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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이다원은 성시경 노래를 좋아하고 나는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태양계' 는 좋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스케치북에 나온 강승원님의 '나는 지금' 을 듣는데 이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좋음을 좋다고 느낄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40년간 준비중이라는 1집. 꼭 기다리겠습니다🙇🏼#강승원#성시경#나는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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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작년에는 이 노래를 가장 많이 들었다. 그리고 이 노래를 가장 많이 들었던 작년 4월 1일에 이렇게 썼다. _ “이전까지 내가 쓴 책들은 다양한 신경질환 또는 ‘결손’ 에 (때로는 독창적으로) 적응하여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환자들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템플을 비롯하여 내가 『화성의 인류학자』 (1995; 바다출판사,2015) 에서 다룬 사람들에게는 ‘질환’ 이 그들 삶의 근본 조건이었으며, 그것이 독창성이나 창조성의 원천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 책에 “일곱 명의 기묘한 환자들” 이라는 부제를 붙인 것은 그 주인공들 모두가 장���를 받아들일 비범한 방법을 발견했거나 창조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 일곱 환자에게는 저마다 장애를 보완하는 각장의 재능이 있었다.” -올리버 색스, 『 온 더 무브 』 카뮈와 데이비드 실즈에서 벗어나, 요즘은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미국의 신경정신과 전문의 올리버 색스에 흠뻑 빠져있다. 공황증세로 힘들었던 짧은 대학원 생활의 유일한 낙은 밤 늦게 들어와 그의 자서전 몇줄을 읽는 것이었다. 자서전에는 신경정신과 환자들에 대한 그의 따뜻한 시선이 묻어나 있는데, 많고 많은 대목들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그가 평생을 정신과 상담을 받았던 것 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 때부터 재능을 확신하지 못하여 인정에 목말라하는 모습을 묘사한 대목이었다. 감히 나를 올리버 색스와 같은 존경스러운 의사이자 작가와 동일시 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낯 부끄러운 일이다. 내게는 그와 같은 글쓰기 재능도 없고, 그와 같은 한결같았던 생물학에 대한 열정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그러나 그와 닮고 싶다. 그가 소외된 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그가 속한 집단의 중심에서 항상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슷하게나마 어느 집단에서 속하지 못한체 벗어나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언젠가 따뜻한 시선이 담겨질 수 있는 풍성한 시간의 기원이 되기를 작게나마 소망하고있다. 2016년 4월 1일. 그의 자서전 제목처럼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노리플라이#주변인#올리버색스#온더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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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종교도 없고 신을 믿지 않는데 가끔 종교가 있는 사람이 부러울 때가 있다. 세상이 이 음악처럼 따뜻하고 아름답다면 나도 신을 믿었을 텐데. 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 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다. 곧 크리스마스인데 나는 신 대신에 전쟁을 상상한다. 전쟁은 있다. 신은 있을까. 곧 크리스마스인데 나는 전쟁을 상상한다. 신이 있다면 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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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마지막 단편의 마지막 줄에 가닿자 소스라쳐서 책을 던져버렸다. 소중한 사람에게 명치를 얻어 맞은 기분이 이럴까. 이 책은 폭력인가. 폭력이 뭔가. 정의定義할 수 있나. 근데 정의定義는 폭력인가. 정의正義는 있나. 근데 "있어", 폭력은. 여기에. #황정은#아무도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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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이렇게 앉아서 몇 번의 겨울을 더 맞게 될까. 몇 번의 봄과 몇 번의 여름을. 그녀는 생각했다. 