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yan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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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예보를 통해 오늘의 날씨를 미리 알고 있었지만, 한창 봄을 맞던 중에 몰아치는 눈보라는 역시 당혹스럽다. 생리 주기 어플과 신체 상태의 변화를 통해 호르몬의 영향이란 걸 이해하고 있지만, 이렇게 피곤과 불면이 동시에 찾아오면 어찌할 바 모르고 불안해하게 된다. 평온과 숙면을 도와줄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삼십분 째 찾아헤맨다. 전자파의 도움으로 뇌파의 안정을 바라다니 전엔 이해 못하던 현대인의 모순을 점점 갖춰가고 있다. 그냥 푸른새벽 듣자. 불안정한 때마다 찾아들은 지가 십오년도 넘었겠다. 익숙한 목소리 틀고 조명 끄자. 핸드폰 덮고 눈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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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우리 고양이랑 부쩍 더 친해지고 있다. 이제 만 여덟살이고 같이 지낸 지가 7년 조금 넘었는데, 우리 사이가 이렇게 더 가깝고 돈독해질 수 있다니 신기하다. 어느 집 고양이는 보호자와 나란히 누워 잠을 자기도 하고 먼저 안기기도 하고 훨씬 애교가 있다더라며 장난으로라도 노노를 타박해선 안 될 일이었다. 내가 달라지니 녀석도 달라졌다.
나의 무심함으로 아팠었던 녀석에게 앞으로는 최고의 집사가 되어주겠다 다짐한 뒤로 나름 잘 지키고 있는 것 같다. 잘 먹이고 잘 뛰어놀게 했더니 점점 근육질의 묵직한 고양이가 되어가고 있고, 까다로워진 입맛에 맞는 사료를 겨우 찾아 바꿔주었는데 그게 시중의 사료 중 꽤 비싼 편이라 오히려 뿌듯하고 좋다. 새로 사준 캣타워와 스크래쳐들은 어찌나 잘 사용하는지.. 매일 저녁 사냥놀이는 궁디팡팡과 함께 아낌없이 칭찬을 퍼부어주며 끝을 내는데, 어쩌다보니 칭찬 받는 자리가 정해져서 내 목소리가 칭찬하는 톤으로 바뀌면 노노는 곧바로 그 자리로 달려가서 궁디를 치켜든다. 귀여워서 죽을 것 같다. 저녁마다 영양제와 약을 먹이며 츄르를 주니까 약봉지만 꺼내도 달려오고, 이제는 힘들게 안 먹이고 대충 입에 넣어주면 알아서 삼키는 것도 너무 귀엽다. 그리고 욕실에서 물 마시는 걸 워낙 좋아했지만 요즘은 더욱이 아침, 저녁으로 <욕실 바닥 물 핥아 먹기>가 노노의 루틴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나는 물때가 끼지 않게 더 자주 청소를 한다. 하여튼 이제는 내가 <억지로 끌어안고 뽀뽀하면서 안 놔주기>만 안 한다면 최고의 집사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또 그게 요즘 들어 그다지 억지스럽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며칠 전 내 컨디션이 저조했던 날 노노는 내 머리맡에 누워 나를 쳐다보며 고로롱거렸다. 지금보다 많이 어렸을 때 한두 번 보이고는 처음 있는 모습이어서 놀랐고, 아픈 나를 살펴봐 주는 것 같다는 생각에 감격했다. 끌어안으면 또 바로 자리를 뜰 테니까 꾹 참고 조심스레 핸드폰을 찾아서 사진 몇 장만 찍고서 한참 같이 누워있었다. 그날부터 이 녀석이 나와 붙어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나에게 더 많이 말을 건다. 뭐랄까 우리는 이제야 정말 친구가 된 것 같고 가족이 된 것 같다. 조금 슬프고 너무나도 행복하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미야옹철씨가 고양이는 인간과 같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지지 않는다고 말해서 댓글에 귀여운 원성이 자자했다. 당신이 뭘 알아요! 우리 고양이는 나를 사랑한다고요! 나도 그 영상을 다 보고 무슨 말인지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왠지 상처 입은 채 같은 뉘앙스의 댓글을 썼다가 그냥 지웠었다. 근데 역시 미야옹철씨는 모르고 하는 소리다. 노노는 나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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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무렵이 되었는데,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다가오려는 게 느껴지는데도 예전만큼 기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올 겨울의 무지막지한 추위와 폭설 때문에 더 그럴 수도 있겠다. 신발이 다 젖을까, 미끄러져 넘어질까 종종걸음을 걷는 날들이 지겨워서, 되려 어서 따뜻한 날씨에 눈이 다 녹아서 바깥을 마구 뛰어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번 생일 만의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최근에 생일전증후군(?)을 겪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참 전에 나는 '왜 생일 무렵만 되면 가라앉는가'에 대해 썼던 적이 있었다. 늘 그렇듯 의식의 흐름 대로 타자를 치다 보니 스스로 확인한 그 이유는, 나이를 먹는 데 대한 막연한 두려움, 그리고 꽤 많은 사람들이 봄에 앓는다고 하는 경도의 계절성 우울증으로 추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 말인 즉슨, 며칠 뒤 서른세살이 되는 지금의 나는 예전만큼 나이듦이 두렵지 않고, 봄의 따뜻함과 생동감에 대비되어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질 정도의 마음 상태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되나? 그런 것 같다. 그렇다. 나는 이제 괜찮다. 많은 것들이 괜찮아졌다. 크고 작은 것들이 많이도 변한 나지만, 생일을 맞아 특히 축하해주고 싶은 변화가 있다. 예전보다 훨씬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두터워졌고 나라는 존재를 수용하고 인정할 줄 알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여전히 많이 슬프고 자주 불안하지만, 슬픔과 불안을 다루고 다스리는 법을 조금씩은 알아가고 있다. 이렇게 한 살 한 살 먹다 보니 나를 알고 나와 친해지는구나 생각하면 생일은 축하할 일이 맞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엉겨붙어 침전 중인 마음 상태가 아니라면 봄 날씨는 즐거운 게 맞다.
