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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cle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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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취업시장에 대한 다짐
취업시장이 상반기 채용 시즌인가보다. 나 같은 경우는 언론사를 희망하고 있어 취업을 준비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그래서 친한 지인들의 준비 과정을 보면서 그 긴장감을 간접적으로 체감하고 있다. 옆에서 볼 때 가장 마음 아픈 순간은 아무래도 탈락의 순간들이다. 선택되지 않았음을 통보 받을 때 ‘그럴 줄 알았다’ 나 ‘기대도 안했다’ 따위의 말들 속에 담긴 씁쓸함이 술 잔 너머 앉아 있는 나에게 까지 전해졌다. 그럴 때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갑자기 밀려와 덜컥 겁이 나곤 했다.
그럴 때 마다 생각하고자 하는 장면이 있다. 나는 야구를 참 좋아하는데 이제는 ‘키움 히어로즈’로 이름이 바뀐 넥센 히어로즈의 팬이다. 이 팀의 주축 선수들이 내 나이 또래이거나 심지어 나보다 어린 선수들도 많아서 팀 분위기가 젊은 데다 한 경�� 한 경기 너무 절박하게 뛰는 모습에 매료되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셔주는 ‘장면’은 넥센의 저번 시즌 플레이오프 5차전 경기의 후반부다. 당시 일이 있어 문자 중계로 경기를 보았는데 점수가 9대4까지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상대는 SK 와이번스) 이대로 시즌이 끝나나 했다. 그래도 여태 응원한 정이 있으니 9회는 보자해서 중계 방송을 봤는데 머리털이 곤두서다 못해 모낭까지 뽑히는 줄 알았다.
9회에 SK가 안정적으로 경기를 끝내기 위해 선발 외국인 투수를 마운드에 세웠다. 하필 넥센은 하위 타순부터 시작이라 전혀 기대 안하고 있었는데 교체된 투수 제구가 흔들리고 행운까지 겹치면서 점수차는 좁혀졌다. 어느새 5점차 경기는 2점차로 좁혀지고 가을야구 내내 죽 쓰던 넥센의 4번 타자 박병호 선수가 동점 상황에 타석에 들어섰다. 거짓말처럼, 정말 거짓말처럼 기어코 홈런을 때렸다. 우중간으로 깔끔하게 밀어 친 홈런에 스코어는 동점이 되었다. (홈런 치고 멈춰서서 타구를 바라보다 1루로 달려가는 박병호 선수의 모습은 이 경기의 하이라이트다.)
영화 같은 경기의 결말은 넥센이 10회 말 상대팀 백투백 홈런으로 지는 것으로 끝난다. 그 발악을 했는데도 지는게 아쉬웠다. 그런데 져도 그들을 욕하고 싶다기 보다 괜히 뭉클하다. 이 팀은 탈락까지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겨두고도 끈질기게 물어지고 물어지다 상대팀이 진짜 질려서 ‘얘네 결승 보내자’하는 생각이 들 때까지 가서야 졌다. 그러니 9회 동점 스코어를 멋지게 지키고 10회에 다시 마운드에 선 투수가 역전을 당했다 한들 어떻게 욕을 할 수 있을까. 참 졌지만 잘 싸운 경기였다.
“졌지만 잘 싸웠다.” 이 경기를 취업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에 가슴 한 켠에 챙겨 둔 이유다. 현실은 이래나 저래나 성과주의다. 야구도 그렇고 어디든 이기고 지는 순간이 있고 이기는 것을 중요시 한다는 것은 과정보단 성과를 중요시한단 뜻이다. 그렇게 하는 데는 피치못할 사정도 있겠지만 지거나 선택받지 못한 순간이 씁쓸한 것은 숨기기 어렵다. 그래도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된다면 그 씁쓸함이 빨리 가실 것 같다. 결과는 내가 졌을지 모르나 내가 겪은 경험이 나 또는 타인의 기억에 남을 수 있고 내 인생에 큰 감동을 주는 순간이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매 순간이 그렇지 않겠지만 그래도 이기기 전까지 취업시장에서 내가 ‘졌잘싸’ 이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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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cle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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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의 역습
꼰대를 무작정 비판할 수 있을까.
꼰대는 기성 문화의 잔재로부터 형성된다. 크게 보자면 ‘보수적 태도’의 범주에 속한다. 꼰대란 자신이 살아 온 삶에 녹아 든 문화, 즉 거시적 구조에 너무나도 알맞게 순응해 온 결과다. 그런 그들을 우리는 과연 무작정 비판해도 되는 걸까? 물론 비판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꼰대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문화에 대해 한 번도 비판적으로 살펴보지 않았음은 분명 짚고 넘어가야한다. 그 어떠한 비판의 여지도 없이 살아왔다는 것은 때로 잘못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나 문화 전반에 대해 순종적 태도를 갖는 것을 반드시 개인 탓이라 할 수 있을까.
여러가지 가정을 해보자. 만약 꼰대가 돼 버린 개인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데 급급했다면? 혹은 꼰대가 돼 버린 개인의 삶에 그 사람의 그릇된 생각을 짚어줄 소통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면? 그럼에도 그 개인은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 때로는 증오 섞인 비판을 마땅히 받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에게 기성세대의 잘못이 보다 뚜렷하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그 시대를 살면서 현재를 비판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객관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과학 분야가 갖는 고민인 연구 객체인 인간이 연구 주체가 되는 문제와 비슷한 이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젊은 세대가 과거에 대해 갖는 비판의식의 우위는 ‘현재를 살아가는 개인이 과거보다 위대해서’ 라고 보긴 어렵다. 그럼에도 젊은 세대들이 보이는 작금의 꼰대를 향한 비판들은 일종의 ‘우월의식’에서 비롯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꼰대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소통을 통해 이룰 수 있는 진정한 사회적 ‘진보’는 실현되지 못한다. 다만 세대 균열만 짙어 질 뿐이다.
현재 꼰대를 ‘규정하는 문화’는 정확히 설명하자면 꼰대라 규정함과 동시에 그 개인을 조롱하고 배제시킨다. 즉 꼰대들이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소통들에 참여하는 것을 막는다. 현재의 젊은 세대는 그런 점에서 무작정 ‘그르다’라는 것만 주장할 줄 아는 세대에 불과하다. 이는 SNS 문화의 확산과 관련있다. 젊은세대를 주축으로 SNS 이용의 폭발적 증가는 ‘힙함’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발악하는 세대를 만들었다. 공감을 유도하기 위해 자신의 사고와 사상을 개조하는 시대를 불렀다. ‘힙합’으로 치환되는 다양한 정상의 범주 혹은 인기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다수의 생각에 고민 없이 동조하는 시대다. 자연스럽게 힙하지 않은 다른 모든 것은 배제하고 멸시한다.
이 버릇은 젊은 세대로 하여금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꼰대가 되도록 한다. 그토록 꼰대를 증오하고 그들의 생각을 배제시켜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한 이들이 시간이 지나 또 다른 꼰대가 되는 것이다.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핵심은 ‘꼰대와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라는 문제와 연결된다. 이는 ‘꼰대를 설득하고 개조할 수 있는가’의 문제와도 연결되는데 그 시작은 그들 목소리를 듣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문제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현재의 문제 회피 성향의 배제적 비판은 매우 제한적이다.
‘빅뱅과 원더걸스 그리고 BTS이 아이돌 세계에서 갖는 위상을 순위 매겨라.’ 라는 질문이 있다고 하자. 아마 현재 초중고를 다니는 학생들과 2030의 대답은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다. 빅뱅과 원더걸스가 국내 가요계를 양분했던 시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세대에게 비록 BTS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한들 아이돌 세계에서 갖는 위상은 그들의 우상이 더 크다 판단할 수 있다. 즉 꼰대화는 누구에게나 적용되고 있다. 나도 모르는 새 내가 살아온 문화는 나에게 스며들고 그에 맞는 정체성을 형성하게 한다. 따라서 시간이 지나서 자신이 살았던 문화가 잘못되었다 할지라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피하지 말고 꼰대의 생각을 듣자. 분명하게 듣고 분석하고 소통하자. 그것이 현재의 진보와 더불어 미래의 진보를 매끄럽게 하는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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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cle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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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꼰대는 ‘하느님’ 밖에 없다
- 들어도 들어도 적응 안되는 그들의 화법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꼰대’같은 말을 해도 미워할 수 없는 존재는 ‘신’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네, 말 그대로 GOD 이요.
얼마 전 부활절, 드디어 내가 다니는 성당이 재건축을 마쳤습니다. (알 수 없는 어른들의 사정으로) 고깃집 건물을 성전으로 사용하다가 나온지 1년 10개월 만이었습니다. 나는 스무살 때부터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는데요. 상가 건물에 세들어 살던 지난 1년 10개월은 아무리 기쁜 노래를 불러도 맥이 빠지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새 성전에서 첫 미사를 드리던 날, 1년 10개월 만에 이삿짐 박스에서 성가대 단복을 꺼냈습니다. 그동안 단복들은 어디 걸려있을 공간도 변변하게 없어 박스에 몸을 의탁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이 솔찬히 불편했는지 구깃구깃해진 옷들은, 세탁을 하고 다림질을 두세번 해도 매끈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10년 동안 입어왔던 단복을 바꿔야겠다는 말이 성가대 안에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차라리 단복을 입지 말고 노래를 할 걸 그랬나요?
