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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로 보내면, 이곳에 없는 것’
영화를 진정 사랑하는 당신을 진심의 드라이브로 모시는 영화 <드라이브>
일시: 4월 29일(화) 오후 7시 30분
진행: 이화정 영화저널리스트
참석: 조의진, 문욱일 배우, 정연 감독
상영 극장: 인디스페이스(홍대 롯데시네마 8층)
참석자는 변경될 수 있습니다.
프로필 링크 혹은 인디스페이스 웹사이트 방문 후 예매 가능
https://indiespace.kr/490983
타이니 티켓 예매
http://bit.ly/3IDdzzG
[드라이브] 영화를 진정 사랑하는 당신을 진심의 드라이브로 모십니다.
거기로 보내면 이곳에 없는 것
사랑이 흐르고 압축된 시간
어느 여름과 겨울, 그리고 가을에 우연히 만나는 어떤여자와 남자그리고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와 기억들
버려진 시간을 지우고 건져낸 소중한 시간
저기도 아니고 여기도 아닌 자동차의 행로
그냥 자동차가 아닌 자동차
당신의 사소한 감정이 밀푀유처럼 켜켜이 쌓이고
연인의 일상 속에 커스타드 크림처럼 얹혀진 시간,
드라이브
삶속에 얽혀진 수많은 감정과 관계의 어긋 그 사이를 누비던 자동차.
그 시간의 무게를 어떻게 담을 것인가?
끊임없이 어긋나는 그 사이에 덩그러니 놓여진 자동차,
자동차에 그대로 담아 둘 것인가
아니면 나의 추억으로 담아 둘 것인가?
영화 <드라이브>는 어느 여름과 겨울, 그리고 가을에 우연히 만나는 어떤 여자와 남자 그리고 자동차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와 기억들이 펼쳐진다.
각본감독 : 정연
출연 : 김시은 조의진 문욱일 한혜진 이동수 신길용 김민영 김형욱 윤석주 김규성 황지영 이세강 박종범 오수빈 박상국 박종대 정태동 임철민
제작제공배급 : 스튜디오 이상한 나라의 원더랜드(studio WONDERLAND)
12세이상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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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등이 출연했고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의 우민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영화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이 메가토크를 통해 팬들과 만나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지난 12일 메가박스 성수에서 진행된 메가토크는 영화 저널리스트 장성란이 진행을 맡은 가운데 송중기, 이희준과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영화 '핸섬가이즈'에서 인연을 맺은 이성민이 참석해 작품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눴다.이번 메가토크는 작품을 준비했던 과정부터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고민까지. 세 배우의 심도 깊은 이야기로 눈길을 모았다. 먼저 이성민은 "개봉하자마자 극장에서 재미있게 봤다. 관계가 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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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반주’로 ‘랩’하는 허클베리피 영상이 공개됐다 영화 '리스펙트'[인사이트] 권길여 기자 = 영화 '리스펙트' 측은 래퍼 허클베리 피의 무반주 랩이 담긴 오프닝 영상을 공개했다. 지난달 28일 개봉한 힙합 다큐멘터리 영화 '리스펙트'는 삶이 랩이 된 국내 최정상 래퍼 12명의 솔직한 이야기를 그렸다. 영상은 영화에서 호스트 역할로 직접 래퍼들의 인터뷰를 이끌어낸 힙합 저널리스트 김봉현과 대한민국 최고의 프리스타일 MC로 손꼽히는 허클베리 피를 소개하면서 시작된다.먼저 힙합 저널리스트 김봉현에 대해 래퍼 타이거 JK는 "하나의 문화에 있어 가이드라인을 그려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유튜브 구독하기: https://goo.gl/JQ1f1j 보고 주셔서 감사합니다. #‘ #무 #반 #주 #로 #‘ #랩 #하 #는 #허 #클 #베 #리 #피 #영 #상 #이 #공 #개 #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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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케우치 마리야 재팬타임즈 인터뷰
타케우치 마리야: 2018년에 갑자기 온라인에서 스매시 히트한 팝의 천재의 이면
2018년 서구권에서 가장 큰 일본 음악의 성공에 타케우치 마리야가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그녀는 어느때보다 파란만장한 한 해를 설명하기 위해 여전히 애쓸 것이다.
이 싱어송라이터는 음악업계에 몸 담은지 40주년을 맞았고 새로운 음원 발매와 이벤트로 기념 행사가 연이었다. 하이라이트는 처음으로 도쿄와 오사카에서 직접 대면하는 팬미팅, 새로운 더블 A면 싱글은 영화 “아이아이가사”와 NHK드라마 “누케마이루”, 그리고 콘서트를 통한 그녀의 커리어를 반추하고 진귀한 비하인트 영상을 담은 장편 영화 “Souvenir The Movie”의 개봉이다.
“이런 흥보활동 때문에 계속 바빴어요.”라고 빈티지 가구로 장식된 워너 뮤직 재팬 도쿄 사무소의 널찍한 공간에서 타케우치 마리야는 말한다.
“대게는 매우 평범하지만요.”그녀의 매일의 활동을 물었을 때 그녀는 웃으면서 말한다. “식료품을 사러 장을 보러 가고 요리를 하고 때로는 청소를 하거나 영화를 봐요. 독서를 하거나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거나. 전 제 일상이 조금도 특별하다고 생각할 수 없어요.”
그러나 타케우치 마리야의 커리어는 무엇이든 평범했다. 70년대 말에 데뷔한 이래 그녀는 1천6백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고 그 중에도 그녀의 베스트 앨범 “Impressions”는 약 3백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그녀는 J-POP의 명사-나카모리 아키나부터 SMAP까지- 를 위해 작곡과 편곡을 했고 그녀의 “素敵なホリデー”는 일본의 크리스마스 카논으로 자리매김했다.
1982년에 그녀는 동료 뮤지션이자 올해로 예순다섯인 야마시타 타츠로와 결혼했고 그는 그녀가 창작을 할 때부터 어레인지와 프로듀스를 해왔다. 이 둘은 틀림없이 오늘날 일본 음악 업계의 가장 유명한 커플이다. J-POP계의 비욘세와 제이지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음악 저널리스트 카나자와 토시카즈는 타케우치 마리야의 워크 라이프 밸런스의 성공에 대해 “어떠한 라이브 활동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많은 가수들과 송라이터들이 하지 못한 것을 했고 그녀의 인기를 유��했다.”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타케우치 마리야의 성공은 모국에만 한정됐다.(빈티지 재패니즈 팝에 몰두한 일부 틈새 팬을 제외하고는) 그러던 것이 2017년에 인터넷에서 발견된 그녀의 1984년 곡 “Plastic Love”로 바뀌었다.
이 노래-훵크의 기반한 질주하는 팝에는 멜랑꼴리한 감성의 가사가 숨어있다-는 원래 앨범 “Variety”에 수록됐다. 2017년 여름, Plastic Lover라고 불리는 한 유튜브 채널에서 공유된 트랙이다-보다 정확하게는 7분 가량의 리믹스. 동영상에는 타케우치 마리야가 1980년에 헐리우드에서 촬영한 사진이 장식되어 있는데 이 사진은 “Sweetest Music”이라는 싱글의 커버로 사용됐고 그녀가 미소짓는 사진만 잘라내서 나중에 동영상을 통해 공개됐다.
이 때부터 “Plastic Love”는 온라인상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Plastic Lover의 업로드 동영상은 현재 2천2백만 뷰 이상을 자랑한다. 성공의 일면에는 시청자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좋아할지에 기반한 유튜브 알고리즘의 비디오 추천도 기여했다. 많은 사람의 타케우치 마리야의 활짝 웃는 얼굴이 우측의 추천 비디오 리스트에 뜬 걸 봤고 클릭했다. 바이스 미디어의 라이언 바실은 이 노래를 그가 “세상에서 좋아하는 팝송”이라고 썼다. 고릴라즈의 가상 캐릭터 누들은 이 트랙의 감수성의 명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더 블랙 마돈나는 Resident Advisor의 2017년 11월 믹스에서 이 곡의 압도적인 연주를 공개했다. “Plastic Love”는 팬아트, 분석 비디오와 theory breakdowns에 영향을 주었다. 한국의 팝 가수 유빈은 타케우치 마리야의 노래를 모델로 한 곡을 공개했지만 다른 아티스트에 의한 리믹스 트랙을 표절했다는 주장 이후 발매를 취소했다.
“서구권에서 작품 발매를 위해 노력하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타케우치 마리야는 “Plastic Love”를 녹음했던 때를 떠올리며 말한다. 대부분 일본어로 연주할 것을 염두했고 수출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우리는 이해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 “Plastic Love”의 유튜브 덧글란을 보면 무슨 언어인지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아요.”
“Plastic Love”만큼 올해 해외에서 주목을 끈 일본의 노래는 없다. 비록 원래는 80년대 중반에 발매됐지만.
타케우치 마리야는 두 가지 음악적 현실에서 곡예하듯이 그녀 자신을 지금 찾고 있다. 일본에서 그녀는 가장 유명한 뮤지션 중 한 명이다. 그러나 해외에서 그녀는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밈의 창작 덕분에 주목을 모은 모호한 J-POP 크리에이터이다. 단지 최근의 갑작스러운 입 소문보다 그녀의 이야기가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는 것을 이러한 현상은 이야기한다.
