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2lwater · 3 years
Text
220120 오늘 꿈
오랜만에 부산 집이다. 범일동 집. 토요일 낮에 혼자 있다. 여느 때처럼 부모님 방에 있는 컴퓨터로 축구 게임을 하고 있다. 복순이도 있다. 나이 든 복순이는 예전만큼 나한테 다가오진 않지만, 컴퓨터를 하고 있을 때면 꼭 내 허벅지에 올라와 잠을 잔다.
다섯 시쯤이 돼서야 밖에서 기척이 났다. 대문이 열리고 옥상으로 이어지는 소리의 주인은 빨래를 걷는 아빠일 게다. 복순이는 누군가 왔다는 사실에 바닥으로 뛰어내려 신나게 꼬리를 흔든다. 그러더니 마루로 가서 대변도 봤다. 그러곤 다시 신나게 춤을 춘다. 복순이의 대변을 치우기 싫은 나는 몰랐던 척하려고 마루로 이어지는 문을 닫는다.
빨래를 들고 들어온 아빠는 나를 보더니 말한다.
- 왜 전화 한 통화도 안 하냐.
- 요즘 맨날 집에 늦게 들어가서 전화를 하려 해도 아빠 항상 자고 있을까봐 안 했어요.
- 그래도 네 전화 오면 다 받지.
아빠는 지난주쯤에 일하던 직장에서 그만 나오라고 통보받았다. 겨울이라 일거리가 없던 건지 관리소장은 주차 카드를 반납하라고 말했단다. 엄마는 원치 않게 퇴직당한 아빠가 걱정됐는지 나와의 통화에서 아빠한테 전화 한번 하라고 말하긴 했었다.
그런데 아빠는 평온해 보인다.
- 그만 나오라 했는데도 그냥 출근했었어. 출근해서 멍하게 앉아있었는데, 소장이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더라.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젊은 알바생이 연락도 없이 출근을 안 해서 일손이 부족하다는 거야. 그날부터 다시 일하고 있어. 소장은 그때 나한테서 빛이 났더라나.
말하는 아빠의 표정엔 여유가 있어서 보기 좋았다. 아빠는 스스로 노력해서 다시 일자리를 구했다. ‘다시 나만 잘하면 되는구나’ 생각했다. 복순이는 평소 아빠를 무서워함에도 연신 꼬리를 흔들면서 반가워했다. 입에 들어온 복순이 털 한 가닥 때문인지 입안이 간지러웠다.
0 notes
2lwater · 3 years
Text
210803
- 형도 아시죠? 학교 안에서 비밀스럽게 활동하고 있는 거.
- 응 대충 들어봤지.
사실 몰랐다. 그저 회장이란 지위에서 나온 대답이었다. 몰라도 아는 척, 알아도 모른 척하는 권세가 같은 태도 말이다. 그리고 조금 더 이어진 대화에서 그 동생이 말한 비밀스러운 활동가들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0 notes
2lwater · 3 years
Text
youtube
0 notes
2lwater · 3 years
Text
210707 오늘 꿈
꿈에 나오는 인물이 다른 사람으로 휙 바뀌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러니까 더블 캐스팅 같은 건데, 초반에는 어제 TV에서 봤던 사람이었다가 끝에는 내 친구로 바뀌어 있는 식이다. 오늘 그랬다.
퇴근하고 집에 가는데 초등학교 동창 A가 길에서 보험 영업(?)을 하고 있었다. 어릴 적 양아치 기질이 다분했던 그와 눈이 마주쳤고 인사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잘 걸렸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걸음을 멈춰버리면 꼼짝없이 당할 거란 불길함이 든 나는 걷는 속도를 올렸다. A는 나와 걸음을 같이 하면서 보험을 팔기 위한 수작을 부렸다. 솔직히 보험 하나를 새로 들려던 차였지만,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애가 오랜만이랍시고 친한 척을 해대는 모습이 꼴 사나워 도와주고 싶지 않았다. 거절에 거절을, 그리고 또 거절을 했음에도 A는 포기하지 않았다. 저 건물에서 나온 거면 큰 회사 같은데 요즘 무슨 일을 하니, 앞으로 가끔 밥도 먹으면서 지내자, 마음에도 없는 소리가 난무했고, 나는 업무 전화를 받았다. 난 회사의 광고 모델 계약을 진행하고 있었고, 이 내용이 A 귀에 들어갔다.