이런 생각을 한게 우리 만은 아니었는지, 미사가 끝나고 단장님에게 전화가 왔더랍니다. 그런데 그 분이 하시는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정말 클리셰 덩어리였습니다.
아니…… 제가 아들, 딸 같아서 얘기하는데요.
⁃ 여기서부터 느낌이 쎄합니다.
제발 그 단복 좀 빨아서 다려 입어요!
도저히 집중이 안돼서 미사 끝나고 직접 가서 얘기할까 하다가 참고, 집 오자마자 연락하는 거예요!
⁃ 직접 얘기를 해주셨으면 자초지종을 설명해드렸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면 안돼요. 나 진짜 분심이 일어나려고 했어요.
새 성전이랑 너무 안 어울리지 않아요?
다음부터는 조심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 할 말이 끝난 후 바로 전화를 끊으시더랍니다.
옷의 구김으로 인해 기도 중에 마음이 어수선해졌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은 넝마 조각을 걸치고 있는데, 거기에서도 분심이 생길까요? 예수님이 새로 봉헌된 성전을 내려 보다가 성가대복의 구김을 가리키며, ‘정성이 부족하네!’ 라며 질타할까요?
(후…후… 진정진정)
분심이 생기면 이 앞에서 기도하면 됩니다
 말은 ‘어떻게 꺼내느냐’에 따라서 들을 때의 기분이 묘하게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아니시에이팅’이라는 신조어를 아시나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화를 할 때 ‘아니……’라는 말을 꺼내면, 이는 바로 상대방에게 시비를 걸거나, 불평불만을 늘어놓을 징조라는 것입니다. 이 말이 정말 절묘한 데요. ‘아, 이건 한 마디 해야겠다’라고 마음 먹은 순간, 나도 모르게 입(또는 손)으로 ‘아니……’를 내뱉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곤 합니다. 여러분도 한 번 자각해보시길.
하나 더. ‘아들 딸 같아서 얘기하는데요’는 아니시에이팅 보다 더 최악의 화두입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아들, 딸이라고 할 수 있는 주체는 이론적으로 생각해봐도 ‘하느님’ 정도 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건 나의 작은 앙탈이지만, 나의 어머니는 저런 식으로 나를 혼내지 않습니다.
 이렇게 쓰다 보니 단복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책임에 대해 변명을 늘어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어서인지 예산 문제에 한없이 깐깐하던 신부님이 흔쾌히 새 단복을 맞추라고 허락해주신 걸 보면, 인생사는 역시 새옹지마입니다.
 앞으로는 돈이 조금 더 들더라도 성가대 단복은 드라이 클리닝을 맡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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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cle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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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행에서 얻은 것
내가 한 여행들은 언제나 나에게 피로를 남겼다. 여행지를 마냥 걷다 육체적 피로를 얻기도 했고, 여행지의 아름다움을 소화하려 두뇌를 풀로 가동하다 정신적 피로를 얻기도 했다. 피로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의 나는 늘 기진맥진했다. 얼른 집에 가 쉬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지난 주에 다녀온 제주도 여행은 달랐다. 여행을 마치고 김포공항 출구를 나서는데, 전혀 피로하지 않은 것이다. 도리어 산뜻한 기분을 느꼈다.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도 내 안에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오며 이런 기분은 느껴 본 적이 없어 나도 내가 신기했다.
소설가 김영하는 산문 <여행의 이유>에서 여행기는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 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나 또한 얻고자 했던 것은 반쯤만 얻고, 예상치 못했던 것을 얻어온 여행을 했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 내가 얻고자 한 것은 단 두 가지, 철저한 쉼과 무한한 영감이었다. 그래서 숙소도 관광지와는 거리가 있는, 서쪽의 조용한 시골 마을 판포리에서 구했다. 일몰 시간 이후엔 가로등 불빛 하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번화하지 않은 곳이었다. 더 많이 구경하고 더 많은 사진을 찍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잘 자고, 잘 먹고, 깊이 생각하고 싶었다.
참 잘 쉬었다. 판포리의 내 방은 고요했다. 밤에 불을 끄고 누우면 정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강변북로를 접하고 있는 서울의 내 방에서 매일같이 소음에 시달리다 맞이한, 꿀같은 시간이었다. 너무 잘 잤다. 매일 밤 여덟 시간씩은 꼭 잔 것 같다. 또, 어딜 갔다 왔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가만히 있었다. 판포리 동네(에 있는 바다 주변)를 걷고, 서점에 가서 책을 읽고, 북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노래를 들으며 걷고, 노래를 부르며 걸었다. 오랜만에 제주도민 친구들도 만났다.
영감은 못 얻었다. 제주도의 돌담, 즐비한 선인장과 그 끝에 피어난 백년초, 끝간 데를 모르고 펼쳐진 바다, 여유로운 사람들…. 이런 제주의 환경에 처하면 재밌는 이야기를 쓸 온갖 영감이 피어날 줄 알았다. 그런데 영감을 얻어야지 하고 바다를 가만히 바라보면 오히려 생각이 점점 없어지는 것이었다. 점점 더 멍해졌다. 눈 앞의 풍경에 눈과 생각과 마음을 모두 빼앗겨서 그 외의 새로운 생각이나 영감 따위는 낄 새가 없었다.
예상치 못하게 얻은 것도 있었다. 하나는 생활 습관. 나는 스스로 충분히 납득되지 않으면 믿지 않는 사람이다. 예컨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좋다는 말도 어린 시절부터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나는 그저 하나의 교조적 명제로 여겼다. 어떤 이에게만 좋은 것을 과도하게 일반화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제대로' '자발적으로' 행해본 적도 없었다.
내가 묵은 게스트하우스는 밤 11시에 공용 공간을 소등하고 욕실 사용도 자제시켰다. 자연스럽게 나는 11시 이전에 씻어야 했고, 같이 묵던 게스트들과 수다를 떨다가도 11시에는 내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누워 일기도 쓰고, 그 날 찍은 풍경 사진도 포고, 책도 읽다 보면 자정이 지나기 전에 시나브로 잠기가 왔다. 푹 자고 일어나면 알람 없이도 8시에 깼고, 9시에 조식을 먹었다. (이 시간이 과연 ‘일찍’인지는 차치하자.)
그렇게 사흘을 지내 보니 너무 좋은 것이다. 완전히 납득됐다. 푹 자서 컨디션도 좋고, 아침에 일과를 시작하니 하루도 길게 느껴지고, 긴 수면시간을 확보하려니 하루 일과의 집중도도 높아지고, 잠들기 한 시간 전에는 침대에 누워 잘 준비를 시작하니 잠의 질도 높아졌다. 서울로 돌아와서도 비슷한 생활패턴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고,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
예상치 못하게 얻은 또 다른 하나는 이소호 시인이다. 작지만 알차게 큐레이팅된 고산리의 작은 서점에서, 이전엔 존재도 몰랐던 이소호 시인을 발견한 것이다. 그녀의 시집 ‘캣콜링’에서 고작 몇 개의 시를 훑었을 뿐인데 나는 순식간에 매료됐다. 시를 어렵게 생각했고, 오래된 것이라 생각해 왔다. 젊은 황인찬 시인의 시집을 선물받은 적이 있었지만, 재미를 붙이진 못했다. 이소호 시인의 시는 대단히 현대적이고, 충격적이고, 충격적일 정도로 좋다. 요즘 밤마다 그녀의 시를 한두 개씩 읽고 자는 재미가 있다.
얻고자 했던 것은 반쯤 얻고, 예상치 못했던 것도 조금 얻은, 어떤, 피로하지 않았던 여행. 처음으로 해 본 피로하지 않았던 여행이었다. 일상을 다시 살아갈 힘을 준 여행이었다. 이런 여행이 있어야만 살 힘을 얻는다는 것이 조금 슬프고 웃기지만, 앞으로 피로한 여행과 피로하지 않은 여행을 적당히 버무려가며 써 나갈 나의 새 여행기들이 기대된다. 이렇게 기대할 에너지도 이번 여행에서 얻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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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cle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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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와 권위주의에 대한 생각
권위
(1) 남을 지휘∙감독하거나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힘.
(2) 일정한 부문에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일정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능력이나 위신. 또는, 그런 사람.
권위주의
어떤 일을 권위에 의지하여 해결하려는 태도. 또는, 귄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태도.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한 가족 옆에 서게 됐다. 아빠, 엄마, 그리고 초등학생 쯤 돼 보이는 아들로 구성된 가족이었다. 그들에게 우연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들이 아빠에게 칭얼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속사정이 궁금해 은근슬쩍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는데, 사정은 이런 듯 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아들이 보도의 가장 바깥, 차도의 가까이에 가서 선 모양이다. 그래서 아빠는 안쪽으로 들어와서 기다리라고 했고, 아들이 그 말을 듣지 않자, 아빠가 말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아들을 나무란 것 같았다. (물리적인 방법을 사용했다는 이야기다.)
거기서 아들의 칭얼거림, 혹은 정당한 자기주장,이 시작된 거다. 왜 말로 하지 않고 자신에게 그랬냐고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모 중 어느 누구도 아들의 이야기를 진중하게 들어주지 않았다.
