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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아끼자
너무 많은 말을 폭포수처럼 쏟아낼 때가 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들,
굳이 타인에게 하지 않아도 될 말들,
그만 내려 놓자, 뭐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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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는 방식과 삶을 사는 방식은 비슷하다는 것.
앞으로 자꾸만 자꾸만 질주해가는 언니의 뒷모습은 너무나 자유롭고, 가볍고, 아름다워보였다. 저 숱한 돌무더기 속에서도 중력이 없는 듯 걷는 저 여인의 발자취를 따라 너무나 쫓고 싶었다. 언니가 걷고 지나간 자리에는 스틱소리도, 발자국 소리도,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도 모두 언니의 속도에 빨려들어가 진공의 정적만 남겨진 듯했다.
너무나 쫓아가고 싶었다.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쫓고 싶은 마음이 미친듯이 솓았다. 나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숨을 몰아쉬며 겨우 언니의 뒷꿈치를 쫓고 쫓았다. 하지만 한 고개를 넘기고 ‘아이고 죽겠다'를 연발하며 무릎을 짚고 땅에 코를 박고 죽을 듯이 숨을 몰아쉰 후 혼미해진 정신을 가다듬으면 언니는 어느새 또 사라지고 없었다.
이 언니는 참 치명적이며 때론 위험한 사람이다. 나는 일상에서도 산에서와 같은 느낌을 받는다. 언니의 이상과 가치관 그리고 그 소신을 지키기 위해 무단히 고통을 감뇌하고 노력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아니, 이보다 더 위험하지만 출처 : [권봄이님의 블로그] 당신을 블로깅하세요. 작성자 : 권봄이 길을 만들다 전체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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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살아보기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여전히 그럴 때가 있다.
호주에 있는 동안 계속된 사고들과 유방암 투병을 하면서 학습화된 무기력감과 우울증을 갖게 됐다 (감사하게도 나는 그래도 밝다.)
길고양이가 낳은 새끼 3마리와 그 길고양이와 다른 길고양이를
케어하면서 얘네들이 죽을 때까지만 살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
40대 중반으로 다달아가면서
가끔씩 불안감을 넘어 공포심을 느낄 때가 있다.
주 7일 4시간씩 번역으로 달에 500만원 이상의 수입을
벌면서도 나는 계속 어떻게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고민한다.
번역은 곧 AI로 대체될 것이고, 지금의 수입은 얼마나 줄어들런지
번역을 밥벌이로 살면서 이 이국 땅에서 제대로된 영어도 못하면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불온한 생각들을 종종하게 된다.
한국에서 대기업에 다녔던 사람으로서
여전히 남들의 시선 속에서 식당 이모나 서빙을
하면서 살 자신은 더더욱 없다.
지식인의 삶을 살고 싶은 욕망, 호주에서 University를
가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을 의지하거나 신뢰하면서 살아본 기억이 없어서인지
앞으로 사업을 시작하면 큰 돈을 벌게 될 남편을 내편이나 의지하고 살아야 할 존재로 느끼지 못하고
어쩌면 불가피하게 헤어져 제 갈 길을 가야할 존재로 생각하고
있으므로, 나는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무튼, 나는 영어 시험에서 오버랄 62점을 맞았다.
항암약을 복용 중인데, 항암약이 뇌세포를 죽인다는데
그래서 뇌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데도,
나는 예상보다 꽤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리고나서 바로 신이 내게 준 재능인 세일즈를 하기 위해
면접을 보고 일을 시작했다.
아, 손님과의 상호작용이 행복하구나,
물건을 소개하고 파는 과정에서 타인과의 호흡이 참 좋다.
밖으로 나가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한달에 1,000만원을 벌고 싶었던 욕망에 거의 근접했다.
몸이 얼마나 버텨주고 나는 얼마만큼 이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다시 무언가를 도전할 에너지를 얼마만큼 비축할지
기대감도 갖게 됐다.
불가능할 거 같던 것들이 손에 잡았을 때,
단 한번도 안주하지 못했다.
새로운것을 도전하고자 하는 욕망이었을까,
아님 안주하면 도태되고 자멸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일까,
요새 운이 좋아 영주권이 올해 내로 나온다면,
무슨 공부를 할지 고민 중이다.
가장 안정적이고 고정 수입을 벌 수 있고,
다른 걸 도전하지 않아도 오래 할 수 있는 일,
긴호사를 우선순위에 두기 시작했다.
간호 공부를 하고 일을 하면서 영어애 자신감이 붙음
심리학 공부를 50대쯤 해서 평생 직장을 삼아도 괜찮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현재는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안정되는게 가장 중요하다.
