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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문화축제에 갔었다.
퀴어문화축제에 갔었다. 작년에는 안 갔으니, 1년만이었다. 비가 아주 많이 오고 우산을 쓴 사람들과 동성애 결사 반대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부스 행사가 있던 서울 광장 안에 퀴어들은 다들 항아리 속 장아찌처럼 푹 젖어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웃고 있었다, 매우 즐거워 보였다. 불쌍한 것은 반대편 할렐루야들이었다. 그들은 동성애, 망국, 종북, 좌파를 척결하려는 사명감만으로 광장에 서 있는 것인지, 다들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집에 가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들 중 신난 것은 하릴없던 차에 소일거리가 생긴 몇몇 노인들고 목사들 밖에 없었다,
나는 플리플랍을 신고 화장실을 찾아 방황하다 결국 찾지 못했다.(사실 화장실은 입구 바로 옆에 있었다고 한다.) 똥을 꾹 참은 체로 퍼레이드를 걸었다. 야훼 하느님이 호모들을 돕는 지, 비는 행진이 시작하자 마자 멈추었다가 행진이 끝나자마자 다시 내리기 시작해 행진 중에는 비를 맞지는 않았지만, 꿉꿉한 날씨와 긴 행진거리에, 플리플랍까지 신은 나는 발이 아파 죽을 뻔. 퍼레이드 차량은 서로 경쟁이라도하듯 쿵쾅거리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그에 맞서 할레루야 혐오 차량들도 찬송가를 크게크게 틀어 귀가 너무 아팠다. 주변의 퀴어들은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쿵쾅거리는 음악을 즐기는데, 나는 놀 줄 모르는 사람이라 쭈뼛거리기만했다.
랭진을 하는 동안 거리에 시민들이 우리를 동물원에 원숭이 보듯 쳐다 보았다. 우리를 보는 관객 사이에 섞여 있을 다양한 군상을 생각했다. 더러운 호모들의 행진에 놀란 사람, 실사 bl커플을 처음보고 흥분한 후죠시,자기도 행진에 참여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디나이얼 게이 등등 얼마나 다양한 인간이 저기에 섞여 있을까. 생각하다 보면 발이 아픈 것을 조금 잊을 수 있었다.
행진이 끝나고 부스를 둘러 보았다. 단체, 기업, 공관 비슷한 부스들이 그 수만 늘어나 있었다. 부스는 많았지만 가보고 싶은 곳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과거에)활동하는 단체에 가 친한 척을 하기엔 너무 어색했다.
축제가 끝나곤 예전에 활동하던 단체의 뒷풀이에 따라갔다. 너무 오래 퀴어판(?)을 떠나 있었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와 예전에 자주 얘기하던 사람들은 다들 어디론가 없어지고(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운동을 아예 그만 둔 사람이라면 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정말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시끄러운 행진 차량만큼이나 시끄러운 술집 분위기에 지쳐 그냥 일찍 집에 와 버렸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을 했다. 술도, 노래도, 춤도 싫어하는 퀴어는 어떻게 퀴어판에서 놀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퀴어문화축제에 대해 퀴어들의 해방구라고 하지만, 나같이 노는 걸 싫어하는 인간들에게는 그저 명절처럼 어색하고 그렇다고 안 갈 수는 없는 그런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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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워지기 위해선 너무 많은 조건이 필요하다
미니멀리즘, 시크룩 등 애써 예뻐 보이려 추구하지 않는 깔끔한 아름다움이 유행이다. 00년대 들어와 패션, 인테리어를 비롯한 그 밖의 디자인 소위 “모드”분야는 서 꾸미지 않은 듯한 아름다운, 노력하지 않았지만, 냉소적이지만 마치 태생적으로 아름다운 것이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라는 믿음을 계속해서 생산해내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무심한듯 시크하게, 꾸민듯 안 꾸민듯 살아가는 건 가능할까 아름다운 삶의 정의가 무엇인가, 하는 것 역시 애매한 일이겠지만, 적어도 그 정의가 “인간다운 삶”이라고 생각할 때 이런 현 시대 모드의 믿음은 실현 가능한 것인가.
개인적으로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름답게 살기 위해선 상당히 많은 조건이 필요하다. 공간(특히 거주공간)만 해도, 쾌적한 생활을 유지하면서 겉으로 보기에도 좋으려면 상당히 넓은 공간이 필요하고 또 그 공간을 채울 질 좋고 성능도 좋은 가구와 전자제품이 필요하다. 소위 “미니멀” 한 공간은 오래 쓸 수 있는 질 좋고 튼튼한(대부분 비싼)가구와 여러 기능을 탑제한 전자제품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수납하고 나서도 여러 사람이 자유롭게 활동하고도 남을 공간이 필요하다. 패션에서도 마찬가지다. 적은 옷만을 갖고도 맵시 입게 입기 위해서는 싸구려 SPA 제품이 아닌 적어도 몇 년은 헤지거나 주름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질 좋은 천과 가죽으로 만든 제품이 필요할 거고, 그런 옷들은 몇 번 돌려 입어도 티나지 않게 해 줄 악세사리 용 보석과 가방도 필요할 거다. 물론, 패션의 완성인 입는 사람의 몸 그 자체를 위한 코스메틱 제품 역시 필요하다. 그리고 당연히 이런 물건들이 공간을 너저분하게 차지하고 있으면 안 됨으로 이런 물건을 깔끔하게 넣어놓을 수 있는 수납공간도 필요하다.
사실, 디자인 사업에서 미니멀리즘이나 장식하지 않는 아름다움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것은 늘 꾸미지 않아도 원료 그 자체가 고가치의 것이며 아름답다, 는 것을 조건으로 하고 있었다. 소비자의 삶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니멀리즘하게 살고, 무소유로 살기 위해선 가진 걸 많이 버려도 충분히 쾌적하게 살 수 있을 정도로 가진 것이 많다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빈궁이다.
그런데, 과연 현대, 이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 가진 것을 버리고 버려도 쾌적하고 아름답게 살 수 있을 정도로 가진 게 많은 지 모르겠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많겠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의 중산층은 존재하고, 부동산 경제를 통해 돈을 번 기성세대들이 있으니까. 대부분의 젊은이들이나 노동계급의 사람들까지 그런 조건을 갖췄는가 생각해보면 그건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도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인간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도 상관없다는 믿음, 쾌적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하지 못해도 상관 없다는 믿음, 청년과 노동자들이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은 그저 노오력의 굴레에서 입에 풀칠만 하면 되는 것이라는 믿음으로부터 오는 것은 아닐까?
모드 산업의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의 추구는 전형적인 미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사람들을 지운다는 비판을 늘 받아왔다. 미디어의 성공한 노동자, 사회적 소수자들의 대한 신화 역시 그런 신화를 이루기 위해 지금껏 투쟁해온 이들을 지운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사회가 이렇게 물 위에 고고히 떠다니는 백조만 바라보고 물 밑의 발장구질은 바라보지 않을 때,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 같은 말로 아름답게 살기 위해, 아니 적어도 인간적으로 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조건이 필요한지 지울 때, 그것은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아름다움과 진보, 평등 혹은 정의를 향한 노력을 가로 막는다.
최근 성소수자 운동의 대한 한국 사회의 몇몇 대중들(특히 노무현/문재인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영웅의 서사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병리적 태도는 이와 큰 관련이 있다고 본다. 민주주의, 인권, 정의와 같은 거대한 가치로부터 개인의 삶에서의 정치적 실현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저절로 이루어지거나, 어떤 메시아를 통해 실현되지 않았다. 그것은 각각의 개인들이 싸우고 또 싸워서 얻어낸 것이다. 그리고 그 싸움이 유의미한 성취를 이루기까지는 여러 조건, 특히 경제적인 조건이 필요하다. 조건과 투쟁 없이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다는 00년대 이후의 그릇된 믿음은 이런 사실을 가리고, 결국 인간을 아름다움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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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 폰 트리에의 님포 매니악 속 무성애의 대한 단상
방금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 님포매니악을 봤다. 사실 이 영화가 처음 개봉하고 제한 상영가 등급을 받아 검열 논란이 일었을 때는 그저 그런 섹스 집착 영화겠거니 해서 걸렀었다. 왜 그런 영화들 있지 않은가. 마치 온 세상이 섹스라면 기겁을 한 다는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섹스, 섹스 , 섹스 밖에 없는 영화. 사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섹스에 기겁을 한다기보다 오히려 과잉 성욕적인 면이 강한데도, 섹스를 노골적으로 다루면 대단한 투사라도 되는냥 착각하는 감독들의 영화, 그러면서도 그다지 꼴리지도 않는 영화. 라스 본 트리에의 님포매니악도 그런 영화 중 하나일거라 생각해서 사실 몇 년 전 개봉했을 때는 걸렀었다.
여하간,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님포매니악이란 영화의 대한 감상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실 님포매니악의 다른 부분은 별로 신선하거나 흥미로운 내용은 아니었다. 색정광의 여자, 프로이트 아저씨의 궤변을 따라 전개되는 이야기 사도 마조히즘, 유사 모녀 관계의 동성애, 종교적 비유 etc 이런 것들은 솔직히 질리도록 많이 보지 않았나.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은 그렇게 신선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딱 한 가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와 비슷한 영화들은 다루지 않은 것이었는데, 그건 바로 무성애였다.
성 해방의 시대 이후의 영화(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미디어에서) 무성애/무성애자의 존재는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섹스의 즐거움과 그로 인한 “자연스러운” 행복을 종교적 광신으로 거부하는 이들이었다. 무성애/무성애자는 곧 광신이자 히스테리였고, 항상 영화 속 섹시한 주인공들은 무성애자들을 가여히 여기거나 기꺼이 오르가즘의 즐거움을 알려줌으로써 구원해 주었다.
님포매니악의 플롯은 이런 사조와 크게 다르지는 않으나, 조금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영하는 섹스-배출vs무성애-배출하지 않음 구도를 만듦으로서 섹스의 대한 환상적 이미지를 지우고 섹스를 철저히 똥 마려울 때 똥 싸는거나, 코가 간지러울 때 코파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위로 만든다. 영화 속 섹스는 “섹시”하지 않다. 주인공 “조”의 첫사랑 “제롬”은 질과 항문에 대여섯 박다가 싸버릴 뿐이고, 섹스는 언제나 기대이하의 것인 동시에 땔래야 땔 수 없는 배출의 통로다.
