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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를 일이다.

알 수가 있을까.

의지로 끊어내고, 분절시켜 볼 수는 있어도 그 시작과 끝을 말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언제나 모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줄지도 모르겠다.

모르겠다는 말을 언제부터 이렇게 셀 수 없이 하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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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력 오류

책을 읽다가 한 문장이 깊게 스며들어 웃으려고 얼굴을 찌그러뜨리는 동시에 뜬금없이 울음이 터진 순간이 있다. 심지어 슬프기는커녕 웃기지도 않을뿐더러 내게 어떤 의미나 맥락도 찾기 어려운 문장이었다. 그렇게 서러울 수 없게 여느 때보다 큰 울음이 터졌다. 당황스러운 동시에 비로소 네가 얼굴을 드러내는구나 하던 순간. 하필이면 커버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들어보지 않던 노래가 재생되고 있었다.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라고 반복해서 부른다. 뭘 그렇게 밝게 절망을 말해. 어디서 뭐가 들어와서 어디로 뭐가 나가는 지도 모르고 그저 무장해제되는 순간. 비로소 웃기다고 생각하며 울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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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

소진되어버렸습니다. 더이상 찍을 것도 쓸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소진을 기록하고 있네요. 있는 그대로 담다 보면 손에 잡히지 않는 것도 잡힐 것처럼 만들어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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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일어나서 바로 쓴, 잠결을 다 벗어나지 못한 글은 ‘대체로 혼란은 늘 마음속에 있다’느니, ‘스노볼이 마음속에 있다면 이런 느낌인가’라는 둥 어쩐지 둥둥 뜨는 와중, 클립은 왜 또 저 모양이니. 모양도 하필 y... heyyyyy...!  오늘은 쉬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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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

오늘따라 눈에 들어오는 걸 찍고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추린 뒤, 아침에 쓴 일기를 펼쳤더니 마지막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떠나고 싶다. 어디로 떠나니 나. 눈을 감으니 들판을 지나는 달리는 차 또는 기차의 창밖이 떠올랐다. 빠르게 지나가는 풀들, 나무들 그리고 그 사이 어렴풋하게 빛나는 노을. 어둑한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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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부에서 중심부로 향하는 길

괜찮다는 말을 하면 꼭 괜찮지 않아진다. 괜찮지 않다는 말을 하면 또 괜찮아지고. 마음과 나의 관계가 그렇다. 그러니까 마음을 먹을 때마다 나는 자꾸 그 반대로 튕겨져 나간다. 자석의 같은 극처럼. 각잡고 해보려고 하면 금방 탈이 난다.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시원하게 나아가는 장면을 상상하는 동안 정작 내 손은 나선 모양을 그렸다. 그 옆에는 나의 이번 주 문장을 적었다.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향하는 길’. 그것을 떠올려보는 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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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해

매일을 꼬박 기록하다 보니 다음 달이 오는 것이 꼭 새해가 오는 기분이었다. 유난히 말똥한 정신으로 책상 앞에 앉아있다가 새 해가 뜰 때쯤에야 이불에 누워 기지개를 폈다. 새 해 별거 아니구나. 일어나니 날이 깨끗하게 개어 있었다. 빨아놓은 듯 뽀얀 구름 뒤에는 후광이 일고 거리에는 갖은 생명체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간만에 볕을 쬐러 나온 사람과 동물들, 그리고 어디론가 바삐 움직이는 곤충들과 멍하니 서 있는 새들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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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죽이기

작은 카페에 들어가 음료를 주문하고 구석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1미터도 안 떨어진 옆 테이블에서 한 무리가 공간에 비해 제법 큰 소리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10초쯤, 아니 그보다도 짧은 공백을 깨고 누군가 말했다. 얼마 전에 아이의 담임교사한테 전화가 와서는 “어머니 죄송해요,,, 아이가 너무 원해서 달팽이를 데려가게 됐어요...”라는 말을 전해 들었고 아이가 들고 온 플라스틱 컵에는 다섯 마리의 달팽이가 들어있었다고. 그리고 달팽이는 어디서 사 온 거였는데 판매자가 그 달팽이는 절대 야외에 방생하지 말라고, 생태계 교란을 야기하니 조심하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무리는 어느새 달팽이와 달팽이 알 죽이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대화가 더 정신없는 상태로 빠져들 때쯤 무리는 카페를 떠났다. 무리가 떠나자 그 뒤에 앉아있던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기껏해야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 무리는 아이들이 모르게 달팽이 죽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정작 바로 뒤에 앉아 있던 아이는 간과하고 있던 것이다. 물론 아이 말고도 충격에 빠진 사람은 더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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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

