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r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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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공간 다른 방향으로 숨쉬는 사람. 우리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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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도 다 담지 못한 감정이 어느 순간 눈가에 고였다. 그것은 슬픔만의 색을 띠지 않았고, 기쁨과 그리움, 후회와 안도가 얽혀 있는, 이름 붙이기 어려운 물이었다. 흘러내리는 동안 마음속 깊이 감춰 두었던 장면들이 하나씩 떠오르고, 그 장면들은 말 대신 흐르는 길 위에 놓였다. 울음은 종종 약함으로 오해받지만, 실제로는 가장 단단했던 마음이 잠시 방어를 내려놓는 순간에만 찾아온다. 그래서 그 한 줄기 물은 스스로를 감추지 않겠다는, 아주 짧지만 명확한 선언이기도 했다. 멈추려 애써도 끝내 흘러내린 눈물 속에는, 그동안 쌓아 올린 침묵과 버텨 온 시간들이 고스란히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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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되어도 몸은 여전히 밤처럼 무겁고, 눈을 떴지만 완전히 깨어난 기분은 들지 않는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기운이 바닥에 닿아 있고, 작은 일에도 숨이 가빠지며, 집중하려 하면 생각이 자꾸 흩어진다. 쉬어도 회복되지 않고, 잠을 더 잔다고 나아지지 않는 이 상태는 단순한 피곤함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이고 굳어진 피로가 몸과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날은 이유 없이 무기력해지고, 좋아하던 일조차 흥미를 잃으며, 몸은 버티는데 마음이 먼저 꺼져버리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렇게 조금씩 무너진 에너지가 회복되지 못한 채 쌓이고 쌓여, 결국엔 살아가는 속도 자체가 느려지고, 쉬고 있어도 계속 지쳐 있는 상태가 된다. 이 고착된 피로 속에서 나는 단지 버티는 법만 더 익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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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쏟아내는 일이 더는 가능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 순간은 조용했다. 기대도, 분노도, 심지어 슬픔조차 흐르지 않는 상태, 몸은 움직이지만 마음은 오래전에 어딘가 멈춰버린 채였고, 매일이 복사된 장면처럼 이어졌으며, 어떤 자극에도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 감각의 무력함만이 남았다. 누군가의 다정한 말도, 오래 기다려온 순간도, 모두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멀게 느껴졌고, 모든 것이 흘러가는데 나만 그 흐름에 닿지 못한 채 떠밀리는 기분이었다. 쉬고 싶은 마음과 멈추면 무너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겹쳐져,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죄책감에 시달렸고, 그 죄책감은 점점 무게를 키워 나를 짓눌렀으며, 그렇게 무너짐조차 없이 안쪽에서 서서히 꺼져가듯 사라지는 날들을 견디며, 나는 이제야 묻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아니 어쩌면 잘못된 게 아니라, 그저 오래도록 나를 잊고 있었던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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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감정은 입술에 머무르지 못하고 곧장 손끝으로 흘러내려, 마침내 말이 아닌 문장으로 몸을 입는다. 그것은 누군가를 향한 고백이기도 하고, 스스로를 향한 회복이기도 하며, 동시에 아무에게도 닿지 못할 예감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다. 나는 그 감정을 붙잡기 위해 종이를 펴고, 숨을 고르며, 나조차도 다 알지 못했던 마음의 결을 천천히 따라 내려간다. 말보다 느리고, 기억보다 흐릿하지만, 그 속엔 분명 무언가가 살아 숨 쉬고 있고, 그 생의 파편들이 문장이라는 형태로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동안 나는 조금씩 가벼워지기도 하고, 때로는 되레 더 무거워지기도 한다. 이 행위는 결국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이해받기 위한 것도 아닌, 내가 나를 견디기 위한 가장 오래된 방식이었고, 그 무엇보다도 정직하게 나를 마주하게 만드는 순간이기에, 나는 여전히 멈추지 않고 그것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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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선은 말보다 먼저 와닿고, 그 닿음은 피부 아래로 파고들어 천천히 뜨겁게 스며들다가 결국엔 전신을 적시는 갈망이 되고, 이성의 표면을 조용히 긁어내리며 나를 너로 향하게 하고, 숨을 고르는 틈마다 너의 온도를 상상하게 하며, 손끝이 아직 닿지 않은 공간에서조차 이미 그 형태와 결을 기억하게 만들고, 서로의 존재가 하나의 예민한 촉각이 되어 다가오는 모든 순간에 그 의미를 덧씌우게 하고, 감춰보려 애쓰는 마음조차 점점 벗겨져 결국엔 너라는 이름의 허기로 무너지고야 마는 밤, 멈추지 못하는 감각은 끝내 말이 되지 못한 채 떨리고, 나는 그 떨림을 핑계 삼아 너를 향해 더 깊숙이 가닿고 싶은 충동에 빠지며, 그 충동은 오직 너만을 중심으로 선회하며 타오르고, 그 타오름 안에서 나는 더는 누구도 아닌 나로서, 오직 너라는 증명 하나로 존재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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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창밖은 희미한 푸름으로 젖어 있었고, 그 빛은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조용히 스며들어 방 안 구석까지 흘렀다. 나는 숨을 들이마시고 오래도록 내쉬며 무언가 잊으려 애썼지만, 그런 노력은 대체로 반대로 작용했다. 되려 더 선명해지고, 더 가까워져, 결국 마음 깊숙한 곳에 무거운 무늬처럼 남게 된다. 말하지 못한 문장들, 다 닿지 못한 손끝의 떨림, 끝내 그리지 못한 얼굴 하나가 온몸을 잠식했다. 마치 언젠가의 약속처럼, 아직도 어딘가에 그 사람이 존재할 것만 같은 착각 속에서, 나는 늘 반쯤 젖은 상태로 살아갔다.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나는 계속 대답했고,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를 기다렸다. 그런 밤들이 쌓여 어느새 마음은 너무 무거워졌고, 그 무게만큼 나는 자꾸만 뒤로 젖혀졌다. 그래도 쓰러지지 않기 위해 발끝을 세우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익혀가며, 여전히 누군가를 꿈속에서 불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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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언제나 붉었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르던 오후의 열기, 입술 끝에 맺혔던 말, 말이 되지 못하고 스러진 침묵, 그 모든 것이 핏줄처럼 얽혀 있었다. 