아빠는 아주 덤덤한 말투로 "네가 말로 해서 안 들으니까 그렇지."하고 말했다. 아들의 성에 차지 않는 대답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내내 아들의 항의는 계속됐다. 엄마는 짜증이 났다. "아, 그만해. 네가 말로 해서 안 들으니까 그랬잖아. 말을 들었어야지."
'말로 해서 안 들으니까 그렇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 사용하는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말이다.
아들은 자신이 겪은 불합리한 상황에 얼마나 울화통이 터졌을까. 아이의 잘못, 혹은 아이의 위험한 행동에 대해서는 혼내고 지적해야 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저렇듯 담담하고 무심하게, 아이의 항변을 듣지도 않은 채로 폭력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을 지나치면서, 아들에게 공감하며, 마음속으로 격하게 화를 낸 것은 나 또한 수 차례 비슷한 레파토리에 처해봤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기 전, 내가 혼나던 상황들을 나는 패턴화할 수 있다.
주로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내가 엄마와 말다툼을 시작한다. 말도 꽤 잘하는 편인 데다 고집도 세고 감정적인 나는 엄마가 싸움에 지치고 엄마를 감정적으로 바꿔놓을 때까지 몰아친다. 그러다 갑자기 가족 씬에 잘 등장하지 않는 아빠가 어디선가 나타나 나를 혼낸다. 효자손 같은 것을 한 손에 들고는 한 번만 더 엄마에게 대들면 말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빠와 친하지 않고, 말이 아닌 다른 방식을 무서워하는 나는 더 항변하고 싶은 마음과 억울한 마음을 꾹 참고 내 방으로 들어가 문을 꼭 걸어잠근다. 엄마와 나, 둘 사이의 문제를 아빠에게 넘겨 해결하려는 엄마에게 분노하는 나는 한동안 엄마와 말을 섞지 않는 것으로 무언의 항변을 이어간다.
권위주의적 해결은 간단하고, 신속하며, 편리하다. 부모의 감정소모를 덜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 횡단보도의 그 아들이 부모에 대한 이성적 평가를 내리기 시작할 때, 아들은 자신의 권위주의적 부모를 어떻게 평가하게 될까?
나는 청소년기 내내 "권위주의적인 우리 아빠는 불합리해. 어떤 말도 통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대화하자는 제안은 모두 허울뿐이야."하는 생각으로 내 마음을 가득 채웠었다.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아온 아빠에 대한 강력한 편견은 내게서 아빠의 권위주의적이지 않은 면모를 발견할 기회를 빼앗아갔다. 그럴 마음의 구석을 남겨두지 않았다.
부모에게 부모로서의 권위가 있는 것과 권위주의적인 부모는 다른 것이다. 권위와 권위주의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꼰대’다. 지금의 편리한 권위주의는 횡단보도의 그 ‘꼰대’ 부모에게 장기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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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cle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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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브론의 플레이오프 탈락을 바라보며
“Strive for Greatness” 그는 반등할 수 있을까.
전지적 르브론 팬 시점 2018-2019 NBA 시즌 결산.
“니가 무슨 일이 있든, 니가 무슨 짓을 하든, 세상에 단 한 명쯤은 니 편 들어줘야 힘이 나지 않겠냐?”
- 김재영x류혜영 주연 <은주의 방> 中
글을 써내려가기에 앞서, 이 글의 특이사항을 먼저 밝히려 한다. 이 글은 르브론 제임스의 17년차 팬 (르브론 제임스 데뷔 2003년도, 필자 입덕 2003년도)의 입장에서 쓰는 매우 주관적인 글이다.
1984년 12월 31일생, 올해로 한국 나이 36세.
2003년 19세의 나이에 데뷔하여 올해로 17시즌째.
스포츠계에서는 은퇴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나이이거니와, 현역으로 활동한다 하더라도 벤치에 있는 것이 어떻게 보면 덜 어색할 것 같은 나이이다.
(동기인 Dwayne Wade가 올 시즌을 끝으로 화려한 커리어를 끝내는 것만 봐도 말이다.)
그런 나이에 르브론은 올해 시즌 성적 27.4-8.5-8.3 (득점-리바운드-어시스트)의 기록을 갖고도
9년 연속 파이널 진출
13년 연속 NBA-First Team 선정 (해당 시즌 Best 5를 말한다. 경쟁자인 Giannis Antetokoumpbo, Paul George, Kevin Durant 등이 개인/팀 성적 모두 걸출한 성덕을 보이고 있어 르브론보다 이번 시즌 First Team으로 선정될 확률이 현저히 높다)
15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이 과업에 실패하였다는 이유로 모든 언론 및 농구팬들의 관심과 비판을 받았다. 정상의 자리에서 한 발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좋아하며 각종 Meme('짤'이라고 한다) 로 조롱하는 인터넷 상의 수많은 NBA팬들(a.k.a 르까)과 르브론의 시대는 갔고 그는 더이상 최고의 선수가 아니라며 신랄하게 비판하는 수많은 언론들. 이 모습들이 분명 르브론의 팬 입장에서 보기 굉장히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렇게 리그 전체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가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2018-2019 시즌을 르브론 중심에서만 바라보면 파랑만장했던 한 시즌이었다. 지금부터 오로지 그의 관점에서 시즌을 정리해보려 한다.
10월 : 수많은 우승 컨텐더 팀들로 이적할 수 있었음에도, 가족을 위해, 특히 자녀의 교육을 위해 LA로 이적하며 어색하기 짝이 없었던 Purple & Gold 유니폼을 입고 새 시즌을 맞이한다.
11월 : 처음 맞춰보는 팀 케미스트리, 신인 선수들의 기복에 불안정한 시즌 초반을 맞이한다. 이전 시즌 클리블랜드 때와 다른 점이라면, 리딩을 팀의 포인트가드 Lonzo Ball과 Rajon Rondo에게 맡겨놓고 득점 면에 좀 더 치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12월 : 점차 레이커스 팀 간 호흡이 맞아가고, 레이커스는 상승세를 타 12월 중에는 서부 4위까지 오르게 된다. 뿐만 아니라 크리스마스 매치에서 전년도 우승팀이자 리그 최강팀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상대로 경기력에서 압도하며 대승을 거두게 되고, 젊은 팀답게 분위기는 하늘 끝까지 치솟게 된다. 르브론은 바뀐 롤에 적응하며 리그 MVP RACE에서 1위를 달리며, "역시나 올해도..?" 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골든스테이트와의 경기 3쿼터에 르브론은 큰 파장을 몰고 올 부상을 당하게 되는데..
르브론 부상에 관한 여담
르브론의 수많은 별명 중 하나는 금강불괴이다. 1년에 9억 정도의 돈을 몸관리에 투자한다고 한다. 단순한 피지컬 트레이닝 뿐 아니라 전문 트레이너들이 투입된 플라잉요가, 크로스핏, 필라테스 등을 병행하고, 몸에 도움이 되는 것이하라면 아낌없이 투자하는 르브론이다. 선천적인 그의 몸과 후천적인 관리가 시너지를 내어 르브론은 커리어 ��내 부상으로부터 자유로웠다. 다치지 않는 몸이었다. 나만 해도 라이브 경기 중 착지 과정에서 르브론 발목이 완전히 꺾이며 그가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몇 차례 보았으나, 땅에 발을 퉁퉁 치고는 한 10분 쉬다가 다시 출전하여 30득점 경기나 트리블더블급 경기를 달성하고 하는게 르브론이었다. 팬의 입장에서 참 든든했다. (유리몸 선수는 팬질하기가 너무 힘들다. 마음도 아프고 말이다.) 오죽하면 르브론 팬들이 그의 손톱 물어뜯는 습관을 "손톱을 먹으면 부상부위가 회복된다"라고 까지 표현했을까. 르브론 뿐 아니라 르브론 팬들도 부상 위험과 걱정에서 어느 누구보다 자유로웠다.
1월:  36세의 나이 탓인지, 간만의 부상 탓인지, 바뀐 롤 탓인지, 르브론의 부상으로 인한 회복기간은 예상보다 길어지게 된다. 처음에는 1주일이면 다시 복귀한다고 했던 것이, 2주가 되고, 3주가 되고, 르브론은 장장 약 20경기를 부상으로 빠지게 된다. 골든스테이트에 거둔 승리 덕에 초반에는 레이커스의 어린 선수들이 "르브론 없이도 레이커스는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당찬 포부 속에 경기를 풀어갔지만, 이내 선수층이 얇다는 것 ��면적으로도 영향을 미치며 레이커스는 차츰 무너지게 된다. 르브론이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기에 이를 메꾸기 위해 한 발씩 더 뛰던 선수들은 하나둘씩 다치게 된다. 특히나 시즌 중반 새로 영입해 고무적인 활약을 펼친 노장 센터 Tyson Chandler와 포인트가드 Lonzo Ball이 잇따라 부상을 당하며 레이커스는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고 4위에서 8위로 떨어지게 된다.
