덤을 파는 꼴이 될 뿐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오직 침묵할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p200)
그래, 그녀를 돕는 건 나에게 달렸다. 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는 것도 나에게 달렸다. 그녀의 제일 유명한 의뢰인이 그랬던 것처럼. (p202)
수갑을 벗은 죄수는 추기경을 따라 주교와 대주교들의 초상화를 걸어놓은 천장 높은 방으로 들어갔다. 두 남자는 커다란 통나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한 수녀가 쟁반을 들고 들어와 차를 대접했다. 이어 성직자가 자기 주머니에서 필터 없는 골루아즈를 한 갑 꺼내더니 죄수에게 한 개비 건넨다. "나는 이런 유의 사건에서 터무니없는 거짓말과 불쾌하게 과장된 수많은 사실들이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 있단 걸 잘 알고 있어요. 그건 우리처럼 교회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고통스러운 경험이지요." (p212)
"요즘 부강한 나라의 어린이들은 제가 보기에 참 감수성이 예민한 것 같습니다!" (p213)
"우리도 윤리란 게 있어!" 비록 죄수의 의지와는 반대였지만, 이런 테러리스트의 행동을 여론은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이같은 배신에 놀란 사람은 오직 죄수의 여자친구뿐이었다. 그녀는 그에게서 전해받은 유언장 원문을 신문에 발표했다. 유언장에는 그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까닭과, 인질 중 "마흔에서 예순 사이의 남성"을 선택한 이유들이 적혀 있었다. 그런 신념이 천명되자 그의 평판은 더욱 나빠졌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일종의 도발로 여겼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동범죄 용의자인데다 중형이 거의 확실시되는 주제에 구해낼 인질을 선택하겠다고 말하는 것 자체에 굉장히 격분했다. 그를 영웅으로 변신시키려 했던 사람들은 틀리고 말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테러리스트들이 타락한 와중에도 새 인질에게는 없는 것처럼 보이는 도덕심을 보여줬다는 것에 대해 자축까지 하고 나섰다. (p220-221)
[옮긴이의 글폭력도 쇼가 되는 현대문명의 잔혹한 죽음의 무도한지선]
『고객서비스』에서와 마찬가지로 『소녀와 담배』의 주인공 '나' 역시 현대사회의 부조리한 횡포와 싸워보지만 끝내 패배하고 만다. 그것도 아주 무참히 짓밟힌다. 소설의 전반부에는 담배를 피우려는 주인공의 모습이 너무나 처절하여 차마 웃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지만 작품은 차츰 이상하게 흘러가 종국에는 끔찍하기만 하다. 감정을 최대한 절제한 듯한 작가의 간결하고 명료한 문체가 더욱 그러한 공포를 극대화시킨다. 책을 덮을 때 즈음이면 앞서 자리한 유머보다는 충격과 공포가 더 크게 와 닿을지도 모르겠다. 대체 뒤퇴르트르가 이처럼 커다란 절망만 보여주는 건 무슨 까닭일까. 그는 '아이들'에 대한 무조건적 숭배와 청정하고 건전한 삶을 외치는 현대의 구호 이면에서 현대인의 심각한 자기기만과 위선을 보고,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일까. 이런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야 없겠지만 그가 이 소설을 통해 이른바 우리가 현대문명이라고 일컫는 것의 음산한 그늘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 해보인다. (p234-235)
브누아 뒤퇴르트르 , ' 소녀와 담배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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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같이 쓰는 경험담입니다.
아내가 옆에 있습니다. 10년전 경험담을 공유하고 참고하시라고
성적취향이 같으신분 들게
나는 스와핑, 쓰리섬을 매우 좋아하는 성적취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적어도 한국은 불륜의 천국이자 낮과 밤이 전혀 다른 인성들을 가진
나라 중 대표적 나라일 것입니다.
겉으로는 조신하고 정숙하나 씹을 즐기는 여자
도덕적이고 점잖은 척 하나 여자만 보면 좆물을 줄줄
탐욕하는 인간들 우하하
나도 그렇다.
아내를 다른 놈과 씹하게 만들고 그걸 즐기는 정신병자,
또라이 같은 놈들, 그런 남편, 아내를 상담하고 이혼하라는
참으로 도덕적인 년들
다른 놈과 씹을 즐기는 년들은 정해져 있는가
가정법원에 가면 불륜으로 이혼을 왜 그리 많이 하는지
멀쩡한 남편을 두고 왜 다른 놈과 씹을 하는지
가정적인 아내를 두고 왜 다른 주부와 씹을 하는지
모두가 섹스다, 불만족한 섹스를 만족하는 섹스로 가기 위해
남편을 속이고 몰래 좆 크고 테크닉 좋은 놈하고 오늘도
씹을 하는 아내를 찾아내서 죽일년 나쁜년 이혼이혼 이혼
왜 아내가 다른 놈과 씹하는지 아는가
안다고 하면서 실제는 ���르지 모르니 그런 일이 생기지
감히 말하노라
처음에 아내에게 다른 건강한 좆을 선물하게 된 동기이자
이유는
나도 다른 주부와 몰래 씹을 즐겼기 때문이지
그 주부는 왜 나랑 씹을 했을까
결국 들통나고 이혼법정 가고 힘든 세월보내고
인간은 식과 욕이다 . 즉 밥 다음 성욕
남편 몰래 씹하는 여자들이 왜 몰래 하는가
나는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아내에게 섹스의 즐거움을, 행복감을 주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솔직한 부부관계
죽을 때 까지
이 이야기는 내가 준비소홀과 아내에게 사전 통지 결략 등
초보의 실수를 해서 위기 상황에서 잘 마무리한
어리숙한 시절의 경험담이다.
나의 바람으로 위기의 상황에서 별거를 통해서
다시한번 기회를 맹세하고 재결합 지금에 왔다.
소라, 트위스트 등 전성시대에 안 본 놈 있나
재결합 당시 이런 것들이 심심하게 언론이나
소문 소문 소문
재결합 후 섹스시 나는 아내에게 충성을 다해
섹스를 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아주 죽여놓는
섹스를 했는데
매번 죽이는 섹스가 점점 힘들어지는 것이다.
홍콩보내는 것도 한달에 한두번이지 매번 홈런치기는
너무 힘들다.
이제는 아내와 저녁이면 집에서 밖에서 폭탄주도 자주
하고 회식등 웬만하면 아내가 곁에서 같이 움직인다.
아내가 지금 옆에 있지만
하루는 둘다 모임에서 술이 떡되어 오다가 둘이서
마지막 한잔 더 하면서 아내에게 혹시 소라에 대해서
아는거 있나.
당연히 알지 모르는 년놈들 있나
당신도 혹시 다른 넘과 씹 생각 있나
당연하지 개쌔끼야 너가 하듯이 나도
해본적 있나 하니
당연하지 이놈아 너만 하냐
언제 해 봤는데
별거 할 때 해밨지 자슥아 너만 즐기냐 나도 즐기야지
어디서 어느 놈과 했니
그날 눈 뒤집어지던 날 이놈아
나도 정보 다있지 유명 마사지샵가서 멋진 놈과 한판
때렸지 좆크고 씹도 잘하더라
우와 그래 당신이 마사지샵도 가보다니
그래 너만 가니 이 존만아
돈 주니 마사지에 보빨에 씹에 풀코스로 해주더라.
그리고 나올 때
원하시면 무료로 해주는 마사지사 소개해 주더라.
운동 선수고 마사지도 잘하고 좆도 크고 씹도 엄청 잘하는 놈
언제든지 연락하면 된다더라. 이 놈아
그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전기가 흐르더군
열받는 거 보다 이상하게 아랫도리 좆에 전기가
급속히 흐르는데 사정할 거 같은 쾌감이 오더군
그래서 또 갔더나
마사지샵은 비싸다. 돈 주야 되지 그래서 전화해봤지.
니가 계속 열받게 할 때
번개처럼 와서 연락주시어 영광입니다.
모텔 특실로 가서 나를 죽였다가 살려놓는 신이더라
이 나쁜 새끼야
니가 나를 다른 놈하고 씹하게 만들었지
몇 년 후
아내와 평소에 쓰리섬 이야기도 많이하고
서로 다른 년놈과 하고 싶을 때는 반드시
보는 데서 해야 한다. 맹세한다.