시골에서의 가정교육
5월에 타케우치 마리야는 시마네현의 이즈모시의 매력적인 일본 스타일 숙소인 타케노야를 상속받으며 료칸의 주인이 되었다. 근처에 있는 이즈모 타이샤 방문객을 위해 타케우치 시게조가 1877년에 개업했다. 타케우치 마리야의 오빠는 이전에 매니저로 근무했으나 그가 늙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래서 그녀의 일가 중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기 이전에 개조 계획을 감독하기 위해서 그녀가 잠깐 책임을 맡고 있다.
“만약 당신이 거기에 가더라도 제가 음식이나 무언가를 제공하진 않을거에요.”라고 그녀는 웃으면서 말한다. 비록 많은 팬들이 그녀를 볼 수 있을거란 희박한 가능성을 가지고 방문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1955년에 태어난 타케우치 마리야는 6남매 중 삼녀로 료칸에서 자랐다.
“전 바다에 바다에 둘러쌓여 있었어요.”라고 그녀의 어린시절에 대해 말한다. “시마네에는 또한 많은 산이 있어요. 모든 곳이 순수한 자연 그 자체에요. 전형적인 시골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죠.”
그녀의 가족은 음악을 사랑했고 그녀는 세계 각지의 레코드를 들었던 것을 떠올린다.
“전 미국의 팝, 프렌치, 이탈리안, 탱고, 재즈… 모든 것을 듣곤 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2003년에 “Longtime Favorites”에서 코니 프랜시스와 폴 앵카와 같은 미국 가수와 한편으로 이탈리아의 미나와 프랑스의 마조리 노엘의 작품을 다룬 커버집에서 그녀의 초기 음악적 영향에 대한 오마주를 바쳤다.
3학년 때 그녀는 비틀즈에 입문했다.
“저는 음악적 충격을 경험했어요.”라고 타케우치 마리야는 말한다. “그 노래는 ‘A Hard Day’s Night’였고 초콜릿 TV광고에 사용됐어요. 쿵 하고 부딪히는 듯한 느낌을 아직도 기억해요.”
The Fab Four는 그녀가 알고 있던 전통적인 스탠다드와는 동떨어진 완전히 새로운 음악의 세계로 안내했다. 그녀는 이미 피아노와 기타 연주를 배웠지만 브리티시 록은 그녀에게 여행의 영감을 주었다.
명소와는 동떨어진 일리노이의 소도시 록 폴스에서 지내게 되었다. AFS로 타케우치 마리야는 그 도시의 고등학교에 1년간 다녔다. 미국의 10대들이 교복을 입지 않고 소년들은 어깨까지 머리를 기르고 젊은이가 자가용으로 모든 곳을 다니는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웠는지 그녀는 기억한다.
“그곳에서의 삶은 ‘청춘낙서’와 같았어요”라고 타케우치 마리야는 회상한다. “마치 꿈만 같은 삶이었어요.”
“제 생각에 제가 많은 관중 앞에서 노래하게 된 것은 다른 학생들이 저에게 자신들에게 일본의 오락을 선보여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하지만 ��� 어떠한 전통 무용도 추지 못하고 샤미센이나 다른 악기를 연주할 줄도 몰랐어요. 대신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할 수 있어서 일본의 포크송과 비틀즈의 곡을 연주하게 됐어요. 그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어요.”
그녀는 시마네로 돌아왔고 도쿄의 게이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할 것을 결정했다. 타케우치 마리야는 1974년 봄에 재팬타임즈 주최의 전국 영어 암송 대회에 참가하여 우승했다고 말한다. 최우수상? 하와이 여행은 그녀의 지경을 보다 넓히는 데 도움을 주었다.
초기 앨범
1970년대의 도쿄 음악 모임은 상당히 굳게 단결되었다.
“당신이 누군가 새로운 것을 한다고 들었을 때 그것을 제가 했던 것과 연관시키고 당신은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모으고 함께 연주했을 거에요”라고 작년의 레드불 뮤직 아카데미에서 싱어송라이터 오누키 타에코에게 물었을 때 이렇게 당대를 묘사했다. “돌이켜보면 모든 사람이 연주를 시작했던 것을 기반으로 무언가가 개화했었음에 틀림없어요.”
타케우치 마리야가 도시로 이사왔을 때, 그녀는 이런 환경에서 살았다. 그녀가 대학교에서 가입한 음악 서클은 그녀가 음악 씬의 방향을 찾는데 도움을 줬다.
“전 주변에 돌아다니는 프로 뮤지션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라고 타케우치 마리야는 말한다. “물론 정말로 즐거웠지만 마치 저에겐 생계를 위한 버젓한 직업이 필요하다고 언제나 느꼈어요. 전 단지 음악을 취미로 하길 원했었어요.”
그녀의 음악 서클 멘토 중 한 명인 스기 마사미치는 스스로 메이저 아티스트가 됐고 타케우치 마리야에게 그의 초기 곡 중 하나에서 코러스를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 이것은 음악 업계의 동료들에 둘러싸인 스튜디오 세션을 이끌어냈고, 그녀가 데뷔하는 데 일조했다.
“그 때는 대학교 3학년이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 당시에는 제 경력을 위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라서 음악을 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녀의 첫번째 풀 앨범 “Beginning”(1978)에는 YMO로 막 데뷔한 호소노 하루오미와 타카하시 유키히로에 오누키 타에코, 해피 엔드의 스즈키 시게루와 그 밖의 올스타 캐스트가 작곡, 어레인지, 연주로 크레딧을 올렸다. 타케우치 마리야는 그녀의 성장과 함께 한 미국 팝에 대한 오마주이자 마지막 곡인 “すてきなヒットソング”와 함께 두 곡의 가사를 썼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녀가 기대했던 것처럼 진행되진 않았다.
“제가 음악 업계에 입문했을 때 누구나 기대하는 것처럼 단지 음악을 만들고 싶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러나 저는 엔터테이너나 유명인사로서 취급받았어요. 앨범을 만들고 투어를 하고 곡을 쓰는 것 대신에 TV방송의 진행자나 오락 프로그램 출연을 즉시 요구받았어요.”
드물지만 이러한 출연의 토막 영상-유튜브의 한 영상에는 타케우치 마리야가 쇼를 진행하는 동안 커다란 초록색 전화기로 대화하는 듯한 ���간 어색한 장면을 담고 있다-그러나 일본의 여성은 자주 TV상에서 당시의 매력적인 얼굴보다 떨어진다고 생각되어서 10년간은 적절하다고 여겨졌다.
“전 완전히 지쳤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이것을 그녀의 경력에서 빠진 하이라이트의 첫 번째 부분이라고 말할 수 없다. 타케우치 마리야는 다섯 장의 앨범을 발매했는데 적어도 부분적으로 웨스트 코스트 록 무브먼트와 관련된 연주진과 함께 로스앤젤레스에서 여러 장을 녹음했다.
“데이빗 포스터, 제프 포카로(Toto), 데이빗 헝게이트(Toto), 스티브 루카서(Toto)와 저로 구성된 그 리듬 섹션(1980년의 ‘Miss M’)은 최고 중 하나입니다.”라고 타케우치 마리야와 작업했던 베테랑 뮤지션 제이 그레이든은 말한다. “그녀는 함께 일하기 매우 편했고 훌륭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뛰어난 가수였어요.”
이 앨범은 이후에 퓨전 록에 근접하게 경도되는 다른 사운드의 시절에 녹음되었다. 상업적으로 과도하게 무게를 두지 않으면서 그들은 유연한 훵크 팝인 “September”를 포함하여 타케우치 마리야의 가장 인상적인 곡들을 일부 프로듀스했다.
일본의 몇몇 음악 기자들은 이 시기에 발표된 작품에 빠르게 초점을 맞추었다.
“제가 좋아하는 앨범은 ‘Miss M’입니다.”라고 카나자와 토시카즈는 말한다. “Toto와 Air play의 기여도와 일본 아티스트들의 밸런스가 훌륭합니다.”
70년대 중반에 타케우치 마리야는 미래의 남편인 야마시타 타츠로를 만났다. 그가 재적했던 밴드 Sugar Babe의 음악은 오늘날 칭송받지만 그 당시에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녀는 학생 시절에 시부야의 야마하 스토어의 무료공연에서 처음 그를 만난 것을 떠올렸지만 그녀가 데뷔 앨범을 위해 Sugar Babe에게 몇몇 곡의 합작을 부탁하여 레코딩할 때까지 제대로 그를 만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첫 인상은 별로 좋지 못했어요.”라고 타케우치 마리야는 웃으면서 회상한다. “음악적으로는 정말로 좋아했지만 인간적으로는… 당신이라면 어떻게 말할래요? 그는 무척 정감가진 않았어요.”
이 그룹은 RCA 레이블을 공유하면서 자주 그들 자신을 위해 함께 일하게 되었다. 타케우치 마리야가 TV출연에 대해 자문할 때마다 그녀는 야마시타 타츠로의 조언에 의지했다.
“전 그에게 의지하기 시작했고 더욱 그를 신뢰하게 됐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리고 우리의 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굳건해졌어요.”