2월 : 힘겹던 레이커스의 팀 케미스트리를 박살내는 사건이 터진다. 바로 '앤써니 데이비스 트레이드 드라마'. 리그 최고의 4번 파워포워드 자원이자, 최고로 다재다능한 빅맨으로 불리는 뉴올리언스의 Anthony Davis가 "뉴올리언스 팀에 더 이상 있고 싶지 않다. 이적을 하겠다."고 발언을 하고 이전부터 데이비스에 눈독 들이던 레이커스 프런트는 그를 데려오기 위해 총력전을 펼친다. 주축 선수들까지 활용해 여러 트레이드 조합을 제시하였으나, 뉴올리언스는 잇따라 거절하였고, 급기야는 8대2 트레이드까지 제시한다. 이에 레이커스 선수들은 들떠 있어야 할 올스타 브레이크를 앞두고 "어차피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데이비스-르브론 조합을 위해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될 것"이라며 의욕을 상실한 모습을 보인다. 사실 르브론은 당연히 이에 관여를 하지 않고 오로지 팀 프런트에서 르브론을 제외한 모두가 트레이드 가능성이 있다며 작업을 진행시켰음에도 언론에서는 르브론이 데이비스를 데려오기 위해 모든 팀을 팔아넘기고 템퍼링(Tampering. 사적으로 연락하여 이적을 유도하는 행위로 NBA에서는 철저히 금지되어 있다.)을 한다며 팀의 와해, 분열을 유도하고, 레이커스의 팀 케미스트리는 성공적으로 박살이 난다.
그 와중에 르브론은 2년 연속 All-Star 캡틴에 선정되며 올스타전에서 좋은 모습으로 활약한다. (그리고 그는 그의 올스타 팀 드래프트에서 앤써니 데이비스를 뽑는다. 야속하여라.)
3월 : 앤써니 데이비스 드라마는 결국 뉴올리언스가 레이커스를 박살내기 의해 벌인 계략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레이커스는 박살난 팀 케미스트리를 다시 살려 플레이오프 막차 경쟁에 탑승하는데에 집중한다. 르브론은 이전 몇 년간 가동시킨 a.k.a Playoff Mode를 선포한다. 플레이오프 모드가 되고 본인이 결의를 다지며 뛰기 시작하면 르브론의 생산성과 장악력은 압도적인 수준이었기 때문에 그간의 모습을 보아 많은 사람들이 기대할 수 밖에 없었다. 플레이오프 모드라는 말 한마디가 지닌 힘이 오죽 셌으면, 오히려 많은 여론들이 "벌써부터 가동시키면, 플레이오프 때 르브론의 체력은 어떡하나" 라면서 이미 서부 컨퍼런스 상위 토너먼트까지 가정하고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부상 여파가 문제였던 걸까, 미처 다 회복되지 못한 팀 케미스트리의 영향이었던 걸까, 아니면 정말 나이의 문제였을까. 레이커스는 르브론의 플레이오프 모드 가동 이후 첫 경기를 휴스턴을 상태로 보기좋게 잡아낸 뒤, 연패에 연패를 거듭하며 끝내는 레이커스가 버린 탕아 D'Angello Russell의 손에 플레이오프 탈락이 결정된다.
4월 그리고 5월 : 르브론이 없는 플레이오프가 아직 낯설다. 르브론은 아들의 경기를 보러 다니고 있다. 이참에 올해는 좋은 아빠 하자..
르브론의 팬 입장에서 슬프고 안타깝기 짝이 없는 시즌이었다. 팬은 선수와 함께 한다고, 미디어와 안티들의 원색적인 조롱을 듣고 있자면, 내가 다 마음이 아파 기사를 보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짧게나마 반짝였던 레이커스의 경기들을 기억한다. 젊은 팀의 성향상 분위기가 오르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도 보았다. 비록 루크 월튼 감독이 잘려나가고 매직존슨 GM도 물러나고, 벌써부터 르브론의 팀은 와해된다는 미디어의 비난과 함께 시끄러운 모양새이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성공적인 오프시즌과 탄탄한 두 번째 시즌으로 르브론과 레이커스가 돌아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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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cle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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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조직에 근무 중입니다.
군 행정병으로 일을 하다보면 업무 면에서 때때로 병사와 간부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우들이 있다.
병사들의 자기계발을 독려하는, 병사들에게 귀감이 되는 좋은 간부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간부들도 생각보다 많다. '귀감'이기 보다 '반면교사'로 다가오는 경우들 말이다.
아무래도 공무원이라는 직업군 자체가 어떻게 보면 사기업보다 더 자발적인 책임의식을 부여하는 조직이 아닐까 싶다. 능력과 업무성과에 따른 베네핏이 직접적으로 덜 주어지다보니, 연차가 중요한 직군이다보니, 마음먹기에 따라서 업무강도가 천차만별이 되는 곳이다. 아차,공무원이라고 하기엔 그 범위가 너무 넓어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다. 최소한의 군 조직 단위로 얘길 해보려 한다.
당위성이 전혀 없는 업무까지도 도맡아서 하고 있었다. 그 업무의 당사자들이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얘기를 친한 친구들에게는 심심치 않게 털어놓았었다. 뭔가 거부할수는 없는데 여기서 받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고. 군인이니까, "명령복종이 중시되는 조직이니까, 비합리적인 경우들이 어느정도 용인되는 조직이니까" 라며 주어진 역할을 최대한 잘 수행하는 경험을 하는데 의의를 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일이 많긴 많다고. 어쩔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육체적으로 훈련을 덜 하는 대신 행정업무를 하는 것이니까 더 그렇게 생각하려 하기도 했고. 하지만 이것이 단순히 군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되었다.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을 과하게 전가하고, 과로로 한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고 지치는 걸 보면서도 그 정도가 심해져가기만 하는 문제에 대한 것이었다. 주기적으로 두통이 심하여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두통약을 복용하면서도 하루종일 과도한 양의 시트들을 들여다보고 하는 데서 오는 증상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직접적으로 이 문제를 꺼내어 써보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는 주변인들의 말에 있었다. 한 장교가 어느날 불러서 얘기해주었다. "군대니까. 군인이라서. 병사라서. 라는 이유로 모든게 합리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의 능률과 생산성으로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해야만 한다. 지금 내가 너가 하고있는 일의 내용, 너가 하루종일 일을 하는 정도를 보면 말이 안된다. 안타깝고 불쌍하다. 그래서 간부인 내가 얘기하는 것이다." 같은 사무실을 쓰는 신병이 얘기해주었다. "외람된 말일 수도 있는데 2개월 된 신병이지만 일하시는 거보면 조금 잘못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같은 고민을 나누는 선임병이 얘기해주었다. "진짜 단단히 잘못되긴 했어. 고칠 방법을 모르겠어서 그렇지." 새로 속하게 된 특수한 조직에서 인정받고 스스로 성취감을 얻어내기 위해 달리던 때에서 살짝 제동을 걸어보려한다. 나를 위해서. 나를 위해 이제는 조금 마인드에 변화를 줄 타이밍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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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cle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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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여전히 시장 골목의 닭 집을 찾는다.
강원도 속초시에는 ‘중앙시장’이라는 이름의 재래시장이 있다. 지리적으로 중앙에 자리잡고 있은 탓에 그런 이름이 붙었을 수 있다. 하지만 주말에 가장 많은 관광객이 모��는 장소임을 보면 지리만이 이름의 이유는 아닌 것 같다. 중앙시장의 유명세를 한껏 올린 주인공은 ‘닭강정’이다. 해안에 위치한 속초에서 ‘닭강정’이 유명하다니 아이러니 하다. 그럼에도 ‘만석’이라는 이름의 닭강정은 중앙시장의 얼굴로 자리매김했다.
[사진 : 중앙시장 닭집 골목]
‘만석 닭강정’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유명했던 것은 아니다. 지금은 서울 유명 백화점에도 입점하는 엄연한 ‘기업’이지만, 과거에는 닭강정 골목의 맛있는 닭 집들 중 하나였다. 학창시절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갈 때면 만석 닭강정에 전활 걸어 배달을 시키곤 했다. 일반 치킨 집처럼. 갓 만든 따뜻하고 양도 두둑한 닭강정을 배 터지게 먹는 순간이 참 행복했다. 그랬던 닭강정 집이 이젠 줄 서지 않으면 먹을 수 없게 됐다. 속초의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마다 손에 닭강정 상자를 들려 있는 것을 보면 자랑스러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섭섭하다.
만석 닭강정이 현재의 전국적 수요를 맞추기까지 많은 변화가 생겼다. 기존 가게가 협소하여 닭강정만 제조하는 공장이 시장 밖에 두어개 더 생겼다. 내가 즐겨 찾던 속초시내 배달 서비스 역시 없어졌다. 소비자와 닭집 사장님과의 물리적 거리도 그만큼 멀어졌다. 만석 닭강정의 성공은 단순히 중앙시장만의 성공이 아니라 속초시의 성공이다. 공장 운영과 함께 지역 일자리가 늘었고 주변 닭강정 집을 비롯한 시장 상권들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관광객들 손에 들려 전국으로 퍼진 ‘만석’이라는 이름은 되려 속초를 알렸다. 만석 닭강정이 속초시의 일 년 ‘천 만 관광객’ 유치에 일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석의 기업화, 공장화는 재래시장의 성공을 이끔과 동시에 재래시장과의 이별이다. 시장은 본래 물물교환의 장소이며 사람과 사람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직접 눈으로 상품을 보고 생산자와 교감하는 소통의 순간들이 시장이 가진 생명력이다. 만석의 공장화는 소통의 단절이고 시장 생명력을 위협한다. 만석 닭강정은 이제 사용자에게 고용된 생산라인 노동자들이 생산해 낸 닭강정을 판매자에게 먼저 전달한다. 소비자는 더 이상 직접 닭을 튀긴 사람이 아닌 중간 판매자로부터만 닭강정을 구매할 수 있다. 생산자와 판매자가 같아 소비자가 직접 생산자에게 구매하던 과거의 과정과 분명히 다르다.