좆 힘이 요즘 점점 약해지네
그래서 아는 연줄로 멋진 놈을 섭외하고
둘이서 소맥에 진탕 처묵고 모텔 특실에 입장해서
샤워 후 한판 뜨자 하면서
문자를 보내고 도우미가 똑똑하고 입장하는데
아내 눈이 휘둥거래지더니 누구야 저사람
아 오늘 여보 우리 쓰리섬 함 해보자 하니
정색을 하더니
저기요 가세요 먼가 오해가 있는가 본데
가세요 한다.
술을 엄청 먹었는데도 말짱한 정신으로
냉정히 말한다.
어어 이거 몇 년을 공들이고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보내는 척 하면서 화장실에 잠시 대기
침대로 오니
이 사모님 갑자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없던 일이 생기는데
그대로 표현한다.
야 이개쌔끼야 . 니가 인간이야. 니 마누라가 창녀야
이 씨발노무아 쌍놈쌔끼, 니 마누라를 다른 놈과
붙어 먹게 만들려고 하니 이런 더러운 인간 말종
개쌍놈아 너 이제 모가지 잘라버린다.
니가 그러고도 인간이냐
세상에 지 마누라를 다른 놈하고 붙어 묵게 하는
니가 인간이냐 . 니 마누라가 개냐 개 이쌔끼야.
아무나 붙어묵는 개냐 이 쌍놈아 하면서
나는 저승 가는 줄 알았다.
무려10분 정도 계속 악을 쓰며 쌍욕을 하고
내일 직장 짜르고 나도 회사 관두고 다 그만이다.
세상에 지 마누라를 다른 놈하고 하게 하다니
니 마누라 보지에 딴 놈 좆 박히는게 좋으냐
이 정신병자 같은 놈아
사람 자존심 상하게 자존심 이놈아
너무 황당한 거는 그렇게 쌍욕을 하다가
갑자기
왜 자존심 상하게 해 말도 없이 사전에 말했어
내가 창녀야 왜 말안해 미리 말을 왜 안해
내가 섹스 못해서 미친년이냐
섹스하려고 남자 기다리는 미친년으로 보이게 만들어
왜
아이고 여보 미안해 내가 서툴고 당신이
이럴줄 몰랐지 너무 쉽게 생각했나봐 하니
잠시 있다가
저거 양주 폭탄주 식탁에 있는거 달라 했지
주니 원샷하더니 잠시 있다가
느닺없이 키스를 하고 좆을 빨기 시작하는데
좆빨림이 너무 강하다.
이렇게 세게 빨려 본거는 생전 처음이다.
그러더니
넣어봐 하며 벌렁 눕는다.
삽입해서 돌려가며 귓불을 잘근잘근 씹어주니
마누라 숨 넘어간다.
이 때
여보 당신 후배위 아니 엎드려서 가만 있으면 안 될까
모른척해 모른척 당신은 모르는 거야
내 소원이야 딱 한번만 다음 부터는 말도
안 꺼낼게 오늘 평생 소원이다.
애원하니
그사람 갔잖아 그러네
아니 당신 안대하고 후배위 자세로 모른척하고
가만 있으면 돼
그 놈 당신 몰라 우리 모른다니까
뒤에서 함하고 보내면 되잖아
기분 나쁘면 후배위에서 바로 누우면
신호라고 보고 그 놈 그냥 보낼게
좆 좋아
맛 보고 기분 안 좋으면 보내자 응 응
딱 한번만 이번 한번만 하니
그냥 내가 알아서 ��께
아내가 안대 줘 하네
후배위 전투자세 잡는다.
얼릉 목욕탕 호출 퍼뜩 벗어 이리와
몸 좋다 대물이다, 귀두는 특히 엄청나다.
다마를 이중으로 박았네 ,
내 좆이 12.5 인데 마주보고 대보니 내좆 엄청
크네 이런 좆 처음 본다.
길이 둘레가 삼분일은 더 크다 .
오늘 마누라 죽었다.
이놈 준비하는 사이에 내가 먼저
마누라 엉덩이 잡고 뒤치기 박기 시작
마누라 숨이 껄떡 넘어가신다.
아흑 아흑아흑 아흑 억 억 억
다른 때와 신음 소리가 다르다.
어느새 대물이 옆에 서 있다.
급행열차 박듯이 막 박아대다가 마누라 숨이
넘어갈 무렵
얼렁 선수교체하고
대물이 삽입되는데 상상의 나래만 펴던 것이
현실로 드디어 내눈앞에서 펼쳐진다.
천천히 삽입하라고 손짓하면서
대물이 아내 보지 입구에서 슬슬 문지르다가
좆대가리에 분비물을 묻혀 서서히 들어가는데
보는 내 자지에서 저절로 좆물이 흐르고
꿈꾸는 것처럼 그리고 하체에 전율이 흐르는데
대물 귀두가 삽입된다. 큰 좆이니 한번에 들어가지는
않고 몇 번 왕복하여 귀두부터 천천히 절반 정도 들어가자
아내가 엉덩이 허리를 비틀며 으아아악 아아아 으아항 아앙
하는데 신음소리가 쇠소리 나듯이 울려 퍼진다.
내가 아내 귀에 대고 마음껏 소리질러 괜찮아 하니
도우미의 좆은 왕복하는데 좆이 나올 때
나중 아내 말이 좆이 보지 속을 꽉 채우고 보지 속을 훑어주는데
지금까지 최고의 좆 맛을 느꼈다네
여자들이 대물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작은 좆은 좆도 아니다.
점차 속도를 올리면서 일심 삼천 기교와 돌리기 기교등
뒷치기로 완전 홍콩 보내니
아내가 다리 아프다고 한다.
이번에는 정상위로 삽입, 열나게 박아주니 괴성, 비명.
신음이 방안을 울리는데 미친다.
우억 우얶 어흐흐엉 어으어흐흐헝 꽤객 꽤 개갸르르륵
아이고 여보 나죽어 하면서 몸을 비틀어 가며 즐긴다.
이제는 옆치기 가위치기 32개 자세를 섭렵하며 죽인다.
한시간 한거 같았는데
아내가 좀 쉬자 여보 좀 쉬어 하는데
이놈 선수는 선수인데
좆이 박힌채로 아내를 안고 일어선다. 장사다
나는 들지도 못하는데 안고 일어나서 방안을 다닌다.
좆이 삽입된 그대로
아내가 안대를 벗으니 눈앞에 남자가 자기를 안고 있다.
두손으로 엉덩이 잡고 좆 박힌채 천천히 움직여준다.
아내가 얼굴을 못 쳐다보네
이놈 이자세에서 키스를 하는데 아내가 진하게 받아주네
헤어진 연인이 10년만에 만난 것처럼 키스하고 지랄하더니
아내를 침대에 눕히고 다시 돌리기 시작한다.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숨이 넘어간다.
아흑 아흑 여보 ㅇ어어어 나죽어 살려줘 미치겠다..으으윽
그러더니 10여분 지난 것 같았는데 저기요 이제 그만 그만
싸세요. 안에 싸도 되니 그만 싸요 하네
그래도 이놈은 자비는 없다, 용서는 없다, 반드시 죽인다.
열나는 피스톤을 시작하니 죽음을 기다리는 자는
아내다. 여보 이제 그만 그만 죽을거 같애
숨막혀 하지만 이놈은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드디어 아내는
저기요 저기요 부탁인데 그만요 하니
이놈 하는 말 아내 귀에 대고
사랑해요 , 제 보지 깊숙이 싸주세요. 라고 말하라고
시킨다.
웃긴다. 아내 그대로 숨넘어 가면서 사랑해요. 제 보지
깊숙이 싸주세요. 하니 한번더 한다
제 보지 깊숙이 싸주세요. 제발요 부탁해요 엉엉 나죽어
하니
이놈 사정도 지맘대로 인가
일분 정도 신나게 박더니 우아악 어억어억하고
아내는 아하아아악악앙악악 년놈이 사정한다
그리고는
두년놈이 서로의 좆보지를 힘차게 밀착시켜 돌려가며
사정 후 여운을 즐기는데 딥키스를 하며 년놈이 서로
엉덩이를 돌려가며 마지막 좆물까지 싸는지
키스하면서 서로 끙끙거리며 신음하네
이년놈 남편은 안중에도 없네
개같은 년놈들 붙어서 안떨어지네
나는 머야 그냥 좆물만 흘렸네
그상태에서 아내를 안고 일어서더니 욕조로 들어가서
아내를 씻기는건지 애무를 하는건지 년놈들
아내가 부른다. 여보 이리와
고마워 여보하면서 좆을 잡고 빨다가 뒤치기 자세로 보지를
벌려주네 , 여보 해봐 어서 욕조가 엄청크다
세명이 들어가도 여분이 있다,
년놈 씹하는 보다가 흥분되어 있는 내 좆은 허무하게
일분도 못되어 우어어어걱 하면서 싸버렸다.