“님포매니악”이란 제목이 드러내듯, 조는 계속해서 배출(섹스)의 대한 욕망과 그 욕망에 빗대 초라한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그 갈등을 속에서 자신의 배출을 자연스러운 정체성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또한 그 배출을 계속 부정하려 하기도 한다. 그녀는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나는 나쁜 사람이에요” 라는 말과 나는 님포매니악이고 그게 자랑스럽다는 선언을 혼란스럽게 오간다.
그리고 영화 내내 반복되는 조의 배출-섹스-유성애의 이미지에는 대척점에 선 인물이 한 명 있다. 영화 속 모든 세계관의 반대이자, 내가 굳이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인 (잠재적) 무성애자 캐릭터인 샐리그먼이다. 그는 영화 내내 자연스럽게 무성적인 위치를 점유하며, 주인공 조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조에게 배설하고 싶어하지 않는 유일한 남자고, 또 다른 그 누구에게도 배설하고 싶어 하지 않는 남자다. 남성에게던, 여성에게던, 그 어떤 방식으로던.
영화는 두 편 모두 합쳐 거의 네 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끝없이 섹스를 보여주지만, 영화 속에서 “섹시”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한 번도 섹스를 보여주지 않는 샐리그먼의 무성애다. 섹스로부터 유리됨, 배설로부터 동 떨어짐은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종교적인 금욕주의적 감상을 느끼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고 그것은 배출-섹스-유성이라는 영화 속의 자연스런 통념, 주인공 조가 믿는 통념, 나아가 현재 자본주의 사회의 통념과 대척하면서 관객의 성적판타지가 되고, 관객을 흥분하게 한다.
영화의 결말에 이르면, 조는 나도 이제 섹스로부터 떨어지는 삶을 살겠다고 말한다. 자신도 샐래그먼처럼 되고 싶다는 “백만분의 일” 밖에 없다는 무성애자가 되고 싶다고, 마치 성자에게 고백하는 제자처럼.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영화가 무성애를 바라보는 진짜 시선을 알 수 있다. 영화는 성적 욕망이 결여된 것은 도달할 수 없는 불가능의 지점, 성경의 성자들이나 도달할 수 있고 “자연스러운” 인간은 도달할 수도, 도달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기저에 깔고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아주 잘 알려주는 장면은 어쩌면 슬프게도 조의 고백 직후에 나온다. 지금까지 무성애적 존재인 줄 알았던 샐래그만이 조를 강간하려 하는 것이다.
샐래그만은 무성애적 인물이 아닌데, 조를 안심시킨 뒤 강간하기 위해 성적 욕망이 없는 척한걸까? 아니면 조의 고백이 샐래그만을 무성애에서 유성애로 바꿔 놓은걸까? 영화가 어떤 의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영화의 묘사는 무성애의 대한 사회의 편견 나아가 어쩌면 모든 성소수자의 대한 사회의 편견을 보여준다. 무성애는 섹스에 눈 뜨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다, 라던가. 동성애자와 같은 성소수자는 잠재적 강간범이다, 라던가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지만 사회적/정신적으로는 남성이 아닌 사람을 쉽게 “여자”라는 바운더리에 받아주었다가는 여성들을 강간할 것이다, 라던가 하는 것들
조는 자신을 강간하려는 샐래그면을 권총으로 죽이고 떠난다. 샐래그먼은 조에게 다른 남자들과는 자면서 왜 나와는 안 자주냐는 모든 더럽고 치졸한 남자들의 명대사를 남기지만, 조는 이미 샐래그먼에게 아니 관객에게 이제 남성을 통한 배출은 필요 없다, 혹은 이제 클리토리스를 내밀고 마초적으로 살아가겠다는 선언을 한 뒤다.
샐래그먼을 처리한 뒤 조는 어디로 갈까. 섹스-배출-욕망-자연스러움이라는 영화 속 세계관과 무성애의 뒤틀린 숭고함은 어떤 모습으로 대척할까. 어쩌면 조는 권총을 질을 대신해 사용할 수도 있고, 닥터 한니발 박사처럼 말 그대로 인간을 따먹을 수도 있다.
조는 다시 유성애의 자리로 되돌아가 갈 수도 있지만, 총을 통한 무성애적 오르가즘을 구축할 수도 있다. 영화 속 세계관, 아니, 어쩌면 현대 사회의 세계관에 반해서 말이다. 이미 조는 님포매니악이라는 이름으로 한 번 사회와 척을 졌으니 그녀에겐 아주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안티 크라이스트에서 클리토리스를 자른 샤를로뜨 갱스부르니까 더 큰 모험을 갈 수 있을지도 몰라, 라고 생각해 보는 건 너무 과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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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페미니스트이고 누가 민주주의자인가
촛불혁명이 끝난지 두 달 남짓, 시민들의 힘으로 이뤄낸 조기 대선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대선이 끝나도, 정권이 바뀌어도 적폐청산의 길은 어두워 보인다. 적폐청산을 주장하고 나선 유력 대선 후보 두 명이 “적폐”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 두 명은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를 시작하면 앞다투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 혹은 민주정권의 적통 후계자라고 칭했다. 그러나 둘 중 페미니스트이거나 민주주의자인 사람은 없어 보인다.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 모두 자유한국당 지지세력과 “연정”이라는 이름으로 야합을 꾀하고 있고, 근본적인 재벌 개혁이나 경제 민주화, 노동권 등 사회적 평등과 관련한 이슈에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삼성 이재용 회장의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힌 것은 심상정 후보 하나 뿐이며, “약물 강간범” 홍준표 후보의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힌 것도 심상정 후보 하나 뿐이다.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안철수를 비롯한 거의 모든 후보들이 심지어 바른 정당 유승민 후보까지도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했지만, 동일임금법, 임신중절권 보장, 차별금지법 제정과 같은 페미니스트로서 지지해야할 가장 기본적인 이슈에 조차 명확한 지지 의사를 밝힌 것은 심상정 한 명 뿐이었다. 문재인 후보는 동일임금법의대한 명확한 의사를 밝히지 않았고, 차별금지법과 임신중절권은 반대했다. 안철수, 유승민 후보는 임신중절권에 대해선 모호한 입장이나 차별금지법, 동일 임금법은 반대한다.
노동/경제 문제에서도 다르지 않다. 모두들 개혁을 말하지만, 개혁의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후보는 많지 않다. 안철수, 문재인 후보 모두 재벌 부역자 처벌, 경영권 불법 세습, 족벌식 경영 해체 등의 재벌 개혁 문제에 침묵하고 있고, 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낸 것은 심상정 한 명 뿐이다. 최저임금 인상 역시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후보가 동의하나 정확히 어떻게 인상할 것인지 최저임금을 준수하도록 강제할 방법은 무엇인지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지 밝�� 것은 심상정 한 명 밖에 없다.
무엇이 적폐인가, 하는 것은 각자 그 기준이 다를 것이다. 누구에겐 낡은 정치 구조가 적폐일 것이고 누구에겐 자유한국당이 적폐일 것이고 누구에겐 민주당이 적폐일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지금까지의 적폐를 만들어 온 것은 분명한 비젼 없이 이미지 정치로만 일관해 오던 사람들과 정치인의 비젼이 아닌 이미지만 보고 투표해 오던 사람들, 즉 민주적이지 못한 이들이었다.
안타깝게도, 12년 대선의 동지였던 두 사람, 민주당 정궈에서 갈라져 나온 두사람(문재인,안철수) 모두 민주주의자에 가깝지 않다. 그리고 그들의 지지자들 역시 그렇다. 안빠, 문위병, 달래반 같은 이름들과 그들이 보이는 반지성적인 태도 그리고 정치인을 마치 아이돌 가수처럼 여기는 태도가 그를 증명한다. 또한 문/안 캠프는 이런 지지자들의 반지성적 광신을 이용해 표 몰이를 하고, 자신들의 반개혁적 의지를 감추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이라는 민주주의 사회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지켜지기 힘든 부분이 조명 받을 리 없다. 문재인 후보는 대선 토론에서 “나는 동성애를 반대한다.” 고 밝혔고 문재인 후보의 지지자들은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의사를 밝힌 문재인 후보에 항의 하는 활동가를 조롱했다. 안철수 후보는 개신교 목사들과의 자리에서 “동성애/동성결혼은 종교의 자유 침해”라는 망언을 늘어 놓고, 두 사람 모두 여성 혐오 범죄와 임신 중절권 ,여남간의 임금 불평등 등의 여성 이슈에도, 군 내 인권 침해와, 성소수자 군인 색출, 군 의료 복지 시설의 미비 등의 군 인권 문제에도, 노동권 침해 이슈, 청년 노동자들의 인권 침해 이슈에도 입을 닫았다.
대선 토론에서 여성을 약물 강간한 것을 자랑스레 자서전에 쓴 홍준표를 보이콧한 것은 심상정 한 명 밖에 없었다. 개신교 목사들이 아닌 성소수자 인권 포럼에 활동가들과 성소수자 부모들을 만나고 차별금지법을 약속한 것도 심상정 밖에 없었고, 재벌 개혁과 청년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겠다고 말한 것도 심상정 하나 뿐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문재인 후보가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말할 때, 자신의 발언 시간을 포기해 가며 성소수자 인권이 보장되는 것이 민주주의, 라고 말할 수 있는 심상정 후보가 약물 강간법 홍준표 후보보다 지지율이 낫다는 것이다.
지난 촛불 혁명으로 가졌던 한국사회의 대한 희망이 철저히 깨지는 요즘이다. 8퍼센트라는 심상정 후보의 아직 낮은 지지율과 심상정이라는 사람의 발언과 정책에 비교했을 때 한숨 나오는 다른 후보들의 발언들, 그리고 강간범으로 감옥에 가야 할 사람이 지지율 3위라는 것. 어쩌면 한국의 적폐 청산은, 그리고 민주화를 가는 길은 아직 멀고도 먼 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심상정을 지지하는 8프로(어쩌면 더 많은 수의 샤이 심상정들)에 희망을 건다. 노동권,재벌개혁,보편적 인권에 투표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리고 사실 지금까지 민주노동당 계열 정당들이 얻어 온 득표율에 비하면 지지율에 꽤 많이 늘어 났기에, 아직 이 사회가 진보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현실적으로 심상정이 당선되는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 5년 자유한국당 보단 낫지만 여전히 민주주의자는 아닌 사람들과 싸워야 할 것이다. 노동권이 왜 보장되어야 하는 지, 사회적 이��을 왜 특정 세력이 독점하면 안 되는지, 왜 소수이던 다수이던 보편적 인권을 똑같이 누려야 하는 지, 설득하고 투쟁하는 지난한 시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는 진보하고, 앞으로 5년간의 싸움은 지난 10년간의 싸움보단 쉬울 거라고 믿는다. 우리는 대선토론에서 성소수자의 인권을 공개 지지하는 후보와 그를 지지하는 적어도 8퍼센트 이상의 시민들이 있다는 것을 “적폐”에게 이미 보여주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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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워야 할 것들, 알아야 할 것들을 알지 못해서 쓰는 글