닭강정을 만드는 노동이 지니는 가치의 변화가 가장 눈에 띤다. 닭강정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선의의 경쟁을 하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음식을 내어줄 때의 노동의 가치는 지금과 다를 것이다. 더 좋은 맛을 위한 노력과 자부심, 시장의 부흥, 성공에 대한 열망처럼 많은 가치가 닭강정을 튀기는 노동에 담겼을 것이다. 지금의 닭강정 공장은 ‘이윤 극대화’라는 목표 아래 일률적으로 닭강정이라는 상품을 생산한다. 소비자 대면 없이 단순 노동만 반복하는 생산라인이 가지는 노동의 가치는 무얼까. 닭강정의 질은 점점 떨어진다는 후기들과 위생 점검이 안돼 고발당한 사례들이 보이고 들리고 있다. 기계적 생산이 변화시킨 노동의 가치가 씁쓸하게 다가온다.
만석 닭강정 공장에서도 닭강정 구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공장 앞에서 줄 서서 사람들이 기다리는 풍경은 보기 어렵다. 똑같은 상품인데도 중앙시장 원래의 만석 닭강정 자리에 가야 줄 지어 서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기다리는 동안 그들끼리 나누는 이야기 소리도 들리고, 닭강정을 내어주고 받는 순간의 인사소리가 들린다. 어쩌면 사람들도 같은 닭강정이라도 희미하게 나마 사람사는 맛이 나고 노동의 가치가 담긴 ‘시장’의 만석 닭강정을 먹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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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cle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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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친구
여러분에게 동네 친구가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없기 때문에 여러분이 있다고 답한다면 약간의 부러움을 느낄 예정이다.
여기서 동네 친구란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에서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좁은 의미의 동네 친구는 전통적 의미의 동네 친구다. 같은 동네에서 자라 학교나 학원을 같이 다닌 친구. 넓은 의미의 동네 친구는, 내가 만들어낸 것인데, 시장 단골 떡볶이집이나 단골 가츠동집, 단골 토스트집, 도서관, 매주 가는 한의원 등이 포함된다. 예시에 먹을 것이 많다고 느꼈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나는 좁은 의미의 동네 친구도, 넓은 의미의 동네 친구도 없어서 사무치게 슬프고 헛헛한 사람이다.
어느 날은 지하철역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데 따뜻한 노란 불이 켜진 이자카야를 지나치게 됐다. 이자카야 안에 앉아있던 사람들의 대화가 어찌나 정다워 보이던지! 아, 내게도 (좁은 의미의) 동네 친구가 있었더라면… 나의 과거 동네 친구들은 대부분 강 건너편에 산다. 아파트 이웃의 정이 사라진 요즘 간간이 귤과 떡을 서로 나누던 이웃집도 이사간 지 오래다.
게다가 (넓은 의미의) 동네 친구도 없다. 나는 건대입구역 근처에 산다. 그러면 친구들은 내게 종종 건대입구 맛집을 물어본다. 미안하지만 나는 잘 모른다. 나는 대학교 2학년 때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왔는데, 노는 것은 대학교 주변에서 모두 마치고 귀가하기 때문에 집 근처의 맛있는 곳이나 놀 만한 곳을 진짜 모른다. 아, 나는 이방인 같아… 내가 10년을 산 대치동 일대는 나름대로 빠삭한데. 나의 최애 떡볶이집은 도곡시장에 있었다. 거기서 먹는 떡볶이와 김치만두의 조합이 정말 일품이었다. 이사오고도 종종 찾아갔던 곳인데, 이젠 아예 문을 닫으셨다.
좁은 의미의 동네 친구도, 넓은 의미의 동네 친구도 있는 사람이 지금 이 순간 제일 부럽다. 그렇지만 둘 다 없는 나라고 해서 영원히 시무룩하게 지낼 순 없다. (좁은 의미의) 동네 친구를 만들긴 글렀다. 그러니 (넓은 의미의) 동네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지금까지 건대입구 근처에서 쌓은 데이터는 과제하기 좋은 카페들에 불과했다. 건대입구역 2번 출구 나오자마자 있는 엔젤리너스와 뚝섬유원지역 1번 출구에서 조금 걸어가면 나오는 라이프온마스. 그러나 이제는 혼자서라도 꿋꿋이 맛집도, 걷기 좋은 곳도, 예쁜 카페도 찾아다닐 테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최근 발견한 맛집은 건대입구 CGV 건물에 있는 후쿠오카 모츠나베다. 프랜차이즈지만 다른 지점과 달리 혼자 가서도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있다. 친한 언니와 우연히 처음 가서 맛과 가성비에 반한 이후, 혼자서 아픈 몸을 이끌고 다녀오기도 했고, 엄마를 모시고 가 먹기도 했다. 조만간 또 갈 것이다. 이 정도면 단골집 동네 친구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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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cle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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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시장감성을 음악에 입히다
레트로와 칠아웃, 그 사이 어딘가: 한국의 시티팝
연남동, 경리단길, 삼청동, 성수동 등 도시적인 느낌의 베뉴들만이 인기를 끌고 있던 중, ‘을지로’라는 이단아가 등장하였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감성이 담긴 곳, 레트로라는 수식어를 공간 전체가 보여주는 곳, 바로 을지로였다.
을지로라는 공간 안에서 젊은이들은 골목 골목 간판이 없는 카페와 바들을 찾아다니며 힙한 감성을 ‘파밍’하고,
중년층은 옛날 노상 주점의 감성에 젖어 노가리에 맥주를 마시며 지나가던 캔디바와 서주아이스를 파밍한다.
그리고 이 둘은 자연스럽게 같은 공간 안에서 섞여들어 시너지를 낸다.
을지로 이전에도 레트로 공간은 여러 차례에 걸쳐 자라왔다.
망원시장의 상권이 부활하여 세대가 어우러질 때, 종로 광장시장이 SNS의 힘을 얻어 대학신입생들의 버킷리스트로 등극하기 시작했을 때.
이전 세대가 즐겨 향유하던 문화를 다음 세대가 이어 받아 새로운 감성으로 향유한다.
세대 간의 공감, 그리고 공감에서 더 나아간 새로운 감성의 창조.
이것이 워낙 이루기 힘든 과제이기에, 을지로에서처럼 레트로 감성이 어느 분야에서든 잘 스며들었을 때, 그 멋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90년대 향수에 이끌려, 시티팝 장르가 주는 호기심에 이끌려 섣불리 이 채널에 들어갔다가는 브금이 본업을 압도하는 현상을 맛볼 것이다
작년 11월 쯤이었나, 유튜브에서 새로 알게 된 채널이 있다. 그 이름은 [Seoul City Beat].
시티팝이 일본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한국에도 위대한 씨티팝 노래들이 있다! 그것도 90년대에!” 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채널이다.실제로 이 채널에서는 한 곡씩을 뽑아서 업로드하기도 하고, 분위기나 장르에 맞추어 믹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Acid Jazz City Pop / 여름에 듣기 좋은 Summer City Pop / 유희열, 윤상 City Pop 믹스 등) 영상 길이는 대략 30~40분.
어차피 앨범 커버와 함께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 뿐이라, 다른 작업을 하면서 브금으로 깔아두기에 최적이다.
원래부터 90년대 음악들을 좋아했던 개인적인 성향 때문인지, 채널 관리자의 환상적인 선곡 센스와 깔끔한 믹싱 실력 덕분인지, 굉장히 빠른 시간 내에 이 채널에 빠져버렸고, 이 채널 속에서 시티팝으로 불리는 90년대 음악들을 다시 파기 시작하였다.유희열, 윤상, 빛과 소금, 김현철, 이상은, 김성재, 패닉 등등
시티팝이라는 것은 사실상 장르의 구분으로 보기는 힘들다. 정확히 장르로 따지자면 오히려 신스팝에 가깝다고 하는 것이 좋겠다. 다른 장르도 그러하듯 대부분의 세부 음악 장르들이 다양한 곳에서 영향을 받아 근원지가 불명확한데, 현재 잘 알려져 있는 시티팝의 근원지는 일본이라 할 수 있다. 일본 특유의 감성, Acid, Retro, Lo-Fi, Chill,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분위기를 내뿜는 신스팝들을 City Pop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부르기 시작하였고, 인기가 많아지면서 신스팝의 하위장르가 아닌 마치 독립적인 장르의 하나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국내에서의 시티팝은 언더그라운드 음악씬을 선도하는 소위 ‘힙스터’들이 이 시티팝에 꽂혀 유행을 타기 시작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가만, ‘주목받기 시작했다’라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일까. 더 정확히는 ‘90년대 음악의 재조명’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국내 1990년대 음악 중에는 상당히 음악적으로 수준이 높은 음악들이 즐비하다. 대중적인 감성도 건드리면서, 음악적으로도 완성도가 높은 음악들이다. 응답하라 시리즈, 그 중에서도 응답하라 1997과 1994가 그 인기에 수록 ost의 영향을 많이 받은 점 또한 그 당시 곡들 하나하나의 완성도에 기인한다고 생각해왔다. 2010년대에 들어서서 MBC 무한도전의 [토토가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로 90년대의 댄스음악이, JTBC 슈가맨으로 발라드 및 Mid-Tempo 댄스음악들이 다시 주목을 받았었다. 그리고 최근 을지로 골목상권의 부흥과 더불어 한국만의 City Pop이 새로운 트렌드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가장 반가워 할 사람 두 명이 있다. 장기하 밴드의 기타리스트이자 ‘양평이형’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City Pop DJ 하세가와 료헤이 님과 레트로 감성 외길인생으로 국내 DJ씬 내에서 독자적인 색깔을 다져가는 DJ 타이거디스코 님이다. 최근에서야 시티팝이 언더그라운드에서 본격적으로 유행을 타기 시작했지만, 이 두 분은 이미 몇 년째 시티팝과 레트로를 파오던 분들이다. 인기에 상관없이, 대중의 수요에 관계없이, 늘 이 분위기에 맞추어 음악을 틀어왔다. 장르를 떠나 실력적으로도 존중받아 마땅한 분들이기에, 장르의 부흥과 더불어 이 두 분의 가치 또한 재조명될 것 같아서 팬인 나의 입장에서도 반갑지 않을 수가 없다.