어제랑 오늘 쉬는 날이었는데 아무 일정이 없어서 혼자서 생일을 기념할 만한 무언가를 해볼까 생각했다. 그런데 가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없어서, 나를 기분 좋게 해줄 거라 생각되는 곳들에 돈을 보냈다. 한 군데는 작년 이맘때 구조한 아기 고양이를 입양해준 곳, 또 하나는 학생 시절에 가끔씩 가다가 10년 전을 마지막으로 발을 끊은 보호소. 학생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보니 보호소의 위치가 아주 멀다고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검색해보니 지금 사는 곳과는 고작 차로 25분 거리였다. 세상에. 그래서 기부할 만한 물건들을 싸들고 바로 가봤다. 아쉽게도 오늘은 봉사를 할 수 없는 날이었다. 그래도 이리 가깝다는 걸 알았으니 다음부턴 미리 연락하고 오겠다 인사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돈을 썼는데 손에 잡히는 물건도 기억도 없어서인가 생각보다 기분이 썩 좋아지진 않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뭔지 알고 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걸 즐거워하는 나의 성향을 이제 잘 아니까 새롭게 해본 건데... 아직도 나는 나와 더 많이 친해져야 할 것 같다.
굉장한 감기에 걸렸었다. 코로나에 걸렸을 때 만큼 목구멍이 아팠는데 죽도록 아픈 기간이 코로나 때보다 세네배 길었다. 코로나는 격리를 할 수 있어서 집에서 쉬기라도 했지 이번엔 약을 먹으면서 계속 일을 해야 했���서 매우 힘들었다. 처음 지어온 약이 안 들어서 증상이 계속 심해지다가 다시 병원에 가서 강한 소염제와 진통제를 처방 받았고 그날 밤부터 통증이 씻은 듯이 내려가는데... 새로운 삶을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아직 그 여운이 남아있다. 감기에 잘 안 걸리는 체질이라서 감기가 걸린 자체가 나에겐 특수한 일인데, 이렇게 다시 태어난 기분까지 선물하다니 고놈 참... 이번 유행병은 주변인이 모조리 걸리는 것부터 그들의 증상 정도도 심상찮더라니... 나에게도 정말 굉장하고 굉장한 놈이었다. 앞으로 지구 상의 바이러스는 계속해서 이렇게 굉장해지겠지. 두렵다.
새해 다짐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매일 저녁 노노랑 사냥놀이하는 시간을 꼭 가진다. 작년 연말부터 감기와 과로로 많이 아팠던 날 하루만 빼고 우리 고양이와의 루틴을 꼭 지켜왔다. 튼튼한 고양이 만들어야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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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연말
날이 퍽 추워진 뒤부터였나. 시험 공부를 하는 동안 등산이 정말 가고 싶었다. 등산이 가고 싶기도 하지만, 꼭 가야만 할 것 같은 느낌도 컸다. 그리고 산 중턱이나 정상 가까이에는 꼭 절이 있으면 했다. 오르고 오르다 겨울산의 찬 공기에 얼굴이 벌겋게 식어버리고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 채 도착하면, 풍경 소리 또는 불경 외는 소리를 들으며 숨을 고르고 땀을 식히고.. 가능하다면 소원을 적은 초 하나를 절 안에 올려놓고 싶었다. 그 장면을 그리며 어떤 소원이 나에게 간절한가 골라보곤 했다.
시험을 치르고 나니 확실히 자유시간이 많아졌다. 친구한테 이 얘기를 하니 자기가 새해마다 올라가는 곳이 그리 좋다며 당장 가자고 했다. 조금만 오르면 금방 절에 도착하고, 절 앞으로는 대청호가 펼쳐져 있어 장관이라고 했다. 그래서 어제 다녀왔다. 주차장부터 현암사까지의 거리는 예상보다도 더 짧았고, 알고 보니 거기서 봉우리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없어서 더 오를 수 없었다. 몇 년만의 등산, 오랫동안 뒷전으로 미뤄두었던 운동, 체력 관리란 것을 시작해보겠다며 각오와 채비를 했던 데 비해 너무 싱겁게 끝이 났다.
