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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나는 마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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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tandhere · 1 month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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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볼수록 알게 되었다. 내가 쥐고 있는 것이 얼마나 작은지를. 내가 붙드는 게 아닌, 나를 붙드는 삶이 얼마나 큰지를. 알고 나니 볼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없음 앞에 오래 서 있을 때 가장 선명해지는, 이해하지 않으려는 나의 얼굴을. 없음과 하고 싶지 않음을 구별하려는 마음 없이, 없음에 기대어 있던 나날을.
모르더라도 다가가는 마음. 뜨고, 보는 눈. 나는 보는 눈을 가지고 싶다. 보려는 마음을 따라가고 싶다. 외면하고 싶은 마음을 발견할 때도 있고 가끔 도망치기도 하지만. 내 얼굴에 용기 있는 의도가 담기길. 용기로, 삶과 사람을 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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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tandhere ·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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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2월을 준비하며 홀로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 선배와 보낸 1월의 시간들. 그랬는데 이제 3월이네. 세 번째 사진은 가장 마지막에 쓴 날이 2021년에 머물러 있는 편집자 노트. 상자 속에서 다시 꺼낸. 결정하는 용기, 첫 장에 그렇게 쓰여 있는. 마지막 주에는 노트를 생각하다가 이렇게 썼다. ㅡ어떤 이야기가 우수수 떨어질까? 모두를 다 받아낼 재량은 없지만 무엇이 되었든 이야기는 쓰일 것이다.ㅡ
지금으로 말하자면 미지근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상태에 가깝다.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거나 아니면 차라리 시원해지고 싶은. 그러나 곧 이 미지근한 물도 훌훌 헤엄치는 데 딱 알맞은 온도가 될 것을 안다. 믿을 뿐만 아니라 안다. 흐르는 계절처럼 어느 날 뜨거우면 뜨거운 대로. 시원하면 시원한 만큼. 어쨌든 야호라고 외치고 싶어.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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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tandhere · 7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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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에서도 추위를 견뎌야 함에도 친애하는 집이 있음에 감사하면서. 인내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하자. 올해의 마지막 문장이다. 인내는 헬라어로 ‘ὑπομονή(후포메네)’, 문자 그대로 보면 ‘아래에 머물다’라는 뜻이다. 신기하게도, 몇 년 만에 재독 중인 <사생활의 천재들>에서 아래에 머무는 어떤 사람에 대해 읽고 있다. 박수용 PD는 시베리아 호랑이를 영상으로 남기기 위해 한 평짜리 지하 비트에서 소리를 내지도 불을 켜지도 못하고 고립되어 지내면서 호랑이를 보는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을 보는 시간을, 인생의 잠복기를 경험한다. 오른발을 내딛었어도 뭔가 낌새가 이상하면 왼발을 든 채 정지 상태로 5분도 참는 호랑이처럼. 발 딛고 머물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를 영원처럼 살 줄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지금 여기에서 눈을 떼지 않아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머문다는 건 굽히지 않는 것, 물러서지 않는다는 자세다. 비트 안에서 호랑이의 숨결 소리를 들으며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느꼈던 그즈음 그는 생각한다. ‘더 큰 것이 있다. 더 큰 것이 있다. 사소한 것들은 잊힌다. 그 오솔길의 끝에.’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달 요동하는 눈동자를 붙잡고 5분간 한 발을 드는 마음으로 지나가고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려고 한다. 이것이 한 해의 마지막 할 일이면서 기꺼이 누리는 삶의 기쁜 숙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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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tandhere · 7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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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없는 곡을 주로 듣는 한 해였다. 그러던 중 어느 때라도 이설아의 음악을 들으면 나는 22년 1월과 2월 그 겨울로 돌아간다. 갈데없이. 그런 이유로 날이 추워지면 그녀의 목소리가 생각난다. 3년이 지난 지금은 다른 집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손이 시릴 정도로 춥고 새해에 예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이 겨울은 그때보다 한걸음 더 뒤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직 이겨내지 못한 기억도 있다. 시간이 흘러도 태연해지기보다는 웅크리는 마음이 더 커지기만 한다. 다만 쓸 이야기가 나타났다. 3년 전, 살아가는 한 계속해서 이야기는 생긴다고 썼듯. 쓸 수 있다는 것이 신비롭다. 글은 매일 나를 앞서간다. 