죽은 뒤에도 실리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라는 것은 얼마나 난처한 상상인가. 얼마나 난처하고 허망한가. 허망하지만 얼마나 아��다운가. 그게 필요했다. 모든 것이 사라져다는 이때. 어둠을 수평선으로 나누는 불빛 같은 것, 저기 그게 있다는 지표 같은 것이. 그 아름다운 것이 필요했다. 그녀는 노트에 만년필을 대고 잉크가 흐르기를 기다렸다. 제목을 적고 쉼표를 그리고 이름을 적었다. 겨울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황정은,『아무도 아닌』 수록 단편 「명실」 중에서) 이 아름다운 작가의 글이 필요했고, 드디어 만났다. #황정은#아무도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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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당신이 우리 편이란 걸 압니다.」 백신 접종의 정치학에 관해서 토론하던 중, 어느 면역학자가 내게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는데, 그건 그저 그가 이야기하는 방식대로라면 양측 모두가 내게 불편하기 때문일 뿐 다른 이유는 없었다. 백신을 둘러싼 논쟁은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의 표현마따나 <심란한 이원론들>로 묘사되는 경향이 있다. 과학과 자연을, 공공과 개인을, 진실과 상상을, 자기와 타자를, 사고와 감정을, 남자와 여자를 대립시키는 이원론들이다. 가끔은 백신 접종을 둘러싼 갈등을 묘사할 때 어머니들과 의사들의 <전쟁>이라는 은유가 쓰이기도 한다. 은유를 쓰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교전하는 양측은 무지한 어머니들과 교육받은 의사들, 혹은 직관적인 어머니들과 지성적인 의사들, 혹은 염려하는 어머니들과 합리적인 의사들로 그려진다. 성차별적인 고정 관념들이 넘친다. 우리가 결국 자기 자신과 싸울 수 밖에 없는 전쟁을 상상하는 대신, 우리가 모두 비합리적 합리주의자인 세상을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이 세상에서, 우리는 자연과 기술에 둘 다 매여 있을 수밖에 없다. 해러웨이가 도발적인 페미니스트 선언서 「사이보그 매니페스토 」에서 주장했듯이, 우리는 모두 <사이보그, 잡종, 모자이크, 키메라>들이다. 해러웨이는 <사람들이 동물과 기계와의 공통된 혈연 관계를 두려워하지 않고, 영구적으로 불완전한 정체성들과 모순된 입장들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이보그 세상을 상상한다. 백신을 맞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이보그라고, 사이보그 학자 크리스 헤이블브 그레이는 말했다. 우리 몸은 이��� 질병에 반응하도록 프로그래밍되었고, 기술로 변형된 바이러스를 통해서 변모되었다. ... 기술은 우리를 확장하는 동시에 위험하게 만든다. 좋든 나쁘든 기술은 우리의 일부이고, 이 상황은 부자연스러운 것만큼이나 자연스럽다." (율라 비스,『면역에 관하여』)#율라비스#면역에관하여#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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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그의 이름은 특권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은 가능성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예의 진주한 옛이야기였다.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는 이야기을 바꿀 가능성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 속에는 우리 모두가 등장하며, 그 이야기는 너무나 중요하고, 우리는 이야기를 지켜볼 뿐만이 나니라 직접 써나가고 들려주기도 할 것이다. 앞으로 몇주, 몇달, 몇년, 몇십년에 걸쳐서."(리베카 솔닛,『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페카솔닛#남자들은자꾸나를가르치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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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나의 아들과 나, 우리는 이제 둘이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세상 모든 군대보다도 강하다. 나에게는 당신들에게 할애할 시간조차 없다. 낮잠에서 깨어난 멜빌에게 가 봐야 하기에. 그 아이는 이제 겨우 열일곱 달이 되었다. 아이는 언제나처럼 간식을 먹어야 하고, 그러고 나면 우리는 ���제나처럼 함께 놀 것이다. 이 어린 사내아이는 감히 평생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삶으로써 당신들에게 도전할 것이다. 어림없다. 당신들은 이 어린 아이에게서조차도 증오심을 가져갈 수 없을 것이다."(앙투안 레이리스, 『당신들은 나의 증오를 갖지 못할 것이다』) #앙투안레이리스#당신들은나의증오를갖지못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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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글쓰기연습삼아하나씩답해보려고합니다#언제다답하나#글쓰기좋은질문642#여러분도해보아요 “Q35. 