- 계약하려는 모델이 누구야?
- 아, OOO인데 지금 계약 검토하고 있어.
나의 굳센 거절에 포기할 만도 했지만, A는 생각보다 독한 구석이 있었다. 그러다 내 집에 다다랐는데 슬슬 불안했다. 집 위치까지 들켜버리면 보험에 가입할 때까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이번엔 A의 전화벨이 울렸다. 조용히 전화를 받던 A는 나와 거리를 두며 통화하기 시작했다. A의 얼굴은 심각해 보이기도 했다. 지금이 도망칠 기회라 생각했다. A가 읽어보라고 건넨 보험 상품 소개서는 손수 써 내려간 정성이 보여서 그냥 갖고 가기에도, 버리기에도 마땅치 않아 우왕좌왕했다. 옆에서 작은 돌멩이를 하나 주워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위에 얹어놓고 내뺐다. 문소리가 나지 않게 집으로 들어와 곧장 옥상으로 올라가서는 A의 동태를 지켜봤다. 통화를 마친 A는 어슬렁대며 내 집 앞까지 당도했다. ‘내 집을 어떻게 알지? 초등학생 때 쟤랑 논 기억이 없는데…’ 나는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A는 나의 인기척을 느끼려는 듯 천천히 내 집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A는 내가 조용히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했다. 계속 문을 두드리는 걸 참지 못한 나는 소리를 지르며 문을 열었다.
- 아 보험 안 든다고!
문을 여니 A는 군대 후임 B로 바뀌어 있었다. 후임이지만, 동갑이었던 B는 좋은 사람이었고, 친하게 잘 지냈다. 그런 B에게 소리를 지르다니,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만약 길에서 보험 영업을 하던 사람이 A가 아닌 B였다면 나는 안 그래도 보험 하나 들으려 했다고 말하면서 선뜻 도와줬을 게다. B는 좋은 사람이니까. 그런데 내가 소리를 질렀다. B의 표정은 금세 굳어졌다가 곧바로 미소 지었다.
- 알겠어, 생각 있으면 연락 줘. 그리고 이건 필요할 때 써.
B는 검은 가방을 내게 건넸다. 묵직한 가방의 지퍼를 여니 아까 친구에게 말했던 광고 모델이 어떤 인터뷰에서 읽고 싶다고 말했던 책 몇 권이 있었다. 알고 보니 아까 친구가 한 통화는 후배에게 그 책들을 사 오라는 말이었다. 고작 나한테 보험 하나 팔려고 그 잠깐 사이에 이것들을 준비했다니, 무안해진 나는 되레 화를 내며 가방을 돌려줬다. B는 더욱 의기소침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섰다. 나는 마침 보험 하나 들려고 했다는 말은 차마 못 했다. 조금 전까지 무례했던 내가 지금에 와서 보험을 든다고 하면 B는 그것을 동정으로 받아들일 것 같아서였다. 나는 B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사과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B를 따라갔고, 이내 등을 토닥이니 B는 주저앉아 소리 내며 울었다.
- 미안해.
나는 한두 달 뒤 B에게 전화해서 보험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0 notes
2lwater · 4 years
Photo
Tumblr media
곪아버린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은 행복해야 하고, 나는 구름이 나오는 꿈을 꾸고 싶다.
0 notes
2lwater · 4 years
Text
201203 오늘 꿈
나는 보모와 비슷한 일을 한다. 동남아 어떤 국가에서 어떤 가족과 살면서 아이들과 대화한다. 부모(로 보이)는 부부는 현지인이지만, 아이들은 한국인이다.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겠다. 오늘은 외식하는 날이다. 유명한 음식점에 가기로 했는데 그날은 유난히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입장권을 다 받지 못했다. 인원은 총 아홉 명, 받은 입장권은 네 장이었다. 어쩔 수 없이 부부의 지인 찬스로 들어가야 했다. 부부는 살짝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모처럼 다 모인 주말이라 어쩔 수 없이 사장을 불렀다. 우리는 기다리는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며 가게로 들어섰다. 분리된 프라이빗 룸에는 큰 원형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나는 사장과 이야기하는 부부를 뒤로하고, 아이들과 먼저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내 자리의 양쪽에는 ‘춘행’과 ‘파도’란 이름의 남자아이 둘이 앉았다. 파도는 조용한 성격이라 자리에서 가만히 그림을 그렸고, 춘행이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놀다가는 어느새 자리로 와서 볼에 바람을 넣고 셀카를 찍기도 했다. 나는 그 표정을 따라 하면서 춘행이와 장난쳤고, 파도는 우리를 보며 웃었다. 두 아이는 나를 나름 잘 따랐기에 나는 아이들과 나만 아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생각한 게 호칭을 달리하는 거였다. 춘행이는 봄길이, 파도는 너울이로. 두 아이의 한자 이름을 한글로 바꾼 건데 그렇게만 해도 부르는 나도. 듣는 아이들도 몸이 느슨해지는 것 같았다. 가만히 듣던 춘행이는 봄길이란 새 호칭이 싫지는 않았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아이들에게로 뛰어갔고, 파도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나도 파도 옆에서 파도가 너울이로 자랐을 때의 얼굴을 상상하며 그림을 그렸다.