씨앗을 심기 전에 땅을 파내고 고르는 곡괭이처럼. 글처럼 살지 못해 괴롭다가도 글이 나보다 더 먼저 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면 자세를 낮추고 기꺼이 따를 마음이 된다. 아마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사실, 나는 아직도 멀었구나 느낀다. 다행인 것은 여전한 삶의 면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을 탓했던 내가 어떤 것들은 여전하기에 축복이라는 걸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친애하는 사람들이 무탈하게 거기에 있다는 것. 저마다의 빛을 깜빡이면서. 개인적으로 달라진 점이라면 받아들이는 마음을 단련한 그뿐이지만, 이 한 가지가 엄청난 일이라는 것을 안다. 여전히 우리가 눈을 맞출 수 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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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tandhere · 7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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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하는 것들:: 빛과 잎과 말과 눈과 마음의 한가운데와 .. 이 모두에게 장소를 내어주는 시간. 이 모두를 바래게 할 수 있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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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tandhere · 7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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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도쿄. 유독 다리 밑에서 또는 그 앞에서 자주 멈추어 선 나를 발견하는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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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tandhere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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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우리는 본래 다르면서 같은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사실에 잠시 마음을 놓으면서 고속버스 맨 앞 자리에 앉아 달리는 차들을 바라보았다. 다른 나의 모양을 한 채 같은 트레일 위에서 실선을 넘나들며 나는 너를 너는 나를 파고들고 견주어보고 지지하고 알아본다. 나는 비로소 나이고 결단코 내가 되는 수밖에 없으나 이곳과 저곳 어떤 날 어딘가에서 무수히 많은 내가 다른 얼굴과 걸음걸이로 분투하며 살고 있다. 나는 애틋한 마음이 되어 세상을 다르게 보는 안경을 쓰고 이 풍경을 잠시 더 멀리 본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번쩍이는 순간들이 있다. 플래시처럼 터지고는 하는. 어렴풋한 스스로를 설명할 길 없는 내가 이토록 선명하게 모양을 만들어가는 때로는 나를 다그치는 너를, 그렇게 서로를, 보고 어떤 구석을 알아차리고 그 마음에 힘을 보태게 되는 것은 갈데없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한 명의 개인조차 같은 속성으로, 동일한 세포로만 이��어져 있지 않으므로 무수한 당신은 또한 무수한 나를 알아본다. 점화된다. 어떤 빛을 포착한다. 사람과 사람 틈으로 잠입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나는 다정하다고 느낀다. 다정을 잡아채도록 설계된 삶의 구조에 불현듯 감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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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tandhere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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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의 일 해가 저물기 전 산책을 하고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는 서서 이 장면을 본다. 열어둔 베란다 창문으로 보이는 옅은 하늘과 키 큰 나무. 새소리가 들리는 곳이 궁금해서 침실 창문으로 내려다볼 때는 보이지 않았는데 저곳이었네. 새들이 오르내리면서 말을 한다. 바깥은 봄이고 저 나무는 아직이다. 고작 몇 달 뒤에 이 집에서 저 새들을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빈집에 머무는 여행객의 기분으로 창문만은 성실하게 열고 닫는다. 앙상한 저 나무도 시간이 흐르면 싹을 틔울 것이다. 위험할수록 문을 열자. 메모를 남겨두었다. 가리워지고 싶다가 주저없이 나타나고 싶다. 이 또한 남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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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tandhere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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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해야 하는 것을 인정할 때 눈물이 난다. 인정해야 하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도, 눈물이 난다.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 나는 왜 울컥할까.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인정하지 못해서인가, 비로소 인정하기 때문인가. 서로 반하는 말인데도, 전혀 다른 방향인데도 나는 이 마음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짚어내지 못한다. 고개를 끄덕일 수도 없고 저을 수도 없다.