이제 존심은 내가 상하네 저놈보다 형편없다는 걸 입증
욕조 안에서 년놈은 서로 안고 지랄한다.
놈이 일어서니 아내는 대물을 잡고 오랄지랄을 한다.
놈은 당당히 좆세워 마누라 머리채를 잡고 오랄을 시킨다.
그러더니 아내를 욕조 비스듬히 세워 보지를 물밖으로
보빨을 해주니
또다시 이년 숨이 넘어가기 시작하네
오랄 뽀빨을 한참하더니 대충 닦고 테이블에서 맥주로 원기
회복한다.
이미 12시가 넘었고 음주라 운전도 곤란하고
시외 러브모텔이니 갈수도 없는 형편이라
이넘 제가 그냥 바닥에 자고 아침에 가겠습니다. 하니
아내가 아니 그냥 여기 자요 세명이 누워도 남네 하니
그러죠 한다.
내일 일요일이니 아이고 푹자자 하니
전부 침대로
아내 가운데 내가 오른쪽 놈은 왼쪽 깊은 잠에 빠진다.
자다가 좀 소란스럽기는 했지만 술과 피로에 골로가는데
알고보니 이놈이 아내 보지에 좆을 삽입한 채로 자자고
했다네 아내는 엉덩이를 돌려 삽입하기 좋게 해서 박은
채로 자다가 하다가 자다가 하다가를 반복하면서
아내를 배위에 올려서 하다가 엎어놓고 하다가 그랬다네
다음날 오는 길에 아내 하는 말
좆이 너무 깊이 들어와서 힘들었다고 하네
최고의 섹스를 했단다.
얼굴이 환해지고 미소가 넘쳐흐른다.
쌍욕을 하더니 개 같은년
여보 사랑해 너무 너무 사랑해
내가 잘할게
시간되면 다음에 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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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나는 태어날 때부터 잠을 잘 자지 못했다고 한다. 한 살에도 눈을 초롱초롱 뜬 채 주위를 응시했다고 한다. 잘 울지도 않아서 잔다고 착각한 적이 많았다고 한다.
나는 불면증이라기보다는 아마, 그냥 잘 자지 않는 성향일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세상이 복작복작했던 십 대나 이십 대에, 늦은 밤이 되면, 잠들지 못하고 헤매다 떠오른 사람이 너였다는 문자를 받곤 했다.
“왠지 너는 안 자고 있을 것 같아서.”
“나 안 자고 있어.”
늘 재지 않고 망설임 없이 답했다. 친하든 덜 친하든 중요하지 않았다. 늘 문자의 마지막 문장은 내 것이었다. 끝까지 안부에 답하고 인사를 해야 마음이 편했다.
외국을 가면서 핸드폰을 없앴다. 오랫동안 전화기 없이 살다 보니 연락이 끊긴 사람들�� 꽤 많다. 지금은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다. 그게 딱히 불편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몇 년 전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큰 고민이 장소였다. 어느 순간 살고 싶은 곳이 없었다. 지금도 매한가지다. 정 붙일 곳이 없다. 어디를 가든 집이라는 느낌이 없다. 마치 누군가의 삶을 빌려 사는 듯 어색하고 쉽게 지친다. 그런 기질 탓에 어느 곳에 도착하면 이내 떠나고 싶어진다. 잠깐 머물 사람처럼 마음을 편히 내려놓지 못하고 기웃거린다.
최근 본가에 다녀왔다. 갈 때마다 기분이 다르다. 대기의 온도와 빛의 강도, 꽃과 식물의 푸르름, 구름의 양과 하늘의 색, 소음에 따라 생각도 달라진다. 어떤 날은 과거에 집착하고, 어떤 날은 현재의 내가 붕 떠 있고, 어떤 날은 나이가 든 내가 이 집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십 대에는 그랬다. 회한 속에 사는 듯 늘 멀리 떠나고 싶었다. 동요하는 마음을 붙잡은 건, 그곳의 달과 별이었다. 새벽에 조용히 밖에 나가 꽃이 만발�� 마당에 앉아 오래오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집을 둘러싼 담벼락과 잠긴 대문은 어둠이 주는 두려움을 적절히 차단했다. 산등성이에 머리를 빼꼼 내미는 달을 보고, 바다 아래로 침몰하는 듯 사라지는 달을 보았다.
늘 일기를 썼다. 나는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되기보다, 어떤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던 것을 지금은 안다.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은 누군가의 마음이지 멋진 장소가 아니었다는 걸. 어른이 돼서 했던 긴 여행은 어쩌면, 비록 그때는 몰랐지만, 그 그리운 마음을 찾아 나선 용기 있는 여정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매번 실망하는 여행을 했나 보다.
우리가 사라지는 순간은, 단순히 어느 장소를 떠나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나이가 드는 건 삶이 주는 질문에 진지하게 생각해 볼 시간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대답은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이제는 사랑을 돌려줘야 할 나이라고 생각한다. 멀리까지 가야만 알든, 가까이에서 눈치를 채든, 크든 작든 삶이 내게 준 무언가를 (사랑 같은 추상적인 것이든, 물질과 같은 물리적인 것이든 상관없이)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내어주고 싶다. 마지막 떠나는 여행을 홀가분히 준비하고 싶은 생각이 짙어진다.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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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23 Vogue Korea
모든 순간, 진심의 RM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기쁨, 낮추고 배우려는 열정, 안일함을 물리치는 의지, 그것이 청춘이자 RM이다.
서면 인터뷰의 답변은 인터뷰이가 편안한 상태에서 쓰곤 합니다. 지금 어느 시간대, 어느 공간에 있나요? 고개를 들면 무엇이 눈에 띄나요?
이런 서면 인터뷰는 휴대폰으로 쓰고 싶지 않아 작업실에 와서 컴퓨터를 켤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지금은 토요일 오후 10시 30분이고, 운동과 작업 후에 작업실 의자에 앉아 있어요. 고개를 들면 늘 걸려 있는 윤형근 선생님의 그림과 각종 작업 장비가 눈에 띕니다. 제 손때가 묻은 가장 익숙한 물건이 많죠.
한국가구박물관에서 <보그> 커버 촬영을 함께 합니다. RM은 단순히 ‘멋진 모습을 촬영한다’를 넘어 화보 촬영 하나에도 확고한 주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보그> 커버 작업에서 달성하고 싶은 목표 혹은 바람은 무엇인가요?
개인 커버는 처음인 데다 <보그> 커버라서 부담이 큽니다. 맞아요. 단순히 외양이나 느낌이 멋있다기보다는, 정서나 정신이 같이 담길 수 있는 사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저보다 외형이 멋진 분은 많으니까요. 그리고 보테가 베네타와 함께하는 만큼, 그들의 감도나 철학이 같이 은은히 비치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아티스트는 홀로 창작과 표현의 영역을 감내하지만, 이번 화보 촬영처럼 여러 스태프와 함께 하는 일도 많습니다(두 개가 함께 간다고 봐야겠죠). 하나의 결과물을 위해 여러 사람과 작업할 때 고수하는 원칙이 있나요?
최근에 아주 다양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어요. 전에는 혼자 끌고 가거나 적은 인원과 일하는 경험뿐이어서 이번 기회에 신선한 자극과 영감을 많이 받는데, 원칙을 세우는 중이에요. 다만 제 이야기가 담긴다면 어디에서건 저의 크리에이티브를 지켜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을 다각도로 조망하고, 충실하고 빼곡하게 매일의 페이지를 채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삶에 충실하고 노는 것에도 충실해야, 작업과 창작도 잘할 수 있겠죠. 창작도 결국 하나의 직업일 뿐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와 인스타그램에서 서로를 향한 코멘트를 주고받았죠. 마티유는 RM의 보테가 베네타 캠페인 사진을 올리면서 ‘가족’이 된 것을 환영했고, 당신도 일원이 돼서 기쁘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지난 2월 밀라노에서 열린 보테가 베네타의 2023 F/W 컬렉션에도 참석했죠. 올 블랙 룩이 브랜드 이미지와 부합하면서도 RM다웠습니다. 그간 음악과 미술에 대한 당신의 열정은 여실히 드러났지만, 패션에 대한 생각은 읽기가 쉽지 않았어요. 당신에게 패션은 어떤 의미인가요?