사람들이 장화 신고 물웅덩이를 밟는 것을 왜 좋아하는지 이해된 적이 없었다. 내가 그래본 적이 없다는 것도 몰랐다. 어제오늘은 온종일 비바람이 부는 덕분에 작년에 중고로 구매해둔 무릎까지 오는 러버 부츠를 꺼내 신을 수 있었다. 별생각 없이 걷다가 물웅덩이를 밟았는데 그 찰박거리는 소리가 좋았다. 이후로 웅덩이만 보이면 밟고 ��어졌다. 그러다 너무 커다란 웅덩이를 봤는데 돌아가지 않고 그냥 밟고 지나갔다. 아무리 크고 지저분한 웅덩이가 있어도 장화만 있으면 내 몸에 찝찝한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서성일 필요도 없이 지나갈 수 있는 거였다. 이런 걸 이렇게 늦게 알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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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촬영을 마치고 옷을 추스르며 “아 또 다 벗고 찍어버렸네"라는 말을 하던 사람이 보고 싶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다 벗어젖힌 자신을 발견한 사람과 다 벗겨버린 사람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는 그날의 사진들을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괴로워졌다. 그의 한마디를 셀 수 없이 떠올렸다. 너무 미안해졌다. 그에게 벗으라고 한 건 아니었지만 좀 더 섬세할 필요가 있었다. 더 궁금해할 필요가 있었다. 그가 다 벗은 사진을 보는 것이 괴로워서 한참을 보지 않다가 시간이 꽤 지나고 나서야 겨우 지울 수 있었다. 그 한마디가 주는 충격에 비해 내가 깨달은 것은 그다지 뚜렷하지 않았다. 더 이상 여기 없는 그를 떠올리며 추측만 해볼 뿐이다. 카메라의 앞과 뒤의 힘 차이가 분명하게 그려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을 찍는 것이 두려워졌다. 내가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고 있을까, 내가 다 알지도 못하는 나의 힘이 누군가를 다치게 할까 두려웠다. 정작 내가 찍어야 할 건 나 자신이었다. 더 이상 내가 막연히 떠올리는 한 폭의 자유 안으로 누군가를 밀어 넣고 싶지 않아졌다. 내가 더 자유로워져야 했다. 내 자유는 내가 만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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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자꾸 멈춰버리는 날. 빙 빙 재빠르게 돌다가 톱니바퀴에 뭐가 걸린 듯 앞으로 ���아가지 못하고 진동만 울리는 날. 지잉 탁 지잉 탁. 이거 또 호르몬의 장난질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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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이벤트로는 자아를 둘러싼 안개를 걷어낼 수 없었다. 다만 이벤트에서 시작된 바람은 계속 불고 있다. 바람이 세지면 안개는 잠시 걷어진다. 안개가 걷힐 때마다 보이는 상을 기록하고 있다. 기록은 흩어진 퍼즐 조각 같다. 이 퍼즐을 포기하지 않고 맞추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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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변할 게 없을 것 같아도 물을 머금으면 짙어지고 부드러워지는 죽은 껍데기들. 그 감촉이 좋아 이따금씩 물을 주고 매만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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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깍지

뽀도독 거리며 콩깍지를 벗기다가 웬 새끼 메뚜기를 만나버렸지 뭐야. 메뚜기는 완벽하게도 콩깍지 보호색. 여름에는 살구. 손톱보다도 작은 메뚜기를 손에 얹으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로 가벼워서 아무 느낌이 안 나. 창문 밖으로 내보내 줬는데 내가 잘 보내준 건지 아닌지도 모르겠더라. 그렇게 가뿐하게 뛰어다니는 건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 오늘은 누군가에게 당신이 믿는 건 환상일 테니 한 번 생각해 보라고 했어. 종종 당신의 믿음대로 타인이 행동하는 날이 오면 그건 환상이 이루어진 날이고 그렇지 않은 날은 그냥 보통날이라고. ‘웃기지? 그게 인생이잖아’는 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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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건 집 가서 카톡 할게~