‘인정하다’. 나는 이 단어의 뜻을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생각했다. 마침내 받아들이는 것. 어쩌면 앞서서 받아들이는 것. 심지어 뒤를 돌아선대도 받아들일 줄 아는 것. 국립국어원에 검색해보니 그 뜻은 ‘확실히 그렇다고 여기다’이다. 그렇다고 여기는 것인데, 확실히 여기는 것. 확실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틀림없이 그러하다’. 틀림없다는 것은 무엇인가. ‘조금도 어긋나는 일이 없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인정한다는 말은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그 무엇을 그렇다고 여기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렇다’의 의미이다. ‘상태, 모양, 성질 따위가 그와 같다’. ‘그렇다’의 첫 번째 뜻풀이다. 어떤 대상의 상태와 모양, 성질 따위가 그와 같다는 말은 존재가 존재한다는 것이 팩트라는 말이다. 존재의 존재함. 그러니까 다시 말해 무엇인가를 인정한다는 것은 어떤 대상의 존재를 어긋남이 없이, 곧 존재함에 대해 다른 가능성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길 수 없다는 뜻이다. 있는 것을 없던 것처럼, 눈앞에 보이는데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것이 내 눈앞에 있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감각하면 된다는 뜻이다. 고로 무엇인가를 인정한다면 물러서거나 우회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으며 있는 것을 없는 것이라고 설득할 수 없다. 단지 그 존재를 감각하면 될 뿐이다. 그것은 거기에 다만 있는 것이다. 나는 거기 놓인 그것을 다만 볼 뿐이다. 눈을 감지 않고. 고개를 돌리지 않고.
문제는 뒤이어 따라붙는 접속사에서 시작된다. ‘나는 인정해. 정말로. 그런데 있지...’ ‘그래 인정해. 다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인정하는데, 그래도 그건, ...’ 우리는 인정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있음을 있음으로, 없음을 없음으로, 존재를 존재함으로 이어지는 당연한 공식을 계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눈을 감았다는 것을, 확실하게 그러하다고 여기지 않았다는 것을. 내 삶의 역사를 돌아볼 때, 실은 지금도 숱하게 만나고 있는 절망들은 있었던 것을 없는 것으로 주장하느라 생겨났다. 거기 있었구나, 그랬구나 끄덕이지 못하고 그게 왜 거기 있어야만 했는지 물었기 때문에. 나는 왜 그 존재의 존재함을 보고 느껴야만 하나. 회로는 언제나 그렇게 흘러간다. 그런 물음표가 내 안에 흐르고 넘쳐서 나는 많은 시간들을 있음을 있음으로 보지 못했다. 그리하여 없음 또한 있음으로 만들어내지도 못한다. 그저 눈만 감은 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아우성만. 나는 언제나 본 것을 두루뭉술하게 보느라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다.
인정을 할지 말지 선택할 수도 있다. 선택의 가능성도 개입할 수는 있다. 볼 것인가 보지 않을 것인가. 느낄 것인가, 느끼지 않을 것인가. 어떤 선택지를 고르더라도 우리에게 새로운 이야기는 생겨난다. 다만 누구도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알 수 없다. 그동안 나는 키가 큰 파도를 만났을 때 그를 모르는 척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그리고 파도의 물살을 맞고 해변가에 내동댕이쳐졌을 때는 정신이 들면 스스로 물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다 지나간 일이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너는 그 모든 게 없던 일이 되면 좋을 것 같니. 방금 맞은 물살을 없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어. 수분은 다 빠져나갔고, 입안은 모래로 가득해. 다시 되돌아간다면 너는 그 파도 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거니.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잖아.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없어. 이 모든 일을 벌인 네 자신으로 똑같은 물살과 똑같은 탈수를 경험해야 해. 그래도 다시 할 수 있겠니. 나는 예스라는 대답을 듣지 않고는 좀처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없었다.