언젠가 “패션은 사상이다”라는 말을 접하고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과장됐다 싶으면서도 일견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늘 패션을 일종의 태도나 자세에 가깝다고 여겨왔습니다. 옷을 벗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요. 남들에게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우아하게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날개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요즘에는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해요. 가끔은 그런 생각이 저를 잡아먹는 것 같아서요, 하하. 그러나 저는 여전히 패션을 사랑하고, 중요하게 여깁니다. 저의 패션사도 계속 변해왔거든요. 스트리트에서 고딕, 아메리칸 캐주얼로, 또 미니멀에 꽂힐 때도 있었고요.
당신의 예술 사랑, 특히 한국 예술 사랑은 유명합니다. 지난 <보그> 인터뷰에서도 “집에 미술품을 거는 건 영적 체험”이라고 말했어요. 제게 미술이 처음 다가온 때는 2015년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마크 로스코(Mark Rothko) 전시였어요. 그의 빨간 추상화에 빨려 들어갈 것 같았거든요. 그 작품을 보고 “나도 색깔 그림을 그리고 싶어”라고 말한 꼬마도 기억나요. 미술과의 강렬한 첫 만남을 묘사해주세요.
기억은 계속 편집되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제가 기억하는 처음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모네와 고흐, 쇠라의 그림을 접할 때였어요. 아마도 2018년 말쯤으로 기억됩니다. 투어 중이었는데 ‘뮤지엄 한번 가보자’는 생각으로 갔던 게 강렬한 체험이 됐죠. 교과서나 컴퓨터에서만 보던 그림을 실제로 마티에르까지 접하게 되니 ‘아, 역시 직접 가서 보는 게 맞구나’ 싶더라고요. 제가 그림에 소질이 전혀 없어서, 생전 처음 보는 대가들의 색채 감각과 작업물에 경탄하면서 정신없이 봤던 기억이 나요. 특히 ‘그랑 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가 아주 강렬했어요.
당신이 찾아가는 전시, 인스타그램에 인증한 작품은 단연 화제예요. 그것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좋은 전시를 대중에게 알렸다는 뿌듯함도 느낄 것 같은데, 어떤가요? 관람한 전시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몇 번 얘기한 적 있는데, 각자 인스타그램, 특히 퍼블릭 피겨의 피드는 일종의 큐레이션 아닐까요. 그 사람이 무엇을 좇는지, 무엇을 드러내고 싶은지 어느 정도 여실히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워낙 전시를 많이 다니고 이쪽의 인플루언서로 소개되다 보니 부담스러운 면도 없지 않지만, ‘제게 관심 있거나 절 좋아하는 분들이 한 분이라도 더 좋은 체험을 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포스트를 올리는 편이에요. 특히 한국 근현대 미술이나 고미술에 대해 저와 같은 젊은 세대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미디어아트나 퍼포먼스 쪽보다는 회화, 공예에 관심이 많아 보여요. 마음이 그 방향으로 가는 이유를 생각해봤나요?
글쎄요. 아무래도 보통 미디어아트나 퍼포먼스 쪽으로 가는 과정이 좀 더 번거롭고 어렵긴 하겠죠? 그리고 전시관에 가서 보는 것도 일종의 체험인데, 미디어나 영상은 1시간가량 되는 무거운 분량이 많아서 아무래도 조금 힘들게 느껴지기도 해요. 그러나 점점 미술을 좋아하면서 그쪽에도 나름의 관점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도 백남준이나 이승택, 슈타이얼, 브루스 나우먼 등은 아주 흥미롭게 봤습니다. 퍼포먼스는 아무래도 직접 목격할 일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영상으로는 조금 약하게 느껴져요. 제게는 전시에 가는 것도 일종의 취미이자 일상의 환기인데, 회화나 공예는 보면서 스스로 마티에르라든지, 얽힌 이야기라든지 좀 더 해석과 감상의 여지가 많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사실, 일단 더 예쁘고 쉽고 편하잖아요. 하하. 이걸 부정하면 안 되겠죠.
<알쓸인잡>을 보면서 더 느꼈는데, 지식과 지혜를 흡수하고자 하는 열정이 커 보여요. 보통 사회생활을 오래 하거나 일가를 이루면 ‘자신만의 기준’(고집에 가까운)이 생기기 마련이라 귀를 닫곤 합니다. 특히 슈퍼스타라면 그렇게 되기 더 쉽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당신이 마음을 열고 배우려는 태도가 신기하고 대단합니다. 지식과 지혜를 탐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근래 탐닉하는 영역은요?
50·60·70대에도 여전히 새로운 것에 열려 있는 분들을 보면 경외감부터 듭니다. ‘정보 과잉’ 시대에 갓 서른도 젊은 꼰대가 되기 십상인 시대잖아요. 제 결함이나 부족을 제대로 알려고 노력합니다. 새로운 체험이나 결과물을 접할 때 처음 드는 불쾌감이나 프레임에 갇히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지적 욕망은,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공부는 평생 하는 거라고들 하잖아요. 세상에 제가 모르는 것들, 흥미로운 분야가 정말 많아요. 미술사, 미학, 건축, 세계사, 한국사 등을 통해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어요. 최근에는 사진과 고미술에 탐닉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황소윤(So!YoON!) 앨범에 함께한 곡도 좋았고, 솔로 앨범에서 체리필터 조유진, 박지윤과 함께한 트랙도 좋아합니다. 들으면서 ‘이 아티스트는 제한 없는 사람이구나, 자유로워 보인다’ 싶었어요. 어떤 뮤지션과 함께하고 싶나요?
예전에는 그런 기준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다만 어느 위치에,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갖고 서 있든, 무언가를 향해 더 나아가려는 사람들. 단순히 욕망만이 아니라, 실현할 수 있는 역량과 재능을 갖추고 길을 찾아 헤매는 사람을 좋아해요. 결국 저는 그런 사람들로부터도 제 이야기를 찾고 있지 않을까요? 대가든, 신인이든 말이죠.
“현재를 사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꿈을 가진 계기는 무엇이며, ‘지금 여기’에 집중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나요?
아트를 오래 접하고 음악도 오래 해오다 보니 결국 영원성으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영원성에 가장 가깝게 가닿는 방법은 현재에 푹 잠식되는 것이라고 느꼈어요. 이 시대에는 특히나, 혹은 한국의 사회 환경 탓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우리의 정신적 시제가 늘 과거나 미래에 가 있잖아요. 후회하거나, 아쉬워하거나, 욕망하거나, 꿈꾸는 것들 모두 현재였고 현재일 것들인데, 정신이 계속 다른 시제에 가 있다 보면 지나갔거나 오지 않을 것들에만 집착하게 돼요. 하루에 딱히 어떤 성취감이나 달성한 느낌이 없더라도, 하루의 끝에 오늘 있었던 일을 상기하면서 ‘이렇게 많은 것을 하고, 많은 생각을 했구나’ 하고 달래줍니다. 그리고 좋은 일은 시작하기도 전에 아쉬워하거나, 아니면 나쁜 일을 두려워하거나 하는 것을 경계하려는 편이에요. 루틴이 무척 중요한 것 같아요. 요즘은 작업, 술, 전시, 운동, 산책… 이런 키워드를 기둥처럼 세워놓고 곁가지를 뻗어나가며 살고 있어요. 나쁘지 않습니다.
“워라밸을 중시하고 안 지켜지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는데요. 아티스트로서 쉽지 않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워라밸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누차 말씀드리지만 예술도 결국 삶에서 나오는 자기 것이에요. ‘삶’과 ‘놂’이 병행돼야 멋진 창작물도 나올 수 있겠죠. ‘음악을 위한 음악’ ‘바이브를 위한 바이브’ 이런 것들에 잡아먹히면 안 되겠죠. 라이프가 선행되고, 그것이 워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균형감이라고 할까요. 늘 평균대 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요. 그것을 즐기는 수밖에 없어요. 창작은 천형이나 형벌 같은 거니까요. 그래도 즐겁고, 이런 직업인으로 살 수 있어서 행운입니다.