주위의 모든 것들은 다시 과거의 미래주의적 낙관으로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여기저기서 “적폐청산”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탄핵 이후 대선을 앞두고 모든 후보가 적폐청산을 들고 나왔고-심지어 보수 진영 후보도- 산업계 전반 심지어 문화예술계에서도 내부 개혁과 미래 생산의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적폐를 청산하고 미래를 생산하기에 우리가 가진 환경이 너무 비루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너무 오랫동안 세계는 무능했고 그 세계의 속한 개인들 또한 무능했다. 세계는 발전하지 않거나, 퇴보하기만을 반복해 왔고 그 속에서 개인들은 아무것도 세계의 발전에 아무것도 기여하지 않음을 미덕으로 삼아왔다.
무능함, 무의미함, 알지 못함, 세계의 법칙이나 우리가 풀어가야 할 문제를 바라보지 못함. 그것은 매우 오랫동안 참 우습게도 미덕이었다.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낙관적인 미래를 꿈꾸는 이들은 바보 취급을 받았고 은밀히 세계의 붕괴를 꿈꾸며 상황은 점점 나빠질거라고, 파시스트들이 우릴 다 죽일거라고 자조하던 이들은 그 지성을 인정 받곤 했다.
어쩌면 슬라보예 지젝이라던가 90년대 하이텔 진보 같은 사람들이 우릴 너무 망쳐놨는지 모른다. 각각의 개인들은 외부의 이상보다는 내부의 공허해 집중하는 것 밖에 하지 못했고 문학과 예술 역시 다르지 않았다.
우리 시대의 젊은 개인들은 승리로부터 태생적으로 먼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자라날 때 세계는 승리-패배로 이루어진 이분법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었고 80년대 진영의 붕괴 이후로 진보 혹은 좌파 혹은 평등주의 세력이 이상주의자들의 승리는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이 유행이었다. 냉소가 아닌 낙관을 말하는 이들은 촌스러운 것이었고 미래와 과거와 현재가 무너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또다시 세계는 개인들로 하여금 미래를 개척하라고 말한다. 박근혜를 탄핵시키고 적폐를 청산하라고 말한다. 트럼프에 저항하고 아베정권을 막으라고 말한다. 싸우라고 소위 “빻음”이라고 불리는 구시대의 질칙거림, 패배의 질척거림에 대항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질척거림에 대항할 젊은 개인들이 싸움을 지속할 체력도 승리의 경험도 없다는 것, 그래서 어쩌면 승리할 능력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개인으로서의 나는 “빻음”의 대한 태생적 공포를 느끼며 끝없이 정진하고 노오력하여 승리의 공식을 외우려 한다. 그러나 내겐 노력할 힘도 승리의 공식이 들어갈 마음 속 빈 곳도 없다. 이미 너무 많은 잡념과 패배들이 우리의 머릿속을 잠식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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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앰네스티의 성매매 비범죄화 지지에 유감을 표하며
성노동의 대한 문제는 여성주의 가치관 내에서 워낙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문제이고 필자 스스로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자신할 수 없는 문제이기에 조심하려 했으나, 국제 앰네스티가 성매매 비범죄화를 지지했다는 사실만큼은 감정적 불쾌감과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먼저 필자가 성매매의 반대하는 이유는 성보수주의와 남성중심적 억압의 의한 도덕론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둔다. 만약 성노동이 정말 성노동자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보장할 수 있고 인권 유린의 여지를 제거 할 수 있는 산업이었다면 필자 역시 성매매 비범죄화를 지지 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제 앰네스티의 결정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며 제 1세계 가치관에 매몰된 이상주의다.
국제 앰네스티의 주장처럼 성매매를 비범죄화 하고 성노동자의 자립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불법 성노동과 인신매매를 근절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고 해서 성산업의 인권 유린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했음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성매매 비범죄화가 성노동자의 권리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국제 앰네스티의 주장처럼 행하고 있는 많은 북-서 유럽 국가들의 사례가 보여준다.
북-서 유럽 국가에서 자국인 성노동자의 대한 노동 규칙이 강화되고 인금보호 제도가 보장되자 성매매 인권 유린의 타깃은 근처 동유럽 포스트 소비에트 지역과 상대적으로 소외된 비백인 특히 이슬람 커뮤니티의 여성들 그리고 이주 노동자 혹은 불법 체류자 여성들을 향했다. 많은 수의 포스트 소비에트 ��역 여성들이 북-서 유럽 성매매 비범죄화 이후 팔려오고 있다. 포스트 소비에트 지역과 북-서 유럽 국가의 범죄 조직 사이에서 동유럽 여자들을 사고 파는 행위는 수지 맞는 장사로 마약 산업의 뒤를 잇는 효자 노릇을 하고 있고, 부패한 포스트 소비에트 경찰력 역시 인신매매를 방조하거나 동조하는 상황이다. 불법 체류자 여성의 경우 더욱 심각하다. 성노동을 하다 인권 유린을 당하더라도 자국인과 달리 불법 체류의 신분이기 때문에 법적 도움을 받을 수 없으며, 동유럽 여성과 달리 데려오는 비용이 들지 않아 싼 값에 좋은 상품을 원하는 포주들이 타깃이 되곤 한다. 이는 아랍인 커뮤니티의 여성들도 마찬가지인데 이슬람 커뮤니티 여성들의 경우 명예살인등의 위협에 까지 시달린다.
그렇다면 북-서 유럽의 성매매 비범죄화와 성노동자 보호 정책은 과연 자국인 성노동자 여성에겐 도움이 되었을까? 답은 그렇지 않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포주들은 신경 쓸 거리도 줘야 할 임금도 많아진 자국인 성노동자 여성을 더 이상 원하지 않게 되었다. 성노동자 여성들은 이전과 달리 더욱 비안정적인 노동상황을 맞게 되었으며 위에서 서술한 인신매매 피해자들과도 경쟁해야 하게 된 것이다.-물론 그 인신매매 피해자들은 성노동을 원하지 않았지만 말이다.-이로 인해 경쟁이 치열해지자 자국인 성노동자 여성들은 성노동자 보호 제도의 보호를 받는 것을 기피하게 되었다. 직장에서 짤릴까 걱정되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는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실질적으로 성노동자를 보호하거나 다른 직업을 찾게 해주려는 제도적 시도는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결국 성매매 비법죄화를 통해 성노동자를 보호하겠다는 시도는 이상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났다. 오히려 이것으로 인해 자국인 성노동자는 이전 보다 저임금, 불안전 노동에 시달리게 되었고 성매매 포주들의 인신매매는 국경을 넘어 포스트 소비에트 지역과 소수 인동들에게까지 뻣쳤다. 만약 성매매 비범죄화 시나리오를 한국에 적용해 본다 해도 그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자국인 성노동자 여성들의 임금과 노동 안전성은 내려갈 것이고 인권유린은 주변 동남아시아 지역까지 번질 것으로 우려된다. 지금도 많은 수의 한국 남성들이 더 싸고, 색다른 여자를 찾아 동남아 섹스 관광을 간다는 것을 잊지 말자.
성매매 비범죄화를 통해 성노동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지나친 이상주의에 불과하다. 이 이상 속에서 성노동이란 흔히 두 성인 간의 돈이 오가는 합의된 섹스로 묘사되곤 하는데 안타깝지만 대부분의 성매매는 그렇지 않다. 나는 이러한 이상을 가진 일부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진짜 소위 집창촌이라는 곳을 한 번이라도 가봤는지 의문스럽다. 정육점 고기처럼 여성의 몸을 전시해 놓은 상점과 그 뒤에 유린당한 강간 피해자들-그녀들은 강간 피해자들이다.-을 보면 절대 성노동이 노동자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보장 받을 수 있는 노동이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성매매 비범죄화는 성매매 업자와 성매수 남성에게 면죄부를 쥐어주는 것 뿐이다. 성매매는 사실상 성매수자의 의한 강간이고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사회가 여성을 착취하는 가장 더럽고 추악한 방식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성매매와 성매수자 남성을 옹호한다는 것은 강간을 옹호하는 것이나 다름 없으며 성매매 비범죄화는 여성의 종속과 남성의 의한 여성학대, 인권 유린을 영속시키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작금의 한국 성매매 특별법의 방식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성노동자 여성을 징벌하는 법을 만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사회적 불평등의 강간 피해자들인데 누가 그녀들을 벌할 수 있단 말인가. 가부장적 사회의 오랜 범죄였던 성매매를 근절하고 여성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성매매 업자와 성매수자를 징벌할 강력한 법규가 필요하다. 특히 ���매수 남성의 대해 강력한 제제를 내려야 하며, 사회적으로도 성매수 남성이 저지른 범죄의 대한 공분의 태도가 형성되어야 한다. 성매매는 수요가 있기에 공급이 사라질 수 없는 대표적인 사업이다. 성매매를 비범죄화 할 것이 아니라 성매수자를 제제하여 수요를 없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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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사회,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 그리고 우리의 정신적 고독과 고통의 대하여 생각한다.
나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가톨릭 교회에 대해 큰 실망을 갖고 있다. 서구 사회에서와 달리 나름 진보적인 분위기를 풍겼던 가톨릭 교회가 그 내부를 들여다 보면 얼마나 부르주아적인지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세례를 받고 나름 천주교의 일원 생활해 보니 교회가 얼마나 보수적이고, 또 현실에 무관심한지 깨닫는다. 세월호, 백남기 농민 사건부터 박근혜 탄핵까지 천주교는 너무 소극적이었다. 세월호 유족과 백남기 농민 유족이 천주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천주교는 적극적으로 박근혜 정권을 규탄하지 못했고, 그건 이번 탄핵 국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많은 사제들이 정권에 대항했으나, 교회 전체를 보면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교회를 통해 고통을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기에 교회 내부에서 사회를 향해 민중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너무 적다. 노동자들 그리고 젊은 세대는 천주교던 개신교던(성공회는 개 중 가장 진보적이지만) 정치적으로 침묵하거나 대놓고 비정상적인 기득권을 옹호하는 태도에 질리고 있다.
물론 나도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 혹은 기독교 좌파, 차별금지법에 찬성하고 교회 내/외부의 여성 권리 향상에 힘쓰고, 성경적 평등을 이루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교회를 바꿀 수 있을까. 교회가 문을 열고 사회의 고통을 마주하기를 바라는 그 작은 몸짓들이 교회를 바꿀 수 있을까 그것은 의문이다. 진보적 교회의 교세는 너무 작고, 약하다. 혐오와 보수, 하느님을 믿으면 부를 얻을 수 있다는 선동에 비해, 평등과 사랑이라는 구호는 너무 약하기만 하다. 어쩌면 믿음이란 사랑이 아닌 욕심 사랑이 아닌 미움에 기초하는 지도 모른다.
