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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나는 앞으로도 어디에서도 이 노래들을 설명할 일이 없을 것 이라고 생각했다. 프로모션이라고 하는 일련의 활동을 하는 대신 오히려 이 노래들을 세상에 던지고 오랜 시간 숨어있기로 마음먹었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앨범을 다 만들었을 때, 나는 이 노래들로는 다 못 다한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확실하게 생각했다. 내가 나 이기 때문에 결코 할 수 없는 이야기 혹은 보여줄 수 없는 이미지들이 있을 텐데, 그것들을 나 대신 나에게 알려 줄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세 명의 아티스트를 섭외했고 그들이 바로 평소 좋아하던 영화평론가 이동진, 미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필름메이커 윤킴, 아트디렉터 김참새 였다. 애초에 이 모든 결과물들을 유기적으로 엮을 생각은 없었다. 막연하게 내 노래를 듣고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글과 영상과 그림으로 옮겨주길 바랐다. 그 과정에서 나는 언제나 그렇듯 철저히 뒤로 숨어있었다. 나는 어떠한 형태로든 내가 혹은 내 음악이 누구의 삶이나 작���에 친밀하게 관여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마치 무언의 강요처럼 혹은 정서적인 폭력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튼, 윤킴의 비디오들이 이메일을 통해 하나둘씩 도착하던 날들이 생각난다. 데드라인을 정확히 맞춰서 보내주는 그 치밀함에 조마조마함과 감사함을 동시에 느꼈고, 이 노래들을 정말 열심히 들어 준 마음이 오롯이 느껴지는 필름들이었다. 내가 제작비를 드려 부탁을 한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결과물들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 나는 작업 중간 쯤 그에게 이메일로 재즈뮤지션 힐러리콜의 피아노듀엣앨범을 보내주었고 그냥 이 노래가 함께 듣고 싶다고만 이야기했을 뿐인데, 그 노래가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집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 나에게 집에 조금 더 눌러앉아도 될 것 같은 충분한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거나 무언가를 나눌 때 또 음악을 만들거나 그 외의 다른 부분들을 함께 고민할 때, 언제나 내가 생각하는 것은 자유로움과 편안함이다. 그리고 아주 강한 끌림에 따른 견고한 믿음. 우리는 성장하고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음악을 하는 일이 그림을 그리는 일이 영화를 만들고 글을 쓰는 모든 일이 아니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시간이 학교성적표처럼 객관적인 수치가 지표로 정리되거나 나뉠 수는 없지만, 더 열심히 산다고 해서 지루한 다이어트가 쉬워지는 것도 아니고 더 훌륭히 산다고 해서 남들보다 한 끼 더 먹는 것도 아닐 테지만, 그냥 막연하게 우리는 더 나은 무언가를 위해 앞으로 나가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꽤나 퉁명스러운 말투로 왜 꼭 그래야만 하냐고 묻는다면, ‘행복해지고 싶어서.’ 라는 막연한 대답밖에 할 수 없는, 뭘 잘 모르는 아무것도 아닌 시간들 일지라도 말이다. 길은 끝나지 않는다. 멈춰서 있어도 뒷걸음질 쳐도 주저앉아 울고 있을 때도 우리는 언제나 길 위에 있었다.
2016.2.3 2:26 오전 정준일, [UNDERWATER] 작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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