요즘 김애란의 단편 ‘서른’의 문구를 자주 떠올려요. “그동안 나는 뭐가 변했을까, 그저 좀 씀씀이가 커지고, 사람을 믿지 못하고, 물건 보는 눈만 높아진, 시시한 어른이 돼버린 건 아닌가.” RM은 ‘더 나은 사람’이란 방향성을 반복해 자각할 거 같아요.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패시브 스킬처럼 갖고 가는 삶의 총체적 키워드가 아닐까요. 늘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죠. 그런데 사랑한다는 말 자체보다 사랑의 내용이 훨씬 더 중요한 것처럼 먼저 ‘더 나은 사람’에 대한 정의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봐요. 사람마다 다르겠죠? 말씀드린 것처럼 전 삶의 키워드를 적어놓고 균형 감각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또 모르는 것을 공부하고, 친구들과 열심히 놀고 주변 사람들도 챙기려 해요.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정말 어렵죠. 평생 해야 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그런 목표와 마음으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을 볼 때 우아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그들에겐 어떤 후광 같은 게 느껴지지 않나요. 그렇게 사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좀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근래 안 해봤는데 해봐서 좋았던 일은 무엇인가요? 아니면 안 해봤지만 언젠가는 꼭 하고 싶은 일은요?
요즘은 새로운 사람들과 부딪치고, 친구가 되고, 또 작업도 해보고 있어요. 인간관계를 놓고 봤을 때 지난해 중반까지는 좁고 폐쇄적으로 살아오지 않았나 싶어요. 그런 자극이 힘들고 낯간지럽고 때로는 무겁기도 하지만, 무언가 제 안에서 조금씩 변하는 게 느껴져요. 제가 이 균형을 잘 잡으면 그것을 좋은 변화로 이끌 수 있겠죠? <보그> 커버도 제게는 큰 도전이자 새로운 체험이었어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VK)
English translation
RM stays truthful to every moment
The joy of admiring beauty, the passion to humble oneself and learn, the determination to fight complacency: The essence of youth, the essence of RM.
As this is a written interview, I imagine that you’re answering these questions at your convenience. Could you tell the readers where you’re writing and what time it is? What do you see around you now?
I didn’t want to type my answers on my phone, so I waited until I could return to my studio and turn on my computer. It’s 10:30 p.m. on a Saturday, and I’m sitting on a chair in my studio, having worked out in the gym and worked on some songs. Looking around me, I notice a painting by Yun Hyong-keun that’s been decorating my wall for some time, and the studio equipment. I’m surrounded by familiar objects.
You’re scheduled to do a Vogue Korea cover shoot at the Korea Furniture Museum. Your fans expect you to take part in such photo ops for some sort of purpose beyond just producing nice pictures. What are you aiming for with the upcoming Vogue cover?
It’s actually my first time to appear on a cover all by myself. And the publication is Vogue, of all things! My fans are right to expect not just photos that are pleasing to the eye, but photos that express who I am, what I’m thinking, what I believe. There are so many other people who’d be more pleasant to look at on the cover than me. Since I’m doing this with Bottega Veneta, I also hope the brand’s philosophy will come through, but in a less obvious way.
An artist often suffers alone during the process of creation and expression, but some creative processes, like the upcoming photo shoot, can be very collaborative, involving many people. What are your rules on collaborating with others to achieve a certain artistic outcome?
I find myself meeting and working with a wide range of new people these days. This is quite refreshing and inspiring because I was used to working either alone or with just a few people. As for the rules … I’d say that I’m still working on them. The only rule I can think of now is to make sure that any stories about me convey my creative convictions, whatever the outlet may be. In order to convey these convictions, I believe I must consider my life from multiple viewpoints and live each day as fully as possible. I believe creativity comes from a commitment to life and a commitment to play. I try not to forget the fact that artistic creation is a job, just like any other.
You’ve exchanged comments on Instagram with Matthieu Blazy, Bottega Venetta’s creative director, with Blazy welcoming you to the brand family by posting pictures of your campaign. You responded that you were happy to join the effort. And you attended Bottega Venetta’s Fall/Winter 2023 fashion show in Milan this past February. Your all-black look was both Bottega Venetta and RM at the same time. You’ve spoken at length about music and art on many occasions, but you haven’t shared many of your thoughts about fashion. What does fashion mean to you?
I remember being quite impressed when I heard somewhere that “fashion is ideology.” This might sound like hyperbole, but I saw some truth in it. I’ve always thought of fashion as a statement of one’s attitude. You can’t walk around naked, can you? Fashion seems to give you an elegant and subtle tool for self-expression, but not in a way that forces others to consider and follow you. These days, though, I try not to read so much into anything, partly because I’ve learned that that kind of habit can eat away at me. Nevertheless, I still love fashion and see its importance. My own fashion has evolved over time, from street style to gothic, to American casual, to minimal.
You’re known for your love of fine art, especially works by Korean artists. You mentioned, in your last interview with Vogue, that “hanging a work of art at home is a spiritual experience.” Personally, I had my first intimate encounter with art at the Mark Rothko exhibit held at the Hangaram Art Museum in 2015. His red abstractions seemed to swallow me whole. I even heard a kid standing nearby say, “I want to paint colors like that.” Have you had a similar experience? A powerful first encounter with art?
Since our memories tend to edit themselves, I can’t vouch for the accuracy of mine, but I believe I had a moment like that while viewing paintings by Monet, van Gogh and Seurat at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I think it was toward the end of 2018. I was on tour at the time, but I decided to use some free time to visit a museum that day. When I saw those famous paintings that I’d only seen in art textbooks or on the Internet, and actually felt their matières and presence, I knew I’d made the right choice. I have no artistic talent, so I couldn’t help but marvel, with my jaw on the floor, at the incredible colors and techniques of those master artists. For some reason, I was quite shaken by A Sunday on La Grande Jatte.
The exhibitions you visit and the works of art you photograph and post on your Instagram page have gone viral. This phenomenon probably puts pressure on you while also making you proud to be able to use your platform to introduce great works of art to the public. Are there any particular reasons you like to share the art you see at exhibits with the public?
I’ve spoken about this a few times elsewhere, but I think of an Instagram account — especially that of a public figure — as a channel of curation. It shows what the account holder is interested in, what they want to reveal and express about themselves. Yes, I do find my role as some kind of art influencer burdensome at times, but I post about these art shows and works in the hope that people who like me and follow me on social media will also get some enjoyment out of it. Especially so because I’d like members of the young generation, including myself, to take more interest in modern and contemporary Korean art as well as ancient art forms.
You seem to be more interested in paintings and crafts than in media or performance art. Why’s this?
Well, it seems to me that media and performance art is harder and takes more effort to appreciate. I think it’s important to view and experience art in the spaces where it’s meant to be shown, such as a museum. But it’s difficult for me to spend an hour or more watching a media show or some performance art at a certain venue. As I grow fonder of art, though, I expect I’ll develop more of an interest in those forms of art. I do find the works of Nam June Paik, Lee Seung-taek, Hito Steyerl and Bruce Nauman quite fascinating. I haven’t seen any performance art live yet. What I see on YouTube feels a bit weak to me. I enjoy going to art exhibits not just for the sake of art, but also as a pastime, for a change of surroundings. While viewing paintings and crafts, I love interpreting and analyzing the matières and the background stories. To be honest, paintings and crafts are prettier and more accessible, aren’t they? I think it’s hard to deny.
Your passion to learn and gain wisdom was on full display when you appeared on the Korean talk show The Dictionary of Useless Human Knowledge (Alsseulinjab). As people gain experience, and even attain a certain reputation or level of success in their line of work, they can become stubborn and stop listening to others. Being a global superstar like yourself can probably have that effect, too. So, it’s all the more refreshing and amazing to see you striving to stay open-minded and continuing to learn Why do you want to learn so much? What are you learning these days?
Likewise, I’m amazed by people who stay open-minded in their 50s, 60s or even 70s. Being bombarded with information as we are these days can make even a 30-year-old close-minded. I try to be aware of my shortcomings and weaknesses. I try to go beyond the initial sense of discomfort or prejudice that I might feel when encountering new things. As for my desire to gain knowledge, I think it’s only natural to want to learn and study throughout one’s life. There are so many things I hardly know anything about and find interesting. I do believe that I can become better and wiser by studying art history, aesthetics, architecture, world history, Korean history and other subjects. These days, I’m fascinated by photography and ancient art.