트랩 힙합이나 일렉트로닉처럼 강한 비트에 자극적인 음악은 아니지만, (물론 이 두 장르 또한 나는 매우 사랑한다, 매우...매우...매우...!) 일본의 시티팝과는 느낌이 또 다른 것이 우리나라의 90년대 음악들이지만, 한국만의 chill한 바이브가 있다면 이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리듬과 흥을 향유하기 좋은 음악이 한국 시티팝이라 본다.올해 2월 22일자에 하세가와 료헤이x타이거 디스코x김현철 이라는 라인업으로 This is the City Life가 열렸다. 사실 김현철 님이 빛내주신 이 공연 때문에 글가지 쓰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채널 1969 베뉴에서 김현철님의 대표곡 “왜그래”가 울려 퍼지는 것을 보고 큰 희열을 느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아무런 말도 없는거야~ 미안해서 못하는거야? 하기 싫어 안하는 거야?
여담으로 지금이라도 시티팝의 대열에 합류하고 싶은 포텐셜 코리아 힙스터들에게는 [채널 1969] 베뉴를 추천한다. 엄밀히 말하면, 앞서 언급한 료헤이와 타이거디스코 DJ 둘을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다. 김현철 님이 참석하신 2월의 공연의 경우도 이 두제이가 주최하는 프로젝트 공연의 일환인데, 앞서 언급했듯 ‘This is The City Life’라는 이름으로 매달 열리니 참고해보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지금의 이 현상이 너무나도 반갑다. 다양한 세대가 하나의 공연을, 하나의 문화를 다르게 해석하며 즐기는 현상이 더욱더 확대되기를 소망한다. 훗날 부모님과 채널 1969와 같은 베뉴에서 같이 맥주 한 잔 기울이며 1~2시간의 언더그라운드 디제잉공연을 즐길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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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cle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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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부엌 ‘쓰키지 시장’의 허울뿐인 북적거림
도쿄에서의 마지막 날은 어스름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6시에 시작되었다. 도회스럽기만 했던 도쿄의 다른 모습을 보고자 ‘쓰키지 시장’을 목적지로 정했기 때문이다. 전날 오다이바의 충격적인 스시(다이버 시티 ‘카이오 스시’ 가지 마세요ㅠ)를 어머니께 만회하고 싶기도 했고, 쓰키지의 명물인 우니동을 먹어보고 싶기도 했다. 또한 공항버스를 타는 긴자까지는 걸어서도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워서, 마지막날 여행지로 안성맞춤이었다. (긴자 애플스토어에서 에어팟을 사야했던 것은 비밀)
전날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우에노와 아사쿠사, 오다이바까지 쏘다녔기 때문에 어머니께서 힘드실 법도 했지만, 2박 3일의 짧은 여정을 알차게 보내겠다는 의지가 피곤을 잊게 만든 것 같았다. 간단하게 조식을 먹고 배낭을 챙긴 뒤 체크아웃을 했다.
우리가 묵은 아카사카는 오피스 밀집 지역이기도 해서, 출근 시간 도쿄 지하철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하지만 2호선 통학 인생 5년에 단련된 나에게 그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부지런을 떤 결과, 쓰키지 역에 8시 반에 도착해버렸다.
블로그 글을 봤을 때 쓰키지는 발디딜 틈이 없을 만큼 붐빈다고 해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3월 첫날이라 그런지 다닐 만한 정도였다. 물론 장내시장이 지난 10월 폐장하고 구요스로 옮겨간 탓도 크겠지만 말이다. 부산스럽게 참치를 해체하고 경매하는 광경을 못본다는 것은 아쉬웠지만, 장외시장에서 파는 다양한 먹거리들을 구경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과연 쓰키지의 골목골목은 간식거리를 파는 상점들이 대부분이었다. 계란말이와 가리비구이, 석화와 대게까지, ‘이 꼭두새벽에 누가 저걸 다 먹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리 전체에 음식 냄새가 가득했다.
하지만 한입 거리 정도밖에 되지 않아 보였던 간식거리들은 만원 이하로 내려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덮밥 종류들은 2,3만원이 훌쩍 넘어갔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그 유명한 ‘스시쿠니’에서 우니동 하나쯤은 먹어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오픈 시간인 10시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장외시장과 장내시장을 가르던 길이 나타났다. 호기심에 장내시장 내부를 기웃거려보니 텅 빈 어두컴컴한 공간 뿐이었고, 길에 인접해서 새우튀김과 석화를 파는 가게 만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석화 하나를 먹으면서 장내시장 내부를 바라보고 있자니, 껍데기만 남은 쓰키지의 모습이 괴이하게 느껴졌다. 여행을 할 때 재래시장을 찾는 이유는 그 지역의 생동감을 느끼기 위함이었다. 좁은 가게에서 열심히 흥정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오늘 저녁 저 가족의 상에 오를 음식은 무엇일까 나름 상상해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장을 보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시장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소탈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쓰키지의 골목에는 더 이상 이야기가 담겨있지 않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채 정처없이 떠돌며 군것질을 하는 사람들과, 구글 맵에 맛집을 찍어 놓고 두리번거리며 찾아다니는 사람들 만이 있을 뿐이다. 이들을 상대하는 상인들 역시, 말도 통하지 않는 고객들에게 구태여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는다. 비싼 돈을 받고 게다리 하나, 계란말이 하나를 팔아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오전 9시가 넘어가자 쓰키지의 골목골목은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중국어와 영어가 뒤섞여 들려오고, 간식거리의 냄새는 한층 짙어졌다. ‘스시쿠니’의 오픈 시간은 10시. 위치라도 파악해 놓자는 생각에서 구글맵에 ‘스시쿠니’를 찍고 이동했다. 자그마한 가게 앞에 세워진 커다란 메뉴판에 적힌 우니동은 3800엔이었다. 갑작스럽게 현자 타임이 찾아왔다. 저걸 먹고 인스타에 올리면 내가 호구일까?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어머니도 메뉴판 가격에 놀라신 눈치였다. 더구나 ‘스시쿠니’는 1인 1메뉴를 시켜야 하는 곳이라, 아무리 저렴한 메뉴를 2개 시켜도 5만원은 너끈히 넘어갈 것이었다. 결국 우리는 ‘스시쿠니’를 포기하고 쓰키지 중간에 있는 대형 음식점 ‘스시잔마이’로 들어갔다. (물론 여기도 유명한 곳이긴 하다) 나는 저렴한 카이센동 하나, 어머니는 배가 고프지 않아 지셨다며 군함 하나. 어제 먹었던 스시 보다는 훨씬 신선하고 맛있었지만, 가게를 가득 채운 시끌시끌한 중국어에 어딘지 모르게 찝찝했던 식사였다.
‘도쿄의 부엌’ 쓰키지에서는 한시간도 채 머무르지 못했다. 규모도 별로 크지 않았고 먹거리들은 기형적으로 비쌌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나라의 노량진이나 가락시장과 같은 분위기를 생각하고 쓰키지를 찾을 계획을 세운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노량진과 가락시장에는 서울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주를 타고 흐르고 있지만, 쓰키지의 이야기는 작년 10월을 기점으로 끝을 맺었기 때문이다.
쓰키지에서 시간을 아낀 덕에, 긴자 애플 스토어에서 마지막 남은 에어팟을 획득했다. 역시 인생은 전화위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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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cle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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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icii가 돌아왔다
I took a pill in Ibiza. To Show Avicii I was Cool
(나는 아비치에게 잘보이고 싶어서 이비자에서 약을 했어.)
