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kimunojinsei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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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is, of course, imperfect like any other places in the world. Yet many scenes still makes me think that she is beautiful enough- to be called perfect, with some exagg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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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unojinsei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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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ine seems to be the most beautiful when it stays in its trajectory. Albeit it succeeds to land on where it supposed to be, just like a rocket, only turns the page of next action/project, which brings more trajectories to be in. Rocket seems to stay on ground most of the time, But project doesn’t - it mostly stays on it’s way to the goal. where we spend most of our allowed time in our life.
Hope one day I find the way to like myself being in the most dull routine possible-believing that I’m on the right way, burning glowingly, to the land that very far far away, realizing that, I’m gonna shine even when I busted and fall down. No matter what-the dull daily routine will continue. And thus I’m shining, routin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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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unojinsei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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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아니한 것
일신이 생애를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요소라고 하는 것이, 고금을 막론하고 적어도 동양에서는 의식주 석 자로 간단하게 정의된 것이 적어도 수 백 년은 되었는 바, 이는 본인의 동물로써의 삶을 지난 25년 간 지내온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실로 명쾌하게 그 조건을 관통하고 있으므로 선인의 지혜에는 실로 탄복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 있어서, 그 조건 중 하나씩을 결하는 사람에 대해, 소위 변질자이니 기아이니 노숙인이니 하는 따위의 개념을 만들어 이상의 의를 형용하는 것을 미루어 볼 때, 이러한 관념, 즉 상기 세 개의 요소가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결코 논리적인 필요충분의 조건이 아니라, 오직 두 번째, 즉 기아의 상태만이 직접적으로 삶을 앗아가기 때문에, 그것이야말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조건에 부합하며, 의와 주는 일신의 건강을 위한 비교적 부차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인간 복지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바를 참작한다면, 의식주라는 정의는 그 목적에 꼭 들어맞는다고 아니할 수 없다.
식! 이것에 이르기에는 작금의 시대는 실로 태평성대의 그것이며, 일개 서민도 고기로 배를 채우며 안빈낙도라고 칭할 수 있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며, 적어도 물자의 풍족함에 대해서는 요순의 그것과 견주어도 한없이 월등한 시대일 것이다. 거기에 더불어, 의와 주가 일개 서민들에게도 융통하는 시대/국가에 태어났으니, 이는 실로 하늘이 보우하는 바가 아니고 무엇이랴? 이렇게 생각하면, 상기 부제의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아니한 것” 의 문장이야말로 실로 어불성설이고, 마땅히 생각을 정리할 필요는 더더욱 없이, 그저 순리대로 살아가 관혼상제의 관문을 지나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치에 맞겠다고 하겠다.
하지만 불행히도, 현대사회의 복잡성 안에서 살아가는 도시민은 본인들이 가지는 수많은 복잡괴기한 상념들을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일격에 타파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며, 애석하게도 본인 또한 그러하다. 탁상에서 수없이 위와 같은 거시론을 논할 때는 모든 것이 간단하게 보이면서도, 작디작은 개인의 시점으로 돌아와 세상을 보는 순간 왜 이리도 난제는 산적하는지! 실로 알렉산더의 검격은 단순한 콜럼버스의 달걀같은 변칙이 아닌, 오직 대왕만이 지닐 수 있는 대범함에 대한 은유이지 않을 수 없다. 저축이, 세금이, 커리어가, 혈압이, 습기가… 현대 사회에서의 일상은 기지의 범위 확장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자잘한 고민들의 연쇄로 전락하였으며, 이것의 총체는 의식주에 대한 선조의 고민과 견줄 만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근대에 쇼펜하우어는 실로 이러한 현대적인 고민의 근원을 찾을 단초를 의식주의 요소보다 한 단계 상위 개념일 욕망과 이성으로 제공하였고, 그것은 적어도 현대인의 일상 고민의 부분에 있어서는 중세인의 의식주를 가히 대체할 만한 화두로 자리매김하였다. 즉 중세 서민에게는 그 욕망의 초점이 생에 필요한 의식주에 맞추어져 있었다면, 현대에는 그 초점이 더욱 다각화되어 다른 것을 쫓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부합하여, 도저히 본인의 욕망을 의식주에 한정시키지 못하는 나와 같은 현대인들은 마땅히 자기들에게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아니한 것을 준별하여, 그것을 쫓는 이성을 추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지마는, 욕망을 필요최소의 의식주에 맞추는 것 또한 다대히 어려운 일이기에, 할 수 없이 부지불식간에 전자를 택하는 형국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에 나 또한 내게 놓인 조건과 개인의 욕망을 조합하여 추구할 수 있는 최대한을 저울질하는 바,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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