나는 교회에서 만난 많은 사람을 안다. 그들 중에는 정말 좋은 사람도 많았다. 늘 나누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 나눔 속에 민중의 고통 특히 여성, 청년, 그리고 소수집단의 고통의 대한 진보적 이해가 없다면 말이다.나는 운동권이라는 환경 속에서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만났다. 환경, 민족, 성소수자, 여성, 노동... 많은 분야에서 그들은 싸우고 교회의 빗장을 열어 고통을 성당 안으로 들여 오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 소수다. 너무 작다. 그 목회자들과 수도자들의 목소리는 전국으로 퍼져 나가지 않는다.
나는 기존의 천주교회를 떠나 보다 진보적인 영성을 찾고자 한다. 민중의 고통을 품고 있는 영성을 말이다. 그런 교회 그런 집단을 찾고 있다. 하지만 회의가 든다. 그런 집단을 찾는다 한들, 과연 우리의 고통을 신의 발 앞에 갖다 놓을 수 있을까. 운동권을 둘러 보면 진보적 교회는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민중의 고통을 중요시 여기는 교회 또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의문인 것은 근본적으로 종교가 고통을 안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고통을 말하는 것은 구원을 부정하는 것일까. 진보는 진리에 어긋나는 것일까. 어떤 시인(아마도 랭보일 것이다)가 말했듯 저 높은 곳의 예수는 세상의 고통 따위 모르는 듯 눈을 감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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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민주당 문재인 후보 연설 동영상을 보면서
오늘 성소수자 단체 회원들이 차별금지법과 낙태비범죄화에 반대하는 더불이 문주당 대선 후보 문재인의 연설 중 구호를 외쳤다. 오랜시간 민주노총에 일하며 그 잘난 진보연 하는 작자들을 위해 싸워온 내가 존경하는 활동가 중 한 분은 문재인씨를 보며 나는 여성이고 동성애자인데 왜 나의 권리를 반으로 나누려 합니까? 라고 물었다. 문재인과 그 지지자들의 반응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그들은 마치 광신도들처럼 “나중에”라는 구호를 돌림노래처럼 부르며 그녀의 의견을 묵살했다. 파쇼, 그것은 파쇼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말한다. 감히 문재인의 연설이 끝나기 전에 끼어든 활동가들의 잘못이라고, 정권 교체만 하면 모든 걸 해결해 줄 수 있는데, 괜히 성소수자들에게 좋은 감정을 가져 보려는 마음까지 상하게 만든다고. 자신들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지 아는걸까. 아마 모를 것이다. 모르니까 그런 무식한 소릴 하겠지.
그들에게는 성소수자들에게 권리를 줄 자격도 좋은 인상이나 나쁜 인상을 가질 자격도 없다. 성소수자는 문재인을 찍을 가능성이 있는 유권자고 잘 보여야 하는 건 문재인과 그 지지자들이지 성소수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슨 진보고 무슨 정치며 무슨 대선후보인가.
나는 광신적 정치를 본다. 박사모와 노빠-문빠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것은 팬덤 정치고, 종교 정치다. 박사모의 교주는 박정희-박근혜이고 노빠의 교주는 노무현-문재인이라는 것만 다를 뿐.
이런 뒤떨어진 한국 사회가 박근혜 퇴진을 이뤄낼 수 있을까? 정권 교체를 이룰 수 있을까? 문재인 지지자들은 이미 4년 전에도 패한 적 있는 문재인만이 정권교체의 희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문재인은 4년 전에 패했다는 것만으로도 더불어 민주당 내에서 가장 이길 가능성이 낮은 후보다. 정치에서 한 번 패한 사람이 다시 이긴다는 것 만큼 힘든 일이 어디있는가. 게다가 문재인 곁에는 사리분별 못하는 광신도 지지자들만 넘쳐 나고 문재인 자신 조차도 그 어떤 이슈도 비젼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외 사람들에겐 안희정이나 이재명의 인기가 더 높은데도 문재인 지지자들은 문재인만이 유일한 희망인듯 말하고, 문재인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모든 목소리를 묵살하려 한다. 나중에, 나중에, 우리 문재인님이 대통령이 되고 난 다음에 말하라고 한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이길 수 이을까. 난 회의적이다,
문재인과 더불어 민주당은 4년 전 박근혜와 새누리당과 다를 것이 없다. 다른 점이라면 새누리당은 더 확고한 지지층과 기득권으로 무장했다는 것과 4년 전에 이겼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민주당의 패배가 보인다. 그리고 패배 이후 그들은 4년 전 패배의 원인을 안철수와 호남에 돌린 것처럼 이번엔 여성과 성소수자들에게 돌리겠지.
저들 모두에게 다니엘 튜더의 책을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한국의 민주당 진보는 이기지 못하는 진보이면서, 이상도 없는 진보다. 이대로 가면, 저런 광신도 팬덤 정치 세력을 청산하지 않으면, 여성-성소수자-장애인 그리고 청년의 권리를 버리고 가려 하면, 진보는 질 것이다. 그 누구도 민주당에, 문재인에 투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자꾸만 다니엘 튜더의 예측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바른 정당이나 새누리당, 아 이젠 자유한국당이지, 그들이 집권하고 최초의 게이 정치인도 싱글맘 정치인도 이주여성 정치인이 그랬듯, 새누리당에서 나올 거라는 예감. 그 예감이 틀리길 바라지만 아마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오늘 저 광신도들 사이에 선 활동가의 심정을 헤아릴 수 없다. 그 자리에 내가 서 있었다면 그대로 주저 앉아 울어 버렸을 것 같다. 그 오랜 세월 진보를 위해, 노동을 위해 싸워온 그녀의 삶을 깨시민들은 한 번에 부정해 버렸다. 집단 린치를 가했다. 저것은 파시즘이다. 파쇼다. 그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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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무능
세계는 철저한 무능이다. 인류의 대한 모든 믿음을 상실하고 그대로 멈춰 버린 것 같다. 민주주의 퇴보, 자본주의의 몰락, 그리고 이제는 아메리카나의 권력 역시 몰락하고 있다. 찬성도 반대도 반미도 친미도 공산주의도 반공도 자본주의도 반자본주의도 없다. 몰락한 세계와 무능한 인류만 있을 뿐이다. -라고 생각하게 되는 세계에 있다.
우울한 인류의 마음을 반영하듯, 요즘은 모든 지 복고가 유행이다. 미래주의는 죽���다 거리에 나서면 모두 과거의 청년들처럼 입고 다닌다. 21세기의 패션은 20년대를 흉내내고 있고, 사람들은 자기들이 추억할 수 있는 20세기의 어딘가로 도피하고자 한다. tv를 틀면 90년대가 있고, 정치권엔 80년대가 있다. 패션은 더 퇴보해서 이젠 2차대전 이후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것 같다.
미래로 나아가지 않으려는 마음, 과거로 돌아가려는 마음, 큰 것 보다 작은 것을, 이상보다 이기를 추구하는 마음, 그 모든 것들이 눅눅한 비닐장판에 닦아도, 닦아도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는 습기처럼 올라온다. 예술 역시 이미 오래 전에 이상을 버렸다. 문단은 #문학계성폭력, 이란 테그로 올라온 것들을 간단히 무시했고, 그것은 다른 분야 역시 마찬가지였다. 돌체 앤 가바나는 트럼프 가족에게 옷을 제공했다. 케이시 에플렉은 상을 타고, 조선의 tv에선 여전히 빻은 아재들이 나와 성희롱을 일삼는다.
나는 다른가. 무능한 세계 속에서 나는 무능하고, 이기적이지 않은가를 생각한다. 그리고 나 역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마음이 아프다, 몰락하는 세계에서 살아남기에 나는 너무 바보같고 약하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죽을만큼 노력해야 겨우 살아 남을 수 있는 세계에서 나는 너무나도 무력한 인간이라는 것이 개탄스럽다.
미래주의는 다시 부활할 수 있을까. 다시 정의를 찾기 위해 노동하는 세계를 꿈 꿀 수 있을까. 나는 그리고 우리는 무언가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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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이후 다시 노동하며 살아가는 것
12월의 시작은 대통령 탄핵과 함께 왔다. 아직 헌법재판소 판결이 남아 있기에 축배를 들기엔 이른 감도 없지 않아 있지만, 보수 정권 10년 동안 민주주의의 패배만을 목격해 온 젊은 세대에게 이번 국회 탄핵안 가결은 처음으로 승리의 기쁨을 느끼게 해 준 큰 사건이었다.
부정한 공직자를 시위를 통한 주권자들의 의견 표명과 그 의견에 따라 입법자들이 가결한 탄핵 소추안으로 해임시키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절차이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그러한 절차를 성공시켜 보지 못했다. 87년의 전두환은 임기를 채우고 퇴진했고, 박정희 정권은 김재규의 총탄으로 끝났다. 물론 이승만이라는 인물을 퇴진 시킨 경험이 있지만 그건 아주 오래 전 일이니까 넘어가도록 하자.
우리는 오랫동안 대의제 민주주의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 지 잊고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인간에게 적합하지 않은 제도일지도 모른다 착각하기도 했고 그래서 쉬이 독재(우파적 독재던 공산당 일당독재던)를 찬양하곤 했다. 하지만 올해의 마지막 국회는 우리에게 다시금 민중이 대의제 민주주의를 제대로 다룰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2008년 광우병 촛불 집회부터 세월호 참사 추모 집회까지 무자비한 정권 앞에서 유능한 투사로 단련된 민중은 대의제 민주주의의 대한 그들의 소유권을 가장 민주주의적인 방식인 시위를 통해 되찾아 왔다.
지난 2016년은 정말 fucked된 해였다. 미국에선 트럼프가 당선되고, 유럽의 극우정당은 전 보다 더 큰 힘을 얻었으며, 사회의 여성혐오는 다시 한 번 빤스를 벗고 그 좆바닥을 드러냈다. 2016년은 인간의 대한 믿음, 민주주의와 평등의 대한 믿음을 배신하는 해였다. 그러나 이제 2016년의 마지막 민중은 더 이상 이대로 좆되어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사회에 보여주었다. 200만이 넘는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민주수호를 외쳤고, 대통령은 탄핵되었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대한 실망의 해를 가능성의 해로 바꾼 것이다.
세계의 변혁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온다. 그리고 그 변화는 항상 진보의 길을 향하고 있다. 진보는 멈춘 것 같아 보일지라도 항상 달려가고 있다. 헌법 재판소가 박근혜의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그녀가 퇴진하더라도 우리의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아직 너무나 많은 여성혐오와 자본의 불평등이 남아있다. 우리는 극우와 자본의 그리고 혐오의 공세와 또다시 맞서 싸워야 한다. 하지만 변혁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온다. 민중이 해야 할 것은 기다리는 것 뿐이다. 그저 하루하루 숭고한 노동을 하며, 하루하루 압제에 맞서 투쟁하며 그렇게 기다리는 것 뿐이다. 새 날이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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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총궐기 아카이빙