이 커플은 1982년에 결혼했고 머지 않아 타케우치 마리야는 임신했다. 그녀의 경력에서 음악과 상관없는 측면에서 출연 요구가 늘어났고 이것은 그녀가 휴식을 갖게 촉발했다.
팝의 부활
2010년대 초반부터 인터넷 덕분에 “시티 팝”이라는 장르가 갑자기 귀환했다. 1980년대 이후 일본의 훵크와 디스코의 스타일로 그것의 미학은 사운드만큼 중요했다-당신이 버블기의 절정에 쇼난 해안을 이런 음악을 들으면서 오픈카로 드라이빙한다고 상상해보라. 당신이 비평가라면 담배 연기로 그을린 신주쿠 카페의 배경음악을 상상해보라.
시티팝 리���이벌은 헤이세이 팝 컬쳐를 위한 향수의 밀물로 선행했지만 진정한 팬들은 유튜브 같은 사이트들이 제공하는 온라인상의 집결지와 그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이런 생태계는 타케우치 마리야의 새로운 팬 베이스를 이끌어내는 혁신적인 환경을 제공했다: 베이퍼웨이브와 퓨쳐훵크로 불리는 돌연변이는 샘플 아이디어로 재패니즈 팝에 기대했다. 이것은 그녀의 트랙인 “夢の続き”와 “Plastic Love”의 커버를 이끌어냈고 그녀는 인터넷 밈의 진정한 언어로 튀어나왔다.
“저는 이러한 움직임의 시초에 대해 정말로 궁금해요.”라고 타케우치 마리야는 말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거죠?”
이 가수는 그녀의 새로운 팬들이 그녀의 음악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고 결과적으로 밈, 인터넷 향수와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대해 열렬히 토론하는 것에 대해 듣는 것을 진심으로 흥미를 가졌다.
“유튜브의 추천 시스템은 각 시청자들이 가장 즐겨보고 흥미로워하는 비디오를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돌려 각 시청자들의 흥미를 맞추려고 합니다.”라고 유튜브의 문화&트렌드 부서의 총괄인 케빈 알로카는 어떻게 알고리즘이 작동하는지 설명하면서 말한다. 유튜브는 개별 비디오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지만 최근의 “Plastic Love”의 성공이 비디오 공유 사이트의 알고리즘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알로카는 믿지 못했다.
“실제로 음악 팬들은 그 노래에 노출되어 듣고 그것을 좋아하게 되고 유튜브의 추천 시스템은 단지 이러한 긍정적인 신호에 포함될 뿐입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8분 짜리 버전의 “Plastic Love”는 1980년대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이러한 시청을 이끌어냈다. 이 곡의 앨범 버전은 겨우 5분 정도 이어지는 반면 1985년 “extended club mix”는 일시적으로 지금까지 결코 없었던 10분 대로 진행한다. 오리지널 루프의 일부 부분과 함께 Plastic Lover는 그 틈에 빠졌다.
여기서부터 모든 것이 흐릿하게 시작되었고 Plastic Lover 버전의 소스는 명확하지 않다. 2017년 10월에 재발견되기 전에 이것은 영국의 레이블 Midnight Riot에서 발매된 “Japanese Boogie & Disco Reworks: Volume 2”라는 제목의 컴필레이션 앨범에서 Miki J의 “Playing Games”로서 약간은 다른 형태로 유튜브에 처음 등장했다.
Plastic Lover와 Midnight Rist 모두 인터뷰 요구에 응하지 않아서 원래 출처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버블기의 향수를 찾는 사람들에 의해 “Plastic Love”가 포용되는 동안 타케우치 마리야는 당시와의 거리감에 대해 그녀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말했다.
“저는 당시 아이를 임신했기 때문에 버블기에 남들이 하는 것처럼 제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저는 당시 곡을 썼었는데 그게 저에게는 재밌었어요.”
“저는 록, 포크, 컨트리를 쓰고 싶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또한 뭔가 댄서블하고 시티팝 사운드 같은 것을 쓰고 싶었어요. 저는 16비트에 도시의 삶을 포착한 무언가를 쓰고 싶었어요.”
타케우치 마리야는 보통 곡을 먼저 쓰고 다음에 멜로디에 적절한 가사를 덧붙인다.
“Plastic Love”는 화려한 멜로디 뒤에 숨겨진 달콤하고 씁쓸한 가사를 숨기고 있다.
“(이 가사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자를 잃은 여성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어요.”라고 타케우치 마리야는 말한다. “그리고 아무리 많은 남자들이 그녀를 원해도 그녀의 고독감은 흔들리지 않고 그것이 상실감을 만들어냈죠.”
오리지널 레코딩은 오누키 타에코가 훅을 부르고 야마시타 타츠로가 인상적인 기타 멜로디를 제공하는 타케우치 마리야의 밴드로 착수했다.
“저는 주의를 끄는 큰 부분으로 어레인지에서 힘을 느끼고 그것은 최근까지도 이어졌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Plastic Love”는 원래 1984년의 컴백 앨범 “Variety”에 포함되었다. 그녀의 이전 다섯 장의 풀 앨범이 타케우치 마리야가 노래를 부르고 다른 사람에 의해 쓰여진 곡들로 대부분 착수된 것에 반해 이 앨범은 노래와 가사 모두 그녀의 것이다. 타이틀대로 그녀는 바 카운터 컨트리인 “One Night Stand”와 “Broken Heart”같은 라운지 재즈부터 “水とあなたと太陽と”같은 보사노바에 심지어 “マージービートで唄わせて”같은 브리티쉬 팝에 대한 송가까지 타케우치 마리야는 다양한 토양을 커버했다. 이 앨범은 또한 몇몇 깜짝 게스트가 참가했다.
“’Variety’를 우리가 레코딩하던 곳의 옆 방에서 당시 야노 아키코의 작품에 사카모토 류이치가 참가했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우리는 그에게 ‘Let’s Get Married’에서 신디사이저 연주에 참가할 수 있다면 오르간으로 ㅊ마가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것은 정말로 쉽게 이루어졌어요. 그것은 궁극적으로 야마시타 타츠로가 야노 아키코의 노래 중 한 곡에 코러스로 교차로 참가하면서 마무리됐어요.”
“Variety”는 그녀의 이전 작품들보다 많이 팔렸고 국내 차트에서 1위로 데뷔했다. 그녀의 능력은 그녀가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재능을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그녀의 경력을 되돌아보면서 타케우치 마리야는 “Variety”가 여전히 큰 의미를 지니는 앨범이라고 말한다. “제 경력에서 그 앨범은 저를 독립시켜 주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물론 저는 그 당시에 다섯 장의 앨범을 발매했고 모두 저에게 중요해요. 그러나 ‘Variety’가 없었다면 제가 오늘날 가진 것을 성취할 수 없었을 거에요.”
솔리드 골드
타케우치 마리야의 경력은 ‘Variety’발매 이후 10년간 성장했다. 그녀의 앨범과 싱글은 계속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今夜はHEARTY PARTY”와 “カムフラージュ”와 같은 90년대 트랙들은 궁극적으로 그녀의 카탈로그에서 초석이 되었다. 그녀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위해 곡을 썼는데 이 과정을 송라이팅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어서라고 그녀는 말한다. 마치 그것이 그녀가 다른 아티스트의 자세를 생각하게 만든다고.
1986년에 타케우치 마리야는 나카모리 아키나에게 옛 연인과의 조우에 대한 멜랑꼴리한 발라드 “駅”를 썼다. 타케우치 마리야는 그녀가 결코 자신을 위해서 그런 테마의 곡을 결코 쓰지 못했을 거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타케우치 마리야 자신의 “駅”는 야마시타 타츠로의 마법으로 더욱 생생한 마음을 담아 바로 알아들을 수 있고 이것은 매우 냉정한 일본의 노래를 골든 팝으로 변화시켰다.
“그녀는 즉각적이고 금방 알 수 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그녀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기교에 의존하지 않는 진짜 가수입니다.”라고 메가데스의 전 기타리스트이자 “駅”를 커버한 초 J-pop팬인 마티 프리드먼은 말한다. “심지어 그녀의 초기 시절의 목소리는 매우 독특한 성숙미를 지녀 감상을 즐겁게 합니다. 이는 거의 치유의 수준입니다.”
음악 업계에 입문한 지 40년이 지나서도 타케우치 마리야는 창작을 계속하고 있다.
“제가 만들고 싶고 제가 녹음하고 싶은 음악이 아직도 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전 흥미로운 단어를 찾는 습관이 있고 그것을 발견하면 제 가사에 사용할 수 있는지 시도해봐요.”
그녀의 최근 앨범 “Trad”는 2014년에 출시되어 오리콘 앨범 차트에서 첫 주째에 1위를 차지했다.
최근에는 몇 년에 한번씩 새 음원을 출시하는 데 우선적으로는 타케우치 마리야와 야마시타 타츠로가 그들의 스케쥴 내에서 시간을 내기 위해서이다.
