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대충의 프랑스 정착기 - 1편
학교 인사팀에서 굉장히 많이 도와줘서 비교적 쉽게 은행 계좌와 집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일단은 학교 내부의 레지던스로 들어갔는데 일하는 건물하고 50m 정도 떨어져있다.
그래도 계좌를 열려면 집주소가 필요하고, 집계약을 하려면 은행계좌와 보통은 은행에서 들곤하는 주택보험이 필요한 모순덩어리 제도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그냥 계약해주고 보험은 증서 받는데로 문서 제출하기로 했다.
침실에 작은 부엌과 욕실이 딸린 집은 마음에 드는데 학교가 그나마도 작은 도시에서도 외곽에 있는지라 주말에 밥먹으러 가기도 불편해서 한두달 후에 옮기려고 생각중이라 종종 웹질을 하면서 방을 보고 있다.
언어 문제는 오히려 은행이나 등등에서는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괜찮았는데, 말이 안통하니 장보는게 힘들다. 마트 내부를 몰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단어를 모르니 시간이 영국에 있을 때 비해서 2배는 걸리는 �� 같다. 구글이 없던 시대에는 사전을 가지고 다니면서 장을 봤으려나. 핸드폰 신호가 잘 안터지는 지하에 있는 곳에서는 뭔가를 하기 힘들다. 그나마 큰 회사들이 국가마다 브랜드 이름을 같게 가져가는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나는데로 종종 더 써봐야지.
0 notes
Text
세 번째는 아니 냈어야 좋았을 것이다.
금요일에 친구들하고 연주해보고 싶은 음악 얘기하다가 Santana의 Smooth 이야기가 나왔다. 과연 이 할아버지의 지글지글 끓는 기타톤을 흉내낼 수 있을까 생각하다 연이어 이 노래 나온지가 벌써 15년이 됐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면서 콜라보레이션 앨범 3연작도 생각났다.
초특급 메가히트를 기록했던 1999년의 Supernatural 앨범의 성공 이후에 이와 거의 비슷한 컨셉의 앨범인 Shaman, All that I am의 두 장의 앨범을 몇년 간격으로 내놓았다. 그 컨셉은 잘 알려진대로 산타나와 친구들. 그 당시 리키 마틴이나 제니퍼 로페즈 등이 라틴 음악을 들고 나와서 한창 인기 끌고 있을 때였는데 그 동네 대부인 산타나가 떡하니 나타나서 씬을 쓸어버렸다. (이 아저씨는 69년 우드스탁에도 참가한 노장이니까.)
Supernatural은 정말 명반이라 생각하는데, 합쳐서 빌보드 싱글챠트 20주 이상을 점령했던 Smooth와 Maria Maria는 물론이고, 클랩튼과 함께한 The calling이라던가 정말 버릴 ��이 없었다. 미국 팝과 라틴 블루스락의 조합이 굉장히 절묘하기도 했고, 신선하기도 했다고 기억된다. 덕분에 Santana 옛날 노래도 찾아듣고 했었드랬다.
두 번째 Shaman은 Michelle Branch가 노래한 game of love이나 니클백의 Chad Kroeger가 노래한 why don't you and I 정도가 조금 인기있었다. 나는 Victory is won이라는 소박한 연주곡이 좋았는데, 이 곡은 라이브에서 Smooth 연주할 때 인트로격으로 종종 연주하곤 한다.
세 번째 All that I am에는 Aerosmith의 Steve Tyler가 노래한 Just feel better가 잠시 뜨는 듯 했으나 조용히 사라졌다. 스티브 아저씨의 되게 애절한 목소리 발라드 아주 좋아하는데 몇번 들으니 그렇게 질릴 수가 없더라. 그렇다고 산타나 스타일이 잘 드러난 것도 아니었고.
처음부터 3장을 내려고 계획한건지, 첫 번째의 성공 이후에 단물을 뽑아먹으려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후자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이라면 해도 너무했다는 느낌이다. 화려한 이름의 게스트들도 세 번째까지 오니 무덤덤해지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지나친 욕심이 첫 번째 앨범의 명성과 업적에도 누를 끼친게 아닐까 싶다. (돈은 벌었겠지.) 참고 참아서 두 번째까지는 봐줄만 했다. 하지만 세 번째는 아니 냈어야 좋았을 것이다.
0 notes
Text
Derek is not Eric.
몇년 전인가 잡지 롤링스톤이 The new guitar gods에 Derek Trucks, John Mayer 그리고 RHCP의 John Frusciante를 선정했다. 그 중 대중적으로는 가장 덜 알려진 Derek를 Eric Clapton의 내한 공연에서 보고 무지 놀랐드랬다.
07년에 했던 그 공연에서는 클랩튼의 Derek and the dominos 시절의 곡을 주로 연주했는데, 누군지 모르는 꽁지머리 금발 청년이 피크도 안쓰고 슬라이드 기타를 쳐대는데 정말 대단했다. 특히 Layla의 슬라이드 솔로때에는 Duane Allman이 살아 돌아온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
집에 돌아와서 찾아보니 당시 객원으로 참여했던 Duane Allman이 있던 Allman brothers band의 드러머의 친조카이고 12살때부터 그들하고 투어를 다녔다고 한다. 현��는 10살 많은 블루스 뮤지션과 결혼해서 같이 음악하고 있다.
Derek and the dominos 시절에는 에릭이 자기 이름 걸면 음악하고 상관없이 인기 때문에 관중 몰린다고 싫어해서 이름을 안밝히고 투어 다녔는데 어느새인가 Derek is Eric이라는 소문이 나서 다 뽀록났다고 그런다. 이제는 Derek is not Eric이다.
ps. 13 year old Derek Trucks - Layla
0 notes
Text
죽음에 대비하는 올드 락앤롤 팬의 자세
언젠가 한 평론가가 말하길 만일 신이 자신이 사랑하는 자들을 먼저 데려간다면 신은 엄청난 락앤롤 팬임이 분명하다고 그랬다. 정말로 60년대 말 27세로 요절한 짐 모리슨, 재니스 조플린, 지미 핸드릭스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락스타들이 약물과 알콜 등으로 너무나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때로부터 약 반 세기가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다시 한 번 락스타들의 죽음을 받아들여야할 때가 된 것 같다.
사실 이 생각을 처음 한 건 2007년초 에릭 클랩튼의 2번째 내한공연을 보러갔을 때 키보디스트로 활약하던 빌리 프레스톤의 2006년 사망으로 인한 부재 때문이었다. 그 이후 에도 핑크 플로이드의 릭 라이트를 비롯하여 많은 스타들이 삶을 마감하였지만 새삼스레 또 한번 떠올리게 된 계기는, 다시 한 번 런던에서 만난 에릭 클랩튼 공연에서의 절친한 동료였던 게리 무어를 추모하는 Still got the blues 연주와 존 메이어 공연의 JJ 케일 추모곡 Call me the breeze였다.
며칠 전 케일에 대한 클랩튼과 그 동료들의 추모 앨범이 발매됐다. 뮤직 비디오에서 이제 세상을 떠난 본인의 영웅이 살던곳을 그냥 가보고 싶다고 이야기 하는 에릭의 모습을 보니 작년의 50주년 투어와 올해의 월드 투어를 건강상의 문제로 중단하던 에릭과 폴 매카트니 경이 오버랩 된다.
내 10대 이후를 가득 메웠던 락스타들이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에 떠나갈 것을 생각하면 슬프지만 받아들여야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겠다.
이제 올드 락앤롤 팬은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0 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