I like the song you worked on with So!YoON! for her most recent album. I also enjoy the tracks on your solo album featuring youjeen and parkjiyoon. As I listen to these songs, I can’t help but think that you’re limitless and free-spirited as an artist. What kind of musicians do you like to collaborate with?
I think I had standards in the past about whom I wanted to work with, but I’m not so sure anymore. In whatever I do, though, I tend to be drawn to people who are self-assured and who strive for something bigger at the same time, to people who have not just desire, but also the capability and talent to forge their own path. It’s probably through such people that I try to find my own story, whether they have well-established names or not.
You’ve said your dream is to live in the present. Where did this dream come from? What efforts do you make to focus on the here and now?
Now that I’ve been involved in music and art for some time, I keep thinking that all these efforts are attempts to exist in timelessness. At some point, though, you kind of realize that the ironic shortcut to eternity is to be fully immersed in the present. In this day and age — or maybe particularly in Korea — our minds tend to wander toward the past or the future. We regret, long for, desire and dream about things that are gone or that may never materialize even though we’re stuck in the present. I may pass a day without doing anything significant, but I try to tell myself at the end of the day that I’ve done so many little things and thought so many little thoughts. I also consciously try to avoid being either too excited about good things ahead or too afraid about bad things that might happen. It’s extremely important to set a routine and stick to it. These days, I maintain a routine based on a few keywords, such as work, drinking, art exhibits, working out and taking walks, adding a few more and subtracting others when necessary. It’s not so bad.
You’ve said that you value having a work-life balance, and that you get stressed out when that balance is upset. It’s not so easy for artists to maintain such a balance, is it? What does work-life balance mean to you?
I say this over and over again, but art ultimately comes from life. I believe I can create something awesome only by continuing to put living and playing at the forefront. I don’t want to pursue music for music’s sake, art for art’s sake, etc. Life always comes first, and that creates the balance needed to work fruitfully. I always think of myself as standing on a balance beam, and try to enjoy it as much as I can. Creating is like punishment. But I try to endure it with pleasure, counting myself lucky to have a creative job.
I try to become a better person. In her short story 30, Kim Ae-ran writes, “How have I changed thus far? I fear all I have managed to become is someone who spends a little more, someone who distrusts others, someone who is discerning only when it comes to the quality of the goods she is about to buy. I fear I have become a pathetic adult.” What would becoming a better person mean to someone like you?
I think trying to become a better person is a passive skill we all apply to our lives. We all want to become better people. But we do need our own definition of what a better person is, just like what love actually entails is much more important than the words ‘I love you,’ for example. I bet the answer differs from person to person. I’ve mentioned the keywords that I base my routine and life around. I try to stay focused on these keywords to remain balanced, continue learning, keep playing and interacting with friends, and be kind to those around me. It’s very difficult to become a better person, not least because it is a lifelong journey. That’s why I admire those who’ve lived a long time but still continue trying to better themselves. It’s almost as if I can see halos around their heads. If there were more people like that, wouldn’t the world be a better place?
Have you tried anything new recently and found yourself enjoying it? Is there anything you haven’t tried yet but want to try in the future?
These days, I’m constantly meeting new people, befriending them and starting to work with them. I think my social life was pretty limited until about the middle of last year. Getting to know new people can feel like a lot of work at times, making me feel embarrassed and even shy at times, but I do feel these new interactions are changing me. As long as I keep my equilibrium during all these new encounters, I think the results will be positive for both me and my audience. Becoming a solo cover model for Vogue is a huge new experience for me, too. I’m grateful for this opportunity. Stay healthy, everyone. (VK)
Source: Vogue Korea ENG: Vogu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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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6.14.~6.19.

6.14.(월)
지난번에 시켰는데 안 온 얼큰 수제비를 먹고 저녁에는 J아저씨와 L아저씨 둘이서 사줬다.
1차는 J아저씨가 치맥을 샀고 2차는 L아저씨가 포차를 사고 나는 화장실 다녀온다면서 파바 롤케익을 하나씩 쥐어줬다.
너 힘든 거 알지만, 잘 하고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셨고 늘 나의 고충을 주기적으로 들어준다. 평가팀의 레거시니까 어쩔 수 없겠지.
남 벌주는 일이 더 쉽더라. 남 평가하고 남에게 평가 받는 거 준비 하는 담당자보다.
이의신청 기간이라 이것 저것 반영을 해주셨는데, 딱 하나를 안 해주시더라.
L박사에게 내 여자친구 혹은 선배님, 아니 교수님 같이 모시고 연락을 드리고 있다. 그분을 알아가며, 이런 저런 평가 준비를 하면서 요즘 나는 학생이 되가는 거 같다. 학교를 다니며 과제를 내며 월급받는 셀러리맨이면 누가 이해를 해줄려나.

6.15.(화)
백반과 고기집, 뭔가 바쁜데 새로온 부서장은 용기를 북돋아 주고 싶은 가보다. 깡통 들고 신나게 두들겨 봐라. 소리가 나는지.

6.16.(수)
점심은 즉석 떡볶이를 먹었다. 야근한다니까 J가 자기는 닭가슴살을 사먹고 나는 살찌라며 1,000kcal 식사를 사주더라. 바보. 굶는다고 살빠지냐. 많이 움직여야지 살빠지지.
난 1달 평균 13,000보는 걷는다고. 하루도 신발 안 신는 주말 포함이면 평일에는 13,000보 더 걷는데.

6.17.(목)
너를 또 만났다. 우리는 어디를 갈줄 몰라 헤메다 카페 마마스를 찾았고. 나는 내일 6.18. S기관에 강의를 나가니 거기 담당자 선물을 준비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어느 누가 말단에게 강의를 의뢰하고, 그래서 야근하며 PPT만들고 아놔...
그리고 그녀의 이니셜이 들어간 손수건을 선물을 찾으러 같이 갔다가 동선이 꼬여 식당을 못찾고 그랬었다.
물론 너는 맛있는 중식당, 양��당을 가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그걸 못 지켜줘서 미안했고, 모든 남자이 고소공포증이 없는 건 아니다. 나는 엔지니어고 기술자니까 안다.
절대 그럴일이 없다는 것을, 안전률을 충분히 줘서 설계 하는 거 알지만 무섭단 말야.

그래서 정상에서 츄러스를 먹고 S가 준 쿠폰으로 저녁을 사먹으며 우리는 헤어졌다.
전날 하늘이 좋았다며 너는 높은 곳을 골랐다만. 그렇게 전날과 같은 하늘은 아니였다.
"어느 멋진 날 따뜻했던 날
바람에 실려 지난 그대가 불어오는 날"
가수 정용화의 가사가 퍽 어울리는 그런 날이였다.
어느 멋진 날을 늘 보내기 아쉬웠어라.


6.18.(금)
결국 발표의 날이 왔다. 점심은 부대찌개를 먹고!
영국 보이밴드 블루의 노래 가사 'One Love' 에 그런 가사가 있다.
'어머니 자존심을 위한 단 하나의 사랑'
그녀는 나보다 8살 많은 어머니인데, 이상하게 얼굴도 모르는 그녀가 늘 수화기상 나의 많은 고충을 들어줬고 많은 것을 알려줬었다.
그녀는 지난 코로나가 생기면서 알게된 S회사의 과장님인데, 그녀의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해서 PPT도 반짝반짝하게 만들고 키높이 구두도 신고 안경도 좀더 똑똑해 보이는(드라마에서 저승사자가 썼었다) 코받침 안경도 쓰고 평상시는 아이돌이 한번 써봤던 안경을 주로 쓴다(알빵이 커서 모니터 보기 편하거든).
머리도 드라이를 하고, 도너츠도 1박스 사서 갔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자수한 손수건도.
가서 거기 사장님 미팅도 하고, 사장님 너무 늙은이던데 여기고 쉽지는 않겠더라. 눈빛을 보면 안다. 얼만큼 눈빛이 갔는지. 우리 눈은 늙어서 점점점 흐려진다.
그리고 강당에 들어가니, 한 20명이 가득 앉아 있는데 순간 좆됨을 느꼈었다. '으 나는 누구고 나는 왜 저 어머니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여기에 왔능가'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 졌고 정신줄을 부여 잡으며 이야기를 풀었다.