0 notes
2lwater · 4 years
Text
꿈 이룬 다음의 서사
인아영 / 작가님도 휴식기를 가질 생각이 있으신가요?
박상영 / 쉬고 싶죠. 그런데 그러면 누가 날 먹여 살려. 휴식할 시간이 없어요. 이렇게 살다 죽어야죠.
슬릭 / 그런 마음가짐으로 계속 살아야 돼요. 돈 벌어야 되고 먹고살아야 돼서,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건 무기한으로 미뤄놓는 거죠. (후략)
박상영 / 그 말씀 들으니까 드는 생각이, 전 하고 싶은 걸 다 이뤘어요. 그래서 전 꿈이 없어요.
슬릭 / 꿈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되는 거네요.
박상영 / 맞아요. 같은 맥락이에요. 사실 저는 어릴 적부터 작가가 너무 되고 싶었고, 퀴어 소설만으로 채워진 소설집을 한 번이라도 내보고 싶었어요. 지금은 어릴 때 목표한 걸 다 이뤘거든요. 그런데 안 행복해요. 너무 불행해요. 그래서 이걸 받아들이고 사는 게 나의 남은 삶의 과제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중략)
그래서 요즘 저에게는 새로운 꿈이나 목표가 생기는 게 너무 절실해요. 왜 성공한 사람들이 흔히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오늘 죽어도 후회가 없는 삶을 살라고, 그게 성공이라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저는 오늘 죽는다고 해도 별다른 후회는 없는데 전혀 성공한 인생이라는 기분은 들지 않아요. 오히려 지금의 내 현실이 약간 불필요한 것처럼만 느껴져서, 남은 삶을 도대체 어떻게 버티나 이런 생각을 더 자주 하는 것 같아요. 하고 보니 너무 건방진 말이네요.
인아영 / 아뇨, 오히려 지금 한국사회에는 꿈이나 희망을 다루는 서사가 너무 많기 때문에 그걸 이룬 그다음의 서사도 더 많이 얘기할 필요가 다고 생각해요.
문학동네 2020년 가을호, "우리의 사랑, 우리의 미래" 中
0 notes
2lwater · 4 years
Text
201025 오늘꿈
바다로 지는 해는 보름달 같아서 오늘이 추석인가 싶기도 했다. 가루비가 오고 있음에도 창문을 열었다. 비가 얼굴로 날렸지만, 창문 앞에 바짝 엎드려 일몰을 봤다. 누워서도 쓸 수 있는 낮은 테이블에 팔을 걸치고 있었는데 엄마가 옆으로 왔다. 엄마는 내가 팔을 얹고 있는 테이블이 예쁘다고 말했다. 엄마는 작년 여름에 같이 샀던 이 테이블을 기억 못 했다. 그때도 비가 왔었다. 계곡에 챙겨갈 것들을 사기 위해 마트에 갔다가 옆에 있던 이케아로 가서 테이블을 산 날, 갑자기 비가 왔고 우산이 없던 엄마와 나와 테이블은 비를 온통 맞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을 설명하니 엄마는 기억이 난다고 했다. 다시 창문으로 고개를 돌리니 내 나이쯤 돼 보이는 아빠가 집으로 오고 있었다. 비를 잔뜩 먹은 흰 티가 아빠의 퉁퉁한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엄마한테 젊은 시절 모습을 한 아빠가 여기로 오고 있다고 말하니 엄마는 좋았는지 싫었는지 웃으면서 저리 치우라고 했다. 실실거리는 아빠 얼굴에서 형이 보였다. 어제는 자다가 전화를 받은 아빠와 통화했다.