지난 11월 12일 민중총궐기라는 시위가 있었다. 어깨 수술을 받고 아직 실밥을 풀기 전이어서, 갈까 말까 고민하다. 작금의 사태가 하도 어이가 없어 다녀왔다. 데모에 나선 것은 일 년 만이었다. 어쩌면 일 년이 더 넘었는지도 모른다.
혼자 시위에 나가 조용히 참여하고 돌아오려 했지만, 어쩌다 보니 무지개 깃발 아래 서게 되었다. 어쩐지 광장에 나설 때 무지개 깃발이 있으면 안심이 되곤했다. 무지개 깃발로 대표되는 퀴어적임이 용인되는 공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이 광장에서 보편적 익명의 존재로 있을 수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시위에는 정말 많은 퀴어적 익명들이 있었다. 무지개 깃발 아래 누구보다도 많은 성소수자들이 참여했고, 그 뿐만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익명의 시민들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시위는 서울 광장을 시작해 안국동 사거리를 지박나 경복궁 앞에서 돌아 광화문 광장을 지나 다시 서울 광장으로 돌아왔다.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정말 오랫만에 모여 서울을 빙 둘러싸고 구호를 외쳤다. 박근혜씨의 귀에도 우리의 구호가 들렸을까? 아마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관 없다. 시위는 박근혜씨를 위한 것이 아니었음으로.
외신은 한국이 박정희 시대의 잔재를 토해 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공감한다. 그것이 지금의 사람들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과거의 잔재를 고통스럽지만 시원하게 토 해내고 있다.
박근혜-최순실과 트럼프의 시대, 지난 세기의 미래주의적 낙관과 진보의 대한 믿음이 좌절되는 시대를 겪고 있으면서도 광장에 나선 사람들의 모습은 들떠 보였다. 그건 아마도 똑같은 정의의 대한 믿음을 가진 동지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지난 12일 시위에 나서 무지개 깃발은 더 이상 이질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가장 이질적인 것과 가장 평범한 것이 광장의 익명으로 뭉쳐 과거의 유물을 토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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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박정희즘 시대의 종말
전두환-노태우 정권이 끝날 때 아버지 세대는 권위주의 정권의 끝을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민정부 이후에도 권위주의 독재 정권은 끝나지 않았고, 그 정권을 뒷받침해왔던 박정희즘이라는 이데올로기도 끝나지 않았다. 박정희의 수하로 그가 죽은 후,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이 된 전두환씨는 사면되었고, 박정희의 딸은 국회의원이 되었다. 노인들은 여전히 박정희를 추억했고, 우상화했다. 박정희로부터 부를 축적한 사람들, 그 모든 기업과 보수 기독교 그리고 어쩌면 사이비 종교 세력까지도, 아무것도 청산 되지 못했다. 박정희즘은 한국 보수를 지탱하는 이데올로기로 살아 남았다.
지금까지의 시대, 그것은 포스트 박정희즘 시대였다. 포스트 쏘비에트에서 레니니즘과 반레니니즘 이 끝없는 전쟁을 벌였듯, 포스트 박정희즘 시대의 한국사회에선, 박정희주의자들과 안티 박정희주의자들이 전쟁을 벌여왔다. 한쪽은 다른 한 쪽을 “종북 빨갱이”로 다른 한 쪽은 또 한 쪽을 “귀태의 자손”으로. 박정희즘은 보수 기득권과 비기득권 운동권과 비운동권, 친박과 비박...etc, 의 모든 집단의 권위주의와 야만을 감추는 안개로서 작동해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런 박정희즘의 상징적인 존재였다. 그녀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의 시대를 그리워 하는 노인들 사이의 정신적 딸 같은 존재였다. 그녀는 박정희즘 차라리 박정희교라고 불러야 할 그것의, 교주이자 샤먼이었다. 그녀는 박근혜가 아닌 박정희를 ��는 그릇으로서 존재해왔다. 그녀는 박근혜로서 대통령이 된 것이 아니라, 박정희의 딸로서 대통령이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 들리는 뉴스는 매우 쇼킹하다. 박근혜씨에게 또 다른 샤먼이 있었다는 것이다. 박정희즘이 아닌 다른 정신이 국정을 농단해 왔다는 것이다. 사이비 교주였던 최태민씨의 딸이 그녀 뒤에서 국정을 농단해 왔다는 것이다.
이는 모두 충격이었지만, 아마 박정희즘을 숭배하던 노인들은 안티 박정희즘, 진보주의자들보다 충격이 더 클 것이다.
박정희즘 노인들의 봉건적이고 주술적인 세계관에서 이번 국정농단은 신성모독이나 다름 없다. 최순실씨가 비리를 저지른 것이나, 국정농단을 한 것이나,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실책을 한 것은 박정희즘 노인들에겐 아무 상관도 없다. 중요한 것은 자기들이 그렇게 사랑해 마지 않던, 그 딸이 박정희의 영혼 혹은 정신을 숭배하지 않았으리라는 것, 그것이다.
박정희주의자들에겐 세 가지 선택이 남아있다. 하나는 박근혜씨가 아닌 다른 박정희즘의 후계자를 찾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들의 너그러운 봉건 민초적 감성을 발휘해 박근혜씨를 쿨하게 용서하는 것이며, 마지막 하나는 박정희즘을 드디어 버리는 것이다.
물론, 솔직히 말해서, 그들이 세 번째 선택을 할 거라고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희망을 완전히 버리기는 아직 이른 것 같기도 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고, 조선 일보마저도 이 사태의 대해 보도하고 있다. 보수 기득권 세력이 박정희즘의 끝을 느낄 것일까? 아님 단지 새로운 샤먼의 필요성을 느낀 것 뿐일까?
포스트 박정희즘 시대의 종말은 찾아 올 것인가? 박정희가 죽은 지 40년 이미 너무 많이 변한 시대에도 그의 그늘은 한국 노인들의 봉건적 주술적 사고관과 함께 이 땅을 드리워 왔다. 포스트 박정희즘 시대는 끝날 것인가. 끝났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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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은 늙음으로 가득 차 있다
병실은 늙음으로 가득 차 있다. 더는 혼자 움직일 수도 없는 인간들. 파리한 눈으로 나를 본다. 나는 일주일에 세 번 그 병실에 간다. 나는 일주일의 세 번 나의 젊음과 병실의 늙음 사이에서 무너진다. 나는 그들의 눈이 나의 젊음을 조롱하고 있는 것을 본다. 병실의 노인들, 그들이 젊었던 시절 그들은 혼자 걷고 혼자 살아갈 수 있었으리라. 나는, 지금 젊은 나는 그럴 수 없다. 나는 젊지만 동시에 그들 보다 늙은 것이다. 나는 철저히 그들의 늙음을 혐오하며 그들과 나를 달리하려 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무가치의 장애로서, 나와 그들이 다르지 않음을. 나는 일주일에 세 번 노인들에 병실로 간다. 간호사와 의사를 만난다. 병실에서 노인의 냄새가 난다. 무너진 몸 사이로 썩어가는 시간의 냄새가 난다. 아마 내 몸에서도 같은 냄새가 날 것이다. 나는 매 번 삶과 젊음으로 도망치려 하지만, 일주일에 세 번 내가 얼마나 죽음에 가까이 있는 지를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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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의 사회와 인권
요 며칠 새 지진이 연달아 일어 났다. 정부는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했고, 심지어 재난 알림 문자조차 보내 주지 않았다. 여전히 지진이 계속 되고 있지만, 앞으로 지진의 양상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의 대한 예측도, 대비도 없다. 바야흐로 각자도생의 사회다. 자기가 알아서 자신의 생명을 구해야 하는 사회. 정글이나 다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나 정부를 믿기 보단, 스스로 생명을 구해야 한다고 느꼈다. 일본에서 개발된 재난 알림 애플리케이션과 도쿄 방재청이 낸 지진 가이드 북이 유행을 했고, 각자 집에 비상 식량과 약품을 비축하기 시작했다. 나도 집에 방재 용품을 사 두었다.
하지만 이런 것만으론 우리의 생명을 구할 수 없다. 뭐 어쩌면, 어떤 사람들은 그럴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스템의 대한 의존도는 사람 마다 다르다. 사회 복지나 의료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 이런 이들은 지금의 이 각자도생의 사회에서도 어떻게 살아 남아야 하는 걸까.
만약에 재난 상황이 발생했다고 보자. 운이 좋아 재난 상황에서 살아 남았다 해도, 제대로 된 식량이나 의료 서비스의 지원을 기대 할 수 있을까. 당장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해야 하는 환자들이나 혈액 투석들의 연명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 혹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은 어떻게 될까. 횔체어 등의 보조기구가 필요한 장애인들은 어떻게 될까. 활동 보조인이 필요한 장애인들은 어떻게 대피 해야 할까.
일본에서 구마모토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도쿄 도는 모든 혈액 투석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의료 시설을 미리 준비해 놓고 있었다고 들었다. 과연 한국은 그런 준비가 되어 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대형 병원 인공 신장실의 자리가 부족해 불편을 겪는 환자들이 많으니까. 만약 한국에서 지진 상황이 발생했을 시, 전염병이 돈다면, 우리는 그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평시의 발생했던 메르스조차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으니까. 지금도 종합 병원 병동의 의료진 수가 부족해 문제를 겪고 있다. 만약 지진 등의 재난 상황이 발생해 재난 발생 지역의 환자들을 급히 다른 지역의 종합 병원으로 이송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의 한국 사회는 시스템의 의존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람들만 버틸 수 있는 곳 같다. 장애가 없고 가난하지 않으며, 차별 받는 집단이 아닌 사람들 말이다. 모두 만약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시 정부나 시스템이 우릴 지켜줄 거라는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거나, 다른 이들의 고통을 못 본 척 하고 각자도생할 생각을 할 뿐이다.
하지만 의문이다. 시스템이 우릴 지켜주지 못한다면, 왜 우린 시스템의 기여해야 하는 걸까. 우리가 소위 ‘국가의 대한 의무’ 를 다하고 세금을 내는 건, 만약의 일의 대비해 들어 놓는 사회적 보험 아니던가. 왜 지금의 한국인들은 국가나 사회의 대한 의무는 다하면서, 아니,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국가나 사회가 자신을 지켜 줄거나는 기대는 하지 않는 걸까. 또 그런 불신의 사회에서 국가나 복지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모두가 각자도생하는 사회에서 인권은 누가 지켜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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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함께 오사카,교토에 갔었다.