결국 고객만족도는, 아차 여기 왜 갔냐면 고객만족도 왜 잘하는지 알려주러 갔다지.
결국 CSI는 얼만큼 단골 고객 관리를 잘 하는가에서 갈린다고 알려줬다. 얼만큼 고객과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니즈를 어떻게 들어주는지. 아니 나는 경영학과도 통계학과도 경제학과도 행정학과도 아닌데....
1. 외부 환경 분석
2. 내부 환경 분석
3. 현실적인 자원 배분에 대한 제언을 하고 끝냈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 자존심을 세워줬다고 내게 별다방 카드도 선물해 주고 치킨을 사줬다.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다.
그래서 그녀는 이번 발령에 기획팀에 잔류를 한 거 같다. 내덕인가 싶기도 하고.
나는 뭐 그녀의(어머니의) 자존심을 세웠다면 되었다.

6.19.(토)
너는 내게 자존심에 상처를 줬었고 마냥 기다리는 게 싫었다기 보다 배려심 없는 네게 화가 많이 났었다. 그냥 전부다 귀찮았었다. 사랑 그 달콤한 거 없으면 또 혼자 지내면 된다. 그냥 답답한 당신을 계속 손잡고 갈 자신이 없었다.
근데, 넌 나를 쫓아왔고 내 말에 눈물을 흘리는데, 이 내가 뭐라고 눈물을 흘리는 널 두고 갈 수가 없더라.
다소 답답하고 느려도 내가 더 배려하고 더 나눠주고 그럴테니 그렇게 합시다. 예쁜 마음에 더는 상처주지 않도록 내가 더 이해할께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목소리만 들어도 고객이라며 만족하려고 노력하는데, 내 사랑 내 평생을 나눠드릴 고객의 만족을 위해서라면 뭘 못하겠나 싶었다.
남에게는 그렇게 유하게 하면서 왜 내 고객에게는 얄짤없는지 내가 나쁜새끼지 뭐.
더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도 남아날 가슴이 없어라.
"날지 못하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 돼지여도 날도록 노력하는 돼지가 되자. 🐖🐷
MCC 보고서가 잘 안써진다. 젠장.
202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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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리뷰
나는 굳이 고르라면 귀가 얇고, 쉽게 흔들리는 쪽이다.
무엇이든 확실하지 못해서 사람들의 말에 많이 흔들린다.
음식점을 고를 때에 그래서 꼭 리뷰를 보게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런 조언을 찾을 수 있다면,
생각보다 쉽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냥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너무 쉽게 흔들리며 살아온 건 아닐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Ram
*리뷰
내 구글 지도엔 징그러울 정도로 핀이 콕콕 박혀있는 곳이 많다. 미국의 뉴욕, 브루클린, 워싱턴 그리고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랑 프탈링자야, 그 외 우리나라로 치면 부산과 제주도 같은 휴양지와 멋진 장소들. 이렇게 수백 개의 핀이 꽂혀있는 곳 중 내가 구글에 리뷰 쓴 곳은 단 두 곳.
둘 중 한 곳은 프탈링자야의 한 쇼핑몰에 있는 'Two Sons Bistro'라는 레스토랑인데, 사실 쇼핑몰 안에 있는 레스토랑이라서 아무 기대 없이 갔다가 예상치 못하게 강한 인상을 받아서 리뷰를 썼다. 사람들이 꽉찬 테이블을 지나 안내받은 테이블에 앉아서 메뉴를 주문하고 나면 키친에서 크림 향과 버터 향, 그리고 각종 향이 뒤섞여 솔솔 풍겨왔다. 이 향은 한국의 어느 겨울, 그것도 크리스마스 즈음 데이트를 하러 나와서 꽤 괜찮은 레스토랑에 가서 음식을 기다릴때 맡았던 그 향과 거의 흡사했다. 게다가 'Two Sons Bistro'에선 분위기에 알맞은 스탠다드재즈까지 틀어놓은 덕분에 내 마음 굳히기를 완벽하게 해냈다. 이 정도면 분위기로 먹고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그 분위기를 즐기고 있으니 주문한 파스타와 홍합요리가 나왔다. 아, 이 홍합요리는 샤로수길 갈 때마다 제일 좋아해서 항상 들렀던 '프랑스홍합집'의 그 맛이었고! 알리오올리오는 면이 알덴테 상태를 적절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적당한 간은 말할 것도 없고. 이렇게 완벽한 레스토랑이 있었다니!! 이 곳이 최고인 것은 다른 사람들도 모두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당시 그 쇼핑몰이 락다운 풀린 직후여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없었을 때라 쇼핑몰이 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여기엔 당연히 'Two Sons Bistro'도 윈윈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구글 리뷰를 처음으로 써봤다. 당시 찍은 사진 두 장과 함께 유창하지 않은 짧은 나만의 영어로 쓴 리뷰는 구글에서 정한 조회 수 마일스톤을 돌파할때마다 메일로 친절히 알려주었다. 처음엔 몇백 명이 봤다고 메일이 오더니, 천 명이 넘게 봤다는 메일, 2천 명이 넘게 봤다는 메일이 왔고 어느새 6천 명 넘게 본 리뷰가 되어 있었다.
구글 리뷰에 정성스럽게 적은 또 하나의 레스토랑은 Super Kitchen Chilli Pan Mee라는 곳이다. 현재 살고 있는 콘도 주변에서 찾은 보물 같은 식당이다. 새 콘도에 이사 온 직후 콘도 주변에 있는 괜찮은 식당은 꼭 내가 다 가 보고 싶다는 의지에서 시작 된 구글링 중 이 판미집을 찾아냈고, 구글맵 별점은 4개도 안됐지만 괜히 그 생김새에 끌려서 찾아가 봤다. 평일 오전에 가서 그런지 판미집은 손님도 없이 썰렁했다. 벽에 잔뜩 붙어있는 판미종류를 둘러보며 가장 기본 판미를 시켜봤다. 아직 판미에 대해선 많이 아는 게 없지만 각 판미를 파는 식당마다 서로의 양념이 조금씩 다르고, 면의 종류도 조금씩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어 이 판미집의 면이 다른 곳보다 조금 더 두껍고 탱탱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판미가 나오면 테이블에 비치되어 있는 칠리로 맵기를 조절할 수 있어서 매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기호도 확실히 챙겼다. 가격 대비 양이 정말 어마어마하고, 같이 먹으라고 나오는 Fishball Soup도 간이 짜지 않아서(보통 이럴떄 나오는 Soup은 간이 짜서 한 입 먹고 말았다) 매콤한 판미와 잘 어울렸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도 은근 한국인들이 많다고 들어서 이번엔 리뷰를 한국어로 적었다. 이 지역에 사는 모든 한국 사람들이 이 판미를 꼭 먹어봤으면 하는 마음에! Two Sons Bistro도, Super Kitchen Chilli Pan Mee도 모두 체인점이라 지점마다 맛의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두 곳 모두 나의 말레이시아 맛집이 되었다.
-Hee
*리뷰
1. 마르스 광장 공원 Paris
⭐️⭐️⭐️⭐️ 2년 전
밤에 가서 에펠탑의 반짝이는 조명을 보실 거라면 미리부터 드실 술을 사두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밤 시간에는 까르푸 술장고가 잠겨버리거든요. 흑인 이민자들이 버킷에 싸구려 와인과 맥주를 담아 돌아다니면서 팔긴 하지만 이왕 마시는 거 더 맛있는 것을 마시면 좋겠죠.
한번은 미리 사간 술과 자정 즈음 흑인들이 팔다가 남은 술을 떨이로 사서 마시며 메트로 첫 차 시간까지 놀다가 돌아온 기억이 있습니다. 잔뜩 취한 새벽에 굳이 숙소까지 킥보드를 타고 가서 기타를 가져와 노래하던 음대생, 불어학과를 막 졸업하고 와서 원어민과의 스몰 토킹에 환장하던 동갑 여자애, K pop을 틀어놓고 밤새 춤을 추던 집시들. 갑작스레 터져 나오는 스프링클러에 온몸이 젖어가면서도 굳이 자리를 피하지 않고 노래를 하며 지샌 여름밤의 기억이 저에게는 한 해의 가장 선명하고 좋았던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다만 새벽에 대마초를 팔려고 돌아다니는 노숙자들을 주의하시고 언제 작동할지 모르는 스프링클러를 조심하세요. 술 취한 사람들이 구석구석 노상방뇨를 많이 하는 곳입니다. 저라면 구석진 곳에 절대로 그냥 털썩 앉지는 못할 정도로 많이요. 그럼에도 파리의 낭만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반드시 한 번은 방문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간단한 술과 간식을 챙겨 망중한을 즐겨보세요. 낮에 와서 공원을 걸어도 좋고 밤의 자유로움을 즐겨도 좋습니다. 여행에서 휴식은 필수 요소니까요.