0 notes
2lwater · 4 years
Text
201006 최초의 벽화
어릴 때 형은 형이니까 나보다 뭐든 다 잘했는데, 그림도 잘 그렸었다. 만화 캐릭터 같은 것들, 귀엽게 오밀조밀 잘 그렸다. 공책에도 그리고 지우개에도 그렸던가, 집 곳곳의 벽에도 그리곤 했는데 나도 괜히 따라 하고 싶었다. 잘 보면 나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근데 도저히 못 따라갔다. 당시에는 좀 분하긴 했는데 몇 년 뒤에 까닭수로 ‘왼손잡이는 원체 악필이면서 동그라미도 제대로 못 그리니 대체로 그림을 못 그린다’는 말을 어디서 보고 지금까지 변명하며 살아간다.
언제는 형이 집 대문 옆에 매직으로 남자애 하나를 그려놨다. 만화책 ‘힙합’에서 본 캐릭터 같았는데 삐죽거리는 앞머리에 벨트가 길었던 거로 기억한다. 이제 보니 얌생이 같은 게 형 닮았던 것도 같다. 퍽 잘 그려놔서 대문을 들락거릴 때 신경 쓰였고, 점점 나도 뭐 하나 남기고 싶어졌다. 견줄만한 그림 하나 나올 것 같은 기대감도 들었지만 난 그림을 못 그린다는 열등감이 더 컸던 관계로 집 어딘가에 그릴 용기는 들지 않았다. 못 그려놓으면 형이 놀릴 게 뻔하니… 그래서 옆집 대문 옆 벽에 그렸다. 정말 개떡같이 그렸는데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형은 그걸 어떻게 보고는 엄마한테도 말했었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엄청 웃었을 거고, 난 얼굴이 빨개졌을 게야. 옆집 할머니한테 안 혼난 것도 신기하다. 다음에 부산 내려가면 그 벽화 아직 잘 있는지 보러 가야지.
0 notes
2lwater · 4 years
Photo
Tumblr media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 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이상 도움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 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나에게 쓰는 편지, 신해철 (1991)
0 notes
2lwater · 4 years
Photo
Tumblr media
미스터 퀸, 젊은이들의 저항운동의 상징인 사람으로서 신작 앨범에 대해 몇 가지 의문이 드는데요. 민중에 대한 예전 같은 관심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지요?
- 네, 하지만 그게… 다들 그런 말에 대해선 나름대로의 정의를 가지고 있잖아요. “관심”, “민중”…
- 다들 민중이 뭔지는 알 거라 생각하는데요.
- 그래요...그런가요?
- 그럼, 혹시 포크 뮤직이 흑인 운동이나...평화 운동의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고 믿으십니까?
- “평화 운동”이란 말은 “버터 덩어리”란 말과 똑같아요. 어떻게 믿어주길 바라는 사람들의 말을 믿는 것 같아요. 덩어리엔 헌신하지만, 버터엔 아니라는 사람요…
- 그 말을 믿어야 할지 확신이 안 가는군요.
- 난 시리얼 박스에서 나오지 않았어요. 세상에 노래를 듣고 자신을 변화시킬 사람은 없어요. 필 옥스(1960년대 대표적인 저항 가수, 30대에 자살)의 노래가 운동을 지속하게 하거나 피켓 시위를 계속하게 하진 못하죠. 그 노래들도 개인적인 양심의 표현이에요. 징집 영장을 태우거나 분신하는 것과 같죠. 아무 소용없어요… 자기 자신과 청중들을 세상의 모든 악과 분리시키는 것뿐이죠. 난 그런 것과 분리되길 거부합니다.