(오사카, 도본토리, 아침)
어머니와 함께 간사이에 갔었다. 몇달 전 퇴원 기념으로 도쿄에 가기로 했던 것이 의사의 권고로 인해 취소된 것의 보상이었다. 원래 도쿄를 가려 했지만 비행기 시간이 맞지 않기도 하고, 도쿄 보다는 지방에 머무는 것이 어떨까 해서, 오사카와 교토에 다녀왔다.
우리는 금요일 저녁 비행기를 타고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간사이 공항에 도착해 공항철도를 탔다. 오사카 도본토리에 내려 늦은 저녁으로 오코노미야키와 맥주를 먹었다. 도본토리는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는데도 사람이 아주 많았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빠칭고 바로 옆에 있는 것이었다. 도본토리 거리에는 빠칭고가 아주 많았는데,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빠칭고로 들어 가는 모습이 좀 놀라웠다.
우리는 이번 여행에 가이드도 무엇도 붙이지 않았다. 우리끼리 물어물어 길을 찾아가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인지 도본토리에 도착해 오코노미야키를 먹었을 땐 이미 피로에 절어 있었다. 우리는 호텔에 들어가 기도를 드리고 좁은 일본식 호텔 방에서 잠을 잤다.

(한신 라인 전차)
다음 날 우리는 한신 라인 전차를 타고 교토에 갔다. 다행히 일본은 전철도 잘 되어 있고 교통도 편리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해 교토를 돌아다니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게다가 우리가 만난 일본 사람들은 매우 친절했다. 우리에게 다들 길을 알려주려 했고, 서툰 영어로도 열심이었다. 우리가 전차를 잘 못 탈까 플랫폼까지 데려다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길치인 나와 달리 어머니께서는 워낙 감각이 좋으셔서 수월히 여행을 할 수 있었다.