다소 지나친 자유로움을 이유로 별 한 개는 뺐습니다.
2. 언젠가 남긴 구글맵 리뷰. 장점보다 단점을 지나치게 잘 보는 편이라 써놓은 리뷰들을 보면 불쾌할 정도로 부정적인 내용들뿐인데 어째선지 조회 수는 꾸준히 오른다. 그중에 유일하게 좋은 별점(4점 이상)을 준 장소가 두 곳 있는데 하나는 엄마 아빠의 식당이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 여행 중에 들렸던 공원이다. 리뷰의 조회 수가 얼마를 넘겼다는 메일을 보며 한동안 잊고 지냈던 기억을 끄집어냈더니 신혼여행마저도 해외로는 가지 못하는 현실이 못마땅해 괜한 심술이 난다.
-Ho
*리뷰
스스로 평가에 박하다고 말하고 다닌다. 실제로도 별점을 잘 남기는 편이 아닌 것 같다. 배달 어플리케이션, 숙박 어플리케이션에 2,000여 개의 리뷰가 남아 있는 걸 보면 놀랍다. '서비스'란 미명 아래 리뷰를 요청하는 경우도 반갑지 않다. 차라리 돈으로 환원해서 바꿔주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전자는 과잉 친절을 받은 것 같아서 싫고, 후자는 내 몇 글자를 돈으로 매수하려는 것 같아서. 뭐 디지털로 된 글자 몇 자 가지고 이렇게 빡빡하게 구나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막상 리뷰를 하려고 들면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명색이 글 좀 쓴 사람인지라 한 자 쓰기 시작하면 100자 까지는 순식간이지만 그 한 자 시작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조금 더 속내를 내비치자면 나는 재화를 교환하는 순간 프로페셔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가 단 돈 7,000���을 들고 가서 햄버거를 바꿔먹는 순간(오늘 저녁이다)은 햄버거 '프로'에게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이다. 이것은 반대로 나의 직업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내가 재화로 엮인 계약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스스로 프로 의식을 갖는다. 요즘엔 무엇이든 가볍게 직업인 듯 놀이인 듯 하며 돈을 버는 사람도 많이 있다지만 내 마음 길일랑은 그렇게 쉽게 길이 나 있지 않아 구불구불 단계가 많다. 이렇게 나란 사람은 직업과 재화의 교환 관계를 깊이 꼬아 생각하고 있다. 이런 마음일진대 가격표가 붙어 있는 것들에 대한 감상평이 쉬이 나올리 없다. 비싸고 맛있으며 주변에 신경을 많이 쓴 식당엘 가면 '그래, 이 정도 금액이면 이 정도 값어치는 해야지'하거나, 운송 수단으로 택시를 이용하고 아무런 하자가 없으면 '본분을 다 했군' 하며 태연하게 다음 삶을 사는 것이다.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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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유능한 색소포니스트가 미국의 어느 큰 도시에 살고 있었어.
주변의 모두가 그가 만든 곡과 연주를 좋아했어.
어느날 그는 결심을 했지.
‘예술의 도시 파리에 가야겠어! 거기에선 더 많은 사람들이 인정해 줄 거야!’
그는 색소폰을 가지고 파리로 향했어.
하지만 파리에서는 누구도 그의 연주를 칭찬해 주지도, 관심을 가져 주지도 않았어.
색소폰 공연을 잡을 수 없었고, 가진 돈도 점점 떨어지게 되었어.
그는 길거리에서 연주를 하며 겨우 하루 하루를 보냈어.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 없이 길에서 연주를 하다 갑자기 너무 멋진 곳이 떠오른 거야!
‘이 곡이라면 틀림없어! 여기서도 색소폰니트스로서 인정 받을 수 있을 거야!’
도~ 도~~ 시 솔라시 도 도~라~솔~
라~ 파~ 미 도레미 파 레시도 레미도~”
“그 곡 썸 웨어 오버 더 레인보우 아니야?”
나는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미스터리어스한 미소만 머금고 이어서 말한다.
“도~ 도~~ 시 솔라시 도 도~라~솔~
라~ 파~ 미 도레미 파 레시도 레미도~
...
레시도 레미도~
...
하지만 아무리 떠올릴려고 해도 그 이후의 음은 떠오르질 않았어.
그의 깊은 절망은 그를 건물 옥상 난간으로 데려갔어.
‘나는 무능해.’
그는 색소폰을 두 팔에 꼭 안은 채 건물 아래로 몸을 던졌지.
“쿵"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리고, 살짝 열린 눈꺼풀 사이로 희미하게 모여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어.
이어서 멀리서 희미하게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도 들리기 시작했어.
“삐~용삐용삐용삐용~ 삐용삐용삐용삐용~”
그 소리를 들은 순간 그는 그 다음 음이 떠올랐고, 입꼬리를 시익 올리며 미소를 지었지.
‘솔~미솔미솔미솔미솔 파솔파솔파솔파솔~’”
나는 이 이야기를 주변 친구들이나 아직 안 친한데 친해지고싶은 사람에게 이야기 해 준다.
“재밌는 얘기 하나 해 줄까요?”하면 다들 엄청 진지하게 들어줘서 그 모습이 재밌다.
다들 이게 Somewhere over the rainbow 곡의 실제 유래인 줄 알지만, 사실은 짐자무쉬 영화 ‘영원한 휴가'에 나오는 이야기를 기억나는대로 내가 대충 지어내서 얘기하는 거다.
영화 속에서도 주인공이 누군가에게 진짜 있었던 일처럼 얘기해 주는데 그 장면이 재밌어서 나도 따라한다.
오후 여섯시부터 비가 내린다는 게 거짓말 처럼 맑고 화창한 날씨다. 오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청계천을 따라 걷다가 다리 밑 그늘에서 색소폰 소리가 들려왔다.
‘솔~미솔미솔미솔미솔 파솔파솔파솔파솔~’ 이 부분을 듣자마자 내 이야기 속의 유능한 색소포니스트가 떠올랐다. 청계천 색소포니스트의 실력은 사실 썩 뛰어나진 않았지만, 그때 그 시각의 햇볕과 초록사이로 흐르는 물, 그 주변을 걷는 사람들의 활기를 더 아름답게 꾸며주고 있는 거 같아 멋지게 느껴졌다.
그의 다음 곡은 ‘Moon river’이었다.
‘Moon river’에 대한 내 이야기도 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쓰려고 한다.
청계천 색소포니스트의 짧은 곡 덕에 멋진 하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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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탐매도,
매화를 탐구하는, 탐내는,
암튼 그 중에 하나인 탐매도.
조선 시대 화가 모두를 통틀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연담 김명국의 그림이예요.
처음 이 그림을 보고
옆에 술병을 들고 있는 동자의 우수꽝스러운 모습 외에는
매화는 개뿔~~ 기억이 안나던데요
그러던 어느 술에 취해 흐릿하게
이 그림을 다시 보고 있자니 새로움을 찾았어요.
김명국은 술을 마셔야 그림을 그리는 화가잖아요.
주막에 그에게 술을 사주며
그림을 그려달라고 줄을 섰다고들 하죠.
저 그림의 선비가 김명국의 모습으로
투영되고 있다는게 느껴졌어요.
옆에 술을 따르며 알랑거리는 사람은
귀찮다 느껴지고 매화에 시선을 뗄 수 없었던거죠.
김명국은 저 그림을 그리는 순간,
정말 멋진 매화를 보고 있었거든요
저 선비 처럼 말이죠.
우린 어느날 갑작이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는 그리 좋아하는 술을 외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죠.
그 만큼 매화가 예뻤으니까요.
그의 내면의 그림에 접근하다 보니
그림 속에 예쁜 매화가 보였어요.
저는 김명국을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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