“매 순간 뭔가를 내기 위해 제 자신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 저는 좋아요.”라고 타케우치 마리야는 말한다. “동시에 그가 자신의 앨범을 작업하고 자신의 투어를 돌아요. 물론 “Trad”를 작업하기 위해 시간을 내는 게 어려웠지만 반대로 그런 사실이 우리가 호흡을 유지하며 작업을 할 수 있고 5년 또는 6년마다 뭔가를 출시하는 것이 제가 아티스트를 계속 할 수 있는 주된 이유 중 하나인지도 몰라요.-전 제가 완전연소했다고 느끼지 않아요. 아마도 저는 사람들이 제 음악을 듣는 것을 멈추는 것에 대해 생각해야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계속 기다려주고 들어주고 있어요. 그런것이 저는 정말로 감사해요.”
출처: 재팬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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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 Xavier Dolan 침묵을 지키라는 신중한 충고에도 불구하고, 내 영화 ‘마미'가 오스카 외국어작품상 후보에 오르지 않은데 대한 나의 하찮은 반응을 두고 벌어진 이 서커스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가 어떤 현상에 대해 말한 코멘트를 그대로 믿는 건 꽤 순진한 짓입니다. 그런 말들은 매체가 원하는 방식에 맞춰서 변형, 왜곡되는 게 일반적입니다. 미디어가 말하는 방식, 인용하는 태도, 다른 사람의 말을 판매하고 상업화하기 위한 방식 말입니다. 정보는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우리가 상업적인 거래를 통해 구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관습에 뿌리 깊이 박힌 이 방식에 저항한다는 것, 근원적인 구조를 공격한다는 건 아마 바보 같은 짓일 겁니다. 그러나 아무 말 없이 당하는 약자가 되기보다는 이에 맞서는 바보가 되어보려고 합니다. ‘침묵'은 프랜시스 베이컨이 말 했듯이 '바보들의 미덕'입니다. 다만 저는 미디어에 속한 직업군 전체를 비난할 만큼 바보는 아닙니다. 전, 매체 종사자라는 직업이 아니라 그들의 '스타일'에 대해 비판하고 싶습니다. 저 하나 잘 살아보겠다고 이런 말을 꺼내는 게 아니라 '유명인'이라는 지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오보의 함정에 노출되는 사람 모두를 대신해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글을 단숨에 써 내려간다면 더 매력적이겠지만 이렇게 길게 써야만 하는 이유도 바로 그 함정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 글도 공개되고 나면 몇몇 특정한 저널리스트들이 자신만의 단어와 방식을 사용해 자기 마음에 드는 방향으로 바꿀지 모르니까요. 어떻든 간에 이슈는 '지성적 게으름의 정도'에 관한 것입니다. 다만, 누군가 조금 더 지성을 발휘해서 이 글을 마지막까지 읽어낼지 한번 기대해보죠. 일주일 전에 제가 보였던 평범한 반응이 블로그에서 블로그로, 사이트에서 사이트로, 멍청함과 자극적인 문구를 사랑하는 매체들을 통해 전파됐다는 것은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열하게 여길 것입니다. 자극적인 헤드라인에 대한 사랑이 새로운 현상은 아닙니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와서는 더 심각한 매체에서 일했거나, 더 고상한 기사를 썼던 저널리스트들이 뉴스가 아닌 일에 독점욕을 갖고 달려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칼럼니스트들이 진짜 뉴스의 깊은 물 속을 탐험하기를 기대하기에 그들이 말하는 '인기 있는 이야기'들을 믿고 신임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마치 일주일에 한 번씩만 '생각'이라는 거대한 임무를 수행하는 블로거들처럼, 어쩌면 하찮은 돌덩어리일 지도 모르는 것도 열심히 찾기만 하면 신분 상승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금광 탐험가들처럼, 이미 꺼져버렸지만, 열심히 풀무질하면 다시 따뜻해지는 석탄처럼 행동합니다. 그들은 기사 거리가 없는 메마른 사막에서 탐욕스럽게 벌컥벌컥 들이킬 수 있는 환상의 오아시스를 발명한 여행자들 같습니다. 그들이 불과 일 분 동안 뚱뚱하고 굳은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불안에 떠는 독자들은 물 건너편에서 그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곤 딩동댕! 구원이 찾아옵니다. 상품은 배송됐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드디어 우리 스스로 배송하는 방법(편집자: SNS를 의미한다)을 찾았습니다. 남은 일은 '보내기’ 단추를 누르는 것뿐입니다. 기사를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23단어짜리 제목(편집자 : 검색에 최적화된 긴 제목을 비꼰 내용)에 모든 내용이 다 들어있으니까요. SNS에는 실패할 염려가 없는 특정한 계략이 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만약 어떤 예술가가 “참여할 기회를 못 얻었다는 것은 배척당했다는 뜻이다"라고 얘기한다면 이 말은 널리 퍼져나가지 못합니다. '배척당한 느낌이 든다'고 쓰면 좀 더 희생자인 것처럼 받아들여질 것입니다(그리고 널리 퍼져나갈 것입니다). “조금 모욕적이다"라고 쓰는 것도 효과가 없을 겁니다.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입니다. 그러니 "모욕당했다"라고 써야 합니다. 트위터에 쓸 수 있는 글자 수도 고려해야 하니까요. 제가 감히 SNS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정의하려고 노력하며 이런 저널리즘이 나약하다고 주장하자, 그런 저널리스트 중 하나가 빠른 답변을 올렸습니다. "자비에 돌란이 자신의 말이 이상하게 해석되는 데 왜 이렇게 당황하는지 혹시나 이해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그와 같은 '초 천재'가 자기 영화 '마미'가 개봉하자마자 수많은 페이지를 할애하며 다뤄준 저널리스트들에게 '나약하다'고 깎아내리는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마치 영화에 대해 비평을 했던 사람과 저에 대해 인간적인 비난을 한 사람이 같은 저널리스트인 것처럼 혼동하게 하는, 어리석음의 바닥을 찍는 말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싫어하기를 좋아하는 독자들'을 자극하려는 의도라면 아주 효과적인 말이겠죠. 제 견해로는, 이런 타입의 저널리스트들은 체면이 없습니다. 그들은 작품에 대해 비평할 지식도 없고 뉴스를 전할 자격도 없습니다. 저의 반응은 뉴스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팩트였을 뿐입니다. 그들은 팩트에 화장을 하고 살을 찌워서 대충 준비를 시킨 다음 진정한 뉴스에는 단 일 초도 할애하지 않는 대중에게 송고합니다.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온 거짓 루머를 막을 수가 없어서 고통받는 윌리엄 와일러 영화 '아이의 시간'의 주인공 오드리 헵번과 셜리 매클레인처럼, 갑자기 수백 명의 사람이 우리를 향해 “그만 불평해!”, “그 추한 입을 닥쳐!"라고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오직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위해 우리의 인생을 파헤치고 곡해하는 걸로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이런 왜곡된 이미지는 당신의 삶을 따라다닙니다. 당신이 뭘 하든지, 당신과 함께할 겁니다. 우리가 조심스레 말을 골라서 할 때면, 너무 아름답게 말하면 '현학적'이라고 깝니다. 정직하게 말하면 '잔인하다'고 표현합니다. 마음으로 만드는 영화일지라도 머리를 조금 써서 만들면 허세가 끼어있다고 공격합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영화감독들)가 '잘난 척'하고, 뭔가, 혹은 누군가를 항상 '공격한다'고 말하는 교활한 여우들이 있습니다. 지금 야유 속에서 통탄하고 있는 한 감독(편집자: 자비에 돌란 자신을 의미함)은 '앙팡 테리블'로 인정받았어야 했기에 솔직하게 실망했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결국엔 그도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이런 상황은 생소한 게 아닙니다. 제게는 아마도 모든 사람이 달려들어 욕을 하며 즐기기에 딱 좋은 소재를 제공하는 재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게 이런 경향이 있다는 걸 발견한 건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칸 페스티벌의 기자 간담회가 있던 이른 아침 여섯 명의 퀘벡시에서 온 저널리스트들이 '로렌스 애니웨이'의 배급사 사무실에 '주목할 만한 시선'에 뽑힌 데 대한 심정 같은 코멘트를 따러 모여 있었습니다. 그전 몇 달간 경쟁부문에 진출할 게 확실하다는 몇몇 주요 매체의 비평을 읽어온 터라 21살 어린 나이의 저는 꽤 기대하고 있었죠. 그러나 경쟁부문 대신 그 아래 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뽑혔고, 저는 퀘벡시에서 온 저널리스트들에게 실망하긴 했지만 '주목할 만한 시선'에 뽑혀서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대화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계속됐지요. 다음날 저널리스트들은 대화를 이런 제목으로 대서특필했더군요. "자비에 돌란은 칸에 간다. 하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다”. 검정과 흰색으로 쓰인 기사였지만 제 가슴에는 붉은 글자로 새겨졌습니다. 그리고 칸에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이 나의 분노, 나의 화병, 나의 수치심에 관해 물어보더군요. 전 그 단순한 발언 때문에 생겨난 가상의 스캔들을 부정하느라 끔찍한 일주일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아직도 그때 일에 대해 말하고 씁니다만 그날 아침 저널리스트들에게 제가 진짜로 무슨 말을 했는지 누가 알까요? 아무도 모를 겁니다. 지난주에 일어난 일도 정확하게 똑같은 일이었습니다. 두 퀘벡 지역 신문에선 제가 “행복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고 썼습니다. 다른 곳에서도 말도 안 되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죠. 전부 오보입니다. 전 단 한 번도 그렇게 말한 적 없고 그런 기분을 느낀 적도, 그런 어조나 태도를 보인 적도 없습니다.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같은 반응이 반복되고, 같은 짜증이 일어나고, 같은 불이해가 생겨납니다. 이런 허위적인 사실을 지나치게 열심히 퍼뜨린 저널리스트들은 좀 더 깊게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해 질문을 던질 능력도 없는 걸까요? 그들이 지향하는 커리어는 대체 뭘까요? 그들은 실망스러운 상황에 맞닥뜨린 경험도 없는 걸까요? 그들은 실패의 경험이 없거나, 굴곡 없는 인생과 찬란한 성공만을 맛본 걸까요? 그들은 절대 걸려오지 않을 전화를 기다리며 잠들지 못한 밤을 뒤로 또 잠들지 못했던 실망과 상실의 경험이 없는 걸까요? 그들은 잘못 인용될까 봐 무서워서 말 한마디 하는 데도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 처지를 이해나 할까요? 그들의 야심은 왜 우리를 이토록이나 괴롭힐까요? 난 이 블로그 글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도 궁금합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칼을 꽂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몇몇 가십지 기자나 칼럼니스트들과의 친분보다는 상냥함과 진실함이 더 중요합니다. 전 제 영화를 통해 사랑받으려는 것이지 저 자신이 사랑받기 위해서 감독 일을 하는 게 아닙니다. 이런 오보에도 불구하고 제가 침묵을 지킨다면, 그건 바보 같은 선동과 센세이셔널리즘에 훼손당한 (제가 여전히 존경을 품고 있는) 저널리스트 직군 전체에 대한 모욕이 될 겁니다. 그리고 아마도 블로그 글 전체의 내용 중 위 두 문장이 가장 많이 보도될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이 글의 진정한 의미와 가장 먼 내용이 가장 악의적으로 보도될 것입니다. 그러나 전문이 인용 가능할 뿐만 아니라 조금도 변형��거나 편집되지 않은 이 블로그 글에 대한 가장 뛰어난 대답은, 아마도 완벽한 침묵일 것입니다. 기묘하게도 말이지요.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 FR에 실린 'Le silence'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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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영화 개봉작』더스토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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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영화 개봉작』더스토닝
실화를 바탕으로 한영화 <더스토닝>이 6월 14일 개봉한다.