(한신 라인 전차 안)

(교토의 버스)

(금각사와 나)
교토에서 처음 간 곳은 금각사였다. 부모의 사리를 모신 곳이라는 곳에서 나는 어머니께 플로리스트가 되거나 원예 관련한 일을 배워 보는 것은 어떨 것 같냐고 말씀 드렸다. 식물을 가까이 함으로서 마음의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식물이나 동물을 가까이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의사가 한 말이기도 하고, 나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게다가 금각사에 가기 전날 새벽 식은 땀이 줄줄 날 때까지 가위에 눌렸던 것을 어머니도 보았던 차라서, 우리는 사뭇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어머니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신사로 올라가는 산길)

(향, 초를 팔고 있다.)

(사인과 사케가 진열된 가게)

(덮밥)
점심은 금각사 밑 작은 식당에서 먹었다. 일본 요리 영화에 나올 법한 식당이었다. 샤기컷을 한 여자가 단발 머리를 아르바이트생으로 쓰고 있는 그런 식당, 작고 바 형태의 좌석이 있었으며 한 쪽 벽엔 유명인들의 싸인과 사케 병이 진열되어 있었다. 쇠고기 덮밥과 베이컨 덮밥을 먹었다. 부드럽고, 짜지 않고 아주 맛이었다. 간사이에서 먹은 음식들은 대체로 입맛에 잘 맞았다.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싱겁고 달았다.

(기요 미즈 테라)
점심을 먹고 우리는 기요 미즈 테라로 갔다. 가는 길에 버스에서 길을 잃어 조금 고생을 하긴 했지만 여차 저차 싸우지 않고 잘 도착했다. 기요 미즈 테라로 올라가는 길은 꽤 가파른 언덕이었는데, 기모노를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게다를 신고 기모노를 입은 여자들이 그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모습은 존경스러울 정도로 대단했다. 어머니는 여자들이 입은 기모노가 예쁘다며 품평하기 바빴고 사진도 많이 찍었다. 그녀는 교토의 대해 깨끗하고 조용하고 예쁘다며 좋아했다. 확실히 그녀의 취향은 취향인 곳이었다. 나는 어머니 옆에서 오르막길 오르는 게 힘들어 헉헉 거리고 있었고 말이다.

