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eplightson

[keeplightson]

어느 순간에는 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서고 나서는 아주 조금밖에 안 울었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속이 다 비치는 종이만 살짝 덮어두고, 남 생각은 하나도 안 한다. 로봇청소기를 방에 못 들어오게 막듯이, 몇 번 밀어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몇 달 지나면 책상도 정리할 생각이 들겠지. 굳이 매일 일기는 안 써도 된다.

[keeplightson]

연구 아이디어의 대부분은 아침 샤워 부스 안에서 떠올렸고, 보통 밤에 씻으면서 내가 바라는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꼼꼼히 교육받고 스스로를 애써 키워 세상을 예민한 눈으로 보는 사람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그를 힘들게 만들었을 조금 덜 아름다운 사람이 매우 많으므로, 그는 온순하지만 조금 유보적이고 조심스러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소개팅의 개념이 직접 와닿지 않는다. 미술관을 걸어다니면서 각자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 뒤에 끝내주는 음식을 나눠먹고 술을 조금 마시고 휘청휘청 들어가면 매우 즐거울 것 같은데, 얼치기 스노비즘에 빠진 사람처럼 보일까봐 차마 아런 소리는 할 수 없어서 소개팅을 해주겠다는 사람한테는 나를 다시 조금 숨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간식을 조금 들고 공원을 걷는것도 좋을 것 같다...

[keeplightson]

그간 일을 많이 했다. 일을 하고 운동을 하고 쬐그만 내 방으로 돌아오면 혼자 책을 조금 읽고 핸드폰을 조금 만지다 잠에 든다. 직장인의 연애에는 사랑과 노력이 둘다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어떻게들 내어주고 견디는지, 하지만 홀로 있는 것은 익숙치 않아 때때로 절반밖에 없는 사람처럼 외롭다. 연애를 한다고 외로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어떤 시간과 정서를 공유할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포개듯 누워 팔뚝을 손으로 가만히 쓸어주는것이 편안한 사람을 찾아서. 시간을 쌓고 깊이 이어질 수 있을까.

다시 호수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나는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조금 울곤 하지만 기본적으로 감정의 오르내림이 크지 않은 사람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감당할 힘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은 속으로만 했다.

[keeplightson]

파도가 들어오고 파도가 나갔다. 파도소리와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가 반씩 들렸다. 오랜만에 동생이 코 고는 소리를 밤새 들었다. 본가 각자의 방에서 잘때와는 다른 거리감이 묘했다. 머리를 슬쩍 만지려다 말았다. 침대 절반을 누워있다 조금씩 빼앗겼다.

[keeplightson]

사람을 찾는 일이 생각했던 것보다 드라마틱하지 않고 누군가의 옆을 애매하게 휘저으며 (딱히 애써 갈구하지 않으면서도) 미상의 기회를 자꾸 떠올려 상상을 입어보고 벗고를 반복하고 있다. 순간순간 다양한 기회를 넓게 펼치듯 공상이 이루어지다보니 내가 이럴 것이라고는 상상한 적도 없어 너무 어이없는 일상을 사는 중이다. 그렇다고 에너지레벨이 충분히 높은 사람은 아닌데...

[keeplightson]

밤에 누워 지나간 것들을 생각한다. 침대에서 심보선과 허수경을 읽었다. 낮에는 오래 전에서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이야기를 했다. 잃은 것을 생각했다. 날씨가 더워 낮에는 힘들지 않았다. 저녁에는 외로움이 기껍다. 혼자 있는 조그만 방에서 온 적도 없는 이의 부재를 느낀다. 친구에게 사랑을 소중히 하는 사람을 찾을 것이라 말했다.

[keeplightson]

둥지를 짓듯 여기에 나를 짓기 위해 몸이 달아 매일 글을 쓰는 것이 참 웃기는 일이다. 일상과 멀리 떨어진 곳에 기록을 간단히 남겨두고자 어플을 깔았으나, 결국 금방 나의 취향을 한껏 전시할 궁리를 하고 있다. 어느정도 들어맞는 사람이 문을 열고 말을 걸어오기를 기다리는 가게 주인의 꼴이다.