어쨌거나 그 위에서 본 풍경은 정말 좋았다. 내가 그렸었던 대로 하늘이 파랬고 공기는 맑고 차가웠다. 스님은 홀로 불상 앞에 앉아 목탁을 치며 기도를 하고 계셨고, 우리를 빼면 두어명의 방문자가 있었다. 절을 등지면 보이는 산세와 그 사이 굽이굽이 흐르는 물은 한참 바라보고 싶은 풍경이었다. 사찰의 벽면들에 작은 소원초들이 줄을 이루어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나는 왠지 초를 올리지 않았다. 방법을 모르기도 하고 아직 소원 한 가지를 고르지 못해서 망설였던 것 같다. 내려와서는 친구 집에 가서 친구의 강아지를 보고 점심을 먹고 친구의 책을 한 권 빌렸고 커피를 마셨고 해가 지기 전에 헤어졌다.

별 것 없었던 하루, 그 중에서도 싱거웠던 몇 시간의 일을 이렇게나 자세히도 쓰고 있다. 역시 자유시간이 많아졌다. 이런 시간을 기다렸다. 통과하기 어렵지도 않은 시험 하나지만 괜히 열심히 하고 싶었고, 열심히 한 뒤여야만 느껴지는 이 허전함과 여유를 한껏 느끼고 싶었다. 이렇게 올해의 남은 날들을 보낼까 했다. 사다 놓고 읽지 못했던 책들을 들춰보고, 몇 장 읽다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귤이나 까먹기도 하고, 어떤 날은 친구들과 연말을 핑계로 모여 술 한 잔 놓고 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싱겁지 않게 등산을 다녀와서 뿌듯함에 일기도 쓰고 말이다.
쉬지 않고 중대한 뉴스들이 쏟아지며 불안과 분노에 수시로 휩싸이는 요즘이지만, 그래서 나의 소원이 너무 작고 쓸모없고 이기적으로 느껴지지만, 지키고 싶다. 나의 작은 평화를, 작은 소원을, 작은 자유를. 이 소박한 자유시간이 수많은 사람들의 절박한 투쟁으로 지켜질 수 있었던 거라는 걸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아무래도 지금은 산속의 절보다는 길거리에서 소원초를 켜야 할 땐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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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시험이다. 당락에 상관없이 나에게 어떠한 것들이 남았으면 좋겠다. 이 학문을 처음 접한 순간 매료되어서 일년 간의 공부가 줄곧 즐거웠다. 질병과 환자를 대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알게 되어 유용하고 신기했고, 또한 그것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서부터 시작하는 학문이라는 점이 나를 무척 고양시켰다. 과정을 즐겼으니 혹여 시험을 망치더라도 내가 실망감 보단 이 약간의 뿌듯함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연결과 균형. 이 학문을 정의한다고 할 수 있는 이 두 단어가 나의 근간에 남았으면 싶다. 이를테면 시험에 대한 부담, 병원에 대한 걱정,, 따위에 나의 정신이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찾을 줄 알았으면. 무언가에 지배당하는 기분이 들 땐 과감히도 멀리 떨어져 커다란 것을 바라볼 줄 알았으면. 그렇게 이 세상에서 아주 작고 또 아주 큰 나의 존재감을 느낄 줄 알았으면...
Xie 교수님은 공부할 내용이 너무 많아 막막하거나 내가 이걸 과연 할 수 있나 두려울 때, 그냥 잠깐 멈추고 크게 숨을 내쉬고 생각을 비운 뒤 다시 눈 앞에 놓인 것을 따라가라고 몇 번이나 말하셨다. 그리고 그 말대로 시간을 지나오니 내가 공부한 것들이 벌써 여러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 묵묵한 걸음을 멈추지 말 것.. 가장 깊게 남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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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전보다 조금 마른 얼굴이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낸다. 다시 잘 먹고 내가 먹는 음식을 넘보고 놀아달라 낚싯대를 물어오고 만져달라 내 옆을 기웃거리고 내가 물 마시고 있으면 자기도 달라고 야옹하고(특히 애정하는 순간) 벅벅 스크래처를 긁고.. 저녁마다 약 먹느라 언니가 잘 안 주던 츄르까지 왕창 주니 아마 기분이 더 좋을 수도 있겠다. 하나 달라진 점은 내 다리 사이에 자리 잡고 잔다는 건데, 떨어져있던 중에 나에 대한 애착이 더 커진 걸까, 아님 그냥 쌀쌀해진 온도 때문이려나.. 나는 이 녀석이 더 애틋해졌기 때문에 이 불편한 자세가 정말 좋다. 일주일을 입원했고 그보다 더 오래 아팠던 녀석을, 나는 아직 한참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역시 아무 일도 없이 산다는 건 그 자체가 굉장한 일임을 다시 한 번 느낀다. 내 앞에서 저 아무 일도 모른다는 듯 알짱대며 골골송을 부르는 녀석에게 바쁘단 이유로 조금이라도 무심해지지 않기 위해, 우리 둘의 무사와 안녕을 위해 계속 힘을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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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가을의 시작이다. 자격증 인턴쉽 과정을 세 번 다녀왔고, 오랜만에 친구들과의 만남도 여럿 가졌고, 일 년만에 고래와정민의 공연도 있었다. 그러고도 다음주에 인턴쉽과 학회 때문에 두 번을 더 서울에 다녀와야 한다. 그날들 또한 빼곡히 쓰고 싶어 저녁에는 그 근처에 사는 친구와 밥을 먹고 내려오기로 했다. 전부 서울에서의 일정인데, 우리집에서 서울을 오가려면 막히지 않는 시간일 땐 한 시간 반이 걸리고 보통은 두 시간도 훌쩍 넘게 운전을 해야한다.