이영화는 이란계 프랑스 저널리스트 ‘프리든 사헤브���’이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흥미와 도덕적 분노를 동시에 유발시키는 이 책은 ‘소라야’라는 여성에게 처음으로 국제적인 관심을 가져오게 했다.
자칫 역사의 순간으로 묻힐 뻔한 ‘소라야’의 슬픈 이야기는 ‘사헤브잠’에 의해서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다.
1986년 마을 광장에서 마을 사람들은 그녀가 도망가거나 피할 수 없게 허리까지는 땅에 묻어 놓은 상태에서
그녀의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돌을 던져 죽인다.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는 나라에서, 단 하나의 용감한 목소리로 인해 진실은 밝혀지고 이것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
이것이 바로 영화 <더 스토닝>의 중심 이야기이다.
믿기 힘든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에서는 군중 심리와 악습의 규범이 야기한 무고한 여성의 처형을 다룬다.
누가 그녀를 죽음으로 이끈 음모에 대항하고 군중의 힘에 굴복할 것이며 누가 감히 옳은 일을 하기 위해 나설 것인가!
이 영화는 선악에 관련된 전형적 이야기면서 동시에 전 세계의 정의를 위해 싸우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감사를 전하고 있다.
<더 스토닝>은 2008년 ‘토론토 영화제’에 초청되어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이어 관객선호 2위를 차지했다.
영화에서는 아카데미 수상후보에 오른 여배우 ‘쇼레 아그다쉬르’가 치명적 음모에 대해 입을 연
단 한 명의 목격자 ‘자흐라’ 라는 주인공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자흐라’는 마을 사람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감추려 하는 추악한 음모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이다.
이 놀라운 영화 속 이야기는 ‘소라야’라는 여성에게 일어난 실제 일이다.
착하고 활발한 여성이었던 ‘소라야’는 불행한 결혼 생활과 잔인한 남편으로 인해
상상하기도 힘든 형벌인 ‘투석형’(돌을 던져 죽이는 형벌)을 받게 된다.
거짓말로 시작된 음모를 밝히기 위해 ‘소라야’와 ‘자흐라’는 끊임없이 무죄 입증을 시도하지만
부당하게 짜여진 법체제는 그녀들의 발목을 잡는다.
무죄 입증을 위한 모든 노력들이 실패로 돌아가자 ‘자흐라’는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에게 남은 단 하나의 무기, 용감하고도 열정적인 목소리로 ‘소라야’의 충격적이고 슬픈 이야기를 전 세계에 전한다.
남편이 아내를 고발하면 아내는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야 한다.
반면, 아내가 남편을 고발하면 아내는 남편의 죄를 증명해야 한다.
이것이 이란의 법이라고 한다….
무슨 이런 법이 있을까…..
지난 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도가니>영화를 보면 우리가 사회적 약자에게
얼마나 무관심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관심은 또 얼마나 사회를 변화시켰는지도 볼수있다.
‘도가니 법’이라는 성폭력범죄 특례법을 개정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부러진 화살>또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사법부에 대한 테러’라고
본질이 왜곡되어 가는 재판과정을 그린영화로 사회적 부조리를 실감나게
담아내어 국민적 공감을 얻어냈다.
이 영화가 미친 사회적 파장은 ‘국민참여재판’이라는 화두를 떠오르게 했다.
이 두편의 영화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사이 일어났던, 또 일어나고 있는 사회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2012년 여름을 여는 베스트셀러 원작의 문제적 실화, 영화 <더 스토닝>은 세상의 모든 약자들의 알려지지 않은 고통을 대변한다.
영화는 잔혹한 연극으로 마을 사람 모두의 표적이 된 ‘소라야’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용감하게 진실을 외치는 여인 ‘자흐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올리버 스톤의 파트너 스타 작가이자 연출자 ‘사이러스 노라스테’ 감독은
“어떻게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야만 하는 이야기이다.”라며 사명감을 가지고 작품에 임했다.
영화는 토론토국제 영화제에서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경쟁하며 관객 차점상을 거머쥐었고,
플랑드르 국제 영화제에서도 관객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2011 국내 영화제 ‘피움’에도 초청되었던 영화는 “가슴을 움켜 쥐는 듯한 저릿한 여운”,
“지금도 여전히 아무도 모르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흐느끼는 객석과 함께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라며
먼저 본 국내 관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화제작으로 꼽혔다.
이 여름, 또하나의 진실이 세상에 알려진다…
이영화는 특히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가슴이 먹먹해 지고….안타깝고….참혹하고…….
이세상에 더이상 약자이기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누군가는 용기내어 진실을 알릴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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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정말 오랜만의 지면 인터뷰(vogue korea , 보그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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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정말 오랜만의 지면 인터뷰(vogue korea , 보그 12월호)
12월-보그
신데렐라 맨
4집 <Rain’s World>로 여의도 방송가와 세계 콘서트 무대에서 폭풍을 일으킨 가수 비, 그리고 박찬욱 감독의 작품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로
영화계에 후폭풍을 일으킬 배우 정지훈. 그를 인터뷰하면서 나는 ‘신데렐라 맨’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스튜디오 스케치]
거대한 날개와 덩굴나무, 그리고 요정 같은 발레리나들에 대한 장황하게 떠드는 나를 앞에 두고 사진작가 조세현은 ‘월드스타 비는 그 존재감만으로 충분하다’고 조언했다. 그 말은 반쯤 맞고 반쯤은 틀렸다.
촬영 당일, 드디어 ‘비님’이 오였다. 여기서 ‘비님’이란 저널리스트 특유의
시선이 만들어낸 시니컬한 어휘가 아니다. 비는 스튜디오를 가득 메운 촬영 스태프들, 그리고 족히 10명은 될 듯
보이는 패밀리 스태프들…말하자면 구름의 호위를 받는 기후신처럼 인의 장막 속에 등장했다.
그건 거대한 행렬처럼 보였고, 분장실 주위엔 보이지 않는 가이드라인이 쳐졌다.
맙소사, 한번도 이런 분위기에서 촬영을 진행해본 적이 없어 몹시 당황했다. 그래서 ‘세계톱 매거진’의 피처 디렉터인 나는 전열을 가다듬고
‘월드스타’의 분장실로 걸어 들어갔다.
“비 씨? 아니 지훈 씨? 어떻게 불러야 하죠? 어쨌든 만나서 반가워요.”
폭격 맞은 잔디 같은 머리카락을 쑥스러운 듯 만지면서 비가 일어섰다.
“안녕하세요? 호칭은 뭐든 상관없어요. 그리고 미안합니다. 제 머리카락이 손보기 전이라 엉망이에요.”
우리는 잠시 서서 웃으며 비의 컴백 무대에 대한 소회를 나누었다. 아시다시피 입꼬리가 올라가는 비의 천진한 웃음은 모든 여자들을 연상의 누이처럼 만든다.