[I Took A Pill In Ibiza] - Mike Posner 中
AVICII (본명 Tim Bergling) (1989-2018)
대략 2주뒤면 AVICII라는 디제이의 기일 1주기가 찾아온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았던 하우스 장르 DJ, 21세기 음악 천재, 일렉트로닉 대중화에 가장 크게 기여한 DJ이자 프로듀서, Folk House, Acoustic House 등의 세분류 장르의 선구자 등등, 그를 수식하는 수많은 말들을 뒤로 한 채 스웨덴 출신 천재 DJ 겸 프로듀서 아비치는  지난 해 4월 20일 2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원인은 DJ 활동 당시의 잦은 건강 악화로 인한 스트레스와 기타 개인적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
내가 일렉트로닉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한 계기라고 하면 아비치가 그 시작이었고,
국내 방송의 영향으로 일렉트로닉 음악을 단순 빅룸EDM으로만 인식하고 있던 지인들의 인식을 바꿔보고 싶어 가장 먼저 소개해주던 음악도 아비치의 음악이었다.
2016년에는 오로지 아비치가 UMF KOREA의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는 이유 만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티켓을 샀으며, 2018년에 아비치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은 후에는 며칠을 멍하게 지내다가 한 달 정도 동안은 아비치의 음악만을 들으며 거리를 다녔다.  
나에게는 아비치가 음악 천재 그 이상이었고, 정말 사랑하는 아티스트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과, 더 이상 그의 새로운 노래를 듣지 못한다는 생각이 너무나도 큰 슬픔으로 다가왔었다.
모두가 그랬다.
https://www.youtube.com/watch?v=iTmamhtnHmI
네덜란드 Utrecht 교회에서는 아비치의 곡 메들리를 성당 종 소리로 연주하였고
https://www.youtube.com/watch?v=XG7_IDQK5bQ
수천 명의 스톡홀름 시민들이 한 자리에 모여 Levels를 포함 아비치의 곡들로, 아비치 팬의 방식으로 그를 추모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MNRE_augSQ
트로피컬 하우스 DJ 카이고는 그의 공연에서 4분여의 Avicii Tribute 시간을 따로 마련하였고
https://www.youtube.com/watch?v=Yp63p-CehRw
마이크 포스너는 코첼라 무대에서 I Took A Pill In Ibiza 노래 가사로 아비치를 다시 기억했다.
그렇게 1년, 2018년 한 해동안 수많은 디제이들이 추모 공연을 하고, 그들의 무대에서 아비치의 곡들을 플레이하며 RIP를 외쳤고, 스톡홀름 시민들은 물론 전세계인들이 그의 슬픔을 2018년 마지막까지 기억하고 슬퍼해주면서 한 해가 갔다.
그리고 2019년 4월, 마침내 아비치의 새 앨범 소식이 나왔다.
4월 10일에 아비치를 알린 곡 [Wake Me Up] 의 보컬, Aloe Blacc가 피쳐링한 싱글 트랙 'SOS' 가 릴리즈 예정이고 6월 6일에는 16곡이나 수록된 3집 앨범 'Tim'이 발매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 수록 예정인 곡은 Hold The Line, Heaven, S.O.S, Half The Man 4곡.
Heaven은 Avicii와 Nicky Romero 가 [I Could Be The One] 앨범 이후로 다시 콜라보레이션한 트랙으로 Nicky Romero가 2018년 한 해동안 그의 모든 투어에서 이 곡을 틀며 아비치를 추모하였다.
이 앨범의 모든 앨범 수익은 아비치의 기일인 4월 20일부터 런칭되는 Tim Bergling Foundation 아래에서 정신적으로 인한 고통과 자살을 결심하는 환자들을 위해 기부된다고 한다.
그가 돌아오는 것이다. 그의 음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아비치가 새 음악으로, 새 앨범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이고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 것이다.
작년 4월 20일, 아비치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이 들린 후, 아비치의 핸드폰에서 이런 내용의 메세지가 발견 됐었다고 한다.
"내 음악을 통해 기쁨을 퍼뜨려라. 그리고 성공을 즐기되 물질주의적인 성공은 누리지 마라."
”Sprid glädje genom min musik, i budskapet. Och njut av framgången, men inte den materialistiska framgången”.
그리고 2019년 4월, Avicii, 아니 Tim Bergling의 가족은 앨범 이름을 ‘Tim’으로 지었다.
Tim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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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cle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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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미술관, 각광받는 전시의 조건
대도시를 여행할 때면 높은 전망대에 올라 야경을 감상하곤 한다. 꺼질 줄을 모르는 건물의 불빛들과 부산하게 움직이는 차들의 헤드라이트를 멍하니 보고 있으면, 나만 동떨어진 채 세상의 관조자가 된듯한 느낌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도쿄 여행을 준비할 때도 인스타그램에서 전망대를 가장 먼저 찾아보았다. 도쿄타워와 스카이트리의 사진도 많았지만, 유독 롯폰기 힐즈의 사진에서는 야경과 함께 예술 작품들도 함께 등장했다. 검색을 해보니 롯폰기 힐즈 전망대에는 ‘모리 미술관’이 함께 있었고, 티켓 역시 전망대와 미술관을 패키지로 판매하고 있었다. 전시와 야경이라는 신선한 조합에 망설임 없이 예매 버튼을 눌러버렸다. (롯폰기 힐즈에서 도쿄 타워가 가장 잘 보인다는 이점도 있다. 바로 옆에 있는 돈카츠 맛집 ‘부타구미’는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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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리 미술관은 어떻게 ‘핫한’ 미술관이 되었을까?
롯폰기 힐즈 52, 53층에 위치한 모리 미술관은 2003년 개관 당시부터 ‘현대성’과 ‘국제성’을 이념으로, 현대미술에 대한 기획전을 진행하고 있다. 언뜻 생각해보면, 접근성도 낮고 난해한 현대미술을 다루며, 유명한 소장품 하나 없는 미술관이 세계에서 가장 ‘핫한’ 예술 공간으로 발돋움한 것이 의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리 미술관은 철저히 ‘사용자 중심’의 운영을 통해 이러한 핸디캡을 자신 만의 매력 포인트로 전환했다.
<밤의 미술관>
모리 미술관의 개관은 밤 10시까지이다. 대부분의 미술관들에서 오후 5시만 되면 ‘마감시간이 다가온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는 점을 생각해보았을 때 이는 매우 이례적이다. 하지만 모리 미술관은 ‘밤의 미술관’으로 포지셔닝 함으로써 새로운 타겟 소비자를 저절로 개발했다. 퇴근 후 문화생활을 즐기는 직장인부터 나처럼 야경을 보려 롯폰기 힐즈를 찾은 관광객들까지, 야간 개장은 새로운 고객들에게 현대미술의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했다. 특히 전망대와 함께 위치한다는 점은 모리 미술관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데에 결정적이었다.
<인스타 명소>
모리 미술관이 기획하는 전시 역시 시대의 트렌드를 정조준하고 있다. 2017년 모리 미술관은 ‘레안드로 에리히: 보는 것과 믿는 것’ 이라는 전시를 기획했다. 레안드로 에리히는 현대미술가이지만, 동시에 관람객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에 미술관 측은 전시장 내부에서 사진 및 영상의 촬영을 장려하고, 관람객들이 인스타그램에 적극적으로 포스팅을 하도록 했다. 이러한 관람객들의 포스팅이 바이럴을 일으키면서, 이 전시는 135일 만에 개관전 이후 최대의 관객(61만 명)을 불러모으는 상업적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후 모리 미술관은 (특히 우리나라 관광객에게) ‘인생샷’을 찍을 수 있는 스팟이 되었다. 어떠한 베뉴던지 사진 촬영으로 소비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을 제대로 저격한 것이다.
- 복합 문화공간으로서의 미술관
모리 미술관에서 포착할 수 있었던 미술관의 변화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가장 유명한 예는 대림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대림미술관’과 ‘디뮤지엄’일 것이다. 대림미술관은 ‘일상이 예술이 되는 미술관’을 슬로건으로 디자인, 가구뿐만 아니라 기업과의 콜라보 등 실생활 친화적인 전시를 기획해왔다. 더욱이 대림미술관은 국내에서 최초로 사진촬영을 허용하고, 전시 이외에 콘서트, 파티, 마켓 등의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진행하여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문화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그 결과 대림미술관은 주말만 되면 ‘줄 서서 입장하는’ 미술관이 되었고, 인스타그램 해쉬태그 개수도 35만 5천개를 넘어섰다.
인상주의, 큐비즘, 추상표현주의 등등 예술의 ‘창작’에도 사조와 화풍이 있지만, ‘감상’에도 시대에 따른 트렌드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예술 감상은 작품을 정적으로 음미하고, 문화적인 식견을 높이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 졌다. 그러나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경계가 그 어느때보다 옅어진 지금, 젊은 세대는 경험과 공유를 통해 예술을 느끼고 인증을 통해 기억한다. 따라서 ‘모리 미술관에 가는 것’과 ‘전망대에서 야경을 보는 것’은 하나의 ‘경험’으로써 동등한 위상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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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미술관에서 일본 현대 예술계를 소개하는 ‘Roppongi Crossing 2019: Connexions’를 감상하고 나오니, 이미 해는 떨어진 지 오래였고 도쿄타워는 붉게 반짝이고 있었다. 놀랍게도 롯폰기 힐즈는 전망대 역시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전망대의 작품들은 대부분 미디어 아트이거나 화려한 조명을 활용한 것이라 도쿄의 바쁜 불빛과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이 때의 경험이 너무 기억에 남아 ‘우리는 이런 공간이 없을까’라는 생각에 검색을 해보았는데, 이게 웬걸. 잠실 롯데월드타워도 문화예술을 관광과 접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작년 1월, 타워 7층에 ‘재미’를 키워드로 하는 현대미술관 ‘롯데뮤지엄’이 오픈해서 벌써 세 번의 기획전이 진행되었다! 또한 올해는 롯데월드타워 개관 2주년을 맞아, 전망대에서도 샤갈과 최영욱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는 기획전도 열린다. 송파구 주민 임에도 2년 동안 미루고 미루던 서울스카이 방문을 드디어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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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cle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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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침투한 5G. 변화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까.