다시 꿈에서 종이를 많이 접었다. 종이의 위상이 뒤집힐 때마다 색이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keeplightson]

나는 너무나 무난하고 건강하고 평온하게 살아가는 사람이고 삶에서 큰 고난과 실패와 악의를 마주한 적 없기에 기분의 고저가 없다. 부족을 느끼지 않고 걱정을 오래 들고 다니지 않으며, 이따금 발견하는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외로움을 제외하면 오랜 시간을 들여 대부분의 결여를 찾아 메웠기에 온순하고 친절하다.

엔지니어링 된 감정처럼, 그러나 나의 주고받음은 언제나 유보적이었다. 나를 지킨다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 의도적으로 감정을 부풀리는 것을 경계(그나마도 온라인에서의 자아를 넘지 못했다)한다.

그래서 글은 제대로 끝을 맺고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온라인의 자아와 오프라인의 자아는 유리된다. 말은 단어들의 덩어리로서 그저 기술된다. 가끔 조심스럽고 남모르게 망가진 인간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오래 전에 망가졌거나, 바로 최근의 일이거나.

[keeplightson]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는 것 보다 싫어하는 것을 함께 싫어하는 취향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즐거웠다. 취향에 있어서는 칼로 나누듯 내가 참을 수 있는 것과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것을 구분하고,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단정적으로 영영 잘라낸다.

그러면서도 사회적으로 온전히 기능하기 위해서 나는 온라인에서의 자아와 오프라인에서의 자아를 나누어, 한쪽이 다른 한 쪽으로 넘치지 않도록 노력한다. 나의 깊은 외로움은 어떤 방법으로든 취향이 맞는 인간을 찾고자, 끊임없이 새로운 이들을 가늠하게 한다. 침대에서 잠깐 졸면서 여러 종이를 접고 늘이고 줄이는 꿈을 꾸었다. 조느라 글이 제대로 마무리 되는지 알 수가 없다.

[keeplightson]

넓은 창으로 하늘이 번쩍이더니 비가 잦아들고 사위가 조용해졌다. 나는 시간을 씹고 강아솔을 들으며 누워있다. 며칠 새로운 사랑의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다. 어제는 친구와 누군가를 꽉 안는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살과 살을 맞대고 온기를 나누는 생각을 했고, 나는 아이처럼 꽉 끌어안을 궁리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를 안을 수 있다고, 친구는 나를 안을 수는 없다고 했다.

힘껏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한다. 함께 풀밭을 뒹굴듯 끌어안고 잠을 덮고 눕는 기억엔 항상 하얀 베딩이 있다. 이번에 얻은 자취방 침대에 나는 남색 서커를 깔고 또 남색 홑겹 서커를 덮었다. 누운지 30분이 지났다고 램프가 꺼졌다.

[keeplightson]

어떤 사람에게 들은 바로는 어떤 이들은 사랑의 형태가 열망에서 그 다음 것으로 바뀌는 과정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10년동안 같았고 앞으로도 같은 사람이었을 것이었다.

나는 매일 그가 설렜고 보고싶었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항상 설렜고 나는 그를 잠그듯 꽉 안는 것을 좋아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아직 그를 만나고 있냐고 묻고 나는 아직 똑같이 사랑한다고 답했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내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 우리가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디엔가 새로운 곳에 가면 스스로를 사랑에 적합한 인재라고 소개했다. 식지 않고 끊임 없이 잔잔한 사랑을 부어줄 줄 아는 사람이므로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고.

그러나 그는 모든 시간과 추억을 ��음 보는 것처럼 문득 떠났고 나는 겨울과 봄을 계속 무너졌다. 결국 나는 사랑에 적합한 인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의 많은 부분에 대해 영문을 모르게 된 채로 흐른 반년은 내내 출렁였다. 죽을것처럼 슬프지 않은 것이 내가 생각했던 것 만큼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 같아 고통스럽다가도 깊은 상실감이 느껴져 오히려 기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이든 다시 최선을 다해 사랑할 기대를 하다간 망가지고 비어버린 스스로를 발견하고 다시 무너지기를 반복했다.

모든 이에게 기묘한 2020년과 2021년을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처럼 보내고 있다. 언젠가 사랑에의 백마 탄 초인이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