우수수 쏟아져. 할 말 없다고 해놓고 늘 그래. 아직도 할 말이 남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말이지. 말은 말을 불러와서 끝없이 떠들다가 기가 다 빠져서 잠들게 만들어. 그러니까 오늘은 무슨 생각이 떠오른 거냐면 요즈음 내 책상에 쌓여있는 책과 노트들 말야, 내 뇌를 빼곡히 옮겨 놓은 건데 그러면 좀 많�� 게 정리될 것 같았는데 정작 중요한 건 바뀌지 않았다는 거야. 이건 그냥 다 내가 살아있게 해주는 도구들쯤 된다는 거지. 그러니까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끄집어 놓다 보면 숨통은 좀 트이는데 중요한 무언가는 아직 여기 없어. 그런데 그런 무력감과 무기력에 미쳐버릴 것 같을 때쯤 여기 다시 뇌를 털어버리면 나는 아직 살아 있어. 이렇게 엇박자로 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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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다”

여름을 수없이 감각하는 중이다. 여름이 왔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지 모른다. 4년 전 이맘때 산 티셔츠를 꺼냈다. 여름은 물론이거니와 사계절 내내 입을 수만 있다면 언제든 꺼내어 입었다. 촉감과 두께, 프린팅 그리고 커다란 사이즈까지 모두 마음에 꼭 들어서 자꾸 꺼내 입었고 역시 자주 입고 세탁하는 만큼 목이 늘어나고 프린트도 바래가서 이전만큼 자주 입고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애정 하는 마음은 처음의 그것과 같다. 유치원을 다니던 나이에도 유치한 옷이 싫다고 하고 어릴 때부터 성숙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던 나는 어릴 때부터 애착 물건을 꽤 오래도록 곁에 두고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보면 ‘미성숙한 마음인가’싶은 동시에 나에게는 그런 물건이 남아있지 않고 앞으로도 생길 일 없는 사람일 줄 알았는데 웬걸, 나이가 들수록 옷, 신발, 노트, 컵, 안경, 펜 등 가릴 것 없이 온갖 물건에 대한 애착이 생겨난다. 애착이 생긴 물건은 본래의 용도 그 이상의 기능을 해 삶을 더 풍요롭고 생생하게 만들어 준다. 그치만 물건을 그리 소중히 다루거나 관리하지 않고 자주 덜렁대는 나는 애용하는 물건일수록 그 수명이 빠르게 소모되거나 너무 자주 지니고 다니다가 잃어버리고 만다. 아니면 그냥 다른 사람이 내 물건을 깨뜨리거나 잃어버리기도 한다. 이때마다 다 큰 성인도 애착 물건과의 갑작스러운 이별은 뜻밖의 상실감을 안겨준다는 걸 깨달았다. 고작 물건과의 이별이 이렇게나 슬플 일인가 싶지만 물건의 금액적 가치와는 별개로 많은 추억이 담긴 작은 우주를 잃는 그 상실감은 결코 변치 않는다.  6월에 태어난 나는 생일과는 별개로 유월의 날씨와 ‘유월’이라는 단어 자체까지 자꾸만 좋아진다. 끈적한 공기가 덮쳐오고 몸의 수분이 날아가는 감각은 지나간 여름 기억들을 깨운다. 몇 년에서 몇십 년 전의 감각들은 지금 여기와 연결되며 또 하나의 여름 기억을 새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해준다.

아무튼 이 이야기는 프랑스에서 데리고 온 저 하얀 티셔츠와의 이별도 머지않은 것 같아 간만에 선선한 ���람과 쨍한 볕을 쬐어주며 이번에는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으로 쓰게 되었다.

지금 여기의 기억이 또 다른 작별과 인사할 수 있기를 바라며.

HINDI ZAHRA의 Beautiful Tango (Unplugged)를 들으며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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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고 있는 나를 찍고 있는 나를 보고 있는 지금

아파트 숲. 창에 비친 수많은 창. 창 앞에선 사람. 사람은 사람을 보고 있고 사람은 자신. 밖에 나갈 때면 귀와 목과 손과 팔에 뭐라도 두르거나 착용하지 않으면 허전한 사람. 반면 어딘가에 들어가면 뭐라도 두른 것이 거슬리고 불편해서 하나라도 풀거나 빼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