나는 그에게 ‘영원히 따뜻한 별이 되길’ 이라고 적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전기를 선물했고,
비는 내게 ‘많이 들어주세요’라고 쓴 4집 CD를 선물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 대한 경계심을 풀었다.
빡빡한 시간 속에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유니버설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강예나와 단원 김애리,배소희, 이상은, 김유선이
눈처럼 흰 발레복을 입고 몸을 풀고 있는 사이, 비가 랄프로렌의 클래식한 슈트를 입고 들어왔다.
비는 발레리나들과 인사를 나누고 다시 고요하고 집중력 있는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한 치의 소음도 잡음도 없는 빠르고 효율적인 움직임.
발레리나들이 비를 둘러싸고 구애하는 듯한 포즈를 취할 때도,
비는 신사적이고 절도 있고 약간 나르시즘적이면서도 모범적인 제스처를 연출했다.
내가 의도했던 땀과 활력이 출렁대는 다소 장난기 있는 방탕한 무드는 아니었지만,
비와 발레리나는 서로의 역활을 중심으로 예의 바르고 균형감 있는 그림을 만들어냈다.
(특별한 리허설이나 주문 없이도 서로 합을 딱딱 맞추는 즉흥 안무 같다고나 할까.)
나는 비와 발레리나와 랄프 로렌이 만들어내는 이 정중하고 안정감있고
극도로 수줍은 촬영의 키워드를 발견해내려고 애썼다. 미스터리는 풀렸다.
퍼펙트 프로포션! 프레시 프렌십! 그리고 프로페셔널 프로퍼겐다! 지금 비는 클리식 문화를 사랑하는 젊고 젠틀한 후원자로 분한 것이다.
비가 촬영을 하는 동안 JYP 엔터테이먼트 소속 다섯 명의 매니저들은
아래층 테이블에서 스케줄 보드를 놓고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하는 회의를 하고 있었다. 줄담배 연기 사이로 그들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올라왔다.
“내가 지훈이 나이인 스물네살땐 마음�� 내키는 대로 즐기며 살았지.”
“지훈이는 지금 이 엄청난 스케줄 속에서 죽을 맛일 거야.”
이날 비는 <보그>와의 촬영을 끝내자마자, 곧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가
입양을 기다리며 보모의 팔에서 잠 든 미혼모의 아기를 품에 안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작가 조세현의 연말 자선 프로젝트에 동참하기 위해.
그 다음에도 몇 개의 방송 프로그램 스케줄이 그를 재촉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뮤직뱅크><음악중심><인기가요> 몇개의 오락 토크쇼와
라디오 게스트…스케줄, 스케줄, 꿑이 없이 이어지는 스케줄…! 돌아오면서 나는 그의 단말마 같은 음성들을 떠올려 보았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같은 거죠?” “아기는 어디 있나요?” 등등.
[인터뷰]
인터뷰를 위해 비를 다시 만난 건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어느 일요일 저녁 6시,
청담동 JYP 엔터테인먼트 회의실에서 였다. 밖에는 일단 소녀팬들이 비를 행한 온갖 구애의 낙서로 빼곡한 건물의 주창장과 제과점 앞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비는 초기에 박진영에게 안무 연습과 함꼐 매일 신문 사설을 읽고 의견을 말하는 교육을 받았다지.
엔터테이너는 사회를 읽는 눈이 있어야 한다고.
철판에 ‘JYP Style’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1.모든 일에는 책임자가 있다.
2.모든 일엔 Deadline이 있다.
3.모든 일엔 가능한 방법이 있다. 4.모든 일은 시스템 속에서 한다.
다섯명의 매니저 중 한명과 월드 투어 콘서트와 영화 홍보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비가 들어왔다. 밀리터리 캡을 아무렇게나 눌러쓰고 체크무늬 후드코트, 블랙 스노 진을 입은 비는 심하게 호흡을
헐떡거렸다. 학동 사거리 근처에서 콘서트 회의를 하다가 달려온 것이다.
술 마시고 뛰어다니는 것 외엔 아무런 스케줄이 없었던 나의 수다스러운 스물 네 살에 비해,
그의 삶이 너무 규모가 크고, 즐거움을 주기 위한 공적 책임으로 가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측은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그가 호흡을 고르며 말했다.
“그때요, 왜 며칠 전 촬영 때…발레리나 분들과 처음 해보는 거지만, 저 좋았어요.
발레를 좋아하고 발레리나를 존경하거든요.
노래, 연기, 춤, 발레 모두 뼈를 깎는 고통 같은게 있잖아요.
그게 그냥 직업이라기 보다는 천직, 같은 예술가이기 때문에 말은 안 해도
존경심이 생겨요. 저 그분들 공연, 기회가 되면 꼭 보러 가고 싶어요.”
그 순간 나는 스물 네 살 청년의 연한 속살을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기보호적인 딱딱한 갑각류 성에서 나온 향기롭고 연한 청춘의 냄새.
사실 사진 촬영 이후 비와 인터뷰 스케줄을 잡는 것이 힘든 외교 협상과
맞먹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배우들과 달리 방송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그는
TV토크쇼를 제외한 어떤 단독지면 인터뷰도 거부해왔다.) 나는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신문 기사들은 단발적으로 그의 행보을 보고했다. 비가 암투병 중인 한 주부의 병원을 깜짝 방문해 위로했고,
4집 <레인스 월드>가 발매 첫날 10만장을 기록해 대박을 예고했다는 등등.
나는 그에게 스믈 네살에 이런 거대한 스케일의 삶을 살아내는 게 버겁지 않은지 물었다.
“그렇지 않아요. 스케일이 크지 않아요.
사람들은 거대한 물량이 투입된 무대에서 춤추는 저를 봐요. 하지만 보세요. 실제로 전 아주 작아요.
무대에선 카리스마 넘치게 행동하지만 전 제가 끝도 없이 부족하다고 느끼죠.”
“하지만 아시아 전역을 돌고 미국에서 활동을 시작하려 하잖아요?”
“제 진짜 활동 범위는 이 건물의 지하와 지상이 전부예요. 제가 24시간을 보내는 세상은 녹음실, 스튜디오, 연습실이 전부인 걸요.”
창밖에 소녀 팬들이 무리를 지어 유폐된 성에서 땀을 흘리는 그를 지키고 있다.
“하나하나의 일을 할 때마다 에너지의 집중력이 너무 커요.
그 고통과 스트레스는 말로 다 못해요. 오늘만 해도 그래요. 콘서트 회의, 춤 연습, 영화 홍보, 인터뷰…
그런데 어차피 할 거면 제 욕심에 최선을 다해야 해요.
저는 아이돌 가수로 시작해서 연기자가 됐고,
다시 가수로 배우로 해외 진출까지 하려고 해요.
저는 ‘아이돌’에 화려하게 머물다가
시간이 지나면 대체되고 사라지는 게 싫었어요.”
그는 파워풀한 댄스를 소화하는 이웃집 소년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아이돌 스타 비가 왜 배우 정지훈이라는 또 하나의 삶의 배역을 선택했는지에 질문의 초점을 맞추며 말했다.
“연기를 시작할 때 제 결심은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자, 였어요.
<상두야 학교가자>로 드라마를 할 때 가수가 연기한다는데 편견이 많았어요.
연기하면 망한다고 다들 말렸어요.단 한 명도 내 편이 없었어요.
진영이 형 조차도요. 그런데 전 연기에 욕심이 났고 그런 저를 믿었어요.”
비의 말은 폭풍처럼 이어졌다. 마치 자신의 4년 인생을 정리하겠다는 듯 숨도 쉬지 않고 처음 말을 배운 아이처럼 말을 쏟았다.
“<상두…>에서 다른 사람이 되서 즐거움을 맛봤어요.
그 드라마가 일본에서 히트 치면서 한류의 발판이 됐어요.
과도기를 겪었고 앨범을 냈고, 다시 <풀하우스>를 촬영했어요. 그 다음은 일본, 중국, 태국 대만,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까지 나갔어요. 3집<It’s raining>을 시작하고 박찬욱 감독님 영화를 찍고
4집 <Rain’s World>를 내고 이젠…제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아시겠어요?”
지난 부산국제영화제 ‘스타 시스템’에 관한 포럼에서 JYP엔터테이먼트의
정욱 이사는 “훌륭한 엔터테어너 한명은 산업 전체가
해외 비지니스를 할 수 있는 표준을 만들어낸다.”고 비를 프레젠테이션 했다.
비는 이제 특정 타깃에 의해 소비되는 대체품이아니라 스스로 문화를 생산하고 현상을 만들어가는 ‘오리지널 인더스트리’가 된 것이다.
“1년만에 큰 변화가 있었어요.
아시아인 중에 남자 가수나 배우가 톱이 될 수 있는 시기가 온 거죠. ‘타임100인’에 선정된 것도 세계 시장에서
아시아 스타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걸 인정하는 거하고 생각해요.
할리우드가 이연걸,재키 찬과는 다른 아시아 스타를 찾고 있다고 느꼈어요.”
잠시 숨을 고르고는 그가 말했다.
