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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지 않는 기억
시작은 조금 뜬금없던 걸로 기억한다. 데이트 하다가 분명 속상해 할 일이 아닌데, 속상해했다. 마치 헤어지기 위한 트집을 잡기 위한 것처럼. 그 일이 있은 직후부터 연락이 점점 줄어들었다. 지금에서야 이게 빌드업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잘못한게 맞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는 사실에 슬펐고, 미안했다. 그러나 사과와 회유는 전부 듣질 않았고 결국 헤어짐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별 후 마음고생을 정말 심하게 했다. 미안함, 자책, 자조.. 내면의 자존감이 깎여나가는 상실의 시간이었다. 마음이 어느 정도 정리가 다됐을 무렵, 종지부를 짓기 위해 그녀의 모든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모든 흔적과 기억을 다 지운 줄 알았던 어느날, 우연하게도 아직까지 그 사람의 구글계정이 내 컴퓨터에 로그인 되어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용자 로그아웃을 위해 구글에 들어갔다. 사진첩 용량이 50% 찼다는 알림이 떠있었고, 무심코 클릭했다. 지난 인연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을 뒤늦게 알고 닫으려는 그 때. 사진들의 타임라인이 보였다. 헤어진 지 한 달도 채 안됐는데 다정히 찍은 사진들이 보인다. 그래.. 뭐 새��운 사람 사귈 수도 있겠지 싶었다. 그런데 그만큼 헤어진 지 얼마 안됐으니 우리가 언제 데이트 했는지, 무슨 말이 오갔는 지 정도는 기억에 남아있었다. 분명 동성친구를 만나고 놀다 온다던 날에는 낯선 남자와 식사를.. 친척과 밥을 먹는다는 날에는 낯선 남자와 카페.. 내가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서울에 다녀왔을 때도 여러가지 이유를 대고 만나지 못했었는데, 그 다음날 그 낯선남자와 다정히 자취방에 있는 사진이.. 한 번 두 번이 아니었다. 평소 같았으면 남의 사진첩을 보는 행위는 하지 않았을 테지만.. 이건 그쪽이 선을 넘은 거잖아? 스크롤을 내렸다. 내리면 내릴 수록 구역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온몸이 벌벌 떨렸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녀는 자신의 대학 동기와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나와 여행 가기 전날에도, 데이트하기 전날에도. 나는 바람과 양다리, 환승이별까지. 3개를 동시에 당해버리는 대단한 경험을 해버렸다. 기구한 인생이다 정말. 근데 그 대학 동기 이름 낯이 익다. 기억을 되짚어 보니, 그 여자가 나랑 데이트할 때 했던 이야기가 불현듯 생각이 난다. 자기 동기 중 ㄱㅎ라는 남자애가 여친이랑 헤어졌는데 여자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라고 했던가? 아무튼 그런 뉘앙스의 전화가 자주 온다고 했다. 그리고 전화 중에 ㄱㅎ라는 놈이 자기 전여친이랑 산에서 카X을 했니 마니, 이딴 이야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남의 여자친구한테 그딴 소리를 지껄이냐 싶어 기분이 나빴는데, 그 여자도 그 동기가 땀내나고 못생겨서 극혐한다고 하길래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저 모쏠 탈출 후 도파민 터지는 경험을 해보고는 기분이 상기되서 이곳저곳에 떠벌리고 다니는 구나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그 새끼랑 사귄다니 정말 역겹지 않을 수가 없다. 끼리끼리 만나는 건가. 내 아까운 시간들. 쓰레기를 만나 쓰레기 같은 시간을 보낸 내가 너무 싫다. 인생을 허비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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