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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yobian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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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yobian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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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쿨렐레가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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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yobian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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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받은 안투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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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yobian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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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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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yobian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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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yobian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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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yobian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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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것
* 간접적인 가정 폭력 묘사가 나옵니다.
서연은 가족들과 화해한 이후에도 알 수 없는 화가, 종종 끓어올랐다. 울면서 울면서 토했던 것들은 감기가 아니라 가래뿐인 것 같았다. 매일 화가 나는 건 아니었는데, 맞지 않는 부분이 속속 드러나는 시기마다 집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친구들에게는 이러지도 않는데. 가족들에게만 마음이 좁아졌다. 앞으로는 잘 지내보자 악수를 건넨 뒤에도 손에 들린 짐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내가 화가 많은 사람인걸까? 과제를 끝내고 누워서 내내 생각했다. 생각은 쏜살같이 달리고 시간은 어느덧 새벽이었다. 만약 뒤끝이 없는 성정이라면 모두가 좋은 성격으로 탈바꿈했다며 좋���할 수 있는 걸까? 그래 많이 변했지. 이제는 화 안 내고 이러더라. 웃으면서 하루를 돌아볼 수 있게 되는 걸까?
이제는 누구도 서연에게 소리치고 윽박지르지 않았다. 누구도 서연의 머리채를 잡거나 회초리를 집지 않았다. 누구도 접시를 던지지 않았다. 머리채를 잡고 회초리를 부러뜨리고 접시를 깨뜨린 사람들은 서연에게 죄 사과했다. 사과한 사람들은 서로에게 준 악영향을 시인하고 머리 숙였다. 서연은 그래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사과를 받았고, 서연은 용서했다. 이거면 되었다고. 항상 두려웠던 가족의 틈이 이제는 괜찮아지리라 믿었다. 사실 서연은 그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누군가를 오래 미워하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모두가 서연의 눈치를 살피고 서연에게 용서를 구하고 죄책감으로 행동하는 그 시간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그래서 알겠다고 했다. 또 이런다면 다음은 없을 거라고도 덧붙였다.
그런데도 서연은 이따금씩 자신의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가족들이 싫었다. 문을 그냥 열어버리든 노크하든 상관없이 화가 치밀었다. 가능하다면 그 문을 잠가버리고 방에 갇히고 싶었다. 그들이 하는 말이 단 것이든 쓴 것이든 뭐든 상관없었다. 언젠가는 방 곳곳에 흡음재를 덕지덕지 붙이는 모습을 상상했다. 꼭 사춘기가 스물 중반이 되어서도 이어지고 있는 듯했다.
누군가의 사과를 반드시 받아줘야 하는 건 아니다. 그건 서연도 잘 알았다. 사과를 받기로 했더라도 꼭 용서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런데 가족의 틈에선 그게 잘 안 됐다. 어차피 평생 봐야 하는데……. 가족의 연을 끊을 정도로 서연에게 남은 화가 크지 않은데. 이제는 다들 서연에게 윽박지르지도 화내지도 않는데. 무엇보다도 내가 그 사과를 받아들였는데……. 가족 간의 화해는 으레 진심 어린 사과와 용서로 모두 끝나는 것처럼 그려진다. 사람의 화라는 것은 순간순간 자주 과소평가되는데도. 누군가의 오열 앞에서 번번이 딸이 가지고 있는 화는 작아졌다. 그래서 그때는 그 상황만을 모면하고자 손을 내민다. 뒤돌면 화가 난다. 하지만 화해 이후에 화를 드러내기가 어려웠다. 서연의 화는 그렇게 서연 안에서 축소된다.
서연은 그 화를 축소해서 변덕이 심해진 마음에서 나오는 짜증이라고 일축한다. 그렇게 일축하고 나면 서연의 짜증은 온전히 서연의 것이 되었다. 그 화와 짜증은 서연의 몸에만 쌓였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분투다. 계속 자기만의 방에 짜증을 한 움큼 쌓아 두고, 저의 방에 들어와 서성거리는 그림자에 대답한다. 공부를 핑계로 대답을 소홀히 한다. 누군가가 나가고 나면 의자에 축 늘어져서 핸드폰을 댓 번 확인했다.