“<캐리비안의 해적3>의 주인공도 주윤발이 캐스팅 됐어요.” “제리 브룩 하이머를 만났어요?”(이 분 csi 제작자이자 캐러비안해적 제작자) “네, 제리 브룩 하이머를 만났어요.
올랜도 블룸, 조니 뎁 대신 아시아 스타를 등장시키고 싶다고 했어요.”
물론 영화계의 캐스팅은 언제나 변수가 많다. 하지만 부산영화제 필름 마켓에서 할리우드에서 비에게 관심을 보였다는 뉴스만 전해들은 나는 아직 영화 데뷔작도 공개되지 않은 비가
전설적인 할리우드의 프로듀서를 만나 캐스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는게 놀라웠다.
“<타임100인> 행사에서 만났어요.
내년엔 배우로서든 가수로서든 선택해서 둘 중의 하나에 더 집중해야 될지도 모르겠어요.
전 언제나 준비되어야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월드투어를 시작하면서 영어 공부도 정말 열심히 했어요.
내년엔 모든 일이 폭풍처럼 휘몰아칠 것 같아요.”
비는 4년만에 이뤄낸 이 기적 같은 일이 어머니가 가져다 준 행운이라고 말했다.
“노력도 정말 많이 했어요. 하지만 시대적인 타이밍의 힘도 정말 무서워요. 아시아 전역이 Rain이라는 이름을 알린게 <풀하우스>였어요.
그런데 배우들은 보통 “안녕하세요?”만 하지만, 전 노래를 하잖아요.
그렇도 발라드가 아니라 강한 비주얼이 함께 들어가니까 폭발력이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는 지금 박찬욱 감독의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복수 3부작 시리즈 이후 박찬욱 레이블의 새로운 작품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신세계 정신병원 최고의 커플, 자신을 사이보그라고 생각하는
소녀와 죄책감과 동정심이 없는 안티 소셜로 판정된 소년의 ‘사이코델릭한’ 사랑이야기.
나는 ���번 경천동지할 캐릭터와 스타일로 배우를 재창조하는
박찬욱이 이번엔 어떤 장난끼 어린 마법을 선보였을지 궁금했다.
“나 너 미워서 이러는 거 아니다”라고 중얼거리던 송강호, ‘누구냐, 너?”라고 칼을 갈던 최민식, “너나 잘하세요.”하고 조롱하던 이영애.
그리고 이젠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라는 정지훈의 광적이면서도 팬시한 내레이션.
“<사이보그…>는 유럽에서 많이 기대하고 있대요.
음, 제 느낌엔 야구방망이로 뒷통수 맞는 그런 충격이 있을 거예요.
누구나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스타일리시하고 웃기고 호러블하고…사람을 들었다 놨다… 사실 감독님 만나기 전에 초대박 영화 시나리오 3개가 들어왔어요.”
박찬욱 감독과의 만남과 그로부터 받은 영감에 대해 비는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이야기 했다.
우연한 술자리에서 박찬욱이 물었다.
“넌 뭐 좋아하냐?”
“액션 좋아합니다.” “액션만 하냐?”
“네?”
“난 멜로 할 건데 관심있냐?” 그렇게 둘은 의기투합했다.
“박찬욱 감독님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하지를 잘 모르세요.
많은 배우들이 박 감독님이 불러주길 기다리고 있다는 걸 모르시죠.
전 박 감독님의 오래된 팬입니다.
<달은 해가 꾸는 꿈>은 초등학교 때 봤죠. <삼인조>는 중학교 때 봤구요. <…JSA>와 복수 3부작 시리즈…그분은 제가 생각해온 많은 것을 바꿔놓았어요.
예를 들어 ‘그 배우 연기 잘하지 않아요?’라고 물으면 감독님은 이러세요. ‘별로인데. 그게 연기냐? 꾸미는 거지.’
사질 전 <이 죽일 놈의 사랑>을 하면서 진실한 연기에 푹 빠져 있었어요.
사람들이 오버한다고 수군대도, 정말 다른 사람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짐승처럼 울기도 했구요. 이경희 선생님 대본에서도 그런 진짜 감정을 배웠거든요.”
그러나 박찬욱은 그에게 진실된 연기도 하지 말고 꾸민 듯 꾸미지 말라고 했고, 정신병원엔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했다.
“어떤 모습이 나올지 저도 궁금해요.”
나는 그에게 스타가 된 후 무엇이 달라졌는지 물었다.
“배불러졌죠. 굶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사람이 많아졌고, 하지만 잘 될 때 붙는 사람들 중엔 조심해야 될 사람도 많죠.
하지만 제 눈엔 다 보입니다.
제겐 어머니라는 종교가 있어요.제 앞길에서 저를 인도해 주시죠.
아버지도 어머니도 예술가 타입은 아니셨는데… 이상하게도 전 어릴 때부터 이게 아니면 안 됐어요. 사회 나가서 가게를 하나? 공부를 열심히 하나? 그냥 춤추고 연기하면서 아이들한테서 박수받는 게 좋았어요.”
인터뷰를 하면서 놀라운 건, 그가 내가 하려는 질문을 마치 독심술을 하려는 것처럼
한발 앞서서 읽고 있다는 거였다. 나는 그가 힘든 성장기를 보냈다는 것을 알고있다.
지금은 돌아가신 그의 어미니가 병원에서 투병 중일 때 그는 병원비가 없어서 혼자 울었다. 그리고 2년간 JYP 엔터테이먼트에서 청소하고 신문을 읽고 열심히 인사하고 춤을 췄다. 남보다 일찍 고퉁을 이기고 성장한 사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안는 사람, 그 꿈을 현실화 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에겐 생에 대한 통찰력과 예지력이 있다. 그는 자신의 큰 재산으로 3가지를 들었다.
첫째, 가족.
둘째, 언제 굽혀야 하고 언제 지켜야 할 줄아는 유연한 자존심. 셋째,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 현재 마케팅을 공부하고 있는 그는 자신을
매년 업그레이드 되는 최신 휴대폰이나 과장,
대리 말단 사원을 조율하는 CEO, 혹은 애플사에서 개발한 아이팟에 비유했다.
그리고 자신을 발굴했던 박진영에 대해
“진영이 형은 늘 제 머리 꼭대기에 있는 분이시죠” 라고 얘기했다.
“저는 비난 받을 수록 성장하는 사람이예요.
작년 1월에 한 기자분이 제게 비꼬는 듯한 투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두고 봐야한다’고
했죠. 뉴욕 공연 후 공항에서 그분을 만났어요.
제 눈을 피하시길래, 더 다가가서 인사했어요.
누구나 전성기가 있고 거기서 내려와 떨어져야 할 때도 있어요.
내려오면 다시 산을 찾아 올라가면 돼요. 전 그런 건 하나도 안 무서워요.
언젠가 저보다 더 잘하는 사람에게 자리를 내줘야 할때도 있겠죠. 그러면 전 거기에 연기를 플러스할 거고, 춤, 노래, 그리고
영어를 플러스해서 해외시장을 개척할 거예요.
토끼와 거북이의 싸움처럼 끝이 없을지도 몰라요. 그러면 전 또 산업 디자이너로 사업가로 변신해서 앞으로 갈 거예요.
저는 제 스스로 다른 사람이 벤치마킹하고 싶어 하는 그런 사람이 될 거예요.
90년대 서태지가 그랬던것 처럼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저는 매년 새로운 비가 될 거예요.”
지금은 사라진 역대의 많은 아이돌 스타들은
한 곳에 머물면서 이 스타덤이 계속 유지되길 바랐다. 때론 벅차게 감사하고 때론 극도의 불안에 떨면서
(심지어 몇몇 어린 가수는 불안감을 못 이겨유서를 쓰고 자살하기도 했다).
비가 그런 수동적인 태도를 벗어나 스스로의 능력을 무한대로
확장시키면서 얻게 된 예정된 결과는 그의 커리어에 유효 기간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비는 내성적인 동시에 정열적이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강하다.
문득 나는 폭우 속을 달려가는 한 마리의 하얀 유니콘이 떠올랐다.
만약 누군가 비에게 심술궂은 비평을 한다면 그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올 초 메디슨 스퀘어가든의 공연에 대해
<뉴욕타임즈>가 “마이클잭슨의 카리스마와 어셔의 섹시한 매력, 팀버레이크의 팝적 기술을 갖고 있지 않다”고 혹평했다면
그는 동시에 그 모든 것을 갖추기 위해 질주할 것이다.
인터뷰를 끝내고 집에 오니, 지난 주 비가 출연한 오락 프로그램이 재방송 되고 있었다. 셔츠와 타이로 댄디한 멋을 낸 비가 TV속에서 말했다.
“고등학교 때 사랑했던 누나가 변심을 했어요.
저보다 다른 남자가 휠씬 부유하고 집안이 좋았던 거죠. 그때 울고 또 울면서 이를 악물었어요.
여러분, 부디 남자의 현재보다 남자의 책임감과 야망을 봐주세요.”
그순간 나는 영화 <신데렐라 맨>이 떠올랐다.
대공황 시기, 가난과 부상으로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말린 도전을 승리로 이끈 전설적인 복서 브래독의 별명.