시험이 코앞인 자격증 공부도 괜히 집에서 멀리 떨어진 카페까지 가서 하기도 한다. 가을의 분위기를 좀 더 느낄 수 있는 곳이라는 이유에서다. 차 안에서나 길을 걸으며 듣는 플레이리스트는 신중히 고른다. 같은 이유다. 내 평소의 생활 패턴과 체력을 생각하면 지금 시월의 일정은 스스로 놀라울 정도다. 대부분 달가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알뜰하게 사용하고 싶은 날들이다.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게 아깝도록 맑고 선선한 하늘들이다. 지난 여름은 무척이나 길었어서 아직도 지금의 공기가 새삼스럽다. 그리고 또 다가올 겨울은 무척이나 매서울 거라 하니 이 가을은 참으로 달갑고 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가을을 우리 고양이랑도 같이 만끽해야 하는데.. 가을의 시작과 함께 노노가 아프다. 노노는 이동가방에 들어가면 쉬지 않고 울어대는데 그 목소리가 다 쉬어버렸다. 홀쭉해진 노노를 병원에 데려가서 검사하고 입원시키고, 이것저것 맛있는 걸 조금씩이라도 먹이고, 조금만 고생하고 얼른 이겨내자고 얘기했다. 노노는 아픈 처치를 ���고 나서 기분이 나빴다가도, 내가 잠시 만져주면 금방 기분이 풀려서 나에게 대답한다. 그렇게 두번째 입원을 시키고 돌아온 어젯밤엔 한 숨도 깊게 잠들지 못해서 오늘 계속 머리가 아프고 속이 불편했다.
그런데 나는 오늘밤은 조금만 미안해하고 걱정하지도 않고 편히 자고 일어나기로 했다. 아직은 많이 남은 듯한 이 귀한 가을을 핑계 삼아 기운을 내기로 했다. 얼른 이겨내고서 가을이고 겨울이고 즐겁게 지내자고 이야기했다. 우리 둘이 같이. 노노는 지금 열심히 낫고 있고 나도 이 밤에 푹 자고 나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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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무언가가 되기 위해 열심히 하고 있다. 내가 가진 것들을 전부 쏟아내고 있는 것만 같다. 잘 해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걸까 수시로 두렵다. 타워 카드의 이미지처럼 번개에 맞은 듯 오랜 타워가 별안간 무너졌고 새로운 내가 지어지고 있다. 정말로 좋은 무언가가 되고 싶다. 그런데 그 무언가란 무언가. 불타던 여름이 꺼졌다. 하늘이 높아지니 마음도 높아지나. 마침내 마음에도 나를 내려다 볼 여유가 슬며시 들어찬다. 어떤 타워를 세워야 할까.
작년 8월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여러가지 힘든 일을 지나면서 정신력이 고갈되어 퇴사를 하려 했었다. 그런데 원장님의 회유로 퇴사 대신 근무지를 바꾸어 일하게 되었고, 진료와 업무 강도가 낮아지면서 상태가 금방 나아졌다. 기운을 되찾고 일하다 보니 문득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원장님께 제안을 했는데... 참, 그게 이렇게까지 되어버린 거다. 당시엔 머릿속 작은 아이디어 한 개일 뿐이었는데, 수레바퀴를 굴러가게 만들었다. 나를 포함한 여러 사람의 앞날을 실은 수레의 바퀴를 서서히...
그렇게 처음으로 은행에서 적지 않은 돈을 빌려 이 병원의 원장 중 한 명이 되었고, 겪어보지 못 했던 종류의 부담감을 온몸으로 겪고 있다. 사실 그 무언가를 쉽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좋은 원장,이 되고 싶다. 그런데 이 직함 하나에 딸려오는 역할과 과제들이 많아서 하나하나 배우고 해치워가다 보면 좋은 방향에 대해 충분히 고민할 여력이 없다. 겨우 숨 돌릴 틈이 생기면, 나는 부족했던 것들을 자책하고 다가오는 것들을 불안해 하기 급급하다. 이렇게 일 년 가까이 시간을 보내고 나니, 좋은 원장이 무언지 잘은 몰라도 어쨌든 지금 이대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천둥처럼 묵직하게 울린다.
