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고 읽고 쓰고 자고 읽고 쓰고 가끔 먹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피우고(x) 마시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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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문제는 책 속이나 직유법에서 감지한 파동이 아닌 이상, 그 문장이 ‘진짜 그렇게 보여서’ 쓰여졌냐는 것이다. 토할 때까지 쓰고 나서 알았다. 문장은 많이 쓰여질 수록 스스로 거짓말을 한다. 타인이 아무 때나 내 인생에 발을 담그는 것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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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내내 도전했으나
일 년 내내 도전했으나 그럼에도 등단을 하지 못하면, 3년 차부터는 글을 쓸 때마다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실패.
두려움.
부끄러움.
가족에게 분노함.
노력의 쓸모(무의미함).
교수님들에 대한 원망과 미안함.
애인의 눈동자를 똑바로 보지 못하는 이유.
기계적인 글쓰기(하루 다섯 장, 이것이 과연 도움이 될까?).
가난과 불행(왜 부자와 행복에 대한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을까?).
흉내 내기(어떻게 하면 남이 쓴 글이나 등단작품을 잘 따라할 수 있을까?).
의심(주변사람들은 어떤 근거로 내가 등단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것일까?).
감동하지 못하는 마음(모비 딕의 첫 장을 읽어도 예전처럼 가슴이 설레지 않는 이유는 뭘까?).
포기(수십 편의 작품 중 단 하나도 뽑히지 않았다는 건 이제 그만 투고하라는 심사위원의 무언의 조언이 아닐까?).
교수님들의 말(시에서 실패하면 생활도 실패한다. 만일 네가 등단만 한다면. 등단은 운일 따름이야. 우리가 같은 ‘문인’ 동료로써…….)
막막함(소설가가 되는 것 외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만약 글쓰기를 그만둔다면 내가 앞으로 뭘 해야 할까? 내게 무슨 재주가 있을까?).
큰 산을 넘고 나면 그 뒤에 이어지는 것은 내리막길과 거기에 이어지는 평지라는 것을 어렴풋이 아는 것.
그리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의 선택(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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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다라고 말 할 수 있는 문장
하얀 회오리바람이 하늘을 향해 굵은 동아줄처럼 수직으로 뻗어 올라가고 있다.
(해변의 카프카 중에서 by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의 문장들을, 나는 아주 담담하게 '옳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옳은 문장은 어떤 소설을 만들까?
간혹 하루키의 문장이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양식미'를 능숙하게 이용하고 있으며 (애니매이션적인)이미지를 되살리는 힘이 강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러한 강력한 힘은 아마도 공통된 '취향'을 형성할 것이다.
사실 취향은 계발될 수 있다. 하루키의 작품이 보여주는 완성도가 그 명제를 증명한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포개지고 퇴적되고 겹친 취향들을 통해 어느 영화 감독은 코카콜라와 빅맥을 테이크아웃해 고야드 쇼퍼백에 담는 여자와 그 여자를 둘러싼 클래식 배경음악에 이르기까지의 총체적인 취향을 브라운관에 그려내게 된다.
물론 그런 미쟝셴을 보면서 어깨를 으쓱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 영화가 상영되는 곳이 옛날의 광주극장이라면 누군가는 군용 지포 라이터를 꺼내 찰칵하고 일회용 카메라의 셔터가 닫히는 소리를 내며 묵묵히 담배에 불을 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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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아! 하고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해변의 카프카(하루키)'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사에키 상이다. 그녀의 묘사는 다음과 같다.
'시계가 두 시를 가리켰을 때, 나는 책 읽기를 중단하고 소파에서 일어나 도서관 견학에 참가한다. 안내를 해주는 사에키 상이라는 사람은 사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날씬한 여성이다. 그 나이치고는 키가 큰 편인지도 모른다. 푸른색의 반소매 원피스를 입고 그 위에 연한 크림색 카디건을 걸치고 있다. 매우 자세가 좋다. 머리칼은 길고 뒤에서 가볍게 묶었다. 고상하고 지적인 얼굴이다. 눈이 아름답고 언제나 그림자처럼 엷은 미소를 입가에 띠고 있따. 잘 표현할 수 없지만 어딘지 완결된 느낌의 미소다. 그거은 나에게 조그만 양지를 연상시킨다. 어떤 종류의 깊숙한 장소에만 생기는 특별한 형태의 양지 같은 것을.'