(나, 기요 미즈 테라 근처 까페에서)

(기온 거리)
기요 미즈 테라를 다 둘러 본 후 우리는 기온 거리에 갔다. 기온 거리는 일본 게이샤 거리로 유명한 일종의 유흥가인데, 기본 백 년 이상은 된 건물들이 즐비하다. 물론 우리는 건전한 가족 여행객이어서, 술을 마시거나 게이샤가 땅땅 거리며 악기를 치는 것을 구경하지는 않았다. 저녁 어스름이 마저 내리기 전 거리를 빠져 나왔을 뿐이다. 하지만 기온 거리는 일부러 조성한 구시가지가 아닌, 살아있는, 사용되고 있는 오래된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어, 매우 아련하고 특별한 기분을 주었다. 어머니는 일본의 대해, 더 정확하게 말하면 도쿄의 대해 미국식으로 따라하기만 한 도시가 아니라 자기만의 색깔이 있는 도시라 좋다고 했다.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기온 거리에서 우리는 오사카로 돌아가기 위해 전차를 탔다. 전차에 앉아 저물어 가는 하루를 바라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ou est tu, 불어를 다 까먹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문장 만큼은 뇌리에 남아 있었나 보다. ou est tu, ou est tu. 어디야,어디야 하고 나는 중얼거렸다. 옆자리에 어머니는 잠들어 있었고 나는 이 나라에서의 고독을 생각했다. 이 곳에서의 고독은 마치 안개 속에 싸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고통과 슬픔이 모두 안개 밑에 가려져 있는 것 같다고.

(도본토리, 밤)
도본토리의 밤 우리는 꽤 비싼 게 요리 코스를 먹고 회전초밥과 타코야기를 먹었다. 호텔에 문의해 마사지 서비스도 받았다. 어머니와 나를 마시지해 준 마사지사는 나이 많은 할머니였는데, 그녀에게 어머니의 말을 옮기며 “she said your realy goo dat it” 이라고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이자 할머니는 활짝 웃었다. 그 마사지사 할머니처럼 일본은 노인들이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 보였다. 그리고 그 노인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고 말이다.
도본토리에서의 마지막 밤에는 악몽도 꾸지 않았고 가위에도 눌리지 않았다. 하느님께 기도를 드려서 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래서 마지막 날은 개운하게 일어나 오사카성도 둘러 보고 일본 식 경양식 집에서 점심도 먹고, 오사카 성 공원에서 저글링을 하는 광대들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진이 다 빛이 많이 들어가 뿌옇게 나와 버렸다.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다다르자, 일본에서는 안개 밑에 숨어 있던 걱정과 불안 들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게 현실인가 싶었다. 사실 이번 간사이에 갔던 것은 그곳이 살기에 어떤가 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 였다. 어머니는 교토가 조용하고 깨끗하고 요양하기에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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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니쉬 걸”을 보았다.
아마 이 영화는 트렌스 젠더 커뮤니티의 역사를 다룬 첫 번째 영화일 것이다. 슬픈 타자로서만 인식되던 트렌스 젠더들의 역사를 확립하는 영화라는 것에서 영화는 영화 속 릴리 엘베가 가진 역사성과 상징성 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본 영화는 모든 것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최초로 성별 정정 치료를 받은 트렌스 섹슈얼의 관한 영화이자,최초로 트렌스 젠더 커뮤니티의 역사를 조명한 영화다.
이 최초의 영화 그리고 이 최초의 주인공 릴리 엘베는 대단한 상징성을 지닌다. 릴리 엘베라는 그녀는 단순히 새로운 수술을 받은 여자 그 이상이다. 그녀는 의학적으로 성별을 바꿀 수 있다는 상상력을 가능케 했고, 정신과 육체의 성별이 다를 수 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전혀 잘 못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비록 영화에서 그리듯이, 그녀의 생애가 황량한 덴마크의 풍경처럼 고달픈 것이었다 해도, 영화 속 톰 후퍼 감독의 세련된 연출처럼 그녀의 모험은 하나의 꿈과 같은 것으로 우리에게 상징적 의미를 남긴다.
당신의 육체 그것의 성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정신의 성을 따를 것인지, 그리고 나아가 내 스스로가 더욱 나 자신이 되기 위하여 어떤 모험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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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을 앞두고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묵었다.

설 명절을 앞둔 주말 나의 가족은 그랟드 하얏트 서울에 갔다. 집에 틀어 박혀 투석하고 공부하는 나를 위한 일종의 일탈이었다. 설 명절 연휴가 시작되기 전 주말 월요일에 투석을 해야 하는 나를 위해 주말 하룻밤만 ���기고 오는 것이었지만, 지금까지 몸이 좋지 않아, 바깥 나들이를 하지 못했던 나와 그런 나로 인해 덩달아 나들이를 하지 못한 나의 가족에게는 나름 귀중한 기쁨이었다.

남산을 올라 도착한 호텔 로비는 생각 보다 고풍스러웠다. 그리고 의외로 설 명절을 쇠러, 제사를 지내러 내려가지 않고 호텔에 머물기 위해 온 가족 단위 손님도 많았다. 나의 가족 역시 설 명절, 제사 같은 것을 하지 않고 쉬이기 위해 온 것이긴 하지만, 나는 달라진 요즈음의 명절 풍속에 놀라는 노인내 처럼 호텔 라운지의 가족들을 보며 감탄했다
호텔에 들어가기 위해 체크 인을 하며, 라운지에 모여 저 마다 즐겁게 떠들고 있는 가족들을 바라 보았다. 나는 항상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 가득 찬 장소를 좋아한다. 가족 단위 리조트란던가, 놀이공원 같은 곳 말이다. 그런 곳에 가면, 질투와 행복이 동시에 인다. 행복한 표정의 그들이 부러우면서도 그들 덕분에 나도 행복하고 아무 근심 없는 인간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체크 인을 하고 호텔 일식 뷔페 “아사사카”에서 점심을 먹었다. 새우 튀김고 롤 케익이 아주 맛있었다.살짝 과식을 한 것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점심을 먹고는 부모님과 헤어져 각자 객실로 들어가 낮잠을 잤다. 나는 잠을 자다 지겨워져 오후 4시 쯤 라운지에 내려가 논알콜 모히토 한 잔을 마시며 책을 읽었다. 내가 가져간 책은 카프카의 “심판”이었다. 한 시간 쯤 책을 읽으며 모히토를 마셨을까. 어머니께서 내려 오셔 나를 발견하곤 내 앞에 앉아 같이 책을 읽었다.
책을 읽고 모히토를 마시며 소일을 하곤 밥을 먹으러 경리단 길로 내려갔다. 경리단 길은 호텔에서 나와 한 십 분 쯤 걸으면 닿는 거리에 있었다.

아버지는 경리단 길이 꼭 부산 남포동 같다고 했다.

우리는 한참을 먹을 만한 식당을 찾아 헤매다가, 한 치즈 가게에 들어가 치즈를 샀다. 치즈 가게 주인 아저씨는 우리에게 사찰 음식을 공부한다는 남자가 하는 카레 가게를 추천해 주었고 우리는 그 카레 가게에서 저녁을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호텔에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라운지에서 칵테일을 마셨다. 나는 어머니께 요새 너무 외롭다며, 애인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했고, 어머니는 내게 각자의 외로움은 친구도 애인도 가족도 해결해 줄 수 없는 거라고 했다. 어머니는 나의 투석과 신장의 문제가 내가 짊어져야 할 생의 짐일 것이라 했고 나는 나의 기독교적 감성으로 그래, 그것의 아마 하느님의 뜻일지도 몰라, 하며 동의 했다.

어머니와 칵테일을 마시고 객실로 돌아와 남산의 야경을 보았다. 야경을 보며 그날 밤도 하느님께 기도를 했다. 기도를 마치고 나선 호텔 클럽인 제이제이 마호니스에 갔다. 클럽 한 쪽은 라이브 바 한 쪽은 댄스 클럽이었다. 혼자 클럽에 들어가 스피커 옆에서 춤 추는 여자 옆에 서서 춤을 췄다. 자정부터 새벽 2시 경까지 말이다. 하도 몸을 흔들어 대어서 인지, 객실로 돌아오자 너무 배가 고팠다. 룸 서비스로 햄버거를 시켜 먹고 새벽 3시가 다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힘든 몸을 일으켜 보니 벌써 오전 9시였다. 호텔 조식을 먹고 샤워를 한 후 예술의 전당에 갔다. 대영 박물관 전과 내셔널 지오 그래픽 전을 보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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