요즘 사랑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 “Q106. 사람들이 내게 말해주지 않았던 것" (질문 발췌: 『글쓰기 좋은 질문 642』, 샌프란시코 작가집단 집필) A 모르는 것, 모르는 편이 나은 것, 알려줘도 무슨 말��지 모를 것, 알려줘도 곧 잊게 될 것. 그러니까 대부분 사랑에 대한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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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그래서 꿈은 죄였다. 아니, 그건 꿈도 아니었다. 영화 일이 꿈이었다면, 그래서 내가 꿈을 좇았다면 나는 적어도 어느 부분에서는 보람을 느끼고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감독이 되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나 자신도 설득할 수 없는 영화에 타인의 마음이 움직이기를 바라는 건 착각이었다.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이미 죽어버린 지 오래였다. 나는 그저 영화판에서 비중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시나리오를 썼지만, 이야기는 내 안에서부터 흐르지 않았고 그래서 작위적이었다. 쓰고 싶은 글이 있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써야 하기에 억지로 썼다. 꿈. 그것은 허영심, 공명심, 인정욕구, 복수심 같은 더러운 마음들을 뒤집어쓴 얼룩덜룩한 허울에 불과했다. 꼬인 혀로 영화 없이는 살 수 없어, 영화는 정말 절실해, 같은 말들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제대로 풀리지 않는 욕망의 비린내를 맡았다. 내 욕망이 그들보다 더 컸으면 컸지 결코 더 작지 않았지만 나는 마치 이 일이 절실하지 않은 것처럼 연기했다. 순결한 꿈은 오로지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이들의 것이었다.그리고 영광도 그들의 것이 되어야 마땅했다. 영화는, 예술은 범인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은 천천히 삶을 좀먹어간다. … 점점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을 때가 많았고, 엄마와 할아버지를 찾아기지도, 따로 전화하지도 않았다. 그나마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도 거리를 두면서 영화를 통해 인간 내면의 깊은 곳을 그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오만이 그 사람들을 얼마나 쓸쓸하게 했을지 당시의 나는 몰랐다.” (최은영, 『쇼코의 미소』) #최은영 #쇼코의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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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나라면 분명 사과하겠지.” “아이고, 이 친구야, 너도 사과쟁이 부대에 속한다는 거네. 사과로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그래, 그렇지.” “그런데 착각이야. 사과를 하는 건 자기 잘못이라고 밝히는 거라고. 그리고 자기 잘못이라고 밝힌다는 건 상대방이 너한테 계속 욕을 퍼붓고 네가 죽을 때까지 만천하에 너를 고발하라고 부추기는 거야. 이게 바로 먼저 사과하는 것의 치명적인 결과야.” “맞아. 사과하지 말아야 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모두 빠짐없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괜히,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 “그 말��� 어쩜 그렇게 슬픈 목소리로 하냐.” (밀란 쿤데라, 『무의미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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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1일에 나는 죽음을 생각했고 이렇게 썼다. 2016년 9월 25일 나는 또 억울한 죽음을 목격하고 있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는다. 내게 이 사실을 처음 알려준 사람은 유치원 선생님이었다. 가족, 친구 그리고 본인까지 언젠가는 모두 죽는다고,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 방에 있던 모두가 울지 않았다. 오직 나만이 울었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는다. 내가 갔던 첫번째 장례식은 15살 때, 외삼촌의 장례식이었다, 외삼촌에 대한 감정이랄 것도 없던 내게, 장례식 안의 사람들은 어린 나에게 외삼촌의 사람됨과 인생에 대해 말했다. 그가 묻히던 날, 모두가 통곡했지만 그의 어린 조카들은 나를 포함해 아무도 울지 않았다. 죽음은 항상 그렇게 나와 어색한 종류의 것이었다. 항상 어긋난다고나 할까. 모두가 울지만 나만 울지 않고, 나만 울지만 모두가 울지 않는. 죽음에 대한 이 책을 읽은 후에도 그렇다. 여전히 어색하다. 불멸을 꿈꾸기에 그런 것은 아니다. 당연히 나는 언젠가 죽을 것이다. 아니 죽는다. 확실한 사실이다. 인생에 있어 확실한 유일의 것은 죽음이다.