3월, 서울 종로구의 카페에서 이제니 시인의 산문 <새벽과 음악>을 읽었다. 제목에 음악이 들어가는 만큼 책 안에서 많은 노래 제목이 흘러나왔다. 글에 적힌 요한 요한슨의 앨범 <Orpree>를 재생했다. 곡이 넘어가고, 넘어가고, 모든 곡이 울릴 때마다 내 안에서 여러 장면들이 재생되었다. 앨범의 흐름 안에서 여러 장면들은 하나의 연결 통로가 있는 듯 내 안의 무엇인가를 대변했다. 대변하고자 음악에 반응하고 있었다. ‘The Burning Mountain'이 재생되는 순간 영화 <컨택트>가 눈앞에 그려졌다. 찾아보니 <컨택트>의 사운드트랙을 요한 요한슨이 제작했다. 카페 창가에 앉아 요한슨의 곡을 듣고 있으니 <컨택트>를 보던 순간의 숨막히는 위압감, 절대적인 체험, 그 끝에 맞는 결말과 질문이 오버랩되었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고 있다고 해도 이 모든 일을 겪을 수 있겠냐는 물음. 당신에게 지금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앞으로 보이게 될 것까지 볼 의지가 있느냐고 묻는 말이었다.
질문은 곧 내게로 돌아왔다. 있던 것을 확실하게 있는 것으로 만들지, 있긴 있었는데 없었으면 하는 흐릿하고 모호한 것으로 만들지. 어떻게 해도 이제는 없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다만 있는 것’과 ‘있는 것으로 명확히 기억되는 것’은 다르다. 보고 느끼지 않으면 존재함은 흐려진다. 형태를 굳히는 것은 오로지 나의 감각이다.
시큰하고 뻐적지근해지는 지나온 순간을 떠올리면서 나는 대답했다. 그러하겠다고. 무수한 순간들 속에서 형용할 수도, 온전히 사랑만 하고 온전히 미움만 할 수도 없는 아름답고 고귀한 장면들을 보았기 때문에. 그것에는 어떤 평가도 들이밀 수 없고 어떤 잘못도 없고 절대적이기만 한 이해와 수용이랄 것도 없이, 존재 자체로 귀하고 윤이 났던 감정과 빛과 어둠과 어스름과 그림자와 손짓과 몸짓과 발걸음과 미소와 울음이 있었으므로. 그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나는 이전의 나와는 다른 나이므로, 달라진 나를 굳이 잃고 싶지 않으므로.
오늘 아침 나는 고개를 저었던 것일까, 끄덕였던 것일까. 인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끄덕이고 싶다. 매일을 인정하고 싶다. 그 연습을 하기 위해 이토록 뚝딱이며 어설프게 허들을 넘고 있다. 보지 않고서는 뛰어넘을 수 없으니까. 이 글을 쓰는 순간, 끄덕이기 위해 노력했던 많은 나를 떠올린다. 결국 지금의 헷갈림 또한 보기 위한 움직임이다. 허들을 보고 넘기 위해 풀어진 신발끈을 묶는 과정일 것이다. 나는 비로소 넘어설 테니까. 있는 것을 있는 것으로 보고 느낄 수 있으면, 그것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것은 거기 있고 내 눈앞에 ‘보인다’. 내 앞에 놓인 허들이 투명하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있는 것을 보는 것보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 내게 주어진 가능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동한다. 봐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볼 수 있다는 가능이. 내가 본다는 사실이 그것이 거기 있는 것을 증명한다. 나의 직시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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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tandhere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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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고 있다. 충분할 진실을 자주 잊는다. 나는 계속 살아가고 있다. 나는 지금 살아가고 있다. 나는 방랑자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나는 여행자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언제나 어딘가를 경유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책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부름을 받아 살아가고 있다. 나는 순간 순간 절망하여도 다시 타오르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타올라서 재가 되었다가 마른 장작이 던져지면 느리게 불씨를 틔우고는 일렁이는 바람에 휘청휘청 꺼질 듯 사그라드는 듯하다 세찬 바람에 타오르는 불처럼 살아가고 있다. 나는 타올라 빛을 만들어내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 빛이 겨우 몇 발자국 앞까지만 비추더라도 살아가고 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불꽃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나는 재가 되어도 살아가고 있다. 나는 다시 책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어떤 음악으로 나를 대변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하는 것들을 내 온 몸에 글자로 새길 수 있을 만큼 그들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하는 것들에게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말하지도 보여주지도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나는 사랑이 전부라고 말하며 떵떵거리고 싶을 만큼 많은 것들을 껴안고 싶지만 날마다 도망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나로 살아가는 게 어렵다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내 안의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나는 어디까지나 돌봄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늘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으나 살아가고 있다. 나는 늘 여기가 어딘지 몰라도 살아가고 있다. 