호주 간호사는 연봉도 괜찮고 대출도 잘 받을 수 있으니,
경제적으로 독립하기에 이만한 직업이 없겠다 싶고,
나는 앞으로 직업에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우선 내년에 TAFE에가서 조무사 공부를 시작으로
UTS 간호학과 2학년에 편입해,
간호사가 되는 길을 고민해 볼 생각이다.
가다 보면, 늘 길이 나타나고 지켜주셨던
나의 유일한 비빌 언덕이신 하나님을 믿고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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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고 성숙하고 고립되지 않는 법
#영어 공부
우선 4월 30일 시험에서 오버럴 50점을 넘고,
65점을 목표로 영어 공부를 꾸준히 계속할 생각이다.
한달에 이 금액으로 계속 공부할 수 있는 웹사이트가 몇이나 될까,
문장 읽는 연습과 듣기 연습은 지속적으로 할 필요성이 있다.
#봉사활동
영어 공부가 끝나면 일주일에 2번 정도 봉사활동을 할 생각이다.
지역사회에 내가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찾아야겠다.
어른들 말동부를 해드리는 봉사를 찾아볼까 생각 중이다.
병원에 있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도 괜찮을 듯 싶기도 하다.
#취미생활
책 읽는 거 말고 다른 취미 생활을 찾아봐야겠다.
그림을 그리는 걸 해보거나
피어노 치는 거나
아니면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취미 활동 등을 찾아봐야겠다.
#여행가기
짧게는 열차를 타고 키이마나 본다이 둘레길 같은 곳도 가보고,
길게는 멜번이나 콜드코스트로 여행을 가고 싶다.
조금씩 움직여 보자.
#영어를 커뮤니케이션 하는 상황으로 스스로를 계속 밀어 넣기
#달리기
무튼, 고립되지 않고 계속 밖으로 나가서 사람과 어울리고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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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이후에 직업은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었고,
사람들과 협력하고 사회활동을 하면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었다.
현재, 재택 근무를 하고 있다.
나는 번역으로 현재 주 7일 하루 4시간씩, 일주일에 28시간 정도 일을 하면서 한국 돈으로 400만원~600만원 이상 (많을 때는 700만원 이상의 수입도 올렸었다) 수입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만족감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번역이란 직업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AI 기숙력이 번역 영역에서 어마어마한 진보를 이루었다.
호주에서 거주 중인데 나는 영어로 의사 소통을 하는데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상 대화조차도 힘들 때까 있는데
도대체 여기서 어떻게 양질의 직업을 구할 수 있을까,
양질의 직업을 구하기 위해서는 대학교를 가야한다.
그런데 영주권을 받으려면 여전히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2~3년의 시간. 나는 대학교를 가고 싶지만 비싼 학비 때문에,
그리고 요섭이가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계속 고민 중이다.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지금 가장 중요한 나이데... 나는 요섭이를 믿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의지할 수도 없다. 요섭이도 아마 나를 믿거나 의지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관계가 잘못된 걸까, 내가 요섭이에게 가지고 있는 불온한 감정을 요섭이도 내게 똑같이 가지고 있겠지
때때로 요섭이가 나에게 지옥이듯이,
어쩜 내가 요섭이에게 지옥일 수도 있는 거니까,
내가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빨리 경제적으로 더 독립하고 전문직을 갖춰야 한다.
하나님 길을 내어 주시옵소서.
결단을 내리고 나아갈 수 있도록 돠와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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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이 3주 이상 지속됐고,
전이와 재발율이 높은 삼중음성 유방암이라
혹시 뇌전이가 아닐까란 두려움으로 한달을 보냈다.
뇌 스캔을 찍은 결과, 뇌에 아무런 이상이 없음을
오늘 의사로부터 들었다.
사실 양가적인 감정이 있었다.
계속 삶을 지속해서 호주에서 살아남고 싶은 욕망과
그냥 삶을 끝내고 싶은 욕망과
그 두가지 욕망이 충돌했다.
42년을 살았으면 꽤 잘 산게 아닌가 싶다.
대학도 다녔고, 대학 생활을 다양하고 치열하게 했고, 대학 동안 등록금 등 투쟁으로 무기정학을 당했지만 결국 무기정학이 풀려 대기업에 입사해서 정규직으로 일도 해봤고
신문에도 기사가 실렸었고 작은 책도 출간해봤고
제 2의 직업으로 해보고 싶었던 번역가로서 돈도 벌고 있고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출산과 양육을 못하고 엄마라는 이름을
가져보지 못한 거,
그리고 10년간 호주에서 고립되었던 거
그거 두가지 빼고는 사실, 원없이 살고 싶은만큼 산게 아닐까 싶었다.