사에키 상과 모리타 도지의 공통점은 아마 '음악'과 '죽은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사에키 상이, 비록 소설 속의 인물이지만 주부의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어, 하루키의 인물 묘사는 일관된 점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작품마다 미묘하게 다르고 '묘사만으로' 기억에 남는 인물도 다른데 내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인물 묘사는 다음과 같다. 아, 그러니까 '날마다 이동하는 신장처럼 생긴 돌(도쿄기담집 수록 작품)'에 나오는 키리에이다.
'그녀는 언뜻 보기에 준페이보다 키가 2, 3센티미터 정도 큰 것 같았다. 머리칼을 짧게 잘랐고, 온몸이 고르게 그은 피부와, 머리 모양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연한 녹색의 마로 된 재킷과 무릎까지 오는 플레어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재킷 소매는 팔꿈치까지 걷어올렸다. 재킷 안에는 심플한 면 블라우스를 입었는데, 옷깃에 작은 터키옥으로 만든 파란색 브로치가 달려 있었다. 가슴은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한껏 멋을 부렸는데도 지나침이 없었고, 동시에 뚜렷한 주관 같은 것이 흐르고 있었다. 입술은 도톰했는데 무슨 말을 끝낼 때마다 넓어지거나 오므라들거나 했다. 그 때문에 그녀와 관계되는 모든 것이 이상할 정도로 생기에 넘치고 신선하게 보였다. 이마는 넓고, 뭔가를 생각할 때마다 가로로 세 줄, 평행선을 그리며 주름이 잡혔다. 생각이 끝나면 그 주름들이 씻은 듯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하루키의 여성 인물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스푸트니크의 연인' 속 '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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終曲のための第3番 (友への手紙) 내가 사랑했던 친구, 그리고 모형비행기의 공작용 나이프로 자른 손가락 끝의 작은 상처자국을 나는 언제까지나 사랑했다. 우리들이 잃어버린 온화함도 새벽녘 어스름한 아스팔트 위에 죽은 비둘기의 목덜미의 부드럽고도 따스함이여 지금 나는 어렴풋이 죽음의 의미를 떠올린다. 안녕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친구여. song by 모리타 도지(森田 童子, もりた どう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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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검토하다
소설을 검토하다 ‘연애소설을 무시해서 결혼에 실패했다’는 무지막지하게 폭력적인 대화를 읽게 되었다. 그런 발언을 한 사람은 물론 ‘연애소설을 무시해서 결혼에 실패’한 당사자이거나 ‘연애소설을 광신해서 결혼에 실패’한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소설이니까. 또 소설인 이상 다른 선택지는 있을 수가 없고 그래서 문학은 허구이지만 우연은 아닌 세계가 되는 것이리라.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상상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한 모든 것이 가능’한 세계는 실존해 있는 지금 이 공간이지 소설 속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 알고 보면 소설 속의 세계는 ‘반드시 가능’해야만 하는 것이다. 내가 그 규칙을 어기고 ‘결혼에 성공’한 남자(우연에 의하면 이런 배치가 가능하므로)에게 저런 대화를 주었다면 소설은 ‘당연히 불가능’해진다.
그러니까 이 아저씨는 결혼에 실패했을까 성공했을까?
약간 방향을 틀어서, 이 상황에서 소설을 성립하게 만드는 또 다른 경우는 ‘자식 교육에 실패한 아저씨’가 있을 것이다.
결국 실패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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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쪽으로 세 걸음' 소식이 궁금해
텀블�� 계정을 열게 된 계기를 첫 포스팅으로 적어볼까 한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 이 포스팅을 읽고 피식 웃을 수 있도록.
몇 년 전부터 김연수 작가님의 바다 쪽으로 세 걸음 소식을 쭉 궁금해 해 왔다. 이 작품을 만난 순간부터 그랬을 것이다. 그래 봐야 검색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이지만 나름대로 행적을 쫓아보다가 2014년에 나올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하지만 12월 말로 접어들고 있는 지금 단행본은 나올 기미가 없다.