서연은 언제고 침범되지 않을 독립된 창과 공간이 필요했다. 자기만의 방이 단순히 자신이 홀로 쓰는 방을 의미하지 않는 것처럼, 서연에게 필요한 방은 원하지 않는 사람이 문을 두드리지도 들어오지도 않는 방이었다. 짧게나마 경험한 독립 생활은 쓸쓸하고 버거웠지만, 다시 돌아온 본가 생활은 컨트롤할 수 없는 분노 때문에 힘겨웠다. 그래서 어느것도 쉽게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누군가의 귀가를 기다리는 집. 서연은 그런 집이 부러웠다. 서로의 공간을 지키며 살아가는 집. 집에는 혼자 살더라도 근처에 누군가가 살아서 그 지역이 우리의 집이 되는 시간. 그럴 수만 있다면 서연은 혼자 살 수 있겠다 싶었다. 집을 쓸고 닦고 분리수거하고 계획을 세우다가 본가를 빠져나간다면. 언젠가 마주할 과거를 쓸어 담고 보듬다가 분리배출할 수 있지 않을까. 과거와 과거에 가진 우울을 보듬는다는 것은 그 시절도 아름다웠다며 추억하는 것과는 다르니까. 그때의 우울을 보듬고 이제 지향할 점을 새로이 잡는 일이었다.
이제 서연은 가족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서연의 분노가 그들과의 과거에서 왔다는 것을 인정했다. 울컥 치미는 화가 저의 예민함 때문이 아니라고. 화를 내다가 끝끝내 회피했기에 남은 화가 쪼개져서 분기마다 차오르는 거라고. 하지만 회피도 저의 탓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엄마언니아빠 모두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그들의 방조나 합리화나 폭력을, 순간은 용서했더라도 응어리가 남을 수 있다고.
그리고 서연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집에서 영영 나가기로 다짐한다. 서연과 늙어서도 함께 지내면 좋을 것 같다는 엄마의 말을 끊어내기로 한다. 독립된 창을 가지고 그 창으로 세상을 보며 과거를 예기치 않게 마주하더라도 일주일 내�� 슬퍼하지 않을 수 있도록. 서연은 모두가 잠든 새벽에 문을 잠갔다가 다시 푼다. 현관문을 나서는 모습을 그려봤다. 서연은 공용기기가 없는 저의 방을 그리다가 잠에 들었다. 쪼개져 나온 화가 꿈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퍼진다. 서연은 꿈에서 얼음을 깼다. 쪼개져 나온 얼음은 뜨거운 빛에 녹였다. 이내 땅으로 땅으로 물이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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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yobian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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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불행
불행이 꼭 나쁜 걸까. 나는 적당히 불행한 편이 나아. 그게 더 진짜 같아.
윤진이 말할 때 선화는 끄트머리가 희어진 손톱을 또각또각 열 번 깎은 뒤, 자꾸만 살을 베는 엄지발가락의 발톱을 깎고 있었다. 손톱과 달리 발톱은 크기도 크거니와 잘못 깎으면 안으로 말리기 쉬워 꼭 네모난 모양으로, 썩 시원스러운 느낌은 없더라도 꼭 그렇게 깎아야 한다고 했다. 인터넷에 검색하니 그러지 않으면 심한 경우에는 발톱을 아예 뽑아야 한다고. 이미 반쯤 내성인 것 같은 발톱이 사람을 얼마나 괴롭히는지. 걸을 때 힘을 잘못 주기라도 하면 찌르르 올라오는 예기치 못한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도 찝찝하다. 똑같이 동그랗게 깎아왔는데 딱 하나. 왼쪽 엄지발가락 혼자 말썽이다. 늦었지만, 아니. 늦었을 리 없으니까 어떻게든 바르게 펴주어야 했다.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네모나게, 네모나게.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신중하게 발톱깎이를 움직였으나 모서리가 그대로 남아있는 발톱은 어쩐지 깔끔한 것 같지가 않고, 날카롭다. 손가락으로 끝을 살짝 눌러봤다가 고개 기울인 선화는 조금만 다듬자, 조금만 하고 다시 또각또각 소리 듣는다. 그러다보면 발톱은 점점 반달 모양에 가까워진다. 안 되는데, 하면서도 속이 시원해진다. 또 내성발톱으로 향하는 지름길을 타버리고 말았다. 깎고 혹시? 하는 희망을 품고 꾹꾹 누르니 파고든 부분이 역시나 아프다. 