뇌에 암이 전이됐음, 아무도 모르게 제주도 호스피스에 들어가서
조용히 세상과 작별할 생각이었다.
남은 시간 제주도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행복하게 생을 마무리 하고 싶었다.
어쩌다 나는 이렇게 삶을 계속 내려 놓는 것일까,
어디까지 내려 놓아야 할까,
다시 희망을 가지고 열망을 가지고
삶을 지속해 나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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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에서 벗어나야
호주에서의 삶은 고립의 연속이었다.
남편의 관계가 가장 긴밀하고
집에서 번역을 하다보니 일을 하러 밖에 나갈 일도 없고
계속 아프다 보니 그로 인한 우울증 (과거를 후회하고 미리를 불안해하느라)으로 집 안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예민하고 감정적으로 약해져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을 감당하고
참는 역치 또한 낮아져 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들의 단어와 문장을 곱씹으며 그 안에 숨겨져 불온함과 부정, 비난을 찾으며 분노하고 결국엔 관계를 끊어버리는게 지속되어 왔다.
누군가 그랬다. 호주에 사는 한국인들은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들이 많다고. 외국에 나와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지 않겠지만 대게 많은 경우가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않거나 부모를 원망하고 참아내기 힘들어서 도망온 경우들이다.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건 부모의 성격에 결함이 있거나 또 그로 인한 내 성격의 결함으로 생겼다는 말이기도 하다. 부모에게서 멀리 벗어나고 싶은 심리.
나 또한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 부분도 컸던게 아니었을까,
요즘 들어 그런 생각들을 해보곤 한다.
여튼 나는 현재 유방암 항암을 받으면서 다시 고립되어 가고 있다.
컨트롤하고 영향을 미치려는 목사님 사모님과 관계를 끊고 교회도 더 이상 나가지 않게 되면서 고정적으로 만나는 사람은 남편과 우리 집 쉐어생들 뿐이다. 마음을 터 놓은 사람들은 있지만 사실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고 신뢰를 쌓아온 친구가 없다. 거의 없다.
내가 관계를 끊는 경우가 대다수였지만, 나와 관계를 끊은 케이트도 있다. 가장 믿고 의지했던 케이트가 암 투병을 하면서 우리 관계를 끊고 싶어했던 걸 깨닫고 말았다. 친언니라며, 퍼스도 놀러가고 태국도 놀러가자 했던 그녀의 말은 진심이었을까,
무튼 나는 항암 약을 먹으면서 고립되어 가는 나를 고립의 고리에서
끊어내기 위해 주 20시간 밖에서 하는 일을 하고자 내일 인터뷰를 보러가기로 했다. 항암으로 빠진 머리가 여전히 짧고 피부가 기미로 가득한데도 나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줄지 모르겠으나, 힘들더라도 일을 해보고 싶다. 그리고 예전과 다르게 잘 끝마무리를 짓고 싶다.
그곳에 함께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고 인생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따듯하고 나에게 좋은 사람 한명이 있었음 좋겠다란 생각을 해본다.
대화를 즐겁게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4월 30일에 PTE 시험도 봐야하는데, 시험을 끝내고 일을 시작했어야 하나란 생각도 들지만, 계속 집에 틀어 박혀 있다간 정말 미쳐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고립을 끝내고 사회로 나아가고, 그리고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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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지난 2024년 4월 9일 새벽 5시 30분쯤
10년이 지나 블로그에 들어와서 글을 쓴다.
34살이었던 나는 44살이 되었고,
그때보다 나아진게 있냐고 묻는다면,
아무것도 없이 퇴행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34살까지의 나는 여전히 희망을 품고 진취적이고
사색적이고 생동감이 흐른다면,
지금에 나는 안주하고 계산하고 두려워하고 불안전하다.
당시 지금의 내가 이 정도의 인간 밖에 못될 거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부러진 다리는 약간의 장애를 갖게 됐고
유방암 2기말로 유방암 환자가 되어,
작년 5월부터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을 체감하는 항암을 했고
방사선 치료를 끝내고 항암약을 먹고 있는 중이다.
전이와 재발의 두려움을 안고
그래도 어떻게 살면 그나마 숨통을 틔고
'제대로' 살 수 있을까란 말을 계속 되내인다.
조국 대표가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면
했던 건,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잘 살아냈던 날이 며칠이나 될까,
합이 몇 달은 될까,
그래도 밤을 새면 완성했던 TED 스피치 번역 덕에
번역으로 밥은 먹고 살게 되었다.