그래서 (나���대로)용기를 내어 메일을 보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2009년 창비에 나온 메일 계정밖에 아는 바가 없지만, 또 netian.com이라는 계정 정보에 불안함도 느꼈지만 일단은 써 보기로. 그런데 역시나 존재하지 않는 계정인 듯싶었다. 메일은 되돌아왔다.
다시 검색, 검색. 텀블러를 알게 되었다. 나는 뭔가를 시작하는데 지루하게 신중한 성격이다. SNS를 싫어한다. 제대로 활용도 못할 계정을 만들고 싶지 않다. 하지만 텀블러에 가입하면 김연수 작가님의 텀블러를 팔로잉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바다 쪽으로 세 걸음'의 소식도 언젠가 자연스레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이 텀블러 계정을 만들게 된 계기의 전부다.
메일은 그대로 버리기 아까우니까 본문을 여기에 남겨두려고 한다. <김연수 작가님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알프스 산양버터(물론 메일에는 본명을 썼지)라고 합니다. 광주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이에요.
2009년 창비에 적혀 있는 메일 주소를 보고 이렇게 메일을 쓰게 되었는데 5년이나 지난 지금은 이 메일을 확인 하실지 어떨지 모르겠네요.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다 쪽으로 세 걸음' 소식이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어디선가 올해엔 '바다 쪽으로 세 걸음'이 단행본으로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창비에 연재하실 때에도 수십번을 거듭 읽었던 작품입니다. 생각 날 때마다 검색도 해보구요. 그래서 꼭 단행본으로 읽고 싶은데 12월인 지금도 소식이 없더군요.
올해 단편집이 나왔기 때문에 장편 단행본은 출간하지 않는 건지, 아니면 건강이 나쁘시거나 작품이 잘 마무리가 되지 않는 건지.. 마지막회 연재 때 '바다 쪽으로 세 걸음'은 기획하신 시리즈의 일부라고 하셨으니 그만큼 작품을 다듬는데 시간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 보고...
혹시 괜찮으시다면(언짢지 않다면) 소식을 살짝만 가르쳐 주실 수 있을는지, 물론 귀띔 없이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
바다 쪽으로 세 걸음은 너무 좋아해서 필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문장과 문장 간에 연쇄반응이 있어요. 따라 써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지만.. 필사를 할 때 손가락 끝에서부터 미열이 느껴져 한 챕터가 끝나면 온 몸이 따끈따끈해지거든요. 그래서 더욱 더 단행본으로 만나고 싶어요. 이 문장들이, 챕터가 플롯과 얼마나 친밀하게 섞일 수 있을지도 궁금하고 단행본으로 만난 '바다 쪽으로 세 걸음'은 따스하다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 같거든요. 정말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될 거고 이런 책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 거예요.
아. 바다 쪽으로 세 걸음은 제목도 참 좋아해요. '세 걸음'인 게 특히 좋습니다. 작품을 읽어 보면 당연히 세 걸음이어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어요.
저는 이 소설을 너무 좋아해서 어떻게 얼마나 좋아하는지 작가님의 다른 소설을 끌어다 이야기 해 볼 수도 있어요.
'인구가 나다'라는 작품에서 영화관에서 손가락을 빠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저는 그 때, 그러니까 그 순간에 가슴이 뻐근해지는 그런 종류의 감동을 느꼈어요. 어떤 느낌인지는 작가님이 가장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바다 쪽으로 세 걸음에서는 거의 매 문장에서 같은 기분을 느껴요. 매 문장이라는 표현이 조금 과하다고 해도 거의 사실이라고 생각됩니다. 어쩌면 시의 감동과 비슷해요. 분명한 산문이지만요. 아마 이 작품 속 문장들이 시가 가지고 있는 몇 가지 그림자 중에 가장 차가운 그림자 몇 개를 뒤집어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자주 했어요.
역시 설명을 제대로 못했네요.
이런 메일 때문에 부담을 느끼실까봐 걱정이 되네요.
연말 잘 보내세요. 열매(맞지요 열매?)도 건강하게 한 살 더 먹기를 바랍니다. 이 메일이 무례하게 느껴졌거나 불쾌했다면 사과드릴게요. 그건 제 본의가 아니었습니다.. 충분히 다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저는 '바다 쪽으로 세 걸음'을 단행본으로 꼭 꼭 만나고 싶습니다.> 이상. 다 했다. 다음 포스팅이 있을지 지금은 확신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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