좋은 수의사, 좋은 동료, 좋은 집사, 좋은 사람... 이렇게 좋은 마음들을 가지면 좋은 원장이 되는 거였음 좋겠다. 그런 거면 원래의 내 모습대로라도 조금은 할만 할 것 같은데.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그에 맞게 몸집을 키워가는 일은 예상했던 대로 쉽지 않다. 아무래도 좋은 원장이 되려면 우선 병원이 잘 되어야 할 것이다. 잘 되려면 많은 이들이 병원을 찾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먼저 찾았던 이들(동물, 보호자, 직원들..)이 만족한 채 나서야 하고... 이런 과정에는 내 손이 미처 닿지 못하는 지점이 무수히 많고, 나 혼자의 마음과 노력만으로 낼 수 있는 결과는 실상 없다. 그럼에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 불안해 하지 않고 스스로와 타자를 믿을 수 있는 여유로움이 필요하다.
근무가 주 4일로 줄었고 돈도 예전보다 많이 버는데 여유가 없었다. 머릿속이 계속 바빴고 마음이 점점 말랐다. 책을 보아도 집중을 잘 하지 못하고, 친구들과의 약속을 미뤘다. 부모님과 지내던 우리 고양이라도 다시 이 집에 데려왔기에 망정이지, 그대로 쭉 지냈다면 벌써 많이 지치고 외로워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계절의 변화, 좋아하는 영화, 비슷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친구, 그 허심탄회한 대화 몇 분이 조금씩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근래 만났던 그것들이 주는 메시지 덕분에 나는 이제라도 잠시 불안을 불러 세우고 가만히 문장을 치며, 지금껏 가쁘게 겪어온 과도기를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진다.
어떤 나를 지어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뭐든 간에 가장 먼저 세워야 할 것은 알겠다. 앞으로도 새로운 역할과 과제를 수없이 마주칠 것이다. 지금까지 해내야 하는 일을 해냈을 때를 기억하자. 그리고 다가올 그런 순간에는 충분히 축하하자. 불안해만 하기엔 내가 잘 한 일들도 아주 많다는 걸 기억하자. 그것들을 차곡차곡 모으면 견고한 주춧돌을 빚을 수 있을 것이다. 그걸로 나를 지지하자. 그 위에서라면 나는 쉽게 흔들리지 않을 테고, 언젠가는 다른 불안들도 넉넉하게 품어줄 수 있는 꽤 멋진 무언가가 될지도 모른다.
몇 년 전 일을 잠시 쉬고 있었던 때, 나는 여유를 의식적으로 느끼고 싶어서 선풍기 바람으로 머리를 말리곤 했다. 드라이기의 뜨겁고 요란한 바람으로 신속하게 머리를 말리고 싶지 않았다. 선풍기를 앞에 두고 몇 분이고 미풍을 쐬며 방바닥에 앉아있으면 학창 시절의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정말 여유라는 것이 물리적으로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며칠 전, 드라이기가 고장이 났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선풍기 바람으로 천천히 머리를 말리면서 나는 머리카락의 물기가 증발되는 감각에만 잠시 집중했다. 그 몇 분이 나에게 잊고 있던 여유의 감각을 불러왔나 보다. 다음날 바로 강력한 바람이 나오는 비싼 드라이기를 새로 사왔지만, 아직 나는 선풍기 앞에 앉는다. 의식적으로 머리를 식힌다. 사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여유로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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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새해엔 다정한 이들과 종종 어울리시며 정 많이 주고받으셔요.
눈보라 치는 밤에 이리도 따뜻한 메세지를 읽게 됐네요. 고맙습니다. 질문자님도 저에게 말해주신 대로 다정한 날들을 보내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궂은 날씨에도 따뜻한 한 구석을 꼭 지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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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긍정적인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싶다. 오늘의 일기가 긍정적이었으면 좋겠다. 근래 며칠 나에게 여러가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반가운 일이다.
꽤나 오래, 꽤나 많이 슬펐었다. 슬픔이 커지기 시작하면 그 지배력이 얼마큼이나 거대해지는지 알 수 있었다.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활동을 제외하면 온통 슬퍼하는 일 밖에 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마치 매일 정해진 양의 눈물을 쏟아내지 않고는 질식해버리는 사람처럼 울어댔다. 어쩔 땐 울고 나면 답답했던 숨이 정말 편해지기도 했다.
도대체 언제 나아지냐며 답을 알 수 없는 물음을 내뱉으며 가슴을 퍽퍽 치던 게 겨우 며칠 전인데, 어느 시점엔가 불쑥, 숨구멍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조금씩 일어나고 있었던 변화일 테지만, 나는 당황스럽고 그래서 조심스럽기도 하다. 어쨌든 그래도 숨이 쉬어지니 나는 여기저기 걷고, 이것저것 가꾸고, 하루하루를 계획한다. 재난이 지나가고 난 자리에는 할 일이 많다.