어휴, 망할!
짜증 듬뿍 담긴 말을 토해낸 선화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열 발가락의 발톱을 모두 동그랗게 깎고 만다. 다른 발톱은 괜찮겠지. 됐어, 괜찮아. 소파에 앉은 윤진은 선화를 구경하다가 TV 채널을 돌리며 무심하다. 
선화야, 병원에 가. 그게 아니면 관리를 받으면 되지. 
바닥에 앉아있던 선화는 고개를 흔들흔들하며 아직 괜찮아, 다음에는 꼭 네모로 깎을 거야. 알았지. 나한테 그러라고 해야 돼, 너. 알았지? 당부하며 손톱과 발톱을 모아둔 휴지를 동그랗게 감싸 일어선다. 왼쪽 엄지발가락에 무게를 싣지 않으려 신중히 걸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손 씻은 뒤 돌아오면 윤진은 어느새 소파에 누워있다. 
너 왜 이렇게 팔자가 좋아? 짜증 나게.
선화가 윤진의 머리를 들어 억지로 앉히면 윤진은 아냐, 나는 지금 계속 도망치는 중이야, 라고 또 한 번 뚱딴지같은 소리나 한다. 너랑 괜히 같이 살기로 했어. 혀를 내두르던 선화가 윤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면 이제는 윤진 쪽에서 무겁다고 난리다.
쥐가 나로 변신해주기나 하면 좋겠다. 그러라고 일부러 저녁에 깎았는데.
선화 너는 이상한 동화만 믿더라.
너는 순 이상한 말만 하잖아. 너보다 내가 낫지.
누가 더 나은 게 어딨어.
왜 없어? 있어. 발톱 멀쩡한 너는 몰라.
뭐야,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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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yobian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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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일기
나는 늘 부표처럼 떠도는 삶을 살아왔다. 이사만 열 번은 족히 겪었으며 인생의 절반을 원가족과 떨어져 친척댁에 혹은 홀로 지내왔으니 영 틀린 말도 아니다. 청소년기 당시 처음 맞이한 동떨어짐이 얼마나 비극적이었는지. 청소기 돌리고 쓰레기 버리는 간단한 일까지 이 커다란 슬픔과 고통 중 하나가 되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엄마는 나한테 이걸 시키지 않는데. 내가 왜 해야 하지? 가족이 아니라서?’ 안다. 모든 중학생이 저렇게 철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나는 새로운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은 고사하고 온갖 게 다 불만인 중학생이었다. 
다 자란  내가 어린 시절의 나를 대신해 변명하자면, 원가족과의 헤어짐이 너무도 갑작스러웠고 충분한 논의도 거치지 않은 채 이루어졌다는 게 큰 문제였다. ‘너 이 학교 계속 다니고 싶으니?’라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한 것만으로 나를 제외한 가족들이 하루아침에 다른 곳으로 떠나다니. 고작 열네 살이었고 새로 올라간 중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활발한 사교활동을 펼치던 때였는데! 가족들이 아니어도 충분히 격동적인 시기였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사춘기 아닌가. 
