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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함에
몸을 수백 갈래로 찢어버리고 싶은 날이 있다
덧없는 눈물은 그만 흘리기로 했으면서
아직도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끼니?
당연하지 나는 사랑받은 적이
없는 걸 어떡하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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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사람들은 모두 행복을 갈망하고 찾으려고 하죠. 그런데 행복을 찾다 보면, 가끔씩은 행복이 무엇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과연 남들이 추구하는 행복과 내가 추구하는 행복이 같을까요? 그럴 리 없을지도 몰라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행복은 어떤 건가요? 남의 행복에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가 무엇이 행복인지 고민해서 자기만의 행복을 찾아보세요.
그런데 그것도 어렵다면, 이도저도 아닌 게 되기 싫다면,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그것이 행복일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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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들

5월 17일 발매한 브로콜리너마저의 세 번째 정규 앨범 [속물들]. 드디어 나왔다는 사실은 바로 알았지만 미루고 미루다 드디어 듣게 됐다. 먼저 공개한 곡인 <혼자 살아요>를 들어보긴 했지만 모든 곡을 듣는 건 좀 나중의 일이었다. 나는 좀 특이한 버릇이 있는데, 이렇게 좋아하는 가수나 그룹의 앨범이 있으면 꼭 순서대로 한 번에 들으려는 마음가짐이 있다. 그래야 전체적인 느낌을 이해할 수 있다나 뭐라나. 그래서 방탄소년단의 [LOVE YOURSELF : TEAR]도, 저스디스와 팔로알토의 [4 the Youth]도 그런 방식으로 들었다. 귀찮다면 귀찮은 습관이지만 나는 이걸로 비난받고 싶지는 않다.
한참을 기대하다 드디어 들어보는 첫 곡을 필두로, 여덟 곡을 이어서 끊지 않고 계속 들었다. 마지막 곡이 끝나고 다시 한 번 더 들었다. 기숙사 방에서 홀로 이어폰을 꽂고 들었다. 처음 듣자마자 나는 ‘와! 브로콜리!’라는 느낌과 함께 기분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고, ���범이 중반부를 지날 즈음에는 ‘이래야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이지, 이번 앨범도 좋구만’이라는 한껏 격양된 감정. 마지막 음악인 <아름다운 사람>이 끝나고 나서는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 나온 것 같다. 노래 자체의 연주와 가사가 주는 위로,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을 다시 한 번 더 들을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한 기쁨, 왜 이렇게 오래 걸렸냐고 묻고 싶은 서운함. 그 외에도 알 수 없는 먹먹함과 아련함이 느껴졌다. 이러한 현상은 <다섯시 반>을 듣고서도 일어났었다.

3집 앨범인 [속물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1집과 2집을 합친 것 같다. 1집의 밝고 명랑한 분위기, 2집의 세련되고 발전한 연주 실력을 한데 모은 느낌이랄까. 둘의 장점들만 쏙 골라 걸작을 만들어냈다고 이해했으면 좋겠다. 브로콜리 밴드의 팬이라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거라고 믿는다. <속물들>이나 <혼자 살아요>는 1집 같고, <서른>이나 <아름다운 사람>은 2집 같다. 뿐만 아니라 각종 싱글 앨범 음악 느낌도 나서 그동안 냈던 음악들의 총집합이라고 볼 수 있겠다. 윤덕원의 작곡 및 작사 실력은 전혀 녹슬지 않았고, 브로콜리 밴드의 연주는 아직도 촌스럽지 않다. 오히려 발전했다면 발전했다고 보는 게 더 맞다.
가사도 주옥같은 것들이 많다. 아니, 전부 다라고 하는 게 더 옳을 듯하다. 특이한 건 하나의 앨범 아래 두 주제가 대비를 이룬다는 점이다.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나 <속물들>, <괜찮지 않은 일> 등은 현실에 순응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느낌의 가사였다면, <아름다운 사람>은 힘든 현실 속에서 조용히 위로하는 느낌의 가사였다. 이 앨범 트랙을 순서대로 다 듣고 나면, 한 편의 이야기로 완결될 것만 같다.
“여러분, 원래 세상은 힘든 거예요. 고통받고 갑갑하니 서로의 관계를 제대로 된 눈으로 바라보고, 세상을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게 옳겠죠. 하지만 그래도 여러분을 위로하고 싶어요. 삶은 이렇게나 힘들지만 잠결에라도 여러분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의도된 배치일까, 아니면 우연일까. 어느 쪽이든 트랙 순서는 이게 옳다고 본다. 한껏 고조된 분위기를 잔잔하게 내리깎으면서 이 음악을 들은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사는 오히려 행복한 결말로 ���맺음을 하고 있으니, 음악과 가사마저도 이리 대비된다는 점이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내가 브로콜리너마저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 다른 밴드나 그룹과는 차별화된 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이런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브로콜리 밴드를 보러 홀로 서울 여행을 갔다가 최악의 여행이 되어서, 그 뒤로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에 대한 애정이 사라졌다는 이야기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귀인 오류라고 부르는데, 내가 서울 여행에 가서 개고생만 잔뜩 하고 즐기지 못한 것을 브로콜리 밴드의 공연이 별로였다는 탓으로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당연히 화풀이나 다름없으니 옳지 못한 행동이지만, 인간의 심리 상 그렇게 될 수 있기에 이성적으로는 깨달아도 본능을 멈출 수는 없다. 아무튼 그 뒤로 음악을 듣는 빈도가 엄청나게 뜸해졌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속물들]을 듣고, 마음 속 깊은 곳에 봉인해두었던 애정이 다시 풀려났다. ‘그래, 이게 브로콜리지’라는 감정과 함께 과거에 이 노래를 듣고 행복했던 추억도 다시 상기됐고, 다시 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퍼뜩 자리를 잡았다. 잊고 지냈던 브로콜리너마저를 향한 충성심을 [속물들]이, 브로콜리 밴드가 직접 나를 다시 깨닫게 해준 것이다.