[사진 : 통신사 광고]
통신사 5G 광고가 부쩍 눈에 띤다. 좋아하는 연예인과 가상 현실 속에서 데이트를 즐기거나 아바타화된 다른 사람들과 야구를 함께 볼 수도 있다. ‘포켓몬GO’가 유행하면서 화제가 된 증강 현실이 VR 기기의 보급과 5G 기술의 실현으로 일상과 더욱 가까워진 것이다.
5G의 보급은 문화생활 소외자들을 문화생활을 향유하게끔 도와줄 수 있다. 더 많은 계층이 여가를 재밌게 즐길 수 있음은 분명 큰 장점이다. 하지만 동시에 F2F(Face to Face), 대면하는 소통이 줄어드는 심각한 맹점이 드러난다.
[사진 : 영화 써로게이트]
5G의 상용화가 시작되면서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써로게이트’라는 SF 영화가 생각났다. 영화는 자신의 진짜 육체는 집에 있고 로봇과 정신을 연결해주는 기기를 하루 종일 사용하는 미래의 인류를 다루고 있다. 거리의 모든 사람들은 실은 조종하는 로봇이며 남들에게 보여주고픈 외모나 패션, 성격을 로봇으로 대신해서 보여준다. 영화는 남성을 유혹하는 여성 로봇의 주인이 실은 남성인 장면을 보여주며 꽤나 직설적으로 메시지를 던진다. 영화에서 인간들은 자신의 콤플렉스나 사회적으로 통용되지 못하는 정체성을 숨기고 ‘가상현실의 현실화’를 이룬다.
VR로 가상 현실에서 사람들과 만나 야구를 보고 좋아하는 연예인과 데이트를 하는 것이 자꾸 마음에 걸리는 것도 영화의 메시지와 연결된다. 인간은 수 많은 사람들과의 교감과 대화로 자신이 누구인지 정의 내린다. 타인과 교감할 때 모든 감각을 동원해 상대방의 반응과 현장의 분위기를 살핀다. 불완전한 인간은 그 과정에서 사회적 통념에 따르기도 하고 저항하기도 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정의 내린다. 천편일률적인 정체성을 가진 인간들로 사회가 이뤄지지 않는 이유다. 이렇게 각기 다른 사람들과 교감하며 인간은 사회 속에서 성장한다. 5G라는 신기술의 폐해는 인간의 복잡미묘한 교감 과정을 단순화하는데 있다. 고립돼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착각을 들게 하기 때문이다. 신기술이 가진 문제의 핵심은 기계 내음을 사람 냄새에 덧 씌웠음에도 이를 교묘히 숨긴다는 점이다. 신기술에 익숙해진 인간은 민감한 교감 센서를 서서히 잃는다.
통신기기를 통과한 인간이 통신기기 너머 실재한 인간과 과연 동일하다 할 수 있을까. 통신기기를 거친 경험과 만남이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그것과 같을까. 최근 인생에서 정말 닮고 싶고 선망하던 인물을 만났다. TV로 매일 보던 얼굴이지만 실제 마주하기 전까지의 긴장과 만났을 때의 전율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 앞에서 자꾸만 손에 맺히는 땀과 나를 드러낸다는 설렘은 강력한 자극이 되었다. 내 세포가 감각을 깨워 그 자극을 기억하려 발버둥 침이 느껴졌다. 과연 통신기기를 통해서 그를 만났어도 똑같은 반응을 겪었을 지 의문이다.
진정한 교감의 불가능함은 사회와 어우러지는 ‘나를 찾는 작업에 혼란’을 준다. 힘들게 나를 찾는다 해도 사회와 단절된 나의 정체성은 반쪽에 불과하다. 혼란은 이내 무관심으로, 편리함에 대한 안일함으로 대체된다. 영화 ‘써로게이트’에 나오는 인류도 기기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부터 그런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기기에 앉아 하루를 보내고 ‘진실된 나’는 잠만 청하는 사회가 온 것은 반쪽의 ‘나’를 잃어버린 혼란의 결과다. 신기술이 주는 편리함을 무시할 순 없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5G와 더 발전될 기술에 익숙해지기 전에 올바른 사용법은 진지하게 고민해야하지 않을까.
***
도대체 5G란 무엇인가. 한국통신학회지의 연구 ‘5G 이동통신 기술 방향’에 따르면 5G는 스마트폰과 IoT 등 통신기기의 발전으로 급속도로 증가하는 네트워크 사용량을 감당하기 위해 탄생한 기술이다. ‘모바일 트래픽 증가’를 5G 탄생 원인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향후 사용자 중심 단말기기(폴더 태블릿, 안경폰 등)의 보급과 기기 간 통신 단말기기들 (고도화된 센서, 진화된 자동차 블랙박스)이 출현함으로써 모바일 트래픽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5G를 가장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1GB 짜리 영화를 10초안에 받을 수 있다.” 현재 상용화된 LTE의 주파수보다 더 고대역의 주파수를 사용하며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1km2 반경 안의 100만개 기기에 IoT를 연결할 수 있고 빠르게 달리는 열차에서도 자유로운 통신이 가능하다.” 과거처럼 블루레이 화질의 영화를 다운 받는 시간을 기다리기 위해 식사를 하고 오거나 할 필요가 없어졌다. 인간의 삶이 보다 편리해지고 공간과 시간의 개념을 뛰어넘은 소통의 가능성이 열렸다. 동시에 인간 사이의 단절이 발생하는 맹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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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cle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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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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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7일. 나에겐 나른한 토요일이었고, 유대인에겐 안식일이었다. 피츠버그의 트리 오브 라이프 유대교 예배당에선 한 아기의 이름 명명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때 한 남자도 트리 오브 라이프 예배당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범인의 총에 맞은 유대인 11명이 사망했다. 범인은 반유대주의자. 명백한 혐오 범죄였다.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미국에서 또 총격 사건이 일어났구나’ 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미국 워싱턴에 살고 있었다. 미국의 거리를 오가고, 미국인과 일하며, 미국의 신문을 구독하고 있었다. 유대인 친구가 있었고, 유대인 기관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었다. 깊은 상처를 입었을 유대인들에게 반유대주의를 반대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작은 위안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난생 처음 유대교 예배당으로 향했다. 퇴근하자마자 부리나케 도착한 예배당은 이미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비가 오는 궂은 날이었는데도 예배에 참여하기 위해 저만치까지 줄을 서 있었다. 예배당의 1층과 2층이 사람들로 빽빽히 들어찼다.
혐오란 무엇인가.
예배 내내 머릿속을 맴돈 질문이었다. 혐오에 반대하는 ���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였는데 도대체 누가 누구를 혐오하는 것인가. 내 주변엔 유대인의 표식을 단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이들은 1900년대 초반에도, 지금도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 혹은 그것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여전히 위험에 처해 있다. 나 또한 유대교 예배당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험할 수 있었다. 소름이 끼쳤다.
혐오는 도처에 존재한다. 곳곳에, 미세하게, 때론 명백하게, 만연하게.
나는 예배당으로 향하던 길에도 혐오를 목격했다. 퇴근길 만원 지하철 안. 내 앞에 서 있던 아줌마가 나에게 거친 언행을 사용하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요지는 한 번만 더 자신의 몸을 건들이면 나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 나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몸이 밀리던 상황이었지만, 나는 그녀에게 거듭 사과했다. 그녀를 더 자극하다 위험에 처할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러자 내 뒤에 있던 여자가 내 편을 들었다. “아주머니, 지금 여기서 서로를 안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저 아줌마에게 사과하지 말아요.” 쭈구리같이 사과하던 내게서 우월감을 맛보고 있었을 아줌마는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더 큰 분노에 휩싸였다. 아줌마는 분노의 방향을 나에게서 내 편을 든 여자로 변경했다.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
아줌마는 정말이지 ‘혐오 표현의 정석’ 책이라도 읽은 것 같았다. 전형적인 혐오 표현을 이어가는 아줌마를 보며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관심을 받기 위해서 저러는 걸까, 아니면 진짜로 저렇게 생각하는 걸까. 그리고 씁쓸했다. 혐오에 맞서 싸우기 위해 예배당으로 가던 길에 또 다른 혐오를 마주해 버린 것이. 게다가 힘이 없다고 느낀 내가 그 상황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던 것이.
혐오란 무엇인가. 혐오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생겨난 혐오는 반드시 표출되어야 하는가. 혐오는 반드시 사람을 죽여야 하는가. 왜 한 번 사는 인생을 그렇게 보내는가. 우리는 혐오를 멈출 수 있는가.
해결되지 못한 질문이 남았고, 혐오도 함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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