지금은 나보다 당시의 그 친척. 이모가 얼마나 큰 짐을 떠맡았는지 안다. 유치원생 딸 하나, 중학생 조카 하나와 함께 살며 직장을 다니는 삶이란 얼마나 고된가. 게다가 그 조카는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불행하고 힘들다는 생각에 한창 빠져있다. 누가 이런 체험을 해보겠냐고 묻는다면 두 번 고민할 것도 없이 단칼에 거절할 것이다. 그러나 이모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견뎌주었다. 추측하건대 이모와 엄마 사이의 끈끈한 유대감. 가족을 무엇보다 더 사랑하고 중심에 두는 성향 덕분이었을 거다. 
이모 집, 엄마 집의 거리가 아주 멀지는 않았기 때문에 열넷에서 열아홉 사이의 나는 주말마다 버스로 사십 분여가 소요되는 집에 가곤 했다. 집에는 내 방이 없었고 동생들은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게임 이야기이기도 했고 학교 친구 이야기이기도 했다. 대수롭지 않게 휙 지나가곤 하는 이야기들. 그러면 막냇동생에게 누가 더 좋으냐는 유치한 질문을 했었는데, 어떤 날은 언니라고 대답했고 어떤 날은 오빠라고 대답했다. 그때 나는 사랑하는 막둥이와 멀어지고, 멀어지고, 멀어지는 것을. 계속해서 멀어지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더 자라며 자연스럽게 그런 질문은 하지 않게 되었다. 모르는 이야기가 나와도 모르는 이야기구나, 넘어가게 되었다. 상실감은 잃을 것이 있다고 생각되고 기대치가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아주 치명적인 동시에 대수롭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내 세계는 가족으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었으니까. 
책을 좋아했고 게임을 좋아했으며 인터넷 헤매기를 즐겼으니 시간 쏟을 구석이 널렸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날도 있었고 다 같이 모여 판타지나 무협 소설을 돌려 읽는 날도 있었다. 시간은 한정적이니 정해진 시간에 버스를 타고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일이 귀찮았다. 배차시간이 무지막지하게 길었고 집에 가더라도 별달리 하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더더욱 그랬다. 자연히 집에 가는 주기는 주에 한 번이다가 격주에 한 번이 되었다. 중심축이 옮겨갔다. 그러면서도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 친밀함. 존재하면서도 결여된 것을 오랫동안 그리워했다. 
어디도 내 집이 아니라는 생각을 언제부터 했는지 또 그 시기가 어떠했는지 기억이 흐리다. 함께 부대껴 살며 축적되는 친밀감과 유대감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일까. 그런 생각을 최근까지도 했었으나, 이제는 이 모든 게 아주 오래되어 고리타분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여기서 시작된 자기연민과 고독과 외로움이 나를 구성하던 때가 길었고 그만큼 묵었던 것도 사실이니까. 
허리를 다 자르고 결론만 말하자면 지금 나는 내가 있는 곳이 내 집이라고 생각하며, 엄마(가족)을 그리워하며 울지 않는다. 더 가깝지 못해 안달 내던 시기도 지나갔고 동거인으로서의 역할을 군말 없이 이행하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은 다시 혼자 지내고 있지만.) 나를 제외한 가족들은 모두 놀라울 정도로 가족 중심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나는 늘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곤 한다. 어떤 날은 함부로 경계를 침범당해 당혹감과 분노를 느끼고 또 어떤 날은 오지랖 넓은 애정에 만족을 느낀다. 양가감정에 자주 노출되는데, 이 얘기는 또 길고 길다.
오랫동안 정리하고 싶던 이야기의 서두를 이제 겨우 쓴 것 같다. 혼자됨과 충돌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어떤 생각은 글로 쓰여야 나 자신도 그게 무엇이었는지 알아차리게 되니까. 뭉뚱그려져 해체를 기다리는 생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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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yobian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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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 갤러리가 꽃으로 가득 차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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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yobian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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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낙서 올립니다 ,,, 분위기가 넘 딱딱하지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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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yobian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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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yobian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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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있음!!
편지 있음!! ... 열어보시겠습니까? Yes.