그러나 AI로 대체될 �� 번역 일로 얼마나 더 벌어 먹고
살 수 있을까,가 또 다른 고민이다.
살아서 존재한다면 나는 또 밥벌이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예전에는 그렇지라고 대답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쉬이 그렇지란 말을 못하게 됐다.
어디서 부터 잘못된 걸까,
어디서 부터 망가져 버린 걸까
다시 책을 미친듯이 읽으면,
호주의 삶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 혼자 살게 되면
하고 싶은 공부를 내 언어로 하게 된다면
내 눈빛에 호기심과 생동감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다시 담아낼 수 있을까,
10년 전에 글을 읽으며,
유미야, 그때 너는 지금보다 괜찮았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왜, 그때보다도 못하게 퇴행했을까,
10년 전에 내가 지금의 나에게 질문을 한다,
아버지, 답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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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공부를 해야 할거 같아서 정치학쪽 공부가 너무 하고 싶긴 해서...이래저래 고민중이야, 그냥 하고 싶은거 다 하면서 사는게 어떨까 싶고 이미 평범이라거나 일상적인 범주에서 많이 벗어나버려서 굳이 그 일상속으로 기어 들어가고 싶지 않아졌어, 그리고 시를 다시 쓰기 시작했어 예전이랑은 또 다른 접근인거 같아, 할 말들이 너무 차고 넘쳐나서 이걸 어떻게 주체해야 할지를 모르겠는거지, 호주에서의 이 2년은 철저히 자기성찰의 시간이었거든, 과거와 일부분의 현재와의 단절에서 오롯이 내가 어떤 인간이었는가를 무참히 깨닫는 일련의 과장들을 겪는 시간들이었고 후에 잘 겪어낸거라고 겪어내야만 했던 시간들이라고 생각하게 될거 같아, 만약 한국에 남아서 이 시간을 겪어내지 않았다면 안됐던거였구나란 생각이...필연적인 사간이었던게 아닌가. 그리고 이후에 시간들은 이제 예전처럼 생산해 내는 시간들을 겪어내야 할거 같아. 많이 버리고 내려 놓고 비웠으니 이제 슬슬 채워야 하는 시기가 온거지 싶어...비워낸 것들을 다시 담아내야 하는 과정들이 글쓰기의 과정이 아닐까 싶어 봄과의 대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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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이 블로그에 들어갔다 본 글,
나에 대한 글이다 한국을 떠나 이곳에 있으면서 가장 힘들다,는게
그 이유를 알게 된건,
내가 좋아하는 이들과의 교류가 중단 됐다는 걸
호주 생활 1년 6개월이 지나고 비로소였다
그동안 내가 그토록 피폐해져 가는 이유를
애써 외면했었다 그걸 알게 되면 여기서 버텨야 할 날들을
제대로 버틸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들과 눈을 마추고 살을 맞대고
삶을 공유하고 꿈을 읊조리며
밤거리를 거닐고 뛰어다니며
재잘 거리던
생글거리던 그때가 그토록 아름다운지,
이제야 비로소 몸서리치게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여기서 시간이 갈수록
단절된 시간들이 두렵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정서와
문화와 공간들과 해냈어야 할 일들… 그리고 내가 있어줘야 했을 나의 사람들 하나하나,
나는 그 중요하고 커다란 의미를 모르고
나의 욕심만 부렸던 거다 빨리 제자리로 돌아갈수 있는
그날이 왔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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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baby was born yesterday. He is my a-fellowed worker's sun. He's born name is mongsil. Mongsil of korea language means a soft. He's mom is very brightness and kindly. She will be good mother. Let me congratulation you almost heartily on your deliv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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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ght person of picture in news is my university friend. She is teaching foreigner student of all over the world at university in seoul. And she has been enrolled in a doctor's course. She is hard studying Korea language. She is vest of passional who I know among people. I'll believe that she'll achieve her dream. Ch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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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se day see cartoon. It's one of enjoy day in my life now. The impression of a color is very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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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is a dialogue that i carried on with best friend. This dialogue content is encourage letter to each other.We have been got on well for 22 years. She is very important person in my life. When i was hard day she gave affirmation energy. I want to appear good boyfriend to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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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종업원
"조선일보 기자중에도 좋은 사람 있다"고 말하는 분이 있네요. 천만에요. 조선엔 기자 없고 종업원만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사람이 왜 조선에 있나요? 양심있고 멀쩡하다면 다른 일 해야지. 뱀이 먹는 물은 결국 독이 될 뿐 조선 종업원 칭찬하지 마세요.
잘 살아내는건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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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baby is jjinglee she is very very lovely i am missing her because i'm in Australia, she's in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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