"미국의 소설가 코맥 매카시의 말이다.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내게, 우리 모두에게 그렇다.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죽음에 관해 쉽게 말할 수 없으니, 참으로 기묘한 일이다.' " - 데이비드 실즈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는다' 중에서
생의학을 공부하고 있는 내게 죽음은 더 아이러니컬한 종류의 것이다. 생의학자들은 생의 원리를 탐구해 어떻게든 개체의 생을 늘리려한다. 생의학자 대부분은 철저히 진화론에 입각해 생과 죽음을 말한다. 진화론에 따르면, 개체의 생과 죽음은 집단의 다양성을 위한 필연의 것이다. 진화론은 개체의 죽음을 긍정한다. 개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집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의학자들은 개체의 수명을 늘리려하고 있다. 죽음은 여전히 말하기 어려운 대상이다.
"개체는 중요하지 않다. 아버지, 당신도,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중요하지 않아요. 저도, 물론,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는 세포들의 생명을 전달해주는 매개동물에 지나지 않아요. (중략) 유전자가 불멸하는 대신 우리는 늙어 죽는 대가를 치러야 해요. 아버지는 이 사실에 영혼이 갈가리 찢기는 것처럼 느끼죠. 저는 그 사실에 짜릿하고 속이 시원해요. 제가 보기에 삶은 단순하고 비극적이에요. 그리고 기이하리만치 아름다워요." -데이비드 실즈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는다' 중에서
어떻게 늙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한다. 평범한 어른들이 사라진 세상에서 나는 평범한 어른이 되기를 꿈꾸고 있다. 때로는 침묵이어도 좋으니 듣는 사람이 되기를.듣는 것을 행하는 사람이 되기를. 행하는 것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기를. 책임진 것들에 미안함을 가지는 사람이 되기를. 그리고 그 미안함을 짊어지는 사람이 되기를. 그리고 짊어짐과 함께 죽음을 마주하기를.
"우리는 모두 타인의 고통 속에 태어나고, 자신의 고통 속에 죽어간다." -프랜시스 톰프슨
삶이 태어나고, 늙어가고, 죽는 것이라면, 태어남과 죽음이 선택이 아니라면,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는 선택의 영역이기를 바란다. 그렇게 늙어가다가 오로지 자신의 고통 속에서 죽어가기를 바란다. 삶의 마침표는 오로지 자신의 것이기를. 마침표를 찍을 만한 이야기는 완성하고 죽기를. 우리는 언젠가 죽지만, 태어나고 죽는 것만이 삶의 다가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 쉽지 않으며, 그래서 더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죽었으면 좋겠다.
"프랜시스 치체스터 경은 66세 세계일주 항해를 마친 뒤에 말했다. '시도가 실패한다고 해도 무슨 상관인가? 모든 인생은 결국에는 실패한다. 우리가 할 일은 시도하는 과정에서 즐기는 것이다.'" -데이비드 실즈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는다' 중에서
인간은 실패한다. 죽음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실패가 다가 아님을 알고 죽기를 바란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지만, 사회는 태어남만을 이야기하지만,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있고 아름다운 시도인지 말했으면 하고 바란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어른이 되기를, 그렇게 늙어가기를 바란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지만 마치지 못한 죽음들을 관찰할 수 밖에 없는 사회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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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희망은 우리를 비웃고 난 그를 바라본다 세상은 끝이 났을까 그의 눈물을 본다 바다보다 어둡던 참지 못한 눈물 속에 평범한 비극이 있네 서로가 슬퍼서 우네 희망은 우리를 비웃고 난 그를 바라본다 세상은 끝이 났을까 그의 눈물을 본다 바다보다 어둡던 참지 못한 눈물 속에 천천히 가라앉네 천천히 (선우정아,염신혜, 'Fallling down' 노랫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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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9일
지금은 지워진 내 블로그에 있던 글을 기록을 위해 다시 옮긴다.