안녕하세요. 이걸 보고 계시는 분은 어느 바다와 맞닿아 있으신지요. 제가 유리병 편지를 띄웠고, 당신이 이것을 들어올렸다고 해도 우리는 다시 연락할 길이 없지요. 저는 제 주소도, 당신의 주소도 모르니까요. 제 주소를 모르는 건 당신도 마찬가지겠지요. 하지만 이건 제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연락입니다. 무인도에 표류한 제가 누군가에게 말을 전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그래도 저는 희망에 제 마음을 베팅하기로 했어요.
저는 A국의 김인유예요. A국에서 2021.03.09에 출항한 비스호에 탑승한 선원입니다. 편의상 영어를 적어 써서 보냅니다만 제가 영어에 능숙한 사람은 아니라 의미가 전부 전해질지는 모르겠네요. 혹시 저 대신 저의 안부를 A국에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A국의 신문사든 어디에든 다 좋아요. 제가 남긴 편지와 근황을 그들에게 알려주세요. 큰 배의 선원으로 나서게 되었다며 웃었던 날들이 무색하게도 금세 사라져버린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유리병의 확률에 기대는 것 뿐입니다. 이 유리병이 땅에 도착할지, 그 땅이 사람이 사는 땅일지, 이걸 읽은 사람과 그 주변이 영어를 이해할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 유리병을 바다에 떠내려 보냅니다. 누가 읽었는지도, 제 여자친구인 민이, 언니인 수미, 다른 친구들, 스승에게 전해졌는지도 당장 알 수 없겠지만요. 막연하게 누군가 한 명 쯤은 이 편지를 펼쳤으리라고 믿어 보려고 합니다.
저는 매일 아침 일어나 돌을 주워요. 무인도의 땅바닥에 매번 더 크게 SOS 표시를 새기고 있거든요. 모래 위의 구조 신호표시는 금세 사라지고, 아주 크게 적었다고 하더라도 상공에서 보일지 가늠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도 모래 위의 그림보다는 모래 위의 돌이 사라질 염려도 적고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조악하게나마 만든 작살로 물고기를 잡거나 과일을 따다 먹습니다. 동물을 잡아보려고도 해요. 그런데 물고기나 동물을 잡는 건 참 어렵더군요. 특히 동물을 잡으려다 보면 이 안에 저보다 높은 포식자가 있을 것 같아 몸이 떨리기도 합니다. 다 젖었지만 함께 떠내려온 가방에 있던 음식들을 잘게 나눠 먹고 있어요.
불을 피우고 음식을 먹는 게... 분명 제 나라에서는 쉬웠는데 사람 하나 없고 기술도 없는 곳에 다다르니 앞이 캄캄하고 막막합니다. 김씨표류기 영화처럼 농사도 짓고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긴 서울의 한강, 그러니까 한국이란 나라의 번화한 도시 한복판이었지요. 그 섬에서의 표류는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도 흘러오는 곳이었기에 가능했던 걸까요. 그래도 저는 끝까지 살아볼 계획입니다. 누군가가 저를 드디어 찾았을 때 제가 너무 원시인 같을지도 몰라요. 말도 다 잊어버리면 더 원시인 같겠죠? A국의 말이나 영어를 잊지 않기 위해 혼잣말을 많이 하고 있어요. 모래 위에다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무용담을 적기도 해요. 모래를 종이로 쓰니 지우개가 필요 없더군요. 그런 점은 좋은 것 같습니다.
저는 잘 살아 있습니다. 제가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바다 위에 있습니다. 지구 위에 있지요. 그리고 이 섬은 다행히도 과일들이 있어요. 덥긴 한데 비가 많이 와서 습하지는 않아요. 열대 지방의 섬은 아닌가 봅니다. 벌레들도 많아서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하지만 그럭저럭 살 만은 합니다. 수렵, 사냥에 익숙해지면 조금 더 편해질 것 같아요. 누가 날 찾기를 바라는 동안에 나도 날 찾아야 하니까요. 남을 기다리다가 나를 놓치지 않도록 정신을 똑바로 잡고 있습니다.