이제 정말 긍정적인 일기답게 오늘 한 일을 적어봐야겠다. 밸런스보드 위에서 스쿼트를 도전했다. 한 개라도 성공하려면 멀었지만, 아침밥 먹고 운동하기는 가장 마음에 드는 변화다. 아비시니아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카페인데 몇 달 만에 간 건지 모르겠다. 약이 떨어져서 맡겼던 시계를 찾아왔다. 병원에서 신는 크록스를 빨았다. 아마도 일을 시작하고 세 번째인가... 세차하고 기름칠도 한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 돌았다. 오늘은 기온이 높지만 바람은 선선했다. 아, 텀블러 이름, 사진 바꾸고 배경 색깔도 바꿨네. 밝은 톤이다.
이런 무의미한 하루하루가 쌓여서 나는 다시 가벼워지고 싶다. 울음은 언젠가는 완전히 그칠 것이다. 기억에, 사람에, 생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 무거워지지 말자.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최선의 긍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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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서 글쓰기를 멈추시면 저 포함 많은 이들이 아쉬워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 참 감사합니다.
그간엔 여러모로 일기 쓸 여유가 없었네요. 글자로 풀어놓고 눈으로 재차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마음들이기도 하고요..
일기를 쓴다는 건 자기를 빗기고 씻기는 행위인 것 같아요. 저도 스스로를 다시 아껴주고 싶은 때가 다시 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 잘 씻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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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이를 낫게 해주고 싶다. 크고 듬직한 얼굴에, 상냥하진 않지만 묘한 매력이 있는 아델이. 오늘 병원에 오는 길엔 차창 밖에 내리는 눈을 구경했다지. 귀여운 녀석.. 그리고 아델이를 대신해서 상냥한 보호자들. 아델이와 보호자들 모두 행복한 연말을 보내게 해주고 싶다. 내가 언떻게 해야 가장 이로울까. 나의 최선만으로 안되는 일이 있는 건데, 그 사실이 왠지 여느 때보다 슬프다. 여튼 아델아,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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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보는 '연애생존율'이라는 블로그가 있다. 그 저자 메이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 사람은 나에게 말을 걸어주고 있다고 여기고 있던 존재였다. 그녀는 늘 같은 주제에 대한 글을 썼다.
'시작이란 건 끝의 시작. 만남은 항상 이별을 내재하고 있고, 연애는 파티처럼 언젠가는 끝난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이들은 좋아하는 것을 가져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수다를 떨면서 그 애달픔을 즐길 수밖에 없다.'
그런 글을 쓴 메이 씨가 '지금 사랑을 하고 있다. 이 사랑을 하룻밤 파티로 끝낼 마음은 없다.' ...라고 쓴 게 1년 전이다.
'생존율이 몇 퍼센트에 그치는 연애 속에서 나는 살아남을 것이다.' 마치 농담처럼 이런 글을 쓴 메이 씨가 죽었다.
메이 씨는 사랑의 죽음을 본 걸까? 사랑의 종말과 함께 삶을 끝내기로 한 걸까? 다 내 상상일 뿐이고 거기에 내 사랑을 겹쳐 생각하진 않을 거다. 다만 우리들의 파티는 지금 가장 좋은 분위기 속에서 시작됐을 뿐이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를 보고 있다. 대사를 옮겨 적지 않을 수 없다. 일기에 여러 번 썼듯이, 나는 가끔 이렇게 정체를 알 수 없는... 뭐랄까 '구원에의 끌림'을 겪는다. 견디기 어렵게 괴로울 때, 나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막막함에 가슴만 치고 있을 때, 어디서든 나를 살리는 문장을 발견한다. 이번에도 그저 왠지 영화가 보고 싶은 날이었고 스크롤을 내리다가 눈에 닿아서 별 생각없이 틀었는데, 나를 관통하는 문장을 만났다.
그에게 얼마 전 기념일 선물로 받은 꽃다발이 시들어가고 있다. 시들지 않게 하는 방법을 찾아서 화병을 사고 물을 매일 갈고 이파리와 줄기를 정돈했다. 그럼에도 매일 한 송이씩 시들어가는 것들을 화병에서 꺼내어 쓰레기통에 버린다. 다 꽃일 뿐이고 거기에 그의 사랑을 겹쳐 생각하진 않을 거다.
하지만, 이 사랑을 영원히 지킬 거라던 나의 결심은 얼마나 힘이 있나. 시작은 곧 끝의 시작, 만남은 곧 이별과의 만남. 이 불가항력을 내가 과연 이길 수 있나... 이렇게 금방 자신 없어질 거면서, 나는 또 나의 빈약한 의지력을 까먹고 과분한 사랑을 다짐했었다.