I'm Not There, 2007
0 notes
2lwater · 4 years
Text
200606 포천 3
숙소로 돌아왔을 땐 다른 여행자들도 입실한 것 같았다. 내심 숙소에 나 혼자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한 무리의 여행자들이 나머지 방에 묵는 듯했다. 인사하기 어색해 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오래된 한옥에서 방음을 기대하기엔 무리였다. 엿들으려던 게 아닌데 딴에 조심하는 그들의 기척이 문 사이로 들어왔다. 그들은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려는 것 같았다. 나도 포장해온 갈비찜으로 저녁상을 차렸다. 포천에 왔으니 마셔야 할 것만 같은 포천막걸리도 사뒀다. 마당에서의 만찬은 나름 조용했지만, 그 고요는 오래 가지 않았다. 술이 점점 들어가 톤이 높아지는 그들의 대화는 자정까지 이어졌다. 또 말하지만 내가 들은 ��� 아니고 말소리가 허락도 없이 들어와 내 방을 휘저었다. 중간중간에 아무노래 챌린지도 하고, 이상형 월드컵도 하던데 상당히 행복해 보였다. 다만 나는 조금 짜증이 났다. 노래도 틀지 않은 조용한 공간이어야만 책을 읽는 난 비장하게 다 읽어치우겠다 다짐하며 챙겨온 네 권의 책을 꺼내지도 않았다. 막걸리로 옅은 피로와 취기가 올라와 잠도 슬슬 오기 시작했는데, 도무지 시끄러워서 잘 수 없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쓴 게다. 이때만큼은 일필휘지였다. ‘내 사적인 이야기가 남이 무작정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가?’ ‘나만 이렇게 곤두섰나?’ ‘듣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를 억지로 들어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싫다.’ 세 시간 가까이 이런 생각을 하며 포천에서 겪은 일들을 써 내려갔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글이 술술 잘 써져서 ‘아무노래’ 후렴에 춤추는 그들의 옷자락 소리가 내 시간을 방해해도 조금은 신이 났다는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행했던 건 화장실과 욕실에 가려면 마당을 통해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을 열면 시끄러웠던 마당은 순간 정적이 될 거고, 나는 겸연쩍은 인사를 하면서 지나쳐야겠지. 예상대로였다. 취한 그들은 심지어 같이 맥주를 마시자 했고, 나는 “아뇨아뇨아뇨아뇨아뇨” 하며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로 직행했다. 그날 밤엔 총 세 번 방 문을 열어야 했다. 화장실 한 번, 여자친구와 통화도 할 겸 하는 밤 산책에 두 번, 그리고 샤워까지 세 번. 통화를 위해 두 번째 문을 열었을 때는 이곳에 혼자 온 내가 신기했는지 질문 공세를 해댔다. 나이를 묻더니 이 숙소를 어떻게 찾았는지, 왜 혼자 왔는지 등 그들은 밤 열한 시의 시골에서는 지양해야 마땅한 목소리 톤으로 물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 - 저희는 언제쯤 들어가야 할까요?
내 대답 - 통화하고 오면 슬 정리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왔을 때 그들은 마당을 정리하고 있었다. 무리 중 한 명이 자기는 마당에서 계속 놀고 싶다고 투덜대는듯 했으나 끝내 숙소로 들어가 다음 술자리를 갖는 것으로 체념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씻기 위해 세 번째 방 문을 열었고, 고요하게 샤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들 숙소 안에서 들리는 지치지 않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곧장 잠들었다.
0 notes
2lwater · 4 years
Text
200803 재개시
직전에 쓴 일기가 작년 8월 5일이다. 거의 딱 1년 만이다.
생각만큼 오래되지 않아서 좋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그 무언가가 눈에 보여야 한다. 작년, 거실이 있는 집으로 이사 오면서, 그 거실에 두 개의 책장을 들이며 글과 책을 가까이하기로 다짐하면서 이 수첩에 일기를 쓰기로 했다. 그때 한 달 반도 채 쓰지 못한(매일 쓰는 건 바라지도 않았다) 이 수첩을 이제야 다시 꺼냈다. 계속 쓰지 못했던 이유는 정말 하나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언젠가 집에 손님이 왔을 때 책장의 보이지 않는 책 사이에 숨겨두었다. 나름 ‘초고집’이라고 이름 지은 이 수첩에 쓰인 다듬어지지 않은 소심한 글을 누가 읽는 게 싫었다. 그래서 무심하게 숨겼던 수첩을 1년 동안 까맣게 잊었고, 오늘에서야 생각이 났다. 0.4mm짜리 파이롯트 볼펜과 함께 잠깐 방치됐던 수첩을 꺼내 거실 테이블에 놓���두었다. 쓰고 싶은 게 생겨서다. 또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0 notes
2lwater · 4 years
Text
200624 문화적 도용
문화적 도용(Cultural Approproation)은 우세 집단의 구성원이 비득권 집단의 문화를 착취한다는 뜻이야. 너희는 차용이라지만, 우리한텐 도둑질이지.