한 차례 바닷물에 잔뜩 젖은 수첩과 필기구를 햇빛에 내내 말리는 동안 몇 장의 수첩은 바람에 날려 갔습니다. 제가 A국에 있던 ���절 먹고 싶은 것들을 적어뒀던 페이지였는데. 그 종이는 누군가에게 닿았을까요? 유리병에 담긴 게 아니니 땅에 도달하기도 전에 바다에 닿아 다 찢어졌을까요. 겨우 살아난 몇 장의 종이들에 빼곡하게 글자를 적습니다. 유리병은 제가 좋아하던 펩시 제로콜라 라임향 페트병으로 대신했어요. 유리병 편지가 아니라 페트병 편지라고 썼어야 했을까요? 페트병이 혹여 버려질까 페트병 위에 편지 있음!!을 적어두었는데, 보셨나요?
제가 닿아 있는 바다는 무슨 바다일까요. 시미양, 진해양, ... 여러 바다 이름을 생각해봅니다. 바다가 저수지처럼 닿을 수 있는 부분이 전해져 있다면 우리는 언젠가 만날 수도, 당신이 내 위치를 추정할 수도 있을 텐데요. 그런 점에서 바다가 망망대해라는 게 원망스럽기도 하네요. 분명 이런 점 때문에 바다를 좋아했던 건데도요.
바다는 아주 넓고 바다 위에 떠오른 그 순간부터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향할지 잘 모릅니다. 해류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건 계속 변화하고, 바다에는 암초도 있고 섬도 있어요. 바다 위에선 배와 돛, 연료 등이 없다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아요. 그 모든 것을 갖추었대도 그렇죠. 저는 정말 큰 배에 탔었어요. 그런데도 원하는 곳이 아닌 새로운 곳에 있습니다. 처음에는 살았다는 것이 기뻤고, 그 다음에는 차라리 자각 없이 죽는 게 낫지 않았을까 좌절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마음을 많이 추슬렀어요. 저는 살아있는 한 살아있을 거예요. 이 말만 지금 편지에만 몇 번째인지....... 그래도 이렇게 써야만 마음이 견고히 설 것 같아서요. 저는 살아있을 테니 모두가 나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운 좋게 이 편지가 땅에 닿아, 영어를 아는 사람에게 버려지지 않고 펼쳐졌다면, 그러니까 당신이 제 안부를 전해 들었다면요. 부디 바다에 유리병 하나를 띄워주세요. 제 친구들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모두 부탁하고 싶지만 유리병이라는 건 사실... 불확실한 거잖아요. 특히 유리병, 아니 페트병 편지에 답장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유치하고 순수하죠. 장난 편지일지도 모르고요. 그래도 저는 지금 그 유치함이 간절합니다. 이걸 받은 당신이라도 편지를 써서 띄워주세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보내면 하나쯤은 제게 닿겠지만, 그건 지구온난화에 일조하는 일이겠죠. 하하. 그러니 아무도 유리병을 띄우지 않더라도, 당신만은 보내주세요. 혹시 모르지요. 제가 아니더라도 무인도에 표류하고 있는 다른 누군가에게 닿을지도요. 그래서 그게 그 사람에게 하나의 희망이 될지도 몰라요.
저의 편지는 이 정도에서 마칩니다. 말이 길어졌네요. 하고 싶은 말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A국에 제 안부를 전해주세요. 저는 표류한지 일주일 정도 되었고, 지금껏 잘 살아 있어요. 밤은 약간 춥고, 내내 더운 이 무인도에서요. 저는 있는 힘껏 살아볼 예정입니다. 저를 포기하지 마세요. A국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모두에게 전하는 말입니다. 저를 언젠가는 찾아주세요. 저는 생명력 강한 모습으로 섬을 가꾸고 있겠습니다. 언제나 돌을 모으고 갈고 종이를 말리고 과일을 먹고 물고기를 잡으려고 노력하면서요. 생존게임에서 했던 것처럼 이것저것 해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살아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살아서 만나요. 저는 지금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답장하시겠습니까? ... (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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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yobian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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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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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yobian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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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yobian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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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yobian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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