2014년 10월 19일에 나는 이렇게 썼다.
하루의 시각은 말해도 날짜를 적어보는 일이 드물다. 시간에 무심해진 것이 아니라 시간을 피하고 있나보다. 촉각을 매개삼아 피부로 와닿는 시간의 변화에 우리는 계절보다 날씨라는 이름을 붙인다. 날씨에 몰두해 계절을 잊는다. 그래서 가을이라는 계절의 언급은 외면한 시간과의 마주를 의미하나 보다. 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 에는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한 사람들(메리와 켄)과 그들을 외면하지 않는 노부부(톰과 제리) 가족이 등장한다. 소박하지만 즐거운 삶을 살아가는 노부부 앞에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마음씨 좋은 노부부는 그들을 차마 외면하지 못한다. 그렇게 계절이 지나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 따뜻한 미소로 점철되던 노부부의 얼굴에 어느새 피로가 자리잡는다. 계절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메리'의 우울에, 어떠한 변화의 기미도 보이지않는 그 우울에, 노부부는 같은 식탁을 허하지만 더이상 아무런 시선도 주지 않는다. 같은 식탁에 있지만, 누구의 시선도 받지 못한 '메리'의 불안한 시선을오직 카메라만이 주목한다. 카메라는 잔혹하게도 클로즈업한다.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난다. 계절은 반복된다. 그 반복에 우리는 쉽사리 이해라는 영역으로 다름을 포섭한다. 나와 너의 생이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믿음은, 타인의 생을, 그 다름을 감히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긍정은 피로라는 결과로 표출된다. 타인과 어떠한 거리도 갖지 못한 친밀함의 결과는 결국 외면이다. 개인의 자율성도 타인을 이해하지 않을 자유를 전제한다 .리처드 세넷은 이렇게 말한다. "자율성은 이해의 평등, 즉 투명한 평등이 아니라 타인에게서 이해되지 않는 바를 받아들인다는 것, 즉 불투명한 평등을 의미한다." -한병철 책 '투명사회' 중에서 추워졌다. 옷장을 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제서야 계절이 바뀌었음을 알았다. 마주하지 못한 시간의 물음이 쏟아진다. 보고싶은 것만을 보며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보지 않은 것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할 수 없는 것에 무력감만을 느끼지 않았는지. 무력감을 느끼는 것에 눈을 감지는 않았는지. 결국 나로 가득 찬 사람이 되지는 않았는지. 타인의 공간은 있었는지. 나와 다름을 감히 이해할 수 있다는 긍정 안에 포섭하지는 않았는지, 계절이라는 반복에 기대어 타인의 계절 역시 나와 같이 반복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누군가에게 계절은 어떤 날 이후, 멈춰버린건 아닌건지. 나는 그것을 감히 이해할 수 있다는 범주 안에 넣어버린건 아닌건지. 그래서 또 눈을 감아버리고 있는건 아닌지. 날씨에 몰두해, 계절을 잊고 살았다. 내가 느낄 수 있는 것만 느끼며 살아왔다. 어찌할 수 없는 미래 앞에, 그 무력감에 눈을 감은 체로, 나에 몰두했고, 현재에 몰두했다. 시각은 현재이며 시간은 현재만이 아니라는 것을 이 계절에 나는 생각한다. 이제서야 나와 다른 당신에게 말한다. 이번 가을은 너무 늦고 말았습니다.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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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쉴새없이 그의 펜촉을 따라가다 보니 가슴은 두근거렸다. 순수한 재능에, 천재적이고도 따뜻한 사유에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그 기쁨을 더 많은 사람이 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말을 더 붙인다. 사실 별다른 말이 필요 없다. 단연코 올해의 책이 될 것이 분명하기에. #언플래트닝 #닉수재니스#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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