나는 여기가 어디든 상관없어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끝내 머물게 될 곳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어떤 점에서는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다만 살아가고 있다. 나는 납작 엎드�� 살아가고 있다. 나는 때로 높은 산 정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다시 길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나를 띄운 바다와 내가 그러모은 부유하는 조각들을 모두 부정하고 끄덕이다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쓸 수 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뱉어내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남김없이 남기고 싶어 살아가고 싶다. 나는 남김없이 숨기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이 살아가고 있다. 나는 늘, 무엇을 그리 말하고 싶은 것인지 질문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많은 것에 대답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나는 침묵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침묵하기만 할 수 없어 살아가고 있다. 나는 매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매달리기만 할 수 없어 살아가고 있다. 나는 내게 당도하는 모든 것들에게 선을 그어두고 살아가고 있다. 나는 내게 당도하는 모든 것들의 살아 있음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내게 당도하는 모든 것들을 잃어버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잃어버린 것들을 잃어버린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나는 잃어버린 것들을 추격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내가 잃어버린 것이 바로 내가 가진 것이라는 사실도 이따금 깨달으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내일 방황하여도 커피를 내리고 냉장고를 열고 쓰레기를 비우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삶의 끝없는 절차와 양식들을 모르는 척해도 창문을 열기를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당신이 나를 안다는 사실만으로 버거울 때가 있는데도 당신이 나를 앎으로써 살아가고 있다. 나는 계속해서 ‘나는’을 다시 쓰면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쓰지 않은 것들을 태어난 적 없는 것들을 발견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나는 미래에 새로 쓰이는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새로 쓰일 글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나는 살아가고 있다. 나는 이렇게 쓰인 문장을 본 적 없으나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다. 나는 있다. 살아가고 있다. 언제까지 살아가고 있다. 나는 나를 반드시 넘어지게 하는 바로 그것이 반드시 살아가기 위해서 눈을 뜨고 똑바로 바라보아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을 반드시 느끼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반드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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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tandhere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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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시 후미꼬의 <방랑기>와 장필순의 1집, 2집 앨범 그리고 목덜미와 등줄기에 흐르는 땀이 선명했던 도쿄 여행. 때때로 앳된 바리스타의 미소, 가게 직원의 섬세한 친절, 동네 밥집 셰프의 담백한 미소, 전철 안에서 만난 할머���의 미소를 마주하는 순간이 나를 웃게 했다. 익숙한 적막과 태연함 속에서 기억을 만들어준 건 초록의 아름다움과 사람의 온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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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tandhere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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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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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tandhere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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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을 떠나! 라는 응원을 받은 밤, 괜찮은 정보가 있을까 싶어 메일함에 도쿄를 검색해 보았는데 믿을 수 없게도 ‘모험을 떠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라는 제목의 메일이 있었다. 메일은 21년에 온 글이었다. 무언가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국 밖에서 처음으로 자유롭게 누비는 여행, 9월의 초입 공항버스에 홀로 탑승한 나는 마치 여행길에서 겪을 일들을 예감한 듯 썼다.