그리고 헝그리 댄서에서 월드 스타가 된 비,
밟히며 더욱 강해지는 비에게 한국판 신데렐라 맨이라는 별명을
붙여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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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미술 아카데미 레이크사이드와 영화에 관련된 직업들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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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미술 아카데미 레이크사이드와 영화에 관련된 직업들을 알아보자!
영화미술 아카데미 레이크사이드와
영화에 관련된 직업들을 알아보자!
오늘 영화미술 아카데미 레이크사이드에서는
영화에 관련된 여러 가지 독특하고 다양한
직업들에 대해 전해드리겠습니다.
영화 관련 직업들 중 열 가지를 먼저 소개해드리려고
하는데요. 한번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영화미술 아카데미 레이크사이드에서 첫 번째로 소개해드릴
영화 관련 직업은 영화감독입니다.^^
영화감독은 영화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결과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영화의 전반적인 부분에 참여합니다.
촬영 스케줄이나 배우들의 연기, 편집 작업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혼자 제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태프들을 이끌 강한 리더십이 필요한 직업인데요.
또한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영화의 기본적인
메커니즘과 영화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높은 수준의 창의성이 요구되고,
여러 분야의 관심과 재능이 있어야 합니다.
영화미술 아카데미 레이크사이드에서 두 번째로 소개해드릴
영화 관련 직업은 영화제작자입니다.^^
영화제작자는 한편의 영화가 관객들에게
상영되기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대중이 원하는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비를 관리하며,
마케팅을 통해 흥행 효과를 극대화하는 일을 합니다.
영화의 소재를 선택하고 작가, 감독, 배우, 스태프 등을 선정하고
제작부터 홍보, 마케팅 등 모든 과정에서 총괄합니다.
영화미술 아카데미 레이크사이드에서 세 번째로 소개해드릴
영화 관련 직업은 촬영감독입니다.^^
촬영감독은 카메라로 시나리오를 예술적인 영상으로 담아냅니다.
영화감독이 촬영이나 조명의 대략적인 콘셉트를 정해주면
촬영감독은 그 콘셉트에 맞는 영상을 촬영합니다.^^
어떤 색감을 사용할지, 어떤 렌즈를 사용할지,
카메라 기종과 ���비는 어떤 걸로 정할지,
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역할입니다.
후에는 작업에서 필름의 노출이나 색깔을
보정하는 색보정 작업도 담당합니다.
영화미술 아카데미 레이크사이드에서 네 번째로 소개해드릴
영화 관련 직업은 음향감독입니다.^^
음향감독 은 장면과 소리를 어울리게 배치하는 일을 하거나,
잡음을 없애 소리가 깨끗하게 들리도록 음향을 조절하는 일을 합니다.
현장에서는 사운드 슈퍼바이저, 필름 사운드 엔지니어,
음향디자이너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영화미술 아카데미 레이크사이드에서 다섯 번째로 소개해드릴
영화 관련 직업은 캐스팅 디렉터입니다.^^
캐스팅 디렉터는 영화 속 캐릭터에 알맞은 배우를 캐스팅하는 일을 합니다.
작품이 결정되면 영화감독과 함께 배역을 분석하여,
각 배역에 맞는 이미지와 연기력을 가진 배우를 캐스팅하고,
오디션을 통해 신인배우를 발굴하기도 합니다.
캐스팅이 확정되면 출연료를 협상하고, 출연 횟수를
조정하는 등의 계약 업무를 대신하며 배우의 스케줄 관리 등
배우의 활동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담당합니다.
영화미술 아카데미 레이크사이드에서 여섯 번째로 소개해드릴
영화 관련 직업은 특수효과 전문가입니다.^^
특수효과 전문가는 영화 속 특수한 현상들에 사실적인
효과를 주어 생동감 있는 장면을 연출하는 일을 합니다.
영화미술 아카데미 레이크사이드에서 일곱 번째로 소개해드릴
영화 관련 직업은 영화평론가입니다.^^
영화평론 가는 영화계의 해설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감독이 어떤 의도로 영화를 만들었는지,
대중들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지,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 분석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주관적인 평을 덧붙여
일반인들에게 소개해 주는 것입니다.
또한 일간지나 잡지에 고정 칼럼을 쓰기도 하고
영화 홍보를 위해 영화평을 쓰거나 방송에 출연하기도 합니다.
영화미술 아카데미 레이크사이드에서 진행했던
12월 5일 [무비스타소셜클럽] 영화 저널리스트 백은하 님과
함께 하는 레이크사이드 특강 후기는 아래 손가락을
클릭하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영화미술 아카데미 레이크사이드에서 여덟 번째로 소개해드릴
영화 관련 직업은 영화 포스터 디자이너입니다.^^
영화 포스터 디자이너는 두 시간짜리 영화를
한 장의 그림으로 영화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포스터는 관객 유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시나리오의 기획의도를 파악하고, 담당자들과
컨셉을 결정하여 포스터를 제작합니다.
그리고 시나리오 표지, 영화 제목 로고, 신문광고,
홍보 전단 등을 디자인하여 개봉 전에 관객들에게 선보입니다.
영화미술 아카데미 레이크사이드에서 아홉 번째로 소개해드릴
영화 관련 직업은 무술감독입니다.^^
무술감독은 영화에 나오는 무술 장면을 연출합니다.
특히 최근 액션 장면의 발전 속도가 굉장히 빨라
탁월한 무술 안무를 필요로 해서 무술 감독이나
스턴트맨의 이름이 자주 노출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보통 무술 감독의 역할은 감독이 만들어낸 컨셉과
구도에 따라서 무술 안무를 짜는 것입니다
영화미술 아카데미 레이크사이드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릴
영화 관련 직업은 영화미술감독입니다.^^
영화미술감독은 화의 외양과 시각을 디자인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영화의 시각적 요소의 모든 부분을 담당하게 되는데요. 영화미술 감독은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색채, 소품, 세트, 의상,
로케이션 등의 일을 컨셉에 맞게 계획하고 디자인하는 일을 합니다.
지난번 영화미술감독에 대해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데요.
아래 손가락을 클릭하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 레이크사이드에서 포스팅해드린
‘영화에 관련된 직업들!’ 재미있게 보셨나요?^^
위에 설명해드린 직업들 외에도 조명감독, 프로듀서, 영화 번역가,
영화 기획자, 시나리오작가, 콘티 작가, 미술품 복원사, 영화 마케터,
영화 홍보담당, 폴리아티스트, 메이크업 아티스트, 영화 예고편 제작자,
세트 디자이너, 스턴트맨, 배우, 의상 디자이너 등 여러 가지 직업이 있는데요.
나머지 직업들은 다음 주에 설명과 함께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오늘 마지막 영상은 ‘영화미술이란?’이라는 주제로
방영되었던 [연예가중계 영상]입니다.^^
자료제공 : 국내 취업률 1위, 프로덕션디자인 전문 아카데미
레이크사이드
교육문의 : 02 – 6408 – 3038
홈페이지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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𝓱𝓪𝓹𝓹𝔂 𝓫𝓲𝓻𝓽𝓱𝓭𝓪𝔂
독립영화 개봉 1주년, 4월의 인디돌잔치!!!
영화 <드라이브> 상영 및 인디토크
‘여러분 마음 속의 <드라이브>는 무엇입니까?’
‘거기로 보내면, 이곳에 없는 것’
영화를 진정 사랑하는 당신을 진심의 드라이브로 모시는 영화 <드라이브>
일시: 4월 29일(화) 오후 7시 30분
진행: 이화정 영화저널리스트
참석: 조의진, 문욱일 배우, 정연 감독
상영 극장: 인디스페이스(홍대 롯데시네마 8층)
참석자는 변경될 수 있습니다.
프로필 링크 혹은 인디스페이스 웹사이트 방문 후 예매 가능
https://indiespace.kr/490983
타이니 티켓 예매 http://bit.ly/3IDdzz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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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영화를 진정 사랑하는 당신을 진심의 드라이브로 모십니다.
거기로 보내면 이곳에 없는 것
사랑이 흐르고 압축된 시간
어느 여름과 겨울, 그리고 가을에 우연히 만나는 어떤여자와 남자그리고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와 기억들
버려진 시간을 지우고 건져낸 소중한 시간
저기도 아니고 여기도 아닌 자동차의 행로
그냥 자동차가 아닌 자동차
당신의 사소한 감정이 밀푀유처럼 켜켜이 쌓이고
연인의 일상 속에 커스타드 크림처럼 얹혀진 시간,
드라이브
삶속에 얽혀진 수많은 감정과 관계의 어긋 그 사이를 누비던 자동차.
그 시간의 무게를 어떻게 담을 것인가?
끊임없이 어긋나는 그 사이에 덩그러니 놓여진 자동차,
자동차에 그대로 담아 둘 것인가
아니면 나의 추억으로 담아 둘 것인가?
영화 <드라이브>는 어느 여름과 겨울, 그리고 가을에 우연히 만나는 어떤 여자와 남자 그리고 자동차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와 기억들이 펼쳐진다.
각본감독 : 정연
출연 : 김시은 조의진 문욱일 한혜진 이동수 신길용 김민영 김형욱 윤석주 김규성 황지영 이세강 박종범 오수빈 박상국 박종대 정태동 임철민
제작제공배급 : 스튜디오 이상한 나라의 원더랜드(studio WONDERLAND)
12세이상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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