그래서 어제는 오랜만에 2집 앨범인 [졸업]을 다시 들었다. 역시 이 음악을 듣고 느꼈던 감정, 가치관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왜 브로콜리너마저를 좋아했고, 왜 음악들을 좋아했는지 기억나게 한다. 첫만남은 <1/10>으로, 한껏 물올랐던 때는 <졸업>과 각종 싱글들로. 애석하게도 1집 음원은 가지고 있지 않아서 패스.
오랜 시간 동안 정규 앨범이 나오지 않아 서운했지만, [속물들]을 듣고 나니 9년이라는 공백이 왜 필요했는지 알 것 같다. 이런 앨범을 뽑아내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브로콜리 밴드는 합당한 준비 기간을 거쳤고, 나와 다른 팬들은 인고의 시간 끝에 합당한 대가를 받은 것이다. 또한 나로서는 잊고 살았던 애정도 다시 깨달았으니, 여러모로 나에게는 커다란 선물이나 다름없다. 만약 이 앨범이 내 생일에 나왔으면 아마도 엄청나게 울어댔을 것이다. 최고의 생일 선물일 테니. 하지만 지금 나왔다고 싫다는 건 절대! 아니다.
브로콜리 밴드의 많은 팬들이 이번 앨범에 웃고 울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런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닌데, 아무래도 잠시 내려왔던 '광팬'의 자리에 다시 올라온 것 같다. 이제는 경기도에 사느라 막차에 쫓길 일도 없으니 ��때와 같은 참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마음 놓고 공연을 끝까지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브로콜리너마저에게 정말로 감사한다. 앞으로 이런 음악들을 또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싶다. 내 인생에 큰 획을 그었던 밴��인 만큼, 절대로 이 감정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그동안 정말로 행복했어요. 앞으로도 제가 행복해질 수 있기를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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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를 꽤 열심히 쓰고 있다. 대학교에서 시를 쓰고 서로 비평하는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데,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잘 쓰니 내가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시를 써보고 만족스러운 시를 만들어내야 했다.
시작은 어렵지만 시作은 어렵지 않다. 나름대로의 좋은 결과물은 자주 나오지 않지만 나대로의 시는 잘 표현되고 있다. 나를 표현하는 시가 나올수록 나를 사유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그럴수록 세상에 나의 사유지가 늘어난다. 그래서 내 목표는 나에게 나를 각인시키는 것.
외로움과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릴 때 손가락으로 뱉어내면 감정들이 빠져나간다. 비록 그 자리에는 공허함만이 남을지라도 악보다는 무악이 낫지 않겠는가. 그러니 나를 갉아먹는 벌레들이 스멀스멀 피어 올라오면 다시 시를 써서 벌레들을 쫓아내자.
내 성격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세상에 나를 표현하는 마음은 긍정적이고 낙관적이지만, 이상하리만치 시를 쓸 때만 나는 극도로 부정적이고 비굴한 생각으로 스스로를 난도질한다. 그래서 내 시는 좋은 말보다 나쁜 말들이 훨씬 많다. 사람들이 내 균열을 엿보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아예 엿보지 않으면 외로움에 사무쳐 땅 속 깊이 묻혀버릴 것만 같다. 누군가 나를 눈치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나의 오랜 숙원이자 숙명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숙연해진다.
오늘은 노래방을 다녀왔으니 텅 빈 마음으로 시를 써 볼까. 행복을 다 드러내고 나니 남은 것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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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이 너무나도 뻔하게 느껴지는 날이 오면 그건 내가 변화를 거부해서일까. 나 자신이 너무나도 외롭게 느껴지는 날이 오면 그건 내가 사람이 두려워서일까. 나 자신이 너무나도 화가 나면 그건 내가 제대로 나서지 못해서일까. 나 자신이 너무나도 작게 느껴진다면 그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 커서일까. 나 자신이 너무나도 안쓰럽게 느껴진다면 그건 나를 위로할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일까. 때로는 광란의 질주를 원하다가도 영원한 안식을 원하고, 때로는 친근함 가득한 대인관계를 원하다가도 숨막힐 듯한 고독을 원하고, 때로는 세상 모두를 사랑하다가도 나 자신에게 칼을 찌르고, 때로는 노래를 부르다가도 내 목에 자물쇠를 잠가놓는 때가 있다.
그렇다고 나의 삶이 일관되지 않아서 비참한 것일까? 나의 삶이 획일화되지 않아서 어지러운 것일까? 나의 삶이 화려하지 않아서 우울한 것일까? 주변 사람들을 보며 나의 삶을 돌아보면 확실히 혼자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 새벽 두 시까지 통화하는 친구들을 보면 왜 나는 저런 인연이 없나 생각하고, 밤늦게 돌아오는 친구를 보면 왜 나는 저렇게 놀 수 없는가 생각하고.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알 수 없는 욕심도 생기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삶이 살만하지 못한 것일까?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지만, 아직 첫 번째 단계에도 도달하지 못해서 힘들다. 남을 비교하는 것을 멈추면 편하겠지만, ��대 사회에서 사는 인간의 심리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알 수 없는 딜레마에 나는 오늘도 한층 더 비교하며 외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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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 가득한 물건
남들은 뭣 때문에 저런 걸 사느냐고 핀잔이지만 나에게는 이만한 위안이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주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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