"고결한 사랑을 하겠다! 기대와 요구가 없는, 오로지 주는 마음과 존중과 응원 만으로 이루어진 사랑을 나는 하고 말겠다!" 거창하게 외치던 소리들이 점점 들리지 않는다. 지금 나의 머릿속을 지배해버린 소리들은 무엇인가. 온통 구걸, 실망, 미움, 회한이 아우성이다. 애틋해 마지않던 그의 성실하고 이타적인 마음씨를 이젠 원망한다. 나보다 우선하는 인간관계를 질투하고, 연락 한 통 한 통에 전전긍긍한다. 그의 식어가는 온도를 느끼며 좌절과 자기연민의 구덩이로 하루에도 몇 번씩 떨어진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기에 나는 감출 수 없이 망가졌다. 그러니 자존심을 버리고 솔직하게 나의 지옥을 보여주고 조금만 도와달라 부탁해도, 그는 방법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너의 사랑에 상관없이 나의 사랑을 하는 것. 영원한 사랑을 위해서 내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다. 나는 기계가 아니기에, 연료가 없어도 이대로 나의 사랑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아니면 나는 기계가 아니니까, 이대로 혼자 나를 태우다가 재가 되어 종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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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낸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 사람의 말 한 마디 한 마디, 걸었던 풍경 한 장 한 장을 되새길 수 없게 되었다. 잊히는 시간들이 몹시 아쉽다. 아쉬움에 몸 둘 바를 모르다 결국 데이트한 날마다 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이게 마음의 위안은 주지만 올바른 방향이 아닐 거라는 짐작은 스스로도 한다. 단편적인 기억들이 아니라 둘 만의 역사랄지, 도시랄지, 지속적인 무언갈 만들어가고 있다고 받아들여야 이 혼란이 걷힐 것이다.
사랑에 빠진 나를 이해하기 위해 몇 권의 책을 읽고 몇 컵의 눈물을 흘리고 많은 밤들을 새웠다. 사랑을 단순하고 한시적인 작용 내지 현상으로 치부하던 나와, 지금 누구보다 심오하고 헌신적으로 이 관계에 임하는 내가 충돌했기 때문일 테다. 그 분열을 견디기 어려워, 겨우 깊이 잠든 몇몇 밤에는 꿈에서조차 온통 괴롭다. 무언가 폭발하거나 무너지면서 도망치는 일이 가장 흔하고, 풀지 못하는 시험지 앞에 앉아있는 교실도 이젠 놀랍지 않은 전형이다. 어젯밤의 나는 바다 한가운데 서있는, 높고 흔들리는 사다리 위에서 괴로워했다. 공통된 내용은 내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꿈을 기억하고 상징을 읽을 줄 안다는 것. 그 자체로도 곧 고통에서 벗어날 준비가 되었으며, 일부는 이미 치유되고 있다는 뜻이라던데. 나는 구태여 위태로운 장면에 날 몰아넣지 않아도, 꿈 해석 문제를 풀지 않아도 처음부터 내 고통의 이유를 알고 있단 말이다.
나도 언젠가 해결이 될까. 나의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생활의 작은 일부로서 '연애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립에 관여되었다... 그동안 알고 있던 '나'는 무너지고 새로 알아가고 세우는 중이다. 그 사람 생각만으로도 감정의 양극단을 오가다가, 혼자 지쳐 침대에 누운 새벽엔 '불안정한 사람은 사랑도 파국이구나' 여기며 내가 밉다가 불쌍하다가, '이런 나를 전부 알면 그 사람이 도망치겠지' 하며 두렵고 고맙고... (쓰고보니 완전 그거네. 나는요 완전히 붕괴...)
이런 나를 견디지 못하고, 끝내 내가 나의 볼품없는 모습을 모조리 드러내고 관계를 망치고 나를 망치고 말 것이라는 비관과 나는 매일 싸운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우선 '기억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모든 기억을 붙잡아두어 그 사람을 붙잡아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와의 즐거웠던 순간, 그가 했던 따뜻하고 예쁜 말을 계속해서 복기한다고 하여 그로 인해 내 마음이 예뻐지는 것도 아니고, 그의 마음이 계속해서 따뜻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가 나와의 만남을 시작할지 고민할 때 했던 말이 기억난다. 사귄다면 절대 헤어지면 안되기 때문에 갈등이 다분히 생길 수 있는 장거리 연애가 망설여진다고. 나는 '절대 헤어지면 안되기 때문에' 라는 말이 의아했다. 감정을 충분히 서로 주고받고, 감정이 완료되면 좋은 기억을 남기고 헤어지면 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오만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주제에... 나는 그래서 이렇게 호되게 깨달음을 얻고 있나. 그가 스스로를 절대 헤어지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해도, 나는 파괴적인 충동과 싸우느라 매일이 기진맥진하다. 좋았던 순간의 기억들에 의존하지 않고, 그저 우리의 도시 안에서 건강하게 제 빛을 내며 살고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봐도 쉽지 않다.