그러니까 맞아, 당연히 화가 나겠지. 10대 취향의 뱀파이어 드라마에 나오는 덜떨어진 금발 백인 여자애가 패셔너블하다는 이유로 콘로를 하고 나오면 말이야.
존중과 도용은 종이 한 장 차이야, 넌 그 선을 넘었고. The Politician, 2020
0 notes
2lwater · 4 years
Text
200606 포천 2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 목소리가 들리는 상황이 싫다. 이를테면 대중교통에서 전화가 왔거나, 조용한 공간에서 대화해야 하는 상황 같은. 정말 낯 뜨겁다. 그렇지만 포천에서 내가 겪은 사람들은 달랐다. 자신들의 대화를 내가 다 들을 수 있다는 걸 상관치 않았다.호수 샛길의 벤치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먹해 보이는 남녀가 옆에 앉았다. 연인 사이는 아닌 듯한 그들은 서로를 알아가려는 대화를 해나갔다. 그들의 대화를 정말 들으려던 건 아니었는데 들릴 수밖에 없는 거리였다. 짧게 짧게 오가는 말에 어떻게든 존재했던 작은 웃음들은 나까지 어색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들은 각자의 넷플릭스 취향이나 자기 몸에 털이 얼마나 나는지, 언제 자고 일어나는지 등, 앞으로의 그들에겐 중요할 수도 있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윽한 장소에서 혼자 고고한 척 다 하고 앉아있는 내가 고까워서 이러나 싶었다. 둘만 있고 싶어 자리를 피해 달라는 눈치를 준 것일지도 모른다. 왠지 억울한 기분도 들었지만 나는 꿋꿋이 소설을 읽었다. 둘 사이에는 정적이 잠깐 생겼다가도 위태한 대화가 계속되었다. 남자는 이어지는 화두로 ‘책’을 꺼냈다. 책을 좋아하냐는 그의 말은 다급하게도 느껴졌는데, 옆에 앉아 책을 깨작대고 있는 나를 보고 그 말을 꺼낸 것이 분명했다. 나도 모르게 코웃음이 나왔는데 다행인지 그들은 듣지 못했다.
- 책 좀 읽어?
- 아뇨 책 거의 안 읽죠. 읽어야 하는데 아~
- 나는 얼마 전에 진짜 오랜만에 자기 계발서 하나 읽었어.
- 책 펴는 것부터 너무 어려워요.
- 그치? 힘든 일이야…
대충 이런 대화였다. 내게 무안을 주려는 행동은 아닐 거라 믿고 싶었다. 그들은 이내 흐지부지한 대화를 계속하다가 바닥에 나타난 벌레를 보고 자리를 떠났다.
0 notes
2lwater · 4 years
Text
200606 포천 1
모처럼 혼자 보내는 휴일이라 포천에 갔다. 숙박비가 말이 안 되게 싼 오래된 한옥에서 하루 묵었다. 낮에는 산정호수에 가고, 밤에는 별이나 봐야겠다고 생각했다.또 다른 이유를 말하자면 책을 읽고 싶어서였다. 집에서 책을 읽으려고 거실에 TV 대신 책장을 놓았는데, 역시 집은 TV를 보는 곳이더라. 책 읽는 시간 또한 어떠한 상황이 주어져야 생긴다는 것을 며칠 전에야 깨달았다. 읽고 싶은 마음만은 가득한 책 네 권을 들고 포천에 갔다.