끈덕지도록 내가 너무도 나여서 웃음이 난다. 끈덕진 덩어리로 뭉쳐있는 내게 어디선가 씨앗들이 날아와 들러붙으면 저마다 다른 모양의 풀들이 싹을 틔우고 자라난다. 그것들은 은은하게 제 존재를 지키면서 따가운 볕 아래서도 태연하다. 때로는 새벽 서리도 눈도 바람도 맞겠지. 그리고 지금, 저 멀리서 바람을 타고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는 씨앗 하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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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tandhere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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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가 웅덩이에 비친 나무를 우물처럼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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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tandhere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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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시간은 너무 짧다. 뱉은 말도 곧바로 공기 중으로 흩어져버리고 담은 생각도 내일이면 달라져있다. 늘 떳떳하지 못하다. 무엇이든 흩어지고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고 경험하는 일상이다. 실로 시간이란 건 형용할 모양이랄 것 없이 한계 없이 흐를 테지만 마음으로 감각하고 받아들이는 순간이 긴 하루 속에서, 너무 짧을 뿐이다. 그럼에도 붙잡아야 하는 것과 붙잡고만 싶은 것이 있어서 우리는 움직인다. 말해보고 울어보고 웃어보고 버텨보고 헤매어보고 눈을 부릅 떠보고 계속 가보고. 믿고 움켜쥐고 새길 만한, 심지에 불을 붙일 만한 연료를 찾기 위해서. 애틋한 순간들과 나와 우리의 어떤 마음을 잊지 않고자. 지나고 나면 반드시 이 순간에 대해 어떤 마음이든 깨닫게 되기 때문에. 때로는 다만 순간에 진심이고 싶어서.
2021년 6월 4일에는 이런 메모를 남겼다.
오후 여덟 시를 향해 가는 시간 아름답게 물드는 초여름의 하늘. 분홍빛 노을과 선선한 공기를 이 시간을 잊지 말아야지. 잊지 말아야지. 이런 순간이 있었다는 걸 깜빡하지 말아야지. 걸으면서 자꾸 다짐을 했다. 겨울이 찾아오면 여름의 광경은 모두 잊어버리고 어두컴컴한 저녁 차가운 바람을 헤치며 빨리 걷고 있겠지. 여름일랑 뒤로 하고 깜깜한 마음으로 어떤 빛을 찾기도 하겠지.
나는 달라진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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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tandhere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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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서 졸다가 깨었다. 혼자 있기 위해서, 아주 멀리 가고 싶어서, 지금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아침 일찍 기차를 탔다. 표는 어젯밤에 예매해두었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상태라 눈이 추를 단 것처럼 무거웠다. 하루가 걱정될 만큼. 이런 묵직함을 내내 가지고 다니게 된다면. 책을 읽다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시 눈을 붙였는데 단잠을 잔 듯 개운해졌다. 맑은 정신으로 책장을 넘기며 문장에서, 곧 작가의 속삭임으로부터 밀려오는 장면들 속을 헤엄쳤다. 배수아의 문장을 읽다 보면 내게도 같은 기억이 있는 것처럼 이미지가 떠오르고 나도 함께 그곳에 서있게 된다. 꿈속에서 파편 같은 이야기들이 하나로 이어붙여지듯 문장을 타고 흐르며 여러 산발적인 생각을 했다. 고요한 역들을 지나치고 들판을 가로지르며 뜬 눈으로 글을 읽고 있으니, 오랜만에 삶을 붙잡는 기분이었다. 제대로 바라보고 있었다. 착각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잘 떠나왔다고 생각했다. 결심과 실행이 어느 하나 앞서지 않고 그림자마냥 뒤에 서서 티격태격하던 매일, 오늘은 미루지 않았으니 좋은 연습이었다. 매일매일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늘 오늘 아닌 그 언젠가를 위해 호기심이 던지는 가능성을, 그 수많은 선택들을 보류하고 외면한다. 그러지 말아야지. 오늘이어야지. 지금이어야지. 내가 있는 이 순간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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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tandhere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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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겨울 나무를 보고 싶어 기다려본 적은 없었는데. 이번 겨울엔 탐조하듯 마른 나무들을 올려다보았다. 가지만 남은 겨울 나무에도 빛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이제 막 얼굴을 내밀고 돋아나는 어린 잎이나 생생하게 푸르른 잎이나 붉고 노랗게 물들어 태양처럼 눈부시게 지는 잎이 없음에도. 나무는 거울처럼 빛을 반사하고 호수처럼 빛을 머금는다. 여러 그루의 얇은 가지가 겹겹이 있는 모습은 마치 빛이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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