맥박이 빠르게 뛰던 순간마다 안쪽 어딘가에서 새어 나오는 온도가 있었고, 그것은 다정함보다는 본능에 가까웠다. 창가에 남은 빛조차 선명하게 물들었고, 그 아래에서 나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부끄러운 마음을 태우고 있었다.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그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흐릿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 진해졌으며, 문득 마주친 시선 하나에 다시금 타오를 준비를 마쳤다. 부끄러움과 갈망, 부정과 확신 사이를 오가는 감정의 결, 그것은 결국 하나의 색으로 귀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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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받아들이는 방식에 더 가깝다, 같은 풍경도 누구의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고, 같은 말을 듣고도 마음에 남는 결은 제각각이다, 시각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옮기지 못한다, 늘 왜곡되고 굴절되며, 그 사람의 기억과 감정, 상처와 바람을 통과한 뒤에야 하나의 장면으로 도착한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너무도 다른 현실 속에 머무르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같은 공간을 살아간다, 시각은 믿을 수 있는 진실이 아니라, 선택된 해석이고, 응시의 방향이며, 가장 조용한 방식의 고백이다, 나는 너를 본다, 하지만 그게 정말 너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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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내가 누구인지 잊은 채로 살아가지만, 그런 무심함 속에서도 문득 내 안에서 울리는 미세한 떨림 하나에 멈춰 서게 된다, 누군가의 시선에서, 혹은 나 자신에게조차 설명할 수 없는 감정 속에서 비로소 나라는 존재의 결을 느낀다, 나는 수많은 가능성과 망설임의 틈 사이에서 조심스레 균형을 잡으려 애쓰고, 때론 무너지고 흘러내리며,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남는다, 외로움에 잠기기도 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무력해지기도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이 겹겹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나는 완성되지 않았고 어쩌면 영영 도달하지 못할 무언가를 향해 걸어가지만, 그 미완의 나도 분명한 하나의 이야기다, 나는 그렇게 매일 조금씩 자라고 부서지며, 다시 나를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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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고 싶기도 하고, 들키기 싫기도 했다. 문장을 쓸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선 누군가가 이 조심스러운 말들 속에서 나를 정확히 알아봐 주길 바랐고, 또 다른 한구석에선 끝내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채 조용히 지나가주길 바랐다. 보여주고 싶어 적은 듯하면서도, 실은 가장 중요한 것들은 비껴 쓰고 눌러 담아 감춰두었고, 그 감춤이 누군가에겐 오히려 더 선명하게 읽힐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무심한 척, 아무렇지 않은 말들 뒤에 진심을 숨겨두고, 들켜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속이며, 사실은 아주 작은 희망처럼 누군가가 그걸 알아채 주길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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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조물은 만들어졌다는 사실로부터 시작된다. 의지 아닌 의지로 태어난 존재, 자신의 기원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 채 세상에 놓인 존재. 나는 종종 그런 느낌을 안고 살아간다. 내가 나로 살아가고 있음에도, 어딘가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듯한 감각. 피조물은 완성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살아간다는 건 언제나 미완의 상태를 견디는 일이다. 창조자의 ���을 떠난 순간부터 피조물은 혼자가 되고, 자기 해석으로 세상을 배워가야 한다. 고통도, 자유도, 선택도 모두 주어진 삶 안에서 스스로 책임져야 하기에 피조물은 순응과 저항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다. 나는 피조물로서 세상을 건너지만, 때로는 나 역시 누군가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는 걸 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창조자이자 피조물이 된다. 불완전한 손길로 서로를 빚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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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이 더이상 낙원이 아니라 해도 꽃은 피어난다. 누구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찢긴 땅 위에서도 제 몫의 계절을 잊지 않고 기어이 피어난다. 아름답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기 위해, 누군가의 위로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상처는 흙이 되고, 기다림은 뿌리가 되고, 침묵 속에서도 꽃은 제 때를 알아차린다. 그러니 우리도, 낙원이 아니어도, 사랑받지 못해도, ���든 것이 무너진 자리에서도 스스로의 꽃을 피워낼 수 있기를. 부디, 그렇게 살아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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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은 말하지 않은 마음이다. 꼭 필요해서 남겨둔 것이 아니라, 다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남은 것. 어떤 감정은 너무 커서, 어떤 생각은 너무 서툴러서 끝내 문장 밖으로 밀려난다. 나는 그런 여백을 자주 마주한다. 말끝에 맴돌다 삼켜버린 말, 보내지 못한 메시지, 건네지 못한 눈빛. 여백은 비어 있는 게 아니라, 담기지 않은 채로 남은 것이다. 오히려 가장 많은 이야기를 품은 곳. 다 채워야 온전한 것이 아니라, 남겨두었기 때문에 더 진한 무언가. 나는 너와 나 사이의 여백을 오래 바라본다. 그 안에 담긴 조심스러움, 머뭇거림, 바람, 그리고 아직 말하지 않은 진심까지. 그래서 어떤 여백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우리가 다시 말을 건넬 수 있도록 남겨둔, 아주 조용한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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