짜임새 있게 준비하지 않아서인지 처음부터 무언가 꼬이긴 했다. 첫날 점심으로 정한 음식점은 아예 문을 닫았고, 별을 보기 위해 가려던 천문과학관은 도무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책이 없어 곧장 숙소로 갔다. 몇 안 되는 여행 경험에서 공통으로 느낀 점이 있다. 조금이라도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야겠단 거다. 해지기 전의 숙소 말이다. 술과 함께하는 밤의 숙소는 좋지 않아도 좋아 보이니 다음에는 낮의 숙소를 기억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 그럴 수 있게 되었다. 60년도 더 된 조부모님의 집을 숙소로 내놓은 호스트는 섬세했다. 정말 오래된 한옥이었지만 가능한 선(외관은 그대로 살리되 내부만 고친)에서는 깔끔하려 해서 좋았다. 상이 놓여있던 조용한 마루에 앉아 읽기 시작한 소설은 호수에서 마저 읽기로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호수에 안 갈 것 같다. 곳곳에 벤치가 있고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호수를 생각하고 책을 챙겼지만, 수많은 인파가 오가는 둘레길의 벤치에서 소설을 읽어내진 못할 것 같았다. 지난번에 간 삽교호도 그렇고, 산정호수 또한 완연한 관광지였다. 바이킹은 끝없이 넘실댔고 DJ DOC의 ‘나 이런 사람이야’ 같은 댄스곡이 호수 반대편까지 울러 퍼졌다. 우선 둘레길을 돌며 인적이 드물고 조용한 곳을 찾기로 했다. 마땅한 곳이 없으면 숙소로 돌아갈 작정으로 열심히 걸었다. 슬슬 땀이 나고 몸이 찐득해질 때쯤 갈림길이 나왔다. 샛길로 보이는 쪽으로 조금 걸으니 벤치 두 개가 놓인 조용한 길목이 나왔다. 송충이와 벌레들이 툭 떨어지진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책 읽을 장소로는 이곳밖에 없을 것 같단 불안감에 냉큼 앉아버렸다.
0 notes
2lwater · 4 years
Text
나는 편집하며 글을 쓴다
사실 나만 이렇게 글을 쓰는지는 모르겠다. 많은 사람이 나처럼 쓸 수도 있다.
나는 편집(edit)하며 글을 쓴다. 어디에서든 이미 쓰인 글에서 단어나 구절을 일일이 찾고 그것들에서 나만의 문장을 만들어낸다. 글쓴이의 ‘표현’이라기보다 글쓴이가 ‘선택했던 글자’들을 가져온다는 게 맞겠다.
“종이에 이렇다 할 감흥이 없던 잡지 에디터에게 종이란 겨울 동안 집 앞에 쌓이는 눈과도 같았다. 쌓인 눈을 계속해서 치워내듯 흰 종이에 원고를 채워내야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와 종이는 애증이랄 것도 없는 텁텁한 관계를 맺어가고 있었다.”
윗글은 ‘텁텁하다’라는 단어에서 시작해 만들어졌다. 종이와 나의 관계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고, 텁텁하다는 표현을 떠올렸다. 텁텁하다는 ‘눈이 흐릿하고 깨끗하지 못하다’라는 뜻이 있다. (내리는) 눈을 뜻하는 건 아니지만, 거기에서 비유를 생각해냈다.
주제넘게 글쓰기 선생님이 된 것 같지만 이런 식이다. 에디터(편집자) 명함을 건네던 시절부터 이런 식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잡지 에디터일 때는 말마따나 ‘편집자’에게 요구되는 ‘편집’이라는 소명을 다했었다. 요청했던 기고 글을 받아 다듬었고, 녹취를 푼 인터뷰이의 말을 정리하며 기사로 만들었다. 거기에 화보 컷을 고르고, 칼럼의 순서를 조정하고… 기어이 공간(서점)까지도 편집해가며 운영했다.
내 생각을 담아야 하는 칼럼을 쓸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랬기에 언제부턴가 내 글도 편집해서 만드는 나를 보며 이따금 비겁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한때는 글 쓰는 것에 떳떳하지 못했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쓰는지 물어보면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난감했다. 결과물들은 곧 내 것이 아니라는 기분에 쉬이 책임감을 떨쳐버린 적도 많았다(잡지를 그만둔 이유 중 하나기도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다른 글로 쓰려 한다).
남이 읽을 글이었기에 더 그렇게 느꼈을 거다. 종종 에디터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글을 써야 할 때면 메스꺼운 기분이 나를 둘러 감았다. 지금도 그러할까? 아니, 다행히도 잡지사를 그만둔 뒤로는 한결 편해졌다. 입맛을 맞춰야 할 글을 쓸 일은 이제 없어져서다.
정기적인 글쓰기(일로서의 글은 제외하고)를 시작하고 싶은 사람에겐 내가 글 쓰는 방식이 괜찮을 것도 같다. 수십 개 히트곡의 한 마디씩, 아니 한 마디도 아니고 반의반 마디씩 가져와서 새 노래 하나를 만드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가져온 것들에 대한 발전과 짜깁기는 본인의 몫이다.
0 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