결국 또 기억을 떠올린다. 함께 보낸 지난 주말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날, 그가 퇴근하고 통화를 하는데 우리가 같이 있던 시간이 꿈같이 느껴진다고 한다. 세상에 있을 수 없는 행복을 느꼈던 것 같아서 아득했다던가... 내가 그 얘길 듣고 울먹거리니까 슬픈 의미가 아니라고도 했다. '이 사람을 영원히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반사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늘 열심히 싸워서 이겨낼 것이다. 이 사랑을 지킬 것이다. 정말이지 사랑은 지켜내는 것이고, 헤어지지 않을 결심이다.
꿈들의 공통점이 더 있다. 꿈의 주체는 늘 나라는 것. 결코 제3자나 전지적 시점에서 바라보는 일은 없었다. 또 통제력을 잃었어도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던 적은 없었고 언제나, 결국 장면은 전환되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울지 않으며, 깊이 잘 자는 날이 다시 생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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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놈들.. 너네는 사랑을 몰라도 돼. 애착에 불과해도 괜찮아. 너희 둘과 나는 불가분의 것이란다. 내게서 가장 살아있는 것을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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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부양 굿즈에 돈 펑펑 써버리고 바로 모자랑 티셔츠 입어버리기>
장기하는 기인이고 도인이고(?) 예술인이고 희극인 같았다. 90분 간의 공연 중 받은 느낌을 아마 영감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아침까지 아팠던 유빈, 아침부터 결혼식과 아울렛과 한남동의 가파른 언덕을 불편한 신발 신고 바삐 걸어다니느라 발이 다 까질 것 같았던 나. 그런데도 피곤한 줄 모르고 공연이 끝나고도 새벽 네시까지 마시고 떠들고 청계천을 걸었다. 커다란 태풍의 테두리 안은 고요했고 반달이 휘영청했지만, 뿌연 습기가 어둠과 함께 깔려있어 묘한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 고등학교 시절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화수분 같이 머릿속에서 입 밖으로 계속 흘러나왔다. 또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두서없이 강가에 늘어놓으며, 처음 보는 풍경과 밤과 새벽 안에서 걸었던 시간이 왠지 현실 같지 않았다. 유빈은 전날 아침에 일기에다가, 나와의 <애정에 기반한 적당한 거리감>, 그러니까 계산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편하고 무해하고 안정적인 이 감각을 잘 기억했다가 다른 인간관계에서도 활용해야겠다고 다짐하는 말을 썼다고 했다. 이게 나 말고 누구랑 될 것 같니, 나는 우쭐거렸다. 하하. 니체는 이래서 사랑의 최고 단계를 우정이라고 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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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초입, 갑작스레 아프기 시작해서 일을 그만두었고 건강해지기 위한 시간을 보내기로 했었다. 두 달이 더 넘은 지금, 여전히 팔이 조금씩 불편하지만 가끔씩 완벽하게 나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날도 생겼다. 운동을 꾸준히 했더니 피부 아래로 만져지는 근육들이 생겨서 신기하고, 매일 천천히 요리를 해서 천천히 먹는, 다 먹으면 곧바로 설거지 하는 스스로가 놀랍다. 퍽하면 날아오던 속도 위반 고지서에서도 해방되었다. 급한 일이 없어도 운전에 집중하지 못 하고 딴 생각하다가 제한속도를 조금씩 어기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지금은 마냥 천천히 달린다. 물론 핸들 잡는 게 팔이 아프니 대중교통을 더 자주 이용하게 된 덕분이기도 하다. 소비를 할 때 백 원 단위까지 비교한다. 언제부터인가 물건을 고를 때 가격을 보지 않고, 시간을 아낄 수 있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면 과감한 소비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면서 작은 돈을 점점 우습게 생각하게 되었었다. 지금은 수입이 없는 백수이므로 시간을 들여서 돈을 아끼고, 작은 돈도 소중히 하고, 그런 내 모습도 왠지 소중하다.(?) 자주 청소해서 집안이 항상 깨끗하다. 어느 자리에서도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 오랜 친구들을 오래, 많이 만났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됐다. 그리고 여름이 싫지 않아졌다.
이 많은 변화들을 결국 한 마디로 하자면, 여유가 생겼다는 거다. 여유가 생겨보니 이전의 내가 여유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돈을 벌기 위해 나는 귀한 것들을 얼마나 많이 잊어버리고 잃어버렸던 걸까. 물론 돈이 주는 기쁨, 일을 하면서 얻는 기쁨이 있지만. 그런 것들은 어찌 그리 쉽게 다른 것들을 집어 삼키는 걸까... 가을이 왔다. 돈과 바꾸지 않아도 되는 두 번째 계절이다. 이제는 가을이 주는 것들을 만끽할 차례다. 높은 하늘, 쌀쌀한 바람, 제철음식, 사무친 인간들의 노래, 풍경의 변화무쌍함, 허무함, 그 모든 것들을... 나의 통장잔고를 아끼고, 몸과 마음을 아끼고, 시간은 펑펑 쓰고, 여유도 펑펑 부리며, 